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의 발전으로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한 궁금증 어느 정도 풀려
⊙ 마크 솜스 박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뇌 과학·신경과학으로 설명
김보연
1962년생. 가톨릭대학 의대 졸업 / 현 성가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마음의 신경과학연구회장, 대한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 법제이사, 가톨릭의과대학 외래교수
⊙ 마크 솜스 박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뇌 과학·신경과학으로 설명
김보연
1962년생. 가톨릭대학 의대 졸업 / 현 성가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마음의 신경과학연구회장, 대한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 법제이사, 가톨릭의과대학 외래교수
결혼 12년 차인 주부 K씨. 그녀는 처음 병원을 찾은 날 “남편 친구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스스로 불안해하면서 음주량이 늘었고 가족들에게 이상한 행동까지 한다고 했다. 그의 남편은 애주가에 ‘일벌레’였다. 퇴근시간은 늦었고 주말에도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4개월 전 어느 날 ‘일’이 벌어졌다. 남편의 절친한 친구가 술에 취해 찾아와 충격적인 말을 한 것이다. 친구는 K씨에게 남편에게 여자가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여자를 만나고 있을 것이라 했다. 놀란 K씨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만 남편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K씨는 다음날 남편의 전화통화 내역을 확인한 뒤 남편 친구가 한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믿어지지 않았고 남편도 사업 때문에 통화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금이 갔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이 온 그녀는 급기야 이혼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K씨는 필자의 상담과 정신치료를 받으며 다소 안정을 찾았다.
흔히 사람이 충격적인 사건을 접했을 때 맨 처음 취하는 행동은 그 사건을 잊어버리거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K씨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가 술만 마시면 분노가 폭발했다.
정신분석 치료의 핵심은 환자의 억압된 본래 마음을 끄집어내 관찰하고 환자 스스로 그런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과 감정을 환자로 하여금 의학적 조치를 통해 스스로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치료의 출발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두렵고 괴로운 일이지만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감정은 완화되고 마침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사례
이번에는 정신분열증의 일종인 ‘조현병(調絃病·Schizophrenia)’을 15년째 앓고 있는 여성의 사례를 들어보자. 처녀 때부터 이 병을 앓았는데, 결혼 초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성격과 육아(育兒)의 어려움으로 증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환청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기를 업고 밖에 나갔는데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나를 보고 ‘정신병자’라고 하는 겁니다. 또 어떤 여자가 전화를 하는데 ‘목사에게 목숨 걸고 안 빌어?’라는 거예요. 저번에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처럼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라 ‘내게 한 말이 아니겠지’ 하면서도 자꾸 내게 한 말처럼 들려 기분이 너무 나빠요.”
조현병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신경기능의 결핍으로 발생한다. 가족 등 주위 인물들이 가짜라고 믿는 ‘카그라스 증후군(Capgras Syndrome)’처럼 지각·감정·의식적 분석을 담당하는 신경망이 부분적으로 끊어져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프로이트는 조현병을 ‘치료할 수 없는 병’이라고 했지만, 현대 정신의학 수준은 치료를 통해 환자의 사회활동이 가능하도록 발전했다.
뇌 절제술 후 기억상실증 환자 연구한 밀너 박사
필자는 한동안 미국 드라마 〈캐슬〉에 심취했다. 추리 소설가인 주인공 ‘캐슬’은 경찰 수사(搜査)를 돕는 일을 했다. 드라마 중에는 주인공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피의자로 하여금 자기의 서명을 그리도록 유도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장면이 있다. 또 다른 인기 드라마 〈명탐정 뭉크〉에서도 강박증 환자이면서 탐정으로 활동하는 ‘뭉크’가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범인의 몽타주를 그리도록 해 사건을 해결했다.
의사이자 심리학자이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캐슬〉과 〈뭉크〉에 나오는 사건을 해결했다면 ‘자유연상을 통해 충격적인 사건 기억을 복원하는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은 쉬운 게 아니다. 피의자의 뇌에 가해진 충격이 신경세포를 파괴할 정도의 사건이라면 영원히 복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의 드라마에서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알 수 없는 그림 그리기 기억(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운동기억이라고도 함)을 사용해 사건을 해결한 것이다.
프로이트 이후 과학의 발전으로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다. 여기에는 1918년 영국 맨체스터 출생인 밀너(Brenda Milner) 박사의 노력이 컸다.
