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2〉 : 월간조선

세계에서 공룡 화석이 가장 많이 발견된 나라는 어디일까? 대부분 독자는 아마 미국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 미국은 중생대 전 시기의 공룡 화석이 출토된 몇 안 되는 국가다. 2010년 말까지 트라이아스기 7곳, 쥐라기 44곳, 백악기 91곳의 공룡 화석지가 발견됐다. 그러나 조만간 그 자리를 다른 나라에 넘겨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을 넘보면서 새롭게 떠오르는 ‘공룡왕국’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트라이아스기를 제외하고 쥐라기(56곳)와 백악기(101곳)의 공룡 화석지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 지역 분포가 넓어 26개 성(省)·시(市)에 골고루 퍼져 있다. 또한 네 발로 걷는 초식 용반류(龍盤類), 두 발로 걷는 육식 수각류(獸脚類), 머리에 뿔을 가진 초식 각룡류(角龍類), 등에 뿔이 난 초식 검룡류(劍龍類), 온몸에 단단한 골판을 한 초식 곡룡류(曲龍類), 두 발로 걷는 초식 조각류(鳥脚類), 날개로 하늘을 난 육식 익룡류(翼龍類) 등 모든 종류의 공룡 화석이 발견됐다.

이런 중국을 대표하는 공룡박물관이 쓰촨(四川)성 동남부 쯔궁(自貢)시에 있다. 1972년 일단의 탐사팀이 도심에서 동북쪽으로 11km 떨어진 다산푸(大山鋪)진에서 천연가스 개발을 위한 지질탐사를 하던 중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대량의 공룡 화석이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이었다. 1979년부터 중국 각지와 영국에서 온 대규모 발굴팀이 현장에 투입됐으며, 5년간의 1차 발굴을 통해 당시 중국에서 가장 많은 200여 구의 공룡 화석이 쏟아져 나왔다. 이 중 40여 구는 60%, 10여 구는 80% 이상 골격을 유지해 복원이 가능했다.

발견된 화석은 쥐라기 시대의 것으로 모든 종류의 화석이 출토됐다. 이 때문에 세계 공룡학계로부터 ‘쥐라기 공룡의 성전(聖殿)’이라 명명됐다. 공룡 화석지는 대략 축구장 66개를 합해 놓은 면적에 퍼져 있으며, 2001년부터 3년간 진행된 2차 발굴까지 일부만 윤곽이 드러난 상태다. 지금의 쯔궁공룡박물관은 1987년 화석이 집중 발굴된 한 지점 위에 세워졌다. 미국 유타주의 다이너소어 국립기념공원, 캐나다 앨버타주의 로열티렐 고생대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공룡박물관으로 손꼽힌다.

공룡 화석이 많은 쯔궁

세계 최대 쥐라기 공원인 쯔궁공룡박물관. 중앙에 있는 공룡 화석이 마멘키사우루스다.

세계 각지에서 공룡 화석이 발굴되지만, 사실 화석이 형성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부서지지 않는 지층에 신속히 매몰되어야 하고 열과 압력을 피해야 한다. 중생대 중국은 호수가 많아 진흙지대가 발달했다. 고운 진흙은 오랜 시간을 거쳐 부드러운 이암을 형성한다. 공룡 시체는 이 이암층에서 화석이 되어 오늘날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암 사이 화석은 약간의 물을 부으면 손으로 파낼 수 있을 정도다. 중국에서 공룡 화석의 수습률이 높은 이유는 순전히 이암층의 공로다.

쥐라기 시대 쯔궁은 열대 기후로 수풀이 우거지고 물이 풍부한 분지였다. 특히 다산푸는 공룡이 번식하기 알맞은 호숫가 삼각주였다. 어느 시기에 이르러 수많은 공룡이 다산푸에서 죽었고 시체가 강을 타고 떠밀려왔다. 공룡 시체는 진흙이 많았던 다산푸의 지층에 겹쳐 쌓이면서 화석이 됐다. 현재 쯔궁공룡박물관에는 20여 구의 크고 작은 공룡이 복원된 채 전시되어 있다. 이 중 마멘키사우루스(Mamenchisaurus)와 오메이사우루스(Omeisaurus)가 가장 크다.

