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7〉 : 월간조선

홍군은 원정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紅軍不怕遠征難)
숱한 물과 산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네(萬水千山隻等閑)
솟은 다섯 봉우리는 파도가 물결치는 듯하고(五嶺逶迤騰細浪)
우멍산에서 떨어지는 돌은 진흙 탄환을 쏘는 듯하네(烏蒙磅礴走泥丸)
진샤강 물은 구름이 낀 절벽을 어루만지고(金沙水拍雲崖暖)
다두차오에 가로놓인 철줄 다리가 차구나(大渡橋横鐵索寒)
민산 천리길에 내리는 눈에 더욱 기뻐서(更喜岷山千裡雪)
삼군이 행군한 뒤 모두 희색이 만연하네(三軍過後尽開顔)

1935년 말 마오쩌둥(毛澤東)은 험난했던 대장정의 여정을 회고하며 ‘장정(長征)’을 지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우멍산은 구이저우(貴州)성에서 가장 높은 해발 2900m다. 진샤강은 양쯔강의 상류 구간이다. 평균 해발 3000m 이상인 칭짱(靑藏)고원에서 발원해 칭하이(靑海)·쓰촨(四川)·윈난(雲南)의 고산지대를 거쳐 다시 쓰촨으로 흘러가 양쯔강이 된다.

다두차오는 홍군이 쓰촨의 다두허(大渡河)에서 도강작전을 벌였던 루딩차오(瀘定橋)를 가리킨다. 민산은 쓰촨 서북부 아바(阿壩)티베트자치주에 있는 산맥이다. 마오는 이 시를 통해 홍군이 중국 극지를 두루 지나 장정을 완수했음을 만방에 알리고 싶었다. 이런 연유 때문에 ‘장정’을 훗날 사회주의 정권 수립에 성공한 뒤 중등과정 교과서에 실었다. 뿐만 아니라 장정과 관련한 모든 기록물·문예작품에서 반드시 인용했고, 같은 이름의 노래까지 나왔다.

공산당과 홍군 주력부대는 1934년 10월 16일 밤 장시(江西)성 위두(于都)현을 떠났다. 총연장 2만5000리를 행군해 1935년 10월 19일 산시(陝西)성 우치(吳起)현에 도착했다. 장정 기간 동안 홍군은 11개 성에 진주했고 700여 개의 시·현을 거쳤다. 18개 고산을 넘었으며 24개 강을 건넜다. 고산 중 5개는 해발 4000m에 달하는 설산(雪山)이었다. 또한 인적 없는 고지대 초원도 가로질렀다. 장정 중 235일은 주간 행군이었고 18일은 야간 행군만 했다. 나머지 115일은 싸우거나 쉬었다.

휴식 기간 중 56일은 쓰촨성 쑹판(松潘)에 머물렀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앙군과 장궈타오(張國燾)가 이끄는 제4방면군 사이 노선다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나 예기치 않은 정치투쟁에 발이 묶였을 뿐이었다. 장정 기간 중 국민당군과 380여 차례의 전투를 벌였다. 이 중 15일은 행군이나 휴식 없이 하루종일 전투만 했다. 따라서 행군만 한 날짜를 계산하면 홍군은 하루 평균 무려 40km를 걸었다. 하루에 1번꼴로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던 점을 감안하면, 정말이지 초인적인 강행군이었다.

《중국의 붉은 별》은 중국공산당 기획

옌안에 입성하는 공산당과 홍군 지도자들을 묘사한 청동상.

이런 여정 때문에 장시를 출발했던 공산당과 홍군 8만6000명 중 3000명만 산시에 도착했다. 서른 명 중 한 명만 살아남아 최종 목적지에 다다른 것이다. 여기에 장정 도중 보충한 병력 중 5000까지 모두 8000명이 산시 땅을 밟았다. 도중에 얼마나 많은 병사가 탈주했고 보충됐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질 않다. 장정 중 사망한 당·군 간부는 430명에 달했다. 그들의 평균 연령은 30세가 조금 못 됐다. 368일의 장정은 그야말로 살아남은 것이 행운이었던 고난의 행군이었다.

