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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의 후유증 - 선진국에서 배워 예방한다 〈3〉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시설들은 어떻게 재활용되고 있는가

“토리노 동계올림픽 시설 지분의 70%가 매각됐다”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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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리노 동계올림픽은 도시 재생의 좋은 사례
⊙ 자동차업체 피아트 몰락으로 쇠퇴한 토리노에 활력 불어넣어
⊙ 토리노의 역사는 2006년 이전과 이후로 변했다는 긍정적 평가
⊙ 올림픽 후광(後光) 활용해 로마·피렌체·베니스에 이어 이탈리아 4대 관광지로 발돋움
⊙ 그렇지만 올림픽 시설물은 70%가 팔리고 말아
⊙ 우리 쇼트트랙 기적 이룬 팔라벨라도 계속 수리 중

[편집자 주]
《월간조선》은 8월호부터 내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평창동계올림픽의 후유증-선진국에서 배워서 예방한다’라는 주제의 기획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이 기획은 앞서 동계올림픽을 치렀던 노르웨이,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의 현지를 답사하면서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사후에 효율적으로 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취재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이번달은 8월호의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편, 9월호의 프랑스 그르노블 편에 이어 세 번째로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공과(功過)를 되짚어 봅니다.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가 열린 팔라벨라 스타디움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경기장은 올림픽 후 계속 내부를 수리하고 있다.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이탈리아 토리노는 240km 거리다. 두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 A41과 A43 양편은 험준한 산악지대다. 삼림이 무성한 육산(肉山)이 아닌 황무지 비슷한 회색빛 바위산이 울퉁불퉁 근육을 뽐내고 있다. 이 단조로운 풍경이 그르노블에서 토리노까지 이어진다.
 
 
  그르노블에서 토리노 가는 길
 
  토리노에 들어가면서부터 풍경은 다시 일변(一變)한다. 우리 울산이나 여수의 산업단지처럼 공장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오로지 효율을 위한 구조물이 공장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늘어선 차들과 밋밋한 건물 사이를 대형트럭들이 질주하고 있다. 무게에 눌린 탓인지 도로는 울퉁불퉁하다.
 
  토리노(Torino, Turin)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의 주도(州都)다. 포 강(江) 서쪽 강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인구는 100만명 정도다. 토리노는 이탈리아 고대도시 가운데 하나다. 기원전 218년에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코끼리부대를 앞세워 험준한 알프스를 넘어 현재의 토리노를 점령했다.
 
  기원후 65년에는 큰 화재로 도시가 파괴됐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그 역사를 살펴본다. 1861년 사르데냐 왕국에 의한 이탈리아 통일이 이뤄졌다. 이탈리아어로 ‘리소르지멘토’라고 한다. 통일 이탈리아왕국 초대 국왕이 사르데냐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다.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첫 수도
 
토리노 중앙역의 전경이다. 이 주변으로 대형 마트 등 상업시설이 밀집돼 있다.
  이탈리아가 오랜 세월 도시국가로 분열돼 있다가 통일됐지만 많은 문제가 생겼다. 그중 군대 해체로 병사(兵士)들이 실업자로 전락한 것이었다. 갈곳을 잃은 그들은 ‘크로코’라 불리는 비적(匪賊)이 돼 막 출범한 왕국을 위협했다. 비적들은 1861년 통일의 선봉이었던 사르데냐를 침공했다.
 
  3년간 통일 이탈리아를 위협하던 비적들은 1864년 내부 분란으로 붕괴했다. 그러자 이탈리아왕국은 1865년 수도를 토리노에서 피렌체로 옮겼다. 짧은 영화(榮華)가 끝나고 토리노는 다시 이탈리아 북부의 평범한 도시로 돌아갔다. 그 도시를 다시 살린 것이 자동차 회사 피아트다.
 
