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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출신 우동집 주인장의 일본 物語 〈7〉

에도시대 출판문화 융성의 키워드 - 포르노, 카피라이트, 렌털

글 : 신상목  (주)기리야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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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2년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의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이라는
    오락소설이 전대미문의 히트를 하면서 출판시장 활성화
⊙ 100만부 이상의 초베스트셀러 등장, 전업작가도 나타나
⊙ 목판인쇄 판목의 소유 및 이용 권리의 규범으로서 ‘판권’이란 개념 형성

신상목
1970년생. 연세대 법대 졸업, 외시 30회 합격 /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외교부 G20정상회의 행사기획과장, 핵안보정상회의 준비기획단 의전과장 역임.
현 기리야마 대표 / 저서 《일본은 악어다》
짓펜샤 잇규(十返舍一九)의 〈동해도중슬률모(東海道中膝栗毛)〉(1802~09)는 에도시대 여행·관광 붐의 기폭제가 되는 작품이었다.
  일본의 높은 독서열과 출판문화의 뿌리는 3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에도시대는 책의 ‘융성’시대였다. 하시구치 고노스케(橋口侯之介)에 따르면 16세기 말 게이초(慶長)에서 19세기 중반 게이오(慶応)에 이르는 250년 남짓한 에도시대에 적어도 10만종 이상의 신간 서적이 출판되었다고 한다.
 
  16세기까지 일본의 출판문화는 유럽, 중국은 물론 조선에 비해서도 뒤처져 있었다. 전쟁의 시대가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자 상황이 반전된다. 17세기 중반 일본의 출판문화는 200여 개의 출판업자가 경쟁하고 18세기 중반에는 연간 1000종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며 19세기에는 모든 국민이 책을 생활필수품으로 활용하는 ‘출판대국’이 되었다. 어떻게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을까? 포르노, 판권(copyright), 대여업(rental business)이 비결이었다고 생각한다.
 
 
  출판 혁명의 시작은 포르노
 
  16세기 말 한반도와 유럽의 선교사를 통해 도입된 활판(活版)인쇄술도 일본인들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였다. 활판인쇄는 기술적으로 상용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에도인들은 목판인쇄에 다시 주목하고 기술을 가다듬어 책의 대량생산, 보급 체계를 갖춘다. 18세기 전까지 출판 중심지는 교토(京都)였다. 혼야(本屋) 또는 서림(書林)이라 불리는 교토의 출판업자들이 관(官)이나 사원에 연계되어 불서(佛書), 한서(漢書), 역사서, 의서(醫書) 등의 고전(古典) 또는 정통서(이를 ‘모노노혼·物之本’이라 한다)들을 간행했다.
 
  17세기 말엽에 일본은 일대 혁명적 전환의 순간을 맞이한다. 1682년 오사카와 에도에서 발간된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의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이라는 오락소설이 전대미문의 히트를 친 것이다.
 
  호색일대남은 ‘요노스케(世之介)’라는 남자주인공의 7세부터 60세에 이르는 54년간에 걸친 파란만장한 ‘섹스 라이프’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인 요노스케는 7세 때 첫경험을 한 이후 전국을 방랑하며 육체적 로맨스에 탐닉하는데 친척 여동생, 유곽의 여인, 남의 아내, 미소년까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이러한 에피소드가 단편을 이루어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8권 8책에는 한 호색남의 일생에 걸친 ‘섹스 판타지 어드벤처 로망’이 담겨 있다. 요노스케가 관계를 맺은 상대는 여성 3742명, 남성 725명이라 한다. (에도 중기까지는 남색(男色)이 드물지 않았다)
 
  《호색일대남》은 관음증을 자극하는 에피소드지만 현대 학자들이 극찬할 정도로 고품격 포르노그래피로서의 관능미와 묘사, 은유가 절묘하게 당시 각 지역의 풍정(風情)과 서민들의 희로애락과 생활상이 당대 언어로 생생하게 담겨 있어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도 높다고 한다. 이하라 자신이 직접 그렸다는 삽화는 텍스트에 독자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유발하였고 에도시대 ‘재미있는 읽을거리’의 전형으로서 후대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일본 전역에 《호색일대남》 열풍이 불어 판매부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인쇄의 기본이 되는 판목이 오리지널 외에 5종이나 더 제작된 것은 높은 인기와 판매량을 뒷받침한다. 《호색일대남》의 히트를 계기로 일본 사회는 책의 대중소비 시장 가능성에 눈을 뜬다. 이후 ‘재미’를 표방하는 오락서적(이를 ‘草紙·소우시’라 한다) 붐이 일면서 기존의 ‘모노노혼’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대중출판물 시장이 형성된다.
 
