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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도의 역사 읽기 〈14〉 북한 옹호하는 체제전복 세력이 ‘적폐’다

글 : 유광호  자유민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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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재인 대통령, 왜 탈북 병사에게 찬사 보내지 않나?
⊙ 한국 지식인들, ‘국가에 맞서는 자유’라는 관점에 너무 전염되어 있어
⊙ 대한민국에서는 계급·사회·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부정당하고 있어
2017년 11월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자유와 체제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2017년 11월 13일 북한군 병사가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사선을 넘어 귀순했다. 자유를 찾아서다. 경계선을 넘어 남하했는데도 북한군의 사격으로 몸에 수많은 총탄을 맞았다. 패트릭 헨리가 부르짖었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란 절규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 측에서는 북한 저격병들의 월경과 대남 총격에 대응하지 않은 한·미군 관계자를 칭찬하고 표창할 뿐 그 병사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반가워하지 않는 표정이 역력하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트레이드 마크로 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을 사람이게끔 하는 가치인 자유를 위해 목숨 걸고 찾아온 동포에 대하여 왜 찬사를 하지 않는 것인가?
 
  한편 해산된 통합진보당을 잇는 좌익 정당 소속 국회의원은 귀순병사의 뱃속에서 나온 기생충들이 공개된 것을 “인권 유린”이라면서 매도했다. 북한의 처참한 실상과 북한 수령 김정은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 것에 그가 화가 났으리라고 네티즌들이 추정하고 비판했다.
 
  이들에게 인권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회의원 시절인 2004년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에 대한 항의서한에 서명했다. 그 항의서한 작성을 위한 회의에서 임종석은 “미국의 북한인권법 통과는 탈북자의 급속한 증가와 북한의 강한 반발을 불러온다”느니, “탈북자 대량 입국은 인권에 반(反)하고 경제국익에도 역행한다”느니, “탈북자 기획입국은 브로커가 개입된 부도덕한 상업행위이자 대북 적대행위”라느니 하는 발언을 남겼다.
 
  탈북자 대량 입국이 인권에 어긋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대북 적대행위”라는 말은 북한 당국이 우리와 미국에 대해 위협하면서 쓰는 용어 그대로다. 그러면서 그는 방송사들로부터 뉴스에 사용한 북한 화면에 대한 비용을 징수하여 북한에 보내는 일을 주도했다고 한다. 이런 자가 자신을 ‘민주화운동’을 했다고는 절대 소개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좌경 인사들이 말하는 인권의 대상은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했던 프랑스 지식인 쥘리앵 방다가 말한 ‘인도주의(humanitarianism)’의 추상적 인간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다면 북한의 동포들이 처해 있는 인권 참상에 대하여 어찌 그리 냉담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문은 임종석이 했던 ‘전대협’의 사상과 활동을 살펴보는 데서 풀어야 할 것이다.
 
 
  ‘만절필동(萬折必東)’과 ‘만동(萬東)’
 
  한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11월 초 방한(訪韓) 시 국회 연설에서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을 상세하게 고발하는 명연설을 해서 양심 있는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했다. 또 그는 자유민주체제가 준 자유를 향유하면서 성취한 대한민국의 근대화 ‘기적’에 찬사를 보냈다.
 
  트럼프의 연설은 온화하고 외교 수사적인 것이었지만, 거기에는 뼈가 있었다. 그것이 표출한 정치적 의미의 핵심은 남북한에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체제’ 문제를 건드린 것이었다. 왜냐하면 ‘기본권’을 강조하면서 북한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출발이면서 핵심이 ‘기본권’이다. 이 기본권이 바로 인권이다. 이 기본권이 진짜 문제인데, 북한과 중국은 이 기본권이 보장되고 있지 못하다. “문재인은 왜 2500만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고 오히려 북한 불량정권에 대화와 협상을 운운하고 있느냐”고 트럼프는 묻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위급한 북핵에 대하여 한·미·일 3국이 협력해야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기본권 보장도 안 하고 있는 중국에 사대(事大) 굴종하고 있다. 노영민 주중(駐中)대사가 12월 5일 시진핑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방명록에 적은 말이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고 보도되었다. ‘만절필동’은 ‘황하는 아무리 곡절이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다는 뜻의 사자성어(四字成語)다.
 
