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阿Q의 시 읽기 〈27〉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2〉

“세월이 그대를 베어 갈 때 막아 낼 길 없느니…”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셰익스피어의 14줄 정형시 ‘소네트’… 여러 종류의 구슬이 섞여 한 목걸이
‌⊙ 가족 통해 사회와 인간의 자화상 그린 소설 《태평천하》 〈독 짓는 늙은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2〉.
  〈소네트 12〉
 
  셰익스피어(피천득 옮김)
 
  시간을 알리는 시계 소리를 세며
  화려한 낮이 무서운 밤 속에 묻히는 것을 볼 때,
  또 바이올렛이 한창 시절을 지난 것을 보고,
  또 검은 고수머리가 백은(白銀)으로 변한 것을 볼 때,
  한때는 가축을 위하여 폭염을 가려 주던
  나무들의 잎이 다 떨어진 것을 볼 때,
  여름의 푸른 것들이 모두 다발로 묶이어서,
  희고 총총한 그 수염 보이며 영구차로 운반되는 것을 볼 때,
  그때 나는 그대의 미에 대하여 생각하노라,
  그대도 시간의 흐름 속에 가야 한다고.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제 모습을 버리고,
  다른 것들이 자라나는 것과 같이 빨리 없어지기에.
  세월이 낫으로 그대를 베어 갈 때
  막아 낼 길은 없느니, 만일 자식을 낳은 것이 없다면.

 
 
  〈12〉
 
  When I do count the clock that tells the time,
  And see the brave day sunk in hideous night;
  When I behold the violet past prime,
  And sable curfls, all silvered o'er with whites;
  When lofty trees I see barren of leaves,
  Which erst from heat did canopy the herd,
  And summer's green all girded up in sheaves,
  Borne on the bier with white and bristly beard,
  Then of thy beauty do I question make,
  That thou among the wastes of time must go,
  Since sweets and beauties do themselves forsake
  And die as fast as they see others grow;
  And nothing gainst Time's scythe can make defence
  Save breed, to brave him when he takes thee hence.

 
 
민음사에서 간행된 피천득 선생 번역의 《셰익스피어 소네트》.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는 생전 극단과 극장에서 배우 노릇을 하고 극작(劇作)에도 관여해 명성을 쌓았다. 47세 될 무렵, 고향(영국 중부의 작은 촌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으로 돌아가 1616년 5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많은 희극과 비극, 역사극을 남겼고 수편의 서사시와 자기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소네트들을 썼다.
 
  소네트는 정형시로 소곡(小曲)이라 불리고 14행시로 번역한다. 14줄 시란 뜻이다. 셰익스피어는 154편의 소네트를 남겼다. 1~125편은 젊은 시인에게 건네는 충고나 이야기가 중심이고 127~154편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생전 피천득 선생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번역하며 “같은 빛깔이면서도 여러 종류의 구슬이 섞여 한 목걸이라 볼 수도 있고 독립된 구슬들이 들어 있는 한 상자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때로 과장되거나 수다스러운 면이 있지만 “우정 또는 애정이 종횡무진”한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2〉편은 세월의 덧없음을 노래한다. 화려한 낮이 무서운 밤 속에 묻히거나 검은 머리가 흰 머리로 변할 때, 여름철 무성한 나뭇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질 때 혹은 널 속에 누워 영구차에 실려 가는 누군가를 보며 인생무상을 느낀다.
 
  인간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제 모습을 잃을 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는 ‘세월이 낫으로 그대를 베어갈 때/ 막아낼 길은 없느니’라면서도 한 가지 여지를 남겨 두었다. 바로 ‘내 새끼’, 자식이다.
 
  그래서인지 〈소네트 13〉편의 마지막 행은 이렇다. ‘그대 부친이 계셨으니. 그대 아들도 그리하게 하라’(You had a father: let your son say so.)
 
  그대의 미모를 다른 누구에게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대가 빌려서 지니고 있는 미는,
  기한이라는 것이 없고,
  그대 죽은 후에도 다시 그대가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자손이 그대의 미를 간직하리니.
 
  -〈소네트 13〉편 중 일부

 
  덧없는 세월은 운명이지만 그나마 ‘아름다운 자손’이 미를 물려받을 것이라고 셰익스피어는 생각한다.
 
  인간이, 그 자손이 아름다운 것은 왜일까. 자기와 닮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유전적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와 닮았을까. 바로 신(神)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인간은, 신의 형상과 같이 만들었다.
 
  게다가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직립(直立)의 자세를 허락했다. 그 결과 다른 동물은 다 얼굴을 밑으로 향하고 지상을 바라보는데, 인간만은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별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채만식의 《태평천하》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드라마로 각색한 채만식의 〈태평천하〉 한 장면. 극중 윤직원 영감으로 扮한 배우 김성겸.
  인간의 자손번식 욕망이 전통과 문명을 낳게 했으나 근대 이후 그런 욕망이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 있음을 20세기 작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채만식의 장편소설 《태평천하》다.
 
