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수 교수의 우리 고전 비틀기 〈7〉 아랑이 돌아왔다 : 월간조선

아랑(阿娘)은 양반이었다. 예뻤다. 밀양 부사(府使)의 사랑스런 딸이었다. 그런데 관아에서 심부름하는 상놈인 통인(通引·조선시대 수령의 잔심부름을 하던 구실아치) 놈이 그녀에게 흑심을 품었다. 그놈은 아랑의 유모(乳母)를 통해 그녀를 불러내서 강간하려다가 한사코 저항하자 칼로 찔러 죽이고는 대숲에 시신을 버렸다.

억울하게 죽은 아랑은 귀신이 됐다. 밤마다 자기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사또의 침실에 나타났다. 사또 외에는 풀어줄 자가 없어서 그랬겠지만, 깊은 밤 느닷없이 당하는 일에 사또들의 심장이 버텨내지 못했다. 머리 풀어헤친 소복 입은 여자가 나타나는 서슬에 밀양의 사또들이 죽어 나갔다.

부임해 오는 족족 첫날밤을 못 넘기고 싸늘한 시체가 되어 실려 나왔지만, 고을에 사또가 없을 수 없으니 중앙에선 계속 신임 사또를 내려보냈다. 그러다 담력이 센 사또가 내려왔다. 비로소 아랑은 제 원통함을 세세히 하소연할 수 있었고, 그 사또가 통인 놈을 잡아 죽이고 아랑의 시체를 찾아 양지 바른 곳에 묻어준다. 한(恨)을 품은 여인이 귀신이 되어 돌아왔고, 영민하고 담대한 사또가 그 한을 풀어줬다는 간단한 해피엔딩이다.

이 〈아랑 전설〉이 수많은 억울함과 한을 품은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과 달리 지금까지 우리 뇌리에 강렬하게 전승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귀신이 된 아랑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밀양 사또에게만 나타났다는 점이다.

“당연하잖아. 밀양에서 일어난 일이니 그렇지.”

“범인이 통인 노릇하고 있는 곳이 거기니, 잡으려면 거기에 나타나야지.”

귀신이긴 해도 깊은 밤에 아리따운 여자가 은밀한 침실에 나타나서 눈물 방울방울 하소연하는 에로틱한 장면을 연상하기에,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아랑이 밀양 사또였던 아버지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에이, 뭔 소리야. 아버지 밀양 부사는 딸이 사라지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잖아.” 맞다. 사또였던 아랑의 아버지는 아랑이 그런 처참한 꼴을 당한 줄 모르고, 낙심해서는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가버렸다. 귀신 아랑이 나타났던 곳은 모두 아버지 후임으로 온 다른 사또들 침실이었다. 여기 비밀이 숨어 있다.

아랑은 왜 귀신이 되었나?

밀양 부사의 통인이 아랑에게 접근해 강간하려다 한사코 저항하자 살해하는 장면. 사진=구글이미지

아버지 밀양 부사가 딸이 사라지자마자 그날로 사임을 한 것이 아닐 텐데, 왜 아랑은 아버지에게는 나타나지 않았을까? 아랑이 아버지에게 나타나지 않은 것은 나타나봐야 소용없었기 때문이었다. 딸이 사라졌다고 아버지가 관직을 사임한다는 것은 심히 수상쩍다. 아니 어떻게 해서 얻은 관직인데 그렇게 쉽게 버린단 말인가. 게다가 벼슬을 하는 것은 자신의 안위만이 아니라 가문 창달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인데, 딸 하나 사라졌다고 사임을 하다니, 말도 안 된다.

아버지 밀양 부사가 사임한 이유는 딸의 사라짐을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아버지는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딸이 바람났다고 생각했다. 죽었다는 것은 물론 강간당할 뻔했다는 것도 몰랐다. 알았다면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 밀양 부사는 딸이 바람났다고 속단해 버렸다.

아랑이 사라진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주변에서 쑥덕대며 손가락질할 자들이 나올 수 있었다.

“아리땁고 현숙한 줄 알았는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이 정도면 모르는 척 무시하면 되지만 정치 공세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행실이 난잡한 딸을 둔 아버지가 어떻게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이 될 수 있겠는가?” 이쯤 되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곧이어 이런 상소 하나가 위로 올라가면 그의 벼슬길은 물론 그 가문은 그대로 끝장이었다.

