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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25〉 이태백의 〈인생길 험난하여라 제1수(行路難 第1首)〉

“여러 갈림길… 지금 나는 어디에”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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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 2014년 서울대 특별강연에서 ‘長風破浪會有時, 直挂雲帆濟滄海’ 인용
⊙ 이백의 〈山中對酌〉이 酒黨의 시라면 한국은 박목월의 〈나그네〉
중국 장유시에 있는 이백기념관 구내 청련지에 세워진 청년 시절의 이백상. 25세까지 살았던 이 일대에는 이백과 연관된 사적지가 30여 군데나 개발되어 있다.
  인생길 험난하여라 제1수
  이태백(차동영 번역)
 
  금잔에 맑은 술 한 말에 만 냥이고
  옥쟁반에 만 냥어치 진수성찬이네.
  잔 멈추고 젓가락 놓으니 먹지 못한 채
  칼 뽑아 사방 둘러보니 마음만 망연하구나.
  황하를 건너려니 얼음이 내를 가로막고
  태행산에 오르려 하니 눈이 하늘을 덮는구나.
  한가하게 푸른 시냇가에서 낚시나 드리우다
  문득 다시 배 타고 꿈꾸면 장안일세.
  인생길 어렵다, 어려워!
  여러 갈림길이 있는데 지금 나는 어디에 와 있는가?
  큰바람을 타고 힘껏 파도를 헤쳐나갈 때가 오면
  곧 구름 돛 곧게 올리고 푸른 바다를 건너가리다.

 
 
  行路難 第1首
  李太白
 
  金樽淸酒斗十千,玉盤珍羞直萬錢
  停杯投箸不能食,拔劒四顧心茫然
  欲渡黃河冰塞川,將登太行雪暗天
  閑來垂釣碧溪上,忽復乘舟夢日邊
  行路難! 行路難! 多岐路 今安在?
  長風破浪會有時, 直挂雲帆濟滄海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는 이태백(李太白·701~762). 모함과 참소로 장안(長安)을 떠나야 했던 그는 ‘인생길 어렵다, 어려워!’를 연발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여러 갈림길이 있는데 지금 나는 어디에 와 있는가(多岐路 今安在)’라고.
 
  살다 보면 지금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이 길이 제대로 된 길인지 반문할 때가 있다.
 
  2014년 7월 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대를 찾아 한중관계에 대해 특별강연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행로난 제1수〉의 마지막 행인 ‘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를 인용했다.
 
  “우호 협력의 돛을 함께 달고 윈 윈의 방향으로 항해한다면 큰바람을 타고 힘껏 파도를 헤쳐나가듯 험한 국제 정세를 헤치고 번영의 미래로 나아갈 것입니다.”
 
  시진핑은 이태백의 시로 한껏 호기를 부렸는데 중국 권력층들은 당시(唐詩)를 곧잘 인용한다. 당시가 바로 그들 역사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관작루는 중국 산시성(山西省) 영제시(永濟市) 서쪽 15km 포주진(浦州鎭)에 있다. 황새가 날아와 깃들었다 하여 관작루라 불렀다.
  요즘처럼 꽉 막힌 한중관계를 생각하면 왕지환(王之渙·688~742)의 〈관작루에 올라(登鸛雀樓)〉라는 시가 떠오른다. 왕지환은 이태백이 살았던 시대의 인물이다.
 
  하얀 햇빛이 스러지는 산(白日依山盡),
  누런 강물 흘러드는 바다(黃河入海流).
  천리 너머를 바라보려고(欲窮千里目),
  다시 한 층 누각을 오른다(更上一層樓).

 
  관작루는 중국 산시성(山西省) 영제시(永濟市) 서쪽 15km 포주진(浦州鎭)에 있는데 황새가 날아와 깃들었다 하여 관작루라 불렀다. 북주(北周) 시기(대략 557~581년), 대총재 우문호(宇文護)가 지은 3층 누각이다. 원래 군사 목적의 망루였다고 한다. 이 누각은 몽골이 금나라를 침공할 때(1222년) 전화로 소실되고 그 뒤 황하의 범람으로 기단마저 유실되었다. 왕지환의 이 시가 사람에게 애송되면서 새 누각이 세워졌다.
 
