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榮錫
⊙ 61세,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 외교부 구주국장, 주 노르웨이 대사, 주 이탈리아 대사 역임. 現 페레로 한국 고문.
⊙ 61세,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 외교부 구주국장, 주 노르웨이 대사, 주 이탈리아 대사 역임. 現 페레로 한국 고문.
- 바티칸 정원 안에서 바라본 성 베드로 교회의 쿠폴라(둥근 지붕). 광장 쪽에서 바라볼 때와 느낌이 다르다.
로마는 역사가 긴 만큼 별명도 많다. 그중에 유명한 것이 ‘카푸트 문디(Caput Mundi)’, 즉 ‘세계의 수도’다. 이렇게 불리게 된 데는 물론 고대 로마제국의 수도였던 것이 큰 배경이겠다.
당시 로마제국의 판도는 실질적인 경합세력이 없는 가운데 여러 문명과 종족을 포괄하는 하나의 세계였다. 하지만 이 별명을 얻게 된, 못지않은 이유는 로마와 기독교 간의 숙명적인 관계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갈보리 언덕에서 처형당한 후 그 제자들은 망연자실, 반신반의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려 흩어졌다. 1번 제자 베드로가 제국의 심장을 목적지로 택한 데 이어 명예제자 바울도 로마행을 결심한다. 기독교는 이내 로마 사회 구석구석에 빠른 속도로 퍼져 갔다.
로마제국의 전성기로 대개 네르바, 트라야누스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 소위 5현제 시대를 꼽는다. 영국의 사가 기번(E. Gibbon)도 《로마제국의 쇠망》에서 ‘세계사상 인류가 가장 행복했고 번성했던 때를 한 대목 특정하라면 아마 도미치아노(황제)의 사망으로부터 코모두스(황제)가 제위에 오르기까지의 시기일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로마제국의 발전이 정점으로 치닫던 시기에 기독교 또한 굳건한 바닥을 다져 갔던 것이다. 3세기 들어 제국의 피로 조짐이 현저할 때도 기독교는 특유의 호소력과 응집력으로 일반 시민은 물론 로마의 전통 귀족과 엘리트 층까지 흡수해 갔다. 이미 문지방을 넘은 확산추세 앞에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는 오히려 이 세상의 종말과 새 세상의 도래가 임박했다는 또다른 조짐일 뿐이었다.
첫 교회 바실리카 콘스탄티노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은 어찌 보면 이러한 대세를 추인한 것이다. 기독교도의 수는 로마 인구의 10분의 1에 육박했고, 기독교도들 내부의 체계와 규율은 제국의 제도적 통제를 앞서 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콘스탄틴은 밀비오 전투 승리로 기독교에 감사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제국의 안정을 위해 기독교회의 협조 확보가 긴요했을 것이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가 소집되었을 때 콘스탄틴은 참석한 주교들을 친구라 부르고 자신을 ‘비(非)신도들의 주교’(그는 죽음에 임박해 세례를 받았다)라고 하는 등 친근감을 보였다고 한다. 이제 콘스탄틴은 대대적인 교회 건설 지원에 나선다. 카타콤베 등 지하시설이나 독지가의 사저(titulus)를 활용하던 파란의 시절을 뒤로 하고, 못 보던 대형 교회들이 황제의 지원으로 속속 건립되어 로마의 랜드마크가 되고 신도들의 순례지가 되었던 것이다.
우선 콘스탄틴이 건립한 교회들을 먼저 돌아보자. 첫 교회가 당연히 고마운 황제의 이름을 딴 ‘바실리카 코스탄티니아노’(Basilica Costantiniano)다. 나중에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S.Giovanni in Laterano)로 개명된 로마의 주교좌(主敎座) 교회다. 이탈리아의 마을이나 도시는 대표교회(카테드랄레 혹은 두오모)가 하나씩 있는데, 로마의 주교회는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교회가 아니라 라테란에 있는 성 조반니(성 요한) 교회다.
라테라노는 당시 로마의 부자 귀족 신도의 이름인데 자신의 거처이던 라테란궁 주변을 교회 건립에 기증하면서 이 교회의 별칭으로 굳어졌다. 기독교사의 큰 대목에 주요 종교회의나 조약체결이 여기서 많이 이루어져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뒤편에 따로 있는 세례당이나 정면으로 길 하나 건너 있는 구 라테란궁(15세기 바티칸으로 옮길 때까지 1000년간 교황의 관저)도 흥미롭다.
다만 역사적 교회로서 또 로마의 카테드랄레이자 전세계 교회들의 모(母)교회로서 특별히 호기심을 건드리는 볼거리는 없는 편이다. 거듭되던 증·개축이 반(反) 종교개혁의 열정이 넘쳐 나던 시절에 이르러 바로크 일색으로 마무리된 결과다. 그래도 정면 지붕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서 있는 두 조반니(세례 요한과 복음서 저자 요한) 일행의 스카이라인이 상쾌하고 내부 중앙통로 양 옆으로 도열해 순례객을 반기는 열두 제자 입상들의 위엄이 특별하다.
聖 베드로 교회
콘스탄틴의 지원으로 세워진 두 번째 교회가 ‘바실리카 디 산 피에트로’(Basilica di S.Pietro) 성 베드로 교회다. 이 교회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1번 사도이자 초대 교황이 순교 후 묻힌 곳이어서 상징성이 대단하다. 상징성 위주이던 이곳이 15세기 들어 오늘 우리가 아는 위상과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아비뇽 시대와 대분열(Great Schism)을 뒤로 한 교황들은 이후 아무도 로마를 무단히 장기로 비우지 않았다. 니콜라스 5세, 피우스 2세, 식스투스 4세 등 걸출한 교황들이 속출해 교황청의 상대적 위상을 높인 시기였다.
니콜라스 5세 때 교황의 공식 거소를 바티칸으로 옮긴 데 이어 율리우스 2세는 산 피에트로의 대대적인 개축에 착수하여 오늘의 장대한 모습을 기약한다. 말이 개축이지 콘스탄틴 시절의 교회를 전부 헐고 새로 지은 실질적인 신축이었다. 교황 20명이 120년(1506~1626) 걸려 끝낸 대역사였다. 부수 작업으로 진행된 교황의 거소와 사무실들 그리고 전용 경당(Capella Sistina)을 짓고, 고치고, 꾸미는 데 동원된 고급 인력 명단은 우리가 익히 아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을 포함해 그대로 당대 이탈리아 미술계의 방명록이었다(이곳은 볼거리가 많은 대신 사람도 많다. 특히 여름 휴가철에는 한정된 공간에 입장객이 너무 많아 관람이 어려울 정도다. 역사와 문화의 향취에 앞서 관람객들의 체취가 먼저 느껴지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 못지않게 정보 또한 많은 IT세상이니 젊은이들은 대안이 없지 않아 다행이다).
聖유물이 많은 산타 크로체 인 제루살렘메
중세 내내 마찬가지지만 특히 초기교회 시절에는 성유물(聖遺物)에 대한 교회들의 애착이 컸다. 당연히 예수와 직접 관련 있는 유물을 최고로 쳤고 사도들과 순교성인들의 유골과 유품도 치열한 확보경쟁의 대상이었다. 구매, 절취, 강탈 등 취득방식도 다양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원정대를 알렉산드리아에 파견해 성 마르코의 유해를 통째로 모셔다가 거창한 두오모를 만들어 봉헌하고(Basilica di San Marco), 아예 공화국의 수호성인으로 삼았다. 아래 소개하는 성 헬레나의 경우와 함께 유품 반입 대형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사례다.
어떤 때는 타협의 결과로서 또는 시혜의 제스처로 도저히 나누어선 안될 것 같은 유품까지 쪼개고 나누고 떼어 갖는 경우가 많았다. 성인의 머리칼을 한 줌 나눠 주거나 손가락을 하나 잘라 주는 것은 지금의 우리 생각으로는 엽기 수준이다.
그 선도적 모범을 이들 콘스탄틴의 양대 교회가 보였다. 다소 괴이한 일이나 베드로의 유해를 분리해 몸체는 산 피에트로가 보관하고 산 조반니 성당은 두개골을 모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후 승천하시어 유골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베드로의 유해는 당시 최고 권위의 원천이었으니 이 권위를 두 최고 교회가 과점(寡占)한 셈이었다.
성유물에 관한 한 독보적인 소장(所藏)을 자랑하는 교회가 산타 크로체 인 제루살렘메(S.Croce in Gerusalemme)다.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에서 도보 10분 거리인데도 사람이 많지 않아 고즈넉하다. 신앙 깊은 콘스탄틴의 모친 헬레나는 기독교 공인의 위업에 최대의 배경 역할을 한 뒤 칠십 노구와 대규모 발굴단(?)을 이끌고 성지 예루살렘을 직접 찾는다. 그 때 반입해 온 엄청난 분량의 성유물들을 한데 모시려 역시 콘스탄틴이 세운 교회다.
