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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의 조경 이야기 〈3〉 누가 우리의 금수강산(錦繡江山)을 왜색(倭色)으로 물들이려 하는가?

글·사진 : 정정수  정정수환경조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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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수
홍익대 및 동교육대학원 졸 / 개인전 14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2008 세계조경가대회(IFLA) 최우수상 수상(인도개최), 2008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 수상(문화부문) /
기전대학교 예술조경과 교수, 고도원아침편지 명상센터 옹달샘 예술총감독,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예술총감독, 서울시 시민청예술축제 전시총감독,
현 정정수환경조형연구원장
한 관공서의 중앙로터리에 가이쓰카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1년에 1~2회의 손질이 필요한 일본식 조원의 대표적인 수종이다.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볼 때 자연이 만들어 내는 것은 창조이고 인간이 만들어 내는 예술은 창의이다. 창조는 신의 영역이며, 창의는 인간의 최고 영역이므로 자연스럽다거나 창조스러움에 가까워지는 것이 창의적 발상의 시작일 수 있다. 이것은 반드시 예술성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청소년 시기에 예술교육이 배제된 국가에서는 학생들이 학습 과정에서 창의성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된 것이기에 그들에게서 창의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없는 하나의 구호에 불과하다.
 
  창의력이란 예측능력이다. 모든 교육의 본질은 자연으로부터 얻은 경험과 인간사회의 관계에 대한 이해이다. 인간들 대부분은 창의적 기회의 자연으로부터 체득하는 것이기에 우리의 생활과 근접해 있는 조경 공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창의를 제공하는 원인이 되므로 좀 더 자연스럽게 조성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과제이다.
 
자작나무 세 그루가 있는 정원에 자작나무를 이용해서 놀이집을 만들었다. 어린이들은 천진하게 오르내리며 놀 뿐이지만, 부모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들을 부러워한다. 분당 S유치원 / 2011년 시공
  미술과 음악은 창의적 예술의 대표 분야이지만 그것을 펼치는 방식은 상반된다. 음악은 작곡을 제외한 대부분이 창의적이지 않은 반면, 미술은 그것을 표현하는 전반적 행위가 모두 창의적이다. 음악은 반음이나 반박자라도 원래의 것에서 벗어나 버리면 불협화음이라는 ‘틀린’ 것이 되지만, 미술적 표현에서(특히 회화) 거의 모든 ‘틀림’은 ‘다름’으로 인식된다. 이렇듯 미술적 표현의 습득과정에서 ‘남들과 다름’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얻어지는 창의성은 많은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개인전 14회를 개최하면서 화단에 열심히 몸담아 왔던 필자가 조경 분야에 뛰어들어 땅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명분으로 조경 공간에 창의성을 적용하고 있다. 조경 공간의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는 미술적 가치를 접목하여 우리의 조경을 보다 예술적 차원으로 높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과정에 걸림돌이 있다. 걸림돌은 디딤돌 삼아 넘어설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뽑아 버리는 것이 더 유리한 경우도 많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만들어진 조경
 
꽝꽝나무, 회양목, 철쭉, 사철나무, 소나무의 외형이 모두 같다. 향나무를 다듬던 기술을 모든 나무에 적용해 결국 자기다움을 잃게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일본의 조원(造園) 방법이 도제 형식으로 지금까지 전해지면서 우리나라의 조경 형식인 것처럼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걸림돌 같은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식 조경 방법이 어떻게 한국에 정착하게 됐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록 또한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한국식과 일본식을 뚜렷이 구분하지 못하고 사용하는즉 우리 조경의 정체성을 잃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일인들은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우리 터전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려는 시도를 했다. 그들은 조선 땅에 일본식 주택(지금의 적산가옥)을 짓고 정원을 조성해 살고 싶어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에서 조경 전문가를 찾을 수 없었던 그들은 본토에서 조원 전문가를 불러들여 이 땅에서 일본풍 정원 가꾸기를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조원 기술자(오야)는 보조로 필요한 노동인력(시다)으로 조선인을 부렸고, 그렇게 일본식 조원 형식이 이 땅에 전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대표적인 수종이 원산지 일본으로 기록된 ‘가이쓰카 향나무(Juniperus chinensik Kaizuka)’이다. 이 나무는 둥글게 손질된 채로 오래된 학교의 교정에 또는 오래된 관공서의 조경 공간 중심에 어김없이 심어져 있다.
 
