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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출신 우동집 주인장의 일본 物語 〈8〉 에도시대 교육

에도시대의 교육, 나라가 안 가르쳐도 스스로 배운다

글 : 신상목  (주)기리야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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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시대에 서유럽 이상의 문해율 자랑
⊙ 각 번마다 번교 세워 교육 진흥
⊙ 데라코야 등 사립학교 통해 인재 양성

신상목
1970년생. 연세대 법대 졸업, 외시 30회 합격 /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외교부 G20정상회의 행사기획과장, 핵안보정상회의 준비기획단 의전과장 역임.
현 기리야마 대표 / 저서 《일본은 악어다》
사설학당인 데라코야는 에도시대 교육의 꽃이었다.
  에도시대 일본은 문맹률이 동(同)시대 서유럽 여러 나라에 비추어도 낮은 사회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엄정히 조사하고 통계를 낸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19세기 초반 일본인의 70~80%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현대국가에서도 유엔의 인간개발보고서(Human Development Report)가 문해율 70~80%를 ‘보통’ 수준으로 분류할 정도이니 80%의 문해율(文解率)은 전(前)근대사회로서는 대단히 높은 것이다.
 
  에도시대 일본의 문해율에 대해서는 19세기 초반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의 기록에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1848년 일본에 입국하여 일본 최초의 원어민 영어교사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래널드 맥도널드(Ranald MacDonald)는 그의 《일본회상기》에서 “최상층부터 최하층까지 모든 계급의 남녀, 아이들이 종이와 붓과 묵을 휴대하고 다니며 곁에 두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읽기와 쓰기 교육을 받고 있다”며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영국의 외교관이자 여행가, 작가로 인도, 중국 등을 두루 경험한 로렌스 올리판트(Laurence Oliphant)는 1858년 및 1861년 두 차례에 걸친 방일 시 일본 사회를 관찰한 후 “편지로 서로 의사를 전달하는 습관은 영국보다도 더 폭넓게 퍼져 있다. 일본인들은 우편(郵便)의 재미에 푹 빠져 있기라도 하듯 서로 짧은 편지를 주고받기를 좋아한다”고 기술하기도 하였다.
 
 
  공교육의 핵심 번교(藩校)
 
  사회 구성원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라는 사회화 과정이 필요하다. 에도시대의 교육은 크게 보아 무가(武家)교육(공교육)과 서민교육(사교육)으로 나눌 수 있다.
 
  무가교육의 핵심적인 기관은 각 번정부가 설치한 번교(藩校)이다. 1669년 오카야마(岡山)번에 오카야마학교(岡山學校)가 설립된 것을 필두로 18세기 중반에 이르면 250여 개에 이르는 거의 모든 번에 자체적인 번교가 설립된다. 번교는 각 번의 무사 계급인 번사(藩士)의 자제들을 위한 지배층의 핵심 교육기관이었다. 각 번주의 방침, 지원에 따라 교육의 수준과 내용이 다양하였으며, 실질적으로 번주가 휘하의 가신과 관료들을 육성하고 통치권을 강화하는 사관학교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번사의 자제들은 대개 7~8세의 시기에 번교에 입학하여 기초적인 읽기 및 쓰기와 함께 소학(小學), 효경(孝經), 사서오경(四書五經) 등 유교 경전과 학습서를 교과서로 문과(文科) 수업을 집중적으로 받으며, 13~14세가 되면 검술 등의 무예와 병법 등 무과(武科)를 교습하여 문무를 겸비한 사관(士官) 또는 관료로서의 소양을 배양한 후 17~19세 정도에 졸업을 한다.
 
  번교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번의 사정과 처지에 맞는 인재 육성 교육이 가능하였다는 것이다. 18세기 말 이후 각 번이 처한 환경과 필요에 따라 의학, 양학 등 신학문을 교과과정에 편입하는 번교가 늘어난다. 평민의 자제들에게 입학의 문호를 개방하는 번교도 확대된다.
 
