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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제독의 Periscope(잠망경) 〈10〉 병장(兵長)의 군대, 장군(將軍)의 군대

글 : 유영식  예비역 해군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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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용산의 국방부 장관과 전방 내무반의 총기 사건에 인과관계가 있는가?”라며 국방장관 해임 여론에 제동 걸어
⊙ 해군, 방산비리 사건 이후 공관병 폐지 등 급진적 개혁 추진
⊙ “계급은 누리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일하라고 주는 것”

유영식
1962년생으로 해군사관학교를 39기로 졸업했다. 35년9개월간의 군 생활 가운데 17년간을 해군본부와 국방부 대변인실 등에서 정훈장교로 일했다. 2009년부터 5년 동안 해군 공보과장으로 재직하며, 최장수 해군공보과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14년 해군 준장으로 해군본부 정훈공보실장(해군 대변인)을 지냈다.
2015년 4월 3일 명예해군운동추진계획보고회의. 해군은 명예해군운동을 통해 자기개혁에 나섰다.
  대한민국 남자는 병역의 의무를 지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군 복무를 한다. 그래서인지 군대를 경험한 사람은 자기 경험을 기초로 군(軍)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다. 고정관념이 형성되는 것이다. 1986년 2월 필자는 어청도에서 해상 대(對)간첩작전이 주임무이던 PK(patrol killer) 171호정의 부장(副長)을 맡고 있었다. 장교는 정장(艇長), 부장, 기관장 등 세 명, 승조원은 모두 28명이었다.
 
  매일 약 30마일 거리의 경비해역이 주어지면 그 지점으로 이동해서 5시간 해상경비에 투입된다. 저녁 8시 출항하는 함정은 새벽 3시경 기지에 복귀하고, 23시에 출항하는 함정은 새벽 6시경 귀항한다. 젊은 승조원들은 밤마다 야식을 먹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느꼈다. ‘육·해·공 전방지역의 전투력은 라면에서 나온다’고 ….
 
 
  라면 담당 김 일병
 
PK-11기러기. 고속정은 경량화를 위해 식탁이 없었다.
  고참 부사관 및 장교의 라면 당번은 위생병인 김 일병이었다. 그의 후임이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인천대 간호학과를 다니다 입대한 김 일병의 하루 일과는 매일 밤 라면 20개를 끓여야 마감이 되었다. 흔들리는 배에서 작은 전기 쿠커에 라면은 4개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당시 중위였던 필자는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물었다.
 
  “김 일병, 라면 몇 개를 끓여야 제대하나?”
 
  그는 즉시 대답했다.
 
  “5800개 정도 끓이면 전역합니다.”
 
  깜짝 놀랐다. 경량화(輕量化)를 위해 고속정에는 식탁 하나 없었다. 김 일병이 체감하는 군대란 흔들리는 고속정에서 ‘라면 끓이기(국물 흘리지 않고)’였다. 부장인 필자가 작전명령, 항해 당직 전투배치 사격훈련, 수리 소요와 소속원 휴가계획, 봉급지급 및 항해수당 계산에 신경 쓸 때 그는 라면에 신경을 썼다.
 
  아무리 애를 써도 갑판에 라면 국물이 흐르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깐깐한 갑판장 유원줄 상사는 늘 위생병에게 “국물 좀 흘리지 마라. 이 배가 무슨 부식정이냐?”고 농을 했다. 김 일병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타사가 어청도 가게(전남상회)에서 무엇인가를 들고 출항 전 나타났다. 짜파게티였다. 맛도 있고 국물도 없다. 위생병은 너무도 좋아했다. 간부들은 항해수당 상당 부분을 짜파게티를 사는 데 지출했다. 짜파게티는 330원, 라면은 130원이었다. 부식비를 일부 지원해야 하는 필자에게 짜파게티는 비싼 야식이었다. 승조원들이 원하는 만큼 짜파게티를 사 줄 수 없었다. 이제 미안함을 전한다. 30년 만에.
 
