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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의 미학산책 〈11〉 최정호의 편지

‘편지질’로 필봉 다듬던 언관(言官)의 교유록

글 : 김형국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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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인 최정호 교수, 독일 유학 시절에 만난 일본 동화작가 사노 요코와 평생 편지 주고받아… 한일 양국에서 서한집 나와
⊙ 최정호 교수, 이한빈 전 부총리·필자와도 서신으로 교유
⊙ “편지는 내 20대의 일상적인 글이었다. … ‘편지’의 문체를, 혹은 ‘편지적’인 문체를 이후 글을 쓸 때의 내 일관되는 문체로 삼기로 마음먹어”(최정호)

김형국
1942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도시계획학 박사 / 서울대 교수,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 녹색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 역임 / 《우리 미학의 거리를 걷다》 저술
〈도판 1〉
《편지: 나와 인연 맺은 쉰다섯 분의 서간》(최정호 엮음, 열화당, 2017) 표지.
  사신(私信)은 편지를 일컫는 말로 공한(公翰)과는 대조되게 개인적으로 “사사로이 주고받음”에 방점을 둔 낱말이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사이에 내밀·은밀한 대목이 적힘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1960년대에 독일 베를린에서 같은 유학생 처지로 만난 뒤 한일(韓日) 남녀가 사신을 주고받았다. 그 한국 남자가 어느덧 미수를 바로 앞둔 연치(年齒)에 이르러 청년시절 이래 국내외 지인과 나눴던 교신 가운데서 당신이 받았던 편지를 중심으로 한 권의 책을 펴냈다(《편지: 나와 인연 맺은 쉰다섯 분의 서간》, 2017). 도판 1 참조
 
  문통(文通)을 이어온 일본 여성의 편지도 여러 통 실었다.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에 상대의 그릇됨을 예감했음이 비상했다. 사람의 장래를 내다봄이 보통 직관력인가.
 
  ‘일녀(日女)’는 ‘한남(韓男)’을 일컬어, 베를린발 1967년 6월 9일 자 편지에서, “웬일인지 당신이 정말로 가까운 장래에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난 유명한 사람이 싫기 때문에 낭패로군요”라고 적었다.
 
  도쿄발 1978년 11월 5일 자 편지는 “미스터 최가 일찍부터 나의 서툰 글을 칭찬해 주셔서 일본에서도 요즈음 나는 서툰 그림 이외에 서툰 글을 쓰고 있답니다. 그러다가 내 에세이집이라도 나온다면 어찌할까요?” 했다. 한남의 지인지감(知人之鑑)대로 상업 출간된 에세이집이 하나둘이 아니었음은 ‘톡톡 튀며 거침없는 화법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일본어 표현이 풍부한 수필문학에 주는 유명 문예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1902~1983) 기념 문학상까지 받았다.
 
 
  한남(韓男)과 일녀(日女)
 
  한남은 전주시 노송동이 고향인 노송정 최정호(老松亭 崔禎鎬·1933~) 교수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50년대 중반에 《한국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독일 유학을 거친 뒤 유력 신문의 논설위원 등 각종 매체에서 논객(論客)으로 활동했다. 성균관대, 연세대에서 후진도 키웠다.
 
  한편 도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베를린 미술대학에 가선 판화를 공부했던 일녀는 사후(死後)에 170여 권의 저작권이 관리될 만큼의 생산적인 작가였다. 우리말 번역이 20여 종에 이르고 한국에도 고정 독자가 많은 동화(童話·童畵)작가 사노 요코(佐野洋子·1938~2010)가 바로 그 사람이다.
 
  둘 다 한창때인 1971년에 ‘미스터 최’에게 보낸 8월 21일 자 사노의 글은 “내가 베를린을 떠날 때까지 날마다 아주 시시한 편지를 써 보낸다면 방해가 될까요. 정말인즉 훌륭한, 시시하지 않은 편지를 쓰고 싶지만 나란, 안 되나 보죠”라는 말로 바싹 접근한다.
 
  이어 “아무리 보부아르(Simone Beauvoir, 프랑스 여류 철학자)가 위대해도 나는 보부아르 같은 건 되고 싶지 않고 좀 더 아름다운, 좀 더 바보스럽고, 좀 더 성적(性的) 매력이 있고, 좀 더 감정이 문란한 여자 쪽이 훨씬 좋아”라고 적었다. 1999년에 도쿄에서 보낸 편지엔 “건전하고 행복한 가정을 가진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이건 나의 적(敵)입니다”라고 시샘의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문통(文通)이 ‘서간문학’이 되어
 
