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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21세기 시민혁명과 언론 ① 대만

언론독점 반대하는 ‘해바라기 운동’, 2016년 정권교체 터 닦아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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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언론자유지수는 아시아 1위… 해엄(解嚴:계엄해제) 후 언론 자율성 크게 향상
⊙ 친중(親中) 보수 세력 마잉주 총통, 친중 자본 미디어 인수 지원 등으로 ‘언론 길들이기’ 시도
⊙ 9월 1일 ‘기자의 날’ 학생과 언론인 등 2만여 명 모여 ‘언론독점반대’ 평화적 시위 나서
⊙ 보수 정권 언론독점 저지운동 나선 대만기자협회, ‘해바라기 운동’까지 연계해 정권 교체 터 닦아
⊙ 대만 언론자유지수 높지만 뉴스 PPL, 황색언론 범람 등 문제점도
대만 시민단체들이 마잉주 총통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민들은 마 정권의 언론독점 시도에 반대했다.
  대만은 아시아에서 언론자유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다. 매년 세계 언론자유지수를 측정하는 국제 언론인 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프랑스)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평가 대상인 180여 개 국가 중 대만은 늘 30~50위에 머물며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언론자유 국가’에 속하고 있다. 아시아 주요 국가의 언론자유 순위는 2016년 대만 51위, 한국 70위, 일본 72위, 2017년 대만 45위, 한국 63위, 일본 72위였다. 국경없는기자회는 “대만의 언론자유지수는 아시아 1위로 큰 의미가 있다”며 아시아 최초의 사무소를 대만에 지난해 7월 설립하기도 했다.
 
  대만 정치권은 과거 친미 세력이 계엄을 선포하며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끌었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친중-친미 보수 세력(국민당)과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진보 세력(민진당)이 끊임없이 대립하는 형국이다. 한국과 유사한 현대정치사(史)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대만이 한국에 비해 언론자유지수가 훨씬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만에서 미디어학을 연구한 《대만 방송뉴스의 현실과 쟁점》의 저자 황우념 씨는 “대만의 언론자유지수가 높은 것은 해엄(계엄해제) 후 표현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해엄 이후 이뤄진 언론자율화만으로 현재의 대만 언론자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대만 언론 관계자들은 “2010년대 초반 마잉주 정권 당시 친중 기업인 왕왕(旺旺)그룹의 미디어 독점에 대한 반대 투쟁이 해바라기 운동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언론인들이 정부의 외압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만 타이베이를 방문해 현장에서 그 답을 찾아봤다.
 
 
  신문, TV 등 모두 ‘튀어야 산다’
 
  현지에서 대만 미디어를 접하며 받은 인상은 ‘요란하다’는 것이었다. 정론지를 표방하는 4대 일간지조차도 과거 국내 가판대를 점령했던 스포츠신문들과 유사한 외형을 갖고 있었다. 다채로운 컬러와 서체를 사용한 편집 디자인도 시선을 끌었지만 제목에 ‘충격’ ‘독점’ ‘주목’ 등의 머리말을 쓰는 신문이 많아 가판대의 신문이 서로 누가 더 눈에 띄는지 경쟁하는 것처럼 보였다. TV뉴스 화면도 마치 국내 홈쇼핑 채널을 연상케 할 정도로 복잡하고 화려했다. 국내 연예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대만 언론’이라고 하면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소문과 가십을 무분별하게 쏟아내는 언론’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됐을 정도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대만 언론은 당시 한국 언론처럼 강한 통제를 받았다. 초대 총통 장제스(蔣介石·제1~5대 총통)는 1948년 계엄을 선언해 40년간 계엄 체제가 지속됐다. 언론 역시 통제를 받다가 1987년 7월 해엄 이후에야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됐다. 계엄 내용에 포함돼 있던 ‘신문 발행 규제(報禁)’ 조치가 해제되면서 최초의 민영방송인 FTV, 공영방송 PTS가 출범했고, 야당인 민진당 성향의 각종 신문사들이 출범했다. 방송은 해엄 전 3개 지상파 방송이 독점하고 있었지만 FTV와 PTS가 출범하면서 현재 대만 지상파 방송은 5개 채널로 구성돼 있다.
 
  미디어 시장 개방 정책과 신문·방송 겸영(兼營) 정책도 이때 생겼다. 따라서 케이블방송과 종합편성채널이 급증했는데, 이들은 저렴하게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해외 프로그램 방송과 선정적인 뉴스 프로그램에 집중하면서 급성장한다.
 