장정은 공산당과 홍군이 우치현에 도착함으로써 끝났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우치에 머물렀던 기간은 길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바오안(保安)으로 거처를 옮겼다. 1936년 7월 시안(西安)에서 바오안으로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미국의 진보적인 저널리스트 에드가 스노였다. 이 푸른 눈의 젊은이는 국민당군의 포위를 뚫고 홍군의 심장에 숨어들어 갔다. 3개월여 동안 바오안에 머물면서 마오쩌둥을 위시한 공산당 및 홍군 지도자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스노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이듬해 영국에서 책으로 출간했다. 바로 《중국의 붉은 별》이다. 《중국의 붉은 별》은 세계 3대 르포 문학으로 꼽힌다. 다른 두 개는 1917년 10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기록한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10일》, 《1984년》《동물농장》의 작가인 조지 오웰이 스페인 사회주의 의용군에 들어가 프랑코의 파시즘에 맞서 싸웠던 경험을 정리한 《카탈로니아 찬가》다. 다만 스노의 바오안행은 철저히 공산당이 기획한 취재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공산당의 운명을 바꾼 바오안

양자링에 보존되어 있는 저우언라이 부부가 묵었던 야오둥.

어쨌든 《중국의 붉은 별》이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당장 중국과 전 세계에서 수많은 공산당 추종자가 생겨났다. 책에서 묘사한 홍군 지도자들의 영웅담과 장정의 숨 막히는 스토리가 너무나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스노가 바오안을 떠난 두 달 뒤인 12월에는 시안사변이 일어났다. 공산당 토벌을 독려코자 난징(南京)에서 온 장제스(蔣介石)를 동북군 사령관 장쉐량(張學良)과 서북군 사령관 양후청(楊虎城)이 감금해 버린 것이다. 이 사건으로 내전은 중지됐고 2차 국공(國共)합작이 시작됐다.

본래 공산당이 산시에 도착했을 때 앞날은 불투명했다. 그러나 바오안에서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1937년 1월에는 혁명 근거지를 옌안(延安)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옌안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공내전이 격화되는 1947년까지 홍색 수도로 명성을 떨쳤다. 공산당은 옌안에서도 거처를 여러 차례 옮겼다. 그중 양자링(楊家嶺)에서 1938년 11월부터 9년간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다. 현재 양자링에는 마오쩌둥, 저우언라이(周恩來), 주더(朱德) 등이 묵었던 야오둥(窯洞)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야오둥은 중국 황토고원(黃土高原)에만 있는 독특한 주거시설이다. 황토고원은 산시(陝西), 허난(河南), 산시(山西), 간쑤(甘肅), 닝샤(宁夏) 등지에 분포한 해발 1000~2000m의 진흙지대다. 수십만 년 전에는 수풀이 우거졌지만, 시간이 흘러 메마른 땅으로 변해버렸다. 여기에 사막지대에서 불어온 모래가 황허(黃河)와 빗물에 뒤섞여 단단한 진흙층을 형성했다. 고대 시가를 모은 《시경(詩經)》에 야오둥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주민들이 굴을 파서 집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옌안혁명기념관에 전시된 야오둥 안에서 일하는 마오쩌둥을 묘사한 소상(塑像).

처음에는 계곡이나 산 밑에 구멍을 내어 모래를 퍼낸 뒤 물에 적신 황토를 발라 지었다. 이때 천장 격인 야오딩(窯頂)을 아치형으로 만들어 위에서 내리눌리는 압력을 분산시켰다. 시간이 흘러 기술이 발전했고 야오둥도 변화했다. 황토로 구운 벽돌로 외벽을 쌓은 구야오(箍窯), 돌로 쌓은 스야오(石窯) 등을 개발했다. 야오둥을 원용해 평지에 집을 짓고 지붕에 흙을 덮는 양식도 등장했다. 야오둥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기 때문이다.

