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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49〉 이바라기 노리코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사람들이 무수히 죽었다 /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하면 오래 살기로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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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리코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많은 작가에게 상상력 선물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별자리 이름의 바나나파이를 먹었다’(유형진)
일본의 대표적인 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와르르 무너져 내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푸른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하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무수히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난 멋 부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건네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모르고
  해맑은 눈길만을 남긴 채 모두 떠나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비어 있었고
  내 마음은 굳어 있었고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 패했다
  그런 어이없는 일이 있단 말인가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활보하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 재즈가 넘쳐흘렀다
  금연을 깨뜨렸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난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탐하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난 몹시도 불행했고
  난 몹시도 엉뚱했고
  난 무척이나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하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 무척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영감님*처럼
  말이지
 
  (*프랑스 화가 겸 판화가 조르주 루오, G. Rouault 1871~1958)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茨木のり子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街々はがらがらと崩れていって
  とんでもないところから
  靑空なんかが見えたりし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まわりの人達が沢山死んだ
  工場で 海で 名もない島で
  わたしはおしゃれのきっかけを落としてしまっ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誰もやさしい贈り物を捧げてはくれなかった
  男たちは挙手の礼しか知らなくて
  きれいな眼差だけを残し皆(みな)発っていっ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の頭はからっぽで
  わたしの心はかたくなで
  手足ばかりが栗色に光っ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の国は戰爭で負けた
  そんな馬鹿なことってあるものか
  ブラウスの腕をまくり卑屈な町をのし步い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ラジオからはジャズが溢れた
  禁煙を破ったときのようにくらくらしながら
  わたしは異国の甘い音楽をむさぼっ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はとてもふしあわせ
  わたしはとてもとんちんかん
  わたしはめっぽうさびしかった
 
  だから決めた できれば長生きすることに
  年とってから凄く美しい絵を描いた
  フランスのルオ-爺さんのように ね
 
 
MBC 드라마 〈내가 가장 예뻤을 때〉 포스터. 16부작으로 최근 종영됐다.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시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인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서로 갈등을 일으키며 모순, 충돌하는 두 개의 시어를 한 문맥 속에 엮어내는 수사법이다. 반어(反語)라고도 한다. 전쟁으로 무수한 젊은이가 죽어갔을 때,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다.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죽어가는 사람들로 인해 ‘멋 부릴 기회를 잃고’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모르며’ ‘해맑은 눈길만을 남긴 채’ 모두 떠나고 말았다. 불행했고 엉뚱했으며 무척이나 쓸쓸했던 시절을 보낸 뒤 화자(話者)는 결심한다. ‘가능하면 오래 살겠다’고. 끝까지 살아남아 이 세상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증명하리라 다짐한다.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다.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1926~2006)는 오사카 출신 의사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유년 시절, 교토와 아이치(愛知)현 등지에서 성장했다. 1945년 일본 패전 당시 19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제국주의에 대한 반발과 전쟁의 비극을 응시한 글을 주로 썼다.
 
  그는 식민지 청년 윤동주(尹東柱·1917~1945)의 청아하고 맑은 모습에 반했다고 전한다. 그 후 일본어로 번역된 윤동주의 시를 찾아 읽었다. 훗날 노리코는 저서 《하나의 줄기 위에》에서 윤동주를 이렇게 기억했다.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나이로 옥사(獄死)한 사람. 옥사의 진상도 의문이 많다. 일본의 젊은 간수는 윤동주가 사망 당시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순수했던 노리코의 슬픈 비망록이라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순수 그 자체의 시다. 난해함이 없는 산문체의 아름다운 동경(憧憬)을 담고 있다. ‘별’이야말로 윤동주가 즐겨 사용하던 이상적 이미지가 아닐까. 윤동주는 이상과 순수, 구원의 상징인 별을 헤면서 여러 상념에 젖는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중략)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을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異國) 소녀(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하략)
 
  -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 일부

 
 
  유형진과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유형진 시인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바나나파이를 먹었다’는 2001년 《현대문학》 등단작이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에서 착안해 새롭게 변형했다.
 
  화자에게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누가코팅 속 하얀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한 느낌의 공간(추억)이다. 그 공간을 따라가 보면 유년에서 사춘기로 이어지는 시인의 성장통이 느껴진다. ‘달콤한 바나나 향이 혀에 자꾸 들러붙듯이’ 말이다.
 

