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세계를 뒤흔든 21세기 시민혁명과 언론 ② 튀니지

“재스민 혁명 통해 얻은 언론 자유… 권력의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 감당해야”

글 : 김성훈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국민들, “민주화 과정에서 언론 역할 없었다”
⊙ 재스민 혁명 이후 언론의 자유 신장되고 정부 비판 가능해져
⊙ 민주화 이뤄졌으나 실업난·생활고 등으로 사회적 불만 폭발
⊙ “경제적인 문제 해결하지 않으면 튀니지 혁명 완수해 낼 수 없어”
재스민 혁명 7주년을 맞이한 지난 1월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 시내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2011년 1월 14일,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일어난 민주화 혁명은 벤 알리 독재 정권을 퇴진시키고 아랍권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튀니지 혁명은 튀니지의 국화(國花)인 재스민의 이름을 따 ‘재스민 혁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재스민 혁명이 일어난 지 7년의 시간이 흘렀다. 혁명 이후 튀니지 사회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혁명 전후 언론 환경의 변화, 재스민 혁명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튀니지 현지를 방문했다.
 
  지난 4월 19일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 위치한 카르타고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이름에 과거 로마와 지중해 패권(覇權)을 두고 다툰 ‘카르타고’가 들어가 있어 거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내 지방 공항과 규모가 비슷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튀니스의 중심지인 하비브 부르기바 광장으로 향했다. 튀니지의 택시는 폴크스바겐, 르노, 시트로앵, 푸조 등의 유럽산 경차로 모두 노란색이었다. 밖에서 봤을 때 내부가 매우 깔끔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타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내부는 폐차(廢車) 수준이었다. 유럽에서 폐기되기 직전의 차량을 수입해 택시로 쓰기 때문이었다. 차창 밖의 튀니지 모습은 여느 이슬람 국가들보다 자유로웠다. 건국 당시부터 세속주의를 표방했고, 여성의 권리를 높게 인정했기에 튀니지 여성 상당수는 이슬람 전통 의상을 착용하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했다.
 
  우리의 ‘광화문광장’과 같은 튀니스 중심부 하비브 부르기바 광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건 튀니지의 초대 대통령 하비브 부르기바의 동상이었다. 하비브 부르기바 대통령은 1957년부터 1987년까지 30년간 독재 통치를 했음에도 프랑스 식민 통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튀니지를 건국했다는 점에서 튀니지의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었다. 동상 앞에서 만난 튀니지 교육부의 하센 벤 슬리만 국장은 부르기바 대통령의 동상을 가리키며 “튀니지의 초대 대통령인 부르기바는 독립운동가이자 건국자로서 존경받는 지도자 중의 한 명”이라고 설명했다. 부르기바는 1987년 당시 총리였던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의 권력이 강해짐에 따라 대통령직을 사실상 빼앗기듯 넘겨준다. 이후 2011년 재스민 혁명 전까지 23년간 벤 알리의 독재 통치가 이어지게 된다.
 
 
  재스민 혁명 7주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 열려
 
칼릴 벤 이브라힘 《샤베하(Assabah)》 정치부 기자.
  하비브 부르기바 광장은 자유롭고 평온해 보였지만 광장 중앙에 바리케이트가 설치돼 있고 도시 곳곳에 무장한 경찰들이 서 있었다. 현지 경찰은 2015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가 일어나고 올해 초에는 광장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면서 도심의 경비가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재스민 혁명 7주년이었던 지난 1월 7일부터 14일 사이 하비브 부르기바 광장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있었다. 시위 과정에서 1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800여 명이 체포됐다. 광장을 메운 수천 명의 시위대는 “일자리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라”고 외쳤다. 재스민 혁명은 튀니지에 민주화를 가져왔지만 경제는 오히려 악화된 상태다. 튀니지의 실업률은 12%, 대졸자 등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의 실업률은 30.3%에 달한다. 물가는 혁명 이후 매년 10%씩 치솟았다. 경제 위기에 처한 튀니지는 2015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28억 달러(약 3조130억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았으나 경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튀니지 정부는 IMF의 긴급조치 요구에 올해 초 공무원 채용 제한, 조기 퇴직, 임금 동결 등의 긴축 방안과 세금 인상안을 내놓았다. 이에 실업난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튀니스 시내에는 실직한 청·장년들이 카페나 거리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거리에서 말을 걸어오며 빵값이나 음료수값을 요구하는 이들도 종종 마주쳤다.
 
  벤 알리 정권 당시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튀니지 내륙 도시인 시디부지드에서 30년간 노점상을 운영해 온 모세프 씨는 “벤 알리 때 비록 자유는 없었지만 물가도 낮고 경제는 훨씬 좋았다. 먹고살기 힘든데 자유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했다. 시디부지드 거리에서 만난 대학생 에이먼(23) 씨도 “고등학생 시절 재스민 혁명에 참여해 벤 알리 정권을 몰아내는 데 동참했지만 벤 알리 정권 당시가 더 살기 좋았다”고 말했다.
 
