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수 교수의 우리 고전 비틀기 〈5〉 변강쇠와 옹녀의 슬픈 자화상 : 월간조선

‘도둑질’, ‘이간질’처럼 ‘질’이란 말은 본래 부정적인 어휘에 붙는 접미사다. 그런데 요즘 특이하게도 긍정도 부정도 아닌 ‘갑’이란 말에 붙어 ‘갑질’이란 말이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권력관계의 우위에 있는 갑(甲)이 그렇지 못한 을(乙)을 괴롭힌다는 의미다.

원청회사가 하청회사에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교수가 성적을 미끼로 학생들을 괴롭히고 진상 손님이 백화점 점원에게 화풀이하는 등 그 종류가 사회 도처에 흩어져 있다. 이렇다 보니 ‘갑’이라면 무조건 부도덕하고 인성이 파괴된 파렴치한으로 보는 견해까지 생길 정도다.

하지만 세상에 ‘갑・을’이 없을 수 없고, 갑이라고 해도 모두 다 그렇게 미쳐 날뛰지도 않는다. 원래 막돼 먹은 사람들은 갑, 을 어느 위치에서든 난리를 피운다. 그런 이상한 사람들 말고, 갑이 되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한 동네 아저씨 아줌마였을 사람들이 갑자기 뭔가 단단히 잘못 먹은 듯 미쳐 날뛰는 경우가 갑질의 핵심이다.

사소한 권력을 손에 쥐자 생각지도 못할 엉뚱한 짓을 서슴없이 해대는 걸 보니 어쩌면 ‘갑질’은 ‘갑의 지랄’을 줄인 말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들은 갑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 갑만 되지 않았다면 최소한 인간답게 지낼 수는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되어 버렸을까?

정말로 특별한 두 사람

경남 함양군이 지리산 길목인 마천면 오도재 정상에 있는 지리산조망공원에 변강쇠전을 모티브로 한 조각작품을 설치했다. 사진=연합뉴스

〈변강쇠가〉의 두 캐릭터는 정말 특별하다. 쇠처럼 단단하고 강한 성기를 지녔을 것 같은 ‘강쇠’와 한없이 꼭 조여 줄 것 같은 ‘옹녀’는 그야말로 섹스의 화신이다. 둘의 만남은 육체적 면모만 놓고 보면 하늘이 내린 다시없을 연분이었다.

옹녀는 이름도 맹랑한 평안도 ‘월경촌’에 살았다. 기가 막히게 예쁘게 생겨 온 동네 남정네들이 발정 난 수캐마냥 안달이 났는데, 옹녀와 결혼한 남자들마다 죽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열다섯에 처음 얻은 서방은 첫날밤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복상사(腹上死)로 죽고, 열여섯에 얻은 서방은 성병(性病)이 걸려 죽고, 열일곱에 얻는 서방은 문둥병에 걸려 가고, 열여덟에 얻은 서방은 벼락 맞아 죽고, 열아홉에 얻은 서방은 천하의 도둑으로 포도청에 잡혀가고, 스무 살에 얻은 서방은 비상(砒霜) 먹고 죽어 버렸다. 이렇게 줄줄이 죽어 나가니 송장 치기도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남편들만 죽는 것이 아니라 숨겨 놓은 간부(姦夫), 애부(愛夫)를 비롯해 심지어 입 한 번 맞춘 놈, 젖 한 번 움켜쥔 놈, 손 만져 본 놈은 물론, 눈요기한 놈, 치마를 훔쳐다가 변태스럽게 자위한 놈까지 모조리 죽어 나갔다. 이러니 월경촌 삼십 리 안팎에 남자라고는 애들도 없을 지경이었다.

“이년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우리 경내에 ○ 단 놈은 씨가 마르겠다. 당장 쫓아내자!” 이렇게 동네에서 쫓겨난 옹녀는 훌쩍 삼남 지방을 향해 내려가다가 길에서 우연히 변강쇠를 만나게 되었다. 번갯불이 튀듯 눈이 맞은 둘은 훤한 대낮에 사람 다니는 길바닥에서 그냥 얼러붙어 질펀한 정사를 벌였다. 둘 다 예의니 염치니 하는 것과는 원래부터 담을 쌓은 데다가 워낙 밝히는 작자들이다 보니 당기면 붙여야 하는 성미였다.