이렇게 끝나게 될 정치 생명에 인공호흡기를 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는 사임을 하고 고향으로 은둔해 버린 것이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다가 다른 지역으로 가든지 국면이 전환되어 중앙직에 오를 기회를 엿보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아버지 밀양 부사는 아랑의 실종을 그녀의 부도덕함으로 낙인찍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랑은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들릴 테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네년이 뭔 짓을 했으니 그렇지….’

이런 생각은 아버지 밀양 부사가 딸이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쳤다고 생각할 때, 그 눈 맞은 남자를 어떤 신분으로 상정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정욕이 넘쳐 야반도주를 할 정도라면 그 남자는 결코 정상적인 양반 가문의 남자일 리는 없었다. 양반이라면 떳떳한 절차를 밟아 성혼하기를 청하면 되니 말이다. 결국 아버지는 아랑이 양반이 아닌 상민 남자와 도망쳤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랫것과 눈이 맞은 것에 더 분노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심경에는 남성의 성욕은 배제되고 여성의 정욕만 부각된다. 남성이 먼저 유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조금도 끼어들지 못한다. 그러니 어떻게 딸이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겠는가. 아버지 밀양 부사의 마음속에서 딸은 이미 ‘헤픈 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랑은 귀신이 되어 아버지가 아닌 후임 밀양 부사들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만이 그녀의 원통함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죽어 나간 신임 사또들은 억울했을까?

순조 말년(1826~1835년)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 편찬자 미상의 야담집 《청구야담》. 이 책은 《계서야담(溪西野談)》《동야휘집(東野彙輯)》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삼대야담집’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청구야담》은 이 야담집들이 이룩해 놓은 문학적인 성과를 가장 잘 포괄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따져봐야 한다. 아랑 때문에 공연히 밀양에 부임하는 사또들이 죽는 것은 조금 아닌 것 같아서 말이다. 한을 품은 아랑 때문에 사또들만 애꿎게 죽고 만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아랑이 제 아버지에게 나타나면 될 걸 가지고 엉뚱한 데 나타나는 바람에 사람들을 죽게 한 거나 다름없다. 출현하는 것도 조용조용 나타나 말하든지, 그런 혼비백산할 만한 방법 말고 좀 유연한 방법으로 제 원통함을 전달할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굳이 깊은 밤에 하얀 소복을 입고 나타나는 것은 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것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말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화풀이하는 것 같은 이런 아랑의 한밤중 출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아랑이 심했던 걸까? 공연히 사또들만 요절하게 만든 걸까? 혹시 아랑 때문에 죽게 된 억울한 사또들이 아랑처럼 귀신이 되어 나타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살면서 억울한 일을 한 번도 당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다들 억울해도 이렇게 저렇게 산다.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다는 너그러운 분도 있을 테지만, 대부분 억울하고 원통하고 답답한 일을 겪으면서도 사는 것이 어쩌면 인생일지도 모른다.

억울하다고 다 울화통을 터뜨리지는 않는다. 진상 고객을 만날 때마다 불같이 성질을 내며 맞받아치지 않는 것은 단지 직장에서 잘릴까 두려워서가 아니다. 어느 정도 그 진상 짓을 하는 상대방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동료끼리 욕을 하는 것으로, 끝나고 술 한 잔 걸치는 것으로 풀어버리고 그 다음날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아랑은 한을 품고 귀신이 되어 돌아왔다. 그 억울함의 정도가 우리가 대강 쉽게 가늠할 정도를 훌쩍 넘는다는 말이다. 억울함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건 단지 강간의 위험에 처했던 것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리 계급이 높아도 여자는 강간처럼 함부로 대해도 되는 가장 밑바닥에 놓인 존재(?)라는 원통함 때문만도 아니다. 죽은 아랑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정도의 일은 조선시대에 비일비재했다. 강간을 당해 실성한 양반 부녀의 이야기, 낄낄거리며 강간담을 무용담으로 늘어놓는 포르노그래피적 이야기는 널리고 널려 있다.

《청구야담(靑邱野談)》에 나오는 이업복(李業福) 이야기를 살펴보자. 옛날이야기 책을 구연해 잘 읽는 재간둥이 이업복은 청지기였다. 어느 서리(胥吏) 부부가 이업복을 데려다가 먹여 살리며 일가처럼 터놓고 지냈다. 그 집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 녀석이 그녀에게 흑심을 품었다. 날마다 추파를 던졌지만 그녀는 정색하고 응하지 않았다.

