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과학기술원·월간조선 공동기획 - 마지막 블루오션, 태평양 도서국 14개국 르포 ⑩ (끝) : 월간조선

지난 2월 말, 태평양 도서국(島嶼國) 현지취재의 마지막 행선지인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약칭 PNG)에 도착했다. 수도(首都) 포트모르즈비(Port Moresby) 인근에 있는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뜨거운 기운이 기자의 숨통을 막는 듯했다. 직전에 들렀던 섬나라 ‘나우루’에 비해 훨씬 더웠다.

한국을 떠나기 전 주한(駐韓) 파푸아뉴기니 대사관을 통해 비자를 받으려 했으나 한 달 이상 시일이 걸린다는 대사관 관계자의 얘기를 듣고 현지 공항에서 비자를 발급받고자 했다.

기자 일행은 입국비자를 받는 곳으로 이동했다. 대기하는 사람이 많아 1시간 이상 기다렸다. 비자발급 비용으로 현금을 내는 사람도 있었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차례가 왔다. “어떻게 왔느냐”는 공항 직원의 질문에 “비즈니스와 관광을 겸해 왔다”고 하자 직원은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말을 두 번이나 했다. 비자발급 비용도 무료였다. 비자발급대 옆에 적힌 문구가 눈에 띄었다.

<호주 여권을 가진 방문객은 2014년 3월 1일 자부터 공항 현지발급이 중단된다. 사전에 방문비자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파푸아뉴기니는 올해부터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관광객에 한해 비자발급 비용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호주 사람에 대해서는 비자발급 조건이 오히려 까다로워졌다. 최근 들어 양국(兩國) 관계가 다시 악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이유는 현지를 취재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입국절차를 마친 후 공항 밖으로 나오자 주(駐)파푸아뉴기니 한국대사관 소속 전종윤 영사가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전 영사는 과거 피지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 태평양 국가의 사정에 밝았다. 그는 포트모르즈비 시내로 들어오는 30여 분 동안 이 나라 사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줬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은 혼잡 그 자체였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가 눈에 걸렸다.

파푸아뉴기니 略史

16세기 초 포르투갈 항해사 조지 메네세스(Jorge Meneses)가 처음 발견했다. 1828년 네덜란드가 섬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서부를 점령하고 나서 1895년 영국과 네덜란드의 식민지 경계획정협정을 토대로 영국이 남동부를 장악했다. 북동부 지역은 독일이 점령했다.

1902년 영국 점령지가 호주로 이양되면서 호주 군부가 1921년까지 군정(軍政)을 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이 지역을 잠시 점령했다가 종전(終戰) 이듬해인 1946년 호주가 다시 동부 지역(지금의 파푸아뉴기니)을 신탁통치했다. 과거 네덜란드가 지배했던 서부 지역은 인도네시아 영토가 됐다. 동부 지역의 파푸아뉴기니는 1975년 독립했다.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라는 말은 곱슬머리(frizzy hair)라는 의미의 말레이어(語)에서 유래한 ‘파푸아(papua)’와 아프리카 기니 해안의 주민과 유사한 데서 따온 ‘뉴기니(New Guinea)’의 합성어이다.

국토 면적은 약 46만3000km²로 한반도의 두 배이다. 본토 외 600여개 섬으로 구성됐다. 인구는 710만명이다(2010년 기준). 태평양 섬나라 중에서 인구와 면적이 최고 수준이다. 인종은 멜라네시안(96%)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마이크로네시안과 폴리네시안이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언어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800여 종에 달하는 부족이 고유 언어를 쓰고 있다. 기독교가 대부분이지만 지방에서는 토속신앙을 숭배한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2009년 기준으로 미화(美貨) 약 1247달러이다. 수도는 35만명이 거주하는 포트모르즈비(Port Moresby)이다.

파푸아뉴기니 내에는 부겐빌 자치지역이 있다. 2005년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總選)이 시행됐고 이때 부겐빌 자치정부의 대통령이 선출됐다.

파푸아뉴기니의 정부형태는 의원내각제이다. 총리, 부총리를 포함한 각료 30명이 내각을 구성한다. 의회는 109석으로 구성되며 의원의 임기는 5년이다.

