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툰 작가 중에도 名門大 출신 다수
⊙ 부모와 진로 상담 시 ‘내 인생이니 신경 끄시라’는 태도는 옳지 않아
⊙ 外國에 비해 기술적인 측면은 우리가 압도적
李鍾範
⊙ 33세.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 웹툰 〈투자의 여왕〉 〈닥터 프로스트〉 작가.
임재민
⊙ 이화여대 교육학과 졸업.
⊙ MBC 공채MC 출신으로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출연.
⊙ 부모와 진로 상담 시 ‘내 인생이니 신경 끄시라’는 태도는 옳지 않아
⊙ 外國에 비해 기술적인 측면은 우리가 압도적
李鍾範
⊙ 33세.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 웹툰 〈투자의 여왕〉 〈닥터 프로스트〉 작가.
임재민
⊙ 이화여대 교육학과 졸업.
⊙ MBC 공채MC 출신으로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출연.
만화(漫畵). 청소년이 즐기는 대표적 취미 거리지만 학부모에겐 ‘공부 방해 요소’로 비치기 일쑤다. 이 같은 편견에 자신 있게 반기(反旗)를 든 인물이 있다. 웹툰 작가 이종범(李鍾範)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씨는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후 2009년 다양한 재테크를 소재로 다룬 〈투자의 여왕〉으로 데뷔했다.
이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만화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일본말)’다. 초등학생 때 만화책 따라 그리는 것을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웹툰을 기반으로 재생산된 드라마·게임 등 2차 콘텐츠가 쏟아지는, 그야말로 ‘웹툰’이 대세인 지금 이씨는 웹툰계에서는 꽤 성공한 인물이다.
‘미생(未生)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웹툰 작가 윤태호씨, 1세대 웹툰 작가 강풀씨와 비교하긴 이르지만, 이씨도 2011년부터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 〈닥터 프로스트(Dr.Frost)〉가 큰 인기를 끌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진 것이다.
〈닥터 프로스트〉는 상담심리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2012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았다. 〈닥터 프로스트〉는 현재 케이블채널 OCN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 중이다. 매주 일요일 밤 11시에 방송하지만, 평균 시청률이 1.9%로 순항하고 있다.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이씨는 케이블채널 tvn의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더 지니어스 시즌3: 블랙가넷’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이씨를 비롯하여 카이스트 출신의 유명 수학강사 남휘종, 멘사 회원 배우 하연주, 강용석 전 국회의원, 서울대 치대 출신 가수 김정훈, 카이스트 재학생인 오현민, 하버드 출신의 신아영 아나운서 등이 출연했다. 이씨는 이 프로그램에서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돋보이는 두뇌 플레이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뭔가 특별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그를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2009년 9월 부천만화정보센터가 승격한 것으로 국내 유일의 만화진흥 기관이다.
8살부터 만화가 꿈꿔
이곳에서 마주한 이씨는 TV에서와는 실물이 달랐다. TV에서 봤을 때는 덩치가 있어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실제 보니 날씬했다. 얼굴도 본인 실제 나이(1982년생·33세)보다 적어 보였다.
—처음부터 이런 말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TV 화면보다 실물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엄청 꾸미고 출연했는데요. 얼굴도 그렇고, TV가 실제보다 더 크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렇게(실물이 더 낫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요. (웃음)”
—언제부터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습니까.
“8살요.”
—8살이면 매우 일찍부터 꿈을 꾼 것인데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제가 만화책을 보고 그림을 따라 그리면 친구들이 좋아했어요. 그게 아주 좋았습니다. 보통 다 그렇지만 처음 동기는 허접하지 않습니까.(웃음)”
—그 허접한 꿈이 커 가면서 바뀌지 않았네요.
“나이를 먹으면 보통 꿈이 변하기 마련인데 저는 운이 좋게도 꿈을 더욱 구체화했습니다. 중학교 때 가장 저명한 만화 이론서인 스콧 매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를 읽으면서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파괴력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때 만화가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만화가 아니라도 영화, 기사, 출판물 등 파괴력을 가진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만화를 선택한 것은 돈이 없이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 없이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 중에는 웹툰의 파괴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웹툰은 출판만화와는 달랐다. 과거 한 명의 만화가와 다수의 문하생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집단창작 방식과 달리 웹툰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 한 명이 모든 것을 한다.
—돈이 많았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습니까.
“굳이 꼽자면 영화감독 아니면 게임 개발자입니다. 제가 영화랑 게임을 좋아하거든요.”
심리학과를 선택한 이유
—명문대(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출신입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지요.
“이 인터뷰 나가면 ‘잘난 척한다’고 비난받을 것 같은데…. 잘했습니다. 전교 1등 하고, 수능도 2개 틀렸으니까요.”
—부모 입장에서 공부 잘하는 아들이 만화가 된다고 하면 속 좀 상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제 세대까지는 만화가란 직업에 대한 부모의 반대가 심했지요. 저희 아버지께서 조건을 걸었습니다. 성적이 잘 나와야 만화를 그릴 수 있게 해 주겠다고요. 아버지께서는 제가 공부를 하기 싫어서 만화를 그린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정말 만화가 좋아서 만화가가 되겠다고 하는지 진실을 알고 싶었나 봐요. 저는 정말 만화가가 꿈이었기 때문에 공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성적이 좋아야 만화를 그릴 수 있으니까요.”
—그럼 만화가가 되는 것을 부모님이 반대한 것은 아니네요.