옹녀는 예전에 자신과 관계했던 남자들 일도 있고 해서 조마조마했는데, 글쎄 변강쇠는 아무 탈이 없었다. 확실히 변강쇠는 절륜(絶倫)했던 것 같다. 이렇게 둘은 꼭 붙어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섹스가 좋아도 섹스만 해서는 먹고살 수 없다. 밥은 먹어야 했다. 누더기라도 걸쳐야 했고, 움막이라도 있어 비바람을 피해야 했다.

좋든 싫든 누군가는 일을 해야 먹고사는데, 여자가 일을 해서 먹고살기란 지금보다 더 힘든 그 시절이니 당연히 변강쇠가 나서야 했다. 하지만 강쇠란 놈은 전혀 그럴 맘이 없었다. 허구한 날 낮잠만 퍼 자고 밤에는 옹녀의 배만 탈 생각을 했다. 뭐라도 하라고 옹녀가 잔소리를 할라치면 성질을 버럭 냈다.

“어려서 못 배운 글을 지금 와서 어떻게 공부를 해? 손재주도 없어 물건 만드는 일을 할 수도 없고, 밑천이라고는 한 푼 없으니 장사도 할 수 없는데, 대체 뭘 하라는 거야?”

이놈의 말이 크게 그른 것은 아니지만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결국 옹녀가 나가 예쁜 낯을 팔아 술장사, 들병장사를 닥치는 대로 해서 먹고살려 한다. 그런데 이 강쇠 놈이 가만이라도 있지 연일 싸움질, 계집질, 술타령으로 옹녀를 들들 볶으면서 난리를 피우니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다.

결국 변강쇠 때문에 마을에서도 쫓겨나게 되고, 할 수 없이 옹녀는 변강쇠를 이끌고 산으로 들어가 화전(火田)을 일궈서 먹고살려 한다. 그런데 이 또한 일하기 싫어하는 변강쇠로 인해 여의치 않다. 하루는 제발 좀 나무라도 해 오라는 옹녀의 떠밀림에 밀려 억지로 산에 오르던 변강쇠가 가다가 그냥 벌렁 나자빠져서 낮잠만 실컷 잔다.

저녁나절이 되어 일어난 강쇠가 그냥 돌아가면 잔소리 들을 것이 귀찮아, 산 어귀에 있는 장승을 빠개서 땔감으로 가져온다. 옹녀가 놀라고 한심해 장승을 태우려는 것을 만류하지만, 이놈이 말을 들을 리 없다. 변강쇠가 장승을 쪼개서 불쏘시개로 태워 버리자, 분노한 장승의 혼령이 변강쇠를 징치해서 결국 온 몸의 구멍에서 피를 토하며 죽게 된다. 따지고 보면 옹녀는 또 남편을 잃은 거였다. 다시 혼자가 된 옹녀는 제 힘으로는 무거운 강쇠를 묻어 줄 수조차 없다. 그래서 지나는 남자들을 유혹해 우여곡절 끝에 강쇠를 묻어 주고는 훨훨 떠나 버린다.

변강쇠와 옹녀의 속사정

경남 사천읍 두량리에 있는 실타고개. 변강쇠타령처럼 음탕 외설한 내용을 담은 아홉살골짝 설화가 배어있는 곳이다. 현지인들은 이 설화의 주인공이 조선 중기 실재했던 옥녀라는 이름의 여인이었다고 주장한다.

변강쇠와 옹녀가 찰떡궁합인 것은 틀림없다. 그 둘의 속사정을 곰곰이 따져 보면 옹녀는 속이 썩어 문드러질 지경이다. 절륜한 것도 좋고 다른 남자들처럼 죽지 않은 것도 좋지만 변강쇠는 도무지 벽창호나 다름없다. 자신은 먹고살려고 몸까지 팔며 돈을 벌어 오는데 그걸 노름으로 홀라당 날려 버리는 남편이란 작자를 보며 옹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밤마다 엎어놓고 그저 덮치기만 하려는 강쇠를 보고 무슨 맘이 들었을까? 첫 만남처럼 흥분되는 감동의 밀물이 밀려들었을까?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옹녀의 성적 쾌락은 점점 시들거렸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옹녀는 섹스를 멈출 수 없었다. 그건 변강쇠가 발정 난 수소마냥 씩씩거리며 날마다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옹녀에게 날마다 벌이는 섹스는 향연이 아닌 지루하고 밋밋한, 때로는 괴롭기까지 한 피곤한 노역일 뿐이었다.