밀너 박사는 찰스 다윈이 다녔던 케임브리지대학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캐나다 맥길 대학의 ‘헵(Hebb)연구소’에서 신경외과 의사인 펜필드 박사 주도로 ‘정신-뇌 절제술’을 받은 환자들을 연구했다. 측두엽 절제 환자의 기억상실증 사례를 모아 발표한 밀너 박사는 1957년 미국인 신경외과 의사 스코빌(Dr. William Scoville) 박사와 함께 ‘수술 후 장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 사례들을 발표했다.
밀너 박사의 연구를 통해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물론 뇌의 장기(長期)기억 체계를 과학적으로 풀 수 있었다. 즉 물체, 이름, 역사적 기억 등 의식(意識)에서 인지하는 ‘외현적 기억(Explicit memory)’과 그림 그리기, 운전 등에 사용되는 ‘암묵적 기억(운동기억)’은 뇌의 서로 다른 부위에서 진행되고 저장된다는 것이다.
밀너 박사는 복잡한 기억의 네 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1. 기억은 뚜렷한 정신적 기능의 일종으로, 지각·운동·인지기능과 구별된다.
2.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은 뇌의 서로 다른 위치에 저장된다.
3. 내측 측두엽과 해마는 특수한 기억을 담당하는 곳으로,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변환시킨다. 뇌의 다른 부위의 손상은 기억에 영향이 없다.
4. 드라마 〈캐슬〉 〈명탐정 뭉크〉에서 소개됐듯이, 암묵적 기억(운동기억)은 측두엽과 해마와는 다른 부위에 저장된다.
요컨대, 사람·사물·장소·사건 등과 같은 의식적 기억(외현적 기억)은 전두엽에서 단기적으로 기억했다가 해마에서 장기기억으로 전환된 후 감각피질에 장기적으로 저장된다. 즉 시각적 장기기억은 시각피질에, 촉감은 체감각 피질에 장기 저장되는데 이 둘은 신경망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프로이트, 자크 라캉의 기본 분석 理論도 뇌·신경과학으로 설명 가능
독자들께서는 이쯤에서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 밀너 박사가 발견한 것처럼, 암묵적 기억은 습관·조건학습·감정·감작(感作)·지각·운동의 기술이 저장되는 무의식적 장기기억이라는 것만 알아두면 된다.
필자의 책장에는 ‘프로이트 전집(全集)’이 있다. 이 책은 많은 시간을 필자와 함께했다. 대학 졸업 후 수련 기간을 마치고 정신건강의학 전문의(專門醫)가 돼 의사생활을 하는 지금까지도 함께하고 있다. 책에 있는 밑줄과 잔글씨의 흔적들이 젊은 시절의 은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대학생 시절부터 필자의 우상(偶像)이었다. 아마도 당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치료에 대한 관심보다는 유명한 정신분석가, 정신건강의학 의사의 표상(表象)으로서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전문의가 된 이후에도 그를 좋아했던 이유는, 필자의 아동기, 성장기에 희망했던 그 무엇에 대한 추구의 노력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젊은 시절 쥘 베른(Jules Verne)의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 일주》,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the brave new world)》를 즐겨 읽었다. 이들 소설은 항상 시대를 앞서 있었고,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비행기나 잠수함) 또한 당시에는 없었던 것들이다. 필자는 미래 영화인 〈토탈 리콜〉에 나오는 것처럼 미래의 어느 순간에는 기억을 직접 다루는 장치가 개발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필자는 사람의 ‘기억’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할 때 기억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잡는다. 어느 정신치료연구회에서 필자가 “정신과 의사는 기억을 치료하는 의사”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더니 참석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신치료와 정신분석에 대해 뇌·신경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해 설명한 것이 듣는 이에게 생소했던 것이다.
정신분석 이론의 사회·문화적 의미 변화
일반적으로 정신분석가들은 인간의 성격과 그 구성 요소인 자아(自我·Ego), 초자아(超自我・Superego), 이드(Id·무의식적 욕동, 감정을 구성하는 요소)의 움직임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그들은 정신의 기능과 발달에 대해 상당한 내공을 갖고 있는 전문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1900)》에서 정신계를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설명했다. 이것을 ‘지형 이론’이라고 한다. 이후 그는 《쾌락원칙을 넘어서(1920)》 《자아와 이드(1923)》를 통해 정신계를 삼각구도인 자아, 이드, 초자아라는 ‘삼중 구조이론’ 관점에서 분석했다.