  혁명이 일어나는 데 튀니지 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으며 혁명 이후 언론 환경은 어떻게 변했을까. 튀니지 주요 일간지 《샤베하(Assabah)》(아랍어판 신문, 불어판은 《르톰(LE TEMPS)》)의 정치부 기자 칼릴 벤 이브라힘(36)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샤베하》는 62년 역사를 가진 튀니지에서 가장 오래된 매체로 중도좌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일간지다. 이브라힘 기자는 “재스민 혁명은 아직 미완성이고 진행 중에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혁명 이전, 보도지침 존재”
 
  — 재스민 혁명은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 소식이 페이스북을 통해 전파되면서 촉발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혁명이 일어나는 데 기성 언론이 한 역할은 뭡니까.
 
  “당시 기성 언론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신다면 역할을 안 한 것이 아니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벤 알리 정권은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내렸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없었고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모하메드 부아지지(사망 당시 26세)는 경제 악화로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시디부지드에서 과일 노점상을 했다. 부아지지는 노점 단속을 하던 경찰에게 팔고 있던 과일을 모두 빼앗겼고 민원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아지지는 결국 2010년 12월 17일 지방청사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했고 2011년 1월 4일에 숨지고 만다. 이 소식이 페이스북을 통해 전파됐고 분노한 튀니지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게 됐다. 재스민 혁명이 격화되자 벤 알리는 2011년 1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가며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 혁명 이후 언론 보도의 자유가 증가했나요.
 
  “표현의 자유가 주어졌고 많은 언론사들이 생겨났습니다. 이제 대통령, 정부, 장관, 의회 등을 향해 비판할 수 있고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 자유를 얻은 언론사들이 권력의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민간 언론이 있지만 여전히 정부 편에서 일하는 언론들도 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샤베하》 《르톰》은 정부를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 정부를 비판할 경우 정부의 압력이나 제재를 받지 않나요.
 
  “혁명 이후에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우리 언론사는 혁명 이전에는 벤 알리의 친척인 사히리 마드리의 소유였습니다. 그가 혁명 이후 해외로 도망을 가서 현재는 언론사가 정부에 속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재정 지원은 받고 있지 않습니다. 100% 표현의 자유를 갖기 위해 정부 소유임에도 재정 지원을 받지 않고 있는 겁니다.”
 
  — 언론의 자유를 위해 더 개선됐으면 하는 점은 뭡니까.
 
  “현재 튀니지의 가장 큰 당면 과제는 경제 문제입니다. 경제 문제가 언론을 포함, 모든 분야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외부 투자가 늘어나고 경제가 활성화돼야 합니다.”
 
 
  “혁명의 가장 큰 수혜자는 언론”
 
무스타파 카마리 전 주한 튀니지 대사.
  주 튀니지 한국대사관의 소개로 주한 튀니지 대사(2007~2010년)였던 무스타파 카마리 전 대사를 만날 수 있었다. 카마리 전 대사는 벤 알리 정권하에서 관보(官報) 역할을 했던 일간지 《라 프레스(LA PRESSE)》, 민간지였던 《르톰》, 《튀니지국영라디오(ERTT)》의 사장까지 했던 언론계 중진 인사다. 현재는 저술 활동을 하면서 현지 언론사에 한국과 관련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카마리 전 대사는 “벤 알리 정권 당시에 언론 활동의 제약은 있었지만 언론이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 벤 알리 정권하에서 언론사 사장까지 했습니다.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는 데 기성 언론이 기여한 바가 없다는 비판이 있는데요.
 
  “혁명 당시 크진 않았지만 언론은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혁명의 가장 큰 수혜자는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혁명을 통해 언론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 관변지였던 《라 프레스》와 민간지인 《르톰》 두 곳에서 모두 일했습니다. 벤 알리 정권하에서 관변지와 민간지의 보도 행태에 차이가 있었나요.
 
  “저는 《르톰》에서 사장까지 했는데요. 《르톰》은 벤 알리 정권하에서도 민간지로서 정부 비판을 했습니다. 시대가 어렵다 보니 충분하진 못했지만 개혁과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꾸준히 알려 왔습니다. 반면에 《라 프레스》 같은 경우는 관변지로서 정부 입장을 대변했던 게 사실입니다. 현재는 아니지만요.”
 
  — 관변지나 민간지 구분 없이 정부의 입장만 대변했다는 비판이 있는데요.
 
  “혁명 이전에는 언론이 사회 중심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문제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는 사회의 중심부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 벤 알리 정권 당시에 실제로 보도 통제나 보도 지침이 있었습니까.
 