이 야오둥 덕분에 공산당은 막대한 주거비를 아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력갱생(自力更生)’에 전력을 다해 당과 군을 정비했다. 마오쩌둥은 수시로 집회를 열어 당원 및 민중을 가르치고 의식화시키는 일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이렇게 쌓아간 마오의 군중 선동술은 1966년 문화대혁명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1938년에는 ‘당이 총을 지휘한다. 군이 당을 넘보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黨指揮槍, 而決不容許槍指揮党)’며 군사위원회 주석에 올라 당권과 군권을 모두 장악했다.

옌안의 공산당을 살린 延河

공산당 7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렸던 양자링 중앙대례당.

예부터 옌안은 산시 북부의 중심지였지만,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평균 해발은 1200m에 달하고 주변은 온통 황토고원이다. 비는 여름에만 집중해 내려서 봄에는 가뭄이 극심하다. 이런 자연조건 때문에 농사짓기가 어려웠다. 만약 옌안을 가로지르는 황허의 지류 옌허(延河)가 없었다면, 수만 명을 헤아렸던 공산당 대식구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 1953년 1차 인구센서스에서 옌안 주민은 9만3000명에 불과했다. 이때는 대다수 공산당원이 옌안을 떠난 뒤였다.

양자링에 있는 중앙대례당은 자력갱생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1942년 완공되어 1945년 4월 공산당 7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린 유서 깊은 장소다. 이 대회는 1928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6차 대회 이후 무려 17년 만에 개최됐다. 당시 공산당원은 121만명에 달했고 회의 참석대표는 755명이었다. 마오쩌둥은 개막연설에서 “중국은 광명의 길과 어둠의 길 두 가지에 놓여 있다. 우리는 군중을 선동해 인민의 힘을 기르고 전국의 역량을 단결시켜 광명의 신중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회 결과 공산당은 당헌에 ‘마오쩌둥 사상’을 삽입했고 ‘당조직’ 제도를 도입했다. 마오쩌둥 사상이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계승하되 중국 현실에 맞게 재창조하여 발전시킨 혁명사상을 말한다. 특히 농촌을 혁명 근거지로 삼아 유격전을 전개하고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구축해 도시를 공략하는 전술이 정식 채택됐다. 또한 모든 국가기관, 경제단체, 사회단체, 문화단체 등에 당조직을 설치토록 했다. 이를 통해 마오쩌둥 우상화와 ‘당이 곧 국가’인 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기초가 다져졌다.

옌안의 조선인들

1945년 9월 조선군정학교의 전체 구성원이 옌안에서 찍은 기념사진.

옌안에는 적지 않은 조선인이 살았다. 도심에서 북쪽으로 10여km 떨어진 뤄자핑(羅家坪)에서 조선혁명군정학교를 개교했기 때문이다. 군정학교는 조선독립동맹의 무장조직인 조선항일의용군이 세운 독립투사 양성 터전이었다. 조선독립동맹은 1941년 허베이(河北)성 타이항산(太行山)에서 처음 성립했다. 1944년 4월 조선의용군은 옌안으로 옮겨왔고, 8월 학교 부지를 마련해 12월 개교했다. 오늘날 교사(校舍)는 도로가 건설되고 철로가 놓이면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

교사 터에는 기념석이 주변 무허가 건물들 사이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하지만 대원들이 살았던 야오둥은 지금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1930년대 초 홍군 내에는 수십 명의 조선인이 가담했었다. 30여 명은 장정까지 참가했다. 대부분 도중에서 죽고 단 2명만이 완주했다. 그중 무정(武亭·본명 ‘김무정’)은 북방군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군인이었다. 1905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14세 때 3·1운동에 참여했다. 1923년 중국으로 건너간 후 국민당군 포병장교로 근무했다.