  1899년에 지오반니 아넬리(Giovanni Agnelli)는 친구 8명과 함께 자동차 회사를 토리노에 설립했다. 아넬리는 “자동차는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어선 안 되며 대중이 탈 수 있는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우수한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대중차 생산에 관심을 쏟았다.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와 친분이 두터웠던 그는 포드로부터 대량생산 체계, 즉 ‘포드 시스템’을 도입하는 한편 근로자의 복리증진에 힘썼다. 피아트의 전성기는 전쟁 때였다. 다른 자동차 제조사들처럼 피아트는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군수(軍需)업체로 변신해 돈을 벌었다.
 
 
  피아트 망하자 쇠퇴한 토리노, 올림픽으로 재생하다
 
토리노는 통일 이탈리아의 첫 수도답게 광장과 광장이 연결돼 웅장한 모습을 뽐낸다.
  이런 토리노의 도시 색(色)을 다시 바꾼 것이 올림픽이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토리노의 상징은 앞서 말했듯 ‘피아트(Fiat)’였다. 아마 내가 토리노에 진입하면서 보았던 것들도 우리 울산이나 충남 아산의 현대자동차 같은 피아트의 건물들이었을 것이다.
 
  토리노의 변신(變身)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것이 《미슐랭 가이드》다. 《미슐랭 가이드》는 2006년 이전 토리노를 ‘우회(迂廻)해도 좋은 도시’라고 평했다. 2006년 이후에는 표현이 ‘꼭 가 볼 만한 곳(worth a trip on its own)’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불과 보름 동안의 올림픽이 도시를 바꿨다.
 
  이제 토리노는 이탈리아에서 로마, 피렌체, 베니스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4대 관광도시 반열에 올라 있다. 토리노가 속한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의 방문자 수는 2006년 330만명에서 2012 년 430만명으로 늘었다. 불과 6년 만에 100만명이 이 도시를 찾은 것이다.
 
  또 다른 통계도 있다. 2000년에 토리노는 100만명 미만의 관광객을 환영했다. 15년 후 그 숫자는 600만명으로 늘어났다. 《뉴욕타임스》는 토리노를 ‘현대 미술에 있어 사실상 이탈리아 수도나 마찬가지이며 관광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이 동계올림픽의 가치에 대해 남긴 말은 지금도 유명하다.
 
  “올림픽은 최대의 국제적 가시성(可視性)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올림픽이 역사를 바꾼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한 국가와 다른 도시의 역사를 바꾼다. 2006년 동계올림픽은 잊힌 도시였으며, 그 능력과 전문성에 대한 신뢰를 잃었던 토리노가 이제 그 자체로 신뢰를 회복하도록 만들었다.”
 
  2006년 동계올림픽 스키경기가 펼쳐진 당시 프라젤라토의 사장이었던 발터 마린(Valter Marin)은 이탈리아인 특유의 허풍 섞인 표현으로 “1999년 6 월 토리노가 IOC에 의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을 때, 그것은 판돈이었다”고 회상했다. 다음의 그가 남긴 토리노 올림픽에 대한 평가다.
 
  “동계올림픽은 토리노를 지도에 넣었다. 2006년 이전까지 비아라타(Via Lattea) 스키 지구의 고객 중 40%만이 해외에서 왔다. 이제는 외국인이 85%다. 동계올림픽은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줬다. 산업혁명으로 토리노를 관광 핫스팟으로 전환시켰지만 동계올림픽은 이 혁명이 가능하고 성취할 수 있는 불꽃이었다.”
 
  토리노는 동계올림픽이 거둔 효과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동계올림픽 이후에도 굵직한 스포츠 행사를 토리노는 계속해서 유치한 것이다. 세계 펜싱선수권대회, 동계유니버시아드, 세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등이 동계올림픽의 도시 토리노에서 개최된 것이다.
 
  동계올림픽 이후 2년 동안 토리노 올림픽공원의 경기장에서는 기업, 레저 및 스포츠 경기에 187개의 이벤트와 57만7500명의 관중이 참여했으며 5만5000명이 넘는 시민이 엔터테인먼트 활동에 참여했다. 이런 스포츠 행사는 유서 깊은 토리노의 산업발전도 함께 촉진시켰다.
 
