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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시사와 역사로 주역을 읽다 以事讀易’ 〈13〉 최재형 감사원장

하나의 陰이 다섯 陽을 제지해 묶어놓기는 했으나 견고할 수가 없다

글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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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징, 당 태종에게 ‘10가지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일’ 상소
⊙ 간언하는 도리에 관한 小畜괘… 튼튼하면서도 공손하고, 굳세고 가운데 있으면서, 행함에 뜻을 두어, 마침내 형통하다
⊙ 六四가 만일 힘으로 저지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상해를 당할 것… 오직 미더움과 열렬함을 다해 응하면 감동시킬 수 있다
⊙ 최재형 원장, 黨派的 행보 하지 말아야

이한우
1961년생.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 철학과 석사,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박사 과정 수료 / 前 《조선일보》 문화부장, 단국대 인문아카데미 주임교수 역임
  “최재형(崔在亨) 감사원장 후보자는 30여 년간 다양한 영역에서 법관으로서의 소신에 따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보호,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온 법조인입니다.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해나갈 적임자로 기대합니다.”(윤영찬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
 
  2017년 12월 평생 법관 생활을 해온 최재형 사법연수원장이 감사원장으로 지명됐을 당시 여권이 보여준 평가다. 최재형 원장은 그때 이렇게 말했다.
 
  “오랜 법관 생활을 한 저를 후보자로 지명하신 데는 감사(監査) 업무의 직무상 독립성·공정성을 강화하고 확립해야겠다는, 임명권자이신 대통령의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청문 절차를 거쳐 감사원장으로 임명된다면 그동안 법관으로서 살아왔던 생활을 통해 쌓은 경험을 잘 살려 우리나라 공직사회가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도록 노력하겠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감사 업무의 직무상 독립성·공정성을 강화하고 확립해야겠다는, 임명권자이신 대통령의 뜻”과 “우리나라 공직사회가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해 12월 21일 인사청문회에서는 청문보고서가 정식 채택됐다. 12월 2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는 ‘미스터 원칙’ 최재형 후보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최재형 원장은 2018년 1월 2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임기를 시작했다.
 

 
  최재형 원장의 소신
 
2019년 11월 5일 국회 법사위에서 김오수 당시 법무부 차관(왼쪽)과 이야기를 나누는 최재형 감사원장. 최 원장은 김 차관의 감사위원 제청 문제로 여당과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조선DB
  2년 가까이 언론의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던 최재형 감사원장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5월8일자 《조선일보》에 최 원장이 월성 원전(原電) 1호기 폐쇄에 대한 감사를 진행해온 한 담당국장을 다른 국(局)으로 전보(轉補)하면서 했다는 말이 보도되면서였다. 요지는 이렇다.
 
  “외부의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馴致·길들이기)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감사원은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것은 검은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감사관 한 사람 한 사람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인정받은 감사원장의 대행자로서 감사에 임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감사 대상의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의연한 자세로 감사에 임하라.”
 
  지난 8월 들어 또 하나의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4월 공석이 된 감사위원 인선을 두고 최재형 원장과 청와대·여당의 기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에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임명하려 하자 최 원장은 원칙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8월 24일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임명 당시 최 원장을 극찬했던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와대에서 임명 요청을 했는데 제청(提請)이 안 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대통령의 뜻대로 하라고 몰아세웠다. 이에 대한 최 원장의 답변은 역시 ‘법과 원칙’이었다. 최 원장은 “감사위원에는 정치적 중립성・(직무상)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적합한 인물이 제청·임명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헌법상 감사원장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감사위원을) 임명하게 돼 있는 조항은, 어떤 의미에서는 원장에게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을 제청하라는 헌법상 감사원장의 책무다. 그래서 나에게 맡겨진 책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이해해달라.”
 
  이에 원전 감사 결과가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직접 타격할 수 있다고 우려한 여권은 연일 최 원장에게 공세를 퍼부었다. 심지어 부친과 동서의 정치 성향까지 들먹이며 최 원장을 몰아세웠다. 최 원장은 우문현답(愚問賢答)으로 대응했다.
 
  “죄송하지만 제 가족들이 감사원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닙니다.”
 