 
  시대를 풍미한 초베스트셀러의 등장
 
포르노그래피 소설 〈호색일대남〉은 에도 시대 출판붐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호색일대남》 이후 ‘구사조시(草双紙)’라는 장르가 유행한다. 구사조시는 에도 중기인 18세기 중반부터 에도 말기인 19세기 초반까지 에도를 중심으로 출간된 대중오락 서적의 통칭으로, 그림과 텍스트를 같은 판목에 새겨 인쇄함으로써 시각적 효과가 가미된 ‘가벼운 읽을거리’로 만화의 원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에도에 출판붐이 일면서 현재로 치면 100만부 이상의 판매량에 해당하는 초베스트셀러가 속속 등장한다. 먼저 《남총리견팔견전(南総里見八犬伝》(1814~1842)이라는 장편소설이다. 저자인 교쿠테이 바킨(曲亭馬琴)이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28년 동안 총 106책(冊)에 걸쳐 집필한 집념의 ‘생애작(lifetime work)’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전국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권선징악, 인과응보를 주제로 한 창작 판타지물이다. 이 작품을 모티브로 한 만화나 영화가 현대에도 재생산될 정도로 대중문학의 틀을 바꾼 근세 요미혼(讀本)의 이정표와 같은 존재이다.
 
전국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물인 〈남총리견팔견전(南総里見八犬伝〉.
  짓펜샤 잇규(十返舍一九)가 쓴 《동해도중슬률모(東海道中膝栗毛)》(1802~09)는 에도시대 여행, 관광 붐의 기폭제가 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에도에 사는 평범한 중년남성과 청년이 콤비를 이루어 이세(伊勢)참배 여행을 떠나는 스토리를 코믹하게 서술한 이 작품은 당초 초편과 속편의 2편으로 종료 예정이었으나 상상을 초월하는 대히트 덕분에 이세를 넘어 오사카까지 여행을 계속하는 8편까지 연장됐다. 그후 독자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도카이도(東海道)를 벗어나 일본 각지를 돌며 여행하는 스토리를 추가하는 《속슬률모(続膝栗毛)》(1810~1822)가 출간됐다. 도중에 작가가 소재 고갈로 집필을 몇 번이나 그만두려 하였으나 제발 연재를 계속해 달라는 독자들의 간청으로 집필을 이어 갔다고 할 정도이다. 일본 각지의 명물과 풍속, 인정(人情)을 코믹한 터치로 풀어낸 에도 기행(紀行)문학의 걸작은 독자들과 같이 호흡하며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서야 대단원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더 이상 인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원(元)판목이 닳아 판목을 다시 제작해야 했으며 패러디나 복제판이 다수 제작되며 3만권 이상이라는 당시로선 경이로운 판매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책’이 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 개념 전환이 이루어지자 발달된 상업자본과 유통망에 힘입어 상업출판 시장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다. 에도시대 말인 18세기 말에 이르면 인구 100만의 에도에 출판업자들이 모여들어 연간 수백 종의 신간을 발행하는 본격적인 상업출판 시대가 꽃을 피운다. 구사조시 서적과 우키요에 등의 화첩류, 그리고 본격 모노가타리인 ‘요미혼’ 등이 큰 인기를 모음에 따라 교토를 제치고 에도가 제1의 출판시장으로 도약한다. 에도의 출판시장에서는 각종 오락물, 실용서, 백과사전, 여행가이드북 등 다양한 장르가 개척되고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전문적으로 취재를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전업작가’가 등장하는 등 비즈니스 생태계가 구축된다.
 