〈등관작루〉를 쓴 왕지환.
  지난 2013년 10월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이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 마련한 특별오찬 때 〈등관작루〉의 두 구절이 담긴 서예 작품을 선물 받았다. 두 구절은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였다.
 
  지영재가 편역한 《당시 낭송 천년의 시를 읊다-봄의 강, 꽃, 달, 밤》(을유문화사)에는 관작루 주변의 풍광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관작루 동남쪽 20km 밖에 중조산(中條山)(해발 1993m)이 있고 남남서 45km 밖에 화산(華山)(2437m)이 있으며 그 사이를 황하가 꺾어 흐른다. 그저 망망하여 수평선 너머 화산이 있지만 가물가물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누각을 한 층 더 오르면 시정(視程)이 늘어나 일대의 풍광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대기 오염 때문인지 관작루에 올라가도 화산을 보기 어렵다고 한다. 마치 오늘날의 한중관계를 연상시킨다.
 
 
  酒黨 시인 이백의 풍류와 한국의 酒四仙 혹은 四裸漢
 
  이백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은 고교 문학교과서(천재출판사, 지학사)에 실려 있다. 이 시는 칠언절구로 세속을 벗어난 자연 속의 한가로운 삶을 노래한다.
 
  내게 묻기를 무슨 뜻으로 푸른 산속에 사느냐고.(問余何事棲碧山)
  웃으며 대답 않으나 마음이 절로 한가로워(笑而不答心自閑)
  복숭아꽃 뜬 물은 아득히 흘러가니(桃花流水杳然去)
  이곳은 별다른 천지, 인간 세상이 아니라네.(別有天地非人間)

 
  이백은 장안으로 돌아가려는 미련을 벗어 던지고 세속에 미련이 없음을 자문자답한다. 이백은 정치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그의 제멋대로인 태도 때문에 권문귀족들의 모함을 받아 쫓겨나게 되었다. 이후 장안을 떠난 그는 긴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안사의 난(755년)으로 잠시 권력의 막료로 참여했지만 그것도 잠시, 옥살이를 하다가 친척의 빈객으로 얹혀살다가 병들어 죽고 말았다.
 
  이백의 〈산중대작(山中對酌)〉도 비슷한 시다. 산중에서 술판을 벌이자는 내용이다.
 
  두 사람이 대작하는데 산화는 피고(兩人對酌山花開)
  한 잔 한 잔 또 한 잔이라.(一杯一杯復一杯)
  나는 취해 잠자려 하니 그대는 돌아가게.(我醉欲眠卿且去)
  내일 아침 생각 있거든 거문고 안고 다시 오게나.(明朝有意抱琴來)

 
  남태우 중앙대 교수가 쓴 《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창조문화)에는 술에 대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웬만한 동서양의 주당(酒黨)들이 죄다 등장한다. 중국의 이백, 한국의 김삿갓과 황진이, 일본의 바쇼, 그리스의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미국의 헤밍웨이, 러시아의 톨스토이 등을 인류사 최고의 주당으로 꼽는다.
 

  20세기 초 식민지 조선의 문인들은 주로 술과 객기로 울분을 달랬다.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가 쓴 《명정(酩酊) 40년》에 〈백주에 소를 타고〉라는 글이 나온다. 한마디로 수주를 포함, ‘주사선(酒四仙)’ 혹은 ‘사나한(四裸漢)’의 이야기다. 공초(空超 吳相淳), 성재(誠齋 李寬求), 횡보(橫步 廉想涉)를 일컫는다.
 
  어느 날 공초·성재·횡보가 수주를 찾았다. 네 사람이 주머니를 다 털어도 불과 수삼원(數三圓), 그때 수삼원이면 보통 주객인 경우에는 3~4인이 해갈할 정도는 됐으나 ‘주4선’에겐 유불여무(有不如無·있으나 마나)였다.
 