  황우념 씨는 “해엄 이후 대만 미디어 시장이 무분별한 경쟁의 장이 되면서 대만 방송사들의 자체 프로그램 제작 능력이 사라져갔고 지상파 방송조차 공영성을 상실한 채 선정성과 오락화의 늪에 빠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신문에서도 독자를 모으기 위한 옐로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 횡행했고, 표현 자유의 보장이 언론 공정성의 확대보다 언론 상업성의 확대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있다”고 덧붙였다.
 
 
  언론자유화에 동반된 선정성
 
대만 4대 일간지인 《연합보》 《빈과일보》 《중국시보》 《자유시보》.
  해엄 후 대만 언론은 리덩후이(李登輝, 국민당·1988~2000 재임)-천수이볜(陳水扁, 민진당·2000~2008 재임) 총통을 거치며 자유화의 길을 걷는다. 이때부터 대만 신문기사와 방송뉴스에 PPL(Products Placement·간접광고)이 허용되며 언론의 상업화도 날개를 달게 된다.
 
  케이블 방송의 성장 과정에서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은 급감하고 광고수익도 줄어든다. 2000년대 초 케이블 방송 매출은 지상파 방송의 3배를 넘어서는 등 방송 시장의 주도권이 지상파 방송에서 케이블 방송으로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지상파 방송은 케이블 방송사처럼 해외 방송 프로그램을 수입하고 선정적 뉴스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대만 뉴스 채널들은 극악한 범죄사건이나 공직자・연예인의 스캔들을 집중 보도하는 등 자극적인 내용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였고, 10여 개의 방송뉴스에서 같은 시각에 같은 범죄뉴스를 내보내는 현상도 비일비재했다.
 
  뉴스의 선정주의 현상이 심해지자 공영방송이 ‘뉴스정화’를 선언하기도 했다. 2004년 대만 공영방송 CTS의 부사장이었던 주리시(朱立熙) 대만 국립정치대학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CTS 뉴스자율, 정화 선언〉을 작성해 발표하고 대만 방송뉴스의 문제점을 공론화했다. 주 교수는 “대만 뉴스 채널들이 과도한 경쟁 속에서 선정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고, 획일적으로 시청자를 자극하는 보도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경쟁력이 상실되는 것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주리시 교수는 대만 4대 일간지 중 하나인 《연합보(聯合報)》 서울 특파원 겸 부사장으로 재직했고, 이후 《중국시보(中國時報)》 주필, 《타이베이타임스(Taipei Times)》 총편집인, 대만 공영방송인 CTS(Chinese Television System·中華電視股份有限公司·중화방송공사) 부사장을 지낸 언론인이다. 그러나 주리시가 2005년 개인적인 사정으로 CTS를 떠나며 대만 뉴스 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마잉주 총통의 언론장악 시도
 
대만 마잉주 총통(2008~2016)은 언론장악을 시도하다 언론인과 학생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정권 교체로 2008년 취임한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중국이 내건 ‘하나의 중국’ 정책에 동조하는 친중 정책을 펼친다. 마잉주 총통은 중국 고위직 인물들이 대만에 방문할 때 극진하게 환대하는 한편 대만 국기를 들고 대만 독립을 외치는 시민들에 대해서는 강하게 압박해 대만인들로부터 반감을 사기도 했다.
 
  또 마 총통은 대만의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는 것을 도와 기업 규모를 늘릴 수 있도록 지원했는데, 이때 떠오른 기업이 쌀과자업체로 유명한 왕왕(旺旺)그룹이다. 왕왕그룹은 대만 회사지만 1990년대부터 중국에 진출, 생산시설을 다량 확보해 대만발(發) 중국 기업으로 불리기도 한다. 왕왕그룹의 차이옌밍(蔡衍明) 회장은 마잉주 총통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이옌밍 회장은 대만 최대 부호 중 한 명으로,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2년 대만 부호 순위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왕왕그룹은 2008년 대만 최대 미디어 그룹인 중국시보(차이나타임스)그룹 산하 6개 매체를 모두 사들였다. 《중국시보(中國時報)》를 비롯해 《공상시보(工商時報)》, 공중파 방송인 중국방송(中國電視·CTV), 케이블 방송인 중천방송(中天電視) 등이다. 금융위기 와중에 성사된 204억 타이완 달러(약 8300억원)짜리 합병이었다.
 