“고등학교 때 크게 한번 반대를 하셨는데 그때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어떻게요.
“보통 부모님들은 ‘내가 너보다 더 잘 아는데’로 시작하시잖아요. 그래서 저는 만화와 관련한 조사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특히 만화를 그리다가 실패한 케이스를 몽땅 모아 프레젠테이션하듯이 부모님 앞에서 발표했습니다.”
—왜 실패 케이스만 모아서 이야기했나요. 부모님이 더 불안해하지 않았나요.
“중요한 것은 실패한 원인입니다. 실패 원인을 잘 알고 있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까. 이런 점을 어필한 것이지요.”
—장래 희망을 두고 부모와 마찰을 빚는 학생은 작가님 방법을 써야겠네요.
“자식 걱정하는 것은 부모님의 특권입니다. 보통 학생들이 ‘내 인생 내 것이야’라고 떼를 쓰지만 어떻게 인생이 자신 혼자의 겁니까. 부모님이 낳고 키워 주지 않았습니까. 대개 부모님들은 명예나, 수익 안정성을 중요시합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때문에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본분을 지키는 것은 물론 부모님이 걱정하는 포인트를 잘 잡아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을 설득했는데, 왜 심리학과를 선택한 것입니까. 만화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 학과를 선택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가 ‘대학에 진학해서 만화보다 더 좋은 게 있으면 그것을 하되 계속 만화를 하고 싶으면 해야 하니까 작가 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전공을 고르자’고 제안하셔서 아버지와 상의를 해서 전공을 고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심리학과를 지원한 것이군요.
“네. 저는 인문학이 만화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학과를 고르다가 체계적이고 논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심리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원래는 서울대 인류학과도 생각했었는데 점수가 안 돼서 못 갔습니다. 당시 수능 점수 인플레가 심해서 만점자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연세대 심리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사실 다른 매체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잘난 척한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습니다.”
—대표작인 〈닥터 프로스트〉는 천재 심리학자가 수사에 합류, 범죄를 해결하는 내용의 심리 수사극(搜査劇) 인데 심리학을 전공한 것이 도움됐겠습니다.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면 시도하기 어려운 이야기이긴 합니다. 전공이 심리학이라고 해서 심리학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디서부터 취재를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거든요. 이런 면에서 전공이 도움 됐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작품 때문에 심리학과 학생들에게는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심리학은 사람을 보고 읽어 내는 학문이 아닙니다. 질문을 하는 학문이죠. 사람을 꿰뚫어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작품 초반에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주인공인 닥터 프로스트가 사람의 마음을 읽어 내는 장면을 담았거든요. 이런 것을 심리학도들이 가장 싫어합니다. 뒷부분까지 보신 분들은 정통심리학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이라고 평가해 주시지만 앞부분만 보신 분들은 ‘사이비’라고 비난합니다. 이해는 갑니다. 학부생들은 공부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공부한 것 이외의 것이 나오면 ‘사이비’로 보거든요.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지만요.”
—웹툰 작가 중 명문대(名門大) 출신이 많은가요.
“많습니다. 서울대 출신들도 많습니다. 어느 분이 인터넷에 ‘명문대 출신 웹툰 작가’라고 정리해 놓은 것을 봤는데 ‘왜 이렇게 많지?’라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변지민(미대) 이가영(국어교육학과) 김지우(건축학과)씨는 대표적인 서울대 출신의 인기 웹툰 작가다.
—명문대 출신으로 성공한 웹툰 작가가 많더라고요. 인기를 얻는 데 고학력(高學歷)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오타쿠적 기질이 강할 수는 있지만 웹툰의 인기와 수입은 학력, 외모, 나이, 그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미생의 성공 이유
요즘 신출내기 인턴사원의 애환을 그린 드라마 ‘미생’의 인기는 대단하다. 조직생활 경험이 있는 이들의 진한 공감을 자아낸다. 케이블과 IPTV(인터넷TV)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미생’은 직장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한 동명(同名)의 웹툰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드라마의 성공(최고 시청률 8.6%-케이블 TV에서는 보통 시청률이 1%를 넘으면 ‘대박’으로 평가한다)으로 단행본 《미생》은 2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 이씨는 미생의 성공 요인에 대해 “확실한 취재”라고 했다.
“태호 형(이씨는 미생의 윤태호 작가와 형 동생하는 사이이다)이 유명한 작가잖아요. 태호 형 작품이면 ‘믿고 본다’는 독자들이 많지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본인이 취재를 열심히 한 뒤 작품을 내놓기 때문에 태호 형 작품은 매번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저도 배우려 하고 있고요.”
—윤태호 작가가 요즘 ‘핫’하지 않습니까. 자주 봅니까.
“예전에는 소주도 한잔하고 했는데, 요즘에 너무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듭니다.”
—취재를 만족할 만큼 하고 작품을 내놓는 편입니까.
“저는 재미있는 만화는 취재가 받쳐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읽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는 내용이 되려면 현실을 잘 반영해야 하고, 그러려면 정확한 취재가 필수입니다.”
이씨는 목표하던 음악만화를 위해 재즈밴드 드러머로 활동하기도 했다.