마멘키사우루스는 높이가 20~25m에 달하는 용각류다. 길이 13m의 목을 지녀 역대 공룡 중 목이 가장 길다. 몸집이 거대해 날마다 엄청난 양의 침엽수 잎과 부드러운 잡목을 먹어 치웠다. 덩치에 비해 머리는 작고 성질은 온순했는데, 긴 꼬리를 휘두르며 육식공룡에 대항했다. 오메이사우루스도 마멘키사우루스와 같은 과로, 17개의 목뼈로 이뤄진 긴 목을 가졌다. 차이점은 주둥이 끝에 콧구멍이 있고, 어깨보다 엉덩이의 높이가 더 높다. 발견지로 속명을 지은 다른 공룡들과 달리 쓰촨의 불교성지 어메이산(峨眉山)에서 이름을 따왔다.

백악기 최고의 포식자가 티라노사우루스라면 쥐라기에는 양추아노사우루스(Yangchuanosaurus)가 있었다. 높이 10m에 큰 머리와 날카로운 이빨 및 발톱을 지녔다. 길고 튼튼한 다리와 평형을 맞춰주는 꼬리는 마멘키사우루스를 추격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북미의 알로사우루스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더 큰 주둥이와 많은 이빨을 지녔다. 높이가 6m인 스제추아노사우루스(Szechuanosaurus)도 초식공룡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밖에도 두 발로 걷지만 식물을 즐겨 먹었던 얀두사우루스(Yandusaurus), 아시아에서 처음 발견된 검룡인 투오지앙고사우루스(Tuojiangosaurus) 등이 있다.

소금 우물

지금도 염수를 뽑아 올려 소금을 생산하는 선하이징. 세계에서 최초로 지하 1000m를 뚫은 곳이다.

쯔궁에는 공룡박물관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곳이 또 있다. 바로 지하 염정(鹽井)이다. 소금은 해변 염전이나 내륙 염호(鹽湖)에서 난다. 바닷물이나 호숫물을 가두고 태양에 수분을 증발시키면 앙금처럼 소금이 생긴다. 쯔궁은 연해지방에서 1000여km 떨어진 내륙도시이고 주변에 염호가 없다. 하지만 지난 1000여 년 동안 중국 내륙 최대의 소금 도시로 명성을 떨쳐왔다. 그 이유는 쯔궁의 염부들이 최대 지하 1000m까지 파 내려간 염정에서 소금물을 길어 올렸기 때문이다.

고생대 쯔궁은 바다에 잠겨 있었다.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 초기 히말라야 조산운동이 일어나면서 지금처럼 육지가 됐다. 고대 쯔궁 주민들은 우물을 파면 솟아나는 염수(鹽水)를 커다란 솥에 넣고 끓여 불순물을 제거해 소금을 얻어냈다. 세월이 흘러 인구가 늘어나 소금 소비가 급증하면서 지표면에서 뚫어야 하는 염정의 깊이는 갈수록 깊어졌다. 이에 따라 쯔궁의 우물 파기 기술도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염정에서 소금물을 뽑아내 소금을 만드는 과정을 기록한 청대의 음각화.

지하 속 염수를 퍼내기 위해 먼저 길고 육중한 쇠막대를 만들었다. 이 쇠막대를 사용하기 위해 나무로 피라미드 형태의 굴착 시설을 지었다. 굴착 시설 꼭대기에서 무거운 쇠막대를 내리꽂아 땅을 파고들어 갔다. 파헤쳐진 흙과 깨진 돌멩이는 다른 막대 봉에 담아 끌어올렸다. 일직선으로 곧게 파는 도중 흙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는 기술까지 고안해 냈다. 땅파기는 염수를 찾을 때까지 계속됐고 때로는 천연가스층이 발견됐다. 이 천연가스는 염수를 끓이는 데 이용했다.