프로이트는 평생 동안 신경학, 병리학을 연구하면서 과학적 기본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가설을 환자의 실증적 사례를 통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롭게 수정해 완벽한 이론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후대 연구자들은 그를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첫째, 그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서 인간의 메타심리(Metapsychology)를 정교하게 분석한 정신건강의학 의사이다. 둘째, 인간의 마음을 신경계의 모델로서 규명하고자 했던 신경과학자이자 병리학자이다. 셋째, 종교·문학·철학 등 인문과학을 정신분석학으로 설명하였던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다.
필자의 사례에서 보듯 무의식의 특성과 활동법칙을 연구하는 학문 ‘메타심리학’은 임상(臨床)에서 여전히 유용한 이론이다. 물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은 정신의학의 한 본류로 자리 잡고 있지만 현대의 정신건강의학을 설명하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매력적이지만 과거의 모델을 적용하려다 보니 현대 의학적 지식을 저버리는 한계가 있다. 용어를 이해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혼란도 감수해야 한다.
철학, 심리학, 종교학에서 다루는 프로이트는 과거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관념적인 서술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임상 경험도 다분히 추상적이며,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프로이트 자신도 신경, 생물학적 설명을 포기하고 주관적인 ‘욕동이론’이나 ‘지형이론’ ‘구조이론’ 등으로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론은 복잡해지고 추상화됐다. 이로 인해 프로이트 이후 오랫동안 그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제기됐다.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과 유혹이론, 오이디푸스콤플렉스는 그가 말하려 했던 의도와 달리 비난과 가십의 소재로 추락했다.
“認知신경과학은 정신분석의 새로운 기반 제공할 것”
최근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크 솜스(Mark Solms·남아공의 신경심리학자)는 2004년 《과학적 미국인(SCIENTIFIC AMERICAN)》이라는 잡지에 ‘프로이트의 귀환(Frued Returns)’이라는 글을 써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프로이트의 핵심 개념인 ‘욕동’ ‘억압’ ‘자아’ ‘이드’ ‘초자아’를 담당하는 뇌의 영역을 간결한 그림을 통해 보여줬다. 미국 워싱턴주립대학의 생리・신경과학자인 판크세프(Jaak Panksepp)는 프로이트가 ‘욕동’ 이라고 불렀던 기본적인 포유류의 감정-정서(분노·두려움·놀람·성욕·돌봐주기·놀기 등)를 담당하는 신경 핵이 뇌 기저부에 선천적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이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현대의 뇌 과학, 신경학을 상호 연결해 설명한 것이다. 이들은 한동안 외면받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신경생물학적 측면으로 다시 부활시켜 학자들로 하여금 새롭게 관심을 갖도록 했다.
이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필자가 경험한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정신분석학을 《월간조선》 독자들에게 새롭게 설명할 생각이다. 정신의학이 현대에 들어와 어떠한 변화와 체계를 갖추게 되었으며, 현대의 신경과학과 생물학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알려드리고자 한다.
끝으로 에릭 캔들 교수의 말로 첫 회를 마칠 생각이다. 캔들 교수는 정신의학, 정신분석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넘치는 대학자이다.
“정신분석이 활력을 찾는 한 방법은 일반 생물학은 물론 특히 인지신경과학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개념적인 관점에서 인지신경과학은 정신분석의 성장을 위한 새로운 기반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 기반은 메타심리학보다 더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다 4개월 전 어느 날 ‘일’이 벌어졌다. 남편의 절친한 친구가 술에 취해 찾아와 충격적인 말을 한 것이다. 친구는 K씨에게 남편에게 여자가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여자를 만나고 있을 것이라 했다. 놀란 K씨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만 남편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K씨는 다음날 남편의 전화통화 내역을 확인한 뒤 남편 친구가 한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믿어지지 않았고 남편도 사업 때문에 통화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금이 갔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이 온 그녀는 급기야 이혼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K씨는 필자의 상담과 정신치료를 받으며 다소 안정을 찾았다.
흔히 사람이 충격적인 사건을 접했을 때 맨 처음 취하는 행동은 그 사건을 잊어버리거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K씨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가 술만 마시면 분노가 폭발했다.
정신분석 치료의 핵심은 환자의 억압된 본래 마음을 끄집어내 관찰하고 환자 스스로 그런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과 감정을 환자로 하여금 의학적 조치를 통해 스스로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치료의 출발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두렵고 괴로운 일이지만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감정은 완화되고 마침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사례
이번에는 정신분열증의 일종인 ‘조현병(調絃病·Schizophrenia)’을 15년째 앓고 있는 여성의 사례를 들어보자. 처녀 때부터 이 병을 앓았는데, 결혼 초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성격과 육아(育兒)의 어려움으로 증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환청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기를 업고 밖에 나갔는데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나를 보고 ‘정신병자’라고 하는 겁니다. 또 어떤 여자가 전화를 하는데 ‘목사에게 목숨 걸고 안 빌어?’라는 거예요. 저번에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처럼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라 ‘내게 한 말이 아니겠지’ 하면서도 자꾸 내게 한 말처럼 들려 기분이 너무 나빠요.”