  ‘짝짝이 단화’를 신고, ‘우물에 빠져 죽은 아이’의 꿈을 날마다 꾸던 시절에 길가 망초꽃은 모가지가 부러져 있고, 문득 해소천식을 앓던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사막 바람처럼 4월 하늘에 뿌연 바람이 불면, 모래 구덩이의 낙타처럼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밤새 리코더를 불던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어느덧 훌쩍 자란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고 나선 ‘이제 노을색 눈을 가진 토끼는 키우지도 않고 혼자 오는 저녁 길은 아직도 쓸쓸하다’고 되뇐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바나나파이를 먹었다’는 시집 《피터래빗 저격사건》(2005)에 실렸다.
 
유형진 시인의 시집 《피터래빗 저격사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바나나파이를 먹었다
  겨울이면 나타나는 별자리 이름의 제과회사에서 만든 것이었다 질 나쁜 노란색의 누가코팅 속에는 비누 거품같이 하얀 마시멜로가 들어 있었다 그 말랑하고 따뜻한 느낌, 달콤하고 옅은 바나나 향이 혀에 자꾸 들러붙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짝짝이 단화를 신고 다녔다
  연탄불에 말려 신던 단화는 아주 미세한 차이로 색이 달랐다 아이보리와 흰색의, 저만치 앞에서 보면 짝짝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단화. 아이보리색의 오른쪽 신발은 유한락스에 며칠이고 담가놓아도 여전히 그런 색이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우물이 제일 무서웠다
  우물에 빠져 죽은 아이의 꿈을 날마다 꾸었다 그 아이는 아버지 없는 아이였고 아이를 낳은 엄마는 절에 들어가 공양보살이 되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우물엔 누가 버렸는지 알 수 없는 쓰레기가 가득 찼고 눈동자가 망가진 인형의 손이 우물에서 비어져 나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길가의 망초꽃은 늘 모가지가 부러져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나는 하얀 버짐 핀 얼굴을 하고서 계란 프라이 같은 꽃봉오리를 따다가 토끼에게 간식으로 주었다 토끼의 집 위로는 먼 산이 흐릿했고 토끼 눈 같은 해가 지고 있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봄은 할아버지 같았다
  해소천식을 몇십 년 앓고 있는 할아버지의 방에 창호지는 봄만 되면 노랗게 노랗게…… 개나리나 산수유꽃도 그렇게만 보였다 할아버지는 봄만 되면 더욱 노란 가래를 뱉어내었고 할아버지의 타구(唾具)를 비울 때는 자꾸 졸음이 쏟아졌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사월 하늘의 뿌연 바람은 아라비아의 왕이 보내는 줄로만 알았다
  모든 사막은 아라비아에서 시작해 내가 사는 마을로 왔다 언젠간 나도 모래구덩이의 낙타처럼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밤새도록 리코더를 불고 싶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어두운 방의 하얀 테두리를 좋아하였다
  문을 닫으면 깜깜한 방의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의 테두리. 창이 없는 그 방은 구판장집을 지나 마즘재 너머 큰집의 건넌방이었는데 늘 비어 있었다 할머니의 오래된 옷장과 검은 바탕에 야자수가 수놓아진 액자와 인켈 오디오가 있는 방이었다 그 방에서 나는 라일락이 피던 중간고사 때 양희은의 ‘작은 연못’과 들국화의 ‘행진’을 처음으로 들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안개꽃은 너무나 슬퍼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서늘한 피부의 여인이 그 꽃을 들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무덤가의 이슬 같고 청상과부의 한숨 같아서 보기만 해도 가슴에 안개가 피어났다 그즈음 주말의 명화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오는 ‘황야의 무법자’를 했고 늦게 일어난 일요일 아침, 하얀 요에 묻은 초경의 피를 보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별자리 이름의 바나나파이를 먹었는데
  이제 바나나파이 같은 건 어디서도 팔지 않고 검게 변한 바나나는 할인매장에 쌓여만 간다
  나는 이제 노을색 눈을 가진 토끼는 키우지도 않고 혼자 오는 저녁 길은 아직도 쓸쓸하다
  여전히 사월엔 노란 바람이 불어오지만 아라비아 왕 같은 건 시뮬레이션 게임에나 나오는 캐릭터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이제 죽음 같은 건 리코더 연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유형진의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바나나파이를 먹었다’ 전문

 
 
  공선옥의 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도 노리코의 시를 모티브로 창작했다. 성장기 소설답게 씁쓸달콤한 추억이 담겨 있다. 소설 속 화자인 ‘해금’은 이제 스무 살. 열아홉과 스무 살의 생기발랄함 사이 광주 5·18의 비극이 찾아온다. 희극과 비극의 극적인 아이러니다.
 
  아래에 인용한 글은 해금이 유년을 떠올리는 대목이다. 자매들의 이름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정겹다. 귓불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진다. ‘그리움의 더께 같은 채석강의 퇴적층’(유형진)을 보는 것 같다.
 
