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과학기술원·월간조선 공동기획 - 마지막 블루오션, 태평양 도서국 14개국 르포 ⑨ : 월간조선

비행기 창밖으로 작은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인 나우루(Nauru). 태평양 섬나라들이 대부분 수십,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뤄져 있지만, 이 나라는 전체 면적이 21km2에 불과한 타원형의 섬 하나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 여의도의 4배 크기에 불과한 이 작은 섬에 1만2000여 명이 살고 있다.

지난 2월 중순, 호주 브리즈번(Brisbane) 공항에서 북동쪽 적도(赤道) 방향으로 4시간30분을 날아가서야 이 작은 소국(小國)에 다다랐다. 기자 일행이 탄 비행기는 나우루 정부가 운영하는 아워 에어라인(Our Airline)이었다. 승무원에게 “나우루에 가는 외국인은 어떤 사람들이냐”고 물었더니 “비즈니스차 오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며 관광객은 드물다”고 했다.

개발의 상징 랜드로버, 廢車 상태로 나뒹굴어

칸츠리바(cantaliver)라 불리는 철골 구조물. 인광석을 선적(船積)할 때 이용하는 구조물이다.

여느 태평양 국가와 마찬가지로 나우루 공항도 우리나라 시골 마을의 버스터미널 같은 공항 규모에 활주로 하나가 달랑 놓여 있었다. 외국 손님들을 ‘구경’하러 나온 마을 어른들과 어린이들이 공항 철망 밖에서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입국 수속을 하는 과정에서 출입국 관계자는 나우루 방문 이유를 물었다. 올해부터 외국 언론사가 나우루를 취재 목적으로 방문할 때 1인당 8000달러(약 800만원)를 내야 한다는 얘기를 사전에 들었던 터라 출입국 관계자에게 “관광차 왔다”고 둘러댔다. 그랬더니 이 관계자는 “관광으로 와도 1인당 100달러는 내야 한다”며 기자 일행의 여권을 ‘압수’하며 “내일 찾으러 오라”고 했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 측 사람들을 만나 부탁하면 여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호텔로 가 짐을 풀었다.

호텔은 우리나라의 시골 여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좋은 호텔에 속했다. 이 나라에 운영 중인 호텔은 단 두 곳. 나중에 알게 됐지만 다른 한 곳의 호텔은 정부가 운영했다.

차를 빌려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전(全) 국토를 둘러보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이 채 안 됐다. 《월간조선》 특별취재 프로그램에 모두 동행한 박흥식(朴興植)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태평양해양연구센터장의 말이다. 그는 태평양 섬나라 전체를 방문한 유일한 인물이다.

“외국 자본이 들어와 개발 과정을 거쳤다가 어느 한순간 멈춰버린, 그런 느낌이 듭니다. 나우루는 태평양 섬나라 중에서 국토 면적이 가장 작지만 자본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통 가옥 대신에 양철 지붕을 한 집들이 대부분입니다. 해안가에 어선(漁船)이 한 척도 보이지 않아요. 모든 것이 멈춰진 나라 같습니다.”

해안가 곳곳에서는 버려진 영국산(産) 4륜구동 차 랜드로버(Land Rover)가 앙상한 몰골로 처박혀 있었다. 산악지형이나 사막에서 잘 달리는 이 차는 개발시대의 상징이었다. 폐차 상태의 랜드로버에서 나우루의 번영과 몰락을 읽을 수 있었다.

나우루 略史

1798년 영국 선장 존 페른(John Fearn)이 항해 중 나우루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유쾌한 섬(Pleasant Island)으로 불렸다가 나중에 나우루로 바뀌었다. 나우루는 나우루어(語)로 ‘나는 해변으로 간다’는 의미이다. 19세기 유럽인들이 이 섬을 드나들면서 무기(소총)가 전해졌는데 1878~1888년 사이 작은 섬에 내전(內戰)이 벌어져 당시 전체 인구 1400여 명 중 500여 명이 사망했다. 이후 독일의 지배를 받다가 1차 대전 후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3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받게 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에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종전 후 다시 3국의 통치를 받아오다 1968년 1월 독립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 정부는 전체 1200여 명에 불과한 나우루 국민을 전쟁 노동자로 활용하기 위해 현재의 마이크로네시아 연방의 일부인 축(Chuuk) 섬으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500여 명이 사망하고 1946년 1월 700여 명만이 나우루로 되돌아오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현재 인구는 대략 1만2000여 명. 국토 면적은 21km2로 타원형에 가까운 1개의 섬으로 이뤄졌다. 세계에서 사실상 가장 작은 나라이다. 최대 해발고도가 71m에 불과해 자연재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공식 언어는 나우루어이지만 영어도 함께 쓴다. 종교는 대부분 기독교이다. 정부 형태는 의원내각제지만 의회가 선출한 대통령이 국가행정을 총괄한다. 의원 수는 18명, 임기는 3년이다. 국가 주요 자원은 인광석(phosphate·인산염을 함유한 광물)과 수산자원(참치)이다. 1인당 GDP는 3742달러(美貨·2006년 기준)이다. 인광석이 고갈되면서 사실상 해외 원조자금으로 국가가 운영된다. 특히 호주 정부의 난민수용소를 섬 한가운데에 설치·운영함으로써 국가 경제가 돌아가는 형국이다. 나우루는 1999년 187번째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영(英) 연방의 일원으로 태평양도서국포럼을 비롯해 태평양 지역기구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유엔경제사회이사회 등 각종 국제기구에 참여하고 있다. 나우루 내 상주 공관으로는 호주대사관과 대만대사관이 있다.