 
  유교의 이상(理想)을 완성한 《경전여사(經典余師)》
 
‘다니 햐쿠넨(渓百年)’이라는 떠돌이 유학자가 쓴 초급 유교경전 해설서 〈경전여사〉.
  읽을거리가 많아지자 글을 배우려는 의욕이 높아진다. 사설 교육기관 ‘데라코야(寺子屋)’는 글을 배우고자 하는 서민들로 넘쳐나고, 데라코야 교습으로 생계를 잇는 평민 지식인층이 대두한다. 데라코야는 공적 교육기관인 번교(藩校)와 달리 신분을 가리지 않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읽기, 쓰기 등의 기초부터 산수, 주판 등의 실용기술 그리고 사서오경 등의 간단한 유교경전 등에 대한 지식이 데라코야를 통해 서민 사회에 폭넓게 보급된다.
 
  어느 서양 선교사가 ‘이 나라는 시골의 어린 계집아이도 글을 읽고 쓸 줄 안다’고 놀라움을 기록으로 남길 정도로 전국민의 문자해독률이 높아진 19세기 초엽, 당대 굴지(屈指)의 넘버원 베스트셀러는 《경전여사(經典余師)》라는 유교경전 풀이집이다. ‘다니 햐쿠넨(渓百年)’이라는 떠돌이 유학자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은 사서오경 등의 유교경전에 히라가나로 음을 달고 저자의 주해를 붙인 일종의 초급 유교경전 해설서이다.
 
  일본은 무가(武家) 중심의 신분사회였으나, 각 번이 서로 경쟁하면서 우수한 인재를 발탁하기 위해 평민 계층에게도 관직의 문호를 개방하는 신분 완화의 시기를 맞이한다. 18세기 말이 되면 조닌 계층에서도 관직 등용의 꿈을 안고 통치이념인 유교경전을 공부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19세기에 들어서면 유교경전에 대한 지식은 필수 교양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상하에서 홀로 유교경전을 익힐 수 있는 길라잡이 역할을 한 《경전여사》가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것이다.
 
 
  일본판 지적재산권의 시초, ‘판권’의 탄생
 
  어떤 학자는 18세기 초 앤 여왕 시대에 영국이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의 개념을 법제화한 것이 영국이 자본주의와 산업혁명 선도국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분석한 적이 있다. 지적재산권은 영어로 copyright라고 한다. 저작권과 판권(板權)으로 구성되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권리의 중심이 되는 것은 판권이다. 일본의 경우 서구의 근대법제가 도입되기 전임에도 출판물에 대한 권리로서의 판권에 대한 자생적인 규범이 형성되었다.
 
  에도시대 출판업의 중심이 된 것은 ‘한모토(版元)’였다. 한모토는 판(版)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자라는 의미이다. 목판(木版)은 제작하는 데 숙련 기술자들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불편이 있는 반면, 한 번 만들면 닳아 못쓰게 될 때까지 몇 백 년이고 책을 찍어낼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에도시대의 출판업자들은 상품성 높은 책의 판목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사업의 경제성과 지속성에 대단히 중요하였다. 당시 출판은 고료를 제외하고도 판목 제작에만 지금 돈으로 수천만 원에 해당하는 자본이 투하되어야 하는 리스크가 큰 투자였다.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1000부 이상이 판매되어야 하는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센부부루마이·千部振舞’라고 하여 1000부가 팔리면 축하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당시 서민의 소득에 비추어 책은 상당히 고가여서 웬만한 책은 현재 가치로 10만원이 넘었다고 하니 1000부는 결코 적은 판매부수가 아니다.) 업자들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동업자인 ‘나카마(仲間)’를 구성하여 공동으로 출자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판목이 출판업자의 생명줄과도 같은 중요 재산이 되자 판목의 소유 및 이용 권리의 규범으로서 ‘판권’이란 개념이 형성된다. 판권은 출판업자 사이에 소유, 양도가 가능한 재산으로 인정되었으며 주식처럼 소유권을 분할하는 것도 가능했다. 당시 출판업자들은 대관(對官)업무, 자율규제, 권익보호를 위해 자체적인 조합을 만들었는데, 소속 조합원들이 신규 판목 제작 시 조합에 원부(原簿)를 만들어 판권 관련 사항을 등록하면 배타적인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 원부를 기초로 소유권 이전, 분할 등 변동 사항을 경정(更訂)함으로써 판권이 재산으로서 온전히 기능할 수 있는 법적 안전 장치가 마련된다.
 
