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明堂〈3〉 풍수로 본 국운은 밝다 : 월간조선

“해동 육룡(六龍)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첫 절이다. 요즘 이 구절에서 제목을 딴 TV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TV드라마에서 역사물, 흔히 말하는 사극(史劇)은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요소인가 보다. 〈정도전〉〈장영실〉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던 인물의 실명(實名)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유명한 옛 시가의 1절을 따서 제목으로 쓰는 드라마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역사 드라마는 과거 〈용의 눈물〉 등에서 볼 수 있는 궁중 야사(野史)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대권을 둘러싼 궁중의 음모와 여인들이 벌이는 치정의 역사가 볼 만했다. 주로 조선시대의 궁중 비사(史)들이었다. 이런 얘기를 다 파먹자 이번에는 고려시대로 관심 영역을 옮기고 삼국시대까지 확대하더니 여기에 식상하자 〈정도전〉 유의 이념 사극이 등장했다. 필자는 우리나라 역사 드라마의 관심 영역이 궁중 비사에서 이념 갈등으로 옮아간 것을 제2세대 사극 드라마로 분류한다.

그렇다면 제3세대 역사 드라마는 어떤 모습일까? 모르긴 하지만 비로소 ‘인간’이 등장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 드라마를 통해 배운 것도 많았고 재미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드라마에 궁중의 음모는 있었으나 ‘인간’은 없었다. 피가 흐르는 서민의 삶은 철저하게 외면당했고 그들의 꿈과 사랑도 지금까지는 잊힌 존재였으나 앞으로 제3세대 역사 드라마에서는 당당하게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 사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풍수지리 담론도 다시 우리네 삶의 가운데로 돌아와 주기를 바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풍수지리학은 옛날 과거시험의 한 과목(별과)이었고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는 풍수지리학의 지혜를 원용하는 것이 필수였다. 봉건 왕조시대는 엄격한 신분사회였다. 공자도 상지(上智)와 하우(下愚)는 하늘이 정해 준 것이기 때문에 뒤섞일 수 없다고 했다.

명당이 명당을 낳는다

대구시 동구 지묘동의 왕산 아래 신숭겸 장군 유적지와 왕산 전경. 사진=조선일보

신분사회의 벽을 허물고 하우인 민(民)이 상지인 군자(양반)로 격상하는 길은 조상의 음덕에 기대는 길밖에 없었다. 그 시대의 풍수지리학은 서민들의 희망이었고, 근면과 모색을 권장하는 미덕이었다. 왕이나 고위 관료들에게는 그들의 신분을 지키고 향유(享有)하게 하는 도구이기도 했으나, 종의 신분을 가진 청년이 참판댁 규수(閨秀)와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라 조상의 음덕 때문이었으며 조상의 신후지를 편안케 해 주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강원도 춘천의 의암호 호반(湖畔)에는 후삼국의 쟁패전에서 격전에 앞장서기를 마다하지 않고 고려 건국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신숭겸(申崇謙)의 묘소가 있다. 강 건너 춘천의 진산(鎭山)인 봉의산(鳳儀山)을 건너다보고 있다. ‘봉황이 나래를 편 형상’이라 하여 봉의산으로 명명한 이 산이 장절공(신숭겸의 시호) 묘소의 안산이라는 데에는 필자도 동의한다. 그러나 ‘묘소와 안산의 거리가 멀어 이 묘소의 명당 기운이 오래 지속된다’는 일부 주장은 일리가 있으나 여기에 추가하고 보완할 필요를 느낀다. 임금이나 유명 장수 등 생전의 원력이 컸던 사람이 죽어서 명당에 들 경우 그 기운이 수백, 수천 년에 걸쳐 효력을 드러낸다는 것은 사실이고, 안산이 명당 기운의 효력을 좌우한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하나 더한다면 필자의 경험상 ‘명당은 명당을 낳는다’는 것이다.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신숭겸의 묘소에 대제(大祭)를 지낼 때 보면 평산 신씨 후손들 수백 명이 운집하여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데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 같은 가문의 번영이 비단 이 묘소 때문만은 아니고 신씨 문중의 명당 묘소가 전국에 산재하여 이 가문의 번영을 낳은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전국에 평산 신씨의 명당이 많이 있게 된 근본 이유가 곧 신숭겸의 장절공 묘소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장절공이 이 명당에 드는 바람에 후손들도 무수한 명당에 들 수 있었다는 말이다. ‘명당이 명당을 낳는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사례라 할 것이다.