조현병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신경기능의 결핍으로 발생한다. 가족 등 주위 인물들이 가짜라고 믿는 ‘카그라스 증후군(Capgras Syndrome)’처럼 지각·감정·의식적 분석을 담당하는 신경망이 부분적으로 끊어져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프로이트는 조현병을 ‘치료할 수 없는 병’이라고 했지만, 현대 정신의학 수준은 치료를 통해 환자의 사회활동이 가능하도록 발전했다.
뇌 절제술 후 기억상실증 환자 연구한 밀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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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드라마 〈캐슬〉. 추리 소설가인 주인공 ‘캐슬’은 경찰 수사(搜査)를 돕는 일을 했다. 드라마 중에는 주인공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피의자로 하여금 자기의 서명을 그리도록 유도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
의사이자 심리학자이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캐슬〉과 〈뭉크〉에 나오는 사건을 해결했다면 ‘자유연상을 통해 충격적인 사건 기억을 복원하는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은 쉬운 게 아니다. 피의자의 뇌에 가해진 충격이 신경세포를 파괴할 정도의 사건이라면 영원히 복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의 드라마에서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알 수 없는 그림 그리기 기억(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운동기억이라고도 함)을 사용해 사건을 해결한 것이다.
프로이트 이후 과학의 발전으로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다. 여기에는 1918년 영국 맨체스터 출생인 밀너(Brenda Milner) 박사의 노력이 컸다.
밀너 박사는 찰스 다윈이 다녔던 케임브리지대학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캐나다 맥길 대학의 ‘헵(Hebb)연구소’에서 신경외과 의사인 펜필드 박사 주도로 ‘정신-뇌 절제술’을 받은 환자들을 연구했다. 측두엽 절제 환자의 기억상실증 사례를 모아 발표한 밀너 박사는 1957년 미국인 신경외과 의사 스코빌(Dr. William Scoville) 박사와 함께 ‘수술 후 장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 사례들을 발표했다.
밀너 박사의 연구를 통해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물론 뇌의 장기(長期)기억 체계를 과학적으로 풀 수 있었다. 즉 물체, 이름, 역사적 기억 등 의식(意識)에서 인지하는 ‘외현적 기억(Explicit memory)’과 그림 그리기, 운전 등에 사용되는 ‘암묵적 기억(운동기억)’은 뇌의 서로 다른 부위에서 진행되고 저장된다는 것이다.
밀너 박사는 복잡한 기억의 네 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1. 기억은 뚜렷한 정신적 기능의 일종으로, 지각·운동·인지기능과 구별된다.
2.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은 뇌의 서로 다른 위치에 저장된다.
3. 내측 측두엽과 해마는 특수한 기억을 담당하는 곳으로,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변환시킨다. 뇌의 다른 부위의 손상은 기억에 영향이 없다.
4. 드라마 〈캐슬〉 〈명탐정 뭉크〉에서 소개됐듯이, 암묵적 기억(운동기억)은 측두엽과 해마와는 다른 부위에 저장된다.
요컨대, 사람·사물·장소·사건 등과 같은 의식적 기억(외현적 기억)은 전두엽에서 단기적으로 기억했다가 해마에서 장기기억으로 전환된 후 감각피질에 장기적으로 저장된다. 즉 시각적 장기기억은 시각피질에, 촉감은 체감각 피질에 장기 저장되는데 이 둘은 신경망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프로이트, 자크 라캉의 기본 분석 理論도 뇌·신경과학으로 설명 가능
독자들께서는 이쯤에서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 밀너 박사가 발견한 것처럼, 암묵적 기억은 습관·조건학습·감정·감작(感作)·지각·운동의 기술이 저장되는 무의식적 장기기억이라는 것만 알아두면 된다.