〈도판 2〉
김원용, 〈회갑축하 엽서〉, 1993.
최정호의 회갑을 축하한 김원용의 글과 그림이다. 닭과 개를 그리고는 “鷄鳴狗吠 一家泰安(계명구폐 일가태안)” 곧 “닭이 울고 개가 짖으니 한 집안이 태평하다”고 적었다. 김원용이 임술(壬戌)년 개띠해, 최정호는 계유(癸酉)년 닭띠해에 났다. 짝사랑에게 편지질했다가 그 아버지에게 혼났던 경우엔 국립중앙박물관장 역임의 삼불 김원용(三佛 金元龍·1922~1993) 전 서울대 교수도 있었다. 그 짝사랑과 마침내 결혼에 성공하자 너무 기쁜 나머지, 그리고 경복궁 돌담을 따라 결혼 당일에 신행길을 걸을 때 마침 서설(瑞雪)이 내리는 황홀경을 맞자 삼불은 신부에게 여기서 같이 죽자 했던 열혈·격정파였다.
  편지로 말할 것 같으면 글로 적어 사람들끼리 생각을 나누는 무척이나 오래된 문명 방식이다. 옥중 춘향이가 한양 낭군에게 방자 편에 띄운 일자 편지가 그 중간에 몰래 훔쳐본 암행어사의 눈물샘을 자극했다지만, 짝사랑 소녀에게 학교로 ‘편지질’했다가 들통나서 학교로 찾아온 그 아버지에게 혼이 났던 경우는 일제 말 도시 일경(一景)이었다.(도판 2 참조)
 
  대중문화 이상으로 예술문화이기도 했다. 우리 전통시대에 편지 왕래는 사람의 일대에서 가장 중요한 족적 가운데 하나였다. 유명 선비를 기릴 적 직접 적은 각종 문장과 함께 연고자들과 나눈 간찰(簡札)도 하나로 묶어, 말하자면 서간(書簡)문학이 되고 있다. 지구적인 관점에서도 그게 문학이고 예술인 것이 화가 반 고흐 형제가 나눈 편지는 진작 불멸의 세계문화유산에 올랐다.
 
  그랬던 편지인데 전자통신의 발달로 상황은 급전직하, 특히 21세기 초 이래로 스마트폰의 세계적 보급 탓인지 덕분인지 주고받는 의사소통이란 손가락 끝을 통해 화면으로 날아다니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종이에 적는다는 편지가 도대체 무엇을 말함인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생경하게 여겨질 지경에 이르러 국내외적으로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라고 마침내 유네스코가 염려하게 되었다. 편지가 ‘멸종위기’ 대중문화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래저래 편지가 사라지고 있음은 우리보다 독서열이 훨씬 높은, 그만큼 문자의 직접 생산 개연성이 높은 일본도 사정은 비슷했던가. 올봄 사노 요코가 노송정과 나누었던 편지를 도쿄에서 한국 문학서적을 출판해 온 책방 쿠온이 단행본 《친애하는 미스터 최-이웃 나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로 냈다. 이는 편지가 개인 사이 교신 이상으로 그게 사회현상의 거울도 되고 있음을 재확인하면서 설 땅을 잃어가는 전통문화에 캄퍼(camphor·강심제)주사를 놓으려는 기도가 아닌가 싶었다.(도판 3 참조)
 
 
  친구도 만들어 주고 친구를 더욱 친구답게 만드는 편지
 
〈도판 3〉
사노 요코, 〈최정호 인상〉, 1967. 종이에 펜.
사노의 책(《친애하는 미스터 최-이웃 나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도쿄, 쿠온, 2017) 안 표지에 실려 있다. 디자인 전공자답게 사노는 노송정의 듬직한 체구가 빚어내는 인상을 만필(漫筆)로 그렸다.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묶이기 전에 이미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 내용 일부를 외부로 흘린 것은 일녀 쪽이었다. 편지의 화제가 한일관계의 역사적 갈등 국면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그 불편함을 자신의 수필집 《사는 게 뭐라고》(이지수 옮김, 2015, 123쪽)에 털어놓았다.
 
  〈두세 해 전에 그가 또 일본에 왔다. 앉자마자 다시 연설을 시작했다. “이 일본의…” 그때 나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서른여섯 해가 지났다. 아 그렇단 말이지. 나도 서른여섯 해 동안 당신의 압제를 견뎠다고. 이제 끝이다. 평생 원망하시지. 분이 풀릴 때까지 원망하시지. 원망해 봤자 무슨 이득이 있는가. 일본제국도 모르는 채 자란 나에게 과거 이 나라의 극악무도함을 혼자서 짊어지라는 것인가.〉
 
  기실, 한일관계는 공론(公論)을 펴는 우리 쪽 식자들에겐 풀지 못한 매듭으로 남았다. 특히 노송정에겐 독일 유학생답게 전후(戰後) 처리에서 그 나라가 보여준 금도(襟度)가 현대 일본에서 찾을 수 없었음이 마음의 응어리였다. 내가 알기로 그가 가장 참을 수 없었던 일은 전범국(戰犯國) 일본이 히로시마 원폭(原爆) 비극의 현장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사건이 아닌가 싶다.
 
