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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30〉 퍼시 비시 셸리의 ‘西風에 부치는 노래’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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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英 낭만파 시인 셸리… 함석헌 “나를 몇 번이나 엎어진 데서 일으켜 준 시”
⊙ 西風은 겨울에서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바람… 변화와 자유의 상징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의 그림 〈서풍〉.
  서풍(西風)에 부치는 노래
  퍼시 비시 셸리
 
  나를 너의 거문고가 되게 하라, 저 숲처럼
  내 잎새가 숲처럼 떨어진들 어떠랴!
  너의 힘찬 조화의 난동이 우리에게서
 
  슬프지만 달콤한 가락을 얻으리라.
  너 거센 정신이여, 내 정신이 되어라!
  너 내가 되어라, 강렬한 자여!
 
  내 꺼져가는 사상을 온 우주에 몰아라
  새 생명을 재촉하는 시든 잎사귀처럼!
  그리고 이 시의 주문에 의하여
 
  꺼지지 않는 화로의 재와 불꽃처럼
  인류에게 내 말을 퍼뜨려라.
  내 입술을 통하여 잠 깨지 않는 대지에
 
  예언의 나팔을 불어라! 오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
 
  (*전체 5부 중 마지막 부다.)

 
 
  Ode to the West Wind
  Percy Bysshe Shelley(1792~1822)
 
  V
  Make me thy lyre, even as the forest is:
  What if my leaves are falling like its own!
  The tumult of thy mighty harmonies
 
  Will take from both a deep, autumnal tone,
  Sweet though in sadness. Be thou, Spirit fierce,
  My spirit! Be thou me, impetuous one!
 
  Drive my dead thoughts over the universe
  Like wither'd leaves to quicken a new birth!
  And, by the incantation of this verse,
 
  Scatter, as from an unextinguish'd hearth
  Ashes and sparks, my words among mankind!
  Be through my lips to unawaken'd earth
 
  The trumpet of a prophecy! O Wind,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퍼시 비시 셸리.
  1820년에 발표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퍼시 비시 셸리의 시다. 시인은 서풍을 노래하고 있는데 동풍도 북풍도 아닌 서풍이 어떤 상징의 바람일까 궁금해진다.
 
  셸리는 사회혁명에 관심이 많았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평자(評者)들은 이 시 속 서풍에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시인의 거센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함석헌(咸錫憲·1901~1989) 선생은 ‘서풍에 부치는 노래’를 읽고 “나를 몇 번이나 엎어진 데서 일으켜 준 시”라고 말했다. 선생의 극찬에 다시 시를 꼼꼼히 읽게 된다.
 
  이 시의 마지막 행인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가 많은 시인에게 시적 영감을 주었다.
 
  그중에서 나태주 시인의 ‘서풍의 노래’는 셸리에게 영향받아 쓴 시가 틀림이 없다. 그에게 서풍은 겨울에서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바람이다. 봄을 예고하는 바람으로 서풍을 노래한다.
 
  오늘을 사는 나
  어려움에 휩싸인 나
  불안함에 앞날이 보이지 않는 나
 
  이 모든 나에게
  시인은 노래한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
 
  겨울이 오면
  반드시
  봄도 오리라
 
  그날은
  기쁨과 환희가 넘치리라
 
  - 나태주의 ‘서풍의 노래’ 전문

 
  흔히 서풍은 이른 봄의 바람을 상징한다. 매서운 북풍도 따스한 남풍도 아닌 서풍은 초봄의 바람꽃이라 일컫는다. 서풍은 다른 말로 ‘하늬바람’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서풍의 신(神)은 제피로스다. 남풍의 신은 노토스다.
 
  제피로스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을 불게 하는 데 반해 노토스는 비를 몰아오는 바람의 신이다. 노토스는 때로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폭우를 쏟아내지만 제피로스는 그런 법이 없다.
 