이 나라에 거주하는 우리나라 교민은 한 명도 없다.

유령처럼 바닷가에 서 있는 철골 구조물

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루토 씨.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 바로 뒤편 해안가에 나가봤다. 깜짝 놀랐다. 해안가에 가까운 바다 수중에 보기에도 끔찍한 철골 구조물들이 녹이 슨 채 해풍(海風)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 몇몇 남성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루토(Aruto·33) 씨에게서 몇 가지 얘기를 들었다.

“저 철골 구조물을 이곳 사람들은 칸츠리바(cantaliver)라고 불러요. 저렇게 녹슨 채로 서 있는 것이 대략 수십 년은 되지요. 섬의 한가운데 쪽으로 가면 인광석 광산이 여럿 있는데 그곳에서 캐낸 인광석을 가루로 만들어 다시 이곳 해안가로 가져와 선적(船積)합니다. 그때 이용했던 시설물이 바로 저기 서 있는 칸츠리바입니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규모의 비슷한 시설이 있는데 현재 적은 양의 인광석을 채굴해 외국에 내다 팔지요. 이제 이 나라엔 인광석이 거의 없습니다. 다 캐내 팔았어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자가 묵고 있는 호텔은 과거 인광석 수출이 활발할 때는 최고의 호텔로 수백 명의 외국인이 투숙했던 곳이라고 한다.

나우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광석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인광석은 조류(鳥類)의 배설물인 ‘구아노(guano)’가 수천 년 동안 퇴적되면서 형성된 인산염을 함유하고 있어 비료의 원료로 사용된다. 나우루는 한때 인광석 개발로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1970~80년대 당시 1인당 GDP가 2만 달러에 달하기도 했다. 그런 나라가 지금은 3742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유한(有限)한 인광석 자원을 아무런 대책 없이 개발, 지금은 자원이 거의 고갈된 상태다.

현재 나우루는 해안가에 서 있는 철골 구조물을 철거할 돈도 없다고 한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자본주의의 탐욕에 빠진 이 나라 위정자(爲政者)들과 국민들, 어찌 이들만 탓하랴. 지구촌 곳곳에는 이와 유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인류가 자연자원과 환경을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나우루는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학교 경비원 아루토 씨에게 “인광석이 거의 바닥 상태인데 이 나라 사람들은 뭐 먹고 사느냐”고 물었다. 그의 설명이다.

“이곳에는 호주 정부가 운영하는 난민수용소가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베트남 등지에서 온 난민 2000여 명이 수용돼 있어요. 원래 이들은 호주로 가려고 했는데 호주 당국이 본토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이곳에다 수용하고 있습니다. 난민수용소에는 호주, 뉴질랜드 사람들로 구성된 운영인력이 상당합니다. 그들이 이곳에서 쓰는 돈이 나우루의 경제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 해안가에서 우연히 만난 나우루인의 얘기는 기자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 나라 실상을 단번에 알아차리기에 충분했다.

“취재 목적이면 3200만원 내라”

나우루는 인광석 개발로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1970~80년대 1인당 GDP가 2만 달러에 달했다.

이날 오전 정부종합청사를 들렀다. 나우루 외교부 고위 공무원 클레니 해리스(klenny harris) 국장을 만났다. 취재와 관련해 사전에 협조 공문(公文)을 보냈는데 받지 못했느냐고 했더니 “다른 직원이 받은 걸로 아는데 나는 보고받지 못했다”고 했다. 클레니 국장은 자신의 이메일 계정이 잘못돼 메일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의 설명은 장황했지만 변명에 불과했다. 외국 언론사가 온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다. 현직 대통령 인터뷰 등 나우루의 전반적인 내용을 취재를 하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부탁했으나 반응은 싸늘했다.