찾아낸 지하의 염수는 긴 나무통 파이프를 넣어 올려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동력은 3~4마리의 소가 돌리는 거대한 물레로 해결했다. 이런 염정 뚫기 작업은 3세기부터 시작되어 청대(淸代)에 이르러 고도의 기술 수준을 완성했다. 19세기 말 작업 중인 굴착 시설은 400여 개에 달했다. 뚫었던 염정은 무려 1만3000여 개나 됐고 평균 굴착 깊이는 지하 300m였다. 1910년대까지 이 굴착 시설로 염수를 길어 올렸지만, 전기모터가 개발되면서 퇴출됐다.

쯔궁 소금 산업의 몰락

오늘날 쯔궁에는 10여 개의 굴착 시설이 남아 있는데, 옛 시설과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하는 곳은 선하이징(海井)이 유일하다. 선하이징은 1835년 청대 도광제 때 세워졌다. 4개의 축대는 여러 줄기의 긴 나무를 엮어 굵은 통나무처럼 해서 만들었는데, 가운데 축대의 높이만 18.4m에 이른다. 이는 과거 굴착 시설 중 중간급에 해당한다. 그 아래 정교하게 만든 시추설비가 수레바퀴, 도르래 등을 이용해 염수를 뽑아낸다. 굴착 피라미드 옆에는 직경 4.5m인 물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선하이징은 세계에서 최초로 지하 1000m를 뚫었다. 1847년 땅 밑 1001.42m까지 도달했는데, 지금도 같은 심도에서 염수를 뽑아내고 있다. 2013년 2월 필자가 만난 루샤오쥐안(盧娟·여) 선하이징관광개발 총경리는 “현재 한 해 약 800ｔ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선하이징관광개발은 쯔궁시 정부가 선하이징의 관리 및 홍보, 생산된 소금 판매, 관련 상품 개발 등을 위해 설립했다. 루 총경리는 “음식용 소금뿐만 아니라 치약, 비누, 미용 보조제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 염정에서 뽑은 소금은 지난 1000여 년 동안 쯔궁 경제를 지탱했다. 쯔궁 소금은 송대부터 마방(馬幇)을 통해 쓰촨뿐만 아니라 윈난(雲南), 구이저우(貴州), 산시(陝西) 등지로 팔려나갔다. 1736년 축조된 서진회관(西秦會館)은 청대 번영했던 쯔궁의 소금 산업을 보여준다. 서진회관은 소금 상인들의 사무실이자 교류장이었다. 쯔궁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이들의 회합 장소답게 건축 양식이 화려하고 예술성이 뛰어난 조각이 많다. 현재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1959년 중국 유일의 염업역사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20세기 들어서도 염업은 쯔궁 최대 산업의 지위를 지켜나갔다. 1940년대 쯔궁에서 생산된 소금은 한 해 190여만ｔ에 달했고, 중국 내륙 인구의 3분의 1을 먹여 살렸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교통 사정이 개선되면서 연해지방에서 생산된 저가의 소금이 점차 내륙시장을 잠식했다. 이에 따라 쯔궁 염업은 몰락의 길에 들어섰다. 1990년대 초까지 소금 생산량은 한 해 200만ｔ 이상을 기록했으나 2013년에는 166만ｔ까지 떨어졌다.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0년에는 50%였으나 지금은 20%에도 못 미치고 있다.

국제행사가 된 쯔궁 등축제

1964년 처음 시작한 쯔궁의 燈축제는 공룡, 염정과 더불어 쯔궁의 3絶로 꼽히고 있다.

쇠퇴하는 쯔궁 염업이지만, 매년 춘제(春節)마다 과거의 영화를 상징하는 염정을 도심에 세우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 최대 규모인 쯔궁등축제(燈會) 때 피라미드 굴착 시설을 만들어 한 달여간 도시를 밝힌다. 중국에서 연등행사는 기원전 2세기부터 시작됐다. 당대부터 마을마다 각종 형상의 등을 만들어 곳곳을 수놓으면서 춘제를 상징하는 민속축제로 발돋움했다. 특히 날씨가 따뜻해 눈이 내리지 않는 남방에서는 등축제가, 북방에서는 얼음축제(燈)가 열렸다.