  이 같은 조원 방식으로 정원을 가꾸어 오던 일본인들은 광복을 맞으면서 오야라 불렀던 조원 기술자와 함께 자신의 나라로 쫓겨 가고, 그들이 살았던 주택에서 보았던 정원을 기억하며 그것을 갖고 싶어했던 선망의 감정이 ‘시다’로 조경일을 했던 사람을 찾았고, 그들은 기술자 대접을 받으며 자신을 도와줄 조수를 고용했다고 본다. 그렇게 도제 형식으로 기술만 넘겨받다 보니 일본과 우리나라의 정신적 차이에 대한 것은 모른 채 왜 이 같은 조경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일본 조원 방식이 정원 조성의 정석인 양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조경 관련 지식인들은 가까운 일본에서 출판된 서적만을 번역해 국내에 보급함으로써 이러한 현실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누가 우리의 금수강산을 왜색으로 물들이려 하는가?
 
지인이 페이스북에 자랑스럽게 올린 전남의 작은 미술관 마당. 일본식 조경 방법으로 모든 나무가 둥글게 다듬어져 있어서 ‘아름다움은 자기다움’이라는 말을 무색케 한다.
  이렇게 나무를 둥글게 다듬는 것은 일본 국민성이 만들어 낸 대표적인 사례이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문학사상》-이어령)’에서는 일본식 조원이 축소지향의 일본 국민성, 즉 자연을 시야에 두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원 안에 호수와 나무 등의 형태로 축소시켜 소유하려는 그들의 특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라마다 각기 다른 의식주가 있으며 언어와 문화체계 또한 다르다. 그래서 생활 주변의 자연을 집으로 끌어들이는 조경의 표현은 민족성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문화적 특성이 뚜렷하다.
 
  광복 70년이 넘도록 많은 분야에 일제의 잔재가 버젓이 남아 있는 이 골 깊은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쏟아야 한다. 조경 또한 우리 민족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므로 일본의 그늘을 벗고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데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묘역에까지 둥글게 다듬은 향나무와 노무라단풍(아까단풍)이 줄지어 식재되어 있다면 이 같은 현실을 무엇으로 변명할 수 있을까? 국가 차원에서 조성되는 장소에 조경을 담당한 사람이라면 명망 있는 조경인이 참여했던 것이 분명했을 텐데 그들이 만들어 낸 결과는 왜색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야 말았다. 이 같은 결과는 일본의 조원과 우리 조경의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질타에서 벗어날 수 없다.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유명한 조원회사를 초청해서 일본 정원을 맡기려는 일을 진행할 때가 생각난다. 초청된 회사의 회장은 자신이 희망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서 우리나라 사람들 중 조경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공부 중인 학생들을 1년에 ○○명씩 일본에 초청해 일주일가량 숙식을 제공하며 기술을 전수하고자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듯이 식물을 대하는 문화도 다르고 그에 따른 조경 방법 또한 다르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개념을 모르는 사람이다. 내 귀로 듣기에는 일제 강점기도 모자라 우리나라의 조경 방법을 조금 더 완벽하게 왜색으로 물들이기 위해 대못을 박으려는 의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가이쓰카 향나무를 다듬는 일이 없어지자 소나무를 둥글게 다듬어서 향나무의 형태로 만들고 있다. 있는 그대로 충분히 훌륭한 소나무를 비싼 돈을 들여 가며 어색하고 개성 없이 만든다. 게다가 이런 소나무는 ‘조형 소나무’라는 이름을 달고 정상가 이상의 값을 받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우리 문화에 맞는 조경 방법이 정착되면, 이와 같은 일본식 소나무 다듬기도 바뀔 것이라 기대해 본다.
  우리나라에 자리 잡고 있는 외래종 식물을 ‘귀화식물’이라고 한다. 이처럼 함께 살아야 하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것은 동물이나 식물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문화를 생각해 본다면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다. 수많은 예가 있지만, 가령 가이쓰카 향나무와 그 전지 방법 등은 우리의 정서와 너무 다른 것이기에 마치 한복 저고리에 기모노 치마를 입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색하고 문화적으로 동떨어진 것이다.
 
  가이쓰카 향나무가 정원의 중심에 있고 대부분의 나무들은 자기다움을 상실한 채 둥글게 다듬어져 정원을 구성하는 것이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 온 ‘격 있는 정원’이었다. 그동안 어느 누구 하나 여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차츰 한국인의 정서는 가이쓰카 향나무를 밀어 내고 소나무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30년 전 삼성동 한국전력 사옥에 시공된 소나무 동산은 소나무 밑에 지피로 식재된 다듬어진 철쭉을 제외한다면 왜색에서 많이 벗어난 정원이라 볼 수 있고, 국내에서도 인정되어 여러 상을 받았다. 이때를 전후하여 잘 다듬어진 가이쓰카 향나무의 가격이 70만원을 상회할 정도였지만, 선택하는 소비자가 없다 보니 나무농장에서는 그동안 애지중지하던 이 나무를 베어 없애고 다른 나무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돌 쌓는 방법, 나무 다듬는 방법 등 아직도 지워야 할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국민성이 이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조경 관련 교수들과 관계자들이 앞장서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인식이 식민시대로부터 각인된 인식으로 대체된다면 우리 존재가 뿌리째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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