어느 명절 날 서리 부부가 성묘를 가고 그 딸만 집에 남아 있을 때, 이 녀석이 잠을 자고 있는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깜짝 놀라 화를 내며 놋쇠 등잔으로 때리기까지 했다. “네가 우리 아버지의 은혜를 알면서도 이런 개돼지 같은 짓을 해?”

하지만 이놈은 느물거리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아가씨가 내리는 벌은 달콤하기가 엿 같아요.” 그녀는 더욱 분통을 터뜨리며 마구 때리고 사납게 할퀴기까지 했다. 그래도 이놈은 끈질기게 치근덕거리며 물러서질 않았다. 결국 지치고 지친 그녀는 이업복에게 당하고 말았다.

이후 집에 부모가 돌아왔는데 조금씩 이 딸이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서왕모(西王母)가 세상의 연을 끊고 선계(仙界)로 오라고 했다질 않나, 선계의 사자(使者)가 왔다며 허공을 향해 웃기도 하고 말을 나누는 것처럼 소곤소곤하기도 하고, 급기야 제 손의 가락지를 빼서 주는 시늉도 하고, 남의 신을 벗겨 자기 발에 끼워넣기도 하는 등 별별 이상한 행동을 다 했다. 그렇게 그녀는 하루종일 혼자 헛소리를 하며 종알대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부모는 끝내 그녀를 찾지 못했고 이업복의 농락 때문인 줄도 몰랐다고 한다.

서리의 딸은 강간의 충격으로 정신분열이 생긴 거였다. 그 후일담은 아랑보다 더 참혹하고 괴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그 이야기에서 억울함을 당한 그녀는 귀신이 되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랑은 귀신이 되어 돌아왔다.

왜 아랑은 돌아왔을까? 아랑보다 더 참혹하고 억울하고 원통해 보이는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는데 왜 그녀는 귀신이 되어 돌아왔을까?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였기에 그녀는 돌아왔던 것이다. 자기 개인으로 끝나는 문제라면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슬픈 얘기지만 강간당한 충격으로 실성한 서리의 딸보다는 그대로 처지가 나으니 말이다. 아랑은 고발해야 했다. 복수를 해야 했던 거다. 그래서 귀신이 되어 돌아온 거였다.

아랑의 피맺힌 복수의 대상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 바로 밑 절벽에 위치한 아랑각(사진 위)은 조선 명종 때 미모가 뛰어난 밀양 부사의 외동딸 윤동옥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밀양 사람들은 아랑의 넋을 위로하고 뭇 여성의 본보기로 삼고자 해마다 4월 16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이상사(李上舍)라는 인물이 직접 밀양 부사를 자원해 아랑의 원혼에게 억울한 사연을 전해듣고 다음날 아침 아전들을 동헌에 모아 살인을 저지른 통인을 잡아 처형했다고 한다. 아랑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아랑유지(사진 아래)에는 순결한 아랑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고발이나 복수는 통인 놈을 잡아 죽이는 복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당연한 것이고 그녀가 꿈꾼 진정한 복수는 아버지와 밀양 사또들을 향한 고발이었다. 그 고발과 복수를 위해 아랑은 소복을 입고 한밤중에 나타났던 것이다. 함량이 한참 부족한 덜된 신임 사또들을 줄초상 나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출현했던 것이다.

밀양에서 사또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당시 화제가 되었다. 모두가 주목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담력 있는 사또가 일을 해결했다. 알고 보니 아랑이란 여자의 원통함 때문으로 밝혀졌다. 자, 이런 이슈와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그렇게 이슈화되고 그렇게 퍼지게 하는 것이 아랑의 고발이고 복수였다.

우선, 아랑은 아버지 밀양 부사에게 하소연하지 않고 신임 사또들에게 달려들어 진실을 밝혀달라고 애걸한 것으로 아버지 밀양 부사의 부적절한 행동과 심성을 에둘러 비판했다. 아버지 밀양 부사야 정치적으로 행동한 탓에 욕을 먹지는 않겠지만, 눈 밝고 귀 맑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미심쩍어할 문제였다. ‘아니 왜 아버지에게 달려가지 않았지?’ 사람들은 깨닫게 될 거였다. 세상 모두가 욕을 해도 감싸주고 믿어주어야 할 아버지가 지레 판단하고 딸을 화냥년으로 매도하고 스스로 달아나 버렸던 비겁함을 말이다.

