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월정 원림 앞을 흐르는 황룡강에 녹조가 덮여 마치 ‘녹차 라테’ 같은 느낌을 준다.
전라남도 장성에는 아름답기가 주변에서 으뜸인 정자가 한 곳 있다. 인근 담양의 소쇄원 속 광풍각·제월당이나 식영정·환벽당 못지않은 절경(絶景)이 요월정(遼月亭)이다. 요월정 주변을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감싸고 있고 앞으로는 황룡강(黃龍江)이 흐른다. 이것을 합쳐 이 일대를 요월정 원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요월정 원림은 조선 명종 때 공조좌랑을 지낸 김경우가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기 위해 지었다. 요월정에는 당대의 문호(文豪)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 명현(名賢)들이 남긴 시가 현판에 담겨 있다. 후손 김경찬이 이곳 경치를 찬양해 ‘조선 제일의 황룡이다’라는 말을 새겼다가 경(驚)을 칠 뻔했다. 조정에서 불러 “황룡이 조선 제일이면 수도 한양은 어떠하냐”고 물은 것이다. 잘못 대답했다가는 큰일 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김경찬의 재치 있는 답이 지금도 전해져 내려온다. “한양은 천하에 제일입니다.”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이곳에서 선비들은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겼다.
요월정 앞 황룡강은 ‘녹차 라떼’처럼 변해
그런데 지금 요월정 원림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다. 먼저 황룡강은 말 그대로 ‘녹차 라떼’처럼 변해 흉측하다. 누가 물길을 막았는지 녹조가 번져 마치 호수처럼 잠잠해 대체 황룡이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분명 물은 흐르는데 하필 요월정 바로 앞부터 이 지경이다. 요월정 원림을 살리겠다고 지방자치단체장은 흙길에 돌을 깔아놓았다. 본인은 자신의 치적이라고 여기겠지만 옛 선비들이 보면 풍경을 완전히 망쳐 놓았다. 게다가 계단 옆에 시멘트로 ‘황룡정’이란 정자까지 지어 놓았다. 이 얼치기 정자가 ‘문화재 망치기’ 삼위일체의 마지막 방점을 찍어 놓은 것을 그는 모를 것이다.
신비로운 공룡알 해변 한복판에 난데없는 화장실이
전라남도 완도군은 섬으로만 형성된 독특한 행정구역이다. 완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백미(白眉)가 보길도다. 보길도는 앞서 《월간조선》에서 보도한 것처럼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가 〈어부사시사〉를 쓴 곳이다. 세연정과 석천동실 같은 고산의 흔적이 다수 남아 있다.
완도에서 남쪽으로 도로가 갈 수 있는 끝까지 가면 뾰족한 봉우리가 나온다. 이름하여 뾰쪽산(195m), 혹은 보죽산이다. 낙조(落照)가 아름답다는 망끝 전망대를 지나면 나오는 보죽산과 더불어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 공룡알 화석 해변이다. 이것은 실제로 공룡알 화석이 아니라 모양새가 그렇다는 뜻이다.
파도에 의해 둥글게 깎인 크고 작은 공룡알 모양의 돌들이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하필 그 중심부에 화장실을 떡하니 지어놓았다. 마을쪽에 세울 수도 있는데 무슨 관광객들의 편의를 그리 보아 준다고 거기다 세웠는지 모르겠다. 관리도 잘 안돼 여름철이면 분뇨 냄새가 공룡알 해변에 진동해 공룡알이 썩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고막천 석교는 수리한다고 괜히 손대 망쳐 놔
전라남도 함평에는 남한에 유일하게 남은 고려시대의 다리가 있다. 일명 ‘똑다리’ 혹은 ‘떡다리’ 혹은 ‘독다리’라고도 불리는 고막천 석교다. 이 다리는 1274년, 즉 고려 원종 15년 고막대사(古幕大師)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고막천 석교는 옛 석축(石築) 방식을 써 간결하면서도 투박한 인상을 준다.
화강암을 다듬거나 모양을 내지 않은 채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평면의 노면(路面)을 만들어 연결시켰다. 교각(橋脚)은 한 줄에 세 개씩 5열을 세우고 기둥 위쪽에 네모 난 굄돌을 받쳤다.