파푸아뉴기니는 2000년대 들어 태평양 도서국가의 리더 역할에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북진(北進) 정책(Look North Policy)을 펴 한국,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증진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태평양 도서국포럼 정상회의를 비롯해 멜라네시안 4개국 정상회담을 유치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태평양게임, 2018년에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도 개최한다.

지구 다양성의 중심지

치안불안으로 경비원들이 육중한 호텔 철문에서 투숙객 여부를 일일이 확인한다.

파푸아뉴기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뉴기니(호주 북쪽으로 적도 인근에 있는 섬)의 동쪽 절반을 영토로 하는 나라이다. 뉴기니는 19세기 제국주의 물결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두 국가로 나누어졌다. 네덜란드의 통치를 받았던 뉴기니 서쪽은 1969년 인도네시아의 한 주(州)로 편입됐다(파푸아로 불림).

세계적 석학(碩學)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책 《어제까지의 세계》를 통해 뉴기니 섬의 변화된 모습을 추적했다.

<뉴기니 고원지대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서 수천 년이 걸린 변화를 지난 75년 동안 압축적으로 겪었다. 고원지대 사람들 개개인에게는 변화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뉴기니의 몇몇 친구는 내게 “10년 전에도 돌도끼를 만들고, 전통적인 부족 전쟁에 참가했었다”고 말해 주었다. (중략) 어떤 점에서 뉴기니는 600만년이란 인간 진화의 역사에서 바로 어제까지 인간 세계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여주는 창문이라 할 수 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지적처럼, 뉴기니는 지구 환경은 물론 인류 문명의 변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지구 다양성의 중심지인 셈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조향숙 까리따스(caritas) 여자기술학교 이사장은 파푸아뉴기니에 대해 “17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나라”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 문명이 아직도 이곳에는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 파푸아뉴기니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가장 신경이 쓰인 부분은 치안 문제였다. 과거 파푸아뉴기니 주재 미국대사 부인이 강간을 당한 적도 있었다. 치안상황은 이후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불안하다고 한다. 인근 태평양 섬나라 나우루의 외교부 국장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파푸아뉴기니에 가면 경비견을 데리고 다니는 경찰이나 경호원을 쉽게 볼 수 있다. 은행에 들어가려면 은행 정문 앞에서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있는 경비원을 통과해야 하고, 은행 안으로 들어가면 또 경비견을 데리고 있는 경비원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기자가 묵을 호텔 정문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육중한 철문 앞에서 현지 경비원이 차량을 가로막았다. 투숙객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고서 들여보내 줬다. 호텔 관계자는 “세계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가 파푸아뉴기니”라고 했다. 외국인은 특히 밤길을 조심해야 한다고도 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100달러를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강도를 만날 때 돈을 주면 그냥 풀어 주지만, 아무것도 없을 때는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스꼴(rascal)이라고 불리는 떼강도가 법질서를 파괴하는 주범이라고 했다.

이륙을 준비하는 기회의 나라

사진은 파푸아뉴기니 공항에 전시된 전통 조각품이다.

기자 일행이 머문 호텔은 작년 6월 문을 열었다. 시설은 여느 나라 호텔 못지않게 훌륭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호텔의 주인이 파푸아뉴기니 현직 수상 피터 오닐(Peter O'Neill)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부인이 호텔 운영을 맡고 있었다. 미모(美貌)의 40대 중반인 수상 부인은 호텔 도착 당일 로비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녀는 매일 아침 8시 출근해 오후 3~4시까지 업무를 본 후 퇴근한다고 했다. 그녀와의 인터뷰는 다른 일정으로 인해 성사되지 않았다.

전종윤 영사의 현지 설명이 계속됐다.

“일부 현지인들은 총을 갖고 다닙니다. 대낮에도 흉기를 들이대며 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과거보다 아주 좋아졌지만, 아직도 치안이 불안한 상태입니다. 과거 이 나라는 호주가 통치했는데 그 영향력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요. 1980년대까지 호주 경찰이 이곳 치안을 맡았습니다. 지금도 50여 명의 호주 경찰이 남아 있어요. 최근 들어 호주와 사이가 안 좋아요. 호주가 운영하는 난민수용소 때문이기도 해요. 이 나라 북쪽에 있는 마누스 섬에 난민수용소가 있습니다. 호주 정부는 수용소 운영자금으로 연간 3억 달러를 파푸아뉴기니에 지원하고 있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는 수용소 난민들이 주거 환경과 인권 문제를 이유로 물리적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튿날 포트모르즈비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한국대사관에서 김성춘(金性春) 대사를 비롯해 대사관 주요 관계자를 만났다. 작년 10월 이곳에 부임한 김성춘 대사는 기자에게 “올해 우리 공관을 방문한 첫 번째 손님”이라며 반겼다. 김 대사는 “치안이 불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이 나라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며 태평양 도서국가와 파푸아뉴기니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운전자가 무장하고 있음을 알리는 차량 문구.

