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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수 교수의 우리 고전 비틀기 〈12〉 황금 손과 당나귀 귀

글 :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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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수
1969년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 현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의 주인공인 신라 경문왕 이야기의 삽화. 출처=조선일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는 웬만한 동화책에는 다 실려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실려 있다. 《삼국유사》 권2 〈경문대왕(景文大王)〉조에 느닷없이 요상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중 압권은 경문왕(景文王)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거다.
 
  경문왕이 왕위에 오르자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되었다[乃登位 王耳忽長如驢耳]. 왕후나 궁궐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두건을 만드는 복두장만이 알아보았지만 왕의 비밀을 말할 수 없었다. 《삼국유사》 기록에는 분명하게 적혀 있지 않지만 아마도 왕이 말하지 말라고 협박했을 거다.
 
  서양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를 보면, 복두장이 이발사로 등장한다. 임금님은 이발을 한 후, 자기 비밀을 지키기 위해 이발사를 죽여 버린다. 매번 이발사를 죽였는데 한 이발사가 “절대 말하지 않겠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그를 살려주었다. 그래서 그는 전속 이발사가 되어 오랫동안 입을 꾹 다문 채 일을 한다. 경문왕의 복두장도 대충 이런 정도의 아슬아슬한 불안 가운데 일을 했을 것이다.
 
  아무튼 복두장은 평생 이 비밀을 입 밖에 내지 않았는데, 죽을 즈음에 도림사(道林寺) 대나무 숲에 들어가서 그동안 쌓이고 쌓인 비밀을 속 시원히 외쳤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아무도 없는 곳이어서 속 시원히 내뱉었는데, 그 후 바람이 불어 대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대나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경문왕은 당연히 이 소리가 듣기 싫어 모든 대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명령했다. 그 대신 산수유를 심었다. 그런데 글쎄 바람이 불면 또 그 산수유가 “임금님 귀는 길쭉이!”라고 소리를 냈다.
 
  울려 퍼지는 소리는 조금 다르지만 결국 같은 말이었다. 오히려 뒤의 말은 비꼬는 의미가 더해진 듯도 하다. 우선은 대나무를 베어 버려도 산수유가 다시 소리를 친다는 것이 막으려 해도 막지 못한다는 의미 정도로만 기억하도록 하자.
 
 
  솔로몬의 ‘듣는 마음’과 경문왕의 ‘당나귀 귀’
 
신은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 그리고 ‘바닷가의 모래밭같이 넓은 마음’(열왕기상 3:9~12)을 주었다. 솔로몬의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몰려와 예루살렘의 궁전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솔로몬의 심판〉, 니콜라 푸생(프랑스), 캔버스에 유화, 101X150cm, 1649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사람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길어지는 것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길(吉)이냐 흉(凶)이냐는 지금 관점으로 보면 안 된다. 당대에는 그것이 신성성을 설명하는 또 다른 기표(記標)로 읽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후백제를 건국한 영웅 견훤(甄萱)은 ‘지렁이의 아들’이었고, 백제 무왕이 된 서동(薯童)은 ‘외딴 우물에 있는 용의 아들’이었다. 지금 보면 이상하고 질색할 것들이지만 그건 지금의 시각이고 당시는 그것을 왕이 될 표지로 보았고, 왕이 된 자는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특이함은 특별함 또는 기이함으로 인정되기 쉬웠다. 중국 황제 중에서 간질 환자가 꽤 있었는데, 간질을 ‘황제 병’이라고 할 정도로 지금의 인식과는 다르게 바라보았다. 그러니 경문왕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길어진 것을 지금 시각에서 보고 흉하고 이상한 것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어쩌면 왕이 되었으니 인간 귀보다 더 길어져서 “백성들의 소리를 잘 들어라”라는 의도에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경문왕의 귀가 언제 길어졌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야 당나귀 귀가 신성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생래적인 것이라면 견훤이나 서동의 탄생담과 같은 신성성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서양 이야기는 임금님 귀가 언제 길어졌는지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지만, 《삼국유사》에는 분명하게 왕위에 오르자 귀가 길어졌다고 말한다. 즉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일단 ‘신성한 탄생’은 아니다.
 