  소설가 공선옥은 1991년 《창작과 비평》에 중편소설 〈씨앗불〉로 등단했다. 여성의 운명적인 삶과 모성애를 뛰어난 구성력으로 생생히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설집으로 《나는 죽지 않겠다》 《피어라 수선화》 등이 있다.
 
공선옥의 장편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초등학교 오학년 때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갔는데 막내 영미 혼자 마루에 있아 그때 한창 유행하던 김추자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애는 김추자처럼 코맹맹이 소리를 내려고 그랬는지 한 손으로는 코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입술을 두드려가며 노래를 부르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가 저를 불러도 대답할 짬이 없는 것 같았다.
 
  “나를나코도라가신나으어먼니 그래도오막싸리당감방에서 행보커게지내쪼오 내가여스쌀되든해부터어거리에서노래불렀쪼오 노래드꼬내게던져주는동전으로아부지와사라쪼오…….”
 
  “야이 가시내야, 노래를 부를라면 얌전히 좀 불러라. 그게 뭐냐. 염생이같이.”
 
  나는 왠지 모르게 영미가 미웠다. 순금이, 정금이, 영금이, 해금이, 하고 금자 돌림으로 쭉 나가다가 갑자기 막내만 영미가 된 것도 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할아버지는 첫 손녀의 이름을 순할 순(順)에 비단 금(錦)을 붙여 순금이라 해놓고 그 다음부터는 아예 비난 금자는 고정시켜놓은 채, 둘째 곧을 정(正), 셋째 꽃부리 영(英)까지는 옥편 찾는 성의 정도는 보이시더니 내가 태어나고 아버지가 또 딸입니다.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요.
 
  하자 대뜸 그러셨다는 것이다.
 
  “니무랄 것, 암꺼나 허라고 혀.”
 
  세상에 ‘암꺼나 해’ 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 아버지는 내 이름을 ‘암꺼나 해’자에 비단 금, 해서 해금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고모한테 들었다. 고모가 친정인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나보고 ‘어이 혀금씨’ 해대서 내가 나는 혀금이가 아니고 해금이라고 강력 항의하자 고모가 나를 앉혀놓고 내 이름의 내력을 말해줬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동회에 신고할 때 남의 이목도 있고 하니, 할 수 없이 즉석에서 떠오른 ‘바다 해(海)’를 붙여 비로소 내 공식 이름이 정해졌지만, 집안에서의 나는 여전히 혀금이 내지는 ‘암꺼나 해’자의 해금이인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몇 년 있다가 또 딸을 나았을 때 아버지는 차마 할아버지한테 이름을 어찌할 것인지는 더 여쭐 수가 없어서 아버지 나름대로 아름다운 미(美)에 기존의 비단 금을 붙여 미금으로 정했는데, 이름 정한 사람이 할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라 만만했던지 엄마가 일언지하에 반대를 하더라는 것이다.
 
  “안 돼야.”
 
  “뒷이 안 돼야.”
 
  “금자는 안 된다고.”
 
  “좋네, 그럼 아름다올 미자에 큰놈 거 순자 좀 빌려와서 미순이는 어쩐가? 야한테서 금자를 빼불면, 즈그 언니들허고 아조 다른 종자 같응게 이오아이면 큰놈 이름자 중 하나인 순자를 붙여 주자고. 어쩐가?”
 
  아버지는 원래 우격다짐보다는 대화와 협상을 좋아하는 천상 민주주의자였다. 자신은 민주주의자가 확실한데 너희 엄마는 고집 센 것으로는 공산주의자, 맘대로 하는 것으로는 자유주의자라고 아버지가 우리 앞에서 엄마 흉을 본 적이 있다. 공산당과 자유당을 번갈아 오가신 엄마인지라 이름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꼭 큰애 거를 붙일 필요는 없제. 기중 이쁜 꽃부리 영자, 미영으로 합시다.”
 
  -공선옥의 장편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중 p.19~21

 
 
  성미정과 이원하의 ‘착한 구두’와 ‘제주에 부는 바람’
 
  어쩌면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을 때가 아닐까.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만나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만 보인다. 사랑하는 이의 구두를 좋아하게 그 안에 숨겨진 발을 사랑한다. 연인의 머리가 사랑스럽고,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곱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시선이 먼저 반응한다. 성미정의 시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는 연인이 가장 예뻤을 때를 떠올리는 시다.
 