  당연히 당신의 평생지기와 나눈 수많은 편지에는 고금(古今) 일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도 화제의 하나였다. LG전자 회장을 역임한 이헌조(李憲祖·1932~2015)는 그와 서울대 철학과 동기로 만나 간담상조(肝膽相照)라고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지밀한 사이”의 평생 친구였다. 책에 수록된 편지 가운데에는 2011년 동일본 진재(震災) 때 우리 사회 각계의 의연금 모으기가 과잉이었다며 거기에 유보의 말 한마디를 보탠 편지도 있다. “지진 다발국 칠레나 인도네시아같이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가 아닌데도 한국 사회가 요란하게 부산을 떨 게 무언가”라며 일본에 대한 한민족의 경각심을 촉구했다.
 
  〈일본은 난징의, 진주만의, 관동대지진의 과거는 깨끗이 잊고,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과거는 그를 현전(現前)하려는 노력에 있어 패전 후 육십 년이 넘도록 관민(官民), 여야(與野), 보혁(保革)의 경계를 초월해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편지의 문화사회학
 
  그만큼 이번 편지 모음집은 세상의 시시비비에 참견해 온 노송정의 언관 노릇에서 편지 주고받기를 세계관에서 또는 사회의식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同志)를 구하거나 확인하는 장치로 활용해 온 모습을 보여준다. 그 동지는 논어 구절대로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는 사람(可與言詩)”이 분명한데, 여기서 시란 음풍농월(吟風弄月) 훨씬 이상으로 “착한 것은 감발(感發)시키고 악한 것은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그래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던 왕조시대 신하 정다산(丁茶山)의 말을 현대적으로 받아들인 그런 정신, 그런 자세를 말함이다.
 
  해서 책은 편지가 개인 사이의 사사로운 의사소통이면서 동시에 세계관을 같이할 도반(道伴)을 찾고 더불어 뜻을 나누는 유효·유용한 매개물임을 자신의 경우를 들어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례연구이고, 그에 앞서 책에 적었던 서론(緖論: “편지,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은 길지 않지만 한 꼭지 ‘편지문화학’ 총론으로 당당하다.
 
  노송정이 언론계에 투신했을 적엔 이 나라가 절대빈곤에 허덕이던 세월이었고 그만큼 나라 발전에 모두들 부심하던 시절이었다. 독일 유학생 겸 《한국일보》 유럽특파원 최정호가 나중에 발전행정학자로 방명을 드날렸던 그때, 스위스 주재 초대 한국대사 덕산 이한빈(德山 李漢彬·1926~2004)을 1964년 1월 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 개막식장에서 처음 대면했다. 만나자마자 서로 사람됨을 알아봤다.
 
  이후 간헐적인 만남과 무시로 주고받는 편지로 서로 뜻을 모았다가 한국에 돌아와서는 1968년 함께 한국미래학회를 발족시켰다. 대사 퇴임 즈음 덕산은 우리 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스위스 모델에서 찾아보자고 설파한 단행본(《작은 나라가 사는 길: 스위스의 경우》, 1965)을 최정호의 자문을 받아가며 출간한 바 있다.
 
 
  사람 사귀기 좋은 매체
 
〈도판 4〉
이한빈 작사·곡, ‘파도’, 1966년 2월 9일.
보내온 편지에 좋아하는 예술적 작품도 한 점 끼어 있으면 그 기분은 충천할 것이다. 편지를 통해 고암 이응로(顧菴 李應魯·1905~1992)의 〈소〉 그림도 결혼 축화(祝畵)로 받았던 노송정이 스위스 대사에서 물러난 뒤 하와이대학에서 한국의 발전론에 대해 영어책(Korea: Time, Change and Administration, Univ. of Hawaii Press, 1968)을 집필 중이던 인문주의자 이한빈으로부터 세 편 가곡 악보를 받았다. 아마 교회에서 익혔던 작곡 실력이었던지 곡을 지어 ‘정호에게’ 헌정했다. ‘파도’는 그 가운데 하나이고, 가사는 저술 중에 한국의 국가발전 가능성을 골똘하게 모색하던 심중을 담고 있다.
  직무로 처음 만난 뒤 노송정이 편지를 띄운 것이 덕산과 가까워진 계기였다면 내가 전자와 개인적으로 교유하게 된 것 또한 펜팔 인연이었다. 유럽에서 귀국한 노송정은 1968년 중반부터 소속사 주간지에 ‘유럽무대기행’이란 부제로 〈예(藝)〉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 두 번째 연재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메뉴인(Yehudi Menuhin·1916~1999)에 대한 글에 감동받고 그 독후감(《주간한국》 212호, 1968년 10월 13일 자)을 보낸 것이 개인적 만남의 시작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 연재물은 최정호의 문명(文名)을 크게 떨친 명편이었다. 나중에 어딘가에 독후감을 내가 다시 적었는데, 글읽기·쓰기가 그렇듯, 그건 4·19가 나던 해에 대학에 들었던 내 지난날의 회상이기도 했다.
 
