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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모던 뉘우스

문인들의 ‘단편 자서전’

‘서른이 넘도록 이다지 궁(窮)하니 관상학을 불 지르고 싶다’(채만식)

정리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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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삼천리문학》 1월호에 실린 문인들의 솔직한 자기 고백
⊙ 이광수, ‘지금까지 방랑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어’
⊙ 박태원, ‘얼굴은 길고, 여드름 자국이 흡사히 얽은 것 같아’
⊙ 주요한, ‘로맨스? 아직 공개 못 해’
서울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한국현대문학관 모습. (사진출처=www.kmlm.or.kr)
  한국의 근대화를 앞당긴 이들은 사상가도, 교육자도 아닌 문인이었다. 식민지 청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 문학 하는 일이었다. 문학의 길을 걷지 않으면 친일을 택해 일제의 식민지 하급관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문인들은 기꺼이 배고픔과 싸울망정 문학을 택했다. 시인과 소설가를 최고의 직업으로 알았다. 당시 문인 다수가 신문기자로 문학작품을 쓰고 발표했다. 문인만큼이나 매력적인 직업이 기자였던 셈이다. 식민지 검열이 심했지만, 문학적 비유와 상상력, 은유로 탄압을 피해갔다.
 
1938년 《삼천리문학》 1월호 표지.
  1938년 《삼천리문학》 1월호 부편(部編·일종의 권말부록)에 ‘작가 단편 자서전’이 실렸다. 6개의 설문에 문인들의 육성이 담겼는데 이야기가 진솔하다. 설문에 응한 문인 대부분이 신문기자 출신이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는 ‘과단성이 부족해 오해받는 일이 많다’고 했고 월북작가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은 “관상쟁이가 공명(功名)상이라 했지만, 지금 같아선 그것도 믿기 어려운 소리”라고 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가 이효석(李孝石)은 ‘명랑한 듯하다가도 금세 우울해진다’고 고백했고, 시인 임화(林和)는 ‘비결단성, 지속성의 결여! 누구에게 유전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댔다. 6개 설문은 이렇다.
 
  ① 나의 자화상(내 성격, 내 얼굴)
 
  ② 나의 연애 로맨스(이성과의 로맨스, 만일 불행히 없으시다면 선생의 연애관, 우(又)는 이성에 대한 감회 등)
 
  ③ 문학에 들어선 동기와 소년시대 또는 근일 애독하는 문예 전적(典籍)
 
  ④ 향수(고향에 대한 애수 또는 부모처자나 세상 명리(名利)를 다 버리고 멀리 방랑하고 싶지 않으신가.)
 
  ⑤ 증유(曾遊)의 반도 산하 속에 마음에 드는 승지(勝地)
 
  ⑥ 나의 과거 반생초(半生抄)

 
  원문을 살리되 현대 표준어에 맞게 고쳤음을 밝힌다.
 

  조선작가 단편 자서전
  《삼천리(三千里)문학》 부편
 
  이광수 李光洙
 
   ①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내 마음 본질 그대로 얼굴에 표(表)하기를 원하나 그렇게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내 성격은 의리에 있어선 편협하도록 힘과 열을 아끼지 않으나 항시 과단성이 부족하여 오해받는 일이 많습니다. 내 얼굴엔 눈이 가장 모든 나의 특장을 표한다고 생각합니다.
 
  ② 연애는 여러 번 해보았다 하겠지요. 그러나 한 번도 성공은 못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성의 혼을 항상 미화하고 싶어 하는 까닭에 아름다운 정신을 가진 여자를 만나면 많은 기쁨과 마음에 생동을 감(感)합니다.
 
  ③ 17세 시(時), 톨스토이의 종교와 문학설을 읽고 그때부터 문학을 해보겠다 생각했습니다. 근일은 보는 일보다 고독하게 과거와 미래, 인생을 명상하며 지냅니다.
 
  ④ 나는 정주(定州)를 잊지 못합니다. 부모동생을 일찍이 여의고 외로이 자랐던 곳도 그곳이요, 성장하여 나의 출세의 도를 닦던 곳도 그곳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방랑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⑤ 아마도 금강산인가 합니다.
 
  ⑥ 10세 전후의 소년시대, 부모를 여의고 고아 노릇을 했습니다. 20세 전후의 청년시대, 상해 등지로 방랑했습니다. 30세 전후의 장년시대, 작가생활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40세 전후의 성년(盛年)시대, 신문사 생활과 작가 생활도 했고 지금은 한가합니다.
 