  ‘말대가리’라는 별명의 윤용규는 서른이 넘도록 노름판을 전전하다가 갑자기 생긴 돈 200냥을 기반으로 벼락부자가 된다. 그러나 화적떼에게 피살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 아들 ‘윤직원’은 세상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이 깊다. 권력을 쥐려 아들과 손자를 군수와 경찰서장으로 만들고자 몸부림을 친다. 일제 강점기를 ‘태평천하’로 여길 만큼 비윤리적이고 비역사적인 인물이다. 다음은 소설의 한 단락이다.
 
  〈… 일찍이 윤직원 영감은 그의 소시적 윤두꺼비 시절에 자기 부친 말대가리 윤용구가 화적의 손에 무참히 맞아 죽은 시체 옆에 서서 노적이 불타느라고 화광이 충천한 하늘을 우러러,
  “이놈이 세상 언제 망하려느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하고 부르짖은 적이 있겠다요.
  …〉

 
소설가 채만식 선생.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는 의식은 세상이 망하든 말든 끝까지 자신의 재산만은 지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런 바람이 뜻대로 안 되는 게 바로 인간의 운명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인 제15장의 제목은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니라’이다.
 
  윤직원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의 집안을 망칠 존재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바로 자식이라는 것을.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된 손자 ‘종학’을 의미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을 각색한 영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958년 미국 MGM사 작품으로 율브리너(가운데)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세계는 수컷들이 지배하는 충동의 세계다.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악의 깊이와 닿아 있다. 선은 평면적이나 악은 깊고도 중층적이다. 인간에게 가족은 선과 악이 교차하는 작은 공간이다. 첫아들 드미트리가 동생 알료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 “나는 영원히 추악한 세계에서 살고 싶으니까. 이 점은 특히 잘 명심해 두는 게 좋을 거야. 결국 더러운 죄악 속에서 사는 것이 훨씬 기분 좋은 것이거든. 모든 사람들이 이 추악한 행위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고 있지만 사실은 누구나 다 추악한 생활 속에 젖어 살고 있지 않느냐 말이야.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몰래 은밀히 그런 짓을 하고 있지만 나는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이러한 차이밖에는 없어.” …〉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 공광규의 시 〈소주병〉
 
1969년에 최하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황순원의 단편 〈독 짓는 늙은이〉를 영화로 만들었다.
  황순원의 소설 〈독 짓는 늙은이〉는 가족을 지키려는 송 영감의 몸부림이 담겨 있다. 그가 독을 짓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일곱 살 난 어린 아들 ‘당손이’와의 생계유지를 위해서다. 도망간 아내와 조수를 증오하는 것은 그를 지탱하는 감정적 동력이다.
 
  〈… 이년! 이백 번 쥑에두 쌀 년! 앓는 남편두 남편이디만, 어린자식을 놔두구 그래 것두 아들놈 같은 조수 놈하구서 그래 지금 한창 나이란 말이디? 그렇다구 이년, 내가 아무리 늙구 병들었기루서니 거랑질이야 할 줄 아니? 이녀언! 하는데, 옆에 누웠던 어린 아들이, 아바지, 아바지이! 하였으나 송 영감은 꿈속에서 자기 품에 안은 아들이, 아바지, 아바지이! 하고 부르는 것으로 알며, 오냐 데건(‘저것은’의 사투리) 네 에미가 아니다! 하고 꼭 품에 껴안는 것을 옆에 누운 어린 아들이 그냥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러, 잠꼬대에서 송 영감을 깨워 놓았다. …〉
 
  이 작품은 1950년 《문예》 9호에 발표된 단편소설로 전통적 가치를 끝끝내 지키고자 한 장인의 내면적 갈등과 비극적 최후를 통해 전통적 인간형을 제시하고 있다. 소설 말미,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송 영감을 찾아와 당손이의 입양을 주선하지만 거절한다. 그러나 몸이 더 쇠약해지고 조급한 마음에 일은 점점 엉망이 된다.
 
  심한 좌절을 느낀 송 영감은 다시 앵두나무집을 찾아가 아들의 입양을 부탁하고는 최후를 맞는다.
 
  〈… 송 영감은 눈을 감은 채 가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일 있더라도 눈물일랑 흘리지 않으리라 했다. 그러나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애를 데리고 와 저렇게 너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을 때, 감은 송 영감의 눈에서는 절로 눈물이 흘러내림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앵두나무집 할머니는 억해 오는 목소리를 겨우 참고, 저것 보라고 벌써 눈에서 썩은 물이 나온다고 하고는, 그러지 않아도 앵두나무집 할머니의 손을 잡은 채 더 아버지에게 가까이 갈 생각을 않는 애의 손을 끌고 그곳을 나왔다. …〉
 
시인 공광규.
  그렇다면 자식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 자식은 아버지의 절규와 방황을 이해할까. 공광규 시인은 아버지를 ‘쓰레기장에 굴러다니는’ 빈병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 빈병이 어느 바람이 세게 불던 밤,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처럼 들린다.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 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 전문
조회 : 1171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811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