공산당에 입당한 뒤에는 펑더화이(彭德懷)의 심복으로 활약했다. 홍군에 포병전술을 보급하고 포병부대를 키운 이가 무정이었다. 장정 이후 무정은 군정학교장과 조선의용군 사령관을 겸임하면서 조국 해방을 준비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혼자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김일성의 견제로 민족보위성 부상과 제2군단장만 역임했다. 1950년 12월 김일성은 압록강 전투와 평양 사수의 실패 책임을 무정에게 뒤집어씌워 숙청했다. 심적 고통을 받아서인지 무정은 얼마 못 가 병사했다.

정율성(鄭律成)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정율성은 1933년부터 항일투쟁에 투신해 1937년 옌안에 도착했다. 1938년 ‘옌안송(頌)’ ‘팔로군(八路軍)행진곡(훗날 인민해방군가가 됨)’을 창작해 이름을 떨쳤다. 1942년 타이항산으로 가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1944년 옌안으로 돌아와 해방을 맞이했다. 비록 1947년 북한에 가서 조선인민군가를 짓기도 했지만, 1950년 중국으로 되돌아가 1976년 베이징(北京)에서 숨을 거뒀다. 이들을 위시한 ‘옌안파’는 1958년 북한에서 완전히 숙청당했다. 또한 지금까지 남북이 모두 외면하는 존재로 남아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공산당과 국민당은 1년간 담판을 벌였지만, 협상은 결국 결렬됐다. 1946년 6월 국공내전이 재발했고, 1947년 3월에 후쭝난(胡宗南) 장군이 이끄는 국민당군이 옌안을 점령했다. 하나 이는 공산당이 전략적 목표에 따라 이미 옌안을 떠났기에 가능했다. 수많은 공산당원이 “옌안 수호” “결사항전”을 외쳤지만, 마오쩌둥은 홍색 수도에서 작전상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이런 결단 덕분에 공산당은 중국 화북·동북 지방을 재빨리 장악하여 내전에서 승리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공산당은 우치현에 도착해 옌안을 떠나기까지 13년의 세월을 보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이 기간을 ‘옌안시기’라고 부른다. 옌안시 한복판에는 대장정과 옌안시기의 관련 유물, 자료, 사진 등을 모아놓은 기념관이 있다. 옌안혁명기념관은 규모가 웬만한 박물관에 필적한다. 또한 중국 최고의 공산혁명 교육센터로, 공산당원과 군인은 꼭 방문해야 하는 필수코스다. 필자가 기념관을 찾은 6월 6일에는 인민해방군 총참모부가 진행하는 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한 전군 영관급 장교들이 찾아왔다.

메이수이 술 회사의 ‘십삼춘추’

현지의 한 주류업체는 옌안시기를 모티브로 술 브랜드를 론칭했다. 2009년 메이수이(美水) 술회사가 내놓은 ‘십삼춘추(十三春秋)’가 그것이다. 여기서 ‘춘추’는 한 해, 나이 등을 의미한다. 메이수이는 1970년대 문을 연 국영 양조장이었다. 산시성에는 시펑주(西鳳酒)라는 전통 명주가 있어, 오랫동안 메이수이의 바이주(白酒)는 옌안 주민들만 마시는 저가 술로 고착됐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2005년 수당어액(隨唐御液)이라는 중고가 브랜드를 내놓았고, 다시 십삼춘추를 시장에 선보였다.

필자는 1996년 옌안을 처음 방문했고 그 뒤로 4번 더 찾았다. 2011년 옌안을 찾았을 때 여러 식당에서 수당어액을 팔고 있어 마셔봤는데, 지난 6월에는 십삼춘추 계열의 술이 훨씬 더 많았다. 실제 로컬TV의 방송이나 거리의 선간판에는 십삼춘추의 광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난해 옌안을 찾은 외지 여행객은 3150만명. 이들은 공산당 관련 유적지를 둘러보는 홍색(紅色)관광 차원에서 옌안을 찾는다. 메이수이가 광고 전략을 잘 짜 브랜드 홍보에만 성공한다면 앞으로의 전망은 밝아 보였다.

