⊙ 닉슨의 책사로 반대세력을 상대로 한 온갖 정치공작 자행…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복역 후 ‘교도소 선교회’ 설립
⊙ “모든 결정 사항에 대해서 언제나 자신에게 ‘이것이 옳은 일인가?’ 물어보십시오”(前 백악관 직원 버드 크로)
⊙ “사람을 따르는 정부가 아니라 법을 따르는 정부가 바람직”(거하트 게젤 판사)
⊙ 문재인 정권, 자기들이 포위되어 있다는 피해의식은 닉슨 정권과 흡사… ‘적폐청산’ 명목으로 숙청에 주력
⊙ “모든 결정 사항에 대해서 언제나 자신에게 ‘이것이 옳은 일인가?’ 물어보십시오”(前 백악관 직원 버드 크로)
⊙ “사람을 따르는 정부가 아니라 법을 따르는 정부가 바람직”(거하트 게젤 판사)
⊙ 문재인 정권, 자기들이 포위되어 있다는 피해의식은 닉슨 정권과 흡사… ‘적폐청산’ 명목으로 숙청에 주력
지난 2월 4일, 대한민국 헌정사상(憲政史上) 처음으로 현직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彈劾訴追案)이 가결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였지만, 한 집권당 중진의원이 실토했듯이 탄핵의 근본원인은 ‘국민정서에 반하는 판결’을, 다시 말해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장의 거짓말’이 논란이 됐다. 탄핵 대상이 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지난해 5월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사표를 제출했지만, 김 대법원장은 “(여당에서) 탄핵하자고 하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다”면서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대법원은 지난 2월 3일 국회에 제출한 답변 등에서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임 부장판사에게 ‘탄핵’을 이유로 말한 적도 없고, 사표가 대법원장에게 실제로 제출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다음 날 임성근 판사의 변호인이 녹취록을 공개하는 바람에 거짓말임이 들통났다. 그러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서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하여 송구하다”고 둘러댔다.
금태섭 전 국회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리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도 거짓말과 말바꾸기를 밥 먹듯이 하는 세상이지만, 대법원장이 이렇게 정면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하다니…”라는 글을 올리는 등, ‘대법원장의 거짓말’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지만, 여당은 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수(多數) 힘으로 판사 탄핵을 밀어붙였다.
우리나라는 정치인을 비롯한 공직자의 거짓말에 이상할 정도로 관대하다. 일국의 대법원장이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면 그것 자체로 나라가 뒤집어져야 마땅하지만, 거짓말한 대법원장은 멀쩡하고, 그걸 폭로한 판사가 탄핵돼버렸다.
워터게이트 사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사퇴한 것은 민주당 선거대책본부가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에 ‘배관공’이라고 일컫는 공작원들을 침투시켜 민주당 선거 관련 자료를 빼돌리려고 해서가 아니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진척되면서 이와 관련된 여러 사실, 특히 백악관 내 도청 테이프 존재 등에 대해서 거짓말한 것이 문제가 되어서였다.
자칫 좀도둑들의 민주당 선거대책본부 침투 사건 정도로 그칠 뻔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은 밥 우드워드 등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의 끈질긴 추적보도와 정권 내부 ‘딥 스로트’(deep throat·익명 제보자)의 제보로 결국 닉슨 정권을 무너뜨리는 일대 스캔들로 번졌다. 이 과정은 수기와 영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꽤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닉슨 정권 입장에서 본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책은 국내에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백악관에서 감옥까지》(원제 Born Again)는 관심을 끄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찰스 콜슨(1931~2012년)은 제1기 닉슨 행정부(1969~1973년) 시절 닉슨의 특별보좌관으로 활약했던 책사(策士)였다. 그는 닉슨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대상으로 하는 온갖 궂은 정치공작을 자행했다. 그 때문에 ‘처리 담당’, 즉 ‘해결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필요하다면 자기 할머니라도 밟고 지나갈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콜슨 스스로도 이런 자신의 모습에 염증을 느껴 닉슨이 재선된 직후인 1973년 백악관을 나와 로펌(law firm) 변호사로 돌아갔다. 하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이 본격적으로 진전되면서 ‘닉슨 해결사’인 그의 존재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무렵 그는 친구의 권유로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을 읽고 회심(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했다. 그는 결국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1974년 7월 유죄선고를 받고 6개월간 복역한 후 석방됐다. 이후 재소자·전과자·범죄희생자 및 그 가족들을 돕는 ‘교도소 선교회’를 설립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독교 사역에 전념했다. 이 책은 원제(原題) 《Born Again》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저자의 신앙고백을 담은 책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런 측면보다는 닉슨 정권의 이면(裏面)과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전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 對 우리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가장 궁금한 대목은 ‘닉슨 정권이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는가’라는 점이다. 사실 닉슨 측은 그런 무리수를 두지 않고도 1972년 대선(大選)에서 여유 있게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닉슨 선거본부는 왜 민주당 선거본부에 ‘배관공들’이라는 이름의 얼치기 공작원들을 침투시켰을까? 도대체 닉슨은 왜 백악관 사무실에서 오가는 대화들을 녹음하게 해서 화근(禍根)을 만들었을까?