  동풍은 파도를 높여 바다를 거친 세계로 만들어버린다. 습기를 머금은 남풍은 묵직한 너울을 몰고 온다. 여차하면 비도 온다. 서풍은 얌전함의 대명사다. 아직 파도가 높이 치고 있지만 동풍에서 서풍으로 바뀐다면 곧 잔잔해진다는 신호이다. 문학에서 서풍은 가장 고요한 바람으로 묘사된다. 또 서풍은 변화와 자유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서풍은 초봄에도 불지만 늦여름에도 분다. 여름이 지나 서풍이 불면 곡식이 여물고 대가 세어진다고 해서 ‘하늬바람에 곡식이 모질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나태주와 김춘수의 西風
 

  다시 셸리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로 돌아가 보자. 이 시는 전체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는 형식이 일치한다. 4개의 3행 연구(聯句)와 1개의 2행 연구다.
 
  오 거센 서풍, 너 가을의 숨결이여!
  너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죽은 잎사귀들은
  마치 마법사에게서 도망치는 유령처럼 쫓겨다니누나,
 
  누런, 검은, 파리한 열병에 걸린 듯 빨간
  역병에 걸린 무리들; 날개 달린 종자를
  검은 겨울의 잠자리로 전차로 몰아가서,
 
  산과 들을 신선한 색깔과 향내로
  가득 채울 때까지, 무덤 속의 송장들처럼
  차가운 곳에 누워 있게 하는 오 너 서풍:
 
  봄의 하늘색 동생이 꿈꾸는 대지 위에
  나팔을 불어 (향기로운 봉오리를 몰아
  양떼처럼 대기 속에 방목하며)
 
  거센 정신이여, 너는 어디서나 움직이누나,
  파괴자인 동시에 보존자여; 들으라, 오 들으라!
 
  - ‘서풍에 부치는 노래’ 중 1부 전문

 
  1부에서 시인은 서풍을 ‘가을의 숨결’로 칭한다. 누런, 검은, 파리한 무리를 검은 겨울의 잠자리로 몰아가는 바람이 서풍이다. 시인은 ‘너는 어디서나 움직이누나, 파괴자인 동시에 보존자’라고 서풍을 상징한다. 봄의 서풍과 가을의 서풍, 보존자이자 파괴자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바람… 그래서 많은 시인과 소설가가 서풍을 문학적으로 상징하려 했다.
 
  ‘무의미의 시인’ 김춘수의 시 ‘서풍부(西風賦)’에서 서풍은 형태가 없는 바람이다.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닌’ 바람이다. 아무런 의미를 담지 않은 바람은, 바람을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의 바람이 될 수 있다. 특정하지 않았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 바람의 의미는 제각각이다. 이런 식이다. ‘아무것도 아닌 바람은 온통 풀 냄새를 널어놓고, 복사꽃을 울려놓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꽃인 듯 눈물인 듯 이야기인 듯’ 살아 춤춘다.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온통 풀 냄새를 널어놓고 복사꽃을 울려놓고 복사꽃을 울려만 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 김춘수의 ‘서풍부’ 전문

 
 
  송재학과 이기철의 서풍
 

  서풍은 문학적인 바람의 이미지가 강하다. 마른 시냇가에 서서 지난 어느 시간을 떠올릴 때 어디선가 불어오는 생각 많은 바람이다. 그 바람을 느끼며 언젠가 자신이 보았던 구름의 자국을 떠올릴지 모른다. 구름의 자국은 바람의 흔적과 같다.
 
  송재학의 시 ‘서풍이 젖은 나를 말릴 때’는 무척 아름다운 시다. 여러 번 읽을수록 의미가 새롭다. 시적 화자(話者)는 비가 오는 어느 날, 십삼 층 석탑 앞에 섰다. 이 석탑은 경주 안강의 정혜사터에 세워진 13층 석탑. 국보 40호로 통일신라 석탑의 백미(白眉)라고 일컬어진다. 화자는 비를 흠뻑 맞으며 높은 탑을 바라본다. 두 눈으로 빗물이 고이는 것을 ‘두 눈동자를 파 버리고’라고 표현한다. 비에 젖어 체온이 떨어진 팔다리가 석탑의 일부 같다.
 