중국 술 브랜드의 시초 두강주

두강묘 앞 바이주의 원료인 수수, 밀, 옥수수 밭을 가로지르는 장훙쥔 산시두강주업 회장.

옌안에서 자동차를 이용해 남쪽으로 3시간 반을 달리면 바이수이(白水)현이다. 바이수이에는 중국에서 소송전으로 명성을 날린(?) 바이주 생산기업이 있다. 이 회사는 과거 20여 년 동안 허난의 주류업체들과 중국에서 술을 처음 빚었다는 두강(杜康)을 두고 치열한 상표권 전쟁을 벌였다. 전설에 따르면 두강은 황제(黃帝)가 통치하던 시절 양식을 관리하던 책임자였다. 농경기술이 발전하면서 수년간 풍년이 들자, 두강은 남아도는 곡식을 이용해 술을 빚기 시작했다. 또한 양조기술을 체계화해서 민간에 보급했다.

술맛을 알게 된 백성들은 그를 ‘술의 신(酒神)’이라 불렀다. 한대에 두강이 태어나고 죽은 바이수이에 두강묘(廟)가 세워졌다. 민간설화에 따르면 두 곳은 전국시대에 이미 두강의 양조법을 이용해 술을 빚었다고 한다. 따라서 ‘두강주’는 중국 술 브랜드의 시초 격이 된다. 이 때문에 조조(曹操)의 ‘단가행(短歌行)’을 비롯해 역대 시문에 숱하게 등장했다. 두보(杜甫)가 지은 ‘은거한 장씨를 찾아(題張氏隱居)’ 둘째 수에도 두강주가 나온다.

자시에 가서 서로 만나니(之子時相見)
사람을 맞이해 늦게까지 머무네(邀人晩興留)
갠 못에 물고기가 이리저리 다니고(霽潭鱣發發)
봄풀에는 사슴들이 울어댄다(春草鹿呦呦)
두강주는 권하기 바쁘고(杜酒偏勞勸)
장씨네 배나무는 밖에서 바라지 않네(張梨不外求)
앞마을 산길은 험준하나(前邨山路險)
취해서 돌아오니 근심이 없어지네(歸醉每無愁)

두강주를 둘러싼 상표권 분쟁

술의 신 두강이 서 있는 산시두강주업의 입구.

이런 두강주를 그냥 놔둘 중국인들이 아니었다. 1971년 허난성 이촨(伊川)바이주공장이 명맥이 끊겼던 두강주 양조법을 복원했다고 선수를 쳤다. 이에 질세라 이듬해 루양에서 두강주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 1973년 바이수이에서도 두강술공장(酒廠)이 문을 열었다. 세 회사가 두강과의 연고(緣故)를 내세우며 난타전을 벌이자, 중국 정부가 중재에 나섰다. 1983년 협상 결과 이촨이 먼저 등록한 ‘두강’ 상표를 루양과 바이수이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두강 앞에 자신의 지역명을 붙여 사용했던 세 회사는 2009년 이촨두강과 루양두강이 뤄양(洛陽)두강주식회사로 합병하면서 다시 전쟁에 들어갔다. 뤄양두강이 국가와 바이수이두강을 고소했던 것이다. 뤄양두강은 “두강 상표는 허난 것이지 바이수이 것이 아니다”라며 1년여간 법정 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2010년 베이징 고급인민법원은 중국 정부와 바이수이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20여 년에 걸친 상표권 분쟁은 ‘뤄양두강’과 ‘바이수이두강’이 양립하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표권 분쟁은 바이수이두강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 본래 바이수이두강은 판매망이 산시성으로 한정됐었다. 2002년 장훙쥔(張洪君·47) 회장은 국영 두강술공장을 인수한 뒤 회사 이름을 산시두강주업으로 고치고 영업망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장 회장은 “철밥통(鐵飯碗)에 길들어 나태했던 직원들의 근무태도를 고치고 진취적인 기업문화를 정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산시두강주업은 바이주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도 지난해 3억6000만 위안(약 666억원)의 판매고를 올려 전년대비 67%나 증가했다.

