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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모던 뉘우스

지식인들의 소소한 일상

“탈모에 대모(玳瑁)테 안경 차림이 주요한의 특징”

정리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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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소설가 김내성의 산책로는 심야 무시무시한 곳 … 화가 정찬영은 로맨틱한 철로길
⊙ 소설가 박태원은 잔등에 아주 좋은 ‘복점’이 있고, 이왕직아악부 이종태의 얼굴은 곰보

20세기 초 한국의 모던 정신은 주자학적 질서가 아닌 자본주의적 일상을 통해 드러났다. 신문·잡지의 기사도 일종의 중인(中人)사상을 담은 세속화한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사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을 움직이는 실무진은 중인 계층의 벼슬아치들(개화파)이다.
중인사상이란 ‘문명개화에 직접 간접으로 관련된 삶의 방식’(김윤식의 《한국문학의 근대성과 이데올로기 비판》)을 말한다. 1910년 국권을 상실했을 때 양반이든, 중인이든, 천민이든 똑같이 망국인의 처지가 됐다. 이들이 속한 계층과 상관없이 갖게 되는 의식이 서구 자본주의 앞에 알몸을 드러낸 중인의식이다.
《조선일보》가 발행한 잡지 《조광》의 1937년 9월호에 실린 ‘각계 탐조등’ 제하의 〈그들의 산보로(散步路)〉, 〈안경 쓴 이, 안 쓴 이〉, 〈몸에 있는 흠〉, 〈담배 피는 사람〉 등 4편의 기사엔 당대 지식인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설가 박종화·이효석와 시인 임화·유치환, 문학평론가 김환태, 개성박물관장 고유섭, 음악가 박경호 등을 등장시켜 각자의 생활습관 등을 시시콜콜하게 적고 있다.
《조광》이 소개한 이들 지식인이야말로 당대 근대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몸소 익혀 온 제2기 개화파들이다. 식민지라는 비극적 당대 현실 대신, 주변과 같은 일상적인 삶에 대한 탐색은 일종의 근대의식, 가치중립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을 의미한다. 이 가치중립적 세계관이 나중 시민의식 성장의 토대가 된다.
기사는 언문일치가 안 돼 ‘~습니다’ 체와, ‘~한다’ 체가 혼용돼 있다. 원문을 충실히 따르되 현대어 표기로 고쳐 소개한다.
《조광》의 1937년 9월호 표지.
  〈그들의 산보로〉 각계 탐조등 기일(其一)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씨는 “산보는 허튼걸음이라 가고 싶으면 때와 장소를 가릴 게 없다”고 하여 생각나는 대로 집을 나가고, 이극로(李克魯)씨는 댁에서 전차길 가는 데가 숲속이라 30분은 걸어야 하니 자연 산보가 된다고 하고, 최상덕(崔象德)씨는 일에 끌려다니는 것이 곧 산보지(地)라 하고, 윤성상(尹聖相)씨는 봄·가을이면 시외로 산책을 하지만 가끔 본정통(本町通・지금의 충무로-편집자)을 도는 것이 씨의 산책로이다. 시골에 있는 전무길(全武吉)씨는 매일 아침 뒷산에 오르고 서광제(徐光霽)씨는 보통 때는 산보를 하지 않고 이걸 모아 두었다 피서지에 가서 마음껏 산보를 한다고 한다. 천연정(天然町·서울 서대문구 천연동-편집자)에 박혀 있는 회월(懷月) 박영희(朴英熙)씨는 오후에 송림 속으로 가고, 개성 호수돈(好壽敦)의 임학수(林學洙)씨는 석양 혹은 밤 깊은 때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부산동(扶山洞) 또는 그 앞 인적이 고요한 행길로 산보를 하고, 김환태(金煥泰)씨는 댁이 내수정(內需頂·서울 종로구 내수동-편집자)이라 사직공원으로 산보하기로 작정은 해 놓고 실행을 못하고, 정근양(鄭槿陽)씨는 월요일 주간(晝間)에 한하여 본정이나 장곡천정(長谷川町·서울 소공동-편집자)으로 가고 윤기정(尹基鼎)씨는 저녁 때 본정통으로 간답니다.
 