쯔궁이 중국 등축제의 메카가 된 것은 1964년 사회주의 정권 수립 이후 최초로 대규모 행사를 열었기 때문이다. 비록 2년 뒤 시작된 문화대혁명으로 중단됐지만, 1978년 가장 먼저 등축제를 재개했다. 특히 경제무역교역회와 같이 개최해 규모를 키워, 같은 해 중국에서 열린 민속 관련 이벤트 중 가장 화려했다. 이때 활약한 등 조형회사들이 기술을 갈고 닦아 1988년 베이징(北京) 베이하이(北海)공원에서 열린 등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베이하이등축제에는 덩샤오핑(鄧小平), 양상쿤(楊尙昆) 등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여러 차례 찾아와 구경했다.

이를 계기로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되어 1991년부터 국제적인 행사로 발전했다. 명성 또한 날로 높아져서 쯔궁의 등 조형회사들은 중국 각지와 한국, 일본 등 해외로부터 초청되어 사업을 진행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등축제를 공룡, 염정과 더불어 쯔궁의 ‘삼절(三絶)’이라 부르고 있다. 필자가 2006년 1월 쯔궁을 처음 방문했던 것도 등축제 취재를 위해서였다. 당시 만난 쑹량시(宋良曦) 등축제지휘부 총설계사는 “비단, 섬유유리 등 재료와 조형 기업이 동반 성장하면서 지금은 쯔궁의 6대 산업 중 하나로 커졌다”고 말했다.

등축제는 축구장 8배 크기인 차이등(彩燈)공원에서 열린다. 해마다 주제와 테마를 달리해 등 조형물을 설치하는데, 불교, 도교 등 종교 소재부터 신화 설화, 고전 명작, 문화 풍습, 이국 풍광 등까지 다양한 소재를 재미있게 형상화한다. 염정과 공룡 조형물의 등장은 물론이다. 특히 2013년에는 ‘천년의 소금 도시(千年鹽都)’를 주제로 했는데, 염업 기업들의 협찬 아래 역대 최대 규모의 굴착 시설과 작업장 조형물을 선보였다.

숙취 원인을 낮춘 술 염정방

그동안 필자는 여러 차례 쯔궁을 찾았지만, 현지의 특산주를 줄곧 맛볼 길이 없어 아쉬웠다. 한데 2013년 2월 등축제 취재 후 만난 시정부 관리가 식사 자리에 흰 도자기에 파란 상표를 음각한 염정방(鹽井坊)을 가져왔다. 염정방은 2007년 문을 연 훙다(宏大)주업이 2011년 론칭한 고급 바이주(白酒)다. 훙다주업은 내로라하는 명주가 즐비한 쓰촨의 현실을 감안해 특색 있는 새 술 개발에 매진했다. 이에 홍콩생물공정연구원, 화뉴(華牛)세기생물기술연구원 등과 협력하여 3년 만에 시장에 내놓은 술이 염정방이다.

보통 술을 마신 뒤 겪는 숙취의 원인으로 알코올을 꼽지만, 실제 주범은 아세트알데하이드이다. 아세트알데하이드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데, 각종 질환과 세포 손상을 일으킨다. 다행히 우리 몸에는 이를 방지하는 ALDH 효소가 있어 그 피해를 적게 한다. 염정방은 이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최대한 생성되지 않도록 한 술이다.

중고가의 바이주는 술을 빚을 때, 첨가하는 누룩의 발효 기간을 길게 하고 오랫동안 원주(原酒)를 숙성하여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적게 발생한다. 염정방은 이 과정을 짧게 해도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실제 필자가 52℃ 염정방 한 병의 3분의 2를 마셨으나, 2시간여 뒤 술이 완전히 깼고 속도 편해졌다. 현재 염정방은 쯔궁 시정부의 각별한 지원 아래 판매량을 늘리고 있다. 329만명(2013년)에 달하는 쯔궁 주민들이 애정을 가지고 마셔준다면, 머지않아 지방 술시장에서는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쯔궁은 쓰촨성 내 도시 중에서 한국과 인연이 가장 깊다. 1990년대 말부터 쯔궁의 회사들이 한국에 건너와 ‘천하제일등축제’의 등 조형물을 제작해 왔다. 2006년에는 쯔궁시가 경상남도 고성군과 자매결연하여 공룡 화석을 빌려주고 있다. 2013년 4월에는 쯔궁공룡박물관이 경기도 화성시와 업무제휴를 체결했다. 이런 인연대로라면 향후 훙다주업이 우리 주류업체에 협력의 손길을 내밀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량예의 고향 이빈