두강주를 들지 않더라도 중국의 양조 역사는 4000여 년이나 됐다. 중국 각지의 신석기 유적에서는 술과 관련된 유물이 출토됐다. 공자(孔子)가 주(周)대 초기부터 춘추(春秋)시대 초까지 300여 편의 시를 모은 《시경》에는 술에 관한 이런 기록이 있다. ‘여기 봄에 빚은 술로 장수를 축하하다(爲此春酒以介眉壽).’ ‘겨울에 술을 빚고 봄을 지나 숙성하니, 이것이 춘주다(冬天釀酒經春始成名爲春酒).’ 하지만 송대까지 제조된 중국 술은 황주(黃酒)나 미주(米酒)였다. 바이주는 원대부터 제조됐다.

따라서 지금의 두강주는 옛날의 두강주와 전혀 다르다. 즉 술을 양조한 전통은 수천 년간 이어왔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의 양조기술은 수백 년간 지속됐을 뿐이다. 이는 중국 내 다른 바이주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바이주는 증류주(蒸留酒)이기 때문이다. 증류주는 고량(高梁), 즉 수수를 주원료로 보리, 밀, 옥수수, 쌀 등을 더해 빚는다. 이 때문에 일부 지방에서는 바이주를 ‘고량주’라 부른다. 구이린(桂林)의 산화주(三花酒)처럼 쌀을 주원료로 제조한 바이주도 있다.

증류주는 中東에서 발생

증류법은 기원전 2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개발됐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증류원리를 탐구했고 증류장치까지 만들어 사용했다. 이 장치로 바다에 나간 선원들은 바닷물로 식수를 얻었고, 연금술사들은 향수를 만들어 팔았다. 중국에서는 한대에 원시적인 증류기술을 개발했다. 당대에는 소주(燒酒)를 제조해 마신 기록이 여러 사서에서 발견된다. 젠난춘(劍南春)의 전신인 젠난소춘(燒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중국 학자들조차 “당대 소주는 오늘날 증류주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증류법을 개발한 이는 8세기 아라비아의 연금술사 자비르 이븐 하이얀(Jabir ibn Hayyan)이다. 자비르는 예멘의 아즈드 부족 출신으로 이라크에서 활동하다가 죽었다. 아랍과 유럽에서는 근대 화학과 약학의 아버지로 추앙한다. 평소 자비르는 여과(濾過), 증류, 용해(溶解), 승화(昇華) 등의 기술을 수없이 실험했다. 이를 통해 포도를 증류시켜 얻어진 물질을 ‘알코올’이라 명명했다. 아랍어 관사인 알(al)에 속눈썹을 길고 윤기 있게 했던 숯(kuhul)을 합성한 것이다.

이 증류법이 언제 중국으로 전파됐는지는 학설이 엇갈린다. 과거에는 몽골제국이 동유럽과 서아시아를 정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에 전해졌다는 설이 우세했다.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窩鏶台)칸은 남송을 제외하고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정복을 끝낸 뒤 아라비아와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이에 바투를 파견해 러시아의 키예프공국을 무너뜨렸다. 바투는 독일과 폴란드 제후의 연합군까지 무찔렀다. 유럽 원정대의 장수였던 몽케(蒙哥)는 오고타이가 죽자 카간(大汗)에 올랐다.

몽케칸은 훌라구(旭烈兀)를 보내서 서아시아를 정복하도록 했다. 훌라구는 공포의 암살단 이스마일파를 격파하고 아라비아반도의 아바스왕조를 멸망시켰다. 시리아까지 진격해 전투를 벌이던 중 몽케칸의 부고(訃告)를 전달받았다. 이때 훌라구는 카간 승계 다툼을 단념하고 아라비아에 남아 일한국(-汗國)을 건국했다. 일한국은 몽골제국의 종주권을 존중했고 카간의 권위에 충성했다. 또한 아라비아 현지인들의 종교, 문화, 풍습, 선진기술 등을 수용했다.