 
  운전병의 평가가 정확하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붙잡힌 우리 선원들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은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였다.
  군에는 이병부터 대장까지 계급이 있다. 힘들지만 격조 있는(?) 전투병 이외에 PX병, 식당병, 간부숙소 당번병, 운전병, TMO 근무병 등 하는 일도 다양하다. 군 복무를 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군대를 해석한다. 운전병들은 장군 및 지휘관들의 면모를 꿰뚫고 있다. 그리고 운전병의 인성 평가가 대체로 정확하다.
 
  얼마 전 한 장성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 의혹 문제가 제기됐다. 군은 많은 국민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운전병은 전역(轉役)을 하루 앞둔 장성의 마지막 퇴근을 도우면서 전투복 상의에서 손 편지를 꺼내 “그동안 자식같이 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울며 포옹했다. 그 순간 그 장성도 “고마웠다”며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 장성은 그에게 “제대해서 복학하면 꼭 만나자”고 했다. 다음 해 두 사람은 까만 밤하늘 아래 관사 주차장에서 했던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군에서 엉뚱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군 당국에서는 국민들에게 “군을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 공보장교로서 필자도 여러 번 그랬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마다 다양한 군 경험을 갖고 있는 국민들에게 그러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연평해전 같은 경우는 전우들이 여러 명 전사하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공보장교로서 그들의 용전을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고위 장교들의 일탈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는 참으로 궁색했다. 조영길 국방장관 시절 북한을 탈출한 6·25 참전자의 송환 문제가 발생했다. 국방부·통일부·외교부가 연관된 일인데 모두 모르쇠로 일관했다. 3개 부처가 모두 연일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국방부 인사국장이 복지 관련 사안을 브리핑하기 위해 기자실에 들렀다. 기자들은 탈북 참전용사 문제를 집중 질문했다. 인사국장은 주무 부서장이 아니었지만 기자들의 설명을 듣고 그 자리에서 “그러면 잘못했다”고 답변했다. 다음 날 아침 신문에는 ‘국방부 잘못 시인, 관계자의 부주의 결과’라는 기사가 나갔다. 3주간 끌던 문제가 하루 만에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여기서 보듯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이 구질구질하게 변명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모든 사건에는 사정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답이다.
 
  군대가 심하게 비판을 받는 경우는 대개 장군의 일탈, 고급 장교의 성(性)추행이나 성폭행, 그리고 경계태세 실패이다. 사실 이것만 아니면 군대는 그렇게 욕먹을 일이 없다. 1999년 연평해전 이후 해상교전을 치러 왔던 해군은 ‘패전(敗戰) 지휘관은 갈 곳이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용전분투한 전투원의 행위는 선양(宣揚)해야 하지만, 전투가 승리로 끝났다는 확증을 장병들과 국민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건사고에 전전긍긍하는 지휘관들
 
  대한민국 국군의 장교와 부사관들은 병사들이 안전하게 군 생활을 하고 무사히 전역하게 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남성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데서 나온 당연한 의무다. 그래서 ‘자식을 군에 맡긴다’고 표현한다. ‘맡겼으니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 참 답답해한다. 얼마 전 사격장 사망 사건도 그렇다. 중대장이 책임져야 하나? 병사의 죽음에 대해 지휘관은 ‘사회적 죽음’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가?
 
  국가는 마땅히 안타깝게 사망한 젊은 병사의 가족들을 충분히 위로하고 그를 기려야 한다. 하지만 ‘군대 내 사고는 모두 지휘관의 책임’이라는 등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고려했으면 한다.
 
  직업군인에게 혜택은 딱 한 가지다. 연금이다. 그 외에는 이렇다 할 복지혜택이 없다. 지난 20년간 군인 복지를 개선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장관·총장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말 없는, 말 못하는 군인들의 복지는 점점 낙후되었다.
 