아마 그 원인은 ‘포위의식’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미국의 권부(權府), 아니 세계의 권부라고 할 수 있는 백악관을 차지했으면서도 자신들은 적대적인 리버럴 언론과 시민사회 세력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는 의식 말이다. 이 때문에 닉슨 정권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FBI 등을 동원해 비판세력을 사찰(査察)했으며, 백악관 내부에 적의 스파이가 침투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내부 대화마저 모두 녹음하게 했다. 1970년 5월 9일 반전(反戰)시위대에 의해 백악관이 포위되었던 사건은 그 포위의식을 더욱 부추겼다. 찰스 콜슨은 이렇게 회상한다.
“백악관의 철문 내에서는 어느새인가 자신들이 포위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들 대(對) 우리’였다. 우리가 그 원을 점차로 우리 주위에 가깝게 그림에 따라 ‘그들’의 층은 점점 더 두꺼워졌다.”
찰스 콜슨을 기독교인으로 회심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친구 톰 필립스는 콜슨에게 이렇게 지적한다.
“자네들의 문제는, 척(찰스 콜슨의 애칭) 자네도 마찬가지네.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려고 했다는 걸세. 적을 파멸시키려고 했다는 거지.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파멸시킬 수밖에 없었던 거야.”
찰스 콜슨도 이 말을 수긍한다.
“우리는 우리끼리 격리된 백악관 ‘섬’에서 세상을 ‘우리 대 그들’ ‘닉슨 백악관 대 세상’이라는 대립구도로 보았다. 우리 자신의 대의(大義)에 대해서 불안했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 지나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포위의식’
여기서 문득 집권세력이 ‘보수궤멸’을 공공연히 선언하고, 그것이 하나하나 실현돼가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실이 떠오른다.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더 나아가 현 한국의 집권세력 역시 이런 ‘포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1970~1980년대 운동권 출신인 그들은 자신들이 공안기관과 보수언론, 기득권 세력에 포위되어 있다는 피해의식 속에서 성장해왔고, 지금도 그런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권 초부터 ‘보수세력 궤멸’을 외치던 그들이 지금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와 사법부,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장악했다. 방송을 손아귀에 넣었고, 인터넷 언론과 시민사회운동 세력, 민노총 등 강철 같은 우군(友軍)을 확보했다. 이에 힘입어 ‘20년 집권’을 호언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보수언론, 기득권 세력의 핍박을 받는 존재인 것처럼 주장한다.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명목 아래 건국 이래 최대의 숙청극을 벌이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들어 검찰을 무력화(無力化)시키고, 경찰을 정권의 시녀로 확실하게 종속시키고, 대공(對共)수사권을 빼앗아 국정원을 바지저고리로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급기야는 헌정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을 강행하더니, 이제는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명목으로 비판 언론에 ‘징벌적 배상금’을 매기는 입법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에 앞서 정권의 공식적인 역사관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면 감옥으로 보내는 역사왜곡금지법도 만들었다.
현 집권세력이 이토록 철저하게 ‘적폐청산’을 빙자한 ‘보수세력 궤멸’에 매달리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기득권 세력에게 포위되어 있다는 허위의식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정당성과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탓이기도 할 것이다.
보수야당은 어떠냐고?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로 포위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면서 여전히 자기들이 여당이고 우리 사회의 주류(主流)인 걸로 착각하고 있는 무리이다. 더 말할 가치도 없다.
콕스 특검은 케네디家의 친구
하여튼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닉슨 정권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런 사건을 저질렀고, 이를 은폐하려고 했던 닉슨 정권의 저열함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로 인해 야기된 미국 헌정(憲政)의 위기, 그 때문에 미국 국민이 입은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찰스 콜슨의 회고록을 보면, 그런 과정이 과연 공평무사하게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이었나 하는 의문도 든다. 예컨대 워터게이트 사건의 첫 번째 특별검사(특검)던 아치볼트 콕스 하버드대학 교수는, 찰스 콜슨에 의하면 ‘케네디 집안의 오랜 친구’였다. 1960년 대선에서 존 F. 케네디에게 석패(惜敗)한 닉슨 입장에서 콕스 특검이 내놓는 수사 결과들을 흔쾌히 수용할 수 있었을까? 나중에 닉슨이 콕스를 전격 해임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흔히 특검의 모범사례인 것처럼 거론되는 미국에서도 특검은 결국 처음부터 정파적(政派的)으로 운용되었다고 생각하면 씁쓸하다.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와 국민의 분노가 거기에 더해진다. 찰스 콜슨은 “나를 가장 괴롭히는 생각은 사건이 돌이킬 수 없게 진행되고 있고, 이제는 신랄함과 분노가 정의의 잣대를 움직이고 있으며, 이런 태세를 돌이킬 수 있는 방안이 내게는 없다는 것이었다”고 술회한다. 콜슨의 눈에는 워터게이트를 파헤치는 밥 우드워드 등 언론인들, 그들과 손잡고 자신들을 몰아붙이는 특검, 시민사회, 그리고 야당은 또 다른 의미에서 ‘권언(權言)유착’ 세력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백악관 직원들도 하나둘 자기 살길을 찾아 도망친다. 백악관 직원 스티브 불은 콜슨에게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대통령을 구하려 하지 않고, 다들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대통령을 찌르고 있다”고 속삭인다. 콜슨은 “사명감, 혹은 자기 자신보다 큰 대의에의 헌신 같은 것은 사라지고 없었다”고 탄식한다. 이런 모습은 2016년 촛불사태 이후 언론의 보도 행태, 그리고 촛불사태 와중에 지리멸렬해버린 박근혜 청와대 모습을 연상케 한다.
