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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고백 〈4. 최종회〉 자존감을 키우고 나를 바라보다

글 : 함영준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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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
1956년생. 고려대 노문과 졸업,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 / 조선일보 사회부장, 국제부장,
주간조선 편집장,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비서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 부위원장,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전무. 현 조선뉴스프레스 고문, 한국문화포럼 이사장 /
관훈클럽 국제보도부문상(1999), 체육훈장 백마장(2012) / 《내려올 때 보인다》
《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벅차오른다》 출간
  약물 치료가 끝난 후 의사는 내게 과거를 돌아보라고 권유했다.
 
  “정신분석에서는 어린 시절, 특히 유년기 때 경험을 중시합니다. 그때 겪은 상처가 잠복해 있다가 이후 삶의 무수한 과정 속에서 겪는 아픔과 상처 등과 섞여서 어떤 일을 계기로 바깥으로 표출하게 되죠.”
 
  정신분석은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로부터 시작됐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의 핵심은 사람의 행동은 ▲대부분 무의식에서 비롯되고 ▲특히 성적 충동(리비도)에 크게 좌우되며 ▲생의 초기 6년(유아기와 유년기) 동안의 경험이나 충격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나는 남들처럼 부모님 품 안에서 자라지 못했다. 내가 돌을 지난 지 얼마 안돼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이후 재혼하셨다. 나는 조부모 손에서 컸다. 나의 어린 시절을 관통하는 단어는 ‘외로움’이었다.
 
  그런 점에서 ‘6세가 되기 전 경험이 그 사람의 성격과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프로이트의 학설은 내게 맞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 즉 유아기 때 남자 아이가 아버지를 미워하고 성적으로 어머니를 좋아한다는 이론은 내게 맞지 않다. 그 시절 내게는 부모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 자신의 개인적 체험에서 비롯됐다. 어린 시절 그는 매우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가졌던 반면 상냥했던 어머니에게는 성적 감정을 느꼈다.
 
 
  아들러를 만나다
 
‘열등감 콤플렉스’이론을 주장한 아들러.
  의사는 내게 알프레드 아들러(1870~ 1937)를 소개했다. 청소년기 시절을 분석하는 데는 그의 ‘열등감 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 이론이 더 적합할 수 있다고 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제자였으나 프로이트가 성적 본능(리비도)에 기초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인간 행동의 결정 요인으로 강조하는 것에 반발, 독자적인 ‘개인심리학’ 이론을 추구해 나갔다.
 
  그는 프로이트가 강조하는 ▲무의식 ▲성적 본능 ▲과거의 트라우마 대신, ▲의식 ▲열등감(권력의지) ▲현재의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의사의 설명은 이랬다.
 
  “아들러는 열등감이야말로 성공과 우월목표를 갖게 하며 이런 것들이 인간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했습니다. 열등감이 삶의 족쇄가 아니라 강한 성취동기죠. 나폴레옹의 강한 권력욕은 키가 작다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하죠.”
 
  아들러는 자신의 과거나 운명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는 실천적 메시지를 던져 준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베스트 셀러로 유명한 《미움받을 용기》가 바로 아들러의 주장을 일본 작가가 쉽게 펴낸 책이다.
 
  사람은 누구나 열등감 속에서 살아가듯 나도 열등감이 많았다. 무엇보다 부모가 없는 것이 큰 열등감이었다. 의사는 말했다.
 
  “부모가 없다는 것이 절대적인 핸디캡은 아니더라고요. 제게 상담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도리어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안 좋은 추억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춘기를 맞아 내 자아가 발달되면서 내 의식은 매우 비판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생활에서의 일탈행동으로 나왔다. 공부를 등한시하고 노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당시 주변에는 꽤 쓸 만한 ‘주먹’ 친구들이 있었다. 함께 어울리며 악동 짓을 했다. 나는 문제아였고 참으로 위험한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어린 시절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일환이 아니었나 싶다.
 
  대학 졸업 후 신문기자 생활을 함으로써 나는 비로소 삶의 정상적 궤도에 진입했다. 온갖 삶의 현장과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며, 뭔가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내면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결혼 생활은 ‘외톨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고 내게 정서적 평화를 주었다.
 