그 목록은 잠깐만 보아도 인상적이다. 예수가 못 박혔다는 십자가(Vera Croce)의 조각, 가시관에서 뜯어 낸 가시, 십자가형에 사용했던 못, 예수의 옆구리에 상처를 냈던 로마 병사의 창, 그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봤던 성 도마의 손가락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예수의 피땀을 닦았던 베로니카의 수건은 성 베드로 성당에 옮겨 ‘특별’ 보관 중이고, 예수가 출두할 때 올랐던 빌라도의 집 계단은 통째로 뜯겨 와 라테란궁 옆 교황의 개인 채플(Santa Santorum)의 접근계단으로 전용되었다. 지금도 참배객들은 예수의 고난을 상기하며 이 성계단(Santa Scala, 28계)을 무릎으로 오른다. 500년 전 마르틴 루터는 시도하다 중도 포기했다는 얘기가 있다.
聖 바울이 斬首된 자리에 선 세 분수 수도원
다음으로, 오스티아 유적지 가는 길로 시내를 조금 벗어난 곳에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S.Paolo fuori le Mura)가 있다. 성 밖의 바울 교회란 말인데 여기서 성(城)은 지난 호에 얘기한 아우렐리아노 성벽이다. 베드로 교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콘스탄틴이 바울의 무덤 자리에 세운 교회다. 324년 오픈한 뒤 내외 순례자들의 방문이 넘쳐나 4세기가 채 가기 전인 395년 테오도시우스(기독교를 국교로 선포) 시절에 거의 오늘의 규모로 증축했다. 19세기 대화재 이전의 규모는 성문 안의 베드로 교회를 넘어서는 규모였다고 한다.
내부에 들어서면 탁 트인 높고 너른 공간에 코린트 장식의 콜로네이드(colonade·列柱)가 압도해 오고, 역대 교황들의 공식 초상화 메달리온들이 벽면 상단에 프리즈(frieze) 장식처럼 둘러쳐져 있는 게 흥미롭다. 중세 작품으로는 제단 위의 치보리움(ciborium)과 그 옆의 초대형 부활절 촛대(candelabro pasquale)를 놓칠 수 없다. 치보리움은 13세기말, 문학에 단테, 그림에 지토, 조각에 아르놀포라던 그 아르놀포(Arnolfo di Cambio, 1245~1302)의 명품이다.
바울 교회까지 왔으면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있는 아바치아 델레 트레 폰타네(Abbazia delle Tre Fontane, 세 분수 수도원)도 봐야지 싶다. 사도 바울이 참수를 당한 자리에 12세기 초 세워진 시토회 수도원이다. 전해 내려오는 바에 따르면 참수된 성 바울의 머리가 떨어지며 세 번을 땅에 튀었는데 튄 자리마다 샘물이 솟아 나왔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교회를 세우고 샘물 자리마다 경당을 조성해 놓았다.
기독교의 중심, 로마
산 로렌초 푸오리 레 무라(S.Lorenzo fuori le Mura)도 가 보아야 할 교회다. 성 로렌초는 258년 발레리아누스의 탄압 때 철제 격자 위에 묶여 화형으로 순교했는데 콘스탄틴이 특별히 흠모하던 성인이었다.
성 밖이라지만 산타 크로체 교회에서 도보로 잠시다. 젊은이들이 북적대는 대학 동네인데도 교회에 다가서는 순간 단번에 시골 분위기가 난다. 입구 포르티코(portico)에 얹힌 이오니아 기둥머리와 테라코타 기와지붕이 소담해 우리 절집 같은 분위기다. 모자이크 장식이 단아하고 성 로렌초의 생애를 그린 프레스코화 연작의 고색(古色)이 와 닿는다. 통로(nave)는 물론 설교대(pulpito)와 합창석(coro)의 코스마티 장식(Cosmati·중세 말 코스마티 일가가 시작한 기하학적 패턴의 채색 대리석 모자이크)이 잘 어울리는 좋은 곳이다.
이곳에는 성 로렌초의 순교 1600여 년 뒤 가톨릭 현대사의 최대 굴곡을 몸소 겪은 교황 피우스 9세가 묻혀 있다. 이탈리아 통일의 공식 연도인 1861년에서 9년을 더 버티던 피우스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인근 피오 문(Porta Pia) 전투를 끝으로 세계의 수도를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넘겨주고 바티칸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콘스탄틴 대제는 이렇게 기독교 로마의 단단한 기초를 잡아 주고 홀연 로마를 떠난다. 기원 330년 유럽과 소아시아를 잇는 요충지에 자신의 이름을 따 새로운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한 것이다. 천도(遷都)의 효험인지 제국의 명맥은 서로마가 멸망한 후로도 1000년을 더 가지만 비잔틴 제국은 머지않아 과거 로마와는 많이 다른 길을 간다.
황제가 떠나가도 야만족들이 몰려와도 로마는 기독교의 중심이란 상징을 놓지 않았다. 중세, 근대를 거치며 교회의 수는 계속 늘어 오늘 로마의 교회 수는 1000곳을 헤아린다.
어찌 골라 돌아보면 좋을까? 이미 본 다섯 교회를 포함해 30여 곳은 봐야 할 것 같다. 로마사, 유럽사, 종교사, 건축사, 미술사 등에 복수로 걸쳐 있는 교회들 중 최소한이다.
바티칸과 라테란 사이의 캄피돌리오
다니기 전에 로마 시내 지리 공부를 조금 하자. 고대 로마는 로물루스 형제가 늑대 젖을 먹던 팔라티노 언덕을 포함해 일곱 언덕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일곱 개 모두 구시가지 안이다. 그중에도 중심이 현재 로마 시청이 있고 과거 주피터 신전이 있던 캄피돌리오 언덕이다. 캄피돌리오 바로 뒤가 포로 로마노(Foro Romano)로서 원로원을 포함해 고대 로마의 공공건물 단지이고 그 앞이 시내의 중심으로 베네치아 광장에 통일기념관이 있다. 이 캄피돌리오 일대가 곧 세속권력의 상징이다.
종교권력(동시에 교황령을 통치하는 정치권력이기도 하다)은 15세기 교황의 거처가 바티칸으로 옮겨지면서 산 피에트로 교회가 중심이 되지만 역사적으로 라테란의 상징성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과거 교황의 행렬이나 종교 행차들은 주로 바티칸과 라테란 사이를 오갔는데, 이 두 지점 간에 직선을 상정할 때(로마 시가지의 자연발생적 성격으로 직선도로는 길지 않다) 캄피돌리오가 그 중간지점에 위치하는 것이 공교롭다. 우리가 돌아보려는 교회들은 대개 이 어간에 있다. 특히 캄피돌리오 서쪽은 판테온 근처를, 캄피돌리오 동편은 첼리오 언덕과 에스퀼리노 언덕 주변을 주로 다니게 될 것이다.
聖母 마리아에게 봉헌된 교회
콘스탄틴이 로마를 떠난 후 세워진 교회 중에 먼저 보아야 할 곳이 에스퀼리노 언덕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교회(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다. 352년 신전 자리에 교회를 지어 432년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봉헌되었다. 마리아의 이름이 교회명으로 등장한 최초다.
여기에는 기독교사의 큰 대목이 함께한다. 콘스탄틴은 로마의 기독교를 위해 교회 건립에도 큰 일을 했지만 교리 확립에도 못지않은 공을 세웠다. 카르타고 사제 도나투스의 재 세례 주장(Donatism)과 알렉산드리아 사제 아리우스의 보다 근본적인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의 동질성 문제 제기(Arianism) 등을 두루 로마교회의 입장에 따라 정리해 주고 로마를 떠났던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 후 이번에는 콘스탄티노플 주교 네스토리우스가 못지않게 심각한 얘기를 꺼낸다. 성수태와 관련해 그리스도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함께 갖고 있고, 마리아는 신(神)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주장이다(Nestorianism). 에페소 공의회(431)에서 이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데 성공한 교황 식스투스 3세는 승리를 자축할 겸 이듬해 산타 마리아의 이름으로 대교회를 낙성한 것이다. 이 일은 종국에 로마(Catholicism)와 콘스탄티노플(Orthodoxism)이 ‘대분열’하는 단초 중의 하나가 되고 이후 역대 교황들은 성모와 성모자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다투어 나섰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 이 교회의 모습은 실로 장려(莊麗)하다. 우선 중앙통로(nave) 양 옆의 열주가 정연하게 제단을 소실점 삼아 원근법(perspective)을 실천한다. 보통 교회의 기둥들은 재활용 문제상 서로 짝이 안 맞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기둥들은 모두 같은 모양이다. 당시 교황 특별지시로 포로 로마노에서 우선적으로 캐 온 것들이라는 설명이다.
