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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23 〉 오구마 히데오의 〈누나에게(姉へ)〉

“안심하십시오. 절제하지 못했던 남동생은 야무지게 되었습니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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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소설 속에 ‘누이’ 이미지는 순수함의 상징
⊙ 여동생이 오빠를 생각하며 쓴 작품도 많아
가장 한국적인 화가 박수근이 그린 〈아기 업은 소녀와 아이들〉. 1950년대 작이다.
  누나에게
  오구마 히데오(권택명 역)
 
  아카시아 꽃향기가,
  물씬 높다랗게 바람에 떠도는 곳에—,
  우리 누나는 불행한 남동생의 일을 생각하고 있겠지요
  술에 취해 날뛰던
  절제하지 못하던 남동생은
  지금 꼿꼿하게 몸이 야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남동생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생이란 게
  얼마나 인간을 강하게 하는 것인가를.
  나는 슬퍼한다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가장 슬프게 하고,
  그것이야말로, 나를 가장 용감하게 합니다
  내가 몇 번이나 도시로 뛰쳐나갔다가
  몇 번이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누님, 당신이 밤새 울면서
  충고를 해준 것이
  똑똑히 눈앞에 떠오릅니다,
  — 얘는 어째서
  그토록 도쿄(東京)로 나가고 싶어 하는 걸까,
  남동생은 조용히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운명이란, 나에게 지금은
  손 안의 한줌처럼 작은 것입니다.
  나는 이걸 지그시 강하게,
  이 녀석을 움켜쥡니다,
  나는 쾌감을 느낍니다,
  — 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을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할 만큼, 지금은 대담한 말을
  뱉어낼 수가 있습니다,
  노동을 위해 움켜쥔 손을
  나는 가만히 펼쳐봅니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증오의 땀을 흘리고 있을 뿐입니다,
  안심하십시오,
  나는 도쿄에 정착했습니다.

 
 
  姉へ
  小態秀雄
 
일본의 저항시인 오구마 히데오.
  アカシヤの花の勾いの,
  ブンと高く風にただようところに—,
  私の姉は不幸な弟のことを考えているでしょう
  酔ってあばれた
  ふしだらであった弟は
  いまピンと体がしまっているのです.
  そして弟は考えているのです,
  苦労というものは
  どんなに人間を強くするものであるかを.
  私は悲しむということを忘れました,
  そのことこそ
  私をいちばん悲しませ,
  そのことこそ、私をいちばん勇気づけます
  私が何べんも都会へとびだして
  何べんも故郷へ舞い戾ったとき
  姉さん、あなたが夜どおし泣いて
  意見をしてくれたことを
  はっきりと目に浮びます,
  — この子はどうして
  そんなに東京にでて行きたいのだろう,
  弟はだまって答えませんでした,
  運命とは、私にとって今では.
  手の中の一握りのように小さなものです.
  私はこれをじっと強く,
  こいつをにぎりしめます,
  私は快感を覚えます,
  — 私は喰うためにではなく
  生活のために生きているのです.
  というほどに、今では大胆な言葉を
  吐くことができます
  労働のために握りしめられた手を
  私はそっと開いてみます.
  そこには何物もありません.
  ただ憎しみの汗をかいているだけです,
  御安心下さい,
  私は東京に落ちつきました.

 
 
최근 국내 번역된 오구마 히데오 시집 《장장추야(長長秋夜)》. ‘깊고 깊은 가을밤’이란 뜻이다.
  오구마 히데오는 1901년생 시인이다. 한국의 시인 중에 1901년생은 〈빼앗긴 들에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국경의 밤〉을 쓴 김동환이 있다. 오구마는 1910년 한일병탄에 아파한 몇 안 되는 일본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시 〈장장추야(長長秋夜·깊고 깊은 가을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검게 더렵혀진 흰옷을 방망이로 두들긴다/ 두들기는 손길도 울고 있다/ 두들겨 맞는 들도 울고 있다/ 조선의 모든 것이 울고 있다〉(번역 권택명)
 
  당시 일본 시인 중에 ‘조선의 모든 것이 울고 있다’고 쓴 이가 몇이나 될까. 오구마는 식민지 한반도 민중을 피지배자의 아픔으로 묘사했다. 〈누나에게〉는 누나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의 시로 철없던 남동생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고생이란 게/ 얼마나 인간을 강하게 하는 것인가를./ 나는 슬퍼한다는 걸 잊어버렸습니다〉라고 담담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김소월.
  대도시로 상경해 온갖 고생을 한 시적 화자(나)에게 누나가 실제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와 소설 속에서 ‘누이(누나)’는 비유와 은유로 해석되는 문학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20세기 현대문학에서 누이 이미지는 순수함의 상징이다. 손위 누나를 남동생이 각별히 생각하며 쓴 작품이 제법 많다. 남동생에게 누나는 어머니와 거의 동격이다.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를 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고 노래한다. ‘엄마와 누나(누이)’가 차지하는 내 마음의 자리에 ‘아빠와 남동생’의 자리는 없다.
 