김 대사는 브리핑 자료까지 만들어 현지 실정을 들려줬다.

“이 나라는 천연자원은 물론 경제적으로 기회가 넘치는 나라입니다. 창공(蒼空)을 향해 이륙을 준비하는 최신 항공기 A-380처럼 대국(大國)입니다. 더군다나 한국과 한국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호의적입니다. 가수 싸이는 특히 유명해요. 파푸아뉴기니 정부 고위층 인사들은 한국의 경제적 번영 경험과 발전한 민주주의를 배우려고 우리나라를 자주 방문합니다.”

김 대사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과의 인연은 일본 강점기부터 시작됐다.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 3000여 명이 일제의 의해 끌려와 죽어 간 역사적 아픔이 있는 곳이다.

김 대사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분야별로 설명해 줬다.

“1975년 독립 이후 정당(政黨)에 기초한 민주주의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당은 부족의 대표 기능에 불과해요. 군소 정당이 난립하고 여러 정당이 합종연횡해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지요. 내각책임제로 인해 정당 간 이합집산에 따라 기존 정부가 무너지고 새 정부가 들어서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몇 년 전 정치 안정화의 목적으로 선거가 끝나고 18개월간 불신임안을 상정할 수 없도록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파푸아뉴기니는 매력적입니다. 가스 등 에너지 자원과 구리, 금 등 광물자원이 풍부하지요. 특히 LNG(액화천연가스)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연 8~9%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어요. 물론 정부정책의 일관성 결여, 부패,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 미비, 치안 불안, 관습적 토지제도 등의 단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PNG의 독특한 문화 ‘원톡’

파푸아뉴기니는 2015년 태평양게임과 2018년 APEC 총회를 개최한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곳에 또다른 변화의 소용돌이가 칠 듯하다.

김 대사의 계속되는 설명이다.

“사회문화적 특징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먼저 이 나라에는 ‘원톡(onetok)’ 문화라는 게 있어요. 같은 부족어(語)를 사용하는, 생사를 같이하는 친구(friend)라는 개념인데 공식·비공식적 관계를 설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게 너무 강하게 작용해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토지 소유 문화를 예로 들지요. 이 나라의 절대다수 토지는 부족에 의한 관습적 소유제도하에 있어요. 헌법도 이를 인정하고 있는데 전 국토의 97%가량이 이에 해당합니다. 땅을 소유하는 부족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원톡’ 소속 일원으로 구성돼 있지요.

파푸아뉴기니에는 사인(私人) 간 보복(payback) 문화가 남아 있는데 이 또한 원톡 때문입니다. 부족 중 한 사람이 다른 부족에 의해 공격을 받았을 때 상해(傷害)를 받은 만큼 복수를 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지요. 그래서 공권력에 의한 형벌 집행이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부족 간 사건이 터지면 경찰은 협상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중재자 역할을 합니다. 이런 문화는 파푸아뉴기니 북쪽의 고원지대에 남아 있어요. 이 나라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축첩제도입니다. 사회 고위층 인사 중에는 첩을 둔 인사들이 많아요. 하나의 관습처럼 남아 있습니다. 이런 문화는 다른 태평양 국가에서도 종종 볼 수 있지요.”

김성춘 대사는 이런 여건에도 파푸아뉴기니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했다.

“파푸아뉴기니는 올해 하반기부터 LNG를 생산, 수출합니다. 수익만 4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성장률은 세계적 수준이 될 겁니다. 그뿐 아닙니다. 파푸아뉴기니는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 사이에서 키 맨(Key man) 역할을 하는 중요한 나라입니다. 2018년에는 APEC 회의도 개최해요. 한마디로 국제정치, 경제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아주 큰 나라이지요. 이런 점을 우리나라 언론이 국민에게 많이 알려야 합니다. 두 나라 국민 간 교류도 많아져야 해요. 사실 이 나라 정부 고위 인사들은 한국을 자주 방문합니다. 새마을운동에도 관심이 아주 많아요. 그에 비해 우리 정부 인사들의 답방은 드뭅니다.”

