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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의 미학산책 〈4〉 미학(味學)도 미학(美學)이다

글 : 김형국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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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대구, 약대구, 건작, 장재젓 등 대구 먹는 법도 가지가지
⊙ 일제시대에 통영에 갔던 백석, “집집이 아이만 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노래
⊙ 겨울 해풍에 ‘얼말린’ 발효 냄새 가득한 통대구의 옛 전통은 어디로 갔나?

김형국
1942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도시계획학 박사 /
서울대 교수,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 녹색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 역임 /
《우리 미학의 거리를 걷다》 저술
경남 거제시 외포항 대구 경매장.
  “미학도 미학이다.” 적고 보니 이 한글 문장은 한마디로 빵점이다. 앞말을 설명해야 하는 뒷말이 앞말과 같은 동어(同語) 반복이기 때문이다.
 
  하나 한자를 곁들이면 문장은 순간 완성된다. 앞말은 음식 맛을 따진다는 미학(味學), 뒷말은 아름다움에 대한 포괄적 논의라는 미학(美學)이다. 좋은 음식에 대한 정보도 아름다움을 따지고 살피는 미학이 되고도 남는다는 뜻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갈구는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다. 어쩌면 미술의 이모저모를 따진다는 통상의 미학은 미학 가운데 한참 나중의 궁구(窮究)였을지도 모른다. 우선 남녀가 서로를 찾을 때 미남 또는 미인을 선호한다. 사람은 먹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존재라 형편 닿는 대로 미식(美食)을 찾는다. 미주(美酒)가 곁들여지면 더욱 고마운 일이다.
 
 
  내 고향 제철 음식
 
외포 경매장에 올려진 대구.
  미식은 제철 음식이 제격이다. 시절은 바야흐로 겨울의 시작인 동지, 동지는 대구가 제철 음식이다. 나처럼 경남 해안가 출신에게 추운 겨울은 신바람 나는 계절이다. 한류(寒流) 어종인 대구가 특히 경남 해역의 산란터를 찾아 몰려들기 때문이다.
 
  내 고향 식문화를 내세워 말하려니 좀 주저된다. 맛있는 음식이나 감동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자랑 말문은 참기 어렵지만 그래도 꼭 참아야” 하는 모순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좋은 음식은, 좋은 여행과 마찬가지로, 함께 체험하지 않고는 감동 나누기가 무척 힘들다.
 
  나의 대구 음식 이야기도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연고 지방의 역사적 풍물이고, 근년엔 주산지답게 대구를 시어(市魚)로 정한 경남 거제시의 외포항에선 동지 전후로 대구축제를 열고 있다. 이 정도로 사회성이 있는 지방문화라면 인문지리적 탐색의 대상이 될 만도 하지 않을까.
 
 
  고향 풍물 대구 김장
 
김외련, 〈대구알젓〉, 종이에 수채, 9.0×12.5cm.
  우리말 김장은 무, 배추의 겨우내 갈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초목이 못 자라는 한겨울을 이길 수 있는 비타민 공급원으로 생겨난 세시풍속이다. 중세 시절, 한겨울 단백질 공급원 확보 차원에서 발전한 게 서양의 햄 식문화였다. 같은 맥락에서 대구를 한겨울 동안 두고두고 먹을 수 있도록 보관·처리하는 노릇을 일컬어 ‘대구 김장’이라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대구 김장은 특히 마산, 통영 등 경남 해안가 지방 언저리의 식문화였다. 풍속은 풍경을 만들기 마련. 단독 주택이 대세이던 시절, 빨랫줄이 걸리던 집 마당에 ‘대구 줄’을 걸고는 거기에 내장을 제거한 생대구를 나무젓가락으로 배를 벌리곤 코로 꿰서 말린다. 대구 저장의 대표 방식인 ‘통대구’를 말리는 광경이다. 대구를 김장하는 노르웨이 쪽이 소금을 잔뜩 친 채 말리거나, 일본식 통대구가 척추뼈를 발겨 버리고 살코기만 말리는 방식과 다르다.
 
  우리가 먹는 ‘태평양 대구’는 북극 주변 얼음 덩어리 사이에서 자라다가 해마다 산란기에 회유하는 한류성 물고기이다. 무게가 5kg 이상, 몸길이 70~75cm의 길둥근 모양이다. 몸빛은 담회갈색, 배 쪽은 희며 등지느러미와 옆구리에 많은 무늬가 있다. 모양새가 명태를 닮아 일본 사람은 명태를 아예 ‘작은 대구’라 부른다.
 
  대구는 17세기 즈음 소빙기를 맞아 차가운 해류가 한반도 쪽으로 밀려온 덕분에 국내에 자리한, 동해의 명태, 서해의 조기와 더불어 민초를 배불리던 고기였다(다케쿠니 도모야스, 《한일피시로드: 흥남에서 교토까지》, 2014). 대구를 일컬어 일본 사람이 ‘타라’라고 읽는 ‘설(鱈)’은 중국 사람도 같이 사용한다. 견주어 우리는 ‘대구(大口)’ 두 글자를 위아래로 붙여 ‘대구 화(夻)’라는 한자도 따로 만들었다.
 
