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明堂〈4〉 국토 ‘百年大計’와 ‘風水’ : 월간조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존재이다. 그가 어느 길을 가거나 가지 않거나 그건 자유다. 그러나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나는 사르트르의 이 말을 좋아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자유라고 부른다. 자유에는 응당 책임이 뒤따른다.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放縱)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가 먼저 가면(대개 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에 비하여 30~40년 먼저 가는 것이 상례이다) 그 유체(遺體)를 매장하든 화장하든 선택해야 한다. 아울러 그에 따르는 책임도 져야 한다.

저자의 경우 7세 때 우연히 마을에 찾아온 도인 송석담(宋石潭) 노인을 사사한 이후 평생 풍수지리학을 연구한 결과 80고개에 올라선 지금에야 겨우 생기처(生氣處)를 보는 눈을 뜨게 되었고, 내가 지니고 있는 경험과 지혜를 나라 위해 쓰기로 작정했으니 옛 성인이 말한바 ‘70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나이 70이 되자 마음먹은 대로 행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공자의 말)’의 경지가 이런 것이겠거니 짐작할 따름이다. 그리고 나아가 지리산에서 나고 자란 가난한 촌뜨기가 이만큼 앞가림을 하고 살게 된 것도 선영의 신후지를 명당에 묻어 드리고 싶어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땅의 氣를 부정하는 사람들

살다 보니 사후 세계에 대한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죽으면 그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에 따라 매장(埋葬)보다 화장(火葬)을 택하여 본인 스스로 정부의 ‘분묘망국론’을 추종하여 별 생각 없이 화장장에 들어서는 사람도 있었고, ‘나는 과학도이기 때문에 풍수지리학 따위를 믿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기업가도 있었다.

후에 듣기로, 과학도를 자처하며 당당하기만 했던 기업인은 자식들과의 사이에 재산상속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고 기업도 사양길에 접어들자, ‘선산이 잘못됐나’며 풍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기업인만 하더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의 미덕은 갖춘 경우이지만 대개의 경우 ‘운명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출세와 부귀를 ‘내가 잘나서 내 힘으로 쟁취한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인간의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 대자연의 기(氣)를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혹은 조부모)의 사후 유체를 매장하는가, 화장하는가 하는 문제는 지역과 시대의 문화에 크게 좌우된다. 문화적으로 볼 때 2000년대 초부터 대한민국 사람들이 화장을 선호하는 것은 그만큼 살기가 쉽지 않다는 증거라고 본다. 이외에도 장례문화를 결정하는 요소는 풍습과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의 문제, 종교의 유무 들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정부의 태도가 국민적 합의 없이 슬그머니 정해진 것 같아서 불만스럽다. 몇 해 전 국토이용계획을 책임진 관리가 말하기를 “1년에 여의도만 한 넓이의 국토가 묘지로 잠식된다”고 엄살을 떨더니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을 서서 화장장(火葬場, 장제소로 이름을 바꿨다)의 시설을 현대화하여 처리 능력을 상향 조정하고, 주변을 공원화하는 등 사람들의 기피의식을 완화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70% 가까운 사람들이 매장 대신 화장을 선택하고 있다는 통계청의 보고가 있었다.