공직자들에게 주는 충고
닉슨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필사적으로 워터게이트의 진실을 덮으려고 하는 동안, 일부 백악관 인사들은 실체적(實體的) 진실을 고백함으로써 자신의 범법(犯法)행위에 대한 벌을 받는 길을 택한다. 베트남전에 대한 비밀문서를 공개한 대니엘 엘즈버그 박사를 흠집 낼 수 있는 자료를 찾아내기 위해 그의 정신병 주치의 사무실에 불법 침입을 지시한 버드 크로는 법정에서 정부에서 일하는 공직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결정 사항에 대해서 언제나 자신에게 ‘이것이 옳은 일인가?’ 물어보십시오.”
이는 오늘날 우리 시대 공직자들에게도 해당하는 준엄한 충고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의 탈(脫)원전 정책에 맹종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고위 관료들, 검찰 수사 전 관련 파일을 삭제한 산자부 공무원, 코로나19 대책을 빙자해서 돈을 뿌려대려는 정권에 아무 소리 못 하고 따라가는 기획재정부 관료들, ‘적폐청산’에는 가혹하고 문재인 정권의 잘못은 덮는 검찰과 경찰들, 9·19군사합의 이행이라는 명목 아래 국군을 무장해제시키는 정책을 묵종(默從)하는 군인들, 울산시장 선거 관권(官權) 개입에 가담한 울산시 공무원과 경찰청 간부들, 전 정권 인사들과 기업인들에게 유독 가혹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 그들은 그런 결정을 하기에 앞서 단 한 번이라도 ‘이것이 옳은 일인가?’ 자문(自問)해본 적이 있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정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었을까?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의 칼날이 ‘닉슨의 해결사’였던 찰스 콜슨을 피해갈 리 없었다. 특검과 언론은 콜슨을 워터게이트 사건의 ‘몸통’으로 규정하고 압박한다. 콜슨이 ‘예수를 영접’하고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여론의 압박은 더욱 심해진다. ‘진심으로 회개했으면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된 모든 진실(그러나 다분히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을 털어놓아야 마땅하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특검은 그에게 플리 바겐(Plea bargain·형량에 대한 협상)을 제안한다. 하지만 콜슨은 자신은 워터게이트 사건이나 엘즈버그 주치의 사무실 침입사건에 직접적으로 간여한 바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콜슨은 가족들에게 이 문제를 의논한다. 어린 딸 에밀리가 묻는다.
“아빠가 했다고 말하라는 걸 아빠가 정말 했어요?”
“아니, 하지 않았다.”
“그러면 했다고 말하지 마세요.”
국가 권력 앞에 無力한 개인
특검이 점점 그를 죄어오면서 콜슨은 전에는 몰랐던 것을 깨닫는다. 막강한 국가 권력 앞에서 개인은 너무나도 무력(無力)하다는 사실이었다. 그 자신이 백악관에 있을 때에는 다양한 국가 권력을 동원하고 언론을 조종해서 반(反)닉슨 세력을 박살내는 데 앞장섰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되자 새삼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른 면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 있었다. 정부는 무한한 자원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워스키(아치볼트의 후임 특검)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잘 훈련된 40명의 변호사들은 전적인 소환장 발부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또 거대한 컴퓨터는 엄청난 양의 증거를 기록·보존하고 일람표로 만들었으며, 수사부대가 전국 각지에 퍼져 있었다. 어빈의 위원회 하나만도 100명의 조사원을 고용했는데, 그들은 국회의 12개 위원회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들 모두가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파헤치고 다녔다. FBI와 국세청에는 검사들에게 더 많은 무기를 줄 수 있는 단서들을 전부 조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우리 법률회사 변호사들은 이들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우리는 확대되는 스캔들에 연루된 수백 명의 사람이 증언하는 내용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일만 해도 내 은행계좌는 1년이면 바닥이 날 것이다.”
찰스 콜슨은 “한 사람이, 말 그대로 혼자서 정부의 거대한 권력에 맞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면서 “한 개인의 권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얼마나 무감각해 있었던가”라고 자성(自省)한다.