  1926년에 3만 톤이었던 대구 어획량이 1950년에 5000톤으로 줄었다. 그래도 그 연간까지만 해도 웬만큼 살 만한 집이면 거제도, 가덕도 연안 등 진해만 해역에서 잡힌 대구를 적게는 열 마리, 많게는 백 마리 넘게 김장 담그곤 했다. 어느새 1990년의 어획량은 500톤으로 격감했다.
 
  이 지경에서 1994년부터 경남도의 지원을 받은 거제수협이, 그리고 2005년부터 부산 강서구청 등이 치어 방류에 앞장서왔다. 외포항에 하루 2000~3000마리씩 상장될 정도로 대구의 어획량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아무래도 인공수정을 통해 치어를 많이 방류한 덕분이겠다. 대구 김장이 성행하던 시절의 그 갈무리 방식을 돌이켜봄직도 해졌다.
 
 
  대구 갈무리
 
김외련, 〈서울 강북 산자락집의 대구 덕장〉, 종이에 수채, 31×23cm.
  대구 갈무리는 ‘통대구’ 방식이 주종이다. 특미를 위해 달리 말리는 방식도 있다. 알이 가득 찬 놈을 통째로 말리는 ‘약대구’, 배를 가르지 않고 등을 갈라 뼈를 추려낸 뒤 뱃살에 햇볕이 닿도록 해서 말리는 ‘건작(乾作)’ 등이 그것이다.
 
  대구를 이렇게 처리하고 나면 또 다른 진미가 사람의 미각을 기다린다. 아가미로는 ‘장재젓(경남 사투리는 장자젓)’을 담고, 암놈의 알집 곤이(鯤鮞)로는 단단한 ‘참알’을 골라 알젓을 담근다. 그러고 나면 수놈 대구의 정액 덩어리인 이리와 한두 마리 남은 ‘생대구’가 며칠 동안의 맛 잔치에 제공된다.
 
  대구 김장을 한 그날 저녁은 대굿국에다 대구 된장조림 또는 대구구이가 밥상을 장식한다. 대굿국은 소금으로 간을 맞춘 물에 엇비슷하게 자른 무, 그리고 대구 살과 이리의 토막을 함께 슬쩍 익힌 뒤에 모자반이란 해초를 곁들이고 거기에 멸치 액젓에 파를 송송 썰고 마늘 다진 것 그리고 고춧가루를 보태서 만든 양념장으로 간을 해서 먹는 것이 서부 경남의 방식이다. 모자반이 풍기는 향긋한 바다 냄새와 대구 살이 이 사이에 와 닿는 촉감이 부드러운 대굿국은 시원하기가 그지없는 미각의 향연이다.
 
  한바탕 대구 김장이 끝나고, 겨울이 깊어 가는 어느 날 밤. 대관령 등지의 눈밭에서 황태가 얼었다 녹았다 하는 사이에 전문적으로 ‘냉동건조’된, 현지 말로는 “얼면서 마른다”는 ‘얼말린’ 통대구 잔치가 벌어진다.
 
  겉은 얼마큼 말랐지만 안쪽 살은 물렁거리는 채로 붉은빛을 띠고 있다. 척추뼈에 남아 있던 피의 흔적인데 이게, 아는 사람만이 아는 치즈처럼, 약간 곰삭은 발효 냄새를 풍기게 만든다. 그 살을 칼로 썰어 초고추장 또는 고추장에 찍어 먹기 시작하면 그 사이 대구 먹기로 말문이 막힌 채라 식구들은 콧잔등에 맺힌 땀방울로 서로 교감한다.
 
  통대구를 즐기던 옛 풍경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통영에 서너 차례 발걸음 했던 당대의 모던보이 백석 시인(白石·1912~96)의 〈통영 2-남행시초〉에도 등장한다. 1936년, 《조선일보》 기자였던 스물네 살 시인은 흠모했던 방년 열아홉의 통영 여인 ‘란(蘭)’을 만나기 위해 통영을 오갔다. 그때는 서울에서 기차 타고 먼저 마산으로 가야 했고, 거기서 다시 통영행 기선을 타야 했던 멀고 먼 사랑의 길이었다. 결국 사랑은 실패했지만 시인은 ‘통영’이라는 시(詩) 3편을 남겼다.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중략)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중략)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 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후략).”
 
  시인에 대해 적은 한 평전(안도현, 《백석평전》, 2014)에 따르면 백석이 통영을 두고 시작(詩作)을 한 것은 그 두 번째 방문 때, 1936년 1월 초순에서 2월 초순 사이다. 거기에 대구 말리는 광경이 등장하는 걸로 따지면, 그해 음력 설날이 양력으로 1936년 1월 24일이었으니, 시를 지은 것은 1월 24일 이전이라고 나는 추정한다. ‘피도 안 간’ 통대구는 음력 설날이 오기 전 진작 먹어치우는 것이 현지 풍속이라서 하는 말이다.
 
