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부의 정치 개입으로 민주화 상당 기간 정체… 민주언론 등장에 구조적인 저해요인
⊙ 에르도안은 한때 민주화 정책 폈으나 자신의 우월적 지위 확인 후 독재자로 변신… 거기 방해가 되는 언론의 탄압이 1차 목표
⊙ 2016년 불발 쿠데타 이후 언론을 敵으로 규정, 지금 170명의 언론인이 감옥에
⊙ 정권에 우호적인 언론인에겐 특별인터뷰나 해외여행 같은 당근 제공… 반대파에겐 가혹한 탄압
⊙ 에르도안이 직접 방송내용에 개입한 녹음도 공개… 방송 관계자 “도저히 못해먹겠다”
⊙ 국가 도산 위기 가능성 높은 외환위기에도 언론은 침묵… 술탄 아흐메드 광장과 탁심 광장 같은 번화가 한복판에 장갑차와 군 병력 배치
⊙ 에르도안은 한때 민주화 정책 폈으나 자신의 우월적 지위 확인 후 독재자로 변신… 거기 방해가 되는 언론의 탄압이 1차 목표
⊙ 2016년 불발 쿠데타 이후 언론을 敵으로 규정, 지금 170명의 언론인이 감옥에
⊙ 정권에 우호적인 언론인에겐 특별인터뷰나 해외여행 같은 당근 제공… 반대파에겐 가혹한 탄압
⊙ 에르도안이 직접 방송내용에 개입한 녹음도 공개… 방송 관계자 “도저히 못해먹겠다”
⊙ 국가 도산 위기 가능성 높은 외환위기에도 언론은 침묵… 술탄 아흐메드 광장과 탁심 광장 같은 번화가 한복판에 장갑차와 군 병력 배치
- 이스탄불 시내 주요 관광지에는 신문 판매대가 있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인천 국제공항에서 터키 아타튀르크 국제공항까지는 11시간 반 정도 걸린다. 8월 8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터키에 도착했을 때는 현지 시각 오후 3시였다. 연착(延着)까지 포함해 13시간가량 걸렸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한국에서 봤던 터키리라화의 환율(換率)이 그새 폭락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4박5일간의 취재에 350유로(한화 45만원)를 들고갔다.
1터키리라는 원래 한화로 250원쯤이었다. 1터키리라를 사려면 250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게 지금은 175원쯤으로 떨어졌다. 나는 하루 50유로씩을 바꿔 필요한 비용에 충당했는데 1유로당 5.2이던 환율이 다음 날은 5.7, 둘째 날은 6.2 하는 식으로 매일 오르더니 나중에는 6.85까지 치솟는 것이었다. 50유로를 바꾸면 260터키리라를 받던 게 340터키리라로 변한 것인데 이는 점심식사 한끼 값으로 충분할 만큼의 액수가 매일같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화수분’이라는 말이 있다. 물건을 담아 두면 끝없이 새끼를 쳐 내용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설화 속의 단지를 이르는데 외환위기라는 것이 외화 보유자에겐 화수분이었을 것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한국인이 고통당할 때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귀국해 보니 버버리를 사려는 터키행 행렬이 이어진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한국 같았으면 이런 식의 외환위기가 왔을 때 언론부터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동안의 정책 등을 비판하고 대책을 촉구하며 책임자의 인책(引責)을 요구하는 게 상례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그랬다. 그런데 터키 이스탄불 남부의 최고 번화가인 술탄 아흐메드 광장이나 탁심 광장은 관광객들로 붐빌 뿐이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볼 수 없었다.
터키 언론은 왜 침묵하는 것일까? 술탄 아흐메드 광장이나 탁심 광장 한복판에 배치해 놓은 장갑차와 군 병력 때문일까? 최근 몇 년 사이 터키에서 일어난 일을 일지(日誌) 식으로 정리해 보자.