  김영랑의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는 시적 화자가 누이를 통해 가을의 감회를 노래한다. 이 시는 1930년 《시문학》지에 실렸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 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전문

 
  봄여름 들일을 하느라 바쁘게 살던 누이는 어느 날 장독대에 오르다 ‘붉은 감잎’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느끼고 화들짝 놀라 “오매, 단풍 들것네” 하고 외친다. 하지만 가을이 오는 기쁨도 잠시, 다가올 추석 준비와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런 누이 마음은 ‘나’의 마음과 같고 누이의 걱정이 ‘나’의 걱정이다. 누이를 통해 ‘나’의 마음이 자연스레 전이된다.
 
  오장환의 〈일흠(이름)도 모르는 누이에게〉는 이름 모를 ‘작은 새’를 누이와 동일시한다. 소중한 대상을 누이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시는 《신문예》 1945년 12월호에 실렸다.
 
  움직임이 없는 수림(樹林)과 같이
  내 마음 스사로 그늘을 지노라.
  아 이곳에 나날이 찾어오는
  적은 새여!
  나는 그대의 일흠과 노래를 모른다.
  그러나 자연(自然)이여
  당신은 위대(偉大)합니다.
  적은새로 하여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내 마음으로 하여금 그를 평화(平和)로이 쉬이게 하여주소서
 
  - 오장환의 시 〈일흠도 모르는 누이에게〉 전문

 
 
  오빠와 여동생의 상징
 

  오빠가 누이(여동생)를, 여동생이 오빠를 생각하며 쓴 작품도 많다. 누이만큼이나 오빠도 문학적 상징이다. 오빠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한다. 《전선문학》 1953년 9월호에 실린 김봉룡(金鳳龍)의 〈누이에게〉라는 시가 있다. 김봉룡은 실제 육군 소령이고 6·25 당시 종군작가단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는 누이동생 결혼식에 가지 못한 시적 화자(오빠)의 미안함을 담고 있다. 전쟁통에 여동생이 오빠에게 ‘아마 오빠도 (결혼식에) 올 수 있을 게다’고 한 말은 은유적이다. 죽지 말고 살아 돌아오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누이의 결혼식에 가지 못하는 오빠의 안타까운 마음은 엄마가 죽어 누이 곁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터의 ‘무장(武裝)한’ 오빠 가슴이 찔린 듯 아프다.
 
  누이야 오늘이 섣달 스무엿새 너의 결혼날이지./ 나는 지금 강원도 구윗고개를 넘어 아직도 백리길 바라보고 걷고 있다.//
  지난번 이날을 달포 앞두고 집을 떠날 적 ‘아마 오빠도 올 수 있을 게다’고 한 너 그 말 듣고 이날 이때껏 밤을 자지 않고 기다렸겠지!/ 꼭 쳐서 여섯 달만 더 살아 너의 신행걸음만 보고 엄마가 돌아가셨더래도 이날을 두고 내 이다지 상심 않아도 좋을 것을,//
  엄마 없는 허전한 마음에 한가닥 별빛마냥 이내 오빠가 고이 접어 들 줄만 믿었다가
  믿음에 찍힌 가슴 안고 면사포 드리운채 나서는 모습이 무장(武裝)한
  이 가슴을 찌르는 구나.//
  그러나 누이야!//
  상금도 푸른 하늘을 뚫고 나르는 포탄(砲彈)이 연방 이곳 두메에 떨어지나니,
  입 다물고 내 여기 북으로 북으로 향함은 앞날 너희 지닐 행복(幸福)의 터전을 닦기 위함이거니,//
  누이야 오늘이 섣달 스무엿새 너의 결혼날이지.
  나는 지금 강원도 구윗고개를 넘어 아직도 백리길 바라보고 걷고 있다
 
  - 김봉룡의 시 〈누이에게〉 전문

 
2016년에 개봉된 영화 〈오빠 생각〉 포스터. 여동생의 눈으로 본 오빠 이야기가 시와 소설, 동요, 영화 등에 자주 등장한다.
  1925년에 쓰여진 최순애 작사, 박태준 작곡의 동요 〈오빠 생각〉은 시적 화자가 어린 여동생이다. 서울 간 오빠를 생각하며 쓴 시다. 8분의 6박자의 애상조 멜로디가 더욱 구슬프게 만든다. 여동생이 생각하는 오빠는 민족의 ‘독립’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다. 오빠의 부재는 삶의 희망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성공해 하루빨리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오빠 말타고 서울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 최순애 작사의 동요 〈오빠 생각〉 전문

 
  월북 시인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火爐)〉는 1929년 《조선지광》(83호)에 발표됐다. 임화는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 내의 최고 시인이자 평론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시는 그의 대표적인 초기작으로, 고교 문학 교과서(지학사, 디딤돌)에 실려 있다.
 
  시적 화자인 여동생이 감독에 갇힌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시가 전개된다. 제사(製絲) 공장과 담배 공장에 다니는 ‘나(여동생)’와 동생 ‘영남’은 오빠가 잡혀가는 바람에 힘들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끌려가던 그날 밤, 오빠는 ‘연거푸 말은 궐련을 세 개씩이나 피우며’ 동생들을 말없이 바라본다. 여동생은 오빠가 잡혀간 뒤에야 오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이 시는 서사시 형식으로 노동운동, 계급투쟁 같은 주제를 정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 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卷煙)을 세 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없는 제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 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 2, 3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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