이런 대목들을 보면서 ‘이른바 적폐수사에 걸려들었던 이들의 절망감이 과연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인·법조인·정치인으로서 나름 정상(頂上)에 섰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차고 검찰과 법정으로 끌려다닐 때 그들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자신을 굴복시키기 위해 가족과 친지, 지인(知人)들마저 시달리는 것을 보며 그들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결국 그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법을 따르는 정부’
백악관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찰스 콜슨은 자신도 몰랐던 닉슨과 닉슨 정권의 저열함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 콜슨은 결국 ‘예수를 영접하고 거듭나기 이전’에 자신이 정권의 일원으로서 저지른 일들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그는 자신이 실체적 진실을 고백하는 것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야기된 미국 헌정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콜슨은 자신이 직접 개입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혐의는 완강하게 부인했지만, 베트남전 기밀문서 유출자 엘즈버그 박사 음해(陰害) 공작을 비롯해 자신이 닉슨 정권하에서 행했던 정치공작들에 대해서는 고백했다. 법정에서 거하트 게젤 판사는 이렇게 말한다.
“당면한 목표 이외에 이 소송의 전반적인 목적은, 사람을 따르는 정부가 아니라 법을 따르는 정부가 바람직하다고 하는 데에 관심을 모으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을 따르는 정부가 아니라 법을 따르는 정부’. 그것은 공화주의, 법치주의, 자유민주주의의 요체(要諦)일 것이다. 찰스 콜슨은 일류 법조인이면서도 ‘법’이 아니라 닉슨이라는 ‘사람’에게 충성하다가 자신의 삶을 그르치고 그가 사랑했던 미합중국이라는 나라에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찰스 콜슨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후,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정부의 시스템이 바로잡히기 바라는 마음으로 특검에 협조한다. 그의 적수였던 특검검사 빌 메릴에게 콜슨은 “난 나의 증언을 다른 어떤 것하고 거래하려는 게 아니네. 난 단지 진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야”라면서 “일단 이런 일이 지나가고 나면, 시스템에 손볼 계획이 있나? 사람들에 대해서만 하지 말고 말이야”라고 묻는다.
메릴은 “우리 중에는 정말로 시스템을 더 낫게 고치고 싶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네”라고 화답(和答)한다.
콜슨은 메릴에 대해 “그는 힘겨운 직책을 맡은 또 하나의 인간에 불과했고, 자신이 보호할 임무가 있는 사람만큼이나 자신이 넘어뜨리려는 사람에 대해서도 걱정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평한다.
‘적폐청산’을 외쳐온 문재인 정권 사람들, 세상의 정의는 자신이 독점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여온 사람들 가운데서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내 조국이 나를 고소할 리가 없었다”
법정에서 검사가 “미합중국은 찰스 W. 콜슨을 고소한다”고 했을 때, 콜슨은 아득한 절망감을 느낀다.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내내 조국 미합중국을 위해 헌신한다고 자부해온 그였다. 콜슨은 말한다.
“내 평생에 미합중국이라는 말은 마치 군가(軍歌)처럼 등줄기를 짜릿하게 했다. … 이제는 그 사랑하는 말이 나를 고소하는 자가 되어 나를 내려치고 수치심으로 나를 채우고 있었다. ‘미합중국 대(對) 나’가 아니라 ‘정치화된 몇몇 개인들 대 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내 조국이 나를 고소할 리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 내게 가해질 수 있는 어떤 일도, 재판·감옥·파멸 그 어떤 것도 내가 사랑하는 조국이 나를 책임과 의무의 불이행으로 고소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자각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마 이병호·남재준 전 국정원장, 김관진 전 국방장관, 그리고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같은 분들도 ‘적폐청산’이라는 광란(狂亂) 속에서 검찰로 법정으로 끌려다니면서 같은 절망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찰스 콜슨은 단기(短期) 1년, 장기(長期) 3년의 징역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6개월 만에 석방됐다. 정치인·법조인으로서 그의 이력(履歷)은 끝장이 났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재소자·전과자·범죄희생자 및 그 가족들을 돕는 ‘교도소 선교회’를 설립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독교 사역에 전념했다. 많은 기독교인이 그를 도왔다. 1993년에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았다. 그가 ‘예수를 믿고 거듭나는’ 과정은 이 책의 중심 주제이고, 기독교인에게는 흥미 있는 이야기겠지만, 그 얘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적폐청산’
이 책을 읽고 있던 지난 1월 29일 서울고등법원 형사8부는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수석부장판사, 성창호·조의연 전 영장전담 부장판사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이들에게 무죄(無罪)를 선고했다. 이른바 ‘사법농단사건’이라는 것의 허구성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19일에는 검찰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이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제기된 ‘수사·감사 저지 외압(外壓)’ ‘유가족 도·감청과 불법 사찰’ 의혹이 사실이 아니거나 사법 처리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무고함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정권 입장에서는 그리 아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러한 일들을 통해 정권은 사법부와 군(軍)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사법농단 사건을 빌미로 김명수 사법부를 출범시키고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들로 사법부를 장악했다. 실력과 양식을 가진 법관들은 한직(閑職)으로 내몰리거나 스스로 환멸을 느껴 법원을 떠났다. 군 역시 마찬가지다. 기무사령부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라는 이름으로 해편(解編)됐고, 집권세력은 국군의 명예에 오물을 끼얹는 데 성공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가 해온 행태를 보면, 말로는 ‘적폐청산’ ‘공정’ ‘민주주의’를 외쳐왔지만, 실제 행태는 그와 정반대였다. 법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굽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담당 경찰관이 “못 본 걸로 하겠다”고 말한 것은 문재인 정권하에서 법이 어디까지 굴절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이 직접 ‘표적으로 찍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을 막겠다고 법무부와 검찰이 불법을 자행하고는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현 정권에 속한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는 아예 못 하게 하려고 검찰을 반신불수(半身不隨)로 만들고 공수처를 신설한 데서는 위선(僞善)의 극치를 본다.