필자의 책장에는 ‘프로이트 전집(全集)’이 있다. 이 책은 많은 시간을 필자와 함께했다. 대학 졸업 후 수련 기간을 마치고 정신건강의학 전문의(專門醫)가 돼 의사생활을 하는 지금까지도 함께하고 있다. 책에 있는 밑줄과 잔글씨의 흔적들이 젊은 시절의 은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대학생 시절부터 필자의 우상(偶像)이었다. 아마도 당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치료에 대한 관심보다는 유명한 정신분석가, 정신건강의학 의사의 표상(表象)으로서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전문의가 된 이후에도 그를 좋아했던 이유는, 필자의 아동기, 성장기에 희망했던 그 무엇에 대한 추구의 노력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젊은 시절 쥘 베른(Jules Verne)의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 일주》,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the brave new world)》를 즐겨 읽었다. 이들 소설은 항상 시대를 앞서 있었고,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비행기나 잠수함) 또한 당시에는 없었던 것들이다. 필자는 미래 영화인 〈토탈 리콜〉에 나오는 것처럼 미래의 어느 순간에는 기억을 직접 다루는 장치가 개발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필자는 사람의 ‘기억’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할 때 기억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잡는다. 어느 정신치료연구회에서 필자가 “정신과 의사는 기억을 치료하는 의사”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더니 참석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신치료와 정신분석에 대해 뇌·신경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해 설명한 것이 듣는 이에게 생소했던 것이다.
정신분석 이론의 사회·문화적 의미 변화
일반적으로 정신분석가들은 인간의 성격과 그 구성 요소인 자아(自我·Ego), 초자아(超自我・Superego), 이드(Id·무의식적 욕동, 감정을 구성하는 요소)의 움직임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그들은 정신의 기능과 발달에 대해 상당한 내공을 갖고 있는 전문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1900)》에서 정신계를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설명했다. 이것을 ‘지형 이론’이라고 한다. 이후 그는 《쾌락원칙을 넘어서(1920)》 《자아와 이드(1923)》를 통해 정신계를 삼각구도인 자아, 이드, 초자아라는 ‘삼중 구조이론’ 관점에서 분석했다.
프로이트는 평생 동안 신경학, 병리학을 연구하면서 과학적 기본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가설을 환자의 실증적 사례를 통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롭게 수정해 완벽한 이론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후대 연구자들은 그를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첫째, 그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서 인간의 메타심리(Metapsychology)를 정교하게 분석한 정신건강의학 의사이다. 둘째, 인간의 마음을 신경계의 모델로서 규명하고자 했던 신경과학자이자 병리학자이다. 셋째, 종교·문학·철학 등 인문과학을 정신분석학으로 설명하였던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다.
필자의 사례에서 보듯 무의식의 특성과 활동법칙을 연구하는 학문 ‘메타심리학’은 임상(臨床)에서 여전히 유용한 이론이다. 물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은 정신의학의 한 본류로 자리 잡고 있지만 현대의 정신건강의학을 설명하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매력적이지만 과거의 모델을 적용하려다 보니 현대 의학적 지식을 저버리는 한계가 있다. 용어를 이해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혼란도 감수해야 한다.
철학, 심리학, 종교학에서 다루는 프로이트는 과거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관념적인 서술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임상 경험도 다분히 추상적이며,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프로이트 자신도 신경, 생물학적 설명을 포기하고 주관적인 ‘욕동이론’이나 ‘지형이론’ ‘구조이론’ 등으로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론은 복잡해지고 추상화됐다. 이로 인해 프로이트 이후 오랫동안 그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제기됐다.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과 유혹이론, 오이디푸스콤플렉스는 그가 말하려 했던 의도와 달리 비난과 가십의 소재로 추락했다.
“認知신경과학은 정신분석의 새로운 기반 제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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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크 솜스(Mark Solms) 박사는 2004년 미국 잡지 《과학적 미국인(SCIENTIFIC AMERICAN)》에 ‘프로이트의 귀환(Frued Returns)’이라는 글을 게재해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프로이트의 핵심 개념인 ‘욕동’ ‘억압’ ‘자아’ ‘이드’ ‘초자아’를 담당하는 뇌의 영역을 간결한 그림을 통해 보여줬다. 오른쪽은 신경심리학자 마크 솜스. |
이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필자가 경험한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정신분석학을 《월간조선》 독자들에게 새롭게 설명할 생각이다. 정신의학이 현대에 들어와 어떠한 변화와 체계를 갖추게 되었으며, 현대의 신경과학과 생물학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알려드리고자 한다.
끝으로 에릭 캔들 교수의 말로 첫 회를 마칠 생각이다. 캔들 교수는 정신의학, 정신분석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넘치는 대학자이다.
“정신분석이 활력을 찾는 한 방법은 일반 생물학은 물론 특히 인지신경과학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개념적인 관점에서 인지신경과학은 정신분석의 성장을 위한 새로운 기반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 기반은 메타심리학보다 더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