  신문기자로 나는 열심히 일했고 회사의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마음의 불편함은 여전했다. 마흔 중반에 접어들면서 나는 천직으로 여기던 신문기자로서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내 자신이나 인생에 만족하는가?
 
  ‘이제 후반기 인생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또다시 삶의 의미와 내 자신에 대한 정체성 혼란이 찾아왔다. 이런 본질적 물음이 자주 나를 괴롭혔고 결국 나는 사표를 내고 나오고 말았다. 기자 생활 22년째였다.
 
  스스로를 벼랑 끝에 세워 두고 뒤로 몰리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각오로 내 문제를 풀어 보자고 다짐했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원제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이다.
  이후 3년간 프리랜서로 여러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가는 한편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글을 쓰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의사는 내가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오게 된 심리적 동인(動因)이 바로 빅터 프랭클이 주장하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라고 말했다.
 
  빅터 프랭클(1905~1997)은 프로이트(정신분석), 아들러(개인심리학)의 신경정신학계의 계보를 이어 로고테라피(logotheraphy: 의미치료 또는 실존치료)라는 이론을 만든 신경정신학자다.
 
  “그는 삶의 원동력은 리비도(성적 본능)나 열등감보다는 ‘삶에 대한 의미의 추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가’, 즉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버티지만 그 의미를 상실한 사람은 신경증이나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죠.”
 
  유대인인 빅터 프랭클은 제2차 대전 때 독일 나치 강제수용소에 수감돼 그곳에서 전가족을 잃는 끔찍한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정립했다. 그는 혹심한 수용소 생활에서도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끝까지 희망의 줄을 놓지 않고 버티지만 그런 생각을 잃어 버리면 심신이 바로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책이 《죽음의 수용소에서(원제: Man’s Search for Meaning? 삶의 의미를 찾아서)》이다. 여기서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이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삶의 길을 선택할 정신적 자유(권리)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경증병은 삶의 의미를 상실했을 때 발생하며 따라서 치료의 핵심은 환자에게 생의 의미를 찾아주는 것이다.
 
  “선생님의 결단도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죠. 그런 점에서 훗날 우울증을 겪게 된 것은 바로 선생님이 추구한 삶의 의미가 상실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어린시절에서 벗어나야”
 
  의사와의 대화는 내가 약물 치료가 끝난 2012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계속됐다. 그의 사무실에서도 대화를 나눴고 때로는 일이 끝난 후 식당이나 술집에서 대화를 나눴다. 설문지로 된 심리테스트도 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의사는 나름대로 나에 대한 판단을 하고 내용을 말해 주었다. 그는 무엇보다 내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볼 것을 권유했다.
 
  “선생님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 오신 분입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잘 헤쳐 왔습니다.”
 
  그는 한국 중·장년 남성들이 지나치게 자기를 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열심히 살고서도 자부심이나 보람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가 많습니다. 한국적 현실과 역사 탓이 크지만 우리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자기를 보는 태도에도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그는 내가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6살 이전 삶이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입해 보면 선생님은 외톨이라는 생각을 지금도 무의식 세계에선 갖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고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 그것을 다독거리고 풀어 줘야 된다고 봅니다.”
 
  그는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연설을 예로 들었다.
 
  “Stay hungry, Stay foolish”로 유명한 그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성공한 이유로 미혼모에서 태어난 사생아이자 입양아, 대학 1학년 중퇴, 그리고 자신이 세운 애플사에서 쫓겨나는 비극을 예로 들고, 그런 일들을 겪고서 지금의 성취를 이룩했다고 당당히 말했다.
 
  “선생님을 포함,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에 보다 당당해져야 합니다. 선생님의 그 외톨이 정신이 결국 타협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오게 만든 원동력 아닙니까. 오히려 축복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의사는 우울증이 도리어 내 인생 후반기 건강한 삶과 자아를 위해 좋은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병의 재발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바라는 성숙된 인격, 바람직한 나,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시죠.”
 
  그는 자존감(자아존중감)에 집중하라고 권유했다.
 
  “선생님은 객관적으로 좋은 자질과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유독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그 원인과 이유에 집중해 보십시오. 그리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강구하십시오. 그것은 단순한 치유를 넘어 나를 찾는 길, 보다 완전한 삶을 향한 여정이자 마음의 행로입니다.”
 