문재인 정권하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법을 따르는 정부’가 아니라 ‘사람을 따르는 정부’로 후퇴했다. 공무원들의 역할과 역량은 조선 시대 아전(衙前) 수준으로 추락했다. 찰스 콜슨과 검사 빌 메릴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시스템을 더 낫게 고치는’ 문제를 고민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시스템 자체를 아예 박살내버렸다. ‘사람을 따르는 정부’가 아니라 ‘법을 따르는 정부’를 재건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재생의 시작이 될 것이다.⊙
금태섭 전 국회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리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도 거짓말과 말바꾸기를 밥 먹듯이 하는 세상이지만, 대법원장이 이렇게 정면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하다니…”라는 글을 올리는 등, ‘대법원장의 거짓말’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지만, 여당은 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수(多數) 힘으로 판사 탄핵을 밀어붙였다.
우리나라는 정치인을 비롯한 공직자의 거짓말에 이상할 정도로 관대하다. 일국의 대법원장이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면 그것 자체로 나라가 뒤집어져야 마땅하지만, 거짓말한 대법원장은 멀쩡하고, 그걸 폭로한 판사가 탄핵돼버렸다.
워터게이트 사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사퇴한 것은 민주당 선거대책본부가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에 ‘배관공’이라고 일컫는 공작원들을 침투시켜 민주당 선거 관련 자료를 빼돌리려고 해서가 아니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진척되면서 이와 관련된 여러 사실, 특히 백악관 내 도청 테이프 존재 등에 대해서 거짓말한 것이 문제가 되어서였다.
자칫 좀도둑들의 민주당 선거대책본부 침투 사건 정도로 그칠 뻔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은 밥 우드워드 등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의 끈질긴 추적보도와 정권 내부 ‘딥 스로트’(deep throat·익명 제보자)의 제보로 결국 닉슨 정권을 무너뜨리는 일대 스캔들로 번졌다. 이 과정은 수기와 영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꽤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닉슨 정권 입장에서 본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책은 국내에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백악관에서 감옥까지》(원제 Born Again)는 관심을 끄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찰스 콜슨(1931~2012년)은 제1기 닉슨 행정부(1969~1973년) 시절 닉슨의 특별보좌관으로 활약했던 책사(策士)였다. 그는 닉슨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대상으로 하는 온갖 궂은 정치공작을 자행했다. 그 때문에 ‘처리 담당’, 즉 ‘해결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필요하다면 자기 할머니라도 밟고 지나갈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콜슨 스스로도 이런 자신의 모습에 염증을 느껴 닉슨이 재선된 직후인 1973년 백악관을 나와 로펌(law firm) 변호사로 돌아갔다. 하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이 본격적으로 진전되면서 ‘닉슨 해결사’인 그의 존재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무렵 그는 친구의 권유로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을 읽고 회심(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했다. 그는 결국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1974년 7월 유죄선고를 받고 6개월간 복역한 후 석방됐다. 이후 재소자·전과자·범죄희생자 및 그 가족들을 돕는 ‘교도소 선교회’를 설립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독교 사역에 전념했다. 이 책은 원제(原題) 《Born Again》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저자의 신앙고백을 담은 책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런 측면보다는 닉슨 정권의 이면(裏面)과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전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 對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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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막바지이던 1971년 워싱턴 D.C 등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反戰시위는 닉슨 정부 인사들에게 자기들이 포위되어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
아마 그 원인은 ‘포위의식’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미국의 권부(權府), 아니 세계의 권부라고 할 수 있는 백악관을 차지했으면서도 자신들은 적대적인 리버럴 언론과 시민사회 세력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는 의식 말이다. 이 때문에 닉슨 정권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FBI 등을 동원해 비판세력을 사찰(査察)했으며, 백악관 내부에 적의 스파이가 침투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내부 대화마저 모두 녹음하게 했다. 1970년 5월 9일 반전(反戰)시위대에 의해 백악관이 포위되었던 사건은 그 포위의식을 더욱 부추겼다. 찰스 콜슨은 이렇게 회상한다.