  후천적인 것이라 해도 신성성의 지표로 볼 여지는 있다. 후천적으로 놀라운 능력을 획득한 예가 없지 않다. 지혜의 왕으로 유명한 솔로몬이 신에 천 번의 제사를 올렸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그렇다. 마침내 신이 나타나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는 유명한 답을 했다(개역개정4판, 열왕기상 3:9~12). 백성들을 잘 다스릴 지혜를 구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매우 흡족해진 신이 지혜를 주었다고 한다.
 
  솔로몬 왕이 요구한 것은 ‘듣는 마음’이었는데, 신은 그것을 ‘지혜’라고 이해한 거였다. 이를 다른 한글 성경들은 ‘지혜’ ‘지혜로운 마음’ ‘명석한 머리’ 등으로 번역했었는데 가장 최근의 버전은 명확하게 ‘듣는 마음’으로 번역했다. 확실히 왕은 백성의 이야기를 잘 듣고 좋은 판단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솔로몬이 왕이 되면서 백성을 위해 ‘듣는 마음’을 간절히 요구한 것처럼 경문왕도 쉽게 ‘듣는 귀’로 당나귀 귀가 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즉 경문왕의 귀가 길어진 것은 마땅히 훌륭하고 좋은 일인데, 그것을 어리석고 간악한 복두장이 제멋대로 내뱉어서 일을 크게 그르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단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단 《삼국유사》가 흥미진진하게 들려주는 경문왕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더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여기서 신성성의 표지를 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반대를 볼 수도 있다.
 
  경문왕의 침전에 매일 저녁이면 무수하게 많은 뱀이 떼로 몰려들었다. 궁궐 사람들이 두려워 몰아내려고 했지만, 왕은 오히려 이렇게 태연히 말했다.
 
  “곁에 뱀이 없으면 잠을 달게 잘 수 없다. 뱀을 쫓지 마라.” 왕이 잠에 들 때면 매번 뱀들이 혀를 내밀어서 왕의 가슴을 덮었다[王之寢殿 每日暮 無數衆蛇俱集 宮人驚怖 將驅遣之 王曰 寡人若無蛇 不得安寢 宜無禁 每寢吐舌滿胸鋪之].
 
  지금과 달리 옛날에 뱀은 신성한 존재였다. 지렁이나 뱀, 용 등은 모두 통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밤중에 뱀이 무수히 몰려드는 것을 일반인인 궁녀들은 질색을 했지만 왕은 태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당나귀 귀는 좋은 걸까 나쁜 걸까? 뱀들의 출현은 무엇일까?
 
 
  판과 미다스 왕
 
미다스 왕이 숭배하는 가축의 신 판(Pan)이 시링크스 요정이 강에서 목욕하는 것을 보고 첫눈에 반해 겁탈하려 하고, 이를 피하던 시링크스를 도와주기 위해 시냇물은 그녀를 갈대로 변신시킨다. 판은 그녀가 변한 갈대를 잘라 차곡차곡 묶었고, 이것이 팬플루트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Pierre Paul Rubens(1577~1640), 〈Pan and Syrinx〉, 1617, Oil on oak panel, 40×61cm.
  경문왕이 왕이 된 후 당나귀 귀가 된 것이 좋은 것인지 타락인지, 뱀들이 몰려드는 것이 신성한 그를 보호하려는 지표인지 아니면 징그러운 친위부대 양성인지는 이야기 전체의 문맥을 살펴보는 것으로 밝힐 수밖에 없다.
 
  그전에 서양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원형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살펴보자. 원형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바로 ‘미다스(Midas) 왕’ 이야기다. 미다스 왕이라고 하면 무엇을 만지든 황금으로 만든다는 그 유명한 손을 지닌 왕이다.
 