이빈을 대표하는 기업인 우량예 공장 입구. 마오타이 다음으로 명성이 높은 중국 주류업체다.

쯔궁에서 남쪽으로 40분 거리에는 이빈(宜賓)시가 있다. 이빈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명주 우량예(五粮液)의 고향이다. 우량예는 고급 바이주뿐만 아니라 수십 종의 술 브랜드를 거느린 종합 주류 그룹이다. 2013년 247.1억 위안(약 4조3242억원)의 판매고를 올려, 중국 주류업체 중 마오타이(309.2억 위안)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79.7억 위안(약 1조3947억원)으로 마오타이(151.3억 위안) 다음으로 많다.

지난 2년간 중국 술시장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주도하는 반부패 운동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 정부가 당·정·군과 국영기업의 삼공경비(三公經費)에 강력한 제재를 가했기 때문이다. 삼공경비는 관용차, 접대비, 출장비를 가리킨다. 이런 현실 속에서 2013년 영업이익을 1조원 이상 달성한 중국 주류업체는 마오타이와 우량예가 유일하다. 마오타이는 지방정부, 군대, 공안, 세관, 기업 등에 연회·접대용이나 선물용으로 공급되는 ‘특공주(特供酒)’다. 이에 반해 우량예는 주로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다.

오늘날 이빈에서 우량예가 가지는 위상은 절대적으로 높다. 2013년 시 전체 공업생산액(743억 위안)의 1/3을 차지했고 세수 공헌도가 가장 컸다. 농업, 유통업 등 연관 업종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전체 주민(550.4만명) 중 10% 가까이가 관련 산업에 종사한다. 거리, 주거단지, 공단 등 지명 곳곳에 우량예가 들어가고, 도로에서 운행하는 모든 버스와 택시에 우량예 광고판이 달려 있다. 심지어 2012년 2월에 착공해 짓고 있는 신공항의 이름도 우량예공항으로 명명됐다.

이런 지명도와 달리 우량예의 역사는 그리 길지 못하다. 이빈에서 술을 양조하기 시작한 것은 5세기 남북조시대부터다. 당시 이빈에 살던 이족(彛族)은 곡물을 혼합해 잡주(酒)를 제조했다. 당대에는 관영 양조장에서 네 가지 곡식으로 춘주(春酒)를 빚었다. 명·청대에는 오곡으로 술을 제조했으나, 원료가 다른 지방 바이주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지금처럼 수수·쌀·찹쌀·밀·옥수수 등 오곡을 쓴 것은 1909년이고, 1929년에야 우량예라는 이름을 얻었다.

〈와호장룡(臥虎藏龍)〉의 촬영지 촉남죽해

고대부터 이름 높은 蜀南竹海의 호수. 대나무배가 떠 있다. 촉남죽해는 영화 〈와호장룡〉의 촬영무대이기도 하다.

사실 고대부터 이빈을 대외에 알린 명소는 따로 있다. 바로 촉남죽해(蜀南竹海)다. 촉남죽해는 이빈에서 동남쪽으로 50km 떨어진, 창닝(長寧)과 장안(江安) 두 현에 걸쳐 면적이 120km2에 달하는 중국 최대의 대나무 자생지이다. 해발 600~1000m에 자리하고 있으며, 겨울에는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여름에는 30℃가 넘지 않아 피서지로 알맞다. 촉남죽해 내에는 남죽(楠竹), 면죽(面竹), 수죽(水竹), 자죽(慈竹), 나한죽(羅漢竹), 향비죽(香妃竹) 등 58종의 대나무가 자생하고, 곳곳에 2백 종의 약재가 자라고 10여 종의 야생동물도 서식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촉남죽해의 옛 이름은 북송 4대가로 유명한 시인 황정견(黃庭堅)과 관련 있다. 황정견은 장시(江西)성 출신으로 23세 때 진사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으며, 태자감 교수로 일할 때 소동파(蘇東坡)를 만나 큰 가르침을 받았다. 관리로서 선정을 펼치며 열심히 일했으나, 말년에 정적의 모함을 받아 2차례나 유배당했다. 두 번째 유배지가 이빈이었는데 53세부터 3년간 머물렀다. 이때 지은 시가 57수, 사(詞)가 17수에 달할 정도로 이빈은 황정견의 문학세계를 풍요롭게 했다.