  2013년에만 29개 비즈니스 회의가 열려 2만2000명이 토리노를 찾았다. 그로 인한 숙박자 수는 6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이 행사들로 얻은 경제적 수익이 3200만 유로로 추정됐다. 스포츠로 얻은 유명세를 비즈니스 회의로 연결시킨 토리노는 과연 상업에 능한 이탈리아의 후예답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난다
 
토리노 광장의 백미라 할 산 카를로 광장에 있는 엠마뉴엘 필리베르토 공작의 동상이다.
이 동상은 19세기 동상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림픽이 토리노의 변화에 기폭제가 됐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우리의 노력과 함께 천천히 나타났어요. 하루아침에 인기 관광도시로 환골탈태한 건 아닙니다.”
 
  발렌티노 카스텔라니 전 토리노 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이 한국언론을 통해 한 말이다.
 
  토리노는 피아트로 인해 발전했지만 피아트로 인해 쇠퇴했다. 일제(日製) 자동차가 전 세계를 석권하기 시작한 1990년대 들어 가장 피해를 본 나라가 미국과 이탈리아였다. 당연히 피아트의 도시 토리노도 일본 자동차의 진격에 피해를 입었다. 매출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자동차산업은 경기가 하강할 때 생산시설부터 옮긴다. 원가(原價) 절감을 위해서다. 피아트가 공장시설을 이탈리아 남부 및 국외로 옮겨가면서 토리노에서는 실업자가 늘고 빈 집이 생겼고 도시 시설물들이 슬럼화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 예전의 영화(榮華)를 찾을 것인가.
 
  이때 토리노가 선택한 것이 동계올림픽이었다.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려면 공항·철도·도로 같은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해야 한다. 전 세계가 TV로 지켜보고 선수들을 비롯해 기업인, 스포츠지도자, 관광객들이 몰려오는데 쇠락한 도시의 민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토리노는 시설물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올림픽의 중심시설인 링고토의 모습이다. 지금은 상업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일자리를 낳는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올림픽 시설물을 짓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올림픽 주경기장이나 스피드스케이팅·쇼트트랙 경기장, 스키장 등을 새로 짓거나 보수(補修)하는 것이다. 이때 토리노가 주목한 것이 과거 피아트 공장 지구이던 링고토(Lingotto)다.
 
  토리노는 이곳을 개·보수해 쇼핑몰, 콘퍼런스센터, 호텔을 입주시켰다. 옆에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링고토 오발(Lingotto Oval)도 마련했다. 개·폐회식장으로 쓰인 스타디움은 1933년 지어진 축구경기장을 개조한 것으로, 올림픽 후 프로축구단 AC 토리노의 홈구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토리노시는 올림픽을 앞두고 기존 시설을 개·보수하는 쪽과 신설하는 쪽으로 구분해 대회를 준비했다.
 
  이미 건설됐던 시설로는 토리노팔라벨라(1961년·피겨·쇼트트랙)와 토리노에스포시지오니(1949년·아이스하키), 스타디오올림피코(1933년· 올림픽 개폐회식장) 등이 있는데 이 시설들은 모두 개·보수를 거쳤다.
 
  반면 오벌링고토(2005년·스피드스케이팅), 팔라스포트올림피코(2005년·컬링), 스타디오델트람폴리노(2004년·스키점프·노르딕), 세사나파리올(2004년·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 페네롤로팔라지아치오(2005년) 등은 올림픽을 앞두고 신설된 건물이다. 토리노시가 이런 시설들을 개·보수하거나 새로 짓는 데 사용한 예산은 총 5268억원이었다.
 
 
  올림픽 이후 시설물들의 변화는
 
  그렇다면 올림픽 개최 이후 이 시설들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
 
  첫째, 스타디오델트람폴리노(2004)는 현재 기존 경기장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
 
  둘째, 오벌링고토(2005)는 전시장·실내육상장·다목적경기장으로 변신했다. 셋째, 토리노팔라벨라(1961)는 빙상경기장·전시장·사교파티장·어린이놀이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넷째, 팔라스포트올림피코(2005)는 다목적 스포츠시설·콘서트장·전시시설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다섯째, 대회를 앞두고 임시로 아이스링크를 설치했던 토리노에스포시지오니(1949)는 전시장으로 사용 중이다.
 