  미다스는 소아시아 프리기아의 왕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것은 조금도 거들떠보지 않는 계산적이고 용의주도하고 탐욕스런 자였다. 어느 날 부하들이 국경 근처에서 술에 취한 노인을 잡아 온다. 횡설수설하는 것이 의심스럽기가 첩자 같았다. 미다스는 단번에 그 노인이 디오니소스의 스승인 실레노스라는 것을 알아챘다. 미다스는 노인을 극진하게 대접하고 선물까지 들려 보냈다.
 
  스승에게서 제반 사정을 들은 디오니소스가 미다스 왕을 불러서 고맙다며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때 미다스는 “제가 손으로 만지는 것 모두를 황금으로 바꿔주십시오”라고 요구한다. 이 탐욕스런 작자의 말에 디오니소스는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되는데, 처음에는 하늘을 날 듯 황홀했지만 점점 심각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다 못해 먹고 마시는 것도 불가능해졌고, 급기야 사랑하는 딸마저 황금 조각상으로 만들고 만다. 미다스는 뉘우치며 디오니소스를 찾아가서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결국 그는 원래대로 돌아온다. 여기서 미다스 왕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다.
 
  미다스 왕은 원래 목축의 신인 판(Pan)을 숭배했다. 판은 피리를 잘 불었는데, 자신의 피리 부는 실력이 아폴론이 수금(竪琴)을 타는 것보다 낫다고 여겼다. 어느 날 아폴론과 내기를 했다. 연주 대결에서는 아폴론이 이겼다. 이를 지켜보던 판의 숭배자 미다스 왕이 그 판결이 공정치 않다고 시비를 걸고 나섰다.
 
  화가 난 아폴론이 “이렇게 무식한 귀는 더 이상 인간의 귀라고 할 수 없다”고 하며 길게 잡아 늘여 당나귀 귀로 만들어 버렸다. 당연히 미다스 왕은 자신의 당나귀 귀를 모든 사람에게 숨겼지만 이발사는 알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말하지 못하게 했지만, 욕망을 참지 못한 이발사는 들판에 나가 땅에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크게 외쳤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속 시원히 내뱉고 구덩이를 메웠는데, 얼마 후 거기서 갈대가 자라났다. 그런데 그 갈대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 비밀을 속삭이는 것이 아닌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경문왕 이야기의 복두장이 여기서는 이발사이고, 대나무 숲에서 소리치는 것이 구덩이 속에 외치는 것만 다를 뿐 같은 이야기다. 왕이 된 경문왕의 귀가 왜 길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미다스 왕의 귀가 당나귀처럼 길어진 것은 아폴론의 분노 때문이었고, 그것은 옳은 것을 옳다고 판별하지 않고 제 편향에 따라 우겨댄 것에 따른 징벌이었다. 당나귀 귀는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멍텅구리 귀라는 의미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미다스 왕이 숭배하는 신이 독특한 외모의 소유자로 알려진 ‘판’ 신이라는 점이다. 판은 짐승의 뒷다리에 사람의 팔 그리고 염소의 귀와 뿔을 지니고 있는 가축의 신이자 들판, 숲의 신이다. 갑작스런 공포, 공황, 발작 등의 의미를 지닌 ‘패닉(Panic)’이란 말이 그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춤과 음악, 요정과의 섹스를 즐겼던 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리 멋진 신은 아닌 셈이다. 음악의 신인 아폴론의 세련됨과는 꽤 거리가 있다. 미다스 왕의 귀가 그렇게 흉측하게 길어진 것은 결국 그가 숭배해 마지않는 판 신의 모습처럼 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고 그런 자를 좋아하다가 꼭 그렇게 닮아간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과 어린아이
 
2016년 8월 18일 미국 뉴욕 유니언스퀘어 공원에 세워진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나체상 옆에서 시민들이 ‘셀카’를 찍고 있다. 실물보다 약간 큰 크기로, 도널드 트럼프가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체상은 이날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클리블랜드 등의 도심에서도 선보였다. 나체상 제작자로 알려진 ‘진저(예명)’는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미다스 왕의 당나귀 귀가 고집불통과 아집의 결과로 인한 신의 징벌이라고 해서 꼭 경문왕의 당나귀 귀도 그렇게 부정적인 것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서양과 동양이 다르고 또 동일한 문화지형을 통한 전승 과정을 거쳐 지금에 전달된 것도 아니니 말이다. 또 밤마다 뱀들이 우글우글 몰려오는 것이나 즉위 후 귀가 길어진 것이 결코 일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나름의 통치술’일지도 모른다는 해석도 가능하니 말이다.
 