—취재 어렵지 않던가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무명(無名)일 때는 취재에 잘 응해 주지도 않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제가 그림과 스토리에 그다지 자신이 없어서 일찌감치 전문 소재를 직접 공부해 가면서 취재형 만화를 그려야만 데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쉽지 않더군요. 일단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만나 주질 않았습니다. 사전 조사를 열심히 하다가도 직접 전문가를 만나 봐야 할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시간을 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메일을 보내면 당연히 답장이 없고, 그나마 답장이 오더라도 ‘바빠서 여건이 안 된다’, ‘미안하다’ 일색이었습니다. 그래서 범죄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도 취재에 응해 주지 않아서 영화사나 언론사 등의 마크를 맘대로 박아 넣은 가짜 명함을 만들었어요. 다행스럽게도 그 가짜 명함을 사용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냥 그 정도로 절박했었다는 이야기지요.”
—작품이 잘 나온 것을 보면 취재를 잘했다는 이야기인데요.
“전문가의 시간은 귀하니까 돈으로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인터뷰 비용을 마련한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이 선택에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힘들게 모은 수십만 원으로 그들의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산 셈이니 하나마나 한 질문으로 인터뷰 시간을(=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사전조사를 했습니다. 물론 이 방법도 금전적인 부담으로 인해 계속하진 못했지만 이때의 시도는 취재의 기본에 대한 아주 좋은 레슨(lesson)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해졌으니, 과거보다는 취재가 수월해졌겠네요.
“그렇진 않습니다. 최신 작품을 위해 폐쇄병동을 취재해야 하는데 아무 데서도 협조를 안 해 줍니다. 웹툰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와주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은 호의(好意)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지요.”
—취재를 많이 하면서 노하우도 생겼겠습니다.
“처음부터 전문가 인터뷰나 전문서적, 논문을 취재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것은 ‘엄밀한 사실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팩트는 딱딱합니다. 그래서 발상이 자유롭게 뻗어 나가는 것을 처음부터 제한합니다. 논문이나 다큐멘터리를 위한 시작으로는 좋을 수 있지만 웹툰 스토리의 시작으로는 좋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많이 이들을 취재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좋은 답변은 좋은 질문에서 나오고, 좋은 질문은 대부분 구체적이다’입니다. 막연하게 질문하면 제 아무리 전문가라도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느 지점까지 고민과 조사로 나아간 상태에서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 질문하면 인터뷰의 밀도도 높아지고 문답이 알차게 진행됩니다. 전문가 인터뷰를 하면 무조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지망생들에게는 도움이 될 만한 취재의 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보다 조금 더 벌어”
5~6년 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웹툰은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이 될 정도로 이제 명실상부한 주류 문화로 정착했다. 현재 네이버 웹툰의 1일 이용자는 620만명이다. 시장 파이가 커진 만큼 인기 웹툰 작가의 수입도 매우 증가했다. 내놓는 작품마다 히트작 반열에 오르는 소위 A급 웹툰 작가들은 한 해 수입이 억대에 이른다. 이씨의 수익은 얼마나 될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얼마나 법니까. 네이버 웹툰 작가의 최고 수입은 월 7800만원에 이른다고 하던데요.
“그런 말도 들었는데 확실히는 모르고요. 저는 따라가려면 멀었습니다.”
—그래도 작품이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조회 수도 높으니 한 달에 1000만원 정도는 벌어들일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민감해하는 것 같은데 그럼 이렇게 묻죠. 친구 중에 대기업 출신이 많을 텐데요. 그들보다는 많이 버나요.
“제가 웹툰 작가 5년차인데요. 3년차까지는 대기업 간 친구들에 비해 너무 못 벌었습니다. 2년 전부터는 비슷하게 간 것 같고, 현재는 제가 조금 더 버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더 법니까.
“웹툰을 연재할 때는 2배를 더 벌 때도 있고, 연재를 안 할 때는 아주 조금 더 벌 때도 있고, 그때그때 다릅니다.”
웹툰 작가는 포털사이트에 작품을 게재해 받는 원고료와 영화 판권, 캐릭터사업, 광고, 서적 출판 등으로 수익을 얻는다. 현재 주요 웹툰을 제공하는 네이버와 다음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기준에 따라 원고료를 지급한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다음은 원고료 산출에 작품 조회수를 주로 활용한다. 네이버는 조회수와 연재 분량, 작가의 지명도, 직전 작품의 원고료 등 6~7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웹툰을 생계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인기 작가는 300명 정도라는 보도(2014년 9월 17일 MBC)가 있던데요. 나머지 수많은 작가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까.
“제가 진로특강을 하면 수익에 대해 많이들 물어봅니다. 그러면 신인이 받는 평균 연봉, 5년차 이상의 어느 정도 성공한 작가 연봉, 그리고 마지막으로 업계 최고가 받는 연봉, 이 세 가지를 설명해 줍니다. 우선 신인이 받는 평균 연봉을 보자면 10년 전만 해도 월 40만~50만원 받으면서 작업을 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쁘지 않은 금액으로 시작합니다. 한 달에 140만~150만원 정도 벌지요. 최근에는 유료사이트가 많아지면서 시작하는 고료가 200만~300만원인 곳도 많이 생겼어요. 20대 초반에 데뷔해서 버는 수입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30대 중반의 회사원들과 비교하기에는 부족하지만요. 두 번째 웹툰 작가로 차기작 꾸준히 내고 5년 정도를 잘 버틴다면 대기업 사원보다는 더 법니다. 물론 프리랜서 직종인 만큼 안정성은 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업계 톱(TOP)은 수십억을 벌지요.”
—미생의 성공으로 윤태호씨의 수익이 100억원이 넘는다고 하던데요.
“아, 그런가요. 태호 형한테 직접 물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책이 200만 권이 팔렸으니 대충 계산해도 수익은 어마어마하지요.”