좋다. 그렇다면 변강쇠는 속되게 말해 끝내주게 좋았을까? 잘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좋았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밤마다 옹녀의 배를 타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게 배를 타는 것이 무슨 목적이었을까? 주체할 수 없는 성욕 때문이었을까? 뻗쳐오르는 정욕의 분출을 위해서였을까? 워낙 ‘강’한 ‘쇠’이니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몸을 팔든, 먹을 게 있든 없든, 삶의 의미고 감성이고 하는 것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냥 삽입, 피스톤, 분출, 그것이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다면 그 대상이 꼭 옹녀일 필요는 없다. 그 누구여도 상관없다. 심하게 말해 그냥 성기를 가진 그 누구, 아니 그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다. 아니라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사실 변강쇠는 그렇게 옹녀를 대했다. 사연 없이, 맥락 없이, 생각 없이 말이다. 이러니 배려 같은 고상한 감정이 그에게 있을 리 없다. 이런 변강쇠의 행위는 섹스중독증 환자의 모습 그 자체다. 단지 ‘하기’ 위해 ‘하는’ 행동을 할 뿐이었다.

대체 변강쇠는 왜 이렇게 섹스에 탐닉하는 중독증 환자가 되었을까? 어떤 중독이든 중독자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아마 이유를 수백 가지는 댈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 이유들이 어느 정도 맞기도 하다. 다 합해 놓으면 정말 중독에 빠질 만도 하다. 하지만 중독자들이 놓치는 최대 지점은 바로 중독의 이유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점이다. 왜 중독이 됐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말 중독에서 벗어날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다. 번번이 갱생에 실패하는 이유가 중독자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그들은 스스로 외면해 버린다.

변강쇠가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사고만 치는 이유가 그가 핑계 댄 말처럼 어느 정도 타당하다. 어려서 공부하지 않아 배운 것도 없고, 뭔가 만들어 낼 만한 손재주도 없고, 장사를 할 만한 밑천도 없다는 그 말이 모두 거짓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변강쇠는 사회적 하층이고 소외층이었다. 그가 뭔가 할 수 없었던 것은 일정 부분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변강쇠는 무엇을 했을까

하지만 변강쇠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변강쇠의 말이 어찌 할 줄 모르는 자의 항변인지 아니면 핑계인지 잘 따져 봐야 한단 말이다. 변강쇠가 하층민이고 소외층인 것은 맞다. 그가 배운 것도 없고 손재주도 없고 밑천도 물려받은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뭔가 해 보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정도로 좌절될 수밖에 없는 정황도 분명 틀림없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다. 아니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고개 돌린 사실이 있다. 그건 자신만 배운 것이 없고, 손재주가 없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자신처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들 비관하고 자신의 삶을 내팽개치듯이 구렁텅이로 밀어 버리지는 않다는 사실 말이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옹녀는 뭐라도 해 보려 했는데 그는 그저 그 옹녀의 등만 쳐 먹었다. 나무 하나 제대로 해 오지 않고 장승을 빠개서 가져온 것이 그가 한 일이다. 고작 그 짓거리를 한 것이다.

분명 변강쇠는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이야기에 나오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가 무척 많은 노력과 시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하고 꺾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아야 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똑바로 직면해서 돌파할 생각을 해야 했다. 그 앞에 놓인 삶은 그 누구의 삶도 아닌 바로 자신의 삶이니 말이다. 부인도 얻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자기 앞에 놓인 삶을 살아 보려 애쓰는 대신 현실을 회피하고 도망치려 했다. 그렇게 그가 도망친 곳이 바로 섹스였다.

변강쇠는 오로지 성적 쾌락에만 탐닉했다. 그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고, 자신을 잊고, 모든 것이 고양된 상태가 되니 빠져들 만도 하다. 섹스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피처가 된 것이 나쁘다. 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술에 빠져 사리분별을 잃는 것이 옳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맨정신이 되기 힘든 그들은 정신이 들려 하는 찰나에 다시 술을 찾아 술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변강쇠는 섹스로 도망치고 섹스에 파묻히고 그렇게 섹스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비록 정력이 절륜해 남들을 놀라게 할 정도의 사람이라 해도 그는 비겁한 겁쟁이일 뿐이다. ‘강’한 ‘쇠’가 아니라 단지 못난 놈팡이일 뿐이었다.

김동인의 ‘광염소나타’

소설가 김동인(1900~1951).

많은 사람이 섹스중독자들은 나쁘고, 마약중독자는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술에 빠진 사람은 대단하다고 추어준다. 뜨악하게 들리는가? 섹스, 마약과 예술을 같이 놓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게 느껴지는가? 섹스에 내가 빠지고 마약에 내가 빠진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섹스가 나를 집어삼키고 마약이 나를 먹어 버린다. 예술이란 놈이 나를 꿀꺽 삼킨단 말이다.