클레니 국장은 기자 일행을 외교부 장관 대행에게 데려갔다. 장관 대행은 기자가 내민 언론사 공문을 보자마자 굉장히 놀라워했다. 외신 기자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뭐하러 왔는지, 어떤 루트로 왔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는 “내일 연락을 줄 테니 호텔에서 기다려라”고 했다.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기자는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정부 관계자 취재는 내일로 미루고 현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여권을 찾으러 나우루 공항을 들렀다. 그런데 여권이 법무부로 넘어갔다는 게 아닌가. 일이 잘못돼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자 일행은 곧바로 법무부로 달려갔다. 일행을 면접한 법무부 여직원은 입국 목적을 꼼꼼히 물었다. 취재 목적으로 왔다면 사전에 취재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며, 비자가 발급되더라도 1인당 8000달러를 내야 한다고 ‘통보’했다. 사진 기자를 포함해 일행은 총 4명이었다. 나우루 취재가 주요 목적인 만큼 총 3만2000달러(3200만원)를 내야 한다고 했다. 더 이상 말이 나오질 않았다. 법무부 여직원과 한참 승강이를 벌였다.

코이카가 나우루에 무상지원한 국산 차량.

얼마 후 여직원은 기자를 법무부 장관실로 데려갔다. 법무장관은 우리를 범법자 조사하듯 대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나우루와 한국의 우호관계를 증진하고 양국 협력을 도모할 목적으로 현지 사정을 파악한 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당신의 나라를 글로 소개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재’라는 단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이 나라 정부 사람들은 리포터, 저널리스트, 미디어 등의 단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라이오넬 아잉메아(Lionel Aingimea) 법무장관은 한참 설명을 듣더니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오전에 찾았던 외교장관 대행실이었다. 이곳에서 사시쿠마르 파라바누르(Sasikumar Paravanoor) 외교부 장관 대행을 다시 만났다. 그는 대통령비서실장을 겸하고 있었다. 법무장관은 외교장관 대행에게 “이 사람들은 당신이 타고 다니는 차를 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인데 우리를 도우러 왔다”고 했다. ‘당신이 타고 다니는 차’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코이카(KOICA)가 이 나라에 무상(無償)지원한 차량이었다. 대통령비서실장 겸 외교장관 대행이 ‘KOICA’ 글씨와 마크가 새겨진 우리의 현대자동차를 타는 것이었다.

법무장관은 코이카에 대해 호의를 갖고 있었다. 동행했던 박흥식 박사는 “이번 취재를 위해 태평양 섬나라를 모두 돌아다녀 봤지만 코이카 마크가 찍힌 차량은 이곳에서 처음 본다”고 했다.

외교부 장관 대행·법무장관에게 조사받아

클레니 해리스 외교부 국장.

기자 일행을 앞에 두고 나우루 대통령비서실장과 법무장관, 외교부 고위 공무원 등이 모여 심각하게 의견을 나눴다. 우리는 또다시 한국과 나우루의 우호증진 얘기를 꺼냈다. ‘미디어’ ‘취재’라는 단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고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나우루를 소개하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 외교부의 협조 공문도 들이밀었다.

마침내 그들의 마음이 열렸다. 대통령비서실장 겸 외교장관 대행은 “협정에 의해 관광객은 14일간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지만 언론 관계자의 경우 1인당 8000달러를 내고 취재 비자를 받아야 한다. 당신들은 3만2000달러를 내야 하는데 면제해 주겠다”고 큰소리쳤다. 큰 산을 넘은 듯했다.

나우루 정부의 취재 비자 발급비 인상에 대해 호주 퀸즐랜드대학의 마크 헤이스(Mark Hayes) 교수는 “태평양 도서국들은 부족장을 중심으로 위계화된 전통적 권력 시스템으로 인해 언론과 사이가 좋지 않다. 나우루처럼 다른 태평양 국가들도 저널리스트 비자 발급에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거나 비자 신청 비용을 높일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 나라 공무원들의 자존심은 대단했다. 정부 정책에 반(反)하거나 명예를 건드리는 경우 국적 불문하고 추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 1월, 나우루 정부는 호주 국적의 치안판사와 대법원장을 추방했다. 나우루에 불법으로 체류 중인 2명의 외국인에 대해 나우루 정부가 추방명령을 내렸는데, 이들이 나우루 법원에 도움을 요청하자 피터 로(Peter Law) 치안판사가 국외 추방 정지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나우루 정부는 해당 판사와 대법원장을 국외 추방하는 형식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기자는 나우루 엘리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무사히 취재 협조를 얻어냈다. 대통령비서실장은 곧바로 클레니 국장에게 인터뷰 일정을 잡으라고 했다. 대통령 인터뷰를 포함한 취재 약속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날 저녁 클레니 국장은 구체적인 스케줄을 기자에게 알려줬다.