종교적인 이유와 더불어 시골에 있는 선영의 관리가 만만치 않은 일이어서 해마다 추석을 전후하여 지역 농협에서 “분묘를 관리해 드립니다”라고 할 정도로 성묘와 참배 모두 귀찮은 일이 돼 버린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부모의 묘소 관리는 귀찮은 일, 비용과 시간이 들어 피하고 싶은 일이 돼 버린 느낌마저 있다. 지금 대한민국 장례문화의 변화를 예시하는 각종 통계는 이처럼 귀찮은 일로부터 벗어나려는 편의주의의 산물이지 종교적 성찰과 문화적 축적의 결과는 아닌 것이다. 장례문화가 문화적 요소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많은 부작용이 생긴다. 이런 이유에서 화장 위주의 장례 풍습은 우리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토이용계획의 차원에서 화장장 시설을 현대화하는 등 정부와 정책 담당 공무원들(국무위원 포함)이 국가 백년대계가 있는지 의심스럽고 안타깝기도 하다. 국토를 아끼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묘지로 잠식당하는 것을 예방하여 얻어 낸 국토를 공장 건설(수출을 위해)과 아파트단지 조성용으로 공급해 봤자 결국에는 자연 훼손만 가속화하고,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이해한다면 엉터리 계획을 정책이라고 세워 놓고 희희낙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가 가진 것은 인재(人才)일 뿐이니 인재의 생산과 양성을 위해 대자연과의 상관관계가 어떤 것인지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무엇이 국가 백년대계인지 대답이 절로 나올 것이다. 적어도 지금 같은 인구정책과 화장 위주의 장례문화(지금의 장례문화는 불교의 다비식도 아니고 철학도 없는 소비문화의 일환일 뿐이다)를 부추기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총선과 대선 등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이 문제에 대해서도 후보들은 각자가 지닌 생각을 밝혔으면 한다.

황희 정승 집안 묘의 내력

서울의 主山인 북악산. 서울의 대표적 길지로 꼽히는 가회동은 조선시대부터 고관대작과 양반이 많이 살았다. 사진=조선일보

통일로(서울역 네거리에서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에 이르는 47.6km의 국도) 주변에는 통일로 공원묘지를 비롯하여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등 북한 땅에 고향을 두고 한국전쟁 때 피란 내려와 정착한 사람들의 선영이 집결되어 있다. 임진각에 마련되어 있는 망배단(望拜壇)에서 합동 제례를 거행하는 것과 같은 심리적 동기(한 발이라도 고향에 가까운 곳에 묻히고자 하는)로 조성된 묘소들이다. 황해도 평산이 고향인 배우 신영균(전 국회의원)씨의 모친도 이곳에 영면해 있고, 우리나라에서 현금자산이 가장 많은 사람으로 알려진 태평양화학(아모레화장품 본포) 서성환 회장(황해도 평산)의 신후지와 선영도 이 부근에 있다. 임진강의 흐름을 굽어보는 자리에 조선조 태종, 세종, 문종의 3대에 걸쳐 재상을 지낸 영의정 황희(黃喜)와 그의 아들로 역시 영의정을 지낸 황수신(黃守身) 부자의 묘소가 지척에 잠들어 있고 임진강을 굽어보는 자리에 그를 기리어 지은 누각 반구정(伴鷗亭)이 있으나 안타깝게도 황희 부자의 묘소는 지척에 진혈을 두고도 실기(失機)하여 부자 영의정의 집안 운은 그때 끝나고 말았다.

황희가 정승으로 발탁된 것은 일반적으로 세종의 안목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풍수지리학의 눈으로 볼 때 승려 나옹(懶翁)의 혜안을 먼저 꼽는 이들도 있다. 고려말의 선승 나옹 스님이 전라도 남원 실상사에 머물 때의 일이다. 가까운 순창의 회문산에 있는 ‘홍곡단풍형’ 명당에 누군가 신후지를 잡아 뛰어난 인재가 태어나면 난세를 극복하는 데 일조할 텐데 하는 마음으로 노심초사하던 스님은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남원의 부호에게 “명당을 잡아 주겠다”고 약속하여 500냥의 시주를 받아 퇴락한 암자를 짓는 데 썼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호를 데리고 회문산에 갈 때마다 비바람이 몹시 불고 짙은 안개가 산을 에워싸는 바람에 그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몇 번 되풀이되자 스님을 믿고 거금을 시주한 부호는 역정이 났다. 스님이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의심한 부호는 스님에게 뭇매질을 하고 이어 “열흘 안으로 그 자리를 찾아내라, 아니면 내가 시주한 돈을 돌려주든지, 그것도 아니면 숨통을 끊어 놓겠다”고 위협했다. 겨우 풀려난 나옹이 광한루 다리 위를 비척거리며 걷는데 마침 지나가던 하급관리 황군서(黃君瑞)를 만났다. 사람 좋은 황군서는 나옹의 그릇을 알아보고 존경해 오고 있던 터였다.