파푸아뉴기니 인구는 710만여 명이다. 젊은층 비율이 높다. 한 가정에 자녀가 4명 이상이라고 한다.

파푸아뉴기니 한국대사관은 5월 파푸아뉴기니에서 ‘한국-파푸아뉴기니 무역투자페어’를 개최한다. 산업부에서 파견 나온 조택연 1등 서기관의 말이다.

“태평양 도서국 중 2002년 이후 10년 넘게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는 나라가 바로 파푸아뉴기니입니다. 710만여 명의 인구 중 젊은 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한 가구당 4명 이상의 자녀를 두고 있지요. 경제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걸 의미해요. 특히 2018년 APEC 회의 개최를 앞두고 대규모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현재 이 나라의 주요 교통수단은 항공기와 배뿐입니다. 국토 내륙에는 도로가 없다고 보면 됩니다. 만들어야 하는 도로가 많아요.

파푸아뉴기니는 한국의 농업, 수산업, 산림은 물론 에너지, IT산업에서까지 교류·협력하기를 원해요. 우리로서는 이 나라의 광물자원뿐만 아니라 공항·항만 현대화 사업, 전력 시장, 태양열 주택 등에서 시장성이 있어요. 또 경찰 장비와 군 무기 등 정부 조달시장에서도 우리가 참여할 여지가 많아요.”

파푸아뉴기니 대사관에서 경제보좌관으로 일하는 오거스틴 라파(Augustine rapa) 씨에 따르면, 파푸아뉴기니 정부는 2018년 APEC 회의 준비 목적으로 포트모르즈비 항구의 일부를 매립해 대규모 컨벤션센터를 지을 예정이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처럼 이 나라 랜드마크가 될 초고층 건물도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경쟁적으로 PNG 지원에 나선 중국과 일본

김성춘 駐파푸아뉴기니 대사.

파푸아뉴기니는 국제적으로 태평양 섬나라와 아시아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활발히 하고 있다. 피지, 솔로몬군도, 바누아투, 나우루 등 인근 도서국 중에서 리더 역할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태평양 지역을 비핵(非核) 지대로 만드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자국(自國)을 지배했던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도 노력하고 있다. 경제적 도움 때문이다. 수상 등 주요 장관들은 수시로 일본을 방문, 경협증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 결과 일본은 호주 다음으로 대규모 지원을 하고 있다. 지원 규모는 유무상 원조, 기술 원조 등 연평균 4000만 달러에 달한다. 일본이 지원하는 분야는 사회 인프라, 교육, 문화, 지역 개발, 보건 등 다양하다.

중국도 경제지원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파푸아뉴기니가 ‘하나의 중국(One China)’ 정책을 적극 지지하면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술협력’ 프로그램에 따라 연평균 500만 달러 이상을 지원한다. 중국은 특히 파푸아뉴기니에 대규모 니켈 광산도 개발했다.

인접국 호주는 파푸아뉴기니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자 전체 원조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원조국이다. 양국 교류는 무역, 투자, 국방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그러나 지배국과 피지배국이라는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호주로부터 탈피하겠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호주와 파푸아뉴기니 간 돌발 사건이 발생하면 양국 관계는 곧바로 경색된다. 2005년 호주 브리즈번 공항에서 소마레(Somare) 당시 파푸아뉴기니 총리가 호주 출입국사무소 검색요원으로부터 과잉 검색을 당한 적이 있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파푸아뉴기니는 2006년 호주 정부가 성범죄자로 지목한 줄리안 모티(Julian Moti·호주시민권자)가 파푸아뉴기니에 입국하자 그를 솔로몬 군도로 비밀리에 탈출시켰다. 이 일로 양국은 정치적으로 상당 기간 대립했다.