몽골리안 루트가 증류법의 전파 통로 역할

바이주의 원료인 수수, 보리, 밀, 옥수수 등을 배합하는 산시두강주업의 노동자.

이런 배경 위에 몽골리안 루트를 타고 짧은 기간 내 증류법이 퍼져나갔다. 원래 몽골인의 술인 마유주(馬乳酒)는 큰 통에 담아야 했기에 장거리 운송과 보관에 문제가 있었다. 이에 반해 증류해서 제조한 술은 나무통이나 자기병에 담을 수 있어 운송이 간편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증류기술은 러시아로 전파되어 보드카를 낳았다. 중국도 도입과 함께 바이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한반도까지 전해져서 안동소주와 같은 증류식 술이 등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11세기 때 증류법이 이미 전파됐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지린(吉林)성 다안(大安)시의 양조장 유적 때문이다. 2006년 6월 다안양주(酿酒)술공장은 양조시설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술을 끓일 때 사용했던 기반석과 솥을 발견했다. 지린대의 고고학 전문가들은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을 통해 이 양조시설의 연대가 1035년경 요나라의 것으로 밝혀냈다. 이전에 발굴됐던 원대 바이주 유적지는 술 저장고였다. 이에 반해 이것은 증류시설이 남아 있어 역사적 의의가 컸다.

고고학팀은 한발 더 나가 2014년 유적지에서 각종 사서에 기록된 전통방식대로 바이주 생산을 시도했다. 먼저 유적의 돌로 부뚜막을 쌓고 술 원료를 발효하는 목재저장고를 지었다. 원료 300kg을 옛 문헌에 기재된 양조법에 따라 배합해서 28일씩 2차례 발효시켰다. 그 뒤 출토문물로 조립한 부뚜막과 목재증류장치로 증류해서 알코올 도수 54.5도의 바이주 50kg을 양조해 내는 데 성공했다. 이 실험을 통해 바이주가 13세기부터 제조되기 시작했다는 기존 학설을 뒤엎었다.

이처럼 바이주는 다른 술과 달리 고태(固態) 발효법을 이용한다. 고태 발효법은 중국이 개발한 기술로, 누룩을 고체로 만들어 구덩이에 넣은 뒤 발효시킨다. 이 누룩에서 얼마나 특색 있고 다양한 미생물이 생성되느냐에 따라 술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또한 주류업체마다 수수와 보리, 밀, 옥수수 등을 배합해 찌는 과정에서 혼합 비율, 찌는 방법과 시간 등이 다르다. 누룩균을 배양시키는 구덩이의 환경과 조건도 지방마다 다르기 때문에 제조된 술의 맛과 향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문화대혁명 때도 옛 양조법 보전

산시두강주업 공장 안에 마련된 原酒 숙성고. 지하에서는 나무통에, 지상에서는 항아리에 담아 숙성한다.

이는 우리의 막걸리와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막걸리는 하나의 누룩곰팡이로 발효가 이뤄진다. ‘아스퍼질러스 가와치’라는 백국균(白麴菌)으로 일제 침략기 때에 도입된 것이다. 이것을 주류업체들이 같은 방식으로 배양해 사용하고 있다. 백국균은 발효를 안정적으로 일으켜 당화(糖化)를 빨리 촉진한다. 관리하기 편하고 제조할 수 있는 양이 많아 우리 업체들이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완성된 막걸리의 맛은 브랜드마다 차별성이 없고 산성이 높아 시다.

이와 달리 전통 막걸리의 누룩은 다양한 균주를 생성했었다. 따라서 맛이 집집마다 달랐고 풍부했으며 감칠맛이 났다. 일제는 집에서 담그는 가양주(家釀酒) 제조를 금지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우리도 해방 이후 전통 누룩의 부흥을 등한시해 왔다. 이 때문에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사실 한국식품연구원이 2010년부터 전통 누룩을 연구해 이미 개발해 놓은 상태다. 하나 주류업체들이 입국(粒麴) 방식을 바꾸길 꺼려해 보급되질 않고 있다.