  〈… 4·19·군사·산업·민주로 이어진 혁명의 시대적 폭염을 식혀준 낭만이 바로 고전음악 듣기였다. 하지만 통조림 음악을 담은 암시장 음반이 고작이던 시절, 최정호 교수의 유럽 공연예술 기행은 목말라 하던 생음악의 현장 중계이기도 했다. 그때 연재하던 《주간한국》의 배포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펜팔로 시작된 노송정과 점입가경(漸入佳境)의 만남이 계속되는 사이, 그의 다른 편지책 출판에도 일조했다. 1960년대 말에 귀국해서 곧바로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으로 취임한 이한빈의 조교로 일했던 나는 스승에게 입었던 하해 같은 은혜에 촌분이나 보답하려고 두 사람 사이의 40여 통 왕래 편지책 《같이 내일을 그리던 어제: 이한빈·최정호의 왕래 서한집》(2007)을 꾸밀 때 내가 보았던 두 분 모습을 후기(後記)로 길게 그렸다.(도판 4 참조).
 
 
  언관의 글공부 내력
 
  뿐인가. 노송정의 편지 묶음 책은 또 있다. 아마 그간에 출간한 단행본만도 100권에 가까울 터이지만 20대에 적었던 편지 선집이 최초의 책 모양새가 아니었을까 싶다. 책으로 묶인 것(《사랑한다는 것: 소인(消印) 없는 편지》, 1984)은 한참 나중이지만 글은 1958년 즈음에 적은 것이다.
 
  노송정은 10대 때부터 즐겨 편지를 적다가 그만 벽(癖)이 되고 만 것은 20대 초반의 첫 직장 《한국일보》에서 편집부 기자로 일했음에서 연유한다 적었다. 편집부 기자는 “기사를 쓰지 않는 기자”였기에 억누를 길 없는 문자 표현의 욕구를 편지 형식에다 담아보는 글쓰기를 했다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당신 자신을 펜팔로 삼았던 글공부였다.
 
  〈편집이 내 20대의 일상적인 일이었던 것처럼 편지는 내 20대의 일상적인 글이었다.… ‘소인(消印) 없는 편지’는 글에 있어서 자기의 것을 가져보려는 내 20대의 어설픈 시도의 소산이었다. 나는 ‘편지’의 문체를, 혹은 ‘편지적’인 문체를 이후 글을 쓸 때의 내 일관되는 문체로 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위의 책, 126~127쪽)〉
 
 
  글 그리고 편지는 자신 사랑인 것을
 
〈도판 5〉
장욱진, 〈삽화〉, 1979. 종이에 붓펜, 규격미상.
6·25동란 직후 호구지책으로 그려 보았던 삽화는 이후 특별한 인연이 아니고는 그리지 않았다. 이 삽화는 최 교수 편지 단행본을 위해 특별히 제작했던 것 가운데 하나다. 1980년대 초에 내가 최 교수를 화가의 수안보 화실로 안내했는데, 마침 화가 아내는 당일치기로 서울 출타 중이었다. 최 교수가 불쑥 말을 걸자 화가의 대답은 아주 단호했다. “요즘도 부부싸움을 하십니까?” “그럴 기운이 있어야지요.” “그래도 선생은 지은 죄가 많지 않습니까?” “나는 평생에 그림 그린 죄밖에 없습니다.”
  편지 묶음 책은 글쟁이라고 아무나 낼 성질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그만큼 귀한 책이다. 자신이 적은 편지 글에 대한 사랑, 마찬가지로 상대방 답장의 글에 대한 사랑을 최정호처럼 소중하게 보관해 온 지성이 없고서야 어찌 이룰 것이겠는가.
 
  어제오늘 특히 스마트폰 때문인지 “호흡이 짧아지고 그만큼 논리도 정서도 무너진” 전자세대들은 노송정이 글쓰기·배우기의 중요 방편으로도 삼았던 편지질을 먼 과거의 “흘러간 노래”로만 치부하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이 나라의 고학력 졸업자는 하나같이 머리를 쓰는 직종 곧 지식산업 진입 희망자들이다. 지식산업의 요체는 말과 글이다. 앞뒤 관계인 말과 글에서 계속 좋게 고쳐나갈 수 있는, 그만큼 자기 향상이 가능한 도구는 바로 글이다. 이 참에 두루 편지와 글의 상관관계를 한번 생각해 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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