 
  대구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대구는 동짓날 즈음 말리기 시작해 한 달이면 잘 마르는데, 구정이 지날 무렵이면 북어같이 단단하게 마른다. 식욕 없는 봄날 단단하게 마른 대구를 작두로 잘라서 살을 발라 북엇국처럼 끓이면 대구의 짭조름한 맛이 감도는 것이, 북엇국이 따를 바가 아니다.
 
  그 사이에 잘 익은 장재젓은 양념해서 젓갈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잘게 토막 친 무를 넣어 장재김치로 담그기도 한다. 곤이, 곧 큼직한 덩어리 알집은 소금에 절여 2주 정도 지나면 발효되어 발그스름한 색상의 알젓이 되는데, 고춧가루와 깨소금 가루를 곁들여 그냥 찍어 먹기도 하고, 알찌개로 먹기도 한다.
 
  타지의 미식가(신태범, 《먹는 재미 사는 재미》, 1989)도 뒤늦게 알게 된 대구 맛의 이모저모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꾸덕꾸덕하게 마른 구수한 대구 살과 은은한 진달래색으로 무르익은 대구알젓은 가히 심오한 특미라, 한국에 태어난 지복(至福)”이라 했다. 인천 출신의 이 미식가 의사야말로 사계에서 ‘개미’, 곧 특유의 음식 맛을 가장 잘 아는 분이라고 내가 손꼽게 된 것은 순전히 이 구절을 읽고서였다.
 
 
  식후경(食後景)으로 읽는 대구 세계사
 
미국 뉴잉글랜드 여행기념품, 〈대구 릴리프〉, 나무, 27.5×44.0×3.8cm.
대서양 대구는 태평양 종보다 크다. 서양 사람은 역시 그게 맛있다 하는데 우리 생각은 좀 다르다. 그들은 소금을 잔뜩 친 것을 높이 친다.
  대구는 전 세계에서 잡히는 어종이다. 역사와 문화가 되고도 남았다(마크 클란스키, 이선오 옮김, 《대구 이야기》, 2006; 폴 그린버그, 《포 피시》, 박산호 옮김, 2011). 우선 성경 마태복음에 나오는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갖고 오천 명을 먹였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생선이 바로 대구였다.
 
  로마시대에 잉글랜드 사람이 근해를 떠나 멀리 항해한 것은 대구를 잡기 위해서였다. 이 전통 끝에 그들이 즐기는 대표 음식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가 생겨났다. 담백한 대구 흰 살에 두툼한 튀김옷을 입힌 생선튀김과 길쭉한 감자튀김을 함께 먹는 음식이다. 바삭한 튀김 속 생선 살은 부드럽고 감자는 포슬포슬한 게 특징이다.
 
  콜럼버스가 대양 항해에 나섰을 때 주 식량으로 소금에 절인 대구를 잔뜩 싣고 출항했다. 콜럼버스 함대의 성공 이전에 이미 스페인의 바스크족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지 모른다는 추정이 있다. 아메리카 대륙 동부 해안의 대구 황금어장이 세상에 알려짐을 두려워해 대륙 발견을 비밀에 부쳤다는 일설이다.
 
  바스크족이 몰려 사는 스페인의 빌바오(Bilbao)는 대구잡이와 그 무역에 쓰일 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 그 철공업으로 영화를 누렸던 항구도시이다. 그 조선업 경쟁력이 한국 등에 크게 뒤지자 일시에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가 1997년 구겐하임미술관의 등장으로 다시 관광객이 대거 몰려드는 유명 도시가 되었다. 요즘 문화 융성을 추구하는 우리의 수많은 지방도시가 대책을 마련한다며 꼭 찾는 곳이 빌바오 미술관이라던데, 얼마나 많이 찾는지 한국어 전담 홍보요원을 두고 있는 실정이다.
 
 
  축제 상업화의 약점
 
  대구축제가 열리는 외포항은 전국 대구 물량의 30%를 처리한다. 집산지답게 수협 경매장 건물 외벽에 ‘새벽을 여는 사람들’ ‘대구직거래장터’라고 크게 적어 놓았다.
 
  거기 가게에서 파는 건(乾)대구는 참 탐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예전 맛이 아니다. 소금을 미리 친 뒤 건조 처리했기 때문이다. 짠맛이 북유럽식 건대구를 연상시키는데, 그렇다면 겨울 해풍에 ‘얼말린’ 발효 냄새 가득한 통대구의 전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문화행사는 곧잘 문화다움과 상업성이 충돌한다. 대구축제 역시 그랬다. 통대구 특유의 풍미와 기계 건조 맛이 경합하면 당연히 그 풍미가 뒷전으로 밀린다. 축제를 문화행사로 번성시키려면 본디 풍미 찾기도 간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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