 
  감사원은 司諫院에 해당
 
  조용한 성품에 법과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온 최재형 원장의 공적으로 드러난 면모는 대략 이 정도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임명될 당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살아 있는 권력도 잘못이 있으면 수사하라”는 덕담을 들었지만, 최재형 원장은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 반면에 최 원장은 ‘박근혜 적폐 수사’를 했던 윤석열 총장과는 달리 보수층이 꺼리는 경력 또한 없다. 그래서 섣부르기는 하지만 야권의 잠룡(潛龍) 후보군에 그의 이름을 넣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주역(周易)》은 지금의 최재형 원장에게 어떤 도움말을 줄 수 있을까?
 
  《주역》을 통해 최재형 원장을 살피려면 먼저 감사원장이라는 공직의 성격부터 규정해야 한다. 이것이 첫걸음이다. 감사원은 조선시대 사간원(司諫院)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임금이 잘못하거나 빠뜨린 것을 지적해 바로잡는 것이 본령(本領)이다. 한마디로 간언(諫言)을 맡는 것인데, 언론과 다른 점은 실상을 조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주역》에서는 ‘의(擬)’라고 했다. 그냥 의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실상을 조사해 의견을 내는 것이다. 그것을 ‘의의(擬議)’라고 했다. 반면에 오늘날 언론은 실상에 대한 조사권한은 없기 때문에 그냥 의견을 내는 의(議)에 가깝다. 그만큼 감사원의 비중은 큰 것이다.
 
  그러면 간언(諫言)하는 도리는 어떠해야 할까? 그동안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언급했지만 당(唐) 태종 때의 양신(良臣)이자 명재상 위징(魏徵)이 태종에게 올린 ‘간태종십사소(諫太宗十思疏)’, 즉 ‘태종에게 간언한 열 가지 반드시 생각해야 할 바에 관한 소’만 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 자체로 지금 읽어도 생동력이 있다. 먼저 위징은 이렇게 말했다.
 
  “신이 듣건대 나무가 크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그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고, 물이 멀리까지 흘러가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그 물이 시작되는 원천에 도랑을 쳐주며, 나라가 안정되기를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다움과 마땅함[德義]을 쌓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의 원천이 깊지 않은데 어찌 그 물의 흐름이 멀리 가기를 바랄 것이며,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데 어찌 나무가 크게 잘 자라기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다움[德]이 두텁지 못한 채 나라의 다스림을 생각하는 것은 설사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하물며 명철한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임금은 나라를 다스리는 중임을 맡고 있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숭고하고 지극한 지위에 올라 영원히 나라의 안정을 누리려고 하면서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거나, 사치스러움을 경계해 근검해야 함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고 다움을 두터이 쌓으려 하지 않고 뜻이 욕망을 누르지 못하면, 바로 나무의 뿌리를 베어내고서 나무가 무성하기를 바라고 물의 원천을 막고서 물이 멀리까지 흐르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반드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10가지’
 
  이어서 위징은 열 가지 반드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십사·十思)을 말한다.
 
  “▲정말로 욕심날 만한 것을 보았을 때에는 만족할 줄 알아서 스스로를 경계해야 함을 생각해야 하고[思] ▲장차 토목공사 등을 일으키려 할 때에는 그칠 줄 알아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줌을 생각해야 하고 ▲지위가 높아져 위태로움에 빠질까 걱정될 때에는 겸손하게 중도를 지키며[謙沖] 스스로를 길러줌을 생각해야 하고 ▲가득 차서 넘치는 것이 두려울 때에는 바다와 강물이 개울이나 냇물보다 더 낮은 곳에 있음을 생각해야 하고 ▲즐거움에 빠져 사냥하며 놀 때에는 세 번 이상 말을 내달려서는 안 됨을 생각해야 하고 ▲나태하고 게을러질까 걱정될 때에는 일의 시작을 신중히 하고 일의 끝을 잘 삼가야 함[愼始而敬終]을 생각해야 하고 ▲상하의 의견이 막히거나 (간신에 의해) 가려질까 걱정이 될 때에는 마음을 비워 아래 신하들의 간언하는 말을 받아들여야 함을 생각해야 하고 ▲간사한 자들이 중상모략을 행할까 걱정될 때에는 자신을 바로잡아 나쁜 사람을 물리쳐야 함을 생각해야 하고 ▲상이나 은혜를 내릴 때에는 사사로운 기쁨으로 잘못 상이나 은혜를 베풂을 생각해야 하고 ▲벌을 내릴 때에는 사사로운 노여움으로 형벌을 남용하게 됨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십사는 바로 임금이라 하더라도 어겨서는 안 되는 것이며, 이것을 임금이 어길 경우에 그것을 간언하는 것은 바로 충직한 신하의 도리다. 이런 도리로 임금을 섬기는 것이 제대로 된 의미의 충(忠)이다. 임금이 이 도리에서 벗어나는데도 무조건 임금을 감싸는 것이 바로 간(奸)이다.
 