올려다보면 천장의 격자장식이 온통 금빛이다. 스페인의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 부부가 아메리카 대륙을 성공적으로 ‘발견’한 뒤 페루에서 캐어다가 교황 알레산드로 6세에게 선물한 금이란다.
통로 양편에 자리 잡은 경당(capella)들도 각각이 하나의 독립 교회급 규모요 장식이다. 그리고 모자이크! 중앙통로 열 주위의 벽면과 제단 앞 아치 그리고 후진(apside)을 뒤덮은 5세기 모자이크는 두말이 필요 없는 중세 모자이크 미술의 백미다. 시칠리아 몬레알레의 두오모나 라벤나의 산 비탈레(S.Vitale) 교회도 겨우 대적할 흔치 않은 장관이다. 교황 네 명이 이곳을 택해 묻혔고 바로크 로마 건설의 일등공신이자 당대 교황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베르니니(Gianlorenzo Bernini, 1598~1680)의 가족묘도 여기 있다.
이 정도 교회에 성유물이 없을 수 없다. 아기 예수의 성구유(Santa Culla)가 제단밑 지하(cripta)에 모셔져 있다. 에스퀼리노 주변은 테르미니 역도 가깝고 주변이 어수선한 곳이다. 이 교회를 둘러보고 나오면 그 안팎의 대조가 더욱 극명하다. 오늘에도 대비가 이러하니 옛 사람들이 느꼈을 외경심은 짐작이 간다.
모자이크와 성유물이라면 작지만 빼놓지 못할 좋은 초기교회가 길 하나 건너 골목 안에 있다. 산타 프라세데(Santa Prassede)다. 조그만 아치와 앞마당 모양새가 보통 집 입구인데 아닌 게 아니라 고대 로마시절 티툴루스(titulus)로 출발한 교회다. 내부는 역시 전혀 다른 내공을 보여준다. 후진과 둥근 천장에 모자이크의 색조와 표현이 정교해 달리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성유물도 예수님이 직접 관련된 것이 하나 있다. 채찍 형을 당할 때 묶여 있던 기둥의 조각을 보관한 조그만 예배소(oratorio)가 있다. 교회뿐 아니라 많은 로마 건물들에 공통인 외빈내화(外貧內華)의 전형이다.
첫 순교성인 스테파노 모시는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
콜로세움 쪽으로 내려오다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S.Pietro in Vincoli)에 잠깐 들러 미켈란젤로가 만든 율리우스 2세의 모세좌상 묘장식을 음미한 후(성유물은 교회 이름대로 베드로를 묶었던 쇠사슬), 조금 더 내려오면 성 코스마와 다미아노 교회(Basilica di Santi Cosma e Damiano)다. 원래 있던 로물루스 신전터에 526년 덧지었는데 포로 로마노 안에 세워진 첫 교회다.
이 시기 교회들에 공통적이지만 역시 당시 최강 비잔틴 제국의 영향으로 모자이크가 일품이다. 특히 이곳의 모자이크는 성경 스토리를 단순한 도상으로서뿐 아니라 색감으로도 전하려 한 것이 느껴진다. 황혼을 배경으로 천상의 계단을 내려온 그리스도가 양 옆의 사도 베드로와 바울로부터 코스마와 다미아노(아랍인 쌍둥이 형제 의사로 디오클레티아누스 때 순교. 의사들의 수호성인)를 소개받는데 그 색깔과 메시지가 한눈에 형형하다.
교회를 나서면 오른편에 콜로세움이 보이고 콜로세움을 반원만 돌면 눈앞에 보이는 구릉지대가 첼리오(Celio) 언덕이다. 이 일대에 좋은 교회들이 많다. 산 클레멘테 교회 얘기는 지난 호에 했고, 조금 떨어져 있는 산티 콰트로 코로나티(Santi Quatro Coronati, 참 호젓하고 성 실베스트로 경당의 프레스코 시리즈가 흥미롭다)도 좋지만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Santo Stefano Rotondo)를 봐야 한다. 콜로세움의 번잡함이 바로 근처인데 돌연 산골마을에 소슬바람이 이는 듯하다. 원형교회 특유의 단아함으로 기독교 공인 제1호 순교성인 스테파노를 모시고 있다. 성 스테파노는 예수님 처형 얼마 후 유대인들의 돌팔매 형으로 순교했다. 그 현장을 사도 바울이 아직 사울일 적에 목격했고 회개와 개종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순례지 로마
성 스테파노로 시작해 성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 그리고 성 로렌초, 발렌티노, 체칠리아, 아네제, 아가타, 루치아, 카테리나 등등 특히 기독교 박해 시절의 순교 성인들과 그들의 스토리는 기독교 정통성 만들기의 최대 소재였다. 기독교 공인 이전의 교황 31명도 전원 순교했고 추후 모두 시성(諡聖)되었다.
교회들은 이들의 이름으로 세워졌고, 중세 교회의 안팎을 장식한 조각과 부조 특히 그림(프레스코화, 모자이크, 목판화 등)은 대개 성모자(聖母子)를 가운데 모시고 이들 순교 성인이 양옆으로 서 있는 형식이다. 성인들은 (순교한 경우 예외없이) 처형의 도구(스테파노의 돌, 카테리나의 수레바퀴)나 처형의 결과물(루치아의 눈, 아가타의 가슴) 등 특정 아이콘과 함께 표현되어 그 시절 신도들의 식별을 도와준다. 고마운 일인데 경우에 따라 다소 멀리 나가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구경 중인 산토 스테파노 교회에 순교 유형별 종합판 프레스코 연작(連作)이 있다. 효과적인 종교개혁 대응 방안을 고민하던 그레고리우스 13세(1572~1585) 시절 포마란치오가 그린 순교성인 열전 30여 폭이 그것이다. 처형, 곧 순교의 순간들을 자못 노골적으로 묘사해 으스스할 지경인데, 수백 년 세월에 많이 퇴색한 것을 요즘식으로 요란히 복원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이들 성인의 유골을 지근거리에서 느끼고 그들의 유품을 직접 보고 만지고 경배하기 위해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현장을 찾는 이들의 행렬은 진작부터 이어졌다. 순례자들이다. 일찍이 3세기부터 성가족의 연고지와 예수님의 행적지를 찾는 관행이 시작되었는데 이런 관행은 곧 순교성인들의 유골과 유품이 있는 곳을 대상으로 확대되어 갔다.
이러던 것이 7세기 들어 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성지가 마호메트 교도의 무기한(?) 지배하에 들어가며 성지 순례길이 막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순례지 로마가 상대적 중흥기를 맞는다. 성지 순례의 필수적 경유지 정도이던 로마의 위상이 단번에 최대 목적지로 부상한 것이다.
8세기에 들어 로마는 쇠약해진 콘스탄티노플과 성상파괴 문제를 둘러싸고 일전을 치른다. 승리한 로마는 비잔틴 제국의 그림자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교회의 건립과 장식, 성상의 조형과 제작에 박차를 가하며 중세 전성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이런 배경하에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1294~1303)는 1300년을 희년(Jubilee Year)으로 선포하고 대대적인 성지(이제 로마) 순례를 권장해 수십만의 순례자가 로마를 다녀간다. 로마가 기독교 덕택에 세계의 수도로 다시 서는 원년(元年)으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르네상스 수작들을 만날 수 있는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태어난 곳에서 정해진 일을 하며 살다 대개 그곳서 죽었던 중세. 먼 길 떠날 일이 없던 그때 고향을 벗어나 여행하는 사람들은 전부 순례자였다고 보면 된다. 살아서 뭘 구경하고 배우고 즐기자는 차원이 아니라 죽어서 영생을 얻는 것이 유일한 관심인 사람들이었고 시대였다. 이들이 로마에 이르러 제일 먼저 마주치는 관문이 로마의 북대문 격인 포폴로 문(Porta del Popolo)이다.
포폴로 문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왼편에 있는 교회가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Santa Maria del Popolo). 먼 길 온 사람들을 맞는 첫 교회답게 볼거리가 만만찮다. 건축(브라만테, 라파엘), 조각(라파엘, 산소비노), 그림(핀투리키오,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등 다양한 르네상스의 수작(秀作)들을 만난다.