언론인 체포
먼저 2014년 12월 16일 외신(外信)을 통해 국내에 보도된 내용이다. 골자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언론인 등 27명을 체포했다는 내용이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언론탄압이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적(政敵)인 이슬람 사상가 펫훌라흐 귈렌과 관련된 숙청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날 경찰이 귈렌 측 언론인을 대거 검거한 것을 “정상화 과정의 일부”라며 귈렌 측 세력 숙청을 계속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는 또 언론탄압을 비판하며 터키에 언론자유 수호를 촉구한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이런 거짓말에 신경 쓰지 말라”며 “EU는 자기네 일이나 신경 쓸 것”이라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이슬람 사상가 펫훌라흐 귈렌은 2002년 이슬람주의에 뿌리를 둔 정의개발당(AKP) 집권 이후 세속주의 세력에 함께 대항했지만 2013년 12월 부패 수사를 계기로 완전히 적으로 돌아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에 망명 중인 귈렌이 검찰과 경찰 내 자기 세력을 동원해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며 검경 지휘부 내 귈렌 세력 숙청에 나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2일 한 연설에서 “지난해 12월 작전은 부패 수사가 아니라 쿠데타 음모”라며 “그들이 나를 체포하려는 계획이 준비됐고 정부를 전복시킨 이후의 내각 명단까지 만들었다”고 말했다. ‘제마트(공동체)’로도 불리는 귈렌의 추종 세력은 경찰과 사법부, 언론계, 교육계 등 광범위하게 걸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전날 언론인 등 검거를 폭로했던 ‘푸아트 아브니’라는 가명의 내부고발자는 귈렌 측 언론뿐만 아니라 주류 언론도 검거 대상이라고 주장해 숙청 작업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했다. 그는 모든 작전은 에르도안이 지시하고 있으며, 에르도안이 검거 대상에 귈렌이 포함되지 않자 그를 넣으라고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또 작전은 25일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대 일간지, 정부 통제 아래 들어가
다음은 2016년 4월 26일에 보도된 내용이다. 골자는 하루 발행부수가 65만부로 터키 최대 일간지인 《자만》이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됐다는 내용이다. 우리 식으로 비유하자면 《조선일보》가 정부의 통제 속에서 편집권을 상실했다는 것과 흡사하다.
터키 정부가 자국 언론사 130여개에 폐쇄 조치를 단행했다. 쿠데타 연루 혐의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반(反)정부 성향을 띠던 언론들에 대한 탄압에 나섰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스탄불 법원은 반정부 성향을 보여온 일간지인 《자만》에 대한 법정관리 결정을 내리고 관리인을 지명했다. 당일 밤 관리인의 본사 진입을 위해 경찰력이 동원됐다.
기자와 신문 지지자들을 향해 최루탄과 플라스틱 탄환, 물대포가 발사됐다. 법원은 별다른 설명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터키 검찰의 “《자만》과 계열사들이 테러리스들을 도왔다”는 주장을 수용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에 대해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총리는 “정치적 결정이 아닌 법적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3~4년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권이 보여온 특성”이라고 분석했다. 비판언론은 탄압하고, 한때 동지였다 이젠 정적이 된 이슬람 사상가 펫훌라흐 귈렌과 그 추종자들을 몰아내 왔다는 것이다. 《자만》은 귈렌과 밀접한 관계다. 현재 기자 30여 명 정도가 투옥 중이며 터키인 1800명 정도가 대통령 모욕죄로 기소된 상태다.
《자만》 편집장 압둘하미트 빌리치는 “지금 이 나라 민주주의가 암흑의 시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빌리치 편집장이 만든 마지막 호인 5일 자는 “터키 자유 언론엔 치욕의 날”이라고 썼다. 이후엔 기자들의 서버 접근이 차단됐다. 빌리치와 주요 칼럼니스트가 해고됐다. 일부 기자는 “신문의 온라인 아카이브까지 삭제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언론자유지수, 180개국 중 157위
그로부터 석 달 후인 2016년 7월 28일에는 “터키 정부 관계자가 ‘뉴스 통신사 3개와 TV방송사 16개, 신문사 45개, 잡지사 15개, 출판사 29개 등 언론사 130여개에 폐쇄 조처를 내렸다’고 밝혔다”는 내용이 국내에 전해졌다. 쿠데타 배후로 의심되는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을 추종하는 세력이 해당 언론사들에 포진해 있기에 폐쇄가 불가피하다는 게 터키 정부의 설명이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 터키 정부는 휴리예트와 예니사파크 등 터키 유력 언론에서 활동한 여성 기자 나즐로 을르작 등 언론인 47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터키 당국에 체포된 언론인 중에는 평상시 귈렌의 종교적 신념에 동조하지 않았던 인물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터키 정부가 쿠데타 진압을 기회로 사실상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개헌 추진에 반대 입장을 보여 왔던 언론인을 체포하고 해당 언론사를 폐쇄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이날 논평을 통해 “터키 정부가 쿠데타 잔류세력 소탕에 나선 것은 이해하지만 언론인 체포가 늘어나는 추세는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전해지는 보도만으로 보면 터키는 언론이 가장 위축된 국가다. 터키는 ‘세계 최대의 언론인 감옥’으로 불릴 정도인데 실제로 현재 터키에서 수감 중인 언론인은 약 170명이다. 그런가 하면 언론자유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올해 터키는 180개 국가 가운데 157번째로 평가되고 있다.
언론장악은 케말리즘의 유산
그렇다면 이것이 꼭 에르도안의 탓일까? 전통적으로 터키에서 언론은 ‘국민과 민주주의 이름으로 서로 다른 권력을 제어하고 균형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국가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케말주의라는 강력한 공식 이데올로기 때문이라는 데 대부분의 언론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즉 터키에서는 군부(軍部)가 중요한 사항이 있을 때마다 개입해 온 게 관례였다. 이로 인해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정당과 시민사회 및 언론이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는 데 실패했다. 반(半) 권위주의적인 정치제도로 부분적 독립과 제한된 자유만 누리는 취약한 언론기관이 출현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1990년대 초까지 정부 통제하에 있었다.