호주, 일본, 중국보다 우리나라의 대(對)파푸아뉴기니 지원 규모는 미약하다. 보건소 2개 건립, 일부 정보통신 분야 지원, 코이카 협력사업 등 소규모에 머물고 있다. 물론 민간 차원의 투자는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파푸아뉴기니에는 우리 교민 2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대체로 생활 수준이 높다고 한다. 18년 거주 경력의 국영삼 한인회장은 파푸아뉴기니의 전략적 중요성을 시급히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언론은 파푸아뉴기니를 오지(奧地)로만 보도합니다. 식인 풍습이 있다는 둥 과거 풍습이나 반라(半裸) 상태의 고원지대 부족민들을 흥밋거리로 보도해요. 미래 투자가치 차원에서 이 나라를 보지 않아요. 일본은 태평양전쟁 때 이 나라를 침략했지만, 종전 직후 1946년부터 재정적 지원을 해 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나라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곳 현지인들은 일본에 대해 감정이 나쁘지 않아요. 만약 독도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공방을 벌일 때 이 나라는 일본을 지원할 게 뻔해요. 이 나라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갖도록 한국 언론이 노력해야 해요. 긍정적인 부분,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보여줘야 해요.”

현지인들과 情으로 교감하는 교민들

국영삼 駐파푸아뉴기니 한인회장.

수산업을 하는 정승화 사장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가능성이 많은데 한국은 왜 이 나라에 관심이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중국인은 오래전에 이곳 상권을 장악했어요. 그들이 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분야도 아직 많아요. 이 나라가 치안이 불안하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20년 넘게 사는 동안 강도를 만난 건 5~6건에 불과해요. 생계형 강도가 대부분이죠. 사람을 죽이지는 않아요. 가진 것을 주면 그만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뛰어가고, 멀리 가려면 친구와 함께 걸어가라’는 말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을 이해하고 친해지면 아주 좋은 친구로 만들 수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정(情)이 많아요. 이를 바탕으로 이곳 현지인들과 어울린다면 충분히 자리를 잡을 수 있어요. 우리와 달리 중국인들은 인간미가 별로 없다고 이곳 사람들은 생각해요. 일본인은 여기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잠시 왔다가 돌아가는 봉사단원들이 대부분입니다.”

국영삼 한인회장은 이곳 하이랜드 지역에서 유통업을 하는 강대원씨를 현지화의 모범 사례로 꼽았다. 그의 말이다.

“강대원 회장은 치안이 좋지 않다는 곳에서도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분이 운영하는 10여 개 매장의 하루 매출이 한국 돈으로 10억원에 달해요. 현지인들에게 인간적 정을 갖고 일일이 대해요. 공익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현지인들의 마음을 샀지요. 강 회장은 이곳에서 마음씨 좋은 부자(富者) 기업인으로 통합니다. 몇 년 전 하이랜드 지역에 산사태가 나 생활용품 품귀 현상이 발생했을 때, 다른 유통매장은 두 배 이상 가격을 올려 팔았지만 그분은 원래 가격 그대로 팔아 신뢰를 얻은 일화(逸話)는 이곳에 널리 알려져 있지요.”

이곳 현지에서 자동차 부품 판매업을 하는 심민섭씨도 가짜 부품이 아닌 정품(正品)을 적정한 가격에 판매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그는 파푸아뉴기니 정부에 경찰, 군, 소방 관련 물품을 대주는 쪽으로 사업 분야를 넓히고 있다고 한다.

PNG의 첫 LNG 생산공장 세운 대우건설

포트모르즈비의 電力 30%를 생산하는 ‘한중파워’의 유재우 전 법인장(오른쪽)이 발전소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고민식 법인장은 “경찰 현대화 사업, 사회 인프라 건설에도 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맹활약하는 한국 기업도 있다. 포트모르즈비의 소비 전력(電力) 30%를 생산하는 ‘한중파워’는 1999년 이곳에 화력발전소를 세워 수도의 주요 가정과 기업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는 발전소 가동 이후 적지 않은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한다. 현지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발전소 설립 초창기부터 현지에 파견돼 15년 넘게 근무하다 지난 3월 정년 퇴임한 유재우 전 법인장은 산업 공로를 인정받아 석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고민식 현 법인장은 “발전소 외에 병원, 경찰 현대화 사업, 사회 인프라 건설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며 강한 사업 의지를 보였다.