그중에도 일품은 역시 체라시 경당의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 두 점이다. <바울의 개종>과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베드로>! 조그만 경당의 양 벽에 꽉 찬 두 그림이 마치 어릴 적 대한극장에서 70밀리 영화를 보던 느낌이다. 좁은 공간에 과감한 단축법(foreshortening)과 구도상의 대각선 축 활용으로 주제의 극적 효과를 높인 것은 미술사 책에서 본 그대로다. 불어 한마디 하자면 완벽한 coup de scene다.
이렇게, 조각도 그렇지만 그림은 원래 의도되었던 곳에 두는 것이 좋다. 매사 콘텍스트가 중요한 것이고 교회(빌라, 저택도 마찬가지)가 미술관과 차이나는 이유다.
벽 하나 사이에 카라치(Annibale Carracci, 1560~1609)의 제단화도 좋다. 카라치도 초기 바로크를 선도한 큰 별 아닌가? 바로크 회화의 정석(定石)과 묘수(妙手)를 한눈에 가늠해 보는 현장이다. 르네상스 시기 각기 정·재계의 큰 가문이던 델라 로베레(Della Rovere, 교황 식스투스 4세와 율리우스 2세 배출)와 키지(Chigi, 은행재벌로 뒤에 교황도 배출)의 가족 경당들도 아울러 볼 만하다.
갈릴레이가 심문 받은 교회
다음이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Santa Maria sopra Minerva). 로마 가면 대개들 가 보는 판테온 바로 옆에 있다. 알프스 이북에서는 그렇게 흔한 데 비해 정작 로마에는 매우 귀한 고딕 교회다. 드높은 코발트 빛 저녁하늘에 총총한 금빛 별들의 천장 장식이 미상불 하늘나라는 포근하리란 느낌을 준다. 이 교회는 또 학식과 규율을 높이는 도메니쿠스회의 오랜 본부교회여서 갈릴레이도 이곳에 출두해 심문을 받았었다.
이탈리아의 수호성인 카테리나 다 시에나(Santa Caterina da Siena)가 이곳 중앙제단 아래 잠들어 있고 한발 비켜선 곳에 르네상스 초기의 섬세한 성화로 사랑받는 프라 안젤리코의 석관이 편안하다. 미켈란젤로의 그리스도 상과 카라파(Carafa, 나폴리의 유력가문으로 교황 파올로 4세 배출) 경당에 있는 필리피노 립피의 제단화도 잊을 수 없다. 가히 예배 드리는 박물관이다.
역시 판테온에서 멀지 않은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지(San Luigi dei Francesi)는 로마의 프랑스 사람들 교회다. 성 루이(St Louis, 이탈리아 말로 San Luigi)는 프랑스 카페 왕조 때 국왕이던 루이 9세(1214~1270)로 프랑스 역대 국왕 중 유일한 성인이다. 수차례 십자군 원정에 직접 참가했고 결국 튀니지에서 전사했다. 깊은 신앙으로 존경받아 프랑스의 마지막 국왕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들이 왕조 상관없이 루이 이름을 즐겨 취했다.
긴 볼거리 다 줄이고 중앙제단 왼편의 성 마테오 경당으로 바로 가자. 나란히 있는 성 루이 경당의 현란한 바로크가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점잖게 압도하는 그림 3폭! 예의 카라바조다. 정면 제단화 <마테오와 천사>, 왼편의 <마테오 부름>, 오른편의 <마테오 순교>. 포폴로 교회의 강렬한 2폭이 가슴을 친다면 이곳의 잔잔한 3폭은 마음을 열어 준다. 능소능대 카라바조다.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을 북쪽에서 걸어 들어와 베르니니의 <4대강 분수> 턱에 걸터앉아 보로미니 작(作) 산타네제 인 아고네(Sant’Agnese in Agone) 교회의 출렁이는 정면(facciata)을 바라보며 다리를 쉬는 것은 선택사항. 계속 걸어 큰길로 나오면 쿠폴라(cupola)가 시원한 산탄드레아 델라 발레(Sant’Andrea della Valle)다. 바로크가 본격화하던 시기의 이 교회에는 이름난 피렌체 부자들의 가족 경당이 많다. 스트로치와 루첼라이 외에 교황 우르바노 8세를 배출한 바르베리니 가문의 경당도 있다. 이 교황도 피렌체 출신이다. 베르니니를 데리고 로마의 이곳저곳을 뜯어고쳐 로마 사람들은 지금도 옛날 바르바리(barbari, 야만족)가 그나마 남겨 놓은 것들은 바르베리니가 마저 부숴 버렸다고 농담을 한다. 바르베리니 경당은 또 푸치니의 <토스카> 1막의 세팅으로도 유명하다.
이탈리아 바로크의 1번지, 키에자 델 제수
여기서 베네치아 광장 쪽으로 조금 걸으면 있는 키에자 델 제수(Chiesa del Gesu, 예수 교회). 로마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이탈리아 바로크의 1번지다. 새삼스럽지만 예수님 이름을 교회명으로 취한 첫 번째 케이스다. 반 종교개혁의 선도 그룹 예수회를 창설한 성 이냐치오(Ignatio di Loyola, 1491~1556)가 1540년 건립했다.
바로크는 사실 (미술사적인 설명 이전에) 마르틴 루터에 대한 가톨릭의 대답이다. 종교개혁 여파에 대한 대응책 협의를 위해 열렸던 트렌토 공의회(1545~1563)는 ‘가톨릭의 정통성을 더욱 분명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대중에 부각’키로 하고 그 1차 임무를 미술인(건축, 조각, 그림 등)에게 맡긴다. 순교성인들의 고난은 더욱 가슴치게, 주님의 영광은 더욱 눈부시게 드러내어 신학 논쟁보다는 대중의 감성에 직소(直訴)하자는 것이다. 단정하고 균형 잡힌 르네상스 스타일로는 불가능한 임무다. 비뇰라, 델라 포르타, 포조, 가울리 등 바로크 거장들의 재주와 가톨릭 핵심의 시대적 관심이 집약된 의미도 깊고 볼 것도 많은 교회다.
이냐치오 경당의 대형 바로크 조각 <이단을 압도하는 신앙(Fede vince su eretici)>의 메시지가 노골적이다. 밑에 밟혀 신음하는 마귀형상 둘이 각각 ‘Lutero’, ‘Calvino’ 명찰을 달고 있다. 물론 루터와 칼뱅이다.
그밖의 교회들
이탈리아 사람들이 엄살떨 때 “Tanti cose, pochi tempo”란 말을 많이 한다. 할(볼) 것은 많고 시간은 없다는 얘기다. 로마의 교회들을 돌아보는 우리가 지금 그 처지다. 이번 호에 함께 못 가 보는 아까운 교회들을 이제 이름만이라도 소개하니 다음 로마에 가면 꼭 들러 보기 바란다.
먼저 산타 마리아 다라첼리(Santa Maria d’Aracoeli). 캄피돌리오 언덕 122개 대리석 계단 위에 시원하게 자리 잡은 교회로, 이번에 몇 마디라도 소개를 못하는 게 아쉽다. 대통령궁 앞길의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Sant’Andrea al Quirinale)와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S.Carlo alle Quatro Fontane)도 찬찬히 돌아볼 만하다.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테베레 강건너’)에도 좋은 옛 교회들이 많은데 그중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와 산타 체칠리아(Santa Cecilia) 두 곳은 꼭 봐야 한다. 특히 산타 체칠리아의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경내 분위기와 부속 수도원 건물 안에 있는 카발리니(Pietro Cavallini)의 벽화 <최후의 심판>은 놓치면 안된다. 세월이 준 손상에도 ‘유럽미술의 아버지’로서의 면모가 그대로 느껴진다. 로마에는 지오토(Giotto) 그림이 잘 없는데 지오토보다 앞서 활동한 카발리니의 그림이 몇 군데 남아 있는 것은 로마의 자랑이다.
테베레 강을 다시 건너오기 전에 자니콜로 언덕 초입에 있는 작은 교회 산 피에트로 인 몬토리오(S.Pietro in Montorio)도 잊지 말자. 브라만테의 르네상스 명품 〈tempietto〉가 특히 반가운 곳이다.
이왕 걸음인데 한 군데 더 보고 가자. 아벤티노(Aventino) 언덕의 산타 사비나(Santa Sabina) 교회 때문이다. 5세기 초 세워진 후 도메니쿠스 교회가 되어 몇 차례 덧지었지만 초기교회 때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5세기에 나무로 만든 정문(성경 스토리가 부조되어 있다)이 그대로 남아 사용 중이다.