유일하게 개혁적인 지도자로 알려진, 총리 겸 대통령이었던 투르구트 외잘이 군부 쿠데타 세력이 1980년 자행한 국가에 의한 방송장악을 1989년 철회하고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길을 열었다. 외잘은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면서 터키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기관의 부당한 권리침해에 대해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터키는 외잘의 개혁정책으로 시민의 자유와 중산층의 경제적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면서 민주주의 국가로 도약할 발판을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잘이 1993년 사망한 이후 민주화는 다시 뒷걸음질쳤다. 급기야 정치 불안정과 내부 갈등이 1997년 다시 쿠데타로 연결됐고 2000년대 초반의 경제위기 등으로 터키는 10년이란 세월을 허비해야 했다.
그 이후 등장한 에르도안과 귈렌이 지휘하는 정의개발당(AKP)의 유럽연합에 정회원으로 가입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는 터키 개혁에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 터키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민군(民軍) 관계를 개선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등 수많은 개혁정책을 다시 추진했다. 터키는 이 과정에서 서구와 이슬람 세계에서 떠오르는 스타로 주목 받았다.
에르도안 정권의 독재화
정의개발당은 정치적으로는 이슬람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당 지도부는 “정치적 이슬람주의인 이크완 타입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보수적 민주주의로 규정된 새로운 정치노선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에르도안은 정치적으로는 중도우파로 여겨지는 투르구트 외잘의 길을 지향하겠다고 약속했다.
대다수 터키 국민들과 전세계의 터키 지지자들은 이러한 에르도안의 개혁을 ‘이슬람 가치와 민주주의 가치를 결합시킨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터키의 이러한 정치적 지향은 2010~2011년까지 이어지며 정의개발당과 터키 앞날을 밝게 전망했다. 당시 터키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신청했는데 무려 151개국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에르도안이 정의개발당에서 독재적 위치를 확보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에르도안 세력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강제하려는 징후를 나타냈고 유럽연합을 지향하려던 본래 목표는 중단됐다. 정부에 비판적이던 언론들은 많은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잠시 건설적이고 신중하던 외교정책은 남미 차베스나 이란의 아마드네자이드 같은 무모한 스타일로 대체됐다.
2010년 정의개발당 이스탄불 지부 의장은 과거 10여 년간 자신들과 함께했던 민주주의자들 및 자유주의자들과 향후 10년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결별을 선언했다. 2013년 5~6월 발생한 유명한 ‘게지시위’는 터키의 민주주의 발전에 전환점이 됐다. 이 사건은 터키 중심가의 녹색공원 지대에 쇼핑몰을 건립하는 프로젝트를 막기 위한 시민들의 시위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위로는 정의개발당의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 정책에 맞서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을 뿐이었다. ‘게지시위’와 함께 정의개발당의 민주주의도 같이 끝나 가는 상황에서 장관 4명의 사임으로 결말난 거대한 부패스캔들(2013년 12월 17~25일)이 발생하면서 정의개발당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됐다.
트위터·유튜브 금지시키기도
에르도안은 ‘게지시위’와 부패사건에 대한 수사가 국제적으로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수많은 증거로 인해 반대자들의 주장을 잠재우는 데 실패했다. 결국 에르도안은 사법부와 언론을 압박해서 이 스캔들을 은폐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 그 결과 지난 몇 년 동안 언론에서 정부를 비판하거나 부패사건에 대해 보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되었다.
저명한 언론인들을 포함해 정부에 비판적인 수백 명의 저널리스트들이 해고되었고, 막대한 금액의 (탈세) 벌금이 부과됐으며 이들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루어졌다. 에르도안은 몇몇 언론사에 대한 보이콧을 요청했고, 저널리스트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등 채찍을 가했다. 반면 친정부적인 저널리스트들에겐 특별인터뷰와 해외여행 등 당근을 제공했다.
에르도안 정부는 심지어 트위터와 유튜브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로 인해 터키는 한동안 북한·중국·이란 등과 동급(同級)의 언론탄압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교차소유 허용 덕분에 쉽게 언론장악
정의개발당의 언론탄압 방식은 언론의 소유구조와 사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것은 터키 특유의 교차소유에 대해 제한을 두지 않는 법률 때문에 가능했다.
터키에서는 교차소유에 대한 아무런 제한이 없어 언론사에 타(他) 분야의 자본이 투입돼 거대 언론지주회사 지배가 가능하다. 이 지주회사들은 정부와의 관계에서 계약 및 규제 등으로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히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저널리스트를 해고하라는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야만 했다.