어느 날 황정견이 촉남죽해를 찾았는데, 산마루에 서서 보니 울창한 대나무 숲이 산등성이를 따라 펼쳐지는 광경이 너무나 장관이었다. “굉장하구나! 대나무 파도가 만 리에 달하고, 어메이 미인의 귓불 같구나!(壯哉, 竹波萬里, 峨眉姐妹耳)”고 감탄하며 돌 위에 ‘만령정(萬)’이라 적었다. 만령정은 대나무가 무성한 드넓은 산맥이라는 뜻이다. 이 고사에 유래해 근대까지 촉남죽해는 만령정이라 불렸다.

황정견을 꼽지 않더라도 촉남죽해는 우리에게 결코 낯선 무대가 아니다. 저우룬파(周潤發)와 장쯔이(章子怡)가 대나무 숲에서 결투하고, 숲 사이 호수에서 검무를 펼친 명장면이 지금도 회자되는 영화 〈와호장룡(臥虎藏龍)〉의 촬영지가 바로 촉남죽해다. 실제 트레킹으로 촉남죽해를 걷다 보면 각양각색의 대나무가 호수, 폭포 등과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를 연출한다.

판다가 많은 고장 쓰촨

대나무와 쓰촨을 연상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될 중국의 상징물이 있다. 바로 대나무만 먹고 사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동물 판다(Giant Panda)다. 잘 알려졌다시피 판다는 오직 중국에만 서식한다. 중국에서도 쓰촨·산시·간쑤(甘肅)성에서만 서식하는데, 절대다수가 쓰촨에 있다. 2014년 말 현재 판다는 1864마리가 있고, 이 중 67마리가 인간에 의해 양육되고 있다. 이런 희소성 때문에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은 판다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고 단체 상징마크로 삼았다.

본래 판다는 800만 년 전에 처음 출현해 육식을 즐겼던 식육목(食肉目)이다. 지금도 송곳니와 발톱은 날카로워 고기를 물고 찢기에 알맞다.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모든 유전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진화를 거치면서 육식을 즐기는 습성이 퇴화됐고 현재는 고기 맛을 전혀 느끼질 못한다. 지난 수천 년 동안 해발 1400~3000m의 산림이 우거진 대나무 숲에 살면서 환경에 적응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늦겨울과 봄철 판다는 해발 1600m 안팎에 살면서 어린 죽순을 먹는다. 죽순은 단백질, 당질, 식이섬유 등을 함유하고 있다. 초여름에는 해발 2400m 산악으로 이동해 죽순을 먹으면서 부족한 칼슘, 인, 질소 등을 보충하기 위해 신선한 대나무 잎의 소비를 늘려간다. 이는 봄철 짝짓기로 잉태한 태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판다의 임신기간은 83~150일이다. 7월 말부터 다시 저지대로 내려와 8월에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아주 작아 90~225g에 불과하다. 출산 이후에도 대나무 잎을 주로 먹으며 새끼에게 먹일 젖을 생산한다.

대나무는 사실 그리 좋은 먹잇감이 아니다. 단백질은 적은 반면 식이섬유와 리그닌의 함량은 높다. 이 때문에 판다는 봄철에 하루 12~16시간에 걸쳐 30~38kg의 대나무를 먹어 치운다. 하지만 판다의 위는 단순하고 창자가 짧아 미처 영양분이 흡수되지 못한 상태로 섭취한 먹잇감의 10여kg이 똥으로 배설된다. 중요한 건 판다는 죽순이 너무 자랐거나 대나무 잎이 시들면 굶어 죽을지언정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까다로운 식성은 판다의 활동 범위를 제한했다. 하지만 판다를 멸종위기로 내몬 결정적인 주범은 인간이었다.