  유치환(柳致環)씨는 웬일로 깍두기 코스를 그대로 밟고, 김내성(金來成)씨는 탐정소설가 답게 심야 새로 1시나 2시 특별히 으슥하고 무시무시한 장소로 간다고 합니다. 화가 정찬영(鄭燦英) 여사는 저녁 뒤에 어린이 손목을 잡고 로맨틱한 철로길을 넘어 소풍한다고 하며, 의사 이선근(李先根)씨는 아침에는 삼청정(三淸町·서울 삼청동-편집자), 저녁에는 한강이나 혹은 본정통으로 간답니다. 음악가 박경호(朴慶浩)씨는 무시·무정처, 개성(開城)박물관 고유섭(高裕燮)씨는 산보를 잘 안 하는 분이오. 이효석(李孝石)씨는 뜰 앞과 가까운 기자릉(箕子陵) 쪽으로 걸으며 생각에 깊고, 조선문학 연구가 방종현(方鍾鉉)씨는 일정일처지(一定一處地)로 다니는 산보는 좋지 않다고 생각나는 대로 산보를 다니고, 안회남(安懷南)씨는 본정통으로 많이 다닌답니다. 김광섭(金珖燮)씨는 방향 없는 산보로를 걷고, 김진섭(金晉燮)씨는 특별히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다니는 것이 감정에 맞는다고 합니다. 양주동(梁柱東)씨는 별로 산보를 하지 않고, 임화(林和)씨도 산보 안 하는 파. 박태원(朴泰遠)씨 역시 시간장소를 정해 놓고 산보하지 않는다니 산보엔 무취미파인 모양입니다.
 
  김남천(金南天)씨는 가회정(嘉會町·서울 가회동-편집자)에 사는 이만큼 삼청공원으로 발길을 옮기고, 이헌구(李軒求)씨는 수시 산보를 하는데 칸트가 못 되어 일정한 시간, 일정한 장소를 정하지는 못했다고, 이일(李一)씨는 조조(早朝) 6~7시 혹은 저녁 7, 8시 새에 삼청동으로 산보를 가고, 대동(大同)농촌사의 이훈구(李勳求)씨는 저녁 때 한적한 곳으로 다닌답니다. 여의(女醫) 길정희(吉貞姬)씨는 몸이 건강하니 산보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데 아마 산보를 하지 않고도 넉넉한 약으로 산보 이상의 효과를 얻으시는 모양. 이왕직아악부의 이종태(李鍾泰)씨는 산양 젖 짜 먹는 것으로 산보 삼고, 이석훈(李石薰)씨는 남 다 자는 밤거리를 혼자 도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엄흥섭(嚴興燮)씨 역시 남들이 모두 자는 밤 창의문(彰義門) 고개를 넘다가 대(大)경성의 네온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말없이 이상에 잠기는 것이 씨의 산보 코스라 한다.
 
 
  〈안경 쓴 이, 안 쓴 이〉 각계 탐조등 기이(其二)
 
《조광》이 소개한 이들 지식인이야말로 당대 ‘근대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몸소 익혀 온 제2기 개화파이다.
왼쪽부터 임화, 박종화, 이극로, 주요한, 김내성.
  대모테(거북의 일종인 대모·玳瑁의 견고한 등판으로 가공한 안경테-편집자) 로이드안경을 크게 쓴 이는 주요한(朱耀翰)씨. 탈모(脫帽)에 로이드안경은 종로화신의 쌤물(해독불가-편집자)인지는 몰라도 문인으로 백화점 전무가 된 주씨의 특징. 시인 이일씨는 돋보기를 쓰고 소설가 구보(仇甫)의 본명 박태원씨도 로이드 식으로 현재 24도의 안경을 쓰는데 45도 깊어야 더 잘 보일 것이라는 것이 씨의 발명(發明). 전무길씨는 36도의 안경을 쓰고, 유치환씨는 변장할 때만 안경을 쓴다는데 변장한 것을 못 보았으니 그 안력(眼力)이 좋은 모양이고, 임학수씨는 근시 20도를 쓰고 최상덕씨는 도(度)는 없어도 피로를 낫게 하기 위해서 자외선 방풍경을 쓰고, 김내성씨는 괴테를 본받아 안경 쓴 이를 싫어하니 자연 안경이 없고, 박종화씨는 난시에 근시를 겸하여 안경을 만들고도 서먹서먹해 쓰지를 못한다고 한다. 근시안 10도의 소유자는 김진섭씨요, 김광섭씨는 몇 도 안경인지는 모르나 대모테를 쓰고, 안회남씨는 7도 안경을 쓰고 양주동씨는 강도(强度)의 근안(近眼)안경을 걸기가 싫어 쓰지 않는답니다. 김남천씨는 영화연극을 볼 때에 한해서 R 1.00, L 1.25도의 안경을 쓴답니다.
 
  박경호씨는 안경을 쓰는데 도수는 자기도 모르나 안경을 벗으면 온 세상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보는 것 같다 합니다. 권덕규(權悳奎)씨는 60경(鏡), 김복진(金復鎭)씨는 근시 22도, 김관(金管)씨는 근시 좌 20도, 우 30도.
 
 
  〈몸에 있는 흠〉 각계 탐조등 기삼(其三)
 
《조광》의 1937년 9월호에 실린 ‘각계 탐조등’ 제하의 〈그들의 산보로(散步路)〉 기사.
  남의 몸에 있는 비밀을 아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을 알아 그 비밀을 천하에 공개하는 것도 흥미있는 일의 하나입니다.
 