이로 인해 터키 언론사들은 2001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간접적 통제 아래 놓이게 됐다. 또 한편으로 정의개발당 집권 기간 동안 정부는 관급(官給)공사 등 관청 주도 입찰을 통해 사업을 크게 성장시킨 기업가들에게 언론사를 떠넘겼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해 정의개발당은 현재 터키 전체 언론 중 80% 이상에 대해 직간접적인 통제권을 갖고 있다.
정부가 비판언론을 잠재우는 수단은 기본적으로 과거와 현재가 비슷하다. 그러나 사용의 범위와 강도는 과거 일당독재 시대(1925~50년) 때와 비견될 정도이다. 1980년대에 시작한 대기업의 언론사 교차소유는 이 같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거대기업들이 언론사를 소유할 경우 많은 혜택과 이익이 따라붙었다. 다른 분야 투자나 발전에 크게 유리해졌다.
즉 이들 대기업은 언론사를 통해서 정부자산의 민영화와 공공입찰에서 상당한 이익을 챙겼다. 이들 기업의 (터키 수도인) 앙카라 지사장들은 회사의 돈벌이를 위해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정부는 기업가들에게 경쟁입찰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언론 부문에 진출하도록 부추겼다. 자연히 이들 기업인은 정부의 요구에 순응하기 마련이다.
정의개발당은 주로 중도좌파 성향의 매체에 대해 언론통제를 가했다. 종교자유와 관련된 사안 및 정부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던 주류언론사들이 정부의 통제대상권에 든 것이다.
정부는 이 언론사들의 주인을 교체하기 위해 터키예금보험기금(TMSF)을 활용했다. TMSF의 권한 중 하나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 진 채무를 상환토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 기관은 때때로 자금사정이 어려운 기업의 재산을 몰수하는 한편 가능한 한 이를 빨리 매각토록 했다. 1990년대 대부분의 주요 언론사들은 은행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2001년의 금융위기 때 파산했고 정부는 언론사를 포함한 이들 은행의 자산을 몰수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TMSF와 정부는 언론계 판도를 장악해 버린 것이다.
대통령 사위 형제도 언론재벌
에르도안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언론매체도 잇달아 설립했다. 그 첫 프로젝트가 스타미디어그룹이었다. 1999년 우잔그룹에 의해서 창간된 《스타데일리》는 파산 후 TMSF에 몰수됐다. 이후 《스타데일리》는 다시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기업가에게 매각됐다. 정부는 거기에 새로운 텔레비전 채널인 ‘카날24’를 스타미디어그룹에 흡수시켰다.
지금까지 몇 번의 소유권 변경이 있었지만 이 그룹은 계속해서 정부의 대국민 홍보를 위한 주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스타데일리》처럼 사바-ATV그룹도 2007년 파산으로 인해서 TMSF가 인수했다. 2008년 투르쿠아즈미디어라고 다시 이름을 바꾼 이 그룹은 11억 달러에 칼릭 지주회사로 매각되었다. 당시에 이 매각은 큰 논란이 되었다.
왜냐하면 칼릭 지주회사는 4억5000만 달러만 지급했고 그 나머지는 국영은행인 바키뱅크와 할크뱅크의 대출금으로 충당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지주회사의 CEO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사위인 베라트 알바이라크였다. 이 그룹의 언론 부문은 알바이라크의 형제가 대표를 맡고 있었다.
2개의 전국 TV채널과 1개의 디지털 유료TV 운영사, 그리고 2개의 일간신문을 보유하고 있는 쿠로바(kurova) 미디어그룹도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소유권이 변경되었다. TMSF는 2013년 쿠로바미디어그룹의 모기업이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자 이 그룹의 통제권을 차지했다. 그후 일간신문 2곳, 디지털 유료TV 및 TV채널 중 하나가 친정부 기업에 매각되었다.
에르도안이 방송사 사장에게 직접 삭제 압력
2013년 12월 25일의 뇌물수수 조사는 에르도안 정부하에서의 정언(政言)유착을 잘 보여준다. 이 전화도청에 따르면 당시에 총리였던 에르도안은 수차례 특정 언론 취재에 대해 검열하도록 지시했다. 게지시위가 일어났을 때 녹음된 것으로 알려진 전화기록에서도 에르도안이 모로코 방문 시 야당지도자의 발언을 인용한 뉴스 자막을 삭제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에르도안의 요청에 대해 방송사 사장은 “바로 지금 삭제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이 녹음내용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에르도안은 방송사 사장에게 전화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방송사 사장이 자신에 대한 비방을 막기 위해서 이 뉴스를 삭제했다”고 주장했다.
에르도안은 토크쇼 게스트의 발언에 불만을 제기하거나 정부 부패와 관련한 의회토론 생방송을 중지시키도록 압력을 가했다. 당시 이 방송국 수석편집자의 녹음된 목소리는 에르도안의 방송 장악이 얼마나 극심한지 잘 보여준다.