중국은 전래해 온 증류기술에 전통 누룩발효법을 탑재한 뒤 수백 년 동안 지방마다, 업체마다 각기 다른 술을 제조해 왔다. 심지어 홍위병들이 ‘사구(四舊) 타파’를 외치며 구습성·구사상·구관습·구문화와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했던 문화대혁명 때도 옛 양조법과 누룩구덩이는 온전했다. 술과 음주문화가 인민생활의 일부분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1965년 먹을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증류주 제조를 금지했고, 이에 희석식 소주가 탄생했다.

희석식 소주는 곡식, 타피오카, 고구마 등 값싼 원료를 발화시켜 정제한 주정(酒精)에 물, 감미료 등을 섞어 생산한 알코올이다. 짧은 제조공정을 거치기에 음주 후 몸속에서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많이 발생시켜 심한 숙취를 유발한다. 감미료는 오랫동안 사카린을 사용했다가 1989년 발암물질이 함유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로 아스파탐으로 바꿨다. 아스파탐도 용해력이 낮고 온도 변화에 민감하며 인체에 좋질 않다. 결국 1993년부터 천연 감미료인 스테비오사이드라를 사용해 오고 있다.

청향형 두강주는 맛이 깨끗하고 부드러워

바이주에도 제조과정이 짧고 숙성이 덜된 저가주가 즐비하다. 우리가 중국요리점에서 즐겨 마시는 이과두주(二鍋頭酒)가 대표적이다. 이과두주는 베이징의 서민들이 마시는 술이다. 이런 싸구려 술과 달리 중고가의 바이주는 제조과정에서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고 품주사(品酒師)라는 양조 장인이 활약한다. 2013년 말 현재 중국 내에는 1만5600개의 각종 주류업체가 있다. 여기에 종사하는 생산노동자는 800만명이고, 품주사는 30만명에 달한다.

품주사는 제조방식을 결정하고 증류한 원주(原酒)를 점검하며 숙성과정을 관리한다. 바이주의 맛과 향을 가늠 짓고 품질을 유지하는 양조 전문가인 셈이다. 산시두강주업에도 10여 명의 품주사가 일하고 있는데, 리잉쥔(李英俊·51) 공장장이 이들을 이끈다. 리 공장장은 바이수이에서 태어나 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81년 두강술공장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양조 노동자로 일했으나 근면성실하고 미각이 뛰어나 회사에서 장난(江南)대학으로 연수 보내 발효학을 전공토록 했다.

리 공장장은 “1987년 회사로 돌아온 뒤 20여 년간 품주사로 일하면서 담배를 피우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지 않았다”며 “그동안 마신 바이주만도 수영장 여러 곳에 담을 수 있는 양이다”고 말했다. 현재 산시두강주업은 청향형(淸香型)과 농향형(濃香型)을 함께 제조하고 있다. 필자가 둘 다 마셔보니, 농향형의 맛과 향은 원산지인 쓰촨의 바이주에 견줄 바 못 됐지만, 청향형은 바이주 특유의 향이 적으면서 맛은 깨끗하고 부드러웠다.

장훙쥔 회장은 “우리는 전설 속 두강주의 전통 위에 현대식 양조기술을 접미해서 독창적인 술을 새로이 개발해 냈다”며 “짙은 바이주 향을 싫어하는 외국인도 즐겨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장 회장은 “중국에서 주류업체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며 “우리 회사만도 400명의 바이수이 주민을 고용하고 매년 3000만 위안(약 55억원)을 각종 세금으로 현 정부에 납부한다”고 말했다. 중국 술 하면 ‘싸구려’ ‘가짜’ ‘고량주 향’ 등을 연상하는 우리에게 ‘온고지신(溫故知新)’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바이주 기업의 현실은 여러 시사점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