—예상했던 것보다 웹툰 작가 환경이 좋네요.
“요즘은 학부모님들이 먼저 물어봐요. 웹툰 작가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요. 웹툰 작가라는 직업은 전반적으로 처우가 좋아진 프리랜서 직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마추어 웹툰 작가가 14만명이라고 하던데요. 진입 문턱이 너무 낮은 것 아닙니까. 아무래도 웹툰 작가로서 재능이 있어야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까.
“제가 데뷔 준비를 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재능이 없다고 느꼈을 때였습니다. 그림, 스토리 다 잘 안 됐거든요. 그런데 5년 동안 웹툰 작가 하면서 느낀 점은 운동선수를 제외하고 특정한 직업에 어떤 재능이 필요하다는 사고방식은 틀린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들보다 그림과 스토리가 약했지만, 술을 잘 마시고, 모르는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이런 장점으로 일반 웹툰 작가들이 취재하기 어려워하는 분야를 취재하는 데 성공했지요. 재능이 없다고 포기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웹툰 해외 경쟁력 충분”
“아쉽죠. ‘미생’만 아니면 1등인데.” ‘어벤저스’ ‘아이언맨’ 등 수퍼히어로 만화와 영화의 제작사로 잘 알려진 ‘마블’사(社)의 C B 세블스키(Cebulski) 부사장(콘텐츠개발 총괄)은 2014년 11월 17일 서울 코엑스 콘퍼런스룸에서 《조선일보》 기자와 만나 이같이 이야기했다. 그의 발언은 대한민국 웹툰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웹툰은 단순한 인기를 넘어 ‘한국 드라마’ ‘케이팝(한국 대중가요)’에 이은 ‘한류(韓流) 3번 타자’로 부각되고 있다. 스마트 시대, 최고의 디지털 콘텐츠’라 부르는 웹툰(웹+카툰)이 한류 콘텐츠로 비상할 채비를 하는 것이다.
실제 네이버는 올해 미국시장을 정조준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해외 시장에서 웹툰은 블루오션으로 평가받는다”며 “내년 미국시장 성공을 위해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2014년 북미 최초 웹툰 포털인 타파스미디어와 손잡고 해외진출에 나선 다음은 내년에는 중국과 일본시장 진출을 꾀한다. 다음 관계자는 “해외 유수의 콘텐츠 업체와 제휴를 통한 현지화 전략이 핵심”이라며 “웹툰 콘텐츠를 양산해 향후 수익성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정부도 2014년 5월 28일 “케이팝(K-POP)에 이어 만화 한류를 키우겠다”며 ‘만화산업 육성 중장기 계획(2014〜2018)’을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세계 만화 시장 매출 규모는 9조원. 이 중 웹툰의 비중은 2017년 22.8%(3조원)로 예측된다. 문체부 관계자는 “웹툰은 한국이 개발한 창의적인 콘텐츠이기 때문에 전 세계 대중문화를 주도할 경쟁력이 높다”고 말했다. ‘웹툰 한류’, 가능한 꿈일까.
이씨는 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일이 있었어요. 우크라이나에서 웹툰 하나가 올라왔는데 조회 수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5126만명)보다 더 많았습니다. 이 만화가 뭘까. 연구 좀 해 보자고 해서 알아봤더니 네이버 웹툰이었어요. 그 나라 사는 사람이 자기네 말로 번역해서 불법으로 올린 것이었지요. 이런 적도 있었어요. 제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초대받아 갔는데 그곳에 미국 팬들이 왔더라고요. 이런 사례들만 봐도 우리나라 웹툰이 해외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 세계 곳곳에서 한국 ‘웹툰’이 읽히고 있다. 웹툰은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나 콘텐츠 공유 사이트를 통해 확산된다. 특히 ‘망가폭스(mangafox)’를 비롯한 만화공유 사이트가 한국 웹툰을 세계로 확산시킨 주요 루트다. 이 사이트에는 세계 각국의 만화 1만여 종을 영어로 번역해 올린다. 저작권이 지켜지지 않는 불법 사이트지만 세계 만화의 추세와 인기를 알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그간 망가폭스 인기순위는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같은 망가(manga·일본 만화)가 휩쓸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신의 탑’ ‘노블레스’ ‘갓 오브 하이스쿨’ 등 한국 웹툰이 순위권에 들기 시작해 1~10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늘었다.
—국내 웹툰이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콘텐츠가 새롭고 창의적이기 때문 아닐까요. 기술도 훨씬 앞서고요. 제가 대만에서 열린 국제만화가대회에 초청을 받아 한국 웹툰의 제작 방식을 설명하고 왔는데 제 이야기를 듣던 다른 나라 작가들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웹툰 작가들은 배경을 3D로 만듭니다. 건축 쪽에서 쓰는 프로그램을 웹툰에 응용한 것이지요.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 작가들이 제일 잘합니다. 이런 이야기만 해 줘도 다른 나라 작가들은 매우 신기해하지요. 다른 나라 작가가 발표하는 것을 들어보면 우리가 10년 전에 하던 것들을 지금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디지털 테크닉 같은 기술적인 측면은 외국보다 우리가 압도적으로 앞서 있습니다.”