“언론의 명예가 짓밟히고 있습니다. 매일 여러 곳에서 지시가 내려옵니다. 과연 원하는 뉴스를 보도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공기업, 親정부 신문에 편향적 광고집행
터키의 과거 정부들은 때때로 광고를 이용해서 신문사들의 충성을 유도했다. 광고는 발행부수가 적은 신문사들에 매우 중요한 수입원이다. 정부도 역시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서 언론의 충성을 이끌어내려 했다. 2014년 의회의 질의에 불렌트 아린크 부총리는 “2014년 1분기 친정부 신문사들에 제공된 광고료가 630만 달러”라고 답변했다.
2013년 평균 발행부수가 32만2879부이던 《사바(Sabah)신문》이 5억6700만 달러로 가장 많은 광고 수익을 냈고 발행부수가 5만1560부에 불과한 《아킷신문》은 4억2500만 달러를 받았다. 언론사에 광고 할당 책임을 맡고 있는 독립적 기관인 언론공시기관(BIK)은 법원의 판결도 받지 않고 일부 신문사에 대한 광고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2014년 7월 대통령 선거가 시행되기 직전 BIK는 8일 동안 《타라프신문》에 대한 광고를 중단했고 《소즈쿠》의 경우 7일간, 《자만신문사》와 《솔신문》의 경우는 1일간 광고게재를 중단했다. 이 같은 상황은 공기업 광고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2014년 상반기 ‘닐센컴퍼니 애드엑스’ 보고서는 터키 공기업들이 광고게재를 정할 때 얼마나 편향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조사에 포함된 18개 전국단위 신문 중에서 가장 많은 공기업 광고를 받은 상위 3개의 신문은 친정부 성향의 《사바》 《스타》 《밀리예트데일리》였다. 하위 5개는 모두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들이었다. 《자만신문》의 발행부수는 《사바》보다 3배 더 많지만, 광고집행 금액은 《사바》가 《자만》보다 무려 22배 더 많았다.⊙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1터키리라는 원래 한화로 250원쯤이었다. 1터키리라를 사려면 250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게 지금은 175원쯤으로 떨어졌다. 나는 하루 50유로씩을 바꿔 필요한 비용에 충당했는데 1유로당 5.2이던 환율이 다음 날은 5.7, 둘째 날은 6.2 하는 식으로 매일 오르더니 나중에는 6.85까지 치솟는 것이었다. 50유로를 바꾸면 260터키리라를 받던 게 340터키리라로 변한 것인데 이는 점심식사 한끼 값으로 충분할 만큼의 액수가 매일같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화수분’이라는 말이 있다. 물건을 담아 두면 끝없이 새끼를 쳐 내용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설화 속의 단지를 이르는데 외환위기라는 것이 외화 보유자에겐 화수분이었을 것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한국인이 고통당할 때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귀국해 보니 버버리를 사려는 터키행 행렬이 이어진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한국 같았으면 이런 식의 외환위기가 왔을 때 언론부터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동안의 정책 등을 비판하고 대책을 촉구하며 책임자의 인책(引責)을 요구하는 게 상례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그랬다. 그런데 터키 이스탄불 남부의 최고 번화가인 술탄 아흐메드 광장이나 탁심 광장은 관광객들로 붐빌 뿐이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볼 수 없었다.
터키 언론은 왜 침묵하는 것일까? 술탄 아흐메드 광장이나 탁심 광장 한복판에 배치해 놓은 장갑차와 군 병력 때문일까? 최근 몇 년 사이 터키에서 일어난 일을 일지(日誌) 식으로 정리해 보자.
언론인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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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언론탄압이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적(政敵)인 이슬람 사상가 펫훌라흐 귈렌과 관련된 숙청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날 경찰이 귈렌 측 언론인을 대거 검거한 것을 “정상화 과정의 일부”라며 귈렌 측 세력 숙청을 계속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는 또 언론탄압을 비판하며 터키에 언론자유 수호를 촉구한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이런 거짓말에 신경 쓰지 말라”며 “EU는 자기네 일이나 신경 쓸 것”이라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이슬람 사상가 펫훌라흐 귈렌은 2002년 이슬람주의에 뿌리를 둔 정의개발당(AKP) 집권 이후 세속주의 세력에 함께 대항했지만 2013년 12월 부패 수사를 계기로 완전히 적으로 돌아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에 망명 중인 귈렌이 검찰과 경찰 내 자기 세력을 동원해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며 검경 지휘부 내 귈렌 세력 숙청에 나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2일 한 연설에서 “지난해 12월 작전은 부패 수사가 아니라 쿠데타 음모”라며 “그들이 나를 체포하려는 계획이 준비됐고 정부를 전복시킨 이후의 내각 명단까지 만들었다”고 말했다. ‘제마트(공동체)’로도 불리는 귈렌의 추종 세력은 경찰과 사법부, 언론계, 교육계 등 광범위하게 걸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전날 언론인 등 검거를 폭로했던 ‘푸아트 아브니’라는 가명의 내부고발자는 귈렌 측 언론뿐만 아니라 주류 언론도 검거 대상이라고 주장해 숙청 작업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했다. 그는 모든 작전은 에르도안이 지시하고 있으며, 에르도안이 검거 대상에 귈렌이 포함되지 않자 그를 넣으라고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또 작전은 25일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대 일간지, 정부 통제 아래 들어가
다음은 2016년 4월 26일에 보도된 내용이다. 골자는 하루 발행부수가 65만부로 터키 최대 일간지인 《자만》이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됐다는 내용이다. 우리 식으로 비유하자면 《조선일보》가 정부의 통제 속에서 편집권을 상실했다는 것과 흡사하다.