 
  사쓰마의 개성소
 
  이러한 번교 개혁의 대표적 사례가 사쓰마번의 조시칸(造士館)이다. 사쓰마번은 지정학적 요인으로 대륙 정세에 대한 정보의 입수가 빠르고 서양 세력과의 접촉이 불가피한 곳이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간파한 사쓰마번은 기존의 유교와 무예 중심의 전통교육에서 탈피하여 신시대에 걸맞은 인재 육성을 위해 번교의 커리큘럼과 입학자격을 일신한다. 개혁의 물꼬를 튼 것은 11대 번주인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齊彬)였다. 1857년 번 개혁의 뜻을 담은 번주의 고유(告諭·관청의 告示)가 발표된 이래, 사쿠라지마(櫻島)에 서양식 선박 건조를 위한 조선소, 서양과학기술 연구를 위한 슈세이칸(集成館), 중국어 연구를 위한 다쓰시칸(達士館), 서양식 병기와 군학(軍學) 연구를 위한 가이세이쇼(開成所) 등이 속속 건립되었다.
 
  1865년 사쓰마번은 영국에 3명의 사절과 15명의 유학생으로 구성된 견영사절단(遣英使節團)을 파견한다. 사절단은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네덜란드, 벨기에 등 구주를 순방하고 일부는 미국까지 건너가 유럽의 정세와 과학기술을 체험하고 일본의 나아갈 길에 대하여 유럽의 지도자들과 의견을 교환하였다. 알다시피 사쓰마번은 삿초동맹(薩長同盟·사쓰마번과 조슈번 간의 동맹)의 일원으로 메이지 정부 수립의 주역이다. 중앙정부보다 한발 앞서 행동하고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춘 지방정부가 새로운 세상의 주역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도쿄대학 설립으로 이어진 막부의 3대 직할 교육기관
 
유시마성당을 세운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
  중앙정부인 막부가 설립한 일종의 국립 중앙교육기관도 에도시대 공교육의 중추를 이룬다. 1690년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는 당대 최고의 유학자 하야시 라잔(林羅山)이 우에노(上野)에 건립한 공자묘(孔子廟)를 간다(神田)의 유시마(湯島)로 이전시키고 강당, 기숙사 등의 교육시설을 부설하여 ‘유시마성당(湯島聖堂)’으로 명명한다. 유시마성당은 막부의 지키산(直參·직할 가신단) 자제, 각 번으로부터의 파견 유학생이 입학하는 반공반사(半公半私)의 교육기관이었다. 이후 1797년 막부의 직할 교육기관으로 편입하면서 명칭을 ‘쇼헤이자카학문소(昌平坂學問所)’로 개칭하였다. 쇼헤이(昌平)란 이름은 공자의 출생지인 노(魯)나라의 창평향(昌平鄕)에서 따온 것이다. 이름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쇼헤이자카학문소는 막부에 의해 막부의 통치철학의 기반인 주자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최상위 관학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막부는 유교 교육 이외의 실용 학문을 위한 연구교육기관도 별도로 설립하였다. 반쇼시라베쇼(蕃書調所 또는 蠻書調所)는 1856년에 발족한 막부 직할의 양학(洋學) 연구기관이다. 막부 직할 개항지인 나가사키 등지로부터 서양 소식이 전해지고 난학(蘭學)의 중요성이 대두함에 따라 서양 학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으며, 1863년 ‘가이세이쇼’로 개칭(改稱)되었다. 주요 연구 과목으로 네덜란드어를 중심으로 하는 어학, 현대의 금속공학에 해당하는 정동학(精錬學), 기계학, 물산학(物産學), 수학 등이 채택되었다. 한편, 종두 예방 접종 성과 등이 널리 알려지면서 난방(蘭方)의학의 입지가 강화돼 1861년 서양의학 전문기관으로 막부 직할의 의학소(醫學所)가 설치되었다. 서양의학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난방의사들은 막부에 서양의 지식과 기술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권유, 일본 사회의 지적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막부의 실권(失權)에 따라 유신 정부에 접수된 의학소는 1868년 의학교로 개칭되었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이라는 일대 격변을 맞아 쇼헤이자카학문소, 개성소, 의학소는 유신 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따라 각각 쇼헤이학교, 도쿄개성학교, 도쿄의학교로 명칭을 변경하고 근대적 교육기관으로서의 변신을 모색한다. 이들 막부 직할 3대 교육기관은 1877년 통합, 일본 최초의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인 도쿄대학(東京大學)이 출범한다.
 