한 콘텐츠 전문가는 “해외 작가와 독자들은 엄청나게 빠른 작업 속도를 보이는 한국 웹툰에 놀라움을 표한다”며 “우리의 독특한 웹툰 콘텐츠가 해외에서도 어필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높은데 해외에서도 충분히 승산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타파스미디어 김창원 대표는 “미국 작가들이 1년 그릴 분량을 한국 웹툰 작가들은 한 달이면 그린다”며 “연재만화가 빨리 업데이트되기를 원하는 것은 세계 공통인데 그런 의미에서 한국 웹툰은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만화 하면 일본 아닌가요.(일본은 만화 종주국으로 불린다)
“일본에서 100만 권이 나갔던 마지막 망가는 원피스(일본을 비롯한 전세계에 두꺼운 팬층을 가진 인기 만화)가 마지막입니다. 일본은 내수시장이 크다 보니까 경각심이 별로 없습니다. 기존 독자만 봐 줘도 돌아간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죠. 그렇다 보니 새로운 독자 유입이 거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인기 많고 파괴력 넘치던 망가도 줄어들었지요. 유럽에 있는 독자들로부터 ‘일본 망가인 줄 알고 재미있게 봤는데 알고 보니 한국 만화였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습니다.”⊙
이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만화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일본말)’다. 초등학생 때 만화책 따라 그리는 것을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웹툰을 기반으로 재생산된 드라마·게임 등 2차 콘텐츠가 쏟아지는, 그야말로 ‘웹툰’이 대세인 지금 이씨는 웹툰계에서는 꽤 성공한 인물이다.
‘미생(未生)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웹툰 작가 윤태호씨, 1세대 웹툰 작가 강풀씨와 비교하긴 이르지만, 이씨도 2011년부터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 〈닥터 프로스트(Dr.Frost)〉가 큰 인기를 끌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진 것이다.
〈닥터 프로스트〉는 상담심리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2012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았다. 〈닥터 프로스트〉는 현재 케이블채널 OCN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 중이다. 매주 일요일 밤 11시에 방송하지만, 평균 시청률이 1.9%로 순항하고 있다.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이씨는 케이블채널 tvn의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더 지니어스 시즌3: 블랙가넷’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이씨를 비롯하여 카이스트 출신의 유명 수학강사 남휘종, 멘사 회원 배우 하연주, 강용석 전 국회의원, 서울대 치대 출신 가수 김정훈, 카이스트 재학생인 오현민, 하버드 출신의 신아영 아나운서 등이 출연했다. 이씨는 이 프로그램에서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돋보이는 두뇌 플레이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뭔가 특별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그를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2009년 9월 부천만화정보센터가 승격한 것으로 국내 유일의 만화진흥 기관이다.
인터넷을 의미하는 웹(web)과 만화를 의미하는 카툰(cartoon)을 합성한 말. 종이로 출판된 만화가 아니라 인터넷·모바일에서 볼 수 있는 만화를 뜻한다. |
8살부터 만화가 꿈꿔
이곳에서 마주한 이씨는 TV에서와는 실물이 달랐다. TV에서 봤을 때는 덩치가 있어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실제 보니 날씬했다. 얼굴도 본인 실제 나이(1982년생·33세)보다 적어 보였다.
—처음부터 이런 말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TV 화면보다 실물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엄청 꾸미고 출연했는데요. 얼굴도 그렇고, TV가 실제보다 더 크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렇게(실물이 더 낫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요. (웃음)”
—언제부터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습니까.
“8살요.”
—8살이면 매우 일찍부터 꿈을 꾼 것인데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제가 만화책을 보고 그림을 따라 그리면 친구들이 좋아했어요. 그게 아주 좋았습니다. 보통 다 그렇지만 처음 동기는 허접하지 않습니까.(웃음)”
—그 허접한 꿈이 커 가면서 바뀌지 않았네요.
“나이를 먹으면 보통 꿈이 변하기 마련인데 저는 운이 좋게도 꿈을 더욱 구체화했습니다. 중학교 때 가장 저명한 만화 이론서인 스콧 매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를 읽으면서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파괴력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때 만화가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만화가 아니라도 영화, 기사, 출판물 등 파괴력을 가진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만화를 선택한 것은 돈이 없이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 없이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 중에는 웹툰의 파괴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웹툰은 출판만화와는 달랐다. 과거 한 명의 만화가와 다수의 문하생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집단창작 방식과 달리 웹툰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 한 명이 모든 것을 한다.
—돈이 많았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습니까.
“굳이 꼽자면 영화감독 아니면 게임 개발자입니다. 제가 영화랑 게임을 좋아하거든요.”
심리학과를 선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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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웹툰에서 인기리에 연재중인 이종범 작가의 〈닥터프로스트〉의 한 장면. |
“이 인터뷰 나가면 ‘잘난 척한다’고 비난받을 것 같은데…. 잘했습니다. 전교 1등 하고, 수능도 2개 틀렸으니까요.”
—부모 입장에서 공부 잘하는 아들이 만화가 된다고 하면 속 좀 상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제 세대까지는 만화가란 직업에 대한 부모의 반대가 심했지요. 저희 아버지께서 조건을 걸었습니다. 성적이 잘 나와야 만화를 그릴 수 있게 해 주겠다고요. 아버지께서는 제가 공부를 하기 싫어서 만화를 그린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정말 만화가 좋아서 만화가가 되겠다고 하는지 진실을 알고 싶었나 봐요. 저는 정말 만화가가 꿈이었기 때문에 공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성적이 좋아야 만화를 그릴 수 있으니까요.”
—그럼 만화가가 되는 것을 부모님이 반대한 것은 아니네요.
“고등학교 때 크게 한번 반대를 하셨는데 그때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어떻게요.