  여섯째, 세사나파리올(2004)은 기존 경기장 시설 그대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결정은 누가 내린 것일까. 토리노는 올림픽 후 여러 배후도시에 있는 시설을 통합관리하기 위해 ‘토리노올림픽파크’라는 기관을 설립했다. 이는 효율적인 통합관리를 통해 단일 기관이 올림픽경기장 등 모든 시설이 문화·관광자원으로의 활용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추진된 것이다.
 
  ‘토리노올림픽파크’에 의해 관리되면서 외국인 투자가 쉬워졌는데 결과적으로 전체 올림픽 시설의 70% 지분이 매각됐다. 현재 토리노 올림픽 시설들은 미국 LA에 본사를 둔 라이브 콘서트 기획사 ‘라이브 네이션(Live Nation)사’를 통해 각종 공연 및 문화산업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이는 강원도의 경우도 평창올림픽이 끝난 후 ‘토리노올림픽파크’와 같은 기관을 만들어 올림픽 유산과 관련 시설들을 통합관리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필요하다면 토리노의 사례처럼 민간자본을 유치하거나 매각하는 방법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은 어떤 올림픽이었나?
 
  개최 기간 : 2006년 2월 10일~2월 26일 / 개최 도시 : 토리노 외 7개 자치구 / 개최 종목 : 스키·빙상·아이스하키·바이애슬론·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컬링 등 84개 세부경기 / 참가 선수단 : 80개국 5000여 명의 선수와 임원 / 한국 대표팀의 성적 : 선수 40명, 임원 29명이 참가해 금 6, 은 3, 동 2 등 총 11개의 메달을 획득. 종합순위 11위
 
  올림픽 직전 토리노의 경제력
  2010년 기준 GDP는 580억 달러(63조8000억원). 구매능력 기준으로는 당시 세계에서 78번째 도시
 
  올림픽 총투자
  토리노 동계올림픽 조직위가 발간한 보고서(〈Torino 2006 : an Organizational And Economic Overview〉)에 따르면, 토리노 동계올림픽 기간시설에는 정부지원 4억7900만 달러(5269억원)와 그 외 자금 5억4400만 달러(5984억원) 등 총 10억2300만 달러(1조1253억원)가 투입됐음. 숙소·사무실·상업지구 건설에는 정부지원 3억800만 달러(3388억원)와 그 외 자금 2억1500만 달러(2365억원) 등 총 5억2300만 달러(5753억원)가 소요. 환경 인프라 구축에는 정부지원 700만 달러(77억원)와 그 외 자금 100만 달러(11억원) 등 총 800만 달러(88억원)가 들어감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경제적 효과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전후한 2005~2009년 기간 동안 피에모테 지역의 연평균 GDP증가율은 3%로, 이탈리아 연평균 GDP증가율 0.2%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 이는 저조한 이탈리아 경제성장률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치로 평가됨. 2005~2009년 사이 피에몬테 지역의 고용창출은 5만4000명, 취업률은 2.8% 상승. 전체 올림픽 사업 중 25%가 피에몬테 지역 업체에 혜택이 돌아감. 올림픽 기간 17일 동안 이탈리아 TV방송 외 외국방송국 TV 송출시간은 1일 기준 800시간가량이었으며 토리노시는 올림픽 개최 1년 전에 비해 7배 이상 해외언론에 언급됐음
 
  올림픽에 대한 국민들의 긍정적인 반응
  관광분야(93%), 새로운 사회기반시설(63%), 새로운 스포츠 경기장(83%)
 