“대사께서 웬 일이십니까?”

“대사고 소사고 죽게 생겼습니다.”

나옹은 부호에게 받은 돈을 암자 중수하느라 다 써 버렸으니 꼼짝 없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라고 사정 얘기를 했다. 스님의 얘기를 듣고 있던 군서가 무엇에 끌리듯 물었다.

“그 자리를 지금 가 보면 찾을 수 있을까요?”

“글쎄올시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

“마침 저의 선친 묘터를 찾고 있던 중입니다. 그 자리가 천하 명당이라면 제가 살고 있는 집과 얼마 안 되는 재산을 팔아 스님이 받은 시줏돈을 봉창하겠습니다.”

“조건이 있소.”

“뭡니까?”

“그 자리에 묘를 쓰면 자손 중에서 반드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인물이 태어날 것이오. 그 자리에 부친을 묻은 후에 곧장 고려 왕조에 기댈 생각을 접고 수도 개경으로 이사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회문산을 찾아가자 안개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칼날 같은 능선에 나옹이 점지한 ‘자리’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불법에 대한 신심이 깊은 데다 나옹을 존경하고 있던 군서는 그 자리에 부친 황균비(黃均庇)를 묻었다.

그리고 스님과의 약속을 지켜 가산을 팔아 시줏돈을 봉창하고 그 자신은 가족을 이끌고 개성으로 옮겼다. 머지않아 슬하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니 이름을 희(喜)라고 지었다. 그 아이가 자라는 동안 고려는 망하고 조선이 창업하여 권력은 이성계의 5남 방원(태종)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개국 초기의 왕권 확립과 사회질서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인재를 구하던 방원의 눈에 방촌(황희의 호)이 띄었고, 이후 3대에 걸친 장수 재상의 길을 걷게 된다. 황희의 아들 수신도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내 2대에 걸친 영의정 집안이 되었다(회문산의 무덤은 황희의 증조부 황균비의 묘소이다. 대개 당대로부터 3·4대조, 즉 할아버지나 증조부모, 드물게는 고조부모의 묘소에서 강한 영향을 받는다). 이만하면 황군서의 선택과 투자는 그 값을 따지는 것조차 부질없다고 할 것이다.

선택의 소중함 알려주는 황희 정승 집안 묘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위치한 반구정. 반구정은 조선시대 황희 정승이 관직을 물러난 후 갈매기를 벗하며 지냈던 곳으로 6·25때 전소된 후 후손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사진=조선일보

중소기업을 이루어 돈을 벌자마자 학교를 설립한 어떤 이가 말하기를 “나는 장사꾼이다. 장사꾼은 이익이 남는 곳에 투자한다.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기르면 그 아이들 중에서 에디슨 같은 놈이 한 놈만 나와도 이 나라 전체를 먹여살릴 것이니 몇 배나 남는 장사 아니냐” 했던 기억이 난다. 황군서는 나옹 스님이 점지해 준 그 자리에 부친을 묻고 개경(송도)으로 이사했다. 이사한 이후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으니 그가 역대 최고의 명상(明相)으로 꼽히는 황희이고 희의 아들이 수신이다. 2대 재상이 태어난 내력이 그와 같다. 순찬 회문산에 가 보면 나옹이 점지한 흥곡단풍형 명당 자리는 칼날 같은 비탈에 흙이 조금 붙어 있는 형국이라 당대 최고의 선승인 나옹의 법력에 대한 신뢰 없이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자리였다. 결국 황군서의 나옹에 대한 신뢰가 천하 명당을 낳았고, 천하 명당이 2대 명상을 낳았으니 ‘선택의 소중함’이 이보다 간절할 수 없다고 하겠다. 황군서의 선택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스스로 ‘장사꾼’을 자처했던 그 기업인의 선택도 큰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선택의 현실적, 정치적 장치가 선거이다. 국민들은 자기 손으로 붓 뚜껑을 눌러 뽑아 놓은 대표(국회의원)들이 여의도 의사당에서 하는 짓을 보고 환멸을 느끼지만 그게 모두 자신의 선택 결과일 뿐이니 어쩌랴. 땅의 기에 대한 안목을 가지고 명당을 선택한 사람과 그 반대의 경우 운명이 어떻게 갈라지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먼저 살펴보고 ‘선거’라는 이름의 우중정치(愚衆政治)와 풍수적인 요인을 설명하겠다. 그리고 민주정치라는 이름으로 많은 수업료를 치렀으나 파쟁이 계속되고 있는 심리와 그 근원을 살펴보기로 한다.