신숭겸 묘소의 비밀

장절공 신숭겸의 묘소는 3기로 되어 있어 어느 것이 장절공의 진짜 묘소인지 모르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 안에 있는 묘소들 중 독특한 양식으로 유명하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대구 근교의 공산(팔공산)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대에 포위되어 위기에 처하자 신숭겸이 자청하여 왕건의 황금빛 전포와 투구를 쓰고 전투를 지휘하다 적(후백제의 견훤)에게 사로잡혀 목이 잘린 시체로 돌아오자, 왕건이 이를 슬퍼하여 자신의 신후지로 정해 둔 춘천 호반에 묘소를 마련해 주었다. 왕건은 장례를 준비하면서 신숭겸의 잘려 나간 목 대신에 황금으로 두상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이 황금 두상이 문제였다. 시신에 황금으로 만든 두상을 붙여 장사를 지내자니 도굴이 염려되는지라 도굴을 막기 위하여 똑같은 무덤 3기를 조성했다고 한다. 이집트의 파라오들 무덤이 밀집해 있는 ‘왕가의 계곡’에 가 보면 도굴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3기의 장절공 묘소가 도굴 방지를 위한 소박한 ‘한국적 방법’이었던 것 같아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육룡이 나르샤〉의 여섯 왕 무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사진=SBS 홈페이지 캡처

나라가 망하려면 집권 세력에 위한 부귀의 독식 현상이 일어난다. 고려 말기에 이르면 권문세가(權門勢家)의 전횡이 극에 달하여 민초들의 삶이 피폐해졌다. 여기에 신흥 무신으로 등장한 이성계(李成桂)와 성리학적 이상사회를 건설코자 꿈꾸었던 정도전(鄭道傳), 그리고 권력 의지가 남달랐던 이성계의 5남 방원(정안대군, 태종)의 3자가 연출하는 꿈과 음모가 날줄과 씨줄로 얽히면서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용비어천가〉는 세종이 한글을 창제, 반포한 후 거의 같은 시기에 정인지 등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만들게 한 가사문학의 백미다. 여기서 말하는 육룡, 즉 여섯 마리의 용은 세종 임금의 위로 6대에 이르는 조상을 일컫는다. 세종의 아버지 태종(방원)과 태종의 아버지 태조(이성계), 그리고 조선 창업주를 낳은 환조(桓祖), 그 위로 도조(度祖), 익조(翼祖), 목조(穆祖) 등이다. 이들 6대의 선조들은 후손을 잘 둔 공으로 모두 임금의 사후 호칭인 조(祖)를 붙여 부르고 그들의 무덤 또한 능(綾)으로 높여 부르지만 그 이전 7대 조상부터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름을 부르고 능묘의 호칭도 묘(墓)라고 부르고 있다. 예를 들어 전주 이씨의 개조인 제1대조의 무덤(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가지산)은 조경묘(肇慶廟)라 하고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있는 7대조 이양무(李陽茂)의 무덤은 준경묘(濬慶墓)로 차별하여 부르고 있다. 이 중 시조인 1세의 무덤은 전주에 있으나 이양무의 무덤은 삼척시에, 그리고 그 이후의 조상들은 함경남도 안변(익조), 흥남(도조), 한양(환조) 등 서울과 강원도, 함경도 등에 흩어져 있다.

명당이 아닌 왕릉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사진=문화재청

오늘날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은 옛날 한양부(漢陽府)와 겹치는 땅이다. 조선조의 수도였기 때문에 당연히 수도권 일대에는 조선 시대 왕릉 50여 기가 있다. 개성 주변에 고려 왕릉이, 평양 주변에 고구려 왕릉, 공주와 부여 일대에 백제 왕릉, 그리고 경주 일대에 신라 왕릉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필자는 수도권에 산재한 조선시대의 왕릉 대부분을 답사해 보았으나 안타깝게도 일부 왕릉이나 왕비의 무덤을 제외한 능묘 대부분이 일반적인 추측과 달리 명당이 아니었다. 형국(形局)으로 보아 명당이 틀림없는데 지척에 진혈을 두고도 수맥에 안장한 경우도 많았다. 옛 풍수들이 형국을 보는 안목은 갖추었으나 생기처(生氣處)를 찾는 능력은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보인다.

