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對中 굴욕외교

사회학도의 역사 읽기 〈13〉 좌파 민족주의는 왜 중국 앞에선 작아지는가?

- 민족주의의 두 얼굴과 반미친중(反美親中) 노선

글 : 유광호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연구위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민족’은 종족적·낭만적으로 이해하면서 대한민국 정당성 흔들려
⊙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는 세계·사회를 양극화(兩極化) 구조로 보고 투쟁의 필연성을 요구하는 점에서 동일
⊙ 좌파 민족주의 세력의 반미친중은 사상이 북한·중국과 동류(同類)이기 때문
2017년 1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하루 앞두고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는 평화협정행동연대 회원들이 반미 시위를 벌였다.
  지난 10월 31일 한중(韓中) 양국 정부는 이른바 ‘사드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 합의문은 합의에 참여한 양국 교섭대표의 급에서부터 전혀 격이 맞지 않았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무도한 보복조치로 인한 우리 측의 어마어마한 피해에 대한 중국 측의 사과나 대책도 없었다. 다만 향후 관계 개선과 한중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을 뿐이다. 대중(對中) 굴종외교의 극치였다.
 
  게다가 한국의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사드 추가배치·한미일 군사동맹·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참여 불가라는 이른바 ‘3불(不)’ 방침을 공언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국가주권의 핵심인 안보주권을 포기한 모양새다. 반면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訪韓)을 전후해서는 대규모 반대 시위가 열렸다.
 
  왜 문재인 정권은 미국에 대해서는 뻣뻣하면서 중국 앞에만 서면 이렇게 작아지는가? 탄핵 촛불시위를 이끌었던 그 막강한 좌파운동 세력은 반미(反美)운동에는 그렇게 극성이면서 중국의 무도함에는 왜 일언반구도 없는 것일까? 민생문제를 둘러싼 정책을 두고는 입장과 세력이 갈려도 국격(國格)에 관련된 문제나 국가안보 문제를 두고는 대개 단결하는 것이 보통인데 어째서 이 사회는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가?
 
  사실 이 나라에는 두 개의 국민이 존재하고 있다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반미친중(反美親中)하는 극렬한 국민들과 억압된 심정으로 중국을 규탄하고 미국을 우호하는 국민들이 있다. 이들은 각각 다른 종류의 민족주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대주의의 유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우선 한국인들이 사대주의(事大主義) 근성이 있어서 그렇다는 주장이 있다. 대국(大國)을 섬긴다면 막강한 미국에 대하여 숙여야지 미국 알기는 우습게 하면서 왜 중국에 대해 그렇게 알아서 먼저 기는가? 중국 로비스트로 불리는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과 중국을 가리켜 만들어 낸 G2라는 말이 유독 한국에서만 유행하고 있지만, 국력에 있어서 중국은 미국에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중국 왕조에 사대한 전력(前歷)이 있어서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것일까?
 
  조선시대의 대중 사대주의는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전해질 기회가 없었다. 현대 이후 중국은 6·25전쟁 때 중공군의 인해전술 얘기로만 전해올 뿐 오랫동안 가난한 나라로 알려져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청(淸)나라를 싫어해서 중국 화교들도 한국에서는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우리가 오늘날에도 중국에 사대할 역사적 이유는 희박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국민을 싸잡아서 어떻다고 얘기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오늘날 중국에 고개 숙이는 것은 분명히 특정 정파와 세력이 그러는 것이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주(自主)’하고 싶은 욕구는 떨쳐 버릴 수 없는 민족주의의 한 면이다. 북한과 남한의 ‘반미’ 세력은 이 점을 파고든다. 하지만 스탈린의 괴뢰로 시작한 북한이 자주를 말할 자격이나 있는가? 자주국방이라는 미명 아래 전시(戰時)작전권 환수로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하고 한미동맹을 파기하겠다는 것 아닌가? 서구 선진국인 독일·영국·이탈리아 등은 자존심이 없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미군 사령관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가?
 
  미국과 동맹을 성사시켜 한국의 안보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이승만 대통령이 진정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자였다. 우리가 미국에 예속돼 있는가? 오히려 우리가 미국을 70년간 착취(exploitation)했고 미국이 한국에 잡혀 있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의 운명과 크게 관련되어 온 강대국이다. 때문에 ‘민족주의’라는 측면에서 살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민족’과 ‘민족주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이지만 난제 중의 난제다.
 