  최재형 원장에 대해 벌떼처럼 달려들어 대통령에 대한 충성 맹세나 과시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 도리에 가까운지, 아니면 최 원장이 이 도리에 가까운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小畜괘(☴☰)
 
  《주역》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간언하는 도리를 함축하고 있는 괘는 소축(小畜)괘다. 대성괘 소축(小畜)괘(☴☰)는 소성괘 손(巽)괘(☴)와 건(乾)괘(☰)가 위아래에 있어 만들어진 괘다. 설괘전(說卦傳)에 따르면 ‘바람[風]으로 흩어지게 하고’, ‘건(乾・하늘)으로 임금 노릇을 한다’고 했다. 강건한 건(乾)괘(☰)가 겸손한 손(巽)괘(☴)에 의해 저지당한[畜=止] 것으로 본다. 이는 곧 소음(小陰・☴)이 태양(太陽・☰)을 저지한 형국이다. 효 전체를 보면 하나뿐인 음효인 육사(六四)가 나머지 다섯 양효를 저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소축괘에서는 ‘양효=군자’ ‘음효=소인’의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축(畜)은 ‘길러준다’는 뜻 외에 ‘머물게 한다[止]’ ‘쌓아둔다’는 뜻도 있다. 그치거나 머물러야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소축이 간언의 도리가 되는 것일까? 먼저 공자는 소축괘를 이렇게 풀었다.
 
  “소축(小畜)은 부드러움[柔=六四]이 지위를 얻어 위와 아래가 (모두) 그것에 호응하기 때문에 이를 일러 소축(小畜)이라고 한 것이다. 튼튼하면서도 공손하고[健而巽] 굳세고 가운데 있으면서[剛中] 행함에 뜻을 두어[志行] 마침내 형통하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효(爻)는 다름 아닌 육사, 즉 밑에서 네 번째에 있는 음효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소축이라고 한 것일까? 정이천(程伊川)의 풀이다.
 
  “하나의 음(陰)이 다섯 양(陽)을 제지해 묶어놓기는 했으나 견고할 수가 없으니 이 때문에 소축(小畜)이라고 했다.”
 
  따라서 소축(小畜)이란 작은 것[小]이 큰 것을 제지하고 있다[畜=止]는 뜻이다. 혹은 작은 것[小]이 큰 것을 길러준다[畜=養]고 볼 수 있고, 조금만 길러 준다[小畜]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諫言을 기꺼이 받아들인 漢 文帝
 
  예를 들면 신하[小]가 간언(諫言)을 통해 임금이 하고자 하는 바를 저지시키는 것[畜=止]이 전형적인 소축(小畜) 행위다. 신하의 간언을 따를 경우 체면을 손상당하는 것 같지만 실은 임금의 임금다움[德]은 조금 길러지기 때문이다.
 
  《한서(漢書)》 ‘장석지전(張釋之傳)’에 나오는 문제(文帝)의 일화다.
 