“보통 부모님들은 ‘내가 너보다 더 잘 아는데’로 시작하시잖아요. 그래서 저는 만화와 관련한 조사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특히 만화를 그리다가 실패한 케이스를 몽땅 모아 프레젠테이션하듯이 부모님 앞에서 발표했습니다.”
—왜 실패 케이스만 모아서 이야기했나요. 부모님이 더 불안해하지 않았나요.
“중요한 것은 실패한 원인입니다. 실패 원인을 잘 알고 있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까. 이런 점을 어필한 것이지요.”
—장래 희망을 두고 부모와 마찰을 빚는 학생은 작가님 방법을 써야겠네요.
“자식 걱정하는 것은 부모님의 특권입니다. 보통 학생들이 ‘내 인생 내 것이야’라고 떼를 쓰지만 어떻게 인생이 자신 혼자의 겁니까. 부모님이 낳고 키워 주지 않았습니까. 대개 부모님들은 명예나, 수익 안정성을 중요시합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때문에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본분을 지키는 것은 물론 부모님이 걱정하는 포인트를 잘 잡아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을 설득했는데, 왜 심리학과를 선택한 것입니까. 만화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 학과를 선택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가 ‘대학에 진학해서 만화보다 더 좋은 게 있으면 그것을 하되 계속 만화를 하고 싶으면 해야 하니까 작가 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전공을 고르자’고 제안하셔서 아버지와 상의를 해서 전공을 고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심리학과를 지원한 것이군요.
“네. 저는 인문학이 만화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학과를 고르다가 체계적이고 논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심리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원래는 서울대 인류학과도 생각했었는데 점수가 안 돼서 못 갔습니다. 당시 수능 점수 인플레가 심해서 만점자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연세대 심리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사실 다른 매체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잘난 척한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습니다.”
—대표작인 〈닥터 프로스트〉는 천재 심리학자가 수사에 합류, 범죄를 해결하는 내용의 심리 수사극(搜査劇) 인데 심리학을 전공한 것이 도움됐겠습니다.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면 시도하기 어려운 이야기이긴 합니다. 전공이 심리학이라고 해서 심리학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디서부터 취재를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거든요. 이런 면에서 전공이 도움 됐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작품 때문에 심리학과 학생들에게는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심리학은 사람을 보고 읽어 내는 학문이 아닙니다. 질문을 하는 학문이죠. 사람을 꿰뚫어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작품 초반에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주인공인 닥터 프로스트가 사람의 마음을 읽어 내는 장면을 담았거든요. 이런 것을 심리학도들이 가장 싫어합니다. 뒷부분까지 보신 분들은 정통심리학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이라고 평가해 주시지만 앞부분만 보신 분들은 ‘사이비’라고 비난합니다. 이해는 갑니다. 학부생들은 공부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공부한 것 이외의 것이 나오면 ‘사이비’로 보거든요.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지만요.”
—웹툰 작가 중 명문대(名門大) 출신이 많은가요.
“많습니다. 서울대 출신들도 많습니다. 어느 분이 인터넷에 ‘명문대 출신 웹툰 작가’라고 정리해 놓은 것을 봤는데 ‘왜 이렇게 많지?’라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변지민(미대) 이가영(국어교육학과) 김지우(건축학과)씨는 대표적인 서울대 출신의 인기 웹툰 작가다.
—명문대 출신으로 성공한 웹툰 작가가 많더라고요. 인기를 얻는 데 고학력(高學歷)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오타쿠적 기질이 강할 수는 있지만 웹툰의 인기와 수입은 학력, 외모, 나이, 그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미생의 성공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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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씨는 웹툰 미생의 성공이유에 대해 “확실한 취재”라고 했다. |
“태호 형(이씨는 미생의 윤태호 작가와 형 동생하는 사이이다)이 유명한 작가잖아요. 태호 형 작품이면 ‘믿고 본다’는 독자들이 많지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본인이 취재를 열심히 한 뒤 작품을 내놓기 때문에 태호 형 작품은 매번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저도 배우려 하고 있고요.”
—윤태호 작가가 요즘 ‘핫’하지 않습니까. 자주 봅니까.
“예전에는 소주도 한잔하고 했는데, 요즘에 너무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듭니다.”
—취재를 만족할 만큼 하고 작품을 내놓는 편입니까.
“저는 재미있는 만화는 취재가 받쳐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읽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는 내용이 되려면 현실을 잘 반영해야 하고, 그러려면 정확한 취재가 필수입니다.”
이씨는 목표하던 음악만화를 위해 재즈밴드 드러머로 활동하기도 했다.
—취재 어렵지 않던가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무명(無名)일 때는 취재에 잘 응해 주지도 않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제가 그림과 스토리에 그다지 자신이 없어서 일찌감치 전문 소재를 직접 공부해 가면서 취재형 만화를 그려야만 데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쉽지 않더군요. 일단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만나 주질 않았습니다. 사전 조사를 열심히 하다가도 직접 전문가를 만나 봐야 할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시간을 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메일을 보내면 당연히 답장이 없고, 그나마 답장이 오더라도 ‘바빠서 여건이 안 된다’, ‘미안하다’ 일색이었습니다. 그래서 범죄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도 취재에 응해 주지 않아서 영화사나 언론사 등의 마크를 맘대로 박아 넣은 가짜 명함을 만들었어요. 다행스럽게도 그 가짜 명함을 사용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냥 그 정도로 절박했었다는 이야기지요.”
—작품이 잘 나온 것을 보면 취재를 잘했다는 이야기인데요.