다음으로, 아랑은 아버지를 넘어 당대 밀양의 덜된 사또들과 시대를 통렬히 비판했다. 그것은 첫날밤에 죽어 나가는 사또들의 행렬로 극명해졌다. 정확하게는 아랑이 이렇게 세상을 향해 말했던 거다.

“그렇게 허약하고 한심하고 어설픈 것들이 감히 목민관이 되겠다니,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이 고을에 강간살인범이 나타나는 것이다.”

‘너 같은 놈’에는 1순위로 그의 아버지가 포함된다. 그 아버지가 제대로 밀양을 다스렸다면, 단호하고 강단 있게 정치를 펼쳤다면 감히 관청의 종놈이 사또의 딸을 강간할 맘을 품었겠는가 말이다. 한마디로 만만하게 보였던 거다.

잠시 추측을 해보자. 만약 통인 놈에게 저항하지 않고 아랑이 강간당했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통인 놈이 아랑을 죽였을까? 완전범죄를 위해서 정말 죽였을까? 죽이지 않았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랑을 협박해서 아버지 사또에게 발설하지 못하게 했을까? 아니면 더럽혀진 몸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목을 매게 유도했을까? 아니면 강간해 놓고 도주했을까?

글쎄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통인 놈은 강간이 목적이지 살인이 목적이 아니었단 점은 분명하다. 또 그렇게 통인이 일반 부녀자도 아닌 사또의 금지옥엽(金枝玉葉) 딸을 강간할 마음을 먹은 것은 밀양 지방은 물론 관청 안의 기강과 질서도 한마디로 개판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실 아랑의 유모가 아랑을 꾀어서 통인 놈이 잠복해 있는 곳으로 이끌었기에 통인 놈이 강간을 시도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유모는 그야말로 한식구나 다름없는 존재다. 그런 유모가 이 일을 적극 도왔다는 것은 집안 깊숙이까지 곪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밀양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던 것이다.

비겁한 호통만 치는 무능한 사또들

아랑은 단죄했던 것이다. 빌빌거리는 사또들을 향해 심판의 칼을 날렸던 것이다. 한심하고 어리석고 멍청한 작자들, 그런 심력과 담력으로는 통인놈, 유모년들에게 휘둘려 정사를 그르치고 백성들을 힘들게 할 것이 분명한 얼간이 사또들을 단죄했던 것이다.

죽은 사또들은 억울할 만한 이유가 하나 없다. 귀신이 될 건덕지(?)도 없다. 대체 무엇이 억울해서 돌아온단 말인가. 냉정하게 말해 그들은 죄인이다. 능력도 없으면서 밀양 부사로 부임한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의 죄다. 할 수 없으면서, 할 능력도 없고 할 재주도 없으면서 하겠다고 나선 그 욕심의 만용이 죄였다. 마땅히 갖춰야 할 담력과 지혜도 없으면서 관직을 얻어 밀양 부사로 떵떵거리고만 싶은 그 욕심이 결국 수많은 백성과 약자들을 도탄에서 신음하게 만들 것이기에 그들은 죽어 마땅했던 것이다. 아랑에게는 그랬던 것이다.

아랑의 한은 단지 자신이 죽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고 비명횡사한 것 때문도 아니었다. 무능하고 한심하게 비겁한 호통만 칠 줄 아는 사또들이 다스리는 고을에서 여자로 살아가야 하는 괴로움이 억울하고 원통했던 것이다. 자신은 죽었지만 제2, 제3의 또 다른 아랑들이 강간당하고 죽어야 하는 상황이 통곡할 만큼 억울하고 한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돌아왔던 것이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칠흑같이 깊은 밤 소복 입은 여자를 보면 조심들 하시라. 웬만하면 밥값 못하는 것이 나만 그런 게 아닐 테니, 다들 몸조심하셔야 하지 않겠는가.⊙

상단주메뉴

유광수 교수의 우리 고전 비틀기 〈7〉 아랑이 돌아왔다

0건

사이트 이용안내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