  (장석지가 임금의) 행차를 따라갔는데 상(上·문제)이 호권(虎圈·범 등을 방사한 동물원)에 올라 상림위(上林尉·상림원 호위책임자)에게 금수의 명단에 대해 10여 가지를 물으니 위는 좌우를 쳐다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대답을 못 했다. 호권을 돌보는 색부(嗇夫·잡역부)가 곁에서 위를 대신해 상이 질문한 명부에 대해 남김 없이 모두 대답했는데, 그는 이를 계기로 자신의 말솜씨가 마치 메아리처럼 무궁하게 반응할 수 있음을 과시하려고 했다. 문제가 말했다. “관리란 마땅히 저 색부와 같아야 되지 않겠는가? 위는 신뢰할 수가 없다.”
 
  석지를 불러 그 색부를 제배(除拜)해 상림령(上林令)으로 삼으라고 했다. 석지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폐하께서는 강후(絳侯) 주발(周勃)을 어떤 인물이라고 여기십니까?”
 
  상이 답했다.
 
  “장자(長者·덕망을 갖춘 인격자)다.”
 
  또다시 물었다.
 
  “동양후(東陽侯) 장상여(張相如)는 어떤 사람입니까?”
 
  상은 다시 말했다.
 
  “장자다.”
 
  석지가 말했다.
 
  “저 강후나 동양후를 장자라고 하셨는데 이 두 사람은 일에 관해 말할 때 일찍이 제대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데 어찌 색부의 수다스러운 말재주를 본받으라고 하시는지요! 그리고 진(秦)나라는 도필리(刀筆吏)를 임용했기 때문에 아전들이 다투면서 서둘러 일을 처리하고 사소한 것을 자질구레하게 따지는 것을 갖고서 서로 뛰어나다고 뽐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행동으로 인해 일을 형식적으로 처리할 뿐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는 실상이 없는 폐단이 생겨났습니다. 그리하여 (진나라 황제는) 자신의 허물을 들을 수 없었고, 나라는 쇠퇴해 2세(二世)에 이르러 천하는 흙더미가 무너지듯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색부의 말솜씨가 좋다고 여기시어 파격적으로 승진시키려고 하시는데, 신은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풀이 바람에 흔들려 쓰러지듯 서로 말솜씨에만 지나치게 힘써 다투고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본받는 것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거나 메아리가 소리에 답하는 것보다 신속하니 폐하께서는 모든 언행[擧措]을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문제는 말했다.
 
  “좋다.”
 
  마침내 그만두고 색부를 제배하지 않았다.
 
 
  소축괘 六四를 통해 최재형 원장을 읽다
 
  소축괘에는 음효가 하나뿐인데 밑에서 네 번째에 자리하고 있다. 재상의 자리이니 대체로 감사원장이라는 자리도 이에 해당한다. 소축괘의 밑에서 네 번째 음효에 대해 공자는 “미더움이 있으면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윗사람과 뜻이 합치됐기 때문이다”라고 풀었다. 주공(周公)은 효사(爻辭)에서 “미더움이 있으면 피가 제거되고[血去] 두려움에서 벗어나니 허물이 없다[有孚 血去 惕出 无咎]”라고 했다. 먼저 효사에 대한 정이천(程伊川)의 풀이가 상세하다.
 
  “육사(六四)는 강함을 제지해 길들이는 때[畜時=小畜]에 임금과 가까운 자리에 있으면서 임금을 제지하고 길들이는 자다. 마음속에 미더움과 열렬함[孚誠]이 있으면 구오(九五)가 마음속으로 그를 믿고서 그의 저지를 따를 것이다. 소축괘의 이 유일한 음효는 여러 양효를 제지하고 길들이는 자이니 여러 양효의 뜻이 육사에 매여 있다. 육사가 만일 힘으로 저지하려고 한다면 하나의 부드러움[柔]이 여러 굳셈[剛]과 대적하게 돼 반드시 상해를 당할 것이요, 오직 미더움과 열렬함을 다해 응하면 감동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피해를 멀리하고 위험과 두려움을 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피해를 면할 수 없다. 이것이 부드러움이 굳셈을 제지하고 길들이는 방도다. 위엄을 지닌 군주일지라도 미천한 신하가 임금의 욕심을 제지하고 길들일 수 있는 것은 미더움과 열렬함으로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밝은 군주인가?
 