  “‘이 기사는 쓰지 마라’는 식의 금지 지침은 없었고 ‘이런 유의 기사를 쓰라’는 지침은 있었습니다. 일부 언론사는 정권의 요구를 수용했지만 언론사가 자체 판단에 따라 지침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 혁명 이후 언론이 자유를 얻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확실한 것은 언론인의 활동이 매우 자유로워졌다는 겁니다. 과거 정권에서 할 수 없었던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취재가 가능해졌고 정보를 수집하는 데도 제한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특히 예전에는 정치권의 압력을 받았는데 이제는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전에는 정치인들에게 물을 수 없었던 민감한 질문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현재 튀니지 언론은 진실을 밝혀 냄으로써 여론이 잘못된 방향으로 빗나가는 것을 막는 수호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튀니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신 기자들은 혁명 전후 튀니지의 언론 환경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하비브 부르기바 광장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 《알자지라》 방송 튀니지 지부의 아하무드(39), 아흐메트(35) 기자를 만났다. 아하무드 기자는 “혁명 당시 벤 알리 정권은 튀니지에서 알자지라 방송의 방영을 중단시키고 언론 활동을 방해했다”며 “혁명 이후엔 자유롭게 언론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디부지드 지방청사 앞에서 만난 레바논 방송사 튀니지 지부의 네디르, 소피엔 기자는 모하메드 부아지지를 기념하는 동상 앞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다. 네디르 기자는 “5월에 있을 튀니지의 지방 선거를 취재 중에 있다”며 “튀니지는 아랍권에서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국가이고 혁명 이후 언론 보도 환경이 매우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지금은 사회·경제적 혁명 일어나고 있는 중”
 
아이메드 케미리 엔나흐다(Ennahda)당 대변인.
  튀니지 제1당인 엔나흐다(Ennahda)당 아이메드 케미리(Imed Khémiri, 53) 대변인을 만나 재스민 혁명 7주년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엔나흐다당은 이슬람주의 정당으로 1990년대 이후 벤 알리 정권에 의해 활동을 금지당했다가 재스민 혁명 이후 정당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현재 베지 카이드 에셉시 튀니지 대통령과 유세프 차헤드 총리는 제2당이자 세속주의 정당인 니다 투니스(Nida Tunis)당 소속으로 엔나흐다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튀니지 국회의사당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이중의 검문검색을 받았다. 2015년 3월 IS가 국회의사당 앞 바르도 국립박물관에서 총기 난사 테러를 가해 관광객 21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다치는 사건이 일어난 후 검문검색이 강화됐다고 한다.
 
  — 재스민 혁명이 성공했다고 봅니까.
 
  “혁명은 성공했다고 봅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혁명 이후에 주어진 것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올해 초 재스민 혁명 7주년을 맞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있었는데.
 
  “지금 튀니지 사람들은 시위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총으로, 군인으로 불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정부의 힘으로는 그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국민들도 조직화하는 것, 의견을 개진하는 것, 시위하는 것, 모이는 것의 자유를 알고 있고 정부도 막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시위 현장에 나오는 겁니다. 재스민 혁명은 정치적인 혁명입니다. 정치적인 혁명이 먼저 이뤄졌고 지금 사회적·경제적인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과정입니다. 시민들은 사회적·경제적 혁명을 완성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정치권에선 사회적·경제적 혁명을 이루기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하고 있나요.
 
  “정책을 하나하나 설명하기는 어렵고 국가와 기업들과의 대화를 통해 투자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경제적인 문제를 풀지 않으면 혁명을 완수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정치인들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 부아지지의 분신으로 시민혁명이 촉발되기 전까지 정치권과 언론은 무엇을 했습니까. 벤 알리 정권의 독재와 부패를 방조했던 것 아닌가요.
 
  “부아지지의 분신이 혁명을 촉발시킨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 전부터 자유를 얻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어 왔습니다. 정치인, 언론인 등 직장에서 쫓겨나고, 해외로 도피하고, 감옥에 간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엔나흐다당은 당시 금지당으로 공식 활동을 할 수 없었지만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 현재 튀니지 정치권과 언론이 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올바로 하고 있다고 봅니까.
 
  “정당이 다양해졌고 정치 활동이 활발해졌습니다. 의회에서 정부를 견제·감시하는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가 아직 새롭고 발달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조직을 갖춰야 합니다. 이미 튀니지 언론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셨겠지만 언론사 역시 제 역할을 잘하고 있습니다.”
 
  — 튀니지가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더 발전시켜야 할 부분은 뭡니까.
 