이 교회의 또 하나 장점은 바로 옆의 괜찮은 정원(Giardino degli Aranci)이다. 눈에 잘 안 띄는 조그만 입구를 거쳐 로마의 명품 늘씬한 우산 소나무들을 지나 테라스에 서면 테베레 강 양 옆으로 기가 막힌 로마 시내의 전경이 눈 아래 펼쳐진다. 석양이라도 멀리 베드로 성당의 둥근 지붕에 비끼면 기가 아니라 숨이 막히는 파노라마다. 늘 시원한 바람이 있고 사람들이 적은 곳이라 서울에서 친한 이들이 오면 즐겨 찾던 곳이었다.
‘세계의 수도’
오늘의 마무리다. 16세기의 로마는 르네상스 교황들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유럽 문화와 미술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이 전 유럽에 확산된 것도, 앞서 설명한 대로 그 동기는 많이 다르지만, 진원지는 역시 로마였다. 18세기에 들어서도 이러한 로마의 우월적 지위에 큰 변화가 없지만 이미 세상의 관심은 종교보다 문화예술 자체로 옮아가고 있었다.
이탈리아를 찾는 사람들의 주력은 이미 죽음과 영생에만 몰두하는 순례자들이 아니라 삶과 교양에도 관심 있는 문화인들이었다.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의 로마에 대한 관심은 기독교의 로마가 아니라 고대 로마가 대상이었다. 기독교와 교황의 위상이 옛날 같지 않았다. 유럽의 신사조 계몽주의도 한 역할 한 것은 물론이다. 이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이탈리아의 만능 정치인(문인이요 화가였다)으로 사르데냐 왕국의 수상을 지낸 다젤리오(Massimo d’Azelio, 1798~1866)는 “로마가 통일 이탈리아의 수도가 된다면 ‘세계의 수도’에서 오히려 격하되는 셈”이라는 농반 예언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과연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었고, 예전 같은 ‘세계의 수도’는 더 이상 아니지만, 오늘 우리의 단기속성(短期速成) 순례를 여전히 반겨 주고 그 시절의 귀한 조각들을 친근하게 보여 준다.⊙
당시 로마제국의 판도는 실질적인 경합세력이 없는 가운데 여러 문명과 종족을 포괄하는 하나의 세계였다. 하지만 이 별명을 얻게 된, 못지않은 이유는 로마와 기독교 간의 숙명적인 관계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갈보리 언덕에서 처형당한 후 그 제자들은 망연자실, 반신반의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려 흩어졌다. 1번 제자 베드로가 제국의 심장을 목적지로 택한 데 이어 명예제자 바울도 로마행을 결심한다. 기독교는 이내 로마 사회 구석구석에 빠른 속도로 퍼져 갔다.
로마제국의 전성기로 대개 네르바, 트라야누스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 소위 5현제 시대를 꼽는다. 영국의 사가 기번(E. Gibbon)도 《로마제국의 쇠망》에서 ‘세계사상 인류가 가장 행복했고 번성했던 때를 한 대목 특정하라면 아마 도미치아노(황제)의 사망으로부터 코모두스(황제)가 제위에 오르기까지의 시기일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로마제국의 발전이 정점으로 치닫던 시기에 기독교 또한 굳건한 바닥을 다져 갔던 것이다. 3세기 들어 제국의 피로 조짐이 현저할 때도 기독교는 특유의 호소력과 응집력으로 일반 시민은 물론 로마의 전통 귀족과 엘리트 층까지 흡수해 갔다. 이미 문지방을 넘은 확산추세 앞에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는 오히려 이 세상의 종말과 새 세상의 도래가 임박했다는 또다른 조짐일 뿐이었다.
첫 교회 바실리카 콘스탄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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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의 정면(facciata). 지붕 위 성상들의 다양한 제스처가 만드는 스카이라인이 예쁘다. |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가 소집되었을 때 콘스탄틴은 참석한 주교들을 친구라 부르고 자신을 ‘비(非)신도들의 주교’(그는 죽음에 임박해 세례를 받았다)라고 하는 등 친근감을 보였다고 한다. 이제 콘스탄틴은 대대적인 교회 건설 지원에 나선다. 카타콤베 등 지하시설이나 독지가의 사저(titulus)를 활용하던 파란의 시절을 뒤로 하고, 못 보던 대형 교회들이 황제의 지원으로 속속 건립되어 로마의 랜드마크가 되고 신도들의 순례지가 되었던 것이다.
우선 콘스탄틴이 건립한 교회들을 먼저 돌아보자. 첫 교회가 당연히 고마운 황제의 이름을 딴 ‘바실리카 코스탄티니아노’(Basilica Costantiniano)다. 나중에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S.Giovanni in Laterano)로 개명된 로마의 주교좌(主敎座) 교회다. 이탈리아의 마을이나 도시는 대표교회(카테드랄레 혹은 두오모)가 하나씩 있는데, 로마의 주교회는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교회가 아니라 라테란에 있는 성 조반니(성 요한) 교회다.
라테라노는 당시 로마의 부자 귀족 신도의 이름인데 자신의 거처이던 라테란궁 주변을 교회 건립에 기증하면서 이 교회의 별칭으로 굳어졌다. 기독교사의 큰 대목에 주요 종교회의나 조약체결이 여기서 많이 이루어져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뒤편에 따로 있는 세례당이나 정면으로 길 하나 건너 있는 구 라테란궁(15세기 바티칸으로 옮길 때까지 1000년간 교황의 관저)도 흥미롭다.
다만 역사적 교회로서 또 로마의 카테드랄레이자 전세계 교회들의 모(母)교회로서 특별히 호기심을 건드리는 볼거리는 없는 편이다. 거듭되던 증·개축이 반(反) 종교개혁의 열정이 넘쳐 나던 시절에 이르러 바로크 일색으로 마무리된 결과다. 그래도 정면 지붕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서 있는 두 조반니(세례 요한과 복음서 저자 요한) 일행의 스카이라인이 상쾌하고 내부 중앙통로 양 옆으로 도열해 순례객을 반기는 열두 제자 입상들의 위엄이 특별하다.
聖 베드로 교회
콘스탄틴의 지원으로 세워진 두 번째 교회가 ‘바실리카 디 산 피에트로’(Basilica di S.Pietro) 성 베드로 교회다. 이 교회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1번 사도이자 초대 교황이 순교 후 묻힌 곳이어서 상징성이 대단하다. 상징성 위주이던 이곳이 15세기 들어 오늘 우리가 아는 위상과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아비뇽 시대와 대분열(Great Schism)을 뒤로 한 교황들은 이후 아무도 로마를 무단히 장기로 비우지 않았다. 니콜라스 5세, 피우스 2세, 식스투스 4세 등 걸출한 교황들이 속출해 교황청의 상대적 위상을 높인 시기였다.
니콜라스 5세 때 교황의 공식 거소를 바티칸으로 옮긴 데 이어 율리우스 2세는 산 피에트로의 대대적인 개축에 착수하여 오늘의 장대한 모습을 기약한다. 말이 개축이지 콘스탄틴 시절의 교회를 전부 헐고 새로 지은 실질적인 신축이었다. 교황 20명이 120년(1506~1626) 걸려 끝낸 대역사였다. 부수 작업으로 진행된 교황의 거소와 사무실들 그리고 전용 경당(Capella Sistina)을 짓고, 고치고, 꾸미는 데 동원된 고급 인력 명단은 우리가 익히 아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을 포함해 그대로 당대 이탈리아 미술계의 방명록이었다(이곳은 볼거리가 많은 대신 사람도 많다. 특히 여름 휴가철에는 한정된 공간에 입장객이 너무 많아 관람이 어려울 정도다. 역사와 문화의 향취에 앞서 관람객들의 체취가 먼저 느껴지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 못지않게 정보 또한 많은 IT세상이니 젊은이들은 대안이 없지 않아 다행이다).
聖유물이 많은 산타 크로체 인 제루살렘메
중세 내내 마찬가지지만 특히 초기교회 시절에는 성유물(聖遺物)에 대한 교회들의 애착이 컸다. 당연히 예수와 직접 관련 있는 유물을 최고로 쳤고 사도들과 순교성인들의 유골과 유품도 치열한 확보경쟁의 대상이었다. 구매, 절취, 강탈 등 취득방식도 다양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원정대를 알렉산드리아에 파견해 성 마르코의 유해를 통째로 모셔다가 거창한 두오모를 만들어 봉헌하고(Basilica di San Marco), 아예 공화국의 수호성인으로 삼았다. 아래 소개하는 성 헬레나의 경우와 함께 유품 반입 대형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사례다.
어떤 때는 타협의 결과로서 또는 시혜의 제스처로 도저히 나누어선 안될 것 같은 유품까지 쪼개고 나누고 떼어 갖는 경우가 많았다. 성인의 머리칼을 한 줌 나눠 주거나 손가락을 하나 잘라 주는 것은 지금의 우리 생각으로는 엽기 수준이다.