 
  ‘네이션’ 개념의 등장
 
역사사회학자 리아 그린펠드.
  무릇 문화의 변동은 ‘전파(傳播)’에 의해서 일어난다. 생명체가 돌연변이(突然變異)에 의해 진화하는 것과 같다. 인간생활에 필요한 교환이나 거래는 원시시대부터 존재해 왔지만 근대 자본주의가 발생한 것은 영국과 그 주변이었다. 그것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런 인식은 ‘서구(西歐)중심주의’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사실인 것이다.
 
  ‘민족(民族)’이란 개념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에서 16세기에 성립되기 시작해서 18세기에 프랑스에 도입되었다. 그 영향을 받아 독일 등지로 퍼져 나가면서 각각의 토착적 처지에 맞게 변용되면서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우리의 경우는 19세기 말에 일본을 통해 ‘민족’이란 개념을 접하게 되면서 우리의 ‘민족주의’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민족’이란 조어(造語)는 종족적 의미가 강하게 들어간 말이었다.
 
  이처럼 문화는 전파되면서 변용되어 정착되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문화 현상의 원형(原型)을 아는 것은 우리 자신의 그것을 이해하는 데 긴요하다.
 
  역사사회학자 그린펠드(Liah Greenfeld)에 따르면,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원형은 영국의 잉글랜드에서 형성되었다. ‘내셔널리즘’은 계층·지역적 차이를 넘어선 ‘인민’으로서의 ‘네이션(nation)’-민족이나 국민 중 어느 하나로만 옮길 수 없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에 대한 귀속의식이다. 그 ‘인민’은 ‘주권’을 보유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내셔널리즘’은 근대 현상이다.
 
  로마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네이션’이라는 말은 그것이 사용되는 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지그재그형 발전의 역사를 걸어왔다. 로마시대에 ‘네이션’이라는 말은 ‘외부인(foreigner)’을 의미했다. ‘네이션’은 중세 유럽의 대학에서 학생의 출신지별 집단, 나아가 기독교 공회의에서는 각지를 대표하는 기독교인의 집단을 의미하게 된다.
 
  그 후 16세기 잉글랜드에서는 지성과 교양을 갖춘 신(新)귀족과 중간층에 속한 사람들이 종래의 봉건적 세습귀족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그때까지 멸시받아 온 하층민을 가리키는 말인 ‘인민(people)’, ‘네이션’ 혹은 ‘잉글랜드인’이라는 개념으로 칭하고 지위상승을 정당화했다. 이러한 ‘개념 혁명’을 거쳐 ‘네이션’ 개념은 17세기 영국의 시민혁명 과정에서 민주화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
 
 
  시민과 종족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이러한 민주적인 ‘네이션’ 개념이 각지로 전파·확산돼 가면서 점차 ‘네이션’을 문화·역사적으로 ‘독특한’ 집단으로 해석하는 종족(ethnic)의 ‘네이션’ 개념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시민적(civic)’과 ‘종족적(ethnic)’이라는 두 가지의 대극적(對極的) 관념을 기본 원리로 하여 구성되게 되었다. 영국·미국·프랑스가 전자(前者)에 해당하고 독일·러시아·일본·한국 등 후발국들이 대개 후자(後者)에 해당한다. 물론 위의 구분은 어디까지나 이상형(理想型)이다. 실제 각 ‘네이션’의 ‘내셔널리즘’은 비율의 차이가 있지만 두 가지 측면을 다 갖고 있다.
 
  번역어 선택이 입장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네이션’에 대한 번역이 대표적이다. 이것을 ‘민족’으로 번역하느냐, ‘국민’으로 번역하느냐는 정말 어려운 문제다. 일본은 19세기 서구 문화 수용기에 우여곡절 끝에 ‘민족’으로 번역했고 그것이 조선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2차 대전 후 ‘民族’과 ‘民族主義’라는 말을 쓰지 않고 그냥 ‘ネ—ション’으로 음역하고 있다.
 
  ‘네이션’에는 종족·문화·역사적 의미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민족’의 의미와 근대국가의 주권을 가진 집합체로서의 ‘국민’이라는 의미가 함께 들어 있다. 또 구성하고 있는 주민들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두는 ‘국가’라는 말이 될 때도 있다. 국제연합의 원어인 ‘United Nations’에서 ‘nation’이 그런 경우다.
 