  한국 쇼트트랙의 기적 낳은 팔라벨라는 지금도 공사 중
 
토리노 광장에서는 올림픽 때 각종 행사가 열렸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일례로 팔라벨라(Palavela) 경기장은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이 열렸던 곳으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여기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의 진선유는 3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팔라벨라는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1961년 이탈리아의 통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면에 부착된 3점 돛 모양의 3만5000톤에 달하는 거대한 주철 콘크리트 구조물로 바깥을 싼 경기장이다. 그러나 지금 팔라벨라는 외부인 출입이 금지돼 내부 개조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즉 빙상경기장·전시장·사교파티장·어린이놀이공간으로 사용돼 왔으나 수익이 지지부진하자 또다른 변신을 꾀하는 것이다. 이는 올림픽 시설물들이 올림픽 이후에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인들은 토리노를 ‘나이 든 귀족부인’에 비유한다. 앞서 말했듯 토리노의 역사는 기원전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역사 때문인지 토리노에는 왕궁, 성당, 교회, 왕실의 별장 같은 유서 깊은 건축물이 많다. 예수가 입었다는 성의(聖衣)를 보관하고 있는 토리노 성당도 유명하다.
 
  역사만큼이나 특산품도 많다. 토리노는 라바자, 페레로로셰, 누텔라 등을 배출한 커피와 초콜릿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토리노가 속한 피에몬테 주(州)는 주요 와인 생산지이기도 하다. 토리노에는 카이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집트박물관, 자동차박물관, 국립영화박물관도 있다.
 
  국립영화박물관에는 이런 일화(逸話)가 있다. 영화산업이 발달했던 토리노에는 필름이나 영사기 같은 영화 관련 물건이 창고에 가득 쌓여 있었지만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반면 토리노의 가장 기념비적인 건축물 몰레 안토넬리아나(Mole Antonelliana·유대교회당)는 텅 비어 있었다.
 
  여기에 국립영화박물관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2000년 국립영화박물관이 개관된 후 많은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이 박물관은 현재 토리노의 중요 관광자원 중 하나다. 올림픽은 이렇게 인간의 창의력을 자극함으로써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온통 공사판인 강원도 대관령면은 올림픽 이후를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프랑스 그르노블과 이탈리아 토리노에 가기 전 강원도 대관령면을 취재한 바 있다. 두 곳의 취재를 마치고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다시 대관령면을 찾았다. 대관령면은 한 달 전에 보았을 때보다 더 엉망이었다. 마치 마을 전체가 공사판처럼 곳곳이 파헤쳐져 있었다.
 
  대관령면에서 수십 년째 영업을 해 온 ‘황태회관’의 직원은 이렇게 뒤늦게 부산을 떠는 데 대해 “다 최순실 때문(※최순실 스캔들 때문에 예산지원이 늦었다는 뜻)”이라며 “공사는 11월이면 다 끝난다”고 말했다. 불과 두 달 만에 공사를 마칠 정도면 부실공사의 우려가 안 생길 수 없다.
 
  문제는 한적한 시골풍경을 유지했던 대관령면 일대가 회색빛 콘크리트 도시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올림픽이 끝나도 한 번 바뀐 대관령면 일대의 풍광은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대관령면의 변신은 바람직한 것일까?
 
  주민들이야 대규모 투자가 일어나 새로운 고층 건물들이 들어오면 좋다고 반기겠지만 대관령면의 정체성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렇게 인구가 적은 곳에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올림픽 때처럼 많은 사람이 찾아올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런 시설들은 어떻게 재활용할 것인가?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다만 도시색이 짙은 강릉과 달리 대관령면은 올림픽이 행운보다 불운이 될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올림픽을 위해 마구 파헤쳐 50년이 넘어도 옛 모습을 찾지 못하는 프랑스 그르노블처럼 될 확률이 높고 애써 지은 대관령면의 시설들은 슬럼화하거나 매각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우리는 내년 2월 동계올림픽이 끝난 직후부터 ‘슬럼화한 올림픽 시설’ 혹은 ‘빚더미에 앉은 강원도’ 같은 보도들을 접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또다시 “국가가 책임지라”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토리노의 사례를 바탕으로 지금부터라도 ‘올림픽 이후’를 대비할 때다.⊙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이탈리아 대사가 보는 평창동계올림픽
 
  김동연 기자
 
  마르코 델라 세타(Marco della Seta)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월간조선》에 이탈리아 올림픽의 우수성과 평창올림픽에 바라는 점을 보내 왔다. 일문일답이다.
 