  “선거가 중요합니다. 5월 6일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후보자 수가 7000명이 넘습니다. 국민들이 의회나 높은 곳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방선거에 참여해 자신의 주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그럴 때 민주주의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사람들이 이후에 정계에서 역할을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번 선거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부아지지 분신 현장은 사복 경찰들이 감시
 
오스만 오마르 학생연합 지부장.
  재스민 혁명에 직접 참여해 민주화 투쟁을 했던 튀니지 청년들이 바라보는 현재 튀니지의 모습은 어떨까. 2008년부터 민주화 운동을 해 왔다는 오스만 오마르(27) 학생연합 관계자를 만났다. 오마르는 학생연합의 튀니스 과학기술대학 지부장 및 ‘나라로부터 정치활동을 금지당한 사람들의 모임’ 대변인으로 활동해 왔다. 학생연합은 1만5000명 규모의 대학생 단체로 주로 대학생·청년과 관련된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라로부터 정치활동을 금지당한 사람들의 모임’은 1200명 규모로 반정부 시위를 했던 정치인, 사회운동가, 대학생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정치 활동 금지, 취업 제한 등 사회적 활동의 제약을 풀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재스민 혁명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혁명이 성공했다고 보나요.
 
  “7년이 넘은 시점에서 성공 여부를 논하기는 이릅니다. 다만 지금까지 많은 부분에서 부족했는데 특별히 학생들의 요구,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 경제적인 투자 분야에서 너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는 데 언론들이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혁명 이전에 정부의 강압으로 인해서 언론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강압이 있다고 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은 문제입니다.”
 
  —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는 데 언론은 전혀 역할을 못 했다고 보는 건가요.
 
  “언론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청년들이, 시민들이 민주주의 활동을 해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부아지지 분신 이후 혁명이 커지자 뒤늦게 보도했을 뿐입니다.”
 
  — 그렇다면 혁명 이후엔 언론들이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언론들은 혁명 이후 주어진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에 필요한 목소리를 충분히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는 언론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 튀니지 민주화의 진전을 위해선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보나요.
 
  “현재는 정치인, 사업가, 엘리트들만이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선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특히 청년, 사회적 약자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분신 항거했던 시디부지드 지방청사 앞에 세워진 부아지지의 노점상 수레 조각상.
  취재 마지막 날인 4월 24일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분신했던 시디부지드를 방문했다. 시디부지드는 수도 튀니스에서 남쪽으로 3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내륙 도시다. 아침 일찍 튀니스 시내에 있는 ‘르와지 정류장’으로 향했다. 르와지는 9인승 차량으로 기사를 포함해 9명이 탑승하면 정해진 지역으로 이동하는 교통 수단이다. 황량한 거리를 달리고 달려 4시간 만에 시디부지드에 도착했다. 더운 날씨 속에 창문은 열리지 않고 사람을 가득 채운 차량을 타고 장거리를 이동하고 나니 시작부터 피곤이 몰려왔다.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 가며 부아지지가 분신 자살을 시도했다는 지방청사 앞을 찾아갔다. 지방청사 앞에는 부아지지를 기념하는 노점상 수레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우체국 건물에는 부아지지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시디부지드의 시민들을 취재하기 위해 거리를 이동하는데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접근해 왔다. 남자는 사복 차림의 튀니지 경찰관이었다. 경찰관은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며 조사를 받으러 따라올 것을 요구했다. 외국인을 찾아보기 힘든 내륙 지역에 동양인들이 나타나자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다. 더구나 부아지지 분신 항거의 역사를 가진 지역이기에 외부인을 더욱 경계하는 것 같았다.
 
  경찰관은 개인 신상, 방문 목적 등을 확인한 뒤 곧바로 튀니지행 르와지에 탑승시켰다. 추방당하듯 튀니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경찰관은 조사 과정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유감이지만 혹시 모를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이니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튀니지 정부는 부아지지의 분신 항거를 민주화 혁명을 촉발시킨 사건으로 기념하면서도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재스민 혁명과 ‘촛불 혁명’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위 ‘촛불 혁명’으로 탄생했다고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70~80%대를 나타내고 있다.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문 정부는 17년 만에 최악의 실업률인 4.5%(청년실업률 11.6%)를 기록하며 일자리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 국민의 생계 문제 해결에 소홀했던 벤 알리 정권은 국민들의 퇴진 요구를 받고 갑작스럽게 무너지게 된다. 벤 알리가 당선됐던 다섯 번의 대선에서 그의 득표율은 80~90%대를 기록했다. 벤 알리는 한때 높은 지지를 받았던 지도자였지만 어느 한순간에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고 만 것이다. 문 정부는 튀니지의 사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실업난 등 국민 생계 문제 해결에 힘써야 한다.
 
  우리나라 언론 역시 권력의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친정부 성향 일변도의 보도나 특정 이념에 편향된 보도 그리고 거짓으로 사회를 선전 선동하는 보도를 삼가야 한다. 무스타파 전 주한 튀니지 대사가 말했듯 언론은 진실을 밝혀 내고 여론이 잘못된 방향으로 빗나가는 것을 막는 수호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조회 : 4850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808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