그 선도적 모범을 이들 콘스탄틴의 양대 교회가 보였다. 다소 괴이한 일이나 베드로의 유해를 분리해 몸체는 산 피에트로가 보관하고 산 조반니 성당은 두개골을 모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후 승천하시어 유골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베드로의 유해는 당시 최고 권위의 원천이었으니 이 권위를 두 최고 교회가 과점(寡占)한 셈이었다.
성유물에 관한 한 독보적인 소장(所藏)을 자랑하는 교회가 산타 크로체 인 제루살렘메(S.Croce in Gerusalemme)다.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에서 도보 10분 거리인데도 사람이 많지 않아 고즈넉하다. 신앙 깊은 콘스탄틴의 모친 헬레나는 기독교 공인의 위업에 최대의 배경 역할을 한 뒤 칠십 노구와 대규모 발굴단(?)을 이끌고 성지 예루살렘을 직접 찾는다. 그 때 반입해 온 엄청난 분량의 성유물들을 한데 모시려 역시 콘스탄틴이 세운 교회다.
그 목록은 잠깐만 보아도 인상적이다. 예수가 못 박혔다는 십자가(Vera Croce)의 조각, 가시관에서 뜯어 낸 가시, 십자가형에 사용했던 못, 예수의 옆구리에 상처를 냈던 로마 병사의 창, 그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봤던 성 도마의 손가락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예수의 피땀을 닦았던 베로니카의 수건은 성 베드로 성당에 옮겨 ‘특별’ 보관 중이고, 예수가 출두할 때 올랐던 빌라도의 집 계단은 통째로 뜯겨 와 라테란궁 옆 교황의 개인 채플(Santa Santorum)의 접근계단으로 전용되었다. 지금도 참배객들은 예수의 고난을 상기하며 이 성계단(Santa Scala, 28계)을 무릎으로 오른다. 500년 전 마르틴 루터는 시도하다 중도 포기했다는 얘기가 있다.
聖 바울이 斬首된 자리에 선 세 분수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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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이탈리아 왕국군과 교황군 간에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던 피오 문. 옆에 아우렐리아노 성벽이 보인다. |
내부에 들어서면 탁 트인 높고 너른 공간에 코린트 장식의 콜로네이드(colonade·列柱)가 압도해 오고, 역대 교황들의 공식 초상화 메달리온들이 벽면 상단에 프리즈(frieze) 장식처럼 둘러쳐져 있는 게 흥미롭다. 중세 작품으로는 제단 위의 치보리움(ciborium)과 그 옆의 초대형 부활절 촛대(candelabro pasquale)를 놓칠 수 없다. 치보리움은 13세기말, 문학에 단테, 그림에 지토, 조각에 아르놀포라던 그 아르놀포(Arnolfo di Cambio, 1245~1302)의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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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분수 수도원(아바치아 알레 트레 폰타네). 로마의 번잡함을 단숨에 단절하는 분위기가 있다. |
기독교의 중심, 로마
산 로렌초 푸오리 레 무라(S.Lorenzo fuori le Mura)도 가 보아야 할 교회다. 성 로렌초는 258년 발레리아누스의 탄압 때 철제 격자 위에 묶여 화형으로 순교했는데 콘스탄틴이 특별히 흠모하던 성인이었다.
성 밖이라지만 산타 크로체 교회에서 도보로 잠시다. 젊은이들이 북적대는 대학 동네인데도 교회에 다가서는 순간 단번에 시골 분위기가 난다. 입구 포르티코(portico)에 얹힌 이오니아 기둥머리와 테라코타 기와지붕이 소담해 우리 절집 같은 분위기다. 모자이크 장식이 단아하고 성 로렌초의 생애를 그린 프레스코화 연작의 고색(古色)이 와 닿는다. 통로(nave)는 물론 설교대(pulpito)와 합창석(coro)의 코스마티 장식(Cosmati·중세 말 코스마티 일가가 시작한 기하학적 패턴의 채색 대리석 모자이크)이 잘 어울리는 좋은 곳이다.
이곳에는 성 로렌초의 순교 1600여 년 뒤 가톨릭 현대사의 최대 굴곡을 몸소 겪은 교황 피우스 9세가 묻혀 있다. 이탈리아 통일의 공식 연도인 1861년에서 9년을 더 버티던 피우스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인근 피오 문(Porta Pia) 전투를 끝으로 세계의 수도를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넘겨주고 바티칸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콘스탄틴 대제는 이렇게 기독교 로마의 단단한 기초를 잡아 주고 홀연 로마를 떠난다. 기원 330년 유럽과 소아시아를 잇는 요충지에 자신의 이름을 따 새로운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한 것이다. 천도(遷都)의 효험인지 제국의 명맥은 서로마가 멸망한 후로도 1000년을 더 가지만 비잔틴 제국은 머지않아 과거 로마와는 많이 다른 길을 간다.
황제가 떠나가도 야만족들이 몰려와도 로마는 기독교의 중심이란 상징을 놓지 않았다. 중세, 근대를 거치며 교회의 수는 계속 늘어 오늘 로마의 교회 수는 1000곳을 헤아린다.
어찌 골라 돌아보면 좋을까? 이미 본 다섯 교회를 포함해 30여 곳은 봐야 할 것 같다. 로마사, 유럽사, 종교사, 건축사, 미술사 등에 복수로 걸쳐 있는 교회들 중 최소한이다.
바티칸과 라테란 사이의 캄피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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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시청앞에서 바라본 캄피돌리오 광장. 오른편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이 보인다. |
종교권력(동시에 교황령을 통치하는 정치권력이기도 하다)은 15세기 교황의 거처가 바티칸으로 옮겨지면서 산 피에트로 교회가 중심이 되지만 역사적으로 라테란의 상징성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과거 교황의 행렬이나 종교 행차들은 주로 바티칸과 라테란 사이를 오갔는데, 이 두 지점 간에 직선을 상정할 때(로마 시가지의 자연발생적 성격으로 직선도로는 길지 않다) 캄피돌리오가 그 중간지점에 위치하는 것이 공교롭다. 우리가 돌아보려는 교회들은 대개 이 어간에 있다. 특히 캄피돌리오 서쪽은 판테온 근처를, 캄피돌리오 동편은 첼리오 언덕과 에스퀼리노 언덕 주변을 주로 다니게 될 것이다.
聖母 마리아에게 봉헌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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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타 마리아 마조레. 최초로 성모 마리아에 봉헌된 교회. 역대 교황들이 다투어 치장에 기여했다. |
여기에는 기독교사의 큰 대목이 함께한다. 콘스탄틴은 로마의 기독교를 위해 교회 건립에도 큰 일을 했지만 교리 확립에도 못지않은 공을 세웠다. 카르타고 사제 도나투스의 재 세례 주장(Donatism)과 알렉산드리아 사제 아리우스의 보다 근본적인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의 동질성 문제 제기(Arianism) 등을 두루 로마교회의 입장에 따라 정리해 주고 로마를 떠났던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 후 이번에는 콘스탄티노플 주교 네스토리우스가 못지않게 심각한 얘기를 꺼낸다. 성수태와 관련해 그리스도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함께 갖고 있고, 마리아는 신(神)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주장이다(Nestorianism). 에페소 공의회(431)에서 이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데 성공한 교황 식스투스 3세는 승리를 자축할 겸 이듬해 산타 마리아의 이름으로 대교회를 낙성한 것이다. 이 일은 종국에 로마(Catholicism)와 콘스탄티노플(Orthodoxism)이 ‘대분열’하는 단초 중의 하나가 되고 이후 역대 교황들은 성모와 성모자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다투어 나섰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 이 교회의 모습은 실로 장려(莊麗)하다. 우선 중앙통로(nave) 양 옆의 열주가 정연하게 제단을 소실점 삼아 원근법(perspective)을 실천한다. 보통 교회의 기둥들은 재활용 문제상 서로 짝이 안 맞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기둥들은 모두 같은 모양이다. 당시 교황 특별지시로 포로 로마노에서 우선적으로 캐 온 것들이라는 설명이다.
올려다보면 천장의 격자장식이 온통 금빛이다. 스페인의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 부부가 아메리카 대륙을 성공적으로 ‘발견’한 뒤 페루에서 캐어다가 교황 알레산드로 6세에게 선물한 금이란다.