김동인의 〈광염소나타〉에는 백성수라는 작곡가가 등장한다.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괴로워하던 그가 어느 날 불을 보고 폭발하는 감성을 경험한다. 그리고 놀라운 음악을 창작해 낸다. 또한 점점 더 강렬한 흥분을 얻기 위해 헤매다가 급기야 방화(放火), 시간(屍姦), 살인(殺人)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때마다 세상이 깜짝 놀랄 음악을 작곡해 낸다. 하지만 결국 잡히게 되는데, 이를 두고 작중 화자는 천재적인 예술이라면 사회의 사소한 윤리와 법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광염소나타〉의 작중 화자처럼 극단적인 생각까지는 아니어도, 예술혼이네 뭐네 하면서 예술이란 것이 사람보다 더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술이 위대하고 대단한 것은 맞지만 그 예술이 인간을 무시하고 인간을 도외시한다면 그런 예술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단지 예술일 뿐이다. 예술 역시 사람을 위해 존재할 뿐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위대한 음악을 창조하기 위해 스스로 인간다움을 포기한 주인공 백성수가 그렇게 해서 어마어마하게 위대한 대작을 창작했다고 치자. 그래서 대체 세상에 무슨 이로움을 줄까? 그렇게 엄청난 수준의 작품을 과연 살인, 방화, 시간처럼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 평범한 인간들이 이해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극도로 폭발하는 흥분상태에서만 창작할 수 있는 작품이 과연 제대로 된 작품일까? 예술을 한다면서 예술이란 놈에게 먹혀 버린 주인공 백성수는 제대로 된 인간일까?

꼭두각시의 춤

“꼭두각시 같은 놈!” 이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정작 자신이 뭔가에 집어삼켜지는 것을 도무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 ‘먹는 놈’이 꼭 섹스이고 마약이고 예술인 것만이 아니다. 워커홀릭이 주변의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히고 제 자신까지 갉아먹는지는 겪어 본 사람만 안다. 예술가랍시고 사회성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자들을 사람답다고 말하기 힘든 것처럼, 권력에 취해 제 정신을 잃은 자들이 어설픈 칼춤을 추는 것을 보면 정말 아찔하다. 어쩌다 ‘갑’이 되어 ‘갑이라는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있는 줄도 모르는 한심한 작자들이니 말이다.

그들은 왜 칼춤에 제 허리춤의 줄이 끊어져 바지가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열을 내는 걸까?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작은 지위에, 사소한 권력에 취해 정신 줄을 놓았기 때문이다. 섹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마약에 취해 몽롱한 것처럼 제 자신은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엉뚱한 놈이 제 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 외에 그 무엇도 중요한 것이 없다”는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가 비주체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은 ‘그 무엇’에 바로 그 자신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자기 주체성을 망실한 자리에 스며들 것은 뻔하다. 어두운 괴물이다. 이쯤 되니 ‘갑질’은 ‘갑의 지랄’이 아니라 ‘괴물의 습격’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갑질은 당하는 을에게만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짓을 하는 자신에게도 역시 좋지 않다. 갑질을 하면서 조금씩 저도 모르게 갑질이란 괴물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전히 잡아먹히게 되면 그 자신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만다. 자신이 본래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정말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옹녀를 만나기 전, 변강쇠도 뭔가 해서 먹고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옹녀를 만난 후 그는 섹스로 도망쳐 버렸다. 그는 섹스를 즐긴 것이 아니라 섹스에 먹혔던 것이다. 그렇게 섹스에 먹혀 버려 자기를 망각하게 된 그는 재산도 없고 배운 것도 없어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는 핑계로 아내 옹녀에게 ‘갑질’을 했다. 그것이 갑질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야비한 갑질을 했던 것이다.

안하무인의 기업가, 징글맞은 원청 업체, 진상 손님, 변태 교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든 갑질을 할 수 있다. 공무원이 갑질을 하기도 하지만, 공무원에게 막무가내로 대드는 민원인의 갑질도 없지 않다. 한밤중 파출소에 가 보라. “때려, 때려 봐!” 머리를 들이밀며 주먹을 휘두르는 취객 때문에 곤혹스러워하는 경찰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갑’이 문제가 아니라 제 스스로 그 ‘갑’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정신을 잃는 것이 문제다. 자신을 잃는 순간, 자신이 그 위치에 있는 그 존재 이유를 망각하는 순간, ‘자기’가 잠식되기 시작한다. 갑질은 갑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정신이 갉아먹힌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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