“일본이 우리를 지배했지만 지금은 惡감정 없다”

나우루에서는 도요타 트럭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나우루를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나라는 일본에 우호적이다.

다음날 오전, 클레니 외교부 국장은 나우루 현황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줬 다. 뉴질랜드에서 공부를 한 그는 외교부 장관 바로 아래 있는 세 명의 국장 중 한 명으로 대외협력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대만과 일본 등을 다녀봤고 한국은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대만에 가봤는데 대중교통 시스템이 참 잘 돼 있더군요. 서울도 잘 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우루는 교통수단이 대부분 오토바이입니다. 나라가 작다 보니 큰 차는 필요 없지요. 우리는 중국 대신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나우루에는 호주대사관과 대만대사관이 있습니다. 농업, 의료, 축산 등 여러 분야에서 대만과 협력하고 있어요.”

그는 일본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이 나라에는 도요타 트럭이 많습니다. 도요타에 대한 기업 이미지가 아주 좋아요. 그래서 차를 산다면 일본 도요타를 우선적으로 구입해요. 일본은 태평양전쟁 때 이곳을 지배했습니다. 그런 아픈 역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일본에 대해 나쁜 감정이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협력하고 있고 외교적으로 지원도 많이 받아요. 개인적으로나 국가, 국민적으로나 일본에 대해 용서했고 또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악감정이 없습니다.”

일본이 나우루를 도와주고 있고 또 향후 협력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일본을 이해한다는 나우루 외교부 공무원의 말에, 우리가 태평양 섬나라를 상대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한참 동안 고민했다.

클레니 국장에 따르면, 이 나라 남성의 평균 연령은 51~52세이고 여성은 70~72세라고 한다. 다른 태평양 도서국가처럼 나우루도 모계(母系)사회이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여성의 수명(壽命)이 아주 높은 것이 특이했다. 결혼을 하지 않고도 여성은 남성을 택해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전통문화가 사라진 것 같다는 의견에 클레니 국장은 “토요일에 전통시장이 서긴 하지만 전통문화는 대부분 사라졌다”고 했다. 1900년대 초 인광석 개발로 서양인들이 드나들면서 서구문화와 자본주의가 일찍 수입돼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고 했다. 땅 면적이 좁고 인구도 적어 고유문화가 남아 있을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한국문화에 대해 호감을 나타냈다.

“한국 드라마와 김치를 나우루 사람들은 아주 좋아합니다. 중국을 통해 들어오는 한국 드라마 복제물들이 판매되고 있어요. 인기가 대단합니다. 이곳에는 중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 많습니다. 맛이나 식당 시설이 형편없는데도 손님들로 꽉 차요. 난민수용소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이 주요 고객입니다. 만약 한국식당이 문을 연다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는 제대로 된 술집도 없고, 레스토랑도 없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외국기업의 투자 사례는 호주의 이동통신회사 디지셀이 대표적이다. 디지셀은 나우루 정부와 공동으로 이동통신사업을 하고 있다. 외국자본이 드나드는 것에 대해 나우루는 매우 관대하다고 한다.

중국 아닌 대만과 국교 맺은 나우루

사시쿠마르 파라바누르 대통령비서실장 겸 외교부 장관 대행.

기자는 국무회의가 열리는 장관회의실에서 사시쿠마르 파라바누르 외교부 장관 대행과 두 명의 외교부 고위 공무원을 대상으로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요.

“피지에 있는 한국대사관과 유엔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통해 교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대만과 일본에 비해 비중이 낮습니다. 그러나 코이카의 지원 프로그램과 한국에서 열리는 ‘한국-태평양도서국 고위급 회담’을 통해 교류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양국 교류는 미약하지만 앞으로 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의 입지가 커질 것으로 봅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지지한 적이 있습니까.

“몇 년 전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선거에서 한국을 지원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에 대한 지원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한국 측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현재 코이카가 주도하는 인력개발사업 등이 있는데 이런 활동과 지원이 확대되기를 기대합니다. 한국의 발달된 IT 기술 전수와 공항시설 지원도 요청합니다.”

―현재 나우루에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국가는 어디입니까.