그렇다면 500년 왕조를 창업한 기운은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의 이런 궁금증은 강원도 삼척의 깊은 산골에서 비로소 풀렸다. 전주 이씨 시조로부터 7세손인 이양무(李陽茂)의 묘소, 준경묘(濬慶墓)에서 강한 생기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금강송(金剛松)이 하늘을 가리고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숲속에 들어앉은 준경묘는 이웃하는 영경묘(永慶墓·李陽茂의 부인 李氏의 무덤)와 함께 강렬한 생기를 발산하는 명당 진혈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차발복(之次發福)의 한계가 있었고, 그 때문에 조선조 500년간 28위의 왕이 있었으나 그중 드물게 보는 몇 사람을 제외하면 전부 장남 승계라는 공자 이래 유가(儒家)의 이상이었던 극기복례(克己復禮·자기 욕심을 버리고 예의범절을 따름)를 실현하지 못하였다. 더불어 조선 개국 당시부터 군주(이성계와 이방원)와 신하(정도전, 정몽주 등)의 이념갈등과 권력다툼이 끊이지 않아 전체적으로 군약신강(君弱臣强)의 형세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준경묘는 이처럼 조선 창업의 기운을 후손들에게 입히는 생기처였으나 동시에 이 왕조의 한계와 특징을 스스로 간직하고 있는 무덤이었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명당이 명당을 낳는다’는 경험칙에 견주어 세종의 7대조인 삼척의 준경묘는 필시 그 후손들로 하여금 명당 진혈에 들게 하는 생기를 발산하고 있었으므로 익조(翼祖)와 도조(度祖)의 능이 있는 함경남도 안변군 서곡면 능리와 흥남시 운룡리의 의능(議能)을 확인하고 싶으나(명당 진혈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통일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북한의 김씨 일가는 저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단군 조선과 고구려의 유적 발굴 및 보존에 열심이어서 동명성왕릉(東明聖王陵)을 개발해 놓았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사상 처음 평양을 방문할 때 수행한 시인 한 사람이 그 무덤 앞에 부복하여 헌시(獻詩)를 낭독하기도 했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북한 정권이 ‘해동 6릉’의 무덤도 잘 보존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북한 정권은 풍수를 정권유지에 잘 활용하고 있다. 개성의 만월대도 잘 보존해 두고 있다고 북의 정권이 자랑을 일삼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함흥과 흥남 그리고 함경남도 일대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전주 이씨 문중의 묘소들도 비록 저들이 주장하는 주체철학과 권력의 정체성과 관련 없더라도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북한 김씨 일가와 관련한 작은 소동

북한 김씨 일가 정권과 관련하여 최근 대한민국 땅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 한 가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전라북도 전주시 모악산 기슭에는 북한 정권의 창업주인 김일성의 32대조이자 전주 김씨의 시조인 김태서의 무덤이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이 무덤 가까이 가는 것도 금기시되었던 곳이다. 북에서 내려온 전주 김씨 후예들이 조상 무덤에 성묘라도 한답시고 방문했다가는 그 주변을 지키고 있던 ‘검은 안경 쓴 남자’들에게 잡혀가 간첩 누명을 쓴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이 무덤의 후손 중 한 사람(김정은)이 3대에 걸쳐 권력승계에 성공하고, 무소불위의 군력을 휘두르자 “6·25 때 북한군이 전주는 포격하지 않았다. 조상 무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시중에 나돌더니 최근에는 전주의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일어나도 북한군이 전주는 포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전주 김씨의 시조인 김태서의 묘지는 신라 시대 경주 김씨처럼 명당이 아니라 평범한 곳이다. 대한민국 일부에서는 안타깝게도 “김태서의 무덤이 천하명당이라 북한의 김씨 일가가 3대에 걸쳐 제왕 노릇을 하는 것”이라는 엉터리 주장이 떠돌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김씨 일가의 권력이 나오는 풍수적 요인은 북한에 있는 다른 묘소들 덕분이라 짐작하지만 이것 역시 확인할 길은 없다.

