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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춘의 한국사회 읽기 〈5〉 ‘귀족노조’ 만든 산업인력은 박정희가 키웠다

글 :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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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준화 교육으로 도시 중상층 중심의 엘리트 교육체제 무너뜨리는 대신, 농촌 중하층을 위한
    엘리트 기능공 양성 시스템 도입
⊙ 기계공고, 시범공고, 특성화공고, 일반공고 통해 50만명, 직업훈련 통해 62만명의 기능공 양성
⊙ 전국 공단에 배치되어 ‘1987 노동자 대투쟁 선도’, 오늘날 ‘귀족노조’의 주역

류석춘
1955년생.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
《전통과 현대》 편집위원,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 역임. 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박정희기념재단 부이사장 / 《막스베버와 동양사회》 《발전과 저발전의 비교사회학》
《한국의 시민사회-연고집단, 사회자본》 《유교자본주의의 가능성과 한계》
《동아시아 유교자본주의 재해석》 등 저술
1975년 11월 13일 정수직업훈련원에 들러 훈련생들을 격려하는 박정희 대통령. 1979년까지 직업훈련원을 통해 62만명의 기능공이 배출됐다.
  1970년대 초 대한민국은,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과 ‘닉슨 독트린’ 이후 주한미군 철수 때문에 안보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한 지 채 3달이 지나지도 않은 1973년 1월 12일 선언한 중화학공업화는 자주국방을 위한 핵심 사업이었다.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중화학공업화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문제부터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야당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일(對日)청구권 자금을 비롯한 해외 차관(借款)을 적극 도입하여, 조선·전자·기계·제철·자동차·석유화학 등의 산업을 일으킬 대규모 공장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당시 노동시장에 넘치던 인력이 과연 그러한 첨단 산업에 필요한 숙련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나아가서 만약 숙련이 없다면 과연 그러한 기술을 익힐 가능성은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였다. 노동력의 질을 향상시키는 인력 공급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중화학공업의 꽃이라 불리는 기계산업은 절대 발전할 수 없었고, 그렇다면 자주국방은 공염불로 끝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절대다수의 노동시장 구성원은 대부분 낮은 학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중화학공업화 성공을 위해서는 이 같은 노동시장의 상황을 완전히 뒤바꾸는 혁명적인 정책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공업화의 추진과 동시에 모든 국민이 과학과 기술을 익혀 인적 자원을 극대화하는 ‘범(汎)국민 과학화 운동’을 제창하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과학기술개발 없이는 중화학공업 육성은 기대할 수 없다. 모든 경제목표 달성은 전 국민이 범국민적 과학기술 개발에 참여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어린이에서부터 대학생, 성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과학을 습득하고 생활화해야 한다.”(1973년 연두기자회견)
 
 
  ‘과학기술계 인력’을 양성하라
 
  이와 같은 과학기술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가 숙련을 가진 노동자의 양성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우선 당시 정부가 ‘과학기술계 인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과학기술계 인력’이라는 개념의 도입은 5·16 혁명정권이 ‘기술계 인적 자원 조사 사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의하면 ‘과학기술계 인력’은 과학기술자, 기술공, 기능공으로 나뉘었다.
 
  ‘과학기술자’는 창조적 업무활동을 수행하는 자로서 학자 또는 전문가적 성격을 가지며 일반적으로 4년제 이공계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지향하며, 연구개발, 기본계획 및 관리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기술공’, 즉 현장기술자는 일반적으로 생산 현장에 투입되어 생산기술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자로서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혹은 중학교 졸업 후 5년 정도의 전문적 기술교육을 받으며 시공 및 생산설계, 기술 및 공정지도관리 등의 기능을 주로 수행하는 자이다. ‘기능공’은 장기적인 체험과 훈련을 통하여 습득된 기능을 활용하여 제작, 제조 및 운전 등의 생산활동을 수행하는 자로서 실기교육과 현장실습이 가장 요구되는 기술 인력이다.
 
  박정희 정부는 1972년부터 1981년까지 10년 동안의 과학기술 인력의 수요와 공급을 세밀하게 예측했다. 과학기술자는 1972년 현재의 공급 기준으로 10년 후인 1981년이 되면 약 5만명의 인력이 초과 공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술공은 1972년 현재의 공급 기준으로 10년 후인 1981년이 되면 약 16만명이 모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능공은 1972년 현재의 공급 기준으로 10년 후인 1981년이 되면 약 134만명이 모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과학기술계 인력 가운데 고학력자의 수급은 문제가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은 분야의 수급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예측되었다.
 
  따라서 당시 과학기술 인력 정책의 핵심은 예상 수요를 전혀 감당할 수 없는 ‘기능공’ 및 ‘기술공’ 인력을 어떻게 확보, 공급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당시 숙련 노동자의 양성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나는 문교부(현 교육부)를 통해 실업고등학교 그중에서도 특히 ‘공업고등학교’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상공부를 통해 공공훈련을 포함한 ‘직업훈련’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평준화 정책과 우수 실업고 육성 정책
 
중학교 입학시험이 폐지된 후인 1969년부터 학생들은 은행알 추첨기(속칭 ‘뺑뺑이’)를 돌려 진학할 학교를 배정받았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교육 문제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된 쟁점은 인문계 중심의 엘리트 충원 구조였다. 당시 자연과학, 즉 이공계 대학 출신은 변변한 직장이 없어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반면, 인문계 대학 출신은 국가기관이나 은행과 같이 안정된 분야에서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에 가야 했다. 여기에 더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에,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중학교에, 그리고 좋은 중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초등학교에 가야만 하는 입시구조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다시 말해 입시지옥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진학하는 순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상층은 물론이고 중산층까지도 어린 자녀들에게 입시를 위한 과외공부를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정희 정부의 1968년 ‘중학교 평준화 정책’ 그리고 1974년의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시행된 혁명적인 교육 정책이었다. 두 단계의 평준화 정책으로 상급학교 진학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명문 중학교 그리고 명문 고등학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다면 박정희 정부는 왜 인문계 위주의 엘리트 교육을 허무는 대신, 그 역할을 대체할 새로운 엘리트 교육 체계를 만들지는 않았는가? 왜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에서 대기업 중심의 성장 모델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교육에서는 중상층 이상의 엘리트 집단에 타격을 가하는 평준화 정책을 시행하였는가?
 
  이 문제는 인문계 엘리트 중·고등학교의 해체라는 단일 차원에서만 바라보면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문계 엘리트 학교의 해체를 그와 동시에 추진된 중화학공업화 및 그에 필요한 과학기술 인력의 양성이라는 문제까지로 확대해서 입체적으로 바라보면, 권위주의 박정희 정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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