  옛날 석탑 주변엔 큰 절이 있었으나 절은 사라지고 탑만 남았다. 석탑은 절이 겪었을 숨 가쁜 일들을 모두 보았을 것이다.
 
  시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득 서풍이 분다. 양미간에서 어떤 움직임이 느껴진다.
 
  비 오면 넓어지는 고요의 얼안*을 견딜 수 없으므로 정혜사지 십삼 층 석탑에 머물지 못한다
  봄날의 위쪽에서 피는 꽃을 따라잡기 위해 솟구친 찰주
  엉겅퀴에는 탑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을 것이다
  내 어느 날처럼 떨어지기 위해 높이 올라갔던가
 
  두 눈동자를 파 버리고 물끄러미 서서 기약 없이 다리품 파는 내 수면에는 탑 그림자가 눈물의 방향으로 누웠다
  체온이 떨어지는 서늘함, 머리칼은 허옇게 바뀐다
  팔다리를 석탑 일부와 이어주는 가랑비 속
 
  탑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빈터란 더 큰 절을 꿈꾸면서 숨 가쁜 늑골 몇 개로 두리기둥 세우는 곳이다
  서풍이 젖은 나를 말릴 때 탑에서 내 미간까지 느린 진자가 움직인다
  점점 말라 가는 못은 구겨진 금박지 같은 노을을 퍼 담는다
 
  - 송재학의 시 ‘서풍이 젖은 나를 말릴 때’ 전문
  * 얼안-테두리 안

 
  이기철 시인은 기자가 대학 시절 좋아했던 시인이다. 그의 시는 슬프지만 따스하다. 비극을 노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량한(선한) 눈길로 세상을 감싸 안는다. ‘서풍에 기대어’의 1행에 나오는 ‘별리’는 이별(離別)을 뜻한다. 서풍은 이별처럼 슬프고 아름답다. ‘안식의 기도’ ‘저녁 수저’ ‘길 위의 이슬’과 같다. 이별은 깨어지기 쉬운 약속과 같지만 모든 언약은 스스로를 반짝인다. 마치 노을이 스스로를 붉게 물들이는 것처럼…. 시인은 ‘서쪽으로 가면 웬일인지 하늘로 오르는 사닥다리가 있을 것 같다’고 노래한다.
 
이기철 시인의 시집 《청산행》.
  별리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간 이파리 하나쯤 떼어 가는 아픔이야
  별리의 아름다움에 비길 수 있으랴
 
  마음보다 치장이 아름다운 서풍이여
  너의 안식의 기도 앞에서 몇 사람은 저녁 수저를 들고
  몇 사람은 길 위에서 이슬처럼 깨어지기 쉬운 약속을 한다
  저녁으로 갈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
  모든 언약들이 반짝인다
 
  우리는 이제 이른 저녁을 먹고
  들 가운데 서서 오늘보다 아름다울 내일을 말할 차례다
  펄럭이는 내일의 치맛자락을 끌어당기며
  만남보다 진한 이별을 말할 차례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문 밖에서 바람은 흰 피륙을 짜고 있다
  서쪽으로 가면 웬일인지 하늘로 오르는 사닥다리가 있을 것 같아
 
  오늘도 들판 끝을 헤매다
  서풍의 옷자락에 싸여 돌아온다
  선사로 가고 싶은 장엄한 몸짓의 서풍이여
  너의 치마 끝에 내리는 놀의 물감으로
  오늘 우리는 주홍빛 이별을 기록해야 한다
 
  될 수만 있으면 바위에 기록하리라
  어둠 뒤에서 마지막 한 겹 속옷마저 벗고
  알몸으로 초록 위를 부는 서풍이여
  이맘때쯤 바람과 능금나무의 화간에도
  우리는 박수치리
  그리고 세상의 푸름들이 시들기 전에
  우리는 필생의 편지를
  한 사람의 이름 앞으로 보내야 하리
 
  - 이기철의 시 ‘서풍에 기대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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