  조선은 명(明)나라가 망했는데도 만동묘(萬東廟)를 건립하고 숭명사대(崇明事大)를 했다. 그 ‘만동’은 ‘만천동류(萬川東流)’에서 따온 말이었다. ‘모든 강들이 동쪽으로 흘러 황해로 들어가는 자연의 이치와 같이 명나라에 대한 조선의 사대의리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맹세를 표하는 것이었다. ‘만절필동’이건 ‘만천동류’이건 공산 중국에 대한 향념(向念)을 표현하는 게 아닌가 싶다.
 
 
  ‘liberty’와 ‘freedom’
 
영국 보수주의 사상가 로저 스크러튼.
  귀순 병사가 자유를 배우거나 체험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북한 수령독재 전체주의 체제에서 자유는 방탕이나 반체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사야 벌린은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하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liberty’가 ‘무엇을 할 권리 내지 자유’를 의미한다면 ‘freedom’은 liberty에다가 개인적 영역이 합해진 것을 가리킨다. 귀순 병사가 배우지 않았는데도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를 찾았던 것은 인간의 본성에 자유에의 경향이 내재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으로부터 전해진 자그마한 정보들이 점화장치가 되어 자유에 대한 인간적 갈망에 불을 붙였던 것이리라. 루소를 비롯한 자연주의 사상가들은 원래 인간에게 자유의 기본 형태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한국의 좌경 학자들은 우리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은 유신헌법에서 처음 들어간 표현이기 때문에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 법에는 ‘자유와 민주’라고 돼 있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제헌헌법은 노동자이익균점권이 표현하듯이 ‘사회민주주의’ 헌법이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회주의까지 포용하는 ‘민주주의’를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하든지 ‘자유’를 빼려고 안달이다. 그런 입장은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할 뿐이다. 가장 상위의 정치형태로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전체주의 체제가 있다. 그리고 그 하위에 경제제도로서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등이 있다. 따라서 제헌헌법이 경제제도로서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정치형태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하나도 부자연스러울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지우려는 지속적인 시도는 그들의 좌경성을 드러낼 뿐이다.
 
  영국 출신의 보수주의 사상가 로저 스크러튼(Roger Scruton)은 정치적 자유를 보는 입장에 크게 3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자유주의 입장인데, 밀은 자유는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자신을 주장하는 개인의 힘이라고 했고, 로크는 일정하게 자유를 제한하는 법 아래서 방종하지 않는 자유를 말했다.
 
  둘째는 보수주의 입장인데, 하나의 사회질서에 속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자유는 다른 가치들과 균형 잡혀야 한다는 입장에서 밀의 자유주의 입장에 맞섰다.
 
  셋째는 복지사회주의 입장으로, 위의 두 가지 입장이 적극적 자유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서 더 만족스러운 분배를 요구한다.
 
  벌린은 ‘적극적 자유’를 잠재적으로 전체주의적이라고 보았다. 이 중에 보수주의는 이성적이고 질서 있는 자유를 옹호한다.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의 세 사상 중에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추론에 의거한다. 그에 비해 가장 사려 깊은 보수주의자는 지속가능한 자유는 자연법의 적절한 목적들, 공동체의 관습들과 공동선(共同善)에 의하여 질서지워진다고 생각하는 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승만은 건국에 즈음하여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인들은 ‘국가에 맞서는 자유’라는 관점에 너무 전염된 것 같다. 좌익들도 표면적으로는 그런 담론을 많이 이용한다. 물론 국가와 정부 내지 정권은 구별되어야 한다. 정부는 그 기관들로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지만, 국가라는 정치체는 추상적인 존재로서 만져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구성원들을 묶어 주는 존재다. 일찍이 홉스는 그런 추상적인 법인(法人) 같은 것으로서의 국가를 ‘인공인(artificial man)’이라고 표현했다.
 
