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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증명한다 〈4〉 브렉시트 투표와 조 콕스 추모

브렉시트 투표 당일 케임브리지에서 본 콕스 추모 분위기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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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가 살해당한 콕스 의원 추모한다는데 케임브리지는 썰렁
⊙ 그녀의 모교가 케임브리지 대학임에도 ‘소신’을 지키는 것인가
⊙ 대처 전 총리 사망 때도 영국인들 다수가 “그녀는 국론 분열시킨 장본인” 비판
케임브리지대학의 여러 칼리지가 모여 있는 중앙부에는 전통 시장이 있다.
브렉시트 투표 당일날 시장 앞 건물에 놓인 조 콕스 의원 사진에 그녀를 기리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앞두고 ‘부결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정치·경제적인 관점에서 그런 주장을 편 이들도 있었지만 ‘브렉시트(Brexit)가 찻잔 속의 태풍’이 될 것이라고 본 이들은 6월 16일 벌어진 영국 웨스트요크셔의 버스톨에서 괴한에 살해된 조 콕스(당시 41세) 사건에 영향을 받은 바 크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잔류를 주장하던 하원의원이 탈퇴파에게 살해당했으니 당연히 동정 여론이 일어 부결될 것”이라고 내다본 국민이 많았다. 국민들뿐 아니라 언론도 비슷한 자세를 취했다. 이것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인식이 강한 한국적 사고방식의 맹점(盲點)이었다. 왜 그런지 경과를 살펴보기로 한다.
 
  노동당 하원의원인 조 콕스는 괴한의 흉기에 찔린 뒤 다시 괴한이 쏜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콕스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콕스 하원의원 살해범은 52세의 토머스 메어라는 남성인데 사건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은 메어가 “콕스를 공격하며 ‘영국이 먼저다(Britain first)’라고 외쳤다”고 전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와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에서 일하며 정책위원장을 지낸 콕스는 지난해 총선거에서 당선된 뒤 EU 잔류를 주장해 왔다. 콕스는 지난해 하원 등원 첫 연설에서도 “우리 영국 공동체는 이민자들 덕에 고양돼 왔다”면서 무슬림이나 가톨릭을 가리지 않고 다양성이 영국 사회의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버스톨 도서관 앞에서 주민 간담회를 열어 왔고, 이날도 간담회에 다녀오다가 마켓스트리트에서 피습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언론도 그랬지만 한국 언론은 유독 ‘콕스 의원을 추모하는 꽃다발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녀의 42세 생일인 6월 22일을 맞아 추모 행사가 전 세계에서 거행됐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BBC 방송도 6월 22일 콕스 의원의 지역구인 영국 웨스트요크셔의 배틀리·스펜을 비롯해 런던, 파리,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콕스의 42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추모 행사가 이날 일제히 열린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날 오후 런던 중심 트라팔가 광장에도 시민들이 모여 콕스 의원을 애도했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 워싱턴DC와 아일랜드, 벨기에, 노르웨이 등 유럽국가들에서도 추모행사가 열렸다. 콕스 의원의 남편 브렌던은 트위터를 통해 “오늘은 조의 생일이었어야 했다. 우리와 함께 그의 삶과 유산을 기리는 데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브렉시트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어야 마땅하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날인 6월 22일, 기자는 프랑스 칼레 항구(港口)에서 렌터카를 배에 싣고 영국 케임브리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 배에는 한 비(非) 영국인 기자와 카메라맨이 동승했는데 그와 프랑스에서 열린 2016 유로축구대회에 출전한 잉글랜드를 응원하고 돌아오던 영국인들이 나눈 대화가 흥미로웠다.
 
  비 영국인 기자는 “영국의 EU탈퇴가 전 세계의 관심사”라며 그 영국인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퍼부었는데 그는 “영국은 EU에 잔류할 것” 혹은 “탈퇴할 것”이라는 견해 대신 “세계가 왜 우리의 투표에 그렇게 관심을 갖느냐”고 반문했다. 기자가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취재를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브렉시트 투표날엔 공교롭게도 케임브리지대학의 졸업식이 열렸다.
  케임브리지에 도착했을 때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투표일, 기자는 오전 일정을 마치고 케임브리지 중심부로 갔다. 케임브리지는 기자가 약 1년간 머물렀던 영국 옥스퍼드와 도시 구조나 분위가 놀랍도록 흡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케임브리지 대학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나눠진,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마침 그날 케임브리지 대학 곳곳에 들어선 칼리지의 졸업식이 열리고 있었다. 그 칼리지 가운데 한 곳을 사망한 콕스 의원도 다녔을 것이다.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가까운 케임브리지 시장(市場)으로 갔을 때 시장 한복판 건물 중앙에 콕스 의원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달랑 꽃다발 2개가 있었던 것이다.
 
  콕스 의원의 모교(母校)인 케임브리지에서는 왜 콕스를 추모하는 열기가 다른 도시보다 낮은 걸까. 물론 평소엔 열렬했는데 그날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상했다. 기자가 간 날이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브렉시트의 투표일이 아닌가. 거기서 ‘오호~ 영국인들의 내심은 EU 탈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세계가 경악한 것처럼 영국은 EU 탈퇴를 결정했다. 그것을 보면서 마거릿 대처 전 수상의 죽음 직후 영국에서 나타난 현상을 떠올렸다. ‘병든 영국’을 ‘강한 영국’으로 탈바꿈시킨 대처 수상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영국인들이 대영제국의 힘을 복원시킨 위대한 지도자 대처의 죽음을 애도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정작 영국에서는 대처의 죽음을 환호한 이들도 상당수였다. 거액이 소요된 그녀의 장례식을 두고 영국인 4명 중 1명만이 대규모 예산이 드는 고인의 장례식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선데이미러》가 여론조사기관 ‘컴레스’와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영국인의 60%가 ‘대처의 장례식을 축소하라’는 의견을 냈다.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영국인들은 대처를 ‘국론(國論)을 가장 분열시킨 인물’로 꼽았으며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가 “평화 시기 영국의 가장 위대한 총리”라는 헌사를 바친 데 대해서도 41 대 33으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보였다. 트라팔가 광장에 대처 동상을 설립하자는 데 대해서도 반대가 50%로 지지(29%)보다 높았다.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비록 그가 생전에 큰 논란의 대상이 됐거나 의혹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묻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반면 영국은 공과(功過)를 철저히 가린다. 이것은 우리가 죽음이 ‘끝’이라고 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영국인들에겐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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