  군인들이 복지향상을 주장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군 골프장 문제라고 생각한다. 직업군인들이 군 골프장을 값싸게 이용하는 것이 국민들에게는 마치 엄청난 혜택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경계태세가 높아진 상황 속에서 군 골프장을 이용했다가는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 십상이다.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직위로 갈 가능성이 있는 군인은 골프장 이용에도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계룡대나 전방부대 간부들은 “비상소집 시 등산하다가 상황실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골프장에 있다가 들어가는 것이 더 빠르다”고 항변한다. 아무리 그래도 ‘국민정서법’을 이기기는 힘들다.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는 이들은 결혼 후 제1의 사명인 자녀교육에 제한받는다. 대개의 경우 도시에서 벗어나 생활해야 한다. 모든 공무원이 6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세상인데 군인 중에 60세까지 일하는 사람은 딱 7명, 즉 대장(大將)인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1·2·3군 사령관뿐이다. 그 외의 모든 직업군인은 40세부터 50세 중반 이전에 퇴진한다.
 
 
  ‘진급’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군인들
 
  이러한 복무 여건은 결국 진급에 대한 압박으로 다가온다. 군에서 진급은 개인적으로는 사활적 문제다. ‘진급’이라는 문제 앞에만 서면 군인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조직을 이끄는 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토너먼트식 진급(To Be or Not To Be)’엔 생각해 볼 부분도 있다.
 
  그런 데다가 앞에서 본 것처럼 지휘관은 군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군인은 그래서 운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자기의 잘못이 아닌 일로 인해 자신의 미래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군인들은 늘 답답해한다.
 
  2005년도인가? 전방부대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 때문에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이 퇴진의 기로에 선 적이 있었다. 여당도 장관 해임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이즈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글을 올렸다. 내용인즉슨 인과관계론(因果關係論)이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이 임금의 부덕함이고 그래서 쫓겨나는 것이 합당한가? 용산의 국방부 장관과 전방 내무반의 총기사건에 인과관계가 있는가? 현대에도 그렇게 일을 처리해야 하나?〉라는 취지의 글이었다. 사건사고만 나면 지휘관의 책임부터 묻던 한국식 문제해결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었다. 이 글로 논란은 일거에 수그러들었다.
 
 
  해군의 자기 개혁
 
정호성 전 해군참모총장은 2015년 3월 26일 해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참모총장 특별정신교육을 실시했다.
  한때 ‘해피아(해군사관학교 출신 방위산업 종사자)’라는 오명(汚名)을 낳기도 했던 방위산업 비리 수사도 국민들의 마음을 군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해군은 당시 세월호 이후 시작된 방산비리 수사와 일부 장성 및 영관급 고급 지휘관의 일탈행위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해군은 ‘제2의 창군’ 수준으로 ‘해군문화 대혁신’을 통해 도덕적인 조직으로 재탄생하겠다면서 ‘명예해군운동’을 펼쳤다. 3년 전이다.
 
  당시 해군은 명예·헌신·용기를 3대 핵심가치로 새로 선포하고, 다음과 같은 명예해군 7대 윤리지침을 선정하여 추진하기로 했다.
 
  1. 국가자산(인력, 재물)을 절대 사적(私的) 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
  2. 금품수수, 부당이익을 취하지 않겠다.
  3. 공공예산을 절대 부정 사용하지 않겠다.
  4. 인사문란 행위를 일절 하지 않겠다.
  5. 군인으로서 품위를 위반하여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지 않겠다.
  6. 직권남용 행위를 하지 않겠다.
  7. 조용한 내조를 통해 건전한 해군 가족문화를 정착하겠다.

 
 
  공관병 제도 폐지
 
세종대왕함.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추적할 수 있는 이지스함이다.
  특히 해군은 당시 급진적이라 생각될 정도의 혁신적인 제도를 추진했다. 먼저 공관에 상주하던 공관병을 모두 없앴다. 과업시간에만 근무하고 일과 후에는 생활관으로 퇴근하도록 했다. 다만 참모총장 공관에는 행정병 1명만 상주하여 긴급전문 수발, 수시보고, 문서관리 등 행정 및 시설관리·안전업무를 담당하게 했다. 이 경우에도 조리나 세탁, 애완동물 사육, 영농활동 등은 일절 취급하지 않도록 했다. 해군작전사령관은 야간에 운전병 1명만 공관에서 취침하여 24시간 비상대기 태세를 유지하도록 했다. 전(全) 해군에서 병사 2명만이 야간에 장성 공관에 대기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공관비품도 지휘관 교대 시마다 취향에 따라 교체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시키고 내구연한 초과 품목만 부대 교체계획에 따라 집행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장성급 지휘관의 부관이나 보좌관 등 부속실 인력의 사적 목적이나 근무시간 외의 운용도 철저하게 통제했다.
 