   지난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동계올림픽을 통해 배운 교훈과 토리노(Torino=Turin)올림픽의 장단점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토리노올림픽을 회상해 보면 아름다운 도시는 물론 피에몬테(a region of Piedmont)지역 전체를 세계에 알린 좋은 기회였습니다. 토리노는 역사적으로 아름다움을 지닌 도시지만, 사실 공업도시로 유명합니다. 따라서 토리노의 대규모 공장지대 안에 관광과 문화가 융합되는 곳이지요. 토리노올림픽을 통해 스키 시설이 현대화하고 새로운 건축물들이 지어진 것은 물론 여러 박물관도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이로 하여금 토리노는 관광명소(touristic hotspot)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수치로 말씀드리면, 2000년까지 이 지역을 방문한 관광객의 수는 100만명이었는데, 2016년에는 500만명으로 증가했습니다.
 
  토리노올림픽은 동계올림픽 역사상 가장 잘 조직된 올림픽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결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이것은 정부의 오랜 경험을 통해서 올림픽 관련 예산을 적절히 분배하는 것은 물론 결점(shortcomings)을 예상 및 보완하고, 차후 지출의 결과 등을 잘 조율했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시설물의 건설과 인프라 보수 등도 신경을 쓴 부분입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재정적인 제약이 있었음에도 성공적인 올림픽으로 이끌어 내 지금까지도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올림픽이란 정부의 입장에서는 매우 어려운 당면과제입니다. 그러나 잘 극복하여 성공적인 올림픽으로 만들면 향후 잠재적 이익은 상당할 것이라 장담합니다.”
 
 
  올림픽을 이미 치러 본 경험국(veteran of Olympics)으로서 이탈리아가 평창에 해 주고픈 조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신다면요.
 
  “저는 평창이 잡은 이 절호의 기회를 잘 살려내 가능한 모든 이익을 얻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올림픽은 국제사회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관광유치 및 해외투자를 이끄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최근 북한으로 하여금 일부분 긴장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등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저도 한국에 산 지 꽤 되었는데 겪어 보니 한반도의 긴장 상황이 때로는 실제보다 더 크게 과장되는 경향이 있더군요. 다가오는 평창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다름 때문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한데 어우러진 평화의 올림픽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저는 한국이 올림픽 경기 전과 후로도 잘되기를 바랍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올림픽의 개최는 도전과제입니다만 한국이 잘 해내리라 믿어요. 한국은 이미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인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 2011년 IAAF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 (평창올림픽도) 잘 해내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월간조선》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저는 주한 이탈리아 대사로서 한·이탈리아의 정치, 무역, 경제, 문화 관계증진을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추진되어 온 한·이탈리아 양국의 경제협력과 인적 교류가 점차 더 발전하고 있습니다. 양국의 무역은 다양한 분야에서 알차게 진행되고 있으며, 작년까지 86억 달러의 교역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이탈리아는 한·유럽연합(EU)의 무역 파트너 중 세 번째로 큰 위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더 많은 한국의 기업들이 이탈리에 투자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한국과 이탈리아는 오일 및 가스, 인프라, 발전소 분야에 지난 10년간 양국의 기업끼리 투자를 해 왔으며, 이는 130억 달러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관광도 양국의 성공신화에 한몫을 한 부분입니다. 이탈리아 정부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15년까지 약 80만명의 한국인들이 이탈리아를 방문했으며, 이는 전년대비 50%가량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 때문에 더 많은 항공사의 직항노선이 생겨 지금은 매주 15회의 직항노선이 운행 중입니다. 이는 양국간의 지리적 거리를 무색하게 합니다.
 
  다가올 평창올림픽에서 저는 한국팀의 ‘비장의 무기’(aces in the hole)인 쇼트트랙 종목을 눈여겨볼 예정입니다. 지난 소치올림픽에서도 활약했기 때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탈리아팀을 응원할 겁니다. 평창올림픽을 통해 동아시아 사람들도 동계스포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동계스포츠도 사실 하계스포츠 못지않게 재미있는 스포츠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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