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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도의 역사 읽기 〈3〉 국정 한국사 교과서도 ‘민주 대 독재’ 프레임 벗어나지 못했다

글 : 유광호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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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교과서, 기존 교과서에 비해 ‘대한민국적 관점’에서 역사 바라보는 건 긍정적
⊙ 역대 정권의 공과(功過) 균형 있게 서술했다지만, 기성의 좌편향 프레임과 절충한 느낌 들어
⊙ 북한 전체주의 체제의 속성 설명하는 데는 미흡

유광호
1958년생. 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
연세대 강사, 이승만연구원 연구원 역임.
현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교육부가 2016년 11월 28일 공개한 ‘올바른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공산 전체주의 체제의 원리를 가장 알기 쉽게 해부한 소설 《1984》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그런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고 갈파했다. 체제 투쟁은 엘리트와 대중의 역사관을 어느 세력이 장악하느냐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일명 ‘의식화’라고 하는 세뇌 작업인데, 나라의 현 체제와 사회현상에 대해 부정적 의식을 배양케 하여 사회변혁운동에 나서도록 하는 일종의 좌경의식 주입 작업을 가리킨다. 역사관을 장악, 지배하게 된다면 곧 국가 전체를 장악해 길이 지배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좌익 혁명 세력이었던 이른바 ‘386 세력’은 1987년 ‘민주화’ 직후부터 중고생들의 역사교육을 통한 의식화 작업에 많은 힘을 쏟았다.
 
  지난 11월 28일에 드디어 국정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현장 검토본이 공개되었다. 2003년부터 생산된 금성출판사의 검정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는 좌편향성이 도를 넘었었다. 그리고 2010년부터 생산되어 채택된 검정 한국사 교과서들의 현대사 부문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교과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현 정부가 국정으로 한국사 교과서를 편찬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결정하고 좌경 기득권 세력의 음해와 저항을 무릅쓰고 1년에 걸쳐 만든 것이다.
 
기존의 고교 한국사 검정교과서들은 좌편향 논란이 끊이지 않았었다.
  기존에 교육 현장에서 채택해 사용하고 있는 검정 국사 교과서들의 현대사 부문 서술은 기본적으로 이른바 ‘민족 민주주의 혁명(NDR)’ 전략에 입각해 있다. ‘민족 민주주의’는 제3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사상적 정체·사회주의 혁명 추진 노력을 감추고 비사회주의 세력들도 동조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내용의 강령, 즉 민족주의·민주주의적인 내용에 초점을 맞춘 강령을 제시하여 비사회주의 세력들과 연대한 반제국주의(반미 및 반서방을 의미) 투쟁과 친사회주의적 민주화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표명한 잠정적 사상이자 정권 조직 형태라고 할 수 있다(양동안, 2011, 《사상과 언어》). 이 사상의 북한식 형태가 북한의 남한혁명 전략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 전략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검정 국사 교과서들의 현대사 서술에서 해방 후 한반도에 들어온 소련군은 해방군으로, 미군은 점령군으로 그렸고, 공산주의 세력과 북한 정권은 항일 세력이자 ‘민주’ 세력, 자유민주 세력과 대한민국은 친일 반민족 분단 세력이자 ‘반민주 독재’ 세력으로 그렸던 것이다. 이런 필자들은 대담하게도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로 만들기 위해 조작을 서슴지 않았던 다큐 <백년전쟁>의 출연자들과도 겹친다. 이런 관점을 공감하는 한국 현대사 연구자들과 역사 교사들이 거대한 세력을 이루어 국사학계와 중등학교 교단의 일각을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타협·절충으로는 역사 서술 할 수 없어
 