 
  설렘이 찾아오다
 
  우리의 상담과 대화는 어느새 6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약을 완전히 끊고 긍정적 사고와 내 자신을 편하고 행복하게 하라는 의사의 지시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이 접어들자 나는 새벽에 자전거 대신 산책으로 바꾸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면 우선 ‘희망과 감사’의 기도로 시작했다. 찬공기를 가르며 야산을 오르면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튜닝(tuning)했다. 어두컴컴한 숲길에서 마주치는 숲, 나무, 풀, 흙, 낙엽, 공기, 하늘, 달을 보고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눴다.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네 야산에 올라 심호흡과 맨손체조, 도리도리 운동을 하고 몸을 푼다. 이어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sit-up), 벤치프레스(bench press) 운동 등을 차례로 하고 약 10분간 묵상과 기도를 하고 내려온다.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궂은 날이면 집 안에서 단전호흡과 체조, 스트레칭 운동을 했다.
 
  회사 가서도 틈나는 대로 간단한 운동 등을 반복적으로 했다. 점심은 되도록 회사 직원들과 부서를 돌아가며 했다. 내 말수를 적게 하고 그들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간혹 말 실수나 나중 후회될 말도 하게 되지만 내가 ‘듣기’ 모드로 간다면 그런 부담은 원천 방지되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등산이나 자전거를 타고 주일 예배도 열심히 참석했다.
 
  이 기간 중 나를 크게 도와준 것이 음악이었다. 우울증에 미치는 효과가 탁월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심혈관계는 물론 마음, 정신, 뇌에 긍정적 효과를 끼친다는 점은 이미 정신의학이나 뇌과학계에서 입증된 사실이다. 뇌에서 쾌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 엔도르핀, 도파민, 아들레날린 같은 화학물질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봄이 시작된 3월 어느 날 출근길 차 안에서 갑자기 설렘을 느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날부터 내 마음 상태는 확연히 바뀌어 갔다. ‘흐림’ 모드에서 ‘갬’ 모드로 전환된 것이다. 소년처럼 마음이 따뜻해지고 즐거워지고 몰입이 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지독한 우울증을 겪어 봐서 그런지 확연히 대비되는 마음의 상태가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다. 며칠 뒤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저 멀리 터널 밖 환한 빛이 보이는 듯하다. 아직 암흑 속 터널 속에 있지만 곧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와 희망이 든다. (중략)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행복은 외적 환경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태도요, 의지요, 선택이요, 훈련이다.

 
 
  불안과 분노를 쳐다보고 달래라
 
《한낮의 우울》의 저자 앤드루 솔로몬.
  마음속에 조금씩 에너지가 축적되자 조용히 내 내면을 응시하며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 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 중 하나가 불안과 분노였다.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인격의 성숙이나 행복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그런 감정들이 들 때면 불교식으로 조용히 그것들을 바라보곤 했다.
 
  ‘지금 내 마음이 불안하구나. …’
 
  ‘지금 화가 많이 났구나. …’
 
  이런 식으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교에서는 이런 감정들도 에너지요 또다른 자아이므로 잘 달래야 한다고 한다.
 
  이와 함께 나는 일상생활에서 보다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어려워진 재정 형편을 완화하기 위해 부지런히 세종시 정부 부처 등을 돌아다니며 예산 따는 일에 전념했고, 주말에는 양평에 위치한 회사 연수원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일에 몰두했다.
 
  이런 식의 몰두는 내게 수없이 찾아오는 번뇌, 잡념, 망상 등 온갖 부정적 사고를 극복할 수 있는 방파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열심히 산다’는 뿌듯함도 가져다 주었다.
 
  머리가 피곤하다 싶으면 나는 조용히 단전호흡과 함께 명상을 하곤 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의식적으로 뇌를 쉬게 하는 것은 일종의 새로운 에너지의 충전과 같다. 엄밀한 의미에서 마음을 놓는다는 것은 생각과 욕구를 멈추고 철저하게 ‘나’의 작용을 정지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저 무위(無爲)의 상태를 말한다.
 