 
  주요한 朱耀翰
 
   ① 얼굴은 관골이 환하게 생기진 못한 편이지요. 눈도 큰 편은 아닙니다. 길거나 둥글지도 않은 편입니다. 내 성격은 우울한 것과는 반대로 명랑한 생활을 해보려고 하는 편입니다.
 
  ② 로맨스, 더러 있겠지요. 비밀로 두어 두는 것을 나는 더 심각한 로맨스의 생명으로 알기 때문에 아직 공개 못 합니다.
 
  ③ 대정 5년(1916년-편집자 주) 동경서 문예지 《창조》를 창간하면서 자유시에 흥미를 가지고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 동기라 봅니다. 요새엔 어디 문예에 관한 책을 읽게 됩니까.
 
  ④ 마음은 항상 방랑성을 못 이기나 실생활이 그렇지 못합니다.
 
  ⑤ 평양 산하.
 
  ⑥ 10세 전후의 소년시대, 곱게 부모의 사랑 밑에 컸습니다. 20세 전후의 청년시대, 동경 등지로 공부 다녔고 문학에 뜻을 두어 꿈이 많았습니다. 30세 전후의 장년시대, 상해에서 돌아와 문필 생활했습니다. 40세 전후의 성년시대, 큰 장사를 해보는 중입니다.
 
1938년 《삼천리문학》 1월호 권말부록에 ‘조선작가 단편 자서전’이 실렸다. 여러 문인 가운데 이광수, 주요한의 글이 맨 앞에 실렸다. 당대 문단 내 위치를 느끼게 한다.
 
  이태준 李泰俊
 
   ① 관상쟁이가 이백과안(耳白過顔)이니 공명(功名)상이라 하였다. 지금 같아선 그것도 믿기 어려운 소리.
 
  ② 묻는 이 말씀이 연애 로맨스가 불행히 없으시다면…하였다. 없다면 ‘불행’의 표시가 될 것이라 있기는 있는데 절대 비밀이라 해두자.
 
  ③ 별로 동기랄 것이 없고 다른 방면보다 내게는 쉽고 흥미가 있을 뿐이다. 애독하는 책이 뭐냐는 말을 요즘 가끔 듣는데 성경 같은 책이기 전에는 누가 밤낮 보는 책이 있을 리 있나? 이런 것은 좀 선명히 물어줄 것.
 
  ④ 연약한 나비의 촉각일수록 앞에 오는 폭풍우가 먼저 느껴지듯이, 요즘엔 재조(災燥), 우울(憂鬱)은 말할 수가 없다. 지도에 없는 섬이나 어디 하나 없을까 하고 공상을 해본다.
 
  ⑤ 금강산은 좋으나 시각이 너무 피곤해진다. 산하 끼인 데로는 평양 목단봉(牧丹峯), 부여 백마강 같은 데가 좋더라.
 
  ⑥ 10세 전후 소년시대, 철원 봉명학교를 나와 원산, 경성, 안동 등지에 방랑하다. 20세 전후 청년시대, 동경에서 문학수업. 거기서 처녀작 〈오몽녀(五夢女)〉를 쓰다. 30세 전후의 장년시대, 경성에서 개벽사, 중외일보, 조선중앙일보 등에서 기자 생활. 창작집 《달밤》 《까마귀》 《구원(久遠)의 여상(女像)》 장편 등, 〈제2의 운명〉 〈불멸의 함성〉 〈성모(聖母)〉 〈황진이〉 등 발표.
 
 
  모윤숙 毛允淑
 
   ① 내 얼굴엔 항상 우수가 깃들어 있습니다. 얼굴이 둥근 편은 아니고 타원형에 가까우나 명랑을 잊었습니다. 눈은 한곳에 다다르면 떨어질 줄 모릅니다. 성격은 쾌활할 때도 많으나 너무 초조히 마음을 초달하는 때가 있어서 실수를 하기 쉽게 됩니다.
 
  ② 내 머리에 살아 있는 그는 영원히 늙지 않고 가지도 않고 쇠(衰)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형체로 만나 이야기해 본 적이 있어야지요?
 
  ③ 어릴 때 조선 고전소설을 읽다가 그만 소설에 취하면서부터 문자의 ○미를 알게 되었나 봅니다. 근일은 주로 예이츠의 시와 로렌스의 문학론을 공부합니다.
 