2016년 11월 28일 ‘올바른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 공개 브리핑에서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정교과서가 균형 잡힌 교과서임을 강조했다.
  그러면 이제 새로 편찬된 국정 역사 교과서 중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현대사 부문만 살펴보기로 하자. 이번 국정 교과서는 지성 있는 원로 역사학자가 평가하듯이 기존의 대다수 검정 교과서와는 달리 대한민국 국민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며 북한의 왜곡된 역사 선전과 시대착오적인 계급투쟁적 역사관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오늘날의 절실한 열망에 비추어 보면 이번 국정 교과서가 평면적이고 절충적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난 몇십 년 동안 대한민국은 사상적으로 극심하게 갈라진 ‘두 개의 국민(two nations)’ 같은 형국에 처해 있다. 더구나 한국 근현대사 학계와 중등 역사교단의 사상적 지형이 좌편향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상태에서 개혁을 하려고 하니 편찬 지침 자체가 기성 프레임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교육부는 국정 교과서가 기존의 검정 교과서들과 달라진 점으로 “역사적 사실에 대해 균형 있게 서술했다” 힘주어 밝히고 있다. 우선 이 점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것은 역대 정부의 공(功)과 과(過)를 균형 있게 서술하려 했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만물과 세상만사는 밝고 어두운 양면을 가진다. 그와 같이 어느 정부든 공만 있고 과는 없다거나, 과만 있고 공은 하나도 없다거나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각 정부 나름의 공과 과를 추출하여 나열해 놓으면 각 정부들 간의 우열이나 옳고 그름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에서 수립했던 정권들이기 때문에 모두 동등하게 소중하다고 품어버리면 될 것인가? 그것은 공정한 ‘역사’ 서술의 방식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독립, 즉 건국은 항일과 반공으로 이루어졌다. 공산주의 세력의 반역과 싸우면서 자유민주체제를 수립한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명은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화를 성숙시켜 선진국이 됨과 동시에 북한 전체주의 정권에 잡혀 있는 북한 지역 주민들을 해방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다.
 
  이 과제에 있어서 어떤 역량을 가지고 얼마만큼 성과를 냈느냐는 기준에서는 각 정부에 대한 포폄이 내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민주주의’ 구호를 내건 선동 정치로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 내지 정체성이자 역사적 사명을 훼손하거나 등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그 과를 준엄하게 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적 서술이다.
 
  그냥 연표같이 수행했던 일이나 일어났던 사건들을 고루 배열해 놓는 것이 역사 서술은 아니다. 정치 세력들의 자기주장이나 선전들 사이에서 타협이나 절충으로는 서술로서의 ‘역사’를 구성할 수 없다. 친일 행위는 단죄하면서 친공·친북 행위가 단죄를 면할 수는 없다. 결국 민족의 기억이나 정치적 타협을 넘어선 ‘역사’를 서술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현대사 연구는 물론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위와 같은 주문을 채워줄 연구들이 별로 축적돼 있지 못하고 이해 체계를 세울 수준도 아닐 것이다. 그런 조건과 한계 속에서 작업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임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왜 1948년 건국인가
 
중학교 역사2 교과서 등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은 대한민국이 1948년 수립된 것으로 기술했다.
  둘째로, 이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고히 했다”고 밝히고 있다. 교과서는 10페이지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1948.8.15). 대한민국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자유선거에 의해 수립된 국가였다. 1948년 12월 12일 유엔은 총회 결의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코리아)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일단 제헌헌법이 원래 의미하고 있던 대로 1919년 임시정부 수립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같은 흐름 속에 있는 건국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임시정부가 나라를 잉태한 것이라면, 대한민국 수립은 출산을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1948년 8월 15일을 기해 대한민국이 국토와 국민과 주권을 갖춘 명실상부한 국가로 태어났다는 점이다. 위와 같이 1948년 12월 12일자 유엔 총회 결의 195-Ⅲ호를 정확하게 해석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분명히 한 점은 면밀한 사료 해석과 사실 확정의 한 예가 되고 있다.
 