수도 시내에서 30km가량 떨어진 곳에는 완공단계에 있는 LNG 플랜트 공장이 있다. 공장을 지은 건설사는 우리의 대우건설이다. 올해 가을 정상 가동을 앞두고 현재 시험 가동 중이다. 이 공장은 파푸아뉴기니의 첫 LNG 개발 현장으로, 이 나라의 최대 관심 지역이기도 하다. 이 공장이 가동하면 이 나라의 GDP는 두 배 이상 늘어난다. 미국 정유회사 엑손모빌이 150억 달러를 투자해 연간 630만t의 LNG를 생산한다. 대우건설은 EPC3, 즉 메인 프로세서(process, 가스를 액화하는 설비) 건설을 맡았다. 현지 대규모 공사에 우리 기업이 진출한 것은 사실상 첫 번째이다. 1972년부터 국내 업체가 토목이나 건축 등에 참여했지만, 소규모 공사에 불과했다.

김영후 대우건설 현장 소장의 말이다.

“큰 공사를 사고 없이 마무리해 개인적으로 뿌듯합니다. 공사가 한창일 때는 현장 근로자가 5000명에 달했지요. 경험과 저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파푸아뉴기니는 천연가스도 많고 원유도 많은 자원 부국입니다. 국제적 행사도 많이 예정돼 있어요. 기업이 관심을 갖기에 충분합니다.”

김 소장은 공사 기간에 토지 문제 해결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공사가 한창일 무렵 한 부족이 ‘공장 부지는 우리 땅’이라며 불쑥 나타났어요. 그러자 연달아 세 부족이 등장해 서로 자기 땅이라고 난리를 쳐댔습니다. 이 나라 특유의 원톡 문화가 현실로 나타난 거죠. 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 싶어 고민하다가 한 현지인에게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죠. ‘현지인은 그룹으로 다뤄라.’ 네 부족의 대표에게 서로 싸우지 말고 서로 합의를 해서 하나의 안(案)을 가져오면 협상에 응하겠다고 했지요. 그렇게 해서 토지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태권도 사범 와 달라”

까리따스 여자기술고등학교의 조 플로렌티나(Florentinaㆍ본명 조향숙) 이사장. 태권도 사범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과 기업인들은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애국자라 하기에 충분했다. 현지에서 봉사하는 한국 수녀들도 빼놓을 수 없다. 까리따스 수녀회는 1995년 이곳에 ‘까리따스 여자기술고등학교’를 설립, 방황하는 파푸아뉴기니 젊은 여학생들에게 기술 중심의 여성 교육을 하고 있다. 제빵, 수예, 바느질, 꽃꽂이, 컴퓨터, 미용술 등은 물론 성경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전교생에게 우리의 태권도를 익히게 한다는 점이다.

학교 설립 이전부터 이곳에 파견돼 봉사해 온 조 플로렌티나(Florentina·본명 조향숙) 이사장은 “지금까지 2000여 명이 졸업했는데 절반 이상이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계속한다”며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뛰어들어 사업가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고,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는 학생을 볼 때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까리따스 수녀회는 2016년 파푸아뉴기니 진출(1986년 첫 진출) 30주년을 기념해 킴베 지역에 두 번째 학교를 열 예정이다. 전교생 500~600명 규모로 재학생 80~90%가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할 예정이다.

조 이사장은 “1986년 이곳에 처음 왔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많이 변하지 않았다. 17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나라이다. 교육의 힘이 더욱 필요한 곳”이라고 했다. 조 이사장은 한국 정부와 기업 그리고 뜻있는 개인 기부자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태권도 사범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2015년 태평양게임을 앞두고 까리따스 여자기술고등학교 내에 태권도 선수단을 만들었는데, 최근 태권도 사범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국으로 돌아가 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조 이사장은 어려운 나라를 도와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고 성장했습니다. 이제 갚아야 할 때가 왔어요. 도움이 필요한 곳이 어딘지 찾아나서야 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걸 얘기하고 싶어요. ‘다른 나라 젊은이들이 외국에서 어떻게 봉사활동을 하는지 눈으로 보라. 해외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힘이 들지만 배우는 게 더 많다’고요. 우리는 일본이나 중국처럼 돈으로 태평양 국가를 친구로 만들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의 마음과 노력으로 태평양 국가를 우리의 품에 안을 수 있습니다.”⊙