“백악관의 철문 내에서는 어느새인가 자신들이 포위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들 대(對) 우리’였다. 우리가 그 원을 점차로 우리 주위에 가깝게 그림에 따라 ‘그들’의 층은 점점 더 두꺼워졌다.”
찰스 콜슨을 기독교인으로 회심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친구 톰 필립스는 콜슨에게 이렇게 지적한다.
“자네들의 문제는, 척(찰스 콜슨의 애칭) 자네도 마찬가지네.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려고 했다는 걸세. 적을 파멸시키려고 했다는 거지.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파멸시킬 수밖에 없었던 거야.”
찰스 콜슨도 이 말을 수긍한다.
“우리는 우리끼리 격리된 백악관 ‘섬’에서 세상을 ‘우리 대 그들’ ‘닉슨 백악관 대 세상’이라는 대립구도로 보았다. 우리 자신의 대의(大義)에 대해서 불안했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 지나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포위의식’
여기서 문득 집권세력이 ‘보수궤멸’을 공공연히 선언하고, 그것이 하나하나 실현돼가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실이 떠오른다.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더 나아가 현 한국의 집권세력 역시 이런 ‘포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1970~1980년대 운동권 출신인 그들은 자신들이 공안기관과 보수언론, 기득권 세력에 포위되어 있다는 피해의식 속에서 성장해왔고, 지금도 그런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권 초부터 ‘보수세력 궤멸’을 외치던 그들이 지금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와 사법부,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장악했다. 방송을 손아귀에 넣었고, 인터넷 언론과 시민사회운동 세력, 민노총 등 강철 같은 우군(友軍)을 확보했다. 이에 힘입어 ‘20년 집권’을 호언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보수언론, 기득권 세력의 핍박을 받는 존재인 것처럼 주장한다.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명목 아래 건국 이래 최대의 숙청극을 벌이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들어 검찰을 무력화(無力化)시키고, 경찰을 정권의 시녀로 확실하게 종속시키고, 대공(對共)수사권을 빼앗아 국정원을 바지저고리로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급기야는 헌정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을 강행하더니, 이제는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명목으로 비판 언론에 ‘징벌적 배상금’을 매기는 입법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에 앞서 정권의 공식적인 역사관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면 감옥으로 보내는 역사왜곡금지법도 만들었다.
현 집권세력이 이토록 철저하게 ‘적폐청산’을 빙자한 ‘보수세력 궤멸’에 매달리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기득권 세력에게 포위되어 있다는 허위의식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정당성과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탓이기도 할 것이다.
보수야당은 어떠냐고?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로 포위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면서 여전히 자기들이 여당이고 우리 사회의 주류(主流)인 걸로 착각하고 있는 무리이다. 더 말할 가치도 없다.
콕스 특검은 케네디家의 친구
하여튼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닉슨 정권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런 사건을 저질렀고, 이를 은폐하려고 했던 닉슨 정권의 저열함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로 인해 야기된 미국 헌정(憲政)의 위기, 그 때문에 미국 국민이 입은 상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찰스 콜슨의 회고록을 보면, 그런 과정이 과연 공평무사하게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이었나 하는 의문도 든다. 예컨대 워터게이트 사건의 첫 번째 특별검사(특검)던 아치볼트 콕스 하버드대학 교수는, 찰스 콜슨에 의하면 ‘케네디 집안의 오랜 친구’였다. 1960년 대선에서 존 F. 케네디에게 석패(惜敗)한 닉슨 입장에서 콕스 특검이 내놓는 수사 결과들을 흔쾌히 수용할 수 있었을까? 나중에 닉슨이 콕스를 전격 해임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흔히 특검의 모범사례인 것처럼 거론되는 미국에서도 특검은 결국 처음부터 정파적(政派的)으로 운용되었다고 생각하면 씁쓸하다.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와 국민의 분노가 거기에 더해진다. 찰스 콜슨은 “나를 가장 괴롭히는 생각은 사건이 돌이킬 수 없게 진행되고 있고, 이제는 신랄함과 분노가 정의의 잣대를 움직이고 있으며, 이런 태세를 돌이킬 수 있는 방안이 내게는 없다는 것이었다”고 술회한다. 콜슨의 눈에는 워터게이트를 파헤치는 밥 우드워드 등 언론인들, 그들과 손잡고 자신들을 몰아붙이는 특검, 시민사회, 그리고 야당은 또 다른 의미에서 ‘권언(權言)유착’ 세력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백악관 직원들도 하나둘 자기 살길을 찾아 도망친다. 백악관 직원 스티브 불은 콜슨에게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대통령을 구하려 하지 않고, 다들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대통령을 찌르고 있다”고 속삭인다. 콜슨은 “사명감, 혹은 자기 자신보다 큰 대의에의 헌신 같은 것은 사라지고 없었다”고 탄식한다. 이런 모습은 2016년 촛불사태 이후 언론의 보도 행태, 그리고 촛불사태 와중에 지리멸렬해버린 박근혜 청와대 모습을 연상케 한다.