통로 양편에 자리 잡은 경당(capella)들도 각각이 하나의 독립 교회급 규모요 장식이다. 그리고 모자이크! 중앙통로 열 주위의 벽면과 제단 앞 아치 그리고 후진(apside)을 뒤덮은 5세기 모자이크는 두말이 필요 없는 중세 모자이크 미술의 백미다. 시칠리아 몬레알레의 두오모나 라벤나의 산 비탈레(S.Vitale) 교회도 겨우 대적할 흔치 않은 장관이다. 교황 네 명이 이곳을 택해 묻혔고 바로크 로마 건설의 일등공신이자 당대 교황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베르니니(Gianlorenzo Bernini, 1598~1680)의 가족묘도 여기 있다.
이 정도 교회에 성유물이 없을 수 없다. 아기 예수의 성구유(Santa Culla)가 제단밑 지하(cripta)에 모셔져 있다. 에스퀼리노 주변은 테르미니 역도 가깝고 주변이 어수선한 곳이다. 이 교회를 둘러보고 나오면 그 안팎의 대조가 더욱 극명하다. 오늘에도 대비가 이러하니 옛 사람들이 느꼈을 외경심은 짐작이 간다.
모자이크와 성유물이라면 작지만 빼놓지 못할 좋은 초기교회가 길 하나 건너 골목 안에 있다. 산타 프라세데(Santa Prassede)다. 조그만 아치와 앞마당 모양새가 보통 집 입구인데 아닌 게 아니라 고대 로마시절 티툴루스(titulus)로 출발한 교회다. 내부는 역시 전혀 다른 내공을 보여준다. 후진과 둥근 천장에 모자이크의 색조와 표현이 정교해 달리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성유물도 예수님이 직접 관련된 것이 하나 있다. 채찍 형을 당할 때 묶여 있던 기둥의 조각을 보관한 조그만 예배소(oratorio)가 있다. 교회뿐 아니라 많은 로마 건물들에 공통인 외빈내화(外貧內華)의 전형이다.
첫 순교성인 스테파노 모시는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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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드로 광장 베르니니 열주(列柱) 바로 뒤편의 교황삼층관 분수. 멀리 교황청 건물이 보인다. |
이 시기 교회들에 공통적이지만 역시 당시 최강 비잔틴 제국의 영향으로 모자이크가 일품이다. 특히 이곳의 모자이크는 성경 스토리를 단순한 도상으로서뿐 아니라 색감으로도 전하려 한 것이 느껴진다. 황혼을 배경으로 천상의 계단을 내려온 그리스도가 양 옆의 사도 베드로와 바울로부터 코스마와 다미아노(아랍인 쌍둥이 형제 의사로 디오클레티아누스 때 순교. 의사들의 수호성인)를 소개받는데 그 색깔과 메시지가 한눈에 형형하다.
교회를 나서면 오른편에 콜로세움이 보이고 콜로세움을 반원만 돌면 눈앞에 보이는 구릉지대가 첼리오(Celio) 언덕이다. 이 일대에 좋은 교회들이 많다. 산 클레멘테 교회 얘기는 지난 호에 했고, 조금 떨어져 있는 산티 콰트로 코로나티(Santi Quatro Coronati, 참 호젓하고 성 실베스트로 경당의 프레스코 시리즈가 흥미롭다)도 좋지만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Santo Stefano Rotondo)를 봐야 한다. 콜로세움의 번잡함이 바로 근처인데 돌연 산골마을에 소슬바람이 이는 듯하다. 원형교회 특유의 단아함으로 기독교 공인 제1호 순교성인 스테파노를 모시고 있다. 성 스테파노는 예수님 처형 얼마 후 유대인들의 돌팔매 형으로 순교했다. 그 현장을 사도 바울이 아직 사울일 적에 목격했고 회개와 개종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순례지 로마
성 스테파노로 시작해 성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 그리고 성 로렌초, 발렌티노, 체칠리아, 아네제, 아가타, 루치아, 카테리나 등등 특히 기독교 박해 시절의 순교 성인들과 그들의 스토리는 기독교 정통성 만들기의 최대 소재였다. 기독교 공인 이전의 교황 31명도 전원 순교했고 추후 모두 시성(諡聖)되었다.
교회들은 이들의 이름으로 세워졌고, 중세 교회의 안팎을 장식한 조각과 부조 특히 그림(프레스코화, 모자이크, 목판화 등)은 대개 성모자(聖母子)를 가운데 모시고 이들 순교 성인이 양옆으로 서 있는 형식이다. 성인들은 (순교한 경우 예외없이) 처형의 도구(스테파노의 돌, 카테리나의 수레바퀴)나 처형의 결과물(루치아의 눈, 아가타의 가슴) 등 특정 아이콘과 함께 표현되어 그 시절 신도들의 식별을 도와준다. 고마운 일인데 경우에 따라 다소 멀리 나가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구경 중인 산토 스테파노 교회에 순교 유형별 종합판 프레스코 연작(連作)이 있다. 효과적인 종교개혁 대응 방안을 고민하던 그레고리우스 13세(1572~1585) 시절 포마란치오가 그린 순교성인 열전 30여 폭이 그것이다. 처형, 곧 순교의 순간들을 자못 노골적으로 묘사해 으스스할 지경인데, 수백 년 세월에 많이 퇴색한 것을 요즘식으로 요란히 복원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이들 성인의 유골을 지근거리에서 느끼고 그들의 유품을 직접 보고 만지고 경배하기 위해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현장을 찾는 이들의 행렬은 진작부터 이어졌다. 순례자들이다. 일찍이 3세기부터 성가족의 연고지와 예수님의 행적지를 찾는 관행이 시작되었는데 이런 관행은 곧 순교성인들의 유골과 유품이 있는 곳을 대상으로 확대되어 갔다.
이러던 것이 7세기 들어 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성지가 마호메트 교도의 무기한(?) 지배하에 들어가며 성지 순례길이 막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순례지 로마가 상대적 중흥기를 맞는다. 성지 순례의 필수적 경유지 정도이던 로마의 위상이 단번에 최대 목적지로 부상한 것이다.
8세기에 들어 로마는 쇠약해진 콘스탄티노플과 성상파괴 문제를 둘러싸고 일전을 치른다. 승리한 로마는 비잔틴 제국의 그림자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교회의 건립과 장식, 성상의 조형과 제작에 박차를 가하며 중세 전성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이런 배경하에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1294~1303)는 1300년을 희년(Jubilee Year)으로 선포하고 대대적인 성지(이제 로마) 순례를 권장해 수십만의 순례자가 로마를 다녀간다. 로마가 기독교 덕택에 세계의 수도로 다시 서는 원년(元年)으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르네상스 수작들을 만날 수 있는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태어난 곳에서 정해진 일을 하며 살다 대개 그곳서 죽었던 중세. 먼 길 떠날 일이 없던 그때 고향을 벗어나 여행하는 사람들은 전부 순례자였다고 보면 된다. 살아서 뭘 구경하고 배우고 즐기자는 차원이 아니라 죽어서 영생을 얻는 것이 유일한 관심인 사람들이었고 시대였다. 이들이 로마에 이르러 제일 먼저 마주치는 관문이 로마의 북대문 격인 포폴로 문(Porta del Popolo)이다.
포폴로 문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왼편에 있는 교회가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Santa Maria del Popolo). 먼 길 온 사람들을 맞는 첫 교회답게 볼거리가 만만찮다. 건축(브라만테, 라파엘), 조각(라파엘, 산소비노), 그림(핀투리키오,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등 다양한 르네상스의 수작(秀作)들을 만난다.
그중에도 일품은 역시 체라시 경당의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 두 점이다. <바울의 개종>과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베드로>! 조그만 경당의 양 벽에 꽉 찬 두 그림이 마치 어릴 적 대한극장에서 70밀리 영화를 보던 느낌이다. 좁은 공간에 과감한 단축법(foreshortening)과 구도상의 대각선 축 활용으로 주제의 극적 효과를 높인 것은 미술사 책에서 본 그대로다. 불어 한마디 하자면 완벽한 coup de scene다.
이렇게, 조각도 그렇지만 그림은 원래 의도되었던 곳에 두는 것이 좋다. 매사 콘텍스트가 중요한 것이고 교회(빌라, 저택도 마찬가지)가 미술관과 차이나는 이유다.
벽 하나 사이에 카라치(Annibale Carracci, 1560~1609)의 제단화도 좋다. 카라치도 초기 바로크를 선도한 큰 별 아닌가? 바로크 회화의 정석(定石)과 묘수(妙手)를 한눈에 가늠해 보는 현장이다. 르네상스 시기 각기 정·재계의 큰 가문이던 델라 로베레(Della Rovere, 교황 식스투스 4세와 율리우스 2세 배출)와 키지(Chigi, 은행재벌로 뒤에 교황도 배출)의 가족 경당들도 아울러 볼 만하다.