태평양 도서국 현지 르포를 마치며

1년 넘게 진행해 온 한국해양과학기술원·월간조선 공동기획-태평양 도서국 현지 르포가 이번 호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해양과기원 측에서는 박흥식 태평양해양연구센터장과 김선욱, 권희윤 연구원이, 월간조선에서는 백승구, 이정현, 김정우, 하주희 기자가 참여했다. 취재진은 태평양 14개 도서국 중 니우에를 제외한 13개 국가를 다녀왔다. 9개 나라의 최고 통치자(대통령 또는 수상)를 비롯해 국회의장, 각부 장관, 사회지도자 등 수십 명의 최고위 인사들을 만났다. 태평양 도서국 전체를 취재한 언론사는 《월간조선》이 유일하다.

태평양에서 한국의 인지도는 생각보다 높았다. 그러나 현지인들이 생각하는 우리의 지위는 높지 않았다. 특히 중국·일본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 여지는 충분했다. 돈이 아닌 인간적, 문화적 접근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서양의 지배를 경험한 그들은 역사적으로 우리와 아픔을 공유할 수 있다.

한 가지 인정할 게 있다. 일본과 중국이 태평양 국가를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히 우리와 달랐다. 그들의 시각은 그야말로 넓고 깊었다. 대양(大洋)제국의 DNA(유전자)를 가진 일본은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난 다음해부터 이들 나라를 금전적으로 지원해 왔다. 대륙국가의 DNA를 가진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인해전술(人海戰術)처럼 이들 나라에 정착해 왔다. 중국 정부는 2000년대 들어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대양제국의 DNA도, 대륙국가의 DNA도 부족한 우리는 태평양 국가의 중요성은 차치하고 관심조차 없다. 고작 해야 경제적 투자가치를 운운하며 100원을 투자하면 200원을 벌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고 있다.

우리 정부의 외교전략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다. 2011년에서야 한국-태평양도서국 외교장관회의(Korea-Pacific Islands Foreign Ministers’ Meeting)를 서울에서 열기 시작했다. 그것도 3년 주기로 개최할 뿐이다. 외교부의 대(對)태평양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태평양 국가의 풍부한 해양자원을 이 시점에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다. 이들 국가의 전략 가치에 대해 한 가지만 생각해 보자. 바로 통일 문제다. 중국이나 일본, 미국, 러시아 등 한반도의 주변국은 남북통일에 쉽게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통일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 세계 각국의 지지를 받는다면 이들 4강도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유엔 차원이라면 태평양 국가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독립국인 태평양 도서국은 중국, 미국, 일본처럼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한다.

아베 총리가 올해부터 몇 차례에 걸쳐 태평양 국가를 방문할 것이라고 최근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지만, 우리에게도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언제쯤 태평양 국가를 방문할까? 우리는 과연 태평양을 향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터뷰] 클레멘트 웨인 파푸아뉴기니 공기업·국가투자부 차관

“태평양게임, APEC 총회가 PNG 위상 높일 것”

파푸아뉴기니 정부에는 공기업·국가투자부(Ministry of public enterprise & state investment)가 있다. 국가 차원의 공공사업과 투자를 담당하는 신설 중앙부처이다. 전기회사, 공항, 수도, 항구, 항만, 정보통신 사업뿐만 아니라 은행, 천연가스, 농업, 임업과 수산업 등 개발 전반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이다. 작년에는 석유자원에 대한 정책 전반을 수립했다. 미국에서 공부한 클레멘트 웨인(Clement Waine) 차관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고,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 그의 부인은 최근 한국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고 한다.

“2년 전 여수엑스포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여수로 내려가는 동안 한국의 시골마을을 구경할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와 분위기가 비슷했습니다. 농업 사회에서 산업기술 사회로 발전해 온 과정과 변방국가에서 중심국가로 성장한 모습도 볼 수 있었어요. 파푸아뉴기니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됐지요.”