“전문가의 시간은 귀하니까 돈으로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인터뷰 비용을 마련한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이 선택에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힘들게 모은 수십만 원으로 그들의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산 셈이니 하나마나 한 질문으로 인터뷰 시간을(=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사전조사를 했습니다. 물론 이 방법도 금전적인 부담으로 인해 계속하진 못했지만 이때의 시도는 취재의 기본에 대한 아주 좋은 레슨(lesson)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해졌으니, 과거보다는 취재가 수월해졌겠네요.
“그렇진 않습니다. 최신 작품을 위해 폐쇄병동을 취재해야 하는데 아무 데서도 협조를 안 해 줍니다. 웹툰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와주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은 호의(好意)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지요.”
—취재를 많이 하면서 노하우도 생겼겠습니다.
“처음부터 전문가 인터뷰나 전문서적, 논문을 취재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것은 ‘엄밀한 사실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팩트는 딱딱합니다. 그래서 발상이 자유롭게 뻗어 나가는 것을 처음부터 제한합니다. 논문이나 다큐멘터리를 위한 시작으로는 좋을 수 있지만 웹툰 스토리의 시작으로는 좋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많이 이들을 취재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좋은 답변은 좋은 질문에서 나오고, 좋은 질문은 대부분 구체적이다’입니다. 막연하게 질문하면 제 아무리 전문가라도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느 지점까지 고민과 조사로 나아간 상태에서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 질문하면 인터뷰의 밀도도 높아지고 문답이 알차게 진행됩니다. 전문가 인터뷰를 하면 무조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지망생들에게는 도움이 될 만한 취재의 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보다 조금 더 벌어”
5~6년 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웹툰은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이 될 정도로 이제 명실상부한 주류 문화로 정착했다. 현재 네이버 웹툰의 1일 이용자는 620만명이다. 시장 파이가 커진 만큼 인기 웹툰 작가의 수입도 매우 증가했다. 내놓는 작품마다 히트작 반열에 오르는 소위 A급 웹툰 작가들은 한 해 수입이 억대에 이른다. 이씨의 수익은 얼마나 될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얼마나 법니까. 네이버 웹툰 작가의 최고 수입은 월 7800만원에 이른다고 하던데요.
“그런 말도 들었는데 확실히는 모르고요. 저는 따라가려면 멀었습니다.”
—그래도 작품이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조회 수도 높으니 한 달에 1000만원 정도는 벌어들일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민감해하는 것 같은데 그럼 이렇게 묻죠. 친구 중에 대기업 출신이 많을 텐데요. 그들보다는 많이 버나요.
“제가 웹툰 작가 5년차인데요. 3년차까지는 대기업 간 친구들에 비해 너무 못 벌었습니다. 2년 전부터는 비슷하게 간 것 같고, 현재는 제가 조금 더 버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더 법니까.
“웹툰을 연재할 때는 2배를 더 벌 때도 있고, 연재를 안 할 때는 아주 조금 더 벌 때도 있고, 그때그때 다릅니다.”
웹툰 작가는 포털사이트에 작품을 게재해 받는 원고료와 영화 판권, 캐릭터사업, 광고, 서적 출판 등으로 수익을 얻는다. 현재 주요 웹툰을 제공하는 네이버와 다음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기준에 따라 원고료를 지급한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다음은 원고료 산출에 작품 조회수를 주로 활용한다. 네이버는 조회수와 연재 분량, 작가의 지명도, 직전 작품의 원고료 등 6~7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웹툰을 생계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인기 작가는 300명 정도라는 보도(2014년 9월 17일 MBC)가 있던데요. 나머지 수많은 작가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까.
“제가 진로특강을 하면 수익에 대해 많이들 물어봅니다. 그러면 신인이 받는 평균 연봉, 5년차 이상의 어느 정도 성공한 작가 연봉, 그리고 마지막으로 업계 최고가 받는 연봉, 이 세 가지를 설명해 줍니다. 우선 신인이 받는 평균 연봉을 보자면 10년 전만 해도 월 40만~50만원 받으면서 작업을 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쁘지 않은 금액으로 시작합니다. 한 달에 140만~150만원 정도 벌지요. 최근에는 유료사이트가 많아지면서 시작하는 고료가 200만~300만원인 곳도 많이 생겼어요. 20대 초반에 데뷔해서 버는 수입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30대 중반의 회사원들과 비교하기에는 부족하지만요. 두 번째 웹툰 작가로 차기작 꾸준히 내고 5년 정도를 잘 버틴다면 대기업 사원보다는 더 법니다. 물론 프리랜서 직종인 만큼 안정성은 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업계 톱(TOP)은 수십억을 벌지요.”
—미생의 성공으로 윤태호씨의 수익이 100억원이 넘는다고 하던데요.
“아, 그런가요. 태호 형한테 직접 물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책이 200만 권이 팔렸으니 대충 계산해도 수익은 어마어마하지요.”
—예상했던 것보다 웹툰 작가 환경이 좋네요.
“요즘은 학부모님들이 먼저 물어봐요. 웹툰 작가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요. 웹툰 작가라는 직업은 전반적으로 처우가 좋아진 프리랜서 직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마추어 웹툰 작가가 14만명이라고 하던데요. 진입 문턱이 너무 낮은 것 아닙니까. 아무래도 웹툰 작가로서 재능이 있어야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까.