‘논두렁 정기’와 20대 총선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이 청와대 주인이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청와대의 주인은 청와대 앞 잔디밭에 앉아 출입기자들과 얘기를 나눴다. 이날 주제를 요약하자면 한마디로 “국회의원이 되려 해도 논두렁 정기는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풀어 보면 “국회의원도 논두렁 정기를 타고나야 하는데 대통령을 아무나 하는 줄 아느냐. 하고 싶다고 아무나 오르는 자리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이분이 정말 ‘논두렁 정기’를 타고났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필자는 경남 합천(陜川)의 황강 옆에 있는 전씨의 생가 및 선영을 살펴보았다. 황강의 물굽이를 내려다보는 산등성이에 있는 그의 부모 묘소는 현직 대통령의 선영답게 잘 정돈되어 있었으나 필자는 안타깝게도 생기처를 찾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부모 묘소의 청룡이 역(逆)의 형세를 보여 꺼림칙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감옥에 가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재앙을 겪었다. 다만 부모 묘소에서 얼마간 떨어진 산등성이의 4대조 묘소에는 강한 생기가 나왔다. 이것이 평범한(?) 군인을 청와대의 주인으로 밀어올린 힘의 원천으로 보인다. 이 묘소는 드물게도 구들장을 봉분으로 두른 독특한 양식이다. 연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모 묘소의 청룡이 역(逆)으로 치받는 데다 묘소에서 바라보이는 황강의 물줄기가 빠져나가는 형세 등으로 미루어 수난이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해 준다.

갑자기 ‘논두렁 정기’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흔히 ‘정치는 생물’이라고들 한다. ‘생물’이란 ‘살아 있는 존재’를 일컫는데 무릇 살아 숨 쉬는 것은 어디로 튈지 불가예측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사주 관상을 보는 등 명리학(命理學)에 기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심정으로 풍수지리학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도 있으나 이는 옳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 둔다. 궁극적으로 국가 민족을 위해 공헌하지 않고 개인의 출세나 발복에 초점을 둔 어떤 행위도 3대를 넘어 지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칙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고마운 이유

필자는 풍수지리학이라는 관심 영역과 관련하여 나라 안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 대륙과 나라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 결과 내린 결론은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고맙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사는 누구나 조금씩 지니고 있는 향토애와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하는 말이 아니라 냉정하게 보아도 그렇다. 이런 느낌은 해외 어느 나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맨 먼저 S그룹의 카트를 발견하고 울컥했던 느낌이나 올림픽 시상식장에 걸린 대형 태극기를 볼 때의 감동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형은 80%가 산악이다. 어느 해 대통령이 유럽을 순방하는 길에 알프스 산록의 목장을 보고 감동하여 “우리도 산이 많은데 그 산을 개발하여 목초지를 조성하고 낙농업(酪農業)을 일으키자”고 제안하자 수행했던 일부 기업인들이 국내의 하부조직에 명하여 초지조성용 산지 매입에 나서는 등 소동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북한의 ‘영원한 지도자’인 김일성은 몇 걸음 더 나아갔다. 그가 재일동포 학자의 건의를 받아들여 산에서 나무를 베어 목재로 쓰고 개간하여 다락밭을 만들고 경지(耕地)를 확대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매년 홍수가 나고 다락밭의 생산물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등 많은 부작용도 낳았다. 결과는 참담하다. 우주선이 촬영하여 보내 온 사진을 보면 한반도의 남쪽은 검푸른 색깔인데 반하여 북쪽은 벌거벗은 산천 그대로의 황토색이다. 밤이 되면 남쪽은 불야성을 이루나 북쪽은 평양 일부를 제외하고는 깜깜한 암흑천지가 된다. 우리는 안다. 이 단순한 그림이 무엇을 상징하는가를. 1990년대 남북회담에 참석하는 남쪽 대표들을 북한 당국이 무슨 마음으로 개성에서 평양까지 ‘특급열차’로 이동시킨 일이 있었다. 말이 특급열차이지 속도는 무척 느렸다. 차창 밖으로 헐벗은 산천에 눈을 주고 있던 일행 중 한 사람이 북에서 파견 나온 안내원에게 물었다.

“산에 나무가 없군요?”

안내원이 어딘가로 갔다가 오더니 대답해 주었다.

“조국 해방전쟁 때 미국 놈들의 폭격으로 저렇게 되었습네다.”

이 나라에서는 지도자의 잘못으로 인한 실정의 책임도 미국에 떠넘기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80%가 산야지만 그 산들은 단단한 화강암(花崗巖)으로 대부분 연결되어 있다. 흔히 백두대간이라는 말로 통칭하는 우리나라의 용맥은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낭림산맥과 태백산맥을 타고 흐르다가 소백산맥으로 갈라져 지리산에 이르고 바다 건너 한라산에서 멈춘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첩첩한 산의 허리에 붙어 인간들이 개미처럼 도로도 내고 집도 지어 살고 있는 것 같으나 풍수의 눈으로 보면 산야의 곳곳이 명당이고 진혈이다. 비록 석유가 쏟아지지는 않는 자원빈국(資源貧國)이지만 석유보다 귀한 인재가 쏟아져 나올 터전을 갖추었다. 필자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실을 두고 “고맙다”고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명당 중의 명당으로 알려진 ‘국중 4대지’(남한에 3개소, 북한에 1개소)가 아직도 비어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인재 배출의 토양에 대해 무심하다.