  최재형 원장은 일단 신하로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라는 탈원전에 제동을 걸려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전형적으로 소축괘의 상황이다. 여기서 관건은 미더움과 열렬함이다. 이는 대통령이 아니라 최 원장의 미더움과 열렬함이다. 만일 그가 진정으로 미덥고 열렬하여 그것이 제대로 위에 전달이 된다면 그로서는 큰 허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통령이 눈 밝으냐[明] 그렇지 않으냐[不明]에 따라 달라진다. 명(明)에 대해 공자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점점 젖어드는 (동료에 대한) 참소와 살갗을 파고드는 (친지들의 애끓는) 하소연을 (단호히 끊어) 행해지지 않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밝다고 말할 수 있다.”
 
  요즘은 참소나 참언[讒]이란 말보다는 중상모략, 무고, 헐뜯기 등이 더 자주 사용된다. 공자의 이 말도 군주나 지도자를 향해 하는 말이다. 리더가 미리 알아서[先覺] 신하들 간에 실상과 동떨어진 중상모략이 행해지지 않게 하고 주변 사람들의 사사로운 청탁을 끊어낼 때 그 리더십은 공명정대하다[明]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느 쪽일까? 그것은 향후 최 원장에 대해 어떤 조치를 내리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다만, 최 원장으로서도 불필요하게 정치적 함의가 담긴 발언을 통해 미더움과 열렬함을 손상시킨다면 허물이 있을 수도 있다.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보자.
 
  “군자(君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려우니, 기쁘게 하기를 도리로써 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부리면서도 그 그릇에 맞게 부린다[器之]. 소인(小人)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쉬우니, 기쁘게 하기를 비록 도리로써 하지 않아도 기뻐하고, 사람을 부리면서도 한 사람에게 모든 능력이 완비되기를 요구한다[求備].”
 
  짧지만 여기에는 참으로 많은 주제들이 녹아들어 있다. 군자와 소인의 대비, 섬김과 기쁘게 하기의 대비, 도리의 문제, 그 그릇에 맞게 부리는 군자형 지도자의 너그러움[寬]과 아랫사람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갖춰져 있기를 바라는 소인형 지도자의 게으름[倦] 등이 그것이다.
 
  사실 이 구절은 《주역》의 내용을 가장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그중에서 일단 한 가지 문제는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 군자와 소인의 대비가 그것이다. 《주역》은 한마디로 군자가 되는 공부이자 군자가 일을 잘 풀어가는 지침이며 군자가 자신의 삶을 공명정대하게 살려고 방향을 잡아가는 채찍이다.
 
 
  최재형 원장의 행보
 
2018년 1월 2일 임명장 수여식이 끝난 후 환담장으로 향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최재형 감사원장. 두 사람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사진=뉴시스
  현재까지 법과 원칙에 충실했던 최재형 원장은 누가 뭐래도 군자에 가까운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그는 지금 기로(岐路)에 서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어느 지점까지 함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당파(黨派) 위주의 정치를 펴는 한 최재형 원장의 여로는 그리 길지 못할 것이다. 조만간 큰 충돌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사 이런 상황이 와도 정파적 배신은 금물이다. 싫건 좋건 최 원장은 문재인 정권의 감사원장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회창씨의 경우 감사원장을 거쳐 김영삼 정권과 거리를 두면서 대권(大權)에 도전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하반기에 레임덕에 빠져 어쩔 수 없이 파당(派黨)을 넘어선 공도(公道)의 정치를 펴야 할 때 어쩌면 최재형 원장에게 총리의 길이 열릴지 모른다. 그나마 최 원장 정도 되는 중립성을 갖춘 인물이 아니고서는 정권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질 때가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 총리직 제안을 수용해야 할까? 권력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감사원장에 임명해준 대통령에 대한 도리의 차원에서도 도움을 주는 것이 《주역》이 말하는 군자의 도리가 아닐까? 물론 탈원전 감사로 자신을 저지한 감사원장을 품어 안을 만한 도량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어느 쪽이건 최재형 원장에게 야당과의 협력을 통한 길은 이미 사라졌다고 하겠다. 야당과의 협력 운운하는 순간 적어도 그의 순수했던 ‘미더움과 열렬함’은 의심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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