  한편 건국 시점이라는 문제를 두고 1919년 임시정부 선포가 곧 대한민국의 건국이었다는 억지 주장이 정치인이나 언론인뿐 아니라 이른바 국사학자라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주장되고 있다. 그 진영의 한 원로는 1948년이 아니라 1919년에 대한민국이 수립됐다고 강변하는 속내를 다음과 같이 털어놓고 있다. “1919년이 아닌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보면, 일제강점기 시대 친일 부역자들의 친일 행적은 건국 이전의 일이 돼 버린다.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 정권과 친일 세력들에게 1948년 건국은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국가가 있는데도 민족 반역 행위를 번연히 저질렀다고 당시 한반도에 살고 있던 조선인에게 절대적인 잣대를 들이대 심판하려고 하는 욕구가 근저에 가로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절대적 심판관의 의지는 바로 전체주의적 지배자의 심성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매우 정치적이고 무서운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있고 중국 땅에 정부가 엄연히 있는데 ‘왜적’이 점령한 한반도에 그대로 거주하면서 ‘왜적’이 설립하거나 관할하는 각급 학교에 취학하고 ‘왜적’의 통제하에 있는 직장들에 취업하며 ‘왜적’이 걷는 세금을 납부했거나, ‘왜적’ 치하에서 사업을 하고 학교를 세우고 언론을 했으니 반역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논리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친일파가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억지도 있다. 그러나 초대 내각 면면을 보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 국무총리 이범석 등 모두가 독립투사들이었다. 오히려 북한 정권의 초대 내각에는 친일파들이 많았다. 북한이 친일파를 청산하고 한국이 하지 못했다는 말은 오류다. 북한은 공산화에 반대하는 자를 친일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지도 않고 친일파로 몰아 제거했을 뿐이다. 반면에 친일 행위자도 공산화에 협력하면 발탁했다.
 
  한편, 북한에 대해서는 역시 10쪽에서 “38선 이북에서는 북한 정권이 수립되었다(1948.9.9)”고 기술했다. 이는 대한민국과 대등한 국가가 아닌 ‘정권’으로 규정함으로써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역사의식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북한이라고 하는 공산 전체주의 체제의 성격을 설명하지 않았단 것이다. 교과서의 마지막 부분인 ‘Ⅶ-3-4 북한의 3대 세습 독재 체제와 남북한 관계’에서 대한민국사에 부속된 북한의 역사를 별도로 서술하고 있는데, 폭정이라는 관점에서 주로 볼 뿐 공산 전체주의 체제의 원리와 속성을 체계적으로 알려주지는 않고 있다. 시민사회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 전형적인 전체주의 체제로서 내부에는 갈등이나 모순이 없다고 간주하는 체제 원리로 인해 이른바 ‘남조선혁명’이라는 혁명적 사명과 반제국주의(반미) 투쟁은 그 필연적 속성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포기하고는 체제가 존재할 수 없는 체계라는 점을 분명히 서술해 주면 좋을 것이다.
 
 
  이승만은 ‘독재자’라기보다 ‘권위주의적 통치자’
 
  셋째로 생각해 볼 점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균형 있게 서술한다는 방침의 한 항목으로 “민주화운동의 과정과 결과, 의미에 대해 충실히 서술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독재 체제도 명확히 서술했다”는 점과 짝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독재’라는 개념이 정치적 선전 용어를 넘어서려면 엄밀한 과학적 정의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 교과서의 257쪽에 “이승만 정부의 독재로 인해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신생 자유민주 체제 국가에서 더구나 침략을 당해 나라의 사활이 걸린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항상적 국가위기 상황에서 카리스마적 정치력을 지닌 지도자가 그 국가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을 간단히 독재로 규정하는 것은 안이한 이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만 정부의 경우 1952년 ‘부산 정치 파동’과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이른바 ‘발췌 개헌’은 대내외적으로 깊은 국가적 과제를 품고 있는 문제였다. 중공의 대거 참전으로 인한 전쟁의 교착 상태에서 미국의 휴전 의도와 그것에 순응하는 장면 등의 세력과 투쟁하는 북한 해방 지향의 이승만 대통령의 투쟁, 대통령 국회 간선제와 후진국에서의 보수적 과두정치 세력에 대한 이 대통령의 투쟁, 그리고 대통령 직선제가 가지는 민주 확장의 의미를 음미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권력자의 ‘독재’로 처리하는 것은 정파적 정치선전을 여과 없이 수용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정치 행위에 있어서 작용과 반작용의 맥락을 살펴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는 신생국의 항상적 정부 위기 상태에서 마키아벨리적 정치 역량을 발휘하여 자유민주 체제 자체를 수호한 공적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승만은 결코 자유민주 체제를 사상적으로 훼손한 적은 없었다. 자유민주 체제의 변형인 ‘권위주의 통치자’라는 쪽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산업화 앞서는 민주화 없었다
 