통일로 연변에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명당 진혈도 있고, 평범한 묘터도 있다. 그 많은 묫자리 중에서 명당에 묻혀 통일의 그날까지 기다리고 있는 분들도 있다. 물론 공원묘지와 공동묘지에도 명당이 있다. 공원묘지와 공동묘지의 경우 명당 진혈이 있으나 이를 천거해도 사람들(특히 고관이나 대기업의 임원 이사인 분들)이 쉽게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황군서가 나옹의 말을 믿지 않았을 경우처럼). 명품을 선호하는 것과 같은 심리적 현상이다. 앞에서 거명한 서성환의 부친이 영면하고 있는 통일로 연변의 선영과 거기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극명한 대비를 이룬 삼풍그룹 창업주 이준의 선영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들 두 묘지군은 각각 어떤 노력과 인연으로 명당 혹은 수맥을 만나게 된 것일까. 그리고 명당(혹은 수맥) 기운은 후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일까.

필자는 졸저 《명당에서 부자 난다》에도 관련 내용을 다뤘다. 통일로 연변의 고양군 대자리(대자동)에 있는 아모레퍼시픽(전 태평양화학)의 창업주 서성환 일가의 선영을 답사한 것은 10여 년 전의 일이었다.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을 선두에서 이끌어 온 장본인인 데다 스포츠(농구), 녹차 산업에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기에 선영의 기운이 그의 삶을 어떻게 떠받치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고인이 된 서 회장(1923~2003년)은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에서 부친 서대근(1890~1978)과 모친 윤득정(1891~1959) 사이에서 3남3녀 중 차남으로 탄생하여 식민지 청년의 꽉 막힌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개성으로 나간다. 개성에서 그가 보고 배운 것은 어머니 윤득정 여사의 도전정신이었다. 뒷날 서 회장이 어느 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기업의 모태는 나의 어머니였다”고 밝힐 정도로 모친 윤 여사는 서 회장이 본받고 싶어한 스승이자 하늘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1959년 타계하자 서 회장은 학문에 깊이가 있었던 풍수지리학자에게 통일로 연변의 명당 자리를 점지해 줄 것을 부탁했다.

창사 이래 최고 호황 ‘아모레퍼시픽’

정작 통일이 올 경우 이 사람들이 선영을 통째로 파헤쳐 고향인 황해도로 옮겨 갈 것인지 그것까지는 필자가 알지 못한다. 다만 묘지나 가옥을 수리, 이전을 할 경우에는 처음 묘지를 조성할 때와 마찬가지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부모가 타계하자 자연스럽게 태평양그룹의 선영이 조성됐다. 묘비명 아래에서 바라보면 좌청룡 우백호가 수려하고 안산이 이중 삼중으로 에워싸는 데다 생기가 뚜렷하니 명국이요, 진혈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서대근의 묘소는 명당 진혈이 분명한데 서 회장 자신은 지척에 진혈을 두고도 이를 쓰지 못했다. 서 회장이 하늘처럼 우러렀던 모친 윤득정 여사의 신후지도 안타깝게도 생기처는 아니다.