  조선어학회 이극로씨는 몸 두 곳에 흠이 있는데 절대로 비밀을 엄수하시고, 김환태씨는 어릴 때 씨름을 하다 삐어서 왼편 팔이 좀 구부러졌고, 임학수씨는 바른편 귀 밑에 조그만 혹이 하나 있고, 제국병원 정근양씨는 수술한 자리의 흠이 하나 있답니다.
 
  이기정씨는 배에 직장염 수술을 한 곳이 흠져 있고, 김내성씨는 한 곳이 있고, 유치환씨는 있는 데도 있고 없는 데도 있다니 흉이 있는지 없는지 어리삥삥하고, 소아과 이선근씨는 어려서 석전(石戰)을 하다 돌에 맞아 두부에 두 곳이 있고 또 좌편 뺨에 흠이 있는데 이것도 역시 어려서 다리에서 떨어져서 난 흠이라니, 그렇게 지금은 얌전한 분이 어려서는 쌈 꽤나 한 모양. 음악가 박경호씨는 눈거죽 속과 손목에 수술한 자리가 있고 궁둥이에는 빈대 자국이 여나문 된다나요. 고유섭씨는 다른 흠은 없고 “두대(頭大) 체력이 흠이요” 하고 자백을 하고, 이효석씨는 몇 군데 흠이 있으나 밝히지를 않고, 방종현씨는 몸에 큰 흠이 있는데 절대 발표는 않고, 안회남씨는 이마 위에 흠이 있답니다.
 
  박태원씨는 잔등에 아주 좋은 ‘복점’이 있고, 김남천씨는 어려서 동무와 싸우다가 얼굴에 할퀸 자리가 있는데 지금은 퍽 없어졌다 하고, 이헌구씨는 왼편 손바닥이 어려서 물에 데어 잘못되어 있고, 이일씨는 우각(右脚) 상부에 동전(크기의-편집자) 대(大) 흑점이 있고 또 우수(右手) 소지(小指)가 까부러졌습니다.
 
  이종태씨는 얼굴이 곰보라 웬 몸의 흠을 얼굴에다 내어놓고 다니고, 월탄 박종화씨는 이마에 하나, 등에 하나, 머릿속에 하나 이렇게 전신에 삼태성(三台星) 같이 꽃 세 개가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상법(相法)에 의하면 귀인이 아니오?” 하고 껄껄 웃는다. 최상덕씨는 마음의 흠은 많아도 몸에는 흠이 없다고 한다. 부민(府民)병원 이성봉(李聖鳳)씨는 뜸자리 3곳이 있고, 백철(白鐵)씨는 몸에 기미가 많고, 이영민(李榮敏)씨는 운동하다 다친 흠이 있고, 권덕규씨는 곰보이다.
 
  대개(大槪) 이만하기로 하고 후일 다시 쓰기로 하자.
 
 
  〈담배 피는 사람〉 각계 탐조등 기사(其四)
 
  글 쓰는 분들 중에 담배를 피는 분, 나 정도 피면 얼마 안 피운다는 분, 또 이제 그 조사기를 실어 보기로 하자.
 
  탐정소설가로 새로이 등장한 김내성씨. 보기에는 그리 건강체로 생기지는 않았는데 하루에 10갑—말하자면 100대. 이것을 하루 취침 시간을 8시간 잡고 16시간 동안을 눈 뜨고 있는 시간으로 잡고 본다면 1시간에 6대, 그러니깐 반시간에 3대를 피우니 굉장한 애연가라고 할 것이다.
 
  그 다음 시인 월탄이 하루에 40대, 영화비평가 서광제씨는 30대, 또 에세이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김진섭씨가 30대, 동아의 서항석(徐恒錫)씨가 30대, 임화씨가 30대, 그 다음으로 대개 10대 가량으로 박태원 김광섭 이헌구 엄흥섭씨 등을 들 수 있다. 김복진(金復鎭)씨는 조일(朝日) 1갑과 마도로스 타입으로 5대를 태우고, 김관씨는 40대, 채만식씨도 40대.
 
  그리고 하루에 평균 한 개비를 피운다는 괴벽을 가진 안회남씨가 있고, 한 대도 못 피는 파(派)로 이전(梨專)에 이태준(李泰俊), 김상용(金尙鎔)씨가 있고 북평(北平) 가 있는 주요섭씨, 문예평론가 백철씨, 이일씨, 시인 김기림(金起林)씨, 김환태, 방종현, 전무길, 박용철, 윤기정, 유치환, 김남천, 최상덕씨 등 모두 무연파(無煙派)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담배를 필 줄 알면서도 못 피는 소위 금연파로 숭전(崇專)에 양주동씨가 있고 천연정에 박영희씨가 있다. 개성박물관장 고유섭씨도 무연파요, 음악가로 유머 소설 쓰시는 박경호씨는 하루에 한 대도 안 태신다니 역(亦) 무연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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