  유사한 내용의 판목이 판권 소유자의 허락 없이 제작되거나 해적판이 나돈다면 판권을 소유하는 의미가 없다. 에도의 출판 조합은 이를 위해 중판(重版) 또는 유판(類版) 등의 복제판 제작과 출판을 규제하였다. 자체적으로 등록 신청 단계에서 내용을 검수하여 중판 또는 유판에 해당하면 등록을 거부하였고, 시장에 나도는 해적판은 자체 회수하거나 관청에 신고하여 단속을 의뢰했다.
 
 
  ‘대본업’의 등장과 공유경제
 
  출판시장에서는 모노노혼을 취급하는 혼야, 오락물 등을 취급하는 소우시야(草紙屋)가 공급자다. 교토, 에도, 오사카, 나고야에 거점을 둔 이들 메이저 출판업자들은 본사 격의 책방을 차려 놓고 도소매로 서적을 판매한다. 혼야는 ‘쇼시(書肆)’라고 하여 출판사, 인쇄소, 서점의 일관 공급 체계를 갖춘 출판 프로듀서로서 출판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4대 거점 이외의 지방도시에서는 메이저 출판업자들과 ‘나카마’ 관계에 있는 지역 서점들이 일종의 총판대리점으로서 도매로 책을 떼어와 판매했다.
 
  당시 출판은 작가가 ‘기요즈리(淸刷り)’라는 원고를 작성하면 판각 전문가인 ‘호리시(彫師)’, 인쇄 전문가인 ‘스리시(刷師)’ 등의 직인(職人)들이 ‘분화와 전문화’의 원리에 따라 제판, 인쇄, 제본 등에 참여하여 이루어졌다. 이러한 작업에는 상당한 초기투자가 필요하다.
 
  문제는 당시 책이 서민들이 구입하기에는 상당히 고가여서 아무리 인기 있는 책이라도 판매량을 늘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공급자 측인 출판업자들이 리스크 경감을 위해 고안한 방식이 ‘공동출자와 판권의 분할’이라면, 수요 측면에서 안정적 판로 확보를 위해 고안된 방식이 ‘대본업(貸本業)이다.
 
  에도시대의 대본업은 현재의 책 또는 비디오 대여점과 거의 유사하다. 대본소 덕분에 서민들은 저렴한 가격에 보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볼 수 있었고 출판업자들은 판로가 안정됨에 따라 안심하고 좋은 콘텐츠의 기획, 출시에 힘쓸 수 있었다. 18세기 중반에 이미 에도에만 200개가 넘는 대본소가 성업하고 있었는데 각 대본소는 평균 200군데 이상의 단골 거래처를 두고 영업했다고 한다. 책을 온 가족이 돌려보는 것이 당시 시대상이었으니 책 한 권이 출간되면 에도에서만 대본소를 통해 최소한 10만에서 20만명의 독자가 확보되는 것이다. 시골의 독자들을 위해서는 대본소 직원들이 책을 짊어지고 직접 시골로 찾아가 영업을 했다.
 
 
  출판문화 융성은 출판시장 활성화의 동의어
 
  에도시대 출판문화의 특징은 진화 과정에서 ‘시장(市場) 원리’가 주효하였다는 것이다. 현대와 유사한 출판사(publisher), 저자(author), 보급자(distributor) 사이의 기능적 ‘분화와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판권’이라는 저작권(copyright)과 유사한 지식재산권이나 ‘대본업’이라는 공유경제의 맹아가 싹튼 것은 주목할 만하다. 비단 출판업뿐 아니라 사회경제 각 방면에서 유통 생태계가 구축되고 창의적 비즈니스 기법이 끊임없는 모색된 것은 에도시대를 관통하는 일본 근세의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 사회가 종교, 윤리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고, 지배층도 반역적이거나 지나친 풍속문란이 아니면 (일부의 시기를 제외하면) 관대한 태도를 보인 것도 출판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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