  ④ 각시풀 뜯던 때가 가장 그립습니다. 그저 어디로나 혼자라도 자꾸 가고 싶습니다.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을 못 가고 죽을 것 같아요.
 
  ⑤ 총석정, 푸른물, 높은 바위.
 
  ⑥ 10세 전후의 소년시대, 시내나 뫼 잔등 위에서 놀기 좋아했고 연설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20세 전후의 청년시대, 전문학교 시대가 즐거웠고 지금은 즐거움보다 세상 부대낌에 괴로운 때가 많습니다.
 
 
  박태원 朴泰遠
 
   ① 위선(爲先) 끈기가 없고 게으른 것이 탈입니다. 성미는 급한 편인데 아무쪼록 고치려고 수양이나, 역시 그것도 게을러서 별 성과를 얻지 못하나 봅니다. 얼굴은 길고, 여드름 자국이 흡사히 얽은 것 같은데, 혈색이 매우 좋지 못합니다. 그러한데다 머리를 일자(一字)로 치고 안경을 썼으니까, 그러한 상표(商標)를 혹 길에서라도 보시거든 난 줄만 아십쇼.
 
  ② 그런 일이 서너 차례 있었나 봅니다만은, 그 이른바 로맨스라는 것이 퍽 호화로운 것이었다든가 혹은 무던히 비창(悲愴)한 것이었다든가 하는 그러한 당당(堂堂)한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그저 ‘소품(小品)’ 정도의 것이었으니까, 무어 내놓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더구나 내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서든지 상대자의 명예를 위하여서든지, 아무 데서나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닙니다.
 
  ③ 동기래야 별것이 있겠습니까. 어렸을 적부터 이야기책을 좋아하였고, 또 글 짓는 7~12세 전혀 구(舊)소설. 12~13세에서 22~23세 이른바 고금동서의 명작이라는 것들의 애독. 그 후 7~8년 동안 남 앞에 자랑할 만큼 공부를 못 하였습니다.
 
  ④ 나는 원래 서울태생이라, 그럼 서울이 나의 고향인 셈인데 줄곧 서울에 있으니까 별로 서울에 대하여 유난스레 느끼는 정은 없습니다. 세상 명리가 시끄럽고 부모처자가 번거롭게 느껴지는 때가 없지 않으나 그렇다고 그렇게 무턱대고 방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⑤ 별로 떠돌아다니지도 못하였으나 가본 중에는 금강산이 역시 제일인가 봅니다.
 
  ⑥ 10세 전후의 소년시대, 선량한 소시민. 20세 전후의 청년시대, 유아독존적 문호 청년. 30세 전후의 장년시대, 불우한 구보(仇甫·박태원의 아호-편집자). 40세 전후의 성년시대, 글쎄요.
 
 
  채만식 蔡萬植
 
   ① ◇신경질(하나 사귀어만 놓으면 배쪽같이 사근사근, 정이 짙으리라.) ◇전일(前日)의 미남아(美男兒)이었만 나이란 할 수 없어 광대뼈가 나오고 볼에 그늘이 져서 실로 볼상이 없다.(그래도 코 하나만은 벼간(干) 함직 하건만 30이 넘도록 이다지 궁(窮)하니 관상학을 불 지르고 싶다.)
 
  ② ◇아무 연분(年分)에 아무개라는 여인을 맞아, 이리저리해서 그렁저렁 지내다가 그래저래 갈렸고 또 아무 연분에 아무개라는 여인을 맞아, 이리저리해서 그렁저렁 지내다가 그래저래 갈렸고, 해서 대범사오차(大凡四五次)…여개방차(餘皆倣此)요, 별무신도(別無神道). 단 이번은 우리 둘이 백년해로를 하자고, 굳게굳게 맹서를 했는데 애인 남녀 간의 언약이란 본시 국제조약 같아 싫은 때에도 그걸 도수(導守)하는 자가 어리석은 자라고 하느니라. 그러나 우리 내외야 절대 서로 배반할 리 없지.
 
  ③ ◇그저 문학을 가지고 싶어서 했지, 특출한 동기랄 것은 없었고, ◇유년 소년 적에는 〈춘향전〉 〈구운몽〉 〈추월색〉 〈장한몽〉 등 신구(新舊) 소설과 〈삼국지〉 〈수호지〉 〈동한(東漢)연의〉 〈서한(西漢)연의〉 등 안 읽은 게 별로 없고, ◇근일은 정해 놓고 ‘애독’하는 책은 없다. 문학에 한참 미쳐서 노서아(露西亞) 작가들의 제작(諸作)을 침식 잊고 읽던 때는 10여 년 옛일이고.
 