판다 양육을 위한 중국 정부의 노력

판다는 섹스를 귀찮아하기 때문에 번식력이 낮다. 중국 정부는 쓰촨성 각지에 번식기지를 두어 판다 증식에 힘쓰고 있다.

판다는 70만~50만 년 전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에는 중국 전역과 베트남·미얀마 북부에까지 살았다. 주로 서식하던 숲의 해발도 500~700m에 불과했다. 이런 판다를 인간은 마구잡이로 수렵했다. 고기는 육류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훌륭한 먹거리였다. 모피는 부유층이 고급 장식품으로 선호했다. 뼈는 각종 한약재에 들어가야 하는 재료로 거래했다. 이에 따라 판다 수는 급감했고 20세기 중반에는 쓰촨성 서부 산악지대로 국한됐다.

물론 낮은 번식력도 판다에게는 치명적이다. 보통 판다의 수명은 20~30년인데, 암컷이 평생 동안 한두 마리의 새끼만 낳는다. 이를 출산율로 따지면 1.0674%로, 저출산으로 고민하는 서유럽 국가나 한국보다 뒤처진다. 판다는 섹스 자체를 귀찮아하는데다 1년 중 발정기도 4~5일에 불과하다. 고립된 활동범위로 인해 근친 간 교미가 이뤄져 질병 저항력이 떨어졌고 출산 능력 또한 저하됐다. 조사에 따르면, 현존하는 판다의 암컷 78%와 수컷 90%는 자연 생식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쓰촨성 각지에 번식기지를 두어 판다를 양육하고 있다. 자연 교배를 위해 판다의 골반과 다리 근육을 강화시키는 훈련에서부터 비아그라를 복용시키고 포르노까지 시청케 한다. 이런 고육책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성과를 거두질 못해 주로 인공수정을 통해 새끼를 낳고 있다.

중국이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판다가 국가 이미지 향상과 대외교류에 큰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1957년 러시아에 한 마리를 선물하고 1965년부터 북한에 다섯 마리를 보내는 등 판다를 우호의 상징으로 이용해 왔다. 특히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에 대한 답례로 판다 한 쌍을 미국에 보내면서 ‘판다외교’를 본격 시동했다. 일본, 독일, 멕시코, 호주, 한국 등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판다를 빌려준 것이다. 현재 중국이 해외로 보낸 판다는 48마리로, 14개국 19개 도시에 불과하다. 판다는 멸종위기 동물의 상업적인 거래를 금지한 국제법에 따라 임차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각국 동물원은 매년 한 마리당 100만~200만 달러의 임차료를 중국에 지불하고 있다.

푸젠, 윈난 못지않은 죽통주 품질

촉남죽해의 한 마을에서 파는 죽통주. 대나무 향이 깊게 밴 약주라 맛이 일품이다.

그동안 쓰촨성 동부에서는 판다가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데 2013년 11월 촉남죽해에서 가까운 라오쥔산(老君山)에서 판다가 발견됐다. 이는 지난 반세기 이래 동부에서 처음 발견된 야생 판다다. 현재 건설 중인 번식기지가 내년에 완공되면 10마리 안팎의 판다가 촉남죽해에서 살게 된다. 쓰촨에는 판다뿐만 아니라 대나무와 관련된 특산물이 많다. 젓가락, 바구니, 의자, 책상, 뗏목 등 생활용품에서 죽편, 차구(茶具)와 도자기, 죽지(竹紙) 등 예술품의 경지에 오른 상품까지 생산한다.