터키 정부가 자국 언론사 130여개에 폐쇄 조치를 단행했다. 쿠데타 연루 혐의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반(反)정부 성향을 띠던 언론들에 대한 탄압에 나섰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스탄불 법원은 반정부 성향을 보여온 일간지인 《자만》에 대한 법정관리 결정을 내리고 관리인을 지명했다. 당일 밤 관리인의 본사 진입을 위해 경찰력이 동원됐다.
기자와 신문 지지자들을 향해 최루탄과 플라스틱 탄환, 물대포가 발사됐다. 법원은 별다른 설명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터키 검찰의 “《자만》과 계열사들이 테러리스들을 도왔다”는 주장을 수용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에 대해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총리는 “정치적 결정이 아닌 법적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3~4년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권이 보여온 특성”이라고 분석했다. 비판언론은 탄압하고, 한때 동지였다 이젠 정적이 된 이슬람 사상가 펫훌라흐 귈렌과 그 추종자들을 몰아내 왔다는 것이다. 《자만》은 귈렌과 밀접한 관계다. 현재 기자 30여 명 정도가 투옥 중이며 터키인 1800명 정도가 대통령 모욕죄로 기소된 상태다.
《자만》 편집장 압둘하미트 빌리치는 “지금 이 나라 민주주의가 암흑의 시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빌리치 편집장이 만든 마지막 호인 5일 자는 “터키 자유 언론엔 치욕의 날”이라고 썼다. 이후엔 기자들의 서버 접근이 차단됐다. 빌리치와 주요 칼럼니스트가 해고됐다. 일부 기자는 “신문의 온라인 아카이브까지 삭제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언론자유지수, 180개국 중 157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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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칭한 프랑스 잡지 《르 포인트》. |
이에 앞서 터키 정부는 휴리예트와 예니사파크 등 터키 유력 언론에서 활동한 여성 기자 나즐로 을르작 등 언론인 47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터키 당국에 체포된 언론인 중에는 평상시 귈렌의 종교적 신념에 동조하지 않았던 인물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터키 정부가 쿠데타 진압을 기회로 사실상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개헌 추진에 반대 입장을 보여 왔던 언론인을 체포하고 해당 언론사를 폐쇄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이날 논평을 통해 “터키 정부가 쿠데타 잔류세력 소탕에 나선 것은 이해하지만 언론인 체포가 늘어나는 추세는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전해지는 보도만으로 보면 터키는 언론이 가장 위축된 국가다. 터키는 ‘세계 최대의 언론인 감옥’으로 불릴 정도인데 실제로 현재 터키에서 수감 중인 언론인은 약 170명이다. 그런가 하면 언론자유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올해 터키는 180개 국가 가운데 157번째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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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터키를 만든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의 동상 주변으로 학생들이 모여 있다. 터키는 군부의 영향력이 강해 언론을 정부가 시책을 펴는 데 보조 도구로 인식하는 성향이 강하다. |
즉 터키에서는 군부(軍部)가 중요한 사항이 있을 때마다 개입해 온 게 관례였다. 이로 인해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정당과 시민사회 및 언론이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는 데 실패했다. 반(半) 권위주의적인 정치제도로 부분적 독립과 제한된 자유만 누리는 취약한 언론기관이 출현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1990년대 초까지 정부 통제하에 있었다.
유일하게 개혁적인 지도자로 알려진, 총리 겸 대통령이었던 투르구트 외잘이 군부 쿠데타 세력이 1980년 자행한 국가에 의한 방송장악을 1989년 철회하고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길을 열었다. 외잘은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면서 터키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기관의 부당한 권리침해에 대해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터키는 외잘의 개혁정책으로 시민의 자유와 중산층의 경제적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면서 민주주의 국가로 도약할 발판을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잘이 1993년 사망한 이후 민주화는 다시 뒷걸음질쳤다. 급기야 정치 불안정과 내부 갈등이 1997년 다시 쿠데타로 연결됐고 2000년대 초반의 경제위기 등으로 터키는 10년이란 세월을 허비해야 했다.
그 이후 등장한 에르도안과 귈렌이 지휘하는 정의개발당(AKP)의 유럽연합에 정회원으로 가입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는 터키 개혁에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 터키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민군(民軍) 관계를 개선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등 수많은 개혁정책을 다시 추진했다. 터키는 이 과정에서 서구와 이슬람 세계에서 떠오르는 스타로 주목 받았다.