  경문왕의 당나귀 귀 문제는 해당 이야기 자체의 문면(文面)에서 찾아야 온당할 것이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경문왕 귀 역시 미다스 왕의 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미다스 왕이 이발사를 협박해서 말하지 못하게 한 것은 그것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건 경문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나귀 귀가 자신은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떳떳하게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거다.
 
  견훤은 ‘지렁이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렇게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아마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말은 견훤을 우러러보는 칭송이기 때문이다.
 
  경문왕은 자신의 당나귀 귀를 숨기려 했다. 치부(恥部)라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정말로 부끄러웠던 것이다. 사람들이 안다면 칭송이 아니라 비아냥거릴 거였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이야기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임금님은 사기꾼들에게 홀딱 속는다. “선한 마음이 있는 자의 눈에만 보인다”며 있지도 않은 옷을 입고 대신들 앞에 나타난다. 홀딱 벗은 것을 보고도 대신들은 아무 말도 못한다.
 
  임금님이 옷을 하나도 입지 않고 있다는 진실을 말하면, 그 순간 신하는 문자 그대로 목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었다. 이 노출병 임금님은 홀딱 벗고 거리를 유유히 다닌다. 궁궐에서 대신들과 시녀들이 모두 다 옷을 입었다고 인정해 주다 보니 자신이 정말로 선한 마음이 있는 자들만 볼 수 있는 ‘천상의 옷’을 입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아무튼 그때 한 꼬마애가 외친다. “하하하, 임금님이 벌거벗었네!” 그 외침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사람들도 대신들도 그리고 임금도.
 
  거리를 벌거벗고 다니는 놀라운 용기를 선보인 임금님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건 ‘나는 천상의 옷을 입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홀딱 벗고 거리로 나섰겠는가. 그런데 경문왕과 미다스 왕은 믿지 않았다. 자신의 당나귀 귀가 신의 은총이라고 믿지 않았단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숨기고 감추려 하고, 그 비밀을 알 만한 사람들은 즉각 처리했던 것이다. 영원히 입을 다물게 말이다.
 
 
  경문왕의 당나귀 귀는 원래대로 돌아왔을까
 
  세상에 비밀은 없다. 시일이 걸려도 언젠가는 다 까발려진다. 숨기려 했던 것이 온 사방 천지에 더 멀리멀리 퍼지고 말았다. 대나무 숲의 대나무가 춤을 추며 외쳤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절대왕정의 매서운 칼날은 대나무를 쓸어 버리고 산수유를 심게 했다. 그러자 산수유가 외쳤다.
 
  “임금님 귀는 길쭉이!”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궁금하다. 경문왕의 귀는 원래대로 돌아왔을까? 미다스 왕의 귀는 원래대로 돌아왔을까? 사실 이야기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추측해 볼 수밖에 없다. 잘은 몰라도, 당나귀 귀는 아마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한번 음탕한 ‘판’에게 꽂힌 미다스 왕의 마음이 바뀔 리 없으니 말이다. 그 대단한 아폴론을 두고도, 분명하게 음악 대결의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바득바득 우기며 ‘판’을 두둔한 마음이 어디 쉽게 바뀌겠는가.
 
  그는 황금 손이 끔찍스런 황금 조각상을 만들어내면서 물의를 빚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체험했지만, 그래서 진심으로 뉘우쳤지만, 마음에 꽂힌 화인(禍因)은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러니 진심으로 뉘우칠 리 없다.
 
  “아니 내 귀가 당나귀 귀인 것이 뭐가 문젠데?” 어쩌면 이런 반문까지 했을지 모른다. 대나무 숲이, 갈대밭이, 산수유조차 큰 소리로 고함을 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말이다. 하긴 바뀔 수 있겠는가. 그것을 후회하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면, 그건 결국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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