  이때 많은 책을 보았다. 이 중 마음 챙김에 도움이 된 책들이 《왓칭》(김상운 저) 《생각에 관한 생각》(대니얼 카너먼) 《생각의 탄생》(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등) 《행복의 발견》(스튜어트 매크리티) 《브레인 어드밴티지》(매들린 L 반 헤커 외) 《뇌 생각의 출현》(박문호) 등이었다. 이 책들은 마음이나 정신, 생각, 뇌 활동에 관해 나름 과학적 연구와 사례 데이터를 가지고 쓴 글인데 요약하자면 사람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의지적으로 노력하면 그것이 습관화되고 바라는 대로 변화를 가져다준다는 것들이다.
 
  우울증에 관한 책들도 많이 읽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한낮의 우울(The Noonday Demon)》은 저자 앤드루 솔로몬의 우울증 체험기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명문 예일대와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했다. 그에게 우울증이 찾아온 것은 자신의 꿈인 작가로서 막 성공적 데뷔를 한 30세 때였다.
 
  그는 갑자기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우울한 감정에 빠져 버리게 되더니 거의 식물인간 직전 상태에 이르렀다가 이를 알게 된 아버지와 주변 친지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기나긴 투병 생활 속에서 극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겪는 우울증의 고통을 공론화시키고 책으로 펴내 지금은 세계적인 우울증 퇴치 전도사로도 인정받고 있다.
 
  그는 2013년 TED강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울증을 겪은 후 무엇이 긍정적인 감정인지를 더욱 확실히 알게 됐죠. 우울증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활력(vitality)입니다. 지금 제 삶엔 활력이 가득합니다. 슬픈 날에도 말이죠. 우울증이 제게 준 선물이죠.”
 
  앤드루 솔로몬은 발병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지만 떳떳하게 말한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환자가 함부로 약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정신질환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지노력이 필요하죠.”
 
 
  링컨, 처칠, 헤밍웨이, 칸트, 베토벤도 우울증
 
우울증을 앓았던 위인들. 왼쪽부터 레오나르도 다 빈치, 괴테, 위대한 정치가 링컨과 처칠도 우울증 환자였다.
  역사상 큰 성취를 남긴 인물들 중에 우울증 환자가 많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갈릴레오, 괴테, 베토벤, 임마누엘 칸트, 발자크, 보들레르, 에밀 졸라, 찰스 다윈,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니체, 헤르만 헤세, 키에르케고르, 헤밍웨이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이 문호,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 등 지적 활동가들이다.
 
  위대한 정치가들 중에도 우울증 환자가 많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자 ‘가장 위대한 영국인’ 설문조사에서 1위로 뽑힌 윈스턴 처칠 총리도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었다.
 
  인간은 대부분 겉으로는 강하고 자신만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약하고 자기 비하와 콤플렉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내가 가진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는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불완전한 만큼 남도 불완전하다. 그러니 남을 이해하라. 또 내 자신을 늘 경계하라.’
 
  마음의 수양이 본격화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 해가 바뀌고 어느새 낙엽이 지는 가을로 접어들었다. 어느 한적한 토요일 오후 시내 인왕산을 오르면서 보이는 풍경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푸르렀다. 단풍은 울긋불긋 아름다웠고 마주치는 등산객들의 표정은 환했다. 내 마음 한구석에 행복감이 물밀 듯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가 바로 천국이구나 ….’
 
  이것은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느낌이었다. 이때 비로소 나는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우울증은 내게 ‘축복’이었다
 
  우울증을 극복하면서 내게 찾아온 변화는 여러 가지다. 우선 내 평상시 마음속에 기쁨, 감사, 자신감, 배려심, 희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인격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아 성을 낼 때도, 불안해할 때도 있지만 예전에 비해선 확연하게 달라졌다.
 
  평범하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세 가지 깨달음을 느꼈다. 첫째는 고난 끝에 낙이 온다는 사실, 둘째는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것, 셋째는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이 요약하면 7가지였다.
 
  운동, 명상(단전호흡), 글쓰기(몰두), 음악(취미), 친교(인간관계), 기도(신앙), 긍정적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우울증을 겪은 이후 나는 점점 감사하고 행복하고 성숙되어 가는, 내면 세계의 확장을 경험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보니 우울증은 내게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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