  ④ ◇팔순의 노친은 노상 그리나 고향이라면 정이 10리나 달아난다. ◇방랑 생활이란 건 시민 생활에는 한 개(個) 꿈이라, 원…하기야, 게오르그 카이젤은 그의 작 〈힝케만〉의 서두에다가 ‘꿈을 꿀 줄 모르는 사람은 살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어떨는지….
 
  ⑤ 제일 좋다는 금강산은 못 보았으니 모르겠고, 몇 곳 구경한 중에는 평양이….
 
  ⑥ 10세 전후의 소년시대, 남방농읍 소지주의 제(第)다섯째 망난둥이로 어리광배기요 심술꾸러기의 재동(才童)이었고. 20세 전후의 청년시대, 경성과 동경의 양도(兩都)에 걸쳐 착실한 공부꾼이요, 맹휴(盟休)의 괴수요, 작난(장난?-편집자) 도대장(都大將)이요, 그러나 퍽 순박도 했느니라. (세월아 나는 이 나이를 사지 않겠으니 내 20대를 도루 물러내렴.) 30세 전후의 장년시대, 교원 신문기자, 잡지편집원 등을 거쳐 (그동안 크게 방랑하면서 문학은 하는 시늉만 했고) 지금 비로소 문학으로 자리는 잡혔으나… 40세 전후의 성년시대, 문학적으로 커다란 야심은 품은 채로되, 미래지사(未來之事)요, 천기(天機)라 가벼이 누설치 못하리로다.
 
 
  이효석 李孝石
 
   ① 그다지 변화 많은 얼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사진을 박힐 때마다 얼굴의 모습과 인상이 달라지며 지금까지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고는 가진 적이 없다. 사진사가 내 얼굴을 잘 포착하지 못하듯 나는 내 성격을 잘 포착할 수 없다. 그다지 조화 많은 마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부드러운 줄만 알고 있으면 쌀쌀하여지고 쌀쌀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다시 부드러워지는 듯하다. 명랑한 듯하다가도 금시에 우울해지고 곧은 줄만 생각하면 때때로 굽은(원문은 ‘군은’-편집자) 적도 많다. 하기는 사람치고 누구나 다 그런 양면을 다소간에 가지고 있을 것이나 나는 내 얼굴과 성격을 생각할 때 늘 그것을 느끼면서 자책편달의 한 도움을 삼는다.
 
  ② 연애문제나 양성(兩性)문제에는 일정한 해결의 기준이나 척도라고 할 것이 없고 개별적으로 각각 그 경우를 따라 해결의 방법이 다를 수밖에는 없다. 연애의 열정은 그 어떤 열정보다도 가장 강렬한 것임으로 일정한 기준이나 방법의 구속을 받기를 싫어하는 까닭이다.
 
  ③ 동기라고 할 것이 없으나 어릴 때 〈추월색〉을 읽은 것이 아마도 문학의 벗을 알게 된 시초가 아닌가 한다. 철모를 때 체호프를 비교적 통독한 외에 특히 한 작가에 사숙한 일이 없다. 근일에는 너무도 오랫동안 읽지 않아서 머릿속에 백지같이 비인 듯한 느낌이 난다.
 
  ④ 향수라면 향수라고 할까. 늘 일종의 차지 못한 서글픈 마음을 느끼게 된다. 아무 곳에를 가 있어도-그곳이 아무리 편편한 곳이라고 하더라도 그곳이 있을 마지막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며 그 어느 다른 곳에 더 편편하고 마음을 잡을 곳이 있으려니만 생각된다. 어디인지도 모를 그곳에 막상 가보면, 또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은 물론이다. 고향에 간다 하더라도 마지막 안도의 감(感)은 어찌 못하는 것이며 그 고향 이외의 곳에 참으로 가야 할 고향이 있으려니만 생각된다. 이 감정에는 끝이 없으며 참으로 무한의 연속이라고도 할까. 이곳에는 항상 불안과 초려(焦慮)가 있으며 고향은 항상 보이지 않는 저곳에 있다. 그 고향을 구하러 여행을 떠나면 이번에는 도리어 이곳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정이며 서글픈 일생일는지도 모른다. 넓은 의미의 향수-늘 그것을 느낀다.
 