아모레퍼시픽(전 태평양화학)은 지금 창사 이래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다. NH증권이 조사하여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달 이 회사의 매출액은 1조원 대를 넘어섰고, 증가폭도 작년 동기 대비 20.5%라는 기적 같은 수치를 기록하여 나라경제 전체가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작금 상장한 주식의 시가총액이 24조원을 기록, 지난 한 해 동안 전체 순위가 17위에서 6위로 ‘광폭 증대’했다. 그 원인은 한류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동양인의 아름다움을 세계적인 보편 가치로 부상토록 하겠다는 창업주 서성환 회장의 오랜 꿈이 실현될지도 모르는 문턱에 와 있는 셈이다. 그 때문에 아모레퍼시픽의 주식은 우량주를 넘어 삼성전자주를 제치고 황제주라고 불릴 정도가 되었다. 이는 중국 요우커(遊客)들이 관광차 한국에 몰려와 한국 상품 중 화장품을 대표적 타깃으로 삼기 때문인 사실과 무관하지 않아 정치 및 경제의 체제가 다른 중국과의 정치적 풍향에 따라 변할 수 있는 현상이므로 경영자(서경배 사장)가 특히 경계할 일이다.

선택과 집중의 전략적 차원에서 보면 아모레퍼시픽이 선택해야 할 공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 그 어렵던 시기에 개성의 지남산 자락에 있는 기름시장에서 1평 남짓한 부엌에서 동백기름을 만들어 팔던 때부터 사실상 태평양화학의 선택은 끝난 상태였다. 해방되자마자(1945년 9월) 회사를 설립하여 동양인의 아름다움을 개발하겠다는 당찬 목표를 세우고 한 우물을 파는 집중력을 보였기 때문에 이런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것이지 대자리의 선영에서 음기의 가호를 받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니 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계 경제의 흐름에 유의하여 한국인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전도사의 역할을 다해 주기를 기대한다.

死龍 논란 ‘삼풍그룹’ 조상 묘소

처참하게 붕괴되어 변해 버린 삼풍백화점. 1995년 6월 29일 서울시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 A동이 무너져 508명이 숨지고 936명이 다쳤다. 사진=조선일보

대자동에서 멀지 않은 선유동 서릿골에 전 삼풍그룹 이준 회장의 조부모와 부모 묘소를 나란히 모셔 놓은 ‘선영’이 있었다. 필자가 여기서 굳이 ‘선영이 있었다’고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까닭은 1995년 6월 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으로 삼풍그룹이 해체되고 그룹 총수 이준 회장의 선영마저 없어졌기 때문이다. 기억하겠지만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은 단일 사고로는 해방 후 최대의 인명피해를 기록한 사고로 꼽힌다(사망 502명, 실종 6명, 부상 937명, 재산 피해액 2700여억원).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인명사고가 난 것인데 문제는 건물이 붕괴되기까지의 과정이었다. 애당초 대단지 아파트의 상가 건물로 설계된 것을 백화점으로 둔갑시켜 1989년 준공할 때까지 관련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며 불법으로 용도를 변경하고, 무리한 확장공사를 거듭하여 붕괴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총체적인 부실과 부정의 온상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건물에 이상이 발견되었는데도 경영주의 욕심과 안일한 대응이 대형 참사를 부른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 사고를 인재(人災)로 파악한 사법기관이 이준 회장을 비롯하여 관련 인사 25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1970년대 초, 삼풍의 이준 회장이 서릿골에 선영을 마련하고 부모와 조부모의 묘소를 조성하면서 기업이 불같이 일어나며(당시 삼풍백화점은 매출액 기준 업계 1위였고 매장의 규모는 2위였다) 삼풍그룹이 단숨에 재계 30위 내에 들어서자 그 복의 근원이 곧 이곳 선영에 있다는 소문이 돌고 이 회장의 선영은 풍수 연구가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부화뇌동하는 세태의 일면에 지나지 않았다. 삼풍그룹 이준 회장의 선영을 점지한 풍수가는 당시 유명했던 J씨였는데 유명, 무명과 상관없이 제아무리 유능한 풍수라 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 심혈에 실패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즉 해당 선영은 누가 보아도 산의 용맥이 꿈틀거리지 않고 곧장 내리뻗은 직룡(直龍), 즉 사룡(死龍)이었다. 죽은 용은 용이 아니기에 혈이 맺힐 수 없는 형국이었다. 게다가 백호쪽이 길게 터져서 골바람이 지쳐 오고 물이 보이지 않아 재운이 있다 하더라도 한때의 부귀영화에 그칠 운세였다. 태양은 떴다가 서쪽으로 기운다. 늘 하늘에 떠 있기만 하는 태양은 없다. 인생이 그와 같고 기업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삼풍그룹 이 회장의 경우 군 출신으로 당시 권력의 핵심과 가깝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과신한 것이 가장 큰 죄과였다. 그와 더불어 파주의 선영 역시 큰 실수였다.