 
  종교를 대신한 민족주의
 
  이와 같이 근대주의 관점과 정치적 측면으로 끝나지 않는 민족과 민족주의기 때문에 그것들은 애매모호하고 복잡한 현상을 유발한다. 민족주의가 가진 그런 문화적이고 종족적인 마력(魔力)이 대중들에게 저항하기 어려운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해 왔다. 민족주의 연구로 유명한 사회학자 스미스(Anthony Smith)는 “민족주의는 과거에 전통과 종교가 해 오던 일-구원-을 근대사회에서 하는 대행자(代行者)로서, 하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훨씬 넘어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인화성 높은 여러 운동이 일어난다.
 
  우리의 경우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를 딜레마에 빠트리는 여러 문제에 직면해 왔다. 민족과 민족주의가 갖고 있는 낭만성과 그것에 대한 한국인들의 충성심을 틈새로 이용하여 북한 정권과 남한 좌파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폄훼하고 전복(顚覆)하기 위한 갖은 공작과 운동을 벌여 오고 있다.
 
  민족은 무엇보다도 ‘기억의 공동체’요 역사 공동체이다. 그런데 반미친중 세력이 갖고 있는 기억과 역사인식은 대한민국이 공인해 온 그것과 달라도 너무 달라서 전복적이다.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과 그 혁명적 의의, 북한 정권의 부당성과 남한 적화(赤化)노선, 권위주의 정부의 업적, 한국에 있어서의 미국의 의미 등을 모두 부정한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미국 제국주의에 침탈되고 있는 예속국으로 본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미국은 과거에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과 북베트남의 호찌민(胡志明)을 ‘공산주의의 옷’을 입은 민족주의자라고 판단했다.
  일찍이 독일의 민족주의자이자 사회학자인 베버(Max Weber)는 “한 국민을 정의하는 것은 언어도, 종족성(ethnicity)도, 지리도 아니고, 민족적 신심(信心)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사(政治史),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기억”이라고 했다.
 
  반미 세력의 정치적 기억을 볼 때 남한 내에만 하더라도 두 개의 국민 내지 민족이 대치하면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지경이다. 스미스는 “민족주의는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민족의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국가에 충성하는 교의(敎義)는 애국주의(patriotism)다.
 
  민족주의는 민족을 관심의 중심에 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반미친중 세력은 국가를 넘어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북한 정권과 그 노선에 대한 호응을 예사로 해 왔다. 이들 반미친중 세력의 민족주의는 어떤 민족주의일까?
 
  미국은 과거에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과 북베트남의 호찌민(胡志明)을 ‘공산주의의 옷’을 입은 민족주의자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미국은 중·소(中蘇)분쟁으로 소련과 대립하는 마오쩌둥을 보고 1970년대 초 중국(중공)과 관계개선에 나서 공산권을 분열시켰다. 미국은 호찌민의 북베트남이 중국에 복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하고 남베트남 철수를 결심할 수 있었다.
 
  레닌과 스탈린은 자본주의 세계와의 투쟁에 식민지 및 반(半)식민지 민족을 동참시키는 전술을 채택했다. 탈(脫)식민지·탈제국주의의 과정 때문에 우리 민족을 포함하여 후진사회 내에서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두 이데올로기가 융합되었다. 바로 ‘공산주의적 민족주의’ 내지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다. 중국의 마오쩌둥이 그것의 원조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두 이데올로기는 세계와 사회를 양극화(兩極化) 구조로 보고 투쟁의 필연성을 요구하는 동일한 형식구조를 가지고 있다. 선민(選民)과 그들의 압제자 사이에 중간적 계층, 수동적 관객이나 협력자를 위한 공간은 없다.
 
  이상적인 새로운 사회에 관한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의 비전 차이는 엄청나게 큰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와 이미지에는 상당한 중첩과 상보성(相補性)이 있다.
 
  좌파 민족주의는 여기에 공산주의로부터 당 조직과 ‘민주집중제’라는 강철 같은 규율을 도입, 더욱 강력해졌다. 민족주의의 단순성과 융통성은 대중의 충성심 획득경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민족주의는 마르크스주의보다 더 큰 생명력과 지구력(持久力)을 가짐으로써 ‘개발도상의 사회들에서 옳고 어쩔 수 없는 힘이 민족주의’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친중(親中)’의 사상적 커넥션
 
  이는 민족이 분단돼 있는 우리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를 아는 북한은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체제 내부 결속은 물론 남한 와해 공작을 해 온 지 오래다.
 