  1950년 창간한 《중국시보》는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권위지로 국민당, 민진당 정권 모두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중립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창업주 사망과 불경기까지 겹쳐 경영에 어려움이 있었고, 다른 언론사들이 《중국시보》에 눈독을 들였지만 새 주인은 뜻밖에도 왕왕그룹이었다. 당시 음모설이 쏟아졌다. “중국 중앙정부가 자신들에 비판적인 홍콩 언론재벌이 대만 최대 미디어그룹을 인수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어 왕왕의 인수전 참여를 부추겼다”는 주장이다. 차이옌밍 회장이 중국 정부 및 마잉주 총통과 긴밀한 관계였다는 점 때문에 마 총통이 친중 대만 자본과 중국 정부를 이용해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대만정치대학 주리시 교수는 “왕왕그룹이 다량의 현금을 확보해 미디어그룹을 사들였는데, 이는 중국이 배후에서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하다고 전 국민이 의심했다”고 설명했다.
 
 
  왕왕그룹, 중국시보그룹에 이어 넥스트미디어까지 인수 시도
 
  왕왕그룹은 이에 그치지 않고 2012년 컨소시엄을 구성해 홍콩 언론그룹인 넥스트미디어가 소유한 대만판 《빈과일보》, 주간지 《이저우칸》, 케이블 채널 넥스트 TV 등의 인수를 추진했다. 마잉주 정부가 왕왕그룹을 통해 언론 독점 및 장악에 나섰다는 것이 명확해 보였다. 인수가 이뤄지면 4대 일간지 중 2개 일간지가 친중국 기업인 왕왕그룹의 산하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와중에 《중국시보》의 보도는 대만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주 교수의 얘기다.
 
  “《중국시보》는 ‘천안문 대학살(6·4) 사건에 사망자는 없었다’라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중국 민주화운동 인사들은 분노했고, 언론계에서는 ‘《인민일보》(중국 공산당 기관지)보다 더한 《인민일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죠. 대만의 지식인들은 이에 성명서를 발표하고 《중국시보》 불매운동에 나섰습니다. 《중국시보》 사태는 중국 정부가 대만재벌그룹을 통해 대만 정치에 관여할 수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한국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북한의 자금이 남한에 들어와 주류 신문을 사들여서 《조선일보》가 《로동신문》과 같은 내용을 남한에 보도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요. 대만에 중국의 목소리를 내는 대중 매체가 각 영역에 침투하고 있었습니다. 친중국적인 마잉주 정부는 대만인의 가치를 혼란시키는 위기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대만의 유명 TV 시사 프로그램 사회자인 정훙이(鄭弘儀)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사업하는 기업들이 대만 언론을 장악하면서 반(反)중국 논조의 보도가 위축되면서 언론자유까지 위협하는 수준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만에서 《인민일보》나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매체 수준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학생들 나서 ‘反언론괴수운동’
 
대만 학생과 언론인들이 언론자유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잉주 정부의 언론장악 시도에 먼저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은 학생들이었다. 2013년 7월 25일 대만 전국통신위원회가 왕왕그룹의 넥스트미디어 인수를 승인하자 학생들은 분노했고, 7월 31일 대만대와 칭화대 등 30여 개 학생 동아리가 인터넷에서 ‘반(反)언론괴수 청년 연맹(Anti media monster youth alliance)’을 결성했다. 학생 700여 명은 중천방송국 앞에서 “우리는 왕중(왕왕그룹의 별칭)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왕왕그룹의 넥스트미디어그룹 인수를 반대하며 대중매체 독점반대법 제정을 요구했다. 학생들은 “중국의 자금과 대만의 재벌그룹이 대만의 대중매체를 통제하는 것을 방지하는 법을 제정하라”고 요청했다.
 
  대만 기자들은 9월 1일 대만 ‘기자의 날’에 다 함께 일어났다. 대만신문기자협회 주도 아래 대중매체 독점 반대운동 시위가 열렸고, 기자들 외에도 민간단체와 사회단체, 학생단체 등 2만여 명이 참가했다. 이날 충돌이나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아 평화적 시위로 끝났다. 당시 대만기자협회가 한 언론에 제공한 일지 중 일부분이다.
 
  〈(주최 측은) 9월 1일 시위행진을 앞두고 각 정당 사무실을 방문했다. 시위대는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시위를 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쓰레기도 모두 스스로 치울 것이며, 정당이나 기업의 로고나 휘장을 착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주리시 교수는 “이 시위는 대만 역사상 특정 업체와 관련해 발생한 가장 큰 시위였다”며 “대만인들에게 언론의 중요성을 각성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기자협회와 시민단체 등은 ‘언론독점반대운동(Anti media monopoly movement)’을 주창하며 ‘대만 언론독점 반대연맹’을 만들고 행정원과 국가통신전파위원회에 왕왕그룹의 미디어그룹 인수 반대 청원서를 제출했다. 연맹은 “왕왕그룹의 넥스트미디어 인수 절차가 계획대로 마무리되면 왕왕그룹이 대만 전체 신문 시장의 35%, 잡지 시장의 30%를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왕왕그룹의 넥스트미디어 인수는 수포로 돌아갔고 마잉주 정권은 언론독점에 실패했다.
 