  ⑤ 넓게 놀지 못했으나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금강산을 첫손에 꼽아야 할 것 같으다. 그 속의 변화와 음영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끝이 없다. 한 가지 놀라운 인상-물이 푸르지 않고 초록인 것이다. 나뭇잎과 똑같은 초록색인 것이다. 그렇듯 맑고 아름다운 것이 금강산이다. 다음으로는 주을[朱乙·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남쪽의 읍으로 온천이 유명하다-편집자]의 오지를 들어야 할 것이며 동해 일대의 연안 또한 버리기 어려운 것이다.
 
  ⑥ 10세 전후의 소년시대, 석류 그린 조풍(窕風) 아래에서 신소설 추월색을 탐독하였고 아이들과 풀밭과 강가와 거리에서 놀았고. 20세 전후의 청년시대, 예이츠의 시에 심취해서 심끝 아름다운 꿈에 잠겼었고, 30세 전후의 청년시대, 40세 전후의 성년시대.(내용이 없다. 글이 길어서 싣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편집자)
 
 
  김광섭 金珖燮
 
   ① 나는 바이런의 고민에, ○리(판독 풀가-편집자)의 이상을 가진 키츠다. 아담과 이브가 죄 지은 동산에서 신은 나에게만 조의 기회를 주진 않는다. 스피드의 변화가 없어서 내게는 영화미가 없다. 신문기자나 되어 출세를 해볼까 하는데 함대훈(咸大勳)은 교장을 시키겠다고 한다. 대중 소개판이다. 얼굴이 생활의 도구라면 상인의 얼굴이 조금 있었으면 좋겠다.
 
  ② 촛불을 켜놓고 기다리고 있으면 벌써 지나갔다고 한다. 이것이 로맨스의 모두다. 현실적으로 연애란 그렇게 아름다운 것 같질 않다. 대개 성공률이 추근추근한 사람 편에 많고 침묵한 사람 편에 적은 걸로 보아 그렇다. 연애를 달콤하다고 하는 사람을 나는 이해치 못한다. 맘이 없으면 재미가 없고 허튼수작이 없으면 못났다고 하고…. 그뿐이랴. 연애에는 명령 없는 강제와 의미 없는 폭력이 여간 심하질 않다. 그럼에도 나는 감정의 정성을 다하야 거기에서 청춘의 취미 이상의 어떤 생활을 본다. 흉몽대길이다!
 
  ③ 아버지의 충고도 선생의 충고도 동무의 충고도 없이 그냥 문학에 들어선 것은 성격의 자연인 듯하다. 결국 할아버지의 피가 나빴던(원문은 ‘납벗든’-편집자) 모양 같다.
 
  소년시대- 빈 상자뿐이다. 근일 독서물-스윈번의 시집, 브레이크 시집, 릴레(릴케?-편집자) 시집, 콕토의 〈자크 마리탱에의 편지〉(원문은 ‘마리랑그에 보는 내 편지’-편집자).
 
  ④ 고향은 있어도 별로 향수라고 할 만한 애착은 없다. 나무도 급작스레 어산(魚産)공업 지대가 되어 버려서 나하고는 아무 인연 없는 딴 지역이 된 것 같아서….
 
  방랑은 하고 싶으나 대체 어디를 가면 여행권 없이 다닐 수 있을는지. 간데마다 귀찮게 굴어야(원문은 ‘굴리구야’-편집자) 방랑이 되어야지요.
 
  ⑤ 경주요, 경주. 임해전(臨海殿) 구비 긴 못가에서 탄식하고, 술잔을 띄워 나라를 잃고 놀던 포석정에서 눈물짓고, 석굴암에 올라가 동해만리를 바라보고 싶다.
 
  ⑥ 10세 전후의 소년시대, 정하게 씻어진 백사장에서 노는 아이들. 할머니가 어떻게 쓰다듬었던지 소년기 말명(末明)에 말 탄 성인이 되어 버렸다.
 
  20세 전후의 청년시대, 사업의 의욕의 허영을 피우면서도 이미 성인이 되었음에 불만을 품고 비너스의 탄생에 염치(念恥)를 알았다. 30세 전후의 장년시대, 허다한 백흑(白黑)을 남용하면서 세인의 기대를 방지코저 태만의 언어를 얻어 인생의 실의를 말한다. 40세 전후의 성년시대, 그때가 되면 아마 돈의 필요를 많이 느끼리라.
 