 
  에도시대 교육의 꽃 ‘데라코야(寺子屋)’
 
오늘날 도쿄대학의 모태가 된 쇼헤이자카학문소.
  에도시대의 교육 체계와 관련하여 보다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교육이다. 에도시대를 관통하는 서민 교육의 특징은 서민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건전한 유지, 발전을 위해 익혀야 할 지식과 교양이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이다. 이에 따라 일상생활에 필요한 실용교육, 직업생활에 필요한 봉공(奉公)교육, 공동생활에 필요한 도덕교육 등이 서민 교육의 중심 내용으로 강조되었다. 신분제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한계가 있으나,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기초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은 전근대사회로서는 대단히 발전된 교육관이라 할 수 있다.
 
  서민 교육의 중심이 된 것은 ‘데라코야(寺子屋)’라는 사설교육기관이다. 데라코야라는 명칭은 에도시대 이전의 중세에 주로 사원(寺院)이 교육을 담당하였고, 그곳에서 공부하는 학도들을 ‘데라코’라고 부른 데에서 연유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에도시대 초기 교토 등 사원의 영향력이 강한 일부 지역에서 개설되기 시작한 데라코야는 에도 중기 이후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해 에도 말기에 이르러 에도, 오사카, 교토의 삼도(三都)는 물론 지방도시, 농어촌 등의 낙후지역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일본의 교육학자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식 학제 개혁으로 소학교령이 내려졌을 때 전국적으로 취학 대상 아동들의 입학 수속이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은 데라코야의 광범위한 보급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분석한다.
 
  데라코야 교육은 실용적이었고 수요자 중심이었다. 이러한 특성은 오히려 현대에 와서 획일화된 기초교육이 비판받으면서 그 장점이 새롭게 부각될 정도이다. 우선 데라코야의 교육 방침은 ‘요미가키소로방(讀み書きそろばん)’의 교습이다. 글을 읽고 쓰고 소로방(주판)을 할 줄 알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다. 그 방법론으로 채택된 것이 ‘데나라이(手習)’이다. ‘시쇼(師匠)’라 불리는 교사가 직접 손으로 쓰고 읽어주면 학생들은 종이, 붓, 벼루, 먹을 필수품으로 지참하여 교사의 지시에 따라 익숙해질 때까지 글을 쓰고 읽기를 반복하였다. 학년제, 표준 교과과정이 없기에 모든 학생은 한 교실에 앉아 수업을 받았다.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총명한 학생들은 진도를 빨리하여 또래보다 더 수준 높은 내용을 교습받을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충분한 여유를 두고 습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 교과서로 주로 사용된 것은 ‘오라이모노(往來物)’였다. 오라이모노는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다방면의 주제에 대해 평이한 문체로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기술된 문집이다. 거의 모든 방면의 오라이모노가 존재하여 교사들은 각 지역의 특성과 교육 수요 등에 맞추어 교과목을 선정하여 교습하였다. 또한 일본 사회의 역사, 풍습, 제도 등 기초상식을 연중행사 소개 형식으로 폭넓게 다룬 ‘데이킨오라이(庭訓往來)’가 기초 교과서 형태로 널리 보급되었으며, 직업 생활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지리, 상업, 기술, 산수 관련 과목이 다양하게 교습되었다.
 
 
  실용교육의 산실
 
  한편 실용적 지식과 아울러 (전근대 신분제 사회의 한계가 전제되기는 하였지만) 서민들 각자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배양해야 할 심성과 덕목이 주요 교육 목표로 강조되었다. 이를 위해 교과서 역할을 한 대표적인 것이 ‘지쓰고쿄(實語敎)’와 ‘도지쿄(童子敎)’라는 수신서(修身書)이다. 지쓰고쿄는 조선시대의 천자문이나 동몽선습처럼 거의 모든 데라코야에서 교본(敎本)으로 채택되어 학생들에게 가르쳐졌다. 지쓰고쿄에는 유불도신(儒彿道神)을 망라한 일본적인 도덕관과 교훈이 담겨 있다. 이를테면, ‘산은 높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많이 품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부가 있어야 훌륭한 것이 아니라, 지혜가 있어야 비로소 훌륭한 것이다’ ‘노인을 자신의 부모처럼 공경하고,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등등이 그 가르침의 내용인데, 이러한 관념과 전통은 현대 일본 사회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데라코야는 일반인을 위한 특별 야간강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일본 전래의 고급수학인 ‘와산(和算)’, 고급 상업회계인 ‘부기(簿記)’ 등의 강좌를 개최하는 경우도 있었고, 고급 유교경전에 대한 심도 있는 학습을 위해 당시 유행하던 ‘가이도쿠(會讀)’와 연계하여 고급 경전반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명한 인기 강사는 전국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순회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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