 
  언론독점 반대운동과 해바라기 운동
 
‘해바라기학생운동’ 당시 입원(국회)을 점령한 대학생들.
  사회 각계 인사 2만여 명이 참여한 언론독점 반대운동은 이듬해 일어난 ‘3·18 해바라기 학생운동’의 초석이 된다. 해바라기 운동은 2016년 정권 교체를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되는 대규모의 학생운동이다. ‘3·18 해바라기 학생운동’은 2014년 3월 18일부터 4월 10일까지 대만의 대학생들과 시민단체들이 입법원(국회)을 점령하고 마잉주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 운동이다. 국민당은 3월 17일 〈해협양안서비스무역협정〉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중국과 대만의 서비스 무역을 강화하는 협정이다. 이 협정 내용에 따르면 대만 상품시장은 물론 노동시장이 중국에 개방, 통합되고 중국의 저가노동력이 대만으로 유입돼 대만인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이 협정이 “중국-대만의 경제적 통일을 거쳐 정치적 통일을 달성하자는 것으로 결국 대만의 멸망이 목표”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는 친중국 노선을 계속해 나가던 마잉주 정권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국민들을 크게 자극했다.
 
  학생 400여 명은 입법원을 점령했고 입법원 외부에는 1만여 명의 시민이 모여 점령자들을 응원했다. 3월 24일 경찰과 학생들의 몸싸움 끝에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모습이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 중계됐고, 반정부 시위는 더 격렬해졌다. 이 시위에 동조하는 한 꽃집 주인이 학생들에게 해바라기 1300송이를 보내면서 이 운동은 ‘해바라기 학생운동’으로 불리게 됐다. 한 달여간 계속된 이 운동에는 50만명의 시민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주리시 교수는 “언론독점 반대운동-해바라기 운동으로 이어진 항쟁은 마잉주 정권에 매서운 교훈을 주었고 마 총통의 레임덕을 앞당겼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해 하반기 홍콩의 반중 민주화 시위까지 겹치면서 전국 지방선거에서 민진당 등 야권의 대승으로 이어졌고, 이후 2016년 1월 민진당의 재집권을 촉진시킨 계기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뉴스 PPL 허용, 부작용은?
 
대만 언론인들이 왕왕그룹의 언론독점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언론독점 반대운동과 해바라기 운동 이후 대만 언론은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현재 대만 언론자유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지만 뉴스 PPL(간접광고)과 옐로 저널리즘(황색언론)은 대만 언론의 문제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1주기 당시 공영기관 대만전략공사는 원자력학회와 신문 지면을 구입해 “쓰나미가 발생하면 대만이 받을 충격은 일본에 비해 적다”는 등 원전을 옹호하는 기사가 게재됐다. 원전을 지지하는 의견만 강조한 것이다. 또 중국 정부가 《중국시보》의 지면을 구입해 중국 고위 관리의 대만 방문을 홍보하는 기사를 싣는 일도 적지 않았다. 정부가 홍보해야 할 사안이 있을 때는 신문 지면이나 방송뉴스 분량을 구입해 홍보에 나서는 것이다.
 
  BBC 중국어판 양첸하오 기자는 “대만에서 언론 PPL이 합법화되면서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면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돈을 내고 언론 지면이나 편성시간을 구입하고, 이를 통해 특집 인터뷰나 동영상을 내보내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를 누린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PPL 비용은 정부자금이며 곧 세금의 일부”라며 “지금까지는 중국 지방정부나 대만 정부가 지면이나 방송 분량을 구입하는 정도지만, 중국 중앙정부나 공산당이 직접 나서면 중국이 여론전으로 대만을 흡수 통일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만의 시민과 학생들이 투쟁해 얻어낸 언론자유를 지키는 것이 대만 언론인들의 과제”라고 말했다.
 
  대만 공영방송 TBS의 한잉 기자는 “대만 언론은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권력과 자유가 있으며 국민들의 언론습득 수준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은 영향력 있는 매체의 수가 많아 정부나 기업이 한두 개 매체를 장악한다고 해서 언론을 장악할 수 없다”며 “모두 언론이 투쟁해 얻어낸 결과인 만큼 언론인들의 책임감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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