석재는 길이 4m, 두께 35cm나 되는 육중한 것도 있으며 오랜 세월의 풍화로 돌은 깎이고 패었으나 지금도 변함없이 마을에서 들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가 되고 있다. 이 다리에는 쌀 가마니를 잔뜩 실은 우마차가 지나가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고막대사는 이 고막천을 건너지 못해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도술(道術)을 부려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다리의 3분의 1부터는 영 딴판이다. 일제시대 때 다리를 보수(補修)한다고 나섰다가 홍수에 떠내려가 3분 2 길이를 새로 지어 놓았다. 옛 다리와 새 다리를 비교해 보면 제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했어도 우리 건축기술이 선인(先人)들을 따라가기에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몇번을 다리를 건너 보아도 그렇다. 차라리 손을 대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보물(寶物)을 망쳐 놓은 그 누군가가 원망스러울 정도다.⊙
요월정 원림은 조선 명종 때 공조좌랑을 지낸 김경우가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기 위해 지었다. 요월정에는 당대의 문호(文豪)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 명현(名賢)들이 남긴 시가 현판에 담겨 있다. 후손 김경찬이 이곳 경치를 찬양해 ‘조선 제일의 황룡이다’라는 말을 새겼다가 경(驚)을 칠 뻔했다. 조정에서 불러 “황룡이 조선 제일이면 수도 한양은 어떠하냐”고 물은 것이다. 잘못 대답했다가는 큰일 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김경찬의 재치 있는 답이 지금도 전해져 내려온다. “한양은 천하에 제일입니다.”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이곳에서 선비들은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겼다.
요월정 앞 황룡강은 ‘녹차 라떼’처럼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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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월정은 관리가 잘 안돼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
신비로운 공룡알 해변 한복판에 난데없는 화장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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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보길도의 공룡알 해변에 난데없이 화장실을 만들어 놓았다. 꼭 여기 있지 않아도 될 건물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망쳤다. |
완도에서 남쪽으로 도로가 갈 수 있는 끝까지 가면 뾰족한 봉우리가 나온다. 이름하여 뾰쪽산(195m), 혹은 보죽산이다. 낙조(落照)가 아름답다는 망끝 전망대를 지나면 나오는 보죽산과 더불어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 공룡알 화석 해변이다. 이것은 실제로 공룡알 화석이 아니라 모양새가 그렇다는 뜻이다.
파도에 의해 둥글게 깎인 크고 작은 공룡알 모양의 돌들이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하필 그 중심부에 화장실을 떡하니 지어놓았다. 마을쪽에 세울 수도 있는데 무슨 관광객들의 편의를 그리 보아 준다고 거기다 세웠는지 모르겠다. 관리도 잘 안돼 여름철이면 분뇨 냄새가 공룡알 해변에 진동해 공룡알이 썩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고막천 석교는 수리한다고 괜히 손대 망쳐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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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벌교에 있는 소화다리다.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이 다리의 왼쪽은 새로 만든 것이고 오른쪽은 옛 다리다. |
화강암을 다듬거나 모양을 내지 않은 채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평면의 노면(路面)을 만들어 연결시켰다. 교각(橋脚)은 한 줄에 세 개씩 5열을 세우고 기둥 위쪽에 네모 난 굄돌을 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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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함평에 있는 고막천 석교는 보물로 지정됐다. 그런데 뒷부분은 사진처럼 엉망으로 만들어 붙여 놓았다. |
전설에 따르면 고막대사는 이 고막천을 건너지 못해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도술(道術)을 부려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다리의 3분의 1부터는 영 딴판이다. 일제시대 때 다리를 보수(補修)한다고 나섰다가 홍수에 떠내려가 3분 2 길이를 새로 지어 놓았다. 옛 다리와 새 다리를 비교해 보면 제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했어도 우리 건축기술이 선인(先人)들을 따라가기에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몇번을 다리를 건너 보아도 그렇다. 차라리 손을 대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보물(寶物)을 망쳐 놓은 그 누군가가 원망스러울 정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