갈릴레이가 심문 받은 교회
다음이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Santa Maria sopra Minerva). 로마 가면 대개들 가 보는 판테온 바로 옆에 있다. 알프스 이북에서는 그렇게 흔한 데 비해 정작 로마에는 매우 귀한 고딕 교회다. 드높은 코발트 빛 저녁하늘에 총총한 금빛 별들의 천장 장식이 미상불 하늘나라는 포근하리란 느낌을 준다. 이 교회는 또 학식과 규율을 높이는 도메니쿠스회의 오랜 본부교회여서 갈릴레이도 이곳에 출두해 심문을 받았었다.
이탈리아의 수호성인 카테리나 다 시에나(Santa Caterina da Siena)가 이곳 중앙제단 아래 잠들어 있고 한발 비켜선 곳에 르네상스 초기의 섬세한 성화로 사랑받는 프라 안젤리코의 석관이 편안하다. 미켈란젤로의 그리스도 상과 카라파(Carafa, 나폴리의 유력가문으로 교황 파올로 4세 배출) 경당에 있는 필리피노 립피의 제단화도 잊을 수 없다. 가히 예배 드리는 박물관이다.
역시 판테온에서 멀지 않은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지(San Luigi dei Francesi)는 로마의 프랑스 사람들 교회다. 성 루이(St Louis, 이탈리아 말로 San Luigi)는 프랑스 카페 왕조 때 국왕이던 루이 9세(1214~1270)로 프랑스 역대 국왕 중 유일한 성인이다. 수차례 십자군 원정에 직접 참가했고 결국 튀니지에서 전사했다. 깊은 신앙으로 존경받아 프랑스의 마지막 국왕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들이 왕조 상관없이 루이 이름을 즐겨 취했다.
긴 볼거리 다 줄이고 중앙제단 왼편의 성 마테오 경당으로 바로 가자. 나란히 있는 성 루이 경당의 현란한 바로크가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점잖게 압도하는 그림 3폭! 예의 카라바조다. 정면 제단화 <마테오와 천사>, 왼편의 <마테오 부름>, 오른편의 <마테오 순교>. 포폴로 교회의 강렬한 2폭이 가슴을 친다면 이곳의 잔잔한 3폭은 마음을 열어 준다. 능소능대 카라바조다.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을 북쪽에서 걸어 들어와 베르니니의 <4대강 분수> 턱에 걸터앉아 보로미니 작(作) 산타네제 인 아고네(Sant’Agnese in Agone) 교회의 출렁이는 정면(facciata)을 바라보며 다리를 쉬는 것은 선택사항. 계속 걸어 큰길로 나오면 쿠폴라(cupola)가 시원한 산탄드레아 델라 발레(Sant’Andrea della Valle)다. 바로크가 본격화하던 시기의 이 교회에는 이름난 피렌체 부자들의 가족 경당이 많다. 스트로치와 루첼라이 외에 교황 우르바노 8세를 배출한 바르베리니 가문의 경당도 있다. 이 교황도 피렌체 출신이다. 베르니니를 데리고 로마의 이곳저곳을 뜯어고쳐 로마 사람들은 지금도 옛날 바르바리(barbari, 야만족)가 그나마 남겨 놓은 것들은 바르베리니가 마저 부숴 버렸다고 농담을 한다. 바르베리니 경당은 또 푸치니의 <토스카> 1막의 세팅으로도 유명하다.
이탈리아 바로크의 1번지, 키에자 델 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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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교회(키에자 델 제수). 16세기 기독교사의 분수령에서 여러모로 의미깊은 교회다. |
바로크는 사실 (미술사적인 설명 이전에) 마르틴 루터에 대한 가톨릭의 대답이다. 종교개혁 여파에 대한 대응책 협의를 위해 열렸던 트렌토 공의회(1545~1563)는 ‘가톨릭의 정통성을 더욱 분명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대중에 부각’키로 하고 그 1차 임무를 미술인(건축, 조각, 그림 등)에게 맡긴다. 순교성인들의 고난은 더욱 가슴치게, 주님의 영광은 더욱 눈부시게 드러내어 신학 논쟁보다는 대중의 감성에 직소(直訴)하자는 것이다. 단정하고 균형 잡힌 르네상스 스타일로는 불가능한 임무다. 비뇰라, 델라 포르타, 포조, 가울리 등 바로크 거장들의 재주와 가톨릭 핵심의 시대적 관심이 집약된 의미도 깊고 볼 것도 많은 교회다.
이냐치오 경당의 대형 바로크 조각 <이단을 압도하는 신앙(Fede vince su eretici)>의 메시지가 노골적이다. 밑에 밟혀 신음하는 마귀형상 둘이 각각 ‘Lutero’, ‘Calvino’ 명찰을 달고 있다. 물론 루터와 칼뱅이다.
그밖의 교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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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타 체칠리아 교회. 피에트로 카발리니의 프레스코는 미술여행이 아니라도 필수다. |
먼저 산타 마리아 다라첼리(Santa Maria d’Aracoeli). 캄피돌리오 언덕 122개 대리석 계단 위에 시원하게 자리 잡은 교회로, 이번에 몇 마디라도 소개를 못하는 게 아쉽다. 대통령궁 앞길의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Sant’Andrea al Quirinale)와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S.Carlo alle Quatro Fontane)도 찬찬히 돌아볼 만하다.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테베레 강건너’)에도 좋은 옛 교회들이 많은데 그중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와 산타 체칠리아(Santa Cecilia) 두 곳은 꼭 봐야 한다. 특히 산타 체칠리아의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경내 분위기와 부속 수도원 건물 안에 있는 카발리니(Pietro Cavallini)의 벽화 <최후의 심판>은 놓치면 안된다. 세월이 준 손상에도 ‘유럽미술의 아버지’로서의 면모가 그대로 느껴진다. 로마에는 지오토(Giotto) 그림이 잘 없는데 지오토보다 앞서 활동한 카발리니의 그림이 몇 군데 남아 있는 것은 로마의 자랑이다.
테베레 강을 다시 건너오기 전에 자니콜로 언덕 초입에 있는 작은 교회 산 피에트로 인 몬토리오(S.Pietro in Montorio)도 잊지 말자. 브라만테의 르네상스 명품 〈tempietto〉가 특히 반가운 곳이다.
이왕 걸음인데 한 군데 더 보고 가자. 아벤티노(Aventino) 언덕의 산타 사비나(Santa Sabina) 교회 때문이다. 5세기 초 세워진 후 도메니쿠스 교회가 되어 몇 차례 덧지었지만 초기교회 때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5세기에 나무로 만든 정문(성경 스토리가 부조되어 있다)이 그대로 남아 사용 중이다.
이 교회의 또 하나 장점은 바로 옆의 괜찮은 정원(Giardino degli Aranci)이다. 눈에 잘 안 띄는 조그만 입구를 거쳐 로마의 명품 늘씬한 우산 소나무들을 지나 테라스에 서면 테베레 강 양 옆으로 기가 막힌 로마 시내의 전경이 눈 아래 펼쳐진다. 석양이라도 멀리 베드로 성당의 둥근 지붕에 비끼면 기가 아니라 숨이 막히는 파노라마다. 늘 시원한 바람이 있고 사람들이 적은 곳이라 서울에서 친한 이들이 오면 즐겨 찾던 곳이었다.
‘세계의 수도’
오늘의 마무리다. 16세기의 로마는 르네상스 교황들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유럽 문화와 미술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이 전 유럽에 확산된 것도, 앞서 설명한 대로 그 동기는 많이 다르지만, 진원지는 역시 로마였다. 18세기에 들어서도 이러한 로마의 우월적 지위에 큰 변화가 없지만 이미 세상의 관심은 종교보다 문화예술 자체로 옮아가고 있었다.
이탈리아를 찾는 사람들의 주력은 이미 죽음과 영생에만 몰두하는 순례자들이 아니라 삶과 교양에도 관심 있는 문화인들이었다.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의 로마에 대한 관심은 기독교의 로마가 아니라 고대 로마가 대상이었다. 기독교와 교황의 위상이 옛날 같지 않았다. 유럽의 신사조 계몽주의도 한 역할 한 것은 물론이다. 이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이탈리아의 만능 정치인(문인이요 화가였다)으로 사르데냐 왕국의 수상을 지낸 다젤리오(Massimo d’Azelio, 1798~1866)는 “로마가 통일 이탈리아의 수도가 된다면 ‘세계의 수도’에서 오히려 격하되는 셈”이라는 농반 예언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과연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었고, 예전 같은 ‘세계의 수도’는 더 이상 아니지만, 오늘 우리의 단기속성(短期速成) 순례를 여전히 반겨 주고 그 시절의 귀한 조각들을 친근하게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