풍수로 관광상품 개발도 가능

무심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나라 전체의 용맥(龍脈)이 뒤척이며 흘러가다가 마침내 남해 바다에서 길게 이어져 온 숨을 고르는데 그 언저리에 다도해의 그림 같은 풍광을 빚어 놓았다. 지금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용맥이 빚어 놓은 마지막 작품인 제주도의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나 필자가 보기에 한려수도의 풍광은 제주도의 10배를 능가하고 나폴리 등 세계적인 관광지와 견주어도 월등하다. 이미 부산과 거제섬이 육교로 연결되었고, 전남 해안의 주요 도서(島嶼)에 연육교(連陸橋)가 놓여 육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기본 인프라가 갖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천혜의 보배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관광대국으로 발돋움하지 못하고 상품 만들어 수출하느라 진땀만 흘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4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의 날씨도 훌륭한 상품이 될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세계적인 관광대국으로 흔히 스페인과 로마를 꼽는다. 두 나라 모두 로마시대의 유적, 즉 과거를 상품화하여 팔아먹고 있다. 한국은 수려한 자연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도록 도와주는 상품을 개발하여 세계인들에게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다가 자연의 힘을 빌려 쓰는 풍수지리학의 지혜를 결합시키면 더욱 좋은 관광 상품이 될 것이다.

통일은 대박인가?

“통일은 대박”이라고 대통령이 말하자 그게 옳으니 틀린 말이라느니 말들이 많지만 통일은 우리에게 큰 ‘기회’가 될 것이다. 대통령의 진의도 거기에 있을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통일 한국의 국토 이용 계획을 세우느라 골머리를 앓는 부처나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자연은 인간 생명의 어머니다. 인간 자체도 자연의 일부다. 대지에 씨앗이 떨어지듯 인간 생명의 씨앗이 떨어져 자라는 토양을 비옥하게 가꾸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지난번 필자가 밝힌 바와 같이 지금은 곤도(坤道·땅의 기운)의 시대이다. 곤도의 시대는 물이 서북간으로 빠지는 어간의 땅에 운이 온다. 한강이 바로 서북간으로 흐르는 대표적인 하천이다. 거기에 통일이라는 민족 최대의 축제가 기다리고 있다. 통일을 축제와 기회로 만들지 못하면 그것은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 이처럼 길(吉)과 흉(凶)은 인간사를 비롯한 사물의 안팎과 같으니 길흉은 동일한 사물의 속성일 뿐이다.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색(色)과 공(空), 승(僧)과 속(俗), 동(動)과 정(靜), 체(體)와 용(用)처럼 비유비무(非有非無), 쌍차쌍조(雙遮雙照)의 경지가 바로 그와 같다고 하겠다.

이 땅에 운(運)이 오고 있다. 그러나 운을 끌고 앉아 낮잠을 자는 민족에게는 운이 오든지 가든지 다를 것이 없다. 이 땅을 비옥하게 하고 문화를 살찌우는 것은 인재이다. 원유(原油)나 철광석(鐵鑛石)이 나오는 것보다 인재가 더 유용하고 소중하다.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자연이다.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촉발하는 것이 풍수지리학이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넘보아 남의 문화, 문명을 부러워하거나 질시할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충분히 활용하자는 것뿐이다. 그래야만 오고 있는 운을 물처럼 흘려보내지 않게 될 것이다.