2015년 10월 8일 보수성향 교육계 원로와 시민단체 회원들은 서울 광화문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조선일보DB
  박정희 정부의 유신에 대해서는 256쪽에서 느닷없이 숨 가쁜 정치 일정을 열거하면서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 체제였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신 체제에는 국제질서의 대변동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북한의 도발 형태라는 국가적 위기가 있었다. 월남전에서 공산 월맹이 구사한 게릴라전을 한국에서 전개하려는 북한의 도발과 시도로서 1968년 1월 21일의 청와대 습격과 울진·삼척의 대규모 게릴라 침투, 주한미군 한 개 사단의 일방적 철수, 냉전 완화가 수반하는 국제질서에서의 하위 체계의 안보 불안, 미국이 월남을 포기하는 수순, 그리고 시급한 자주국방을 위한 방위산업, 즉 중화학공업화 등 국력의 극대화와 효율화 필요성 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세계사상에 처음으로 창출되어 성과를 내고 있던 박정희 정부의 수출 주도형 후진국 산업화 전략을 중화학공업화로 업그레이드해서 지속적으로 추진하느냐, 아니면 좌경적 ‘대중 경제론’ 세력에 의해서 그것이 좌절되느냐 하는 국가적 갈림길에 있었던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 시점에서 역사에 있어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관계에 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산업화에 선행하는 민주화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경험이다. 영국도 명예혁명으로 입헌주의를 성립시킨 후 산업혁명을 달성할 때까지는 대중 민주정을 실시하지 못했다.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자산계급과 지식계급만이 참정권을 가졌다. 산업혁명을 이룬 후인 19세기 중후반에야 점차적으로 국민 대다수에게 참정권이 부여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영국을 이은 후발 산업화 국가 모두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대한민국도 기본적으로 여기에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한국은 대한민국을 건국할 때부터 농지개혁으로 자유로운 국민들이 성립하고 정치 체제도 민주정이었다. 민주정의 시행에서 일탈이 있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비민주 체제로 간 적은 없었다. 안정적인 민주정은 산업화를 이룬 뒤에 올 것이었다. 역사적 이치에 어긋나는 갖은 궤변에 휩쓸리지 않고 독보적인 산업화를 이뤄낸 한국의 리더십과 그 이치를 이해하고 협력한 대다수 국민으로 인해서 대한민국이 보편적인 역사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민주 대 독재’ 프레임 못 벗어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2015년 11월 3일 국회 앞 계단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조선일보DB
  민주화운동에 관한 서술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5·18 민주화운동의 경우 “1980년 5월 17일 신군부의 압력 속에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것”(270쪽)이 원인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된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을 가지고 연구한 재미학자 김대녕의 《역사로서의 5·18》만 보더라도 자료들은 김대중과 혁명권 운동권의 광주 봉기가 계획적으로 준비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각종 이른바 ‘민주화운동’들에 대한 증언과 자료들은 그 운동의 구성원들 다수의 사상과 지향이 자유민주주의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한 혁명 정치적 사건들을 대한민국 정치 발전의 주류로 교과서에 서술해도 되는지 매우 우려스럽다. 이런 점들로 볼 때 이 교과서도 한국 정치를 봄에 있어서 ‘민주 대 독재’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의 현대 부문이 이만큼 좌편향에서 벗어난 객관적 서술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비판 진영에서 비난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현대사 부문 집필진에 한국 현대사 전공 학자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번 교과서가 향후 더욱 올바르게 체계를 잡아나가야 할 국사 교과서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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