공직자들에게 주는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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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대통령은 1974년 4월 29일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방송을 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청 |
“모든 결정 사항에 대해서 언제나 자신에게 ‘이것이 옳은 일인가?’ 물어보십시오.”
이는 오늘날 우리 시대 공직자들에게도 해당하는 준엄한 충고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의 탈(脫)원전 정책에 맹종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고위 관료들, 검찰 수사 전 관련 파일을 삭제한 산자부 공무원, 코로나19 대책을 빙자해서 돈을 뿌려대려는 정권에 아무 소리 못 하고 따라가는 기획재정부 관료들, ‘적폐청산’에는 가혹하고 문재인 정권의 잘못은 덮는 검찰과 경찰들, 9·19군사합의 이행이라는 명목 아래 국군을 무장해제시키는 정책을 묵종(默從)하는 군인들, 울산시장 선거 관권(官權) 개입에 가담한 울산시 공무원과 경찰청 간부들, 전 정권 인사들과 기업인들에게 유독 가혹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 그들은 그런 결정을 하기에 앞서 단 한 번이라도 ‘이것이 옳은 일인가?’ 자문(自問)해본 적이 있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정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었을까?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의 칼날이 ‘닉슨의 해결사’였던 찰스 콜슨을 피해갈 리 없었다. 특검과 언론은 콜슨을 워터게이트 사건의 ‘몸통’으로 규정하고 압박한다. 콜슨이 ‘예수를 영접’하고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여론의 압박은 더욱 심해진다. ‘진심으로 회개했으면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된 모든 진실(그러나 다분히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을 털어놓아야 마땅하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특검은 그에게 플리 바겐(Plea bargain·형량에 대한 협상)을 제안한다. 하지만 콜슨은 자신은 워터게이트 사건이나 엘즈버그 주치의 사무실 침입사건에 직접적으로 간여한 바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콜슨은 가족들에게 이 문제를 의논한다. 어린 딸 에밀리가 묻는다.
“아빠가 했다고 말하라는 걸 아빠가 정말 했어요?”
“아니, 하지 않았다.”
“그러면 했다고 말하지 마세요.”
특검이 점점 그를 죄어오면서 콜슨은 전에는 몰랐던 것을 깨닫는다. 막강한 국가 권력 앞에서 개인은 너무나도 무력(無力)하다는 사실이었다. 그 자신이 백악관에 있을 때에는 다양한 국가 권력을 동원하고 언론을 조종해서 반(反)닉슨 세력을 박살내는 데 앞장섰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되자 새삼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른 면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 있었다. 정부는 무한한 자원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워스키(아치볼트의 후임 특검)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잘 훈련된 40명의 변호사들은 전적인 소환장 발부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또 거대한 컴퓨터는 엄청난 양의 증거를 기록·보존하고 일람표로 만들었으며, 수사부대가 전국 각지에 퍼져 있었다. 어빈의 위원회 하나만도 100명의 조사원을 고용했는데, 그들은 국회의 12개 위원회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들 모두가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파헤치고 다녔다. FBI와 국세청에는 검사들에게 더 많은 무기를 줄 수 있는 단서들을 전부 조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우리 법률회사 변호사들은 이들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우리는 확대되는 스캔들에 연루된 수백 명의 사람이 증언하는 내용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일만 해도 내 은행계좌는 1년이면 바닥이 날 것이다.”
찰스 콜슨은 “한 사람이, 말 그대로 혼자서 정부의 거대한 권력에 맞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면서 “한 개인의 권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얼마나 무감각해 있었던가”라고 자성(自省)한다.
이런 대목들을 보면서 ‘이른바 적폐수사에 걸려들었던 이들의 절망감이 과연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인·법조인·정치인으로서 나름 정상(頂上)에 섰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차고 검찰과 법정으로 끌려다닐 때 그들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자신을 굴복시키기 위해 가족과 친지, 지인(知人)들마저 시달리는 것을 보며 그들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결국 그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법을 따르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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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8일 법원에서 엘즈버그의 정신과 의사 사무실 침입 사건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찰스 콜슨. 사진=AP/뉴시스 |
콜슨은 자신이 직접 개입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혐의는 완강하게 부인했지만, 베트남전 기밀문서 유출자 엘즈버그 박사 음해(陰害) 공작을 비롯해 자신이 닉슨 정권하에서 행했던 정치공작들에 대해서는 고백했다. 법정에서 거하트 게젤 판사는 이렇게 말한다.