그는 한국과의 우호 증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파푸아뉴기니는 오랫동안 서양의 식민지로 있었습니다.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동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과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가족 중심, 민족 중심의 사회적 배경 또한 비슷합니다. 문화적 정체성을 해결하는 데 한국이 모델이 될 수 있지요. 다만 아직 한국이 파푸아뉴기니를 보는 시각이 ‘자원이 많은 나라’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많은 한국사람이 파푸아뉴기니에 오기를 희망합니다. 치안 불안을 지적할 수가 있는데 이는 조만간 개선될 겁니다. 파푸아뉴기니는 한국의 조선, 전자, 정보통신 분야의 협력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또한 군사 분야에서도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웨인 차관은 “파푸아뉴기니는 인류학적으로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국제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외교적 경험이 약한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생존했고 번영을 해 왔습니다. 파푸아뉴기니도 자원과 인구가 풍부한 인도네시아, 호주에 둘러싸여 있어요. 20년 뒤 우리가 어떤 모습을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인접한 인도네시아와는 무역, 외교 분야에서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어요. 호주와는 정치, 경제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사나독트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나라와 적대관계를 갖지 않고 친구로 지내는 것을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호주와 오랜 관계를 유지해 온 파푸아뉴기니는 북쪽 아시아 국가를 향해 ‘함께 간다’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조정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 태평양게임과 2018년 APEC 총회가 파푸아뉴기니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인터뷰] 권문상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정책연구소장

“태평양 국가, 국제정치적으로 우리에 큰 도움 돼”

권문상(權文相) 해양과기원 해양정책연구소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해양법 및 해양정책 전문가이다. 해양경계획정에 관한 연구로 경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30년 넘게 해양과기원에서 일해 왔다.

주니어 연구원 시절부터 유엔해양법 준비위원회 정부대표로 참여했고 이후 국제해저기구 정부대표로도 활동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해양개발기본법을 주도해 1996년 해양수산부 발족에도 크게 기여했다.

한국북극과학위원회 창립위원, 행정안전부 해상경계설정 자문위원, 해양경찰연구소 자문위원장, 세계해양법 서울 연차대회 조직위원장 등 국내외 활동도 활발히 해 왔다.

2006년 설립한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 초대 원장을 지낸 그는 재임 중 연구비 예산을 대폭 확보, 해양과학 발전을 앞당겼다.

3년 임기를 마친 후 해양과기원으로 다시 복귀, 현재 해양정책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해양정책연구소는 태평양과 도서국가에 대한 인문, 사회과학적 연구까지 포함하고 있다. 권 소장은 한국해양정책학회장과 적도해양포럼 운영위원장도 맡고 있다.

권 소장은 태평양 도서국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자원(資源)에 대한 개념이 달라집니다. 생태계 자체가 자원이 되는 거죠. 태평양이라는 해양 공간은 우리의 삶에 필수적 생활 공간이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태평양 국가들의 위상이 매우 높아질 겁니다. 태평양 섬나라는 21세기, 22세기를 살아가는 데 우리의 동반자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태평양 도서국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해요.”

그는 향후 태평양을 통해 인간의 의식주가 해결될 것이라 전망했다.

“흔히 바다를 무한한 자원의 보고(寶庫)라고 하는데 그곳에는 단순히 물고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석유에서 옷이나 건축자재 원료를 뽑아내는데, 앞으로는 해양자원에서 생필품 원료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미래의 자원 보고로서 가치가 높아요.”

현재 해양과기원은 마이크로네시아 축주(州)에 태평양해양연구센터를 두고 있다. 이 연구센터는 해양생물자원 확보는 물론 바이오에너지 소재 생산, 흑진주 양식 기술 개발 등 해양과학 연구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권 소장은 해양연구센터의 산모(産母) 역할을 했다. 김대중 정부 초창기 해양수산부의 주력 사업이었던 ‘태평양 해양과학 전진기지 설치’를 위한 현지 실사 등 실무 업무를 그가 도맡아 했다.

권 소장은 “태평양 도서국가에 대한 외교 전략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섬나라들이 만족할 정도로 지원하기에는 우리의 재정 규모가 풍부하지 않습니다. 정책결정자 중 일부는 해외 원조를 낭비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아요.

그러나 이들에 대한 지원은 낭비가 아니라 투자라고 봐야 해요. 일본은 패망 직후부터 태평양 국가들에 재정적 지원을 해 왔습니다. 오늘 망했어도 내일을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았던 것이죠. 태평양 국가는 경제적으로 당장 도움이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정치적으로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우리 정부가 개최하는 외무장관급 회의를 총리급 회의나 대통령급 순방외교로 격상해야 합니다. 섬나라에 대한 지원도 대폭 늘려 세계 10위권의 경제 선진국으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