  해군은 국가자산(재물, 예산, 시설, 장비, 비품, 차량 등)의 사적 목적 사용도 철저하게 통제했다. 관용차량도 근무시간에 한해 공적(公的)으로만 사용하도록 제한했다. 주말 골프운동, 종교활동 참석 등에 가능한 자기 소유 차량을 사용하도록 했다(나중에 상부 공용차량 운행지침에 따라 영내 종교시설 및 군 운용 체력단력장의 출입에 공용차량 사용은 허용됐다).
 
  부대 기념품 제작 시에는 반드시 부대 명의로 하고 지휘관 개인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외부에서 공식 기념품을 받았을 경우에는 반드시 부대 내 적정 장소에 비치하도록 했다. 실제로 당시 정호섭 총장은 계룡대 골프장을 이용할 때 개인 차량을 사용했고 군사교류 시 받은 기념품 일체를 사관학교 교육장에 기증하고 전역했다.
 
  해군은 군인 상호간에 일체의 금전이나 선물, 향응 수수행위를 금지했다. 방산, 군납 직무관련자와의 골프, 여행, 개별적인 식사도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진급심사에서 선발된 사람에게 보내는 축하전화나 축전 또는 화환 등도 철저하게 금지시켰다. 심지어 연말연시, 명절, 생일, 결혼기념일 등을 기리는 인사 목적의 연하장이나, 휴대전화를 이용한 문자 메시지도 금지시켰다.
 
  비(非)전투사고와 군기(軍紀)사고의 원인이 되는 불건전한 음주 회식을 하지 않도록 회식은 한 자리에서 한 가지 술로 밤 10시 이전에 반드시 마치고 숙소로 복귀한다는 1110운동도 추진했다. 지휘관이나 상관에 의한 소위 ‘권력형 성군기 위반행위’를 예방하기 위하여 성폭력 범죄자는 원아웃(one-out)제도로 일벌백계하는 준엄한 제도를 시행했다.
 
 
  “세금 아깝지 않다”는 소리 듣는 국군이 되길
 
2014년 12월 30일 장성으로 진급한 필자 등에게 한민구 장관은 “계급은 누리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일하라고 주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해군·해병의 전 부대를 20여 차례 순시하면서 고위직 간부들에게 “국가 재물과 인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며 비리·성폭력에는 무관용 및 원아웃이라는 엄격한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교육을 했다. “장성 및 대령들이 솔선수범하여 국가와 해군에 헌신하고, 국민에게 떳떳한 언행과 책임지는 자세로 해군을 가장 정직하고 도전적인 조직으로 만들자”며 명예해군운동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구속력을 갖도록 규정화했다.
 
  이 같은 명예해군운동은 일부에서 “‘하지 말라’는 식의 제재 위주로 되어 있고 너무 급진적인 내용이라 성직자(聖職者)들이나 실천 가능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노력의 결과 군의 도덕성 회복이나 윤리의식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전쟁에서 적(敵)과 싸워 이기는 것이 존재목적인 군에 있어서 전투력의 근원은 철저한 윤리의식 및 도덕성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 한시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군 장성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장관이 삼정도(三精刀)를 주면서 한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계급은 누리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일하라고 주는 것이니 합당한 생각과 행동으로 본인의 생활상을 늘 살피는 것이 국민의 신뢰와 장병에게 믿음을 주는 첩경”이라는 말이었다.
 
  아덴만 작전 성공 때처럼, 종래 연합사에 의존하던 북한 미사일 궤도를 세종대왕함이 포착해서 실시간으로 보고할 때처럼, 대한민국 국군이 국민들로부터 “세금 아깝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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