  더욱이 중국과 반미친중 세력 사이에는 공유(共有)하는 역사가 있다. 일제(日帝)시대에 조선의 무장투쟁 세력은 중국공산당에 소속되어 만주를 필두로 연합항일 투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 이른바 ‘민족해방 무장투쟁’을 반미친중 세력은 최고의 민족적 정당성으로 친다.
 
  그 전사(戰士) 중의 하나였던 김일성에게 북한 정권이 맡겨졌다. 중국은 소련과 함께 김일성의 6·25 남침을 승인했다. 중국은 미군과 한국군이 중심인 유엔(UN)군이 반격하여 북한 수복 통일을 눈앞에 두었을 때,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이름 아래 대군을 투입하여 북한의 소멸을 저지했다. 그리고 중국은 북한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사이다.
 
  좌파 민족주의 세력은 대한민국의 동맹국인 미국에 반대하고 북한의 동맹인 중국에 굴종하는 것이다. 세계관, 즉 사상이 동류(同類)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일본에 대한 ‘르상티망(ressentiment)’ 즉 증오·원한·복수심을 공유한다. ‘적(敵)의 적은 친구’라는 철칙이 있기 때문에 ‘반미’는 ‘친중’으로 흐르기 쉽다. ‘친중’의 사상적인 커넥션이 이와 같기 때문에 좌파 민족주의 세력의 ‘반미친중’ 신념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남베트남은 민족주의를 가장한 선동에 망했다”
 
남베트남이 패망한 후 보트피플로 남중국해를 떠돌다가 한국에 온 난민들. 남베트남은 민족주의를 가장한 선동 때문에 망했다.
  반미 민족주의 세력이 해 온 운동들이나 북한의 남한혁명 전략이자 남한의 NL주사파(主思派)의 혁명론인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은 민족이란 개념이 가진 낭만적 호소력을 악용한 철저한 정치 프로그램이다. 북한의 이른바 ‘민족대단결’도 남한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합법화하여 대한민국을 전복하는 투쟁을 자유롭게 하라는 것이다. 남한에서의 ‘통일운동’도 모두 이치에 맞지 않는 짓으로 친북(親北)운동이고 대한민국 전복운동의 일환이었다.
 
  미국이 떠난 후인 1975년 남베트남은 106만명의 보트피플이라는 세기적 비극을 남기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주(駐) 남베트남 마지막 공사였던 이대용은 이렇게 말한다.
 
  “월남은 힘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니다.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는 물론 정부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국가의 온 신경망을 장악한 간첩들에 의해 망했다. 그 간첩들과 공산주의자들은 하나같이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위장해 민족공조를 내세워 반미를 외치고 선량한 국민을 선동해 극성맞은 데모를 주도하며 대중 기반을 넓혀 나간 그 선동주의자들에 의해 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大選)을 앞두고 낸 책에서 “당시 대학생으로 남베트남 패망 소식을 듣고 희열에 몸을 떨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흘렀어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를 향해
 
  민족과 민족주의는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말하는 ‘상상의 공동체’와 같은 사회적 구성물이 아니다. 엄연히 하나의 실체다. 인간이 버리려 해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정치철학자 타미르(Yael Tamir)의 말대로 자유주의자가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도 민족적(national) 감정을 토대로 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민족주의가 사람에게 ‘어쩔 수 없는 힘(compelling force)’이라면, 민족주의에서 후퇴하는 것은 대중의 정서와 감정에서 멀어지는 것이 된다. 정치적으로 명분도 잃게 될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구한말(舊韓末)부터 가장 순수한 유형의 시민적 민족주의인 미국 내셔널리즘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유민주적 ‘국민 만들기’를 추구했고, 결국 그것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실제로 대한민국 자유민주 국민들은 북한의 같은 민족이 겪는 참상에 상심하고, 폭압 전체주의 권력에 분노해 왔다. 따라서 종족적 민족주의에 토대를 둔 좌파·반미 민족주의에 맞서 대한민국 헌법이 명령하는 바와 같이 시민적·자유주의적 민족주의를 가지고 공세적으로 반격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앞장서 주장해야 한다. 갖가지 방략(方略)으로 북한 권력 해체 공작에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반인륜·반문명·반민족적인 북한 독재권력 제거에 헌신하는 것이 한국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며 대한민국의 세계사적 사명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1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박혜연    (2017-12-10)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니들 애국우파들부터 먼저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 빨갱이좌익세력으로 만들었잖어!!!!

20171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정기구독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