“제가 데뷔 준비를 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재능이 없다고 느꼈을 때였습니다. 그림, 스토리 다 잘 안 됐거든요. 그런데 5년 동안 웹툰 작가 하면서 느낀 점은 운동선수를 제외하고 특정한 직업에 어떤 재능이 필요하다는 사고방식은 틀린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들보다 그림과 스토리가 약했지만, 술을 잘 마시고, 모르는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이런 장점으로 일반 웹툰 작가들이 취재하기 어려워하는 분야를 취재하는 데 성공했지요. 재능이 없다고 포기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웹툰 해외 경쟁력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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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씨는 케이블채널 tvn의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더 지니어스 시즌3: 블랙가넷’에 출연하기도 했다. |
웹툰은 단순한 인기를 넘어 ‘한국 드라마’ ‘케이팝(한국 대중가요)’에 이은 ‘한류(韓流) 3번 타자’로 부각되고 있다. 스마트 시대, 최고의 디지털 콘텐츠’라 부르는 웹툰(웹+카툰)이 한류 콘텐츠로 비상할 채비를 하는 것이다.
실제 네이버는 올해 미국시장을 정조준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해외 시장에서 웹툰은 블루오션으로 평가받는다”며 “내년 미국시장 성공을 위해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2014년 북미 최초 웹툰 포털인 타파스미디어와 손잡고 해외진출에 나선 다음은 내년에는 중국과 일본시장 진출을 꾀한다. 다음 관계자는 “해외 유수의 콘텐츠 업체와 제휴를 통한 현지화 전략이 핵심”이라며 “웹툰 콘텐츠를 양산해 향후 수익성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정부도 2014년 5월 28일 “케이팝(K-POP)에 이어 만화 한류를 키우겠다”며 ‘만화산업 육성 중장기 계획(2014〜2018)’을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세계 만화 시장 매출 규모는 9조원. 이 중 웹툰의 비중은 2017년 22.8%(3조원)로 예측된다. 문체부 관계자는 “웹툰은 한국이 개발한 창의적인 콘텐츠이기 때문에 전 세계 대중문화를 주도할 경쟁력이 높다”고 말했다. ‘웹툰 한류’, 가능한 꿈일까.
이씨는 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일이 있었어요. 우크라이나에서 웹툰 하나가 올라왔는데 조회 수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5126만명)보다 더 많았습니다. 이 만화가 뭘까. 연구 좀 해 보자고 해서 알아봤더니 네이버 웹툰이었어요. 그 나라 사는 사람이 자기네 말로 번역해서 불법으로 올린 것이었지요. 이런 적도 있었어요. 제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초대받아 갔는데 그곳에 미국 팬들이 왔더라고요. 이런 사례들만 봐도 우리나라 웹툰이 해외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 세계 곳곳에서 한국 ‘웹툰’이 읽히고 있다. 웹툰은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나 콘텐츠 공유 사이트를 통해 확산된다. 특히 ‘망가폭스(mangafox)’를 비롯한 만화공유 사이트가 한국 웹툰을 세계로 확산시킨 주요 루트다. 이 사이트에는 세계 각국의 만화 1만여 종을 영어로 번역해 올린다. 저작권이 지켜지지 않는 불법 사이트지만 세계 만화의 추세와 인기를 알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그간 망가폭스 인기순위는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같은 망가(manga·일본 만화)가 휩쓸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신의 탑’ ‘노블레스’ ‘갓 오브 하이스쿨’ 등 한국 웹툰이 순위권에 들기 시작해 1~10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늘었다.
—국내 웹툰이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콘텐츠가 새롭고 창의적이기 때문 아닐까요. 기술도 훨씬 앞서고요. 제가 대만에서 열린 국제만화가대회에 초청을 받아 한국 웹툰의 제작 방식을 설명하고 왔는데 제 이야기를 듣던 다른 나라 작가들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웹툰 작가들은 배경을 3D로 만듭니다. 건축 쪽에서 쓰는 프로그램을 웹툰에 응용한 것이지요.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 작가들이 제일 잘합니다. 이런 이야기만 해 줘도 다른 나라 작가들은 매우 신기해하지요. 다른 나라 작가가 발표하는 것을 들어보면 우리가 10년 전에 하던 것들을 지금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디지털 테크닉 같은 기술적인 측면은 외국보다 우리가 압도적으로 앞서 있습니다.”
한 콘텐츠 전문가는 “해외 작가와 독자들은 엄청나게 빠른 작업 속도를 보이는 한국 웹툰에 놀라움을 표한다”며 “우리의 독특한 웹툰 콘텐츠가 해외에서도 어필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높은데 해외에서도 충분히 승산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타파스미디어 김창원 대표는 “미국 작가들이 1년 그릴 분량을 한국 웹툰 작가들은 한 달이면 그린다”며 “연재만화가 빨리 업데이트되기를 원하는 것은 세계 공통인데 그런 의미에서 한국 웹툰은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만화 하면 일본 아닌가요.(일본은 만화 종주국으로 불린다)
“일본에서 100만 권이 나갔던 마지막 망가는 원피스(일본을 비롯한 전세계에 두꺼운 팬층을 가진 인기 만화)가 마지막입니다. 일본은 내수시장이 크다 보니까 경각심이 별로 없습니다. 기존 독자만 봐 줘도 돌아간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죠. 그렇다 보니 새로운 독자 유입이 거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인기 많고 파괴력 넘치던 망가도 줄어들었지요. 유럽에 있는 독자들로부터 ‘일본 망가인 줄 알고 재미있게 봤는데 알고 보니 한국 만화였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습니다.”⊙
지윤구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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