아모레퍼시픽의 서 회장과 삼풍그룹 이 회장 가문의 선영이 갖는 차이는 뭘까. 서 회장 선영에는 생기 넘치는 진혈(부친 서대근의 묘소)이 있었으나 이 회장의 선영은 아예 혈이 맺힐 수 없는 직룡(사룡)의 형국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선영을 조성할 당시 후손과 풍수 전문가 모두 심리적으로 부화한 상태였고, 이 같은 심리적 실수로 인해서 엄청난 참사로 이어진 것이었다.

당시 삼풍 참사는 여러 각도에서 분석되었는데, ‘한국 사회 압축성장의 그림자’였다는 분석에 필자는 동의한다. 압축성장의 어두운 그림자는 삼풍백화점의 붕괴에 그치지 아니하고, 한 해 전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를 비롯하여 근년의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같은 대형 참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국가기관(국가안전처)을 설립할 때 그 말석에 풍수지리학이 끼어들 자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풍수의 지혜도 내버리지 말고 국가경영에 원용하자는 뜻이다.

풍수와 ‘군계일학’ 발목 잡는 풍토

2015년 7월 17일 서울 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50주기 추모식. 사진=조선일보

앞서 선거는 선택의 정치적 표현이라 고 했다. 소설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에서 말하기를 “인간들은 먹을 것이 풍족하면 꼭 다툰다”고 했다. 여기서 ‘다툰다’는 말을 ‘패거리 짓는다’고 바꾸어도 될 것이다. 패거리 짓는 것은 ‘당파싸움을 일삼는다’는 말로 환언할 수 있다. 어떤 사학자가 “조선시대의 당쟁을 두고 사화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려는 무리가 있으나 사화는 사화이고 당쟁은 당쟁일 뿐 양자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고 했다. 당쟁을 사화의 연장선에서 보는 것은 일제의 한민족 비하 정책의 일환일 뿐이므로 부화뇌동해서는 안 된다는 안간힘이었다.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어느 쪽이냐 하면 베르베르의 생각과 같다. 조선 중기, 선조 대에 이르면 더 이상 사림이 떼죽음을 했던 사화는 일어나지 않고 권력을 잡은 사림 내부가 분열하여 동서로 갈라지고 남북이 분열하며 노론과 소론이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된다. 선거철을 앞둔 요즘의 정치 패거리들을 보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문득 우리나라의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李承晩)의 다음 격언이 떠오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아는 정치인이 있을까. 뜨거워져 가는 선거판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추스르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굳이 풍수지리학적인 요인을 찾자면 한반도의 산야가 도토리 키 재듯 올망졸망하여(가장 높은 산이 제주도 한라산으로 1900m 남짓이다) 큰 인물이 나오지 못하고 누군가 군계일학으로 솟아오르면 주변에서 서로 끌어내리기에 사력을 다하는 한심한 풍토라는 지적이 있다. 그나마 산야에 지천인 명당 진혈을 통해 인재를 배출하고 양성해야 함에도 이런 귀중한 지혜를 미신으로 치부하여 뒷방으로 밀어 넣으면서 스스로 ‘과학적’이며 ‘현대적’이라고 착각하는 세태다.

우남(雩南)의 격언은 동판(銅版)에 새겨 필자의 책상 일각에 서 있다. 범상치 않은 우남의 운필(運筆)과 함께 그 뜻을 새삼 음미하게 되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