 
  임화 林和
 
   ① 비결단성, 지속성의 결여! 뉘게서 유전 받았는지 모르나 내 성격 중에 가장 추악한 부분입니다. 그럼으로 때때로 열범(熱犯)을 가지고 용(勇)의 부족을 메우려고 노력합니다. 또 한 가지는 신경질! 이 두 가지만 구비해도 좀 더 잘살아보겠습니다. 그러면 재능은! 20대에는 있다고 믿었으나 나이 먹어갈수록 없다는 확증이 날로 드러납니다.
 
  앞골은 턱이 들어간 겉 입에 힘이 적은 것 등이 나의 성격적 결함의 하나 같습니다. 오직 앞 골 전체의 비교적 선감(線感)이 많은데 자위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그것이 음영인 데는 우울합니다.
 
  ② 귀사가 요구하는 정도의 화려한 로맨스는 불행이 없습니다. 여성은 역시 아름다운 인간입니다. 그러나 향락의 대중으로 여자를 생각하는 것 같지 미운 것은 없었으며 또한, 단지, 아름다운 인간으로서만 자기를 주장하려는 여성처럼 천한 사람은 없습니다. 역시 남성의 좋은 반려로서 자기를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에는 역시 사회적 의무 가운데 살려야 할 것입니다.
 
  ③ 문학은 역시 좋아한 때문이겠지요. 소년시대의 감상과 공상이 문학에 나를 접근시켰고 문학으로 몸을 세우려는 생각은 나의 사상의 동향을 불가분시했었습니다. 최초부터 나는 문학의 사회적 생활적 의의 때문에 문학에 열정을 받쳤습니다. 물론 그 생각 자체를 경의(輕義)한 시대도 있지만 오새는 역(亦) 우리 조선작가의 작품을 열독하고 근일엔 ‘고리키’의 초기 작품을 특별히 흥미로 가위(可謂) 열독하고 있습니다.
 
  ④ 나의 고향은 서울 낙산(駱山) 밑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향수란 것을 느낄 만치 그곳에 정들지는 않았습니다. 조금도 서울이 나의 고향이거니 하여 그리워한 일이 없습니다. 10년 가까운 변동 많은 생활에서 나의 마음은 대부분 향수라는 정조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외지에 돌아다닐 때 반도 그것에 대한 깊은 애정은 오늘날까지 뇌수에 뿌리 깊이 백혔습니다.
 
  나는 역시 향수를 관념적으로밖에 느끼지 못하는 일인(一人)입니다. 그러나 처자나 소위 명리(名利)를 떠나 방랑하고 싶다는 취미는 안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곳을 여행하고 싶다는 욕망은 이것과는 전연 별건인가 합니다. 나는 은자(隱者)가 아니라 현실인으로 세계를 알고 싶습니다.
 
  ⑤ 널리 산하를 구경 못하야 이렇다 할 승지를 기억하고 있지 아니하나 중학 때 수학여행으로 강경(江京)서 배를 타고 백마강(白馬江)을 나가던 황혼은 감회 깊은 정경에 하나였습니다. 문학 소년적 감상이 어린 정취를 도왔을 것입니다. 지금도 다시 한 번 늦은 가을 조그만 배를 타고픕니다.(원문은 ‘곳푸라나사이라’. 잘못된 문장으로 추정한다.-편집자) 낙일이 기울어진 강을 유유히 거슬러 보고 싶습니다.
 
  ⑥ 10세 전후의 소년시대, 10살에 동대문 안에 있던 사립학교가 해산되는 바람에 보통학교 1년 급(級)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버지는 자상하시고 어머니 슬하에 나는 행복된 소년이었습니다. 20세 전후의 청년시대, 중학교를 5년 급에 집어던지고 난 지 2년 후 어머니도 돌아가고 가산도 파(破)하고 나는 집에도 안 들어가고 서울거리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헤매었습니다. 괴로운 때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강한 행복에 불탔습니다. 30세 전후의 장년시대, 금년이 30. 이곳에 처자 데리고 병을 다스리며 하는 일 없이 세월 보냅니다. 마음으로는 여러 가지 자기 반생의 사업(?)을 공상하고 있습니다. 심심하면(원문은 ‘심이하면’-편집자) 바다에 나가 고기를 낚는 게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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