에르도안 정권의 독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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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가지는 매우 서구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언론자유의 지수는 매우 낮다. |
대다수 터키 국민들과 전세계의 터키 지지자들은 이러한 에르도안의 개혁을 ‘이슬람 가치와 민주주의 가치를 결합시킨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터키의 이러한 정치적 지향은 2010~2011년까지 이어지며 정의개발당과 터키 앞날을 밝게 전망했다. 당시 터키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신청했는데 무려 151개국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에르도안이 정의개발당에서 독재적 위치를 확보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에르도안 세력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강제하려는 징후를 나타냈고 유럽연합을 지향하려던 본래 목표는 중단됐다. 정부에 비판적이던 언론들은 많은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잠시 건설적이고 신중하던 외교정책은 남미 차베스나 이란의 아마드네자이드 같은 무모한 스타일로 대체됐다.
2010년 정의개발당 이스탄불 지부 의장은 과거 10여 년간 자신들과 함께했던 민주주의자들 및 자유주의자들과 향후 10년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결별을 선언했다. 2013년 5~6월 발생한 유명한 ‘게지시위’는 터키의 민주주의 발전에 전환점이 됐다. 이 사건은 터키 중심가의 녹색공원 지대에 쇼핑몰을 건립하는 프로젝트를 막기 위한 시민들의 시위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위로는 정의개발당의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 정책에 맞서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을 뿐이었다. ‘게지시위’와 함께 정의개발당의 민주주의도 같이 끝나 가는 상황에서 장관 4명의 사임으로 결말난 거대한 부패스캔들(2013년 12월 17~25일)이 발생하면서 정의개발당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됐다.
에르도안은 ‘게지시위’와 부패사건에 대한 수사가 국제적으로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수많은 증거로 인해 반대자들의 주장을 잠재우는 데 실패했다. 결국 에르도안은 사법부와 언론을 압박해서 이 스캔들을 은폐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 그 결과 지난 몇 년 동안 언론에서 정부를 비판하거나 부패사건에 대해 보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되었다.
저명한 언론인들을 포함해 정부에 비판적인 수백 명의 저널리스트들이 해고되었고, 막대한 금액의 (탈세) 벌금이 부과됐으며 이들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루어졌다. 에르도안은 몇몇 언론사에 대한 보이콧을 요청했고, 저널리스트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등 채찍을 가했다. 반면 친정부적인 저널리스트들에겐 특별인터뷰와 해외여행 등 당근을 제공했다.
에르도안 정부는 심지어 트위터와 유튜브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로 인해 터키는 한동안 북한·중국·이란 등과 동급(同級)의 언론탄압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교차소유 허용 덕분에 쉽게 언론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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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의 하나인 탁심 광장 중앙에 군 장갑차가 배치돼 있다. |
터키에서는 교차소유에 대한 아무런 제한이 없어 언론사에 타(他) 분야의 자본이 투입돼 거대 언론지주회사 지배가 가능하다. 이 지주회사들은 정부와의 관계에서 계약 및 규제 등으로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히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저널리스트를 해고하라는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야만 했다.
이로 인해 터키 언론사들은 2001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간접적 통제 아래 놓이게 됐다. 또 한편으로 정의개발당 집권 기간 동안 정부는 관급(官給)공사 등 관청 주도 입찰을 통해 사업을 크게 성장시킨 기업가들에게 언론사를 떠넘겼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해 정의개발당은 현재 터키 전체 언론 중 80% 이상에 대해 직간접적인 통제권을 갖고 있다.
정부가 비판언론을 잠재우는 수단은 기본적으로 과거와 현재가 비슷하다. 그러나 사용의 범위와 강도는 과거 일당독재 시대(1925~50년) 때와 비견될 정도이다. 1980년대에 시작한 대기업의 언론사 교차소유는 이 같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거대기업들이 언론사를 소유할 경우 많은 혜택과 이익이 따라붙었다. 다른 분야 투자나 발전에 크게 유리해졌다.
즉 이들 대기업은 언론사를 통해서 정부자산의 민영화와 공공입찰에서 상당한 이익을 챙겼다. 이들 기업의 (터키 수도인) 앙카라 지사장들은 회사의 돈벌이를 위해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정부는 기업가들에게 경쟁입찰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언론 부문에 진출하도록 부추겼다. 자연히 이들 기업인은 정부의 요구에 순응하기 마련이다.
정의개발당은 주로 중도좌파 성향의 매체에 대해 언론통제를 가했다. 종교자유와 관련된 사안 및 정부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던 주류언론사들이 정부의 통제대상권에 든 것이다.