  1946년 6월 북한에는 이미 공산 괴뢰정권이 세워졌고 미국과 소련 간에 한반도 통일정부 협의도 결렬된 상황에서 이승만 박사가 “남한에서도 임시적 중앙정부 같은 것을 세워야 한다”는 독트린을 발표했을 때 ‘민족’의 이름 아래 반대가 비등했다. ‘국가’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인데, 요즘도 국가를 생각하는 입장을 ‘국가주의’라고 매도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낭만적 민족주의’에다가 ‘미국식 사고방식’이 더해져 생긴 것일 것이다. 미국식 사고방식이란 국가는 뒤로 숨기고 사회를 전면에 내세우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최고의 정치공동체 단위가 ‘국가’다. 국가의 자율성과 목적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 ‘국민국가(nation-state)’다. 다시 말해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국가의 기능이다. 19세기 후진 독일에서도 칸트와 헤겔은 ‘Rechtsstaat’를 내세웠는데, 국가는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Rechtsstaat’는 번역이 또한 쉽지 않은 개념이다. ‘법에 의한 국가’ 내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라는 뜻이겠다.
 
  이 전통이 독일에서도 그 후에 파괴된다. 그리하여 좌익은 국가 대신에 사회를 내세우고, 자유주의자들은 폭력을 독점하는 조직으로서의 국가라는 국가론을 내세우게 되었다.
 
  한국 좌익은 1948년 체제로서의 대한민국 국가를 해체해야 되겠다는 입장에다가 민중론을 더해 왔다. 계급과 사회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부정당하고 있다. 그것들은 유토피아적이고, 시공(時空)을 떠난 관념들이다. 근대국가 만들기라는 것이 ‘건국’임을 모르는 소치다. 봉건적 지배나 노예상태를 벗고 인간의 권리를 확보하자는 것이 근대국가가 탄생된 목적이다.
 
 
  사라진 자유해방의 전통
 
  대한민국은 그런 권리와 자유를 확보하고 확충해 온 역사를 가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에 즈음하여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다. 그는 농지개혁으로 예속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선사했다. 자유로운 자립적 국민들로서만 자유민주 국민국가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 전체주의 체제에 갇힌 민족의 자유 박탈 상태를 해방하기 위한 표현이 그의 ‘북진통일’론이었다.
 
  이어서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자유의 방파제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왜 방파제에 머물러야 되느냐? 우리는 자유의 파도가 되어 평양을 들이칠 것이다”라고 했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애국 정치인들은 이렇게 남한의 국민들뿐 아니라 미수복 북한의 민족의 자유와 인권 확보를 국가의 목적으로 했다. 그런데 이런 자유해방의 전통이 사라졌다. 대신에 체제전복 세력은 북한 전체주의 권력을 옹위하고 북한 동포의 인권문제는 억눌러 왔다. 이 체제전복 세력이 바로 ‘적폐’다. 문 정부는 이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기본적 자유를 모든 구성원에게 허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 자유를 이용하여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에 대처하는 데 허약성을 가지는 정치형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정당하고 보편성 있는 체제라는 이유로 당연히 전체주의 체제에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제1차 대전 때부터 제2차 대전 종전 무렵까지 서유럽 대부분의 자유민주국가의 체제가 전체주의에 의해 무너졌었다. 제2차 대전에서도 전체주의에 질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현존이 자유민주주의를 이 세계에서 구했다. 미국의 능력이라는 우연이 없었으면 세계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한국인들도 그 덕에 일제(日帝)의 지배로부터 해방이 됐다. 그리고 그 후 잠재력을 발현해 ‘기적’을 이룰 기회를 얻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그것도 70년째 전쟁 중인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사는 한국인들은 자유를 소중히 지키며 향유해야 한다. 그것은 각자가 이성적이어서 다른 모든 가치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유의 한계를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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