특히 이빈에서 한 시간 반 떨어진 자장(夾江)현에서 생산하는 종이는 청대에 황실로 진상됐던 공지(貢紙)다. 백협죽(白夾竹)과 수죽을 원료로 72차례의 작업 과정을 거쳐 만들어 비단처럼 매끄럽고 부드럽다. 지질은 희고 수묵성이 뛰어나 붓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에 알맞다. 기계로 만든 종이로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부드러움과 섬세함이다. 지금도 자장 죽지는 옛 방식을 고수하며 생산되어 중국 최고의 서화지(書畵紙)로 꼽히고 있다.

촉남죽해에서는 다양한 대나무 상품과 더불어 술도 제조한다. 바로 12가지 약재로 빚은 누룩을 첨가해 양조한 바이주를 대나무 통에 넣어 파는 죽통주(竹筒酒)다. 보통 죽통주는 통 안에 바이주를 주입하고 뚜껑을 밀봉 처리해 숙성시킨다. 이때 진공을 유지하는 압력과 술을 부어 넣는 조절에 있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밀봉된 술통을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실내에 2~3개월 동안 보관하면 대나무 향이 깊게 밴다.

죽통주는 현재 중국에서 푸젠(福建)과 윈난을 주산지로 손꼽는다. 하지만 촉남죽해 죽통주의 역사와 품질도 두 지방 못지않다. 다만 쓰촨 내 명주가 워낙 많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죽통주는 오래전에 한국에도 전래됐다. 영조 때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그 양조법이 기록되어 있다. 일부 상인이 대나무 통을 여러 번 재활용해 곰팡이가 생기는 경우가 간혹 발생하는데, 이런 악덕 상행위만 근절된다면 죽통주는 누구나 즐겨 마실 수 있는 약주다.

대나무 요리 성찬, 전죽연도 자랑거리

죽통주와 곁들여 먹는 전죽연(全竹宴)은 촉남죽해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전죽연은 베이징의 만한전석(滿漢全席)을 모방해 촉남죽해 주민들이 개발한 대나무 요리 성찬(盛饌)이다. 죽순채, 죽손단(竹蛋), 죽손버섯, 죽통두부, 죽통밥, 죽순탕 등 대나무에서 나는 모든 것을 재료나 도구로 써서 조리한 음식이다. 필자가 2006년 촉남죽해를 처음 찾은 것도 이 전죽연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전죽연을 먹으며 마신 죽통주에 반해, 각지의 대나무 산지를 방문할 때면 죽통주를 꼭 찾아 마시곤 했다.

쓰촨성 메이산(眉山) 출신인 소동파는 대나무를 좋아해 평소 죽순과 죽손 요리를 즐겨 먹었다. 대나무에 관한 시도 여러 편 지었는데, 그중 ‘어잠승녹균헌(於潛僧綠筠軒)’이 지금까지 애송되는 절창이다. 여기서 어잠은 지금의 저장(浙江)성 린안(臨安)현이고, 녹균헌은 승려가 거처했던 처소다. 이 시는 사군자(四君子)의 하나인 대나무를 빌려 세속적 욕망을 멀리하고 지조를 지켜야 하는 선비의 도리를 노래했다.

밥 먹는 데 고기가 없어도 되지만, (可使食無肉)
사는 데 대나무가 없어서는 안 되지. (不可居無竹)
고기 없으면 사람이 야위지만, (無肉令人瘦)
대나무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하네. (無竹令人俗)
사람이 야위면 살찌면 그만이지만, (人瘦尙可肥)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 없다네. (士俗不可醫)
사람들은 이 말을 비웃으며, (傍人笑此言)
고상한 척하며 어리석다고 말하네. (似高還似癡)
만약 대나무를 마주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若對此君仍大嚼)
세상에 어찌 양주학이 생겨났겠는가. (世間那有揚州鶴)

필자는 촉남죽해를 두 차례나 더 찾았지만, 아쉽게도 현지산 죽통주를 마시거나 전죽연을 먹어볼 여유를 다시 갖질 못했다. 내년에 촉남죽해 내 판다 번식기지가 문을 열면, 오랜만에 방문해 죽통주를 마시고 소동파의 시를 읊조리며 욕망의 때를 털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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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2〉

쯔궁의 ‘鹽井酒’와 이빈의 ‘竹筒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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