“당면한 목표 이외에 이 소송의 전반적인 목적은, 사람을 따르는 정부가 아니라 법을 따르는 정부가 바람직하다고 하는 데에 관심을 모으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을 따르는 정부가 아니라 법을 따르는 정부’. 그것은 공화주의, 법치주의, 자유민주주의의 요체(要諦)일 것이다. 찰스 콜슨은 일류 법조인이면서도 ‘법’이 아니라 닉슨이라는 ‘사람’에게 충성하다가 자신의 삶을 그르치고 그가 사랑했던 미합중국이라는 나라에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찰스 콜슨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후,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정부의 시스템이 바로잡히기 바라는 마음으로 특검에 협조한다. 그의 적수였던 특검검사 빌 메릴에게 콜슨은 “난 나의 증언을 다른 어떤 것하고 거래하려는 게 아니네. 난 단지 진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야”라면서 “일단 이런 일이 지나가고 나면, 시스템에 손볼 계획이 있나? 사람들에 대해서만 하지 말고 말이야”라고 묻는다.
메릴은 “우리 중에는 정말로 시스템을 더 낫게 고치고 싶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네”라고 화답(和答)한다.
콜슨은 메릴에 대해 “그는 힘겨운 직책을 맡은 또 하나의 인간에 불과했고, 자신이 보호할 임무가 있는 사람만큼이나 자신이 넘어뜨리려는 사람에 대해서도 걱정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평한다.
‘적폐청산’을 외쳐온 문재인 정권 사람들, 세상의 정의는 자신이 독점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여온 사람들 가운데서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법정에서 검사가 “미합중국은 찰스 W. 콜슨을 고소한다”고 했을 때, 콜슨은 아득한 절망감을 느낀다.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내내 조국 미합중국을 위해 헌신한다고 자부해온 그였다. 콜슨은 말한다.
“내 평생에 미합중국이라는 말은 마치 군가(軍歌)처럼 등줄기를 짜릿하게 했다. … 이제는 그 사랑하는 말이 나를 고소하는 자가 되어 나를 내려치고 수치심으로 나를 채우고 있었다. ‘미합중국 대(對) 나’가 아니라 ‘정치화된 몇몇 개인들 대 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내 조국이 나를 고소할 리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 내게 가해질 수 있는 어떤 일도, 재판·감옥·파멸 그 어떤 것도 내가 사랑하는 조국이 나를 책임과 의무의 불이행으로 고소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자각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마 이병호·남재준 전 국정원장, 김관진 전 국방장관, 그리고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같은 분들도 ‘적폐청산’이라는 광란(狂亂) 속에서 검찰로 법정으로 끌려다니면서 같은 절망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찰스 콜슨은 단기(短期) 1년, 장기(長期) 3년의 징역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6개월 만에 석방됐다. 정치인·법조인으로서 그의 이력(履歷)은 끝장이 났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재소자·전과자·범죄희생자 및 그 가족들을 돕는 ‘교도소 선교회’를 설립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독교 사역에 전념했다. 많은 기독교인이 그를 도왔다. 1993년에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았다. 그가 ‘예수를 믿고 거듭나는’ 과정은 이 책의 중심 주제이고, 기독교인에게는 흥미 있는 이야기겠지만, 그 얘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적폐청산’
이 책을 읽고 있던 지난 1월 29일 서울고등법원 형사8부는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수석부장판사, 성창호·조의연 전 영장전담 부장판사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이들에게 무죄(無罪)를 선고했다. 이른바 ‘사법농단사건’이라는 것의 허구성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19일에는 검찰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이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제기된 ‘수사·감사 저지 외압(外壓)’ ‘유가족 도·감청과 불법 사찰’ 의혹이 사실이 아니거나 사법 처리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무고함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정권 입장에서는 그리 아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러한 일들을 통해 정권은 사법부와 군(軍)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사법농단 사건을 빌미로 김명수 사법부를 출범시키고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들로 사법부를 장악했다. 실력과 양식을 가진 법관들은 한직(閑職)으로 내몰리거나 스스로 환멸을 느껴 법원을 떠났다. 군 역시 마찬가지다. 기무사령부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라는 이름으로 해편(解編)됐고, 집권세력은 국군의 명예에 오물을 끼얹는 데 성공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가 해온 행태를 보면, 말로는 ‘적폐청산’ ‘공정’ ‘민주주의’를 외쳐왔지만, 실제 행태는 그와 정반대였다. 법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굽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담당 경찰관이 “못 본 걸로 하겠다”고 말한 것은 문재인 정권하에서 법이 어디까지 굴절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이 직접 ‘표적으로 찍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을 막겠다고 법무부와 검찰이 불법을 자행하고는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현 정권에 속한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는 아예 못 하게 하려고 검찰을 반신불수(半身不隨)로 만들고 공수처를 신설한 데서는 위선(僞善)의 극치를 본다.
문재인 정권하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법을 따르는 정부’가 아니라 ‘사람을 따르는 정부’로 후퇴했다. 공무원들의 역할과 역량은 조선 시대 아전(衙前) 수준으로 추락했다. 찰스 콜슨과 검사 빌 메릴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시스템을 더 낫게 고치는’ 문제를 고민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시스템 자체를 아예 박살내버렸다. ‘사람을 따르는 정부’가 아니라 ‘법을 따르는 정부’를 재건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재생의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