정부는 이 언론사들의 주인을 교체하기 위해 터키예금보험기금(TMSF)을 활용했다. TMSF의 권한 중 하나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 진 채무를 상환토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 기관은 때때로 자금사정이 어려운 기업의 재산을 몰수하는 한편 가능한 한 이를 빨리 매각토록 했다. 1990년대 대부분의 주요 언론사들은 은행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2001년의 금융위기 때 파산했고 정부는 언론사를 포함한 이들 은행의 자산을 몰수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TMSF와 정부는 언론계 판도를 장악해 버린 것이다.
대통령 사위 형제도 언론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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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서 이집션 바자르와 함께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그랜드 바자르의 내부다. 이곳은 외환위기 이후보다 좋은 조건으로 외화를 사고 팔려는 사람들의 눈치작전이 극심하다. |
지금까지 몇 번의 소유권 변경이 있었지만 이 그룹은 계속해서 정부의 대국민 홍보를 위한 주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스타데일리》처럼 사바-ATV그룹도 2007년 파산으로 인해서 TMSF가 인수했다. 2008년 투르쿠아즈미디어라고 다시 이름을 바꾼 이 그룹은 11억 달러에 칼릭 지주회사로 매각되었다. 당시에 이 매각은 큰 논란이 되었다.
왜냐하면 칼릭 지주회사는 4억5000만 달러만 지급했고 그 나머지는 국영은행인 바키뱅크와 할크뱅크의 대출금으로 충당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지주회사의 CEO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사위인 베라트 알바이라크였다. 이 그룹의 언론 부문은 알바이라크의 형제가 대표를 맡고 있었다.
2개의 전국 TV채널과 1개의 디지털 유료TV 운영사, 그리고 2개의 일간신문을 보유하고 있는 쿠로바(kurova) 미디어그룹도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소유권이 변경되었다. TMSF는 2013년 쿠로바미디어그룹의 모기업이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자 이 그룹의 통제권을 차지했다. 그후 일간신문 2곳, 디지털 유료TV 및 TV채널 중 하나가 친정부 기업에 매각되었다.
에르도안이 방송사 사장에게 직접 삭제 압력
2013년 12월 25일의 뇌물수수 조사는 에르도안 정부하에서의 정언(政言)유착을 잘 보여준다. 이 전화도청에 따르면 당시에 총리였던 에르도안은 수차례 특정 언론 취재에 대해 검열하도록 지시했다. 게지시위가 일어났을 때 녹음된 것으로 알려진 전화기록에서도 에르도안이 모로코 방문 시 야당지도자의 발언을 인용한 뉴스 자막을 삭제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에르도안의 요청에 대해 방송사 사장은 “바로 지금 삭제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이 녹음내용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에르도안은 방송사 사장에게 전화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방송사 사장이 자신에 대한 비방을 막기 위해서 이 뉴스를 삭제했다”고 주장했다.
에르도안은 토크쇼 게스트의 발언에 불만을 제기하거나 정부 부패와 관련한 의회토론 생방송을 중지시키도록 압력을 가했다. 당시 이 방송국 수석편집자의 녹음된 목소리는 에르도안의 방송 장악이 얼마나 극심한지 잘 보여준다.
“언론의 명예가 짓밟히고 있습니다. 매일 여러 곳에서 지시가 내려옵니다. 과연 원하는 뉴스를 보도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공기업, 親정부 신문에 편향적 광고집행
터키의 과거 정부들은 때때로 광고를 이용해서 신문사들의 충성을 유도했다. 광고는 발행부수가 적은 신문사들에 매우 중요한 수입원이다. 정부도 역시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서 언론의 충성을 이끌어내려 했다. 2014년 의회의 질의에 불렌트 아린크 부총리는 “2014년 1분기 친정부 신문사들에 제공된 광고료가 630만 달러”라고 답변했다.
2013년 평균 발행부수가 32만2879부이던 《사바(Sabah)신문》이 5억6700만 달러로 가장 많은 광고 수익을 냈고 발행부수가 5만1560부에 불과한 《아킷신문》은 4억2500만 달러를 받았다. 언론사에 광고 할당 책임을 맡고 있는 독립적 기관인 언론공시기관(BIK)은 법원의 판결도 받지 않고 일부 신문사에 대한 광고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2014년 7월 대통령 선거가 시행되기 직전 BIK는 8일 동안 《타라프신문》에 대한 광고를 중단했고 《소즈쿠》의 경우 7일간, 《자만신문사》와 《솔신문》의 경우는 1일간 광고게재를 중단했다. 이 같은 상황은 공기업 광고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2014년 상반기 ‘닐센컴퍼니 애드엑스’ 보고서는 터키 공기업들이 광고게재를 정할 때 얼마나 편향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조사에 포함된 18개 전국단위 신문 중에서 가장 많은 공기업 광고를 받은 상위 3개의 신문은 친정부 성향의 《사바》 《스타》 《밀리예트데일리》였다. 하위 5개는 모두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들이었다. 《자만신문》의 발행부수는 《사바》보다 3배 더 많지만, 광고집행 금액은 《사바》가 《자만》보다 무려 22배 더 많았다.⊙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