성미정 시인의 시집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 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아직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당신도 언젠가 저의 모든 걸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구두에서 머리카락까지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성미정의 시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전문

 
 
  자신이 가장 예뻤을 때는 ‘내’가 ‘나에게’ 바짝 다가설 때가 아닐까. 자기 내면과 대화하며 그 대화 속에서 자신이 훌쩍 자랐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나’의 존재방식을 그제야 인정하고 세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원하의 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는 혼자 제주에 살면서 자신을 발견한 이야기다. 화자는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라고 고백한다. 그러곤 ‘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다’며 텅 빈 자신과 마주한 고통스러운 일도 떠올린다. 세월에 홀라당 벗겨진 빈털터리 인생이지만,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라고 다짐한다.
 
이원하 시인의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
  내 뒤에 놓인 물그릇이 자꾸 쏟아져요
  이게 다 등껍질이 얇고 연약해서 그래요
  그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사랑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어요,
  발전에 끝이 없죠
  매일 김포로 도망가는 상상을 해요
  김포를 훔치는 상상을 해요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
 
  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이원하의 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전문

 
 
  주하림의 ‘작별’과 윤의섭의 ‘당신이 잠들었을 때’
 
  사람이 가장 예뻤을 때는 혹시나 이별할 때가 아닐까. 이별의 고통 때문에 화들짝 놀라며 자기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된다. 주하림의 시 ‘작별’은 고통의 가장 정점에서 쓴 시 같다. 고통은 시를 가장 아름답게 빚는, 고통스럽지만 가장 만족할 만한(?) 재료다.
 
  늘 죽을 궁리만 하던 여름날, 그때는 애인조차 떠날 때였다. 화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사라지기 위해 살았다’라고.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 ‘길고 어두운 복도’를 모두 지났다고 느꼈을 때 시인은 그제야 깨닫는다. ‘내가 손을 넣고 살며시 기댄 사람’이 바로 ‘너’였음을.
 
주하림 시인의 시집 《비벌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
  혐오라는 말을 붙여줄까
  늘 죽을 궁리만 하던 여름날
  머리를 감겨주고 등 때도 밀어주며
  장화를 신고 함께 걷던 애인조차 떠났을 때
  나는 사라지기 위해 살았다
 
  발 아픈 나의 애견이 피 묻은 붕대를 물어뜯으며 운다
  그리고 몸의 상처를 확인하고 있는 내게 저벅저벅 다가와
  간신히 쓰러지고는,
  그런 이야기를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할 것만 같다
  ‘세상의 어떤 발소리도 너는 닮지 못할 것이다’
 
  네가 너는 아직도 어렵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우리가 한번이라도 어렵지 않은 적이 있냐고 되물었다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
  길고 어두운 복도
  우리를 찢고 나온 슬픈 광대들이
  난간에서 떨어지고, 떨어져 살점으로 흩어지는 동안
  그러나 너는 이상하게
  내가 손을 넣고 살며시 기댄 사람이었다
 
  -주하림의 ‘작별’ 전문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가장 예뻤을 때를 누구나 꿈꾼다. 마치 덮여 있는 책이 자기 몸을 읽듯, 서랍 속 오래 묵은 만년필이 스스로를 쓰고 있듯 말이다. 추억이 그렇다. 쉽사리 사라지지 않아 너무 아프다.
 
  단기기억은 쉽게 사라지나 장기기억은 무섭게 살아 있다. 죽을 때까지. 윤의섭의 시 ‘당신이 잠들었을 때’는 무척 아름다운 시다. 시집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2019)에 실렸다.
 
윤의섭 시인의 시집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
  덮여 있는 책은 자기 몸을 읽는 중이다
  먼지 같은 묵독이었다
  서랍 속에서 오래 묵은 만년필은 스스로를 쓰고 있다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데 너무 아프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을 걸으며 길은 자꾸만 눕고 싶고
  죽다가 동사인 건 계속 죽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밤 유성을 보았고 장례식장에서 유년에 대한 잡담을 나눴다
  언젠가는 아프지 않을 것이고
  신의 길을 따라간 순례자가 도착한 곳이 이 별이라고 적혀 있는 경전대로
  지구를 찾아 나설 것이고
  누군가에게 잊히고 나면 끝없이 살 수 있다는 용서
  당신이 잠들었을 때 잠은 잠을 자야 했고
  깨어날 때까지 몇 번이고 천문을 정독했고
  생존이라는 말 쓸쓸하다
  가로등이 꺼지는 시간
  당신은 아직 지구에 도착하지 못해서
  경전 어느 페이지쯤에선가 헤매는 꿈에 젖어 들고
  나는 빨래 건조대를 비워 놓는다
 
  -윤의섭의 ‘당신이 잠들었을 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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