서울이 명당이다

600년 古都 서울의 심장 광화문. 사진=조선일보

한강물이 서북간으로 빠지고 그 내부에서 청계천이 서출동류하여 태극문양을 그리니 그 사이에 많은 명당 진혈을 빚은 서울(옛 이름 한양)을 안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운이 오고 있다. 한강의 흐름을 따라 서북간으로 가다 보면 난지도(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상암동)를 만난다. 소설가 이정환이 피를 토하며 쓴 소설 《샛강》을 읽어 보면 서울의 쓰레기 하치장인 난지도에서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물어린 이야기가 펼쳐진다. 상전벽해라 했던가. 쓰레기를 쌓아 만든 인공의 땅 상암동에 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서고 ‘하늘공원’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공원이 생겼다. 봄에는 봄꽃, 가을에는 우거진 억새가 도시인들의 스트레스를 풀어 준다. 《샛강》의 작가가 환생한다면 길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니 어디서 그의 눈물과 슬픔이 맺힌 자국을 찾을 것인가. 바로 그 상암동 일대에 40여 채의 빌딩이 들어서서 ‘서울 속의 서울’을 만들고 있다. IT업체와 주요 언론사들이 다투어 입주하여 ‘상암동 시대’를 구가하니 방송에 출연하는 기자와 연예인들이 난지도의 옛일을 모른다고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서울의 운기는 식어 가던 용광로에 새로 불씨를 살려 낸 것 같은 형상으로 타오르니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 지도자들이 이 운기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풍수지리학을 하면서도 수도 서울의 구석구석을 다 돌아보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서울의 생기처를 꼽을 때는 필자의 제한적인 경험의 세계에 국한할 수밖에 없는 정황을 양해하여 줄 것을 미리 부탁드린다. 필자는 풍수지리학을 한답시고 자신이 직접 살펴보지 않고도 문헌이나 귀동냥으로 어림잡아 하는 이야기를 경계한다.

서울의 진산(鎭山)은 북한산이다. 삼각산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산은 두 팔을 벌리듯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하다. 백호 쪽은 인왕산 자락이 뻗어내려 목멱(木覓, 남산의 옛 이름)에 이르렀고, 청룡 쪽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거쳐 낙산을 지나 한강으로 잦아든다. 청룡과 백호가 두 팔을 벌려 끌어안 듯이 사대문 안의 서울 도심이 전개된다. 생기처가 곧 명당이라는 필자의 논리에 따라 서울 시내의 확인된 명당은 창덕궁 옆의 가회동에 있는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현 정독도서관)와 거기서 가까운 안국선원, 거기서 서쪽으로 나아가 조선 건국 초기 승려 무학이 정궁(正宮) 자리로 천거했던 인왕산 아래의 청운동 현대건설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이 살던 집, 그리고 청운동에서 산자락에 이어진 신교동의 이범석(국무총리)과 허정(내각수반)이 살던 집, 신문로의 쌍용그룹 창업주 성곡이 살던 집(이 집은 후에 여러 조각을 내어 일부는 갤러리로 사용했으나 생기를 끝내 살리지 못했다)에 생기가 있었다.

신문로에서 길 건너 정동 서소문으로 이어지는 맥은 남산을 향하여 역(逆)으로 치받은 형상이어서 기업이나 관공서 또는 교육기관에 권유할 땅이 아니다. 다만 그 안쪽으로 남산 밑에 있는 동국대학의 본관 앞 탑 자리와 장충동의 오래된 제과점 태극당, 그리고 그 부근에 있는 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박정희 소장) 집무실 자리에 생기가 있었다. 그러나 소문과 달리 신당동의 박정희, 김종필 등이 살았거나 현재도 살고 있는 집에서는 생기를 찾지 못하였다. 거기서 지척의 거리에 호암 이병철이 삼성그룹을 세계 최강의 기업으로 올려놓은 집과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R씨가 잠시 머물던 집이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청계천을 건너면 동대문 근처에 숨겨진 서울의 독산(獨山)이 나타나고 거기서 청룡맥을 따라 이화동으로 가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머물던 이화장(梨花莊)의 조각당과 그 건너편 서울대학병원장 집무실에서 각각 강렬한 생기를 찾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창경궁의 후원, 서울의 진산에서 흘러온 용맥이 빚어 놓은 최대의 혈처인 그 자리를 만난다. 조선조 최고의 개혁군주였던 성종(成宗)이 태어나 자라던 곳,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불귀의 객의 된 그 자리, 부인 혜경궁 홍씨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언문일기를 썼던 바로 그 자리에 청와대를 옮겨 온다면 우리의 국력이 더욱 강대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지도자들이 자신의 안온과 패거리의 권력유지에 앞서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땅이 되지 않을까, 헛된 소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언급한 지역은 거의 대부분이 4대문 안에 있는, 즉 청룡과 백호가 감싸고 있는 곳이다. 서울은 그 밖으로 무섭게 팽창하고 있다. 123층의 랜드마크가 올라가고 있는 잠실과 강남 3구, 그리고 사대문 안 중심에 있는 한국은행 부근, 롯데호텔 및 백화점, 천주교 성당, 명보극장 근처 이순신 생가 터 등 무수히 좋은 자리가 많으나 이를 제대로 이용 못함이 아쉽다. 분당과 일산 등 신도시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 지역의 생기처를 완벽한 정도로 답사한 후에 다시 정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