  궁리 끝에 《동아일보》 송진우(宋鎭禹) 사장댁에 사람을 보내 “나중에 원고를 보낼 테니 50원 원고료를 미리 달라”고 했다. 1시간쯤 기다려 50원이 도착했다. 소주 한 말과 고기 안주로 온갖 객담과 문학담을 나눈다.
 
수주 변영로(왼쪽)와 공초 오상순.
  그런데 난데없이 소낙비가 쏟아졌다. 그때 옷을 홀랑 벗고 벌거숭이 나한이 되어 소를 잡아탔다. 객기 치고는 대단한 객기다. 다음은 《명정(酩酊) 40년》의 한 단락이다.
 
  〈…대취(大醉)한 사나한(四裸漢)들 광가난무(狂歌亂舞)를 하였다. (중략) 우리는 어느덧 언덕 아래 소나무 그루에 소 몇 필이 매여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번에는 누구의 발언이거나 제의이었던지 이제 와서 기억이 미상하나, 우리는 소를 잡아타자는 데 일치하였다. 옛날에 영척(甯戚·춘추시대 제나라 정치가-편집자)이가 소를 탔다고 하지만 그까짓 영척이란 놈이 다 무엇이냐? 그따위 것도 소를 탔는데 우린들 못 탈 배 어디 있느냐는 것이 곧 논리이자 동시에 자세이었다. 하여간, 우리는 몸에 일사(一絲) 불착(不着)한 상태로 그 소들을 잡아타고 유유히 비탈길을 내리고 똘물(소낙비로 해서 갑자기 생기었던)을 건너고 공자 모신 성균관을 지나서 큰 거리까지 진출하였다가 큰 봉변 끝에 장도(壯圖-市中까지 오려는)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p 34~35, 《명정 40년》)
 
 
  “우리나라 낭만시의 최고는 박목월의 〈나그네〉”(김종길)
 
시인 박목월.
  ‘술’ 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바로 박목월의 〈나그네〉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그네〉 전문

 
  조지훈의 〈완화삼(琓花衫)〉에 대한 화답시인 〈나그네〉는 3음보의 민요조 가락과 친근한 우리말 구사, 간결한 표현으로 체념과 달관의 나그네를 형상화한다. 이 시는 강나루→밀밭길→술→저녁놀로 시상이 발전하고 있는데 술이 재료인 ‘밀’에서 실제의 술인 ‘술 익는 마을’로, 그리고 익은 술빛을 연상하게 하는 ‘저녁놀’로 이미지가 확대된다. 또 ‘술 익는 마을’(서정)과 ‘타는 저녁놀’(서경)의 조화가 자연과 인간의 동화로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시인 김종길(金宗吉·1926~2017)은 〈나그네〉를 두고 “우리나라 낭만시의 최고”라고 칭했다.
 
  〈나그네〉와 함께 〈윤사월〉도 박목월 시의 절창 중 하나다.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윤사월〉 전문

 
  〈윤사월〉에서 윤사월(閏四月)은 4월에 든 윤달을 말한다. 계절로는 초여름. 태음력에서는 1년을 354일로 계산하는데 5년에 두 번꼴로 1년에 13개월이 된다. 1년이 13개월이 되는 해를 윤년이라 하고 윤월은 윤년에 드는 달을 말한다. 윤사월은 전해 가을에 추수한 곡식이 떨어지고 아직 보리를 추수하기 직전으로 춘궁기에 해당한다. 봄이 왔지만 가장 고통스런 시기다.
 
  송화 가루 날리는 정경을 눈먼 처녀는 볼 수가 없다. 비극적이다. 게다가 외딴 봉우리, 외딴 집에 산다. 윤사월이면 보릿고개를 견뎌야 하는 시기다. 고통스럽다. 그러나 시인은 슬픔을 비극적 아름다움으로 묘사한다. 꾀꼬리의 울음을 통해 ‘눈먼 처녀’는 윤사월의 고통스런 봄을 확인하는데 그것도 문설주에 귀를 대고 엿듣고 있다. 비록 아이러니 상황이지만 시는 매우 아름답고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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