“호주와 대만입니다. 뉴질랜드로부터는 사법 영역의 원조를 받고 있으며, 교육 분야에서도 매년 장학금 등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원조도 상당합니다. 쿠바, 태국, 호주, 대만, 이스라엘, 러시아도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나우루는 대만과 국교를 맺고 있는데 이곳 차이나타운에는 중국 본토인들이 많더군요.

“사업 비자를 갖고 있으면 수교 여부와 상관없이 나우루에서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나우루는 1980년 이래 대만과 수교해 왔으나 200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斷交)했다. 2005년 다시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2005년 6월 대만 정부는 나우루 정부의 투발루, 키리바시 노동자에 대한 체불 임금 300만 달러를 대납해 줬고 2006년부터는 5년에 걸쳐 1000만 달러를 제공했다. 나우루 국영항공사인 ‘아워 에어라인’의 항공기 구입비와 운영비용도 대만이 대줬다.

관광·수산업 초기 단계, 발전 여지 있어

라이오넬 아잉메아 법무장관.

나우루 고위 관계자가 밝힌 것처럼 이 나라는 구체적 항목까지 제시하며 도움을 요청한다. 기자의 취재에 적극 협조한 라이오넬 아잉메아 법무부 장관도 공항 검색장비를 마련해 줄 것을 부탁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4개월간 나우루를 드나든 인원만 총 7000명에 달합니다. 대부분 호주 난민수용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2~3주 교대 근무를 합니다. 이들이 드나드는 과정에서 검색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 나우루에 누군가 마리화나를 들여왔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발견된 마리화나는 전부 불태워 없앴는데 다시 발견됐다고 합니다. 마리화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나우루에 입국할 때 경험해 봤겠지만 우리 공항에는 엑스레이 검색대조차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아요.”

그는 코이카를 통해 검역시설을 확충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공항뿐만 아니라 항구 검역도 필요합니다. 코이카에 요청할 계획입니다. 최근 해충과 전염병이 퍼졌는데 경로를 파악해 보니 배를 통해 건너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파리와 개미가 매개체였습니다. 최근 3주간 개미를 박멸하는 작전도 폈습니다. 검역 시스템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리치에 할스테드 상업산업환경부 관광국장.

나우루는 태평양 섬나라들과 달리 관광 분야가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낮다. 리치에 할스테드(Ritchie Halstead) 상업산업환경부 관광국장에게 “국가 차원의 관광산업 전략이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남태평양관광기구(SPTO)와 함께 관광전략을 마련 중에 있습니다. 국가지속가능발전전략(NSDS)의 요구 사항에 맞게 안(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난민수용소가 확장하면서 몇몇 사람이 나우루 티셔츠를 만들어 팔거나 인광석을 연마해 구슬을 만들어 돈을 벌고 있습니다만 관광을 산업으로 인식하는 단계는 아닙니다.”

나우루는 수산업도 초기 단계에 있다. 물론 발전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샤레스톤 데이예(Charleston Deiye) 해양수산자원협회장의 말이다.

“나우루의 어업은 산업이라기보다 자급자족에 머물러 있습니다. 전업(專業) 어부가 없어요. 원양 참치어업이 일부 있긴 한데 우리가 직접 잡기보다는 다른 나라에 어업권을 임대해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어업권의 주요 거래국은 일본, 한국, 대만, 필리핀 등입니다. 우리는 향후 양식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양식 기술이 세계 2~3위인 한국과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중국産 쓰는 것은 낭비”

국영호텔인 메넹호텔의 티모시 총괄매니저.

나우루의 서민 경제는 사실상 중국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식당, 상점, 카센터 등 주민에게 필요한 대부분을 운영한다. 공산품은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한다. 국영(國營) 호텔인 메넹(Menen)호텔의 티모시(Timothy) 총괄매니저의 말이다.

“중국인들이 30~40년 전부터 이곳에 와 사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스토랑이나 식료품, 제품 수리점, 숍, 렌터카 등 일상적인 사업 모두를 합니다. 그들은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부자(富者)가 돼 호주로 이사 가기도 하고 외국에 자식을 유학시키는 이들도 있어요. 물론 그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중국인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곳에서 팔리는 제품들은 대부분 중국산입니다. 그런데 중국 제품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요. ‘중국산 쓰면 낭비다’라는 말이 있어요. 싸구려 제품이라는 뜻이죠. 한국 제품을 이곳까지 가져오면 비싸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익이 될 겁니다.”

티모시 매니저는 “우리 호텔의 투숙객은 대부분 장기 고객”이라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음식을 포함한 한국문화를 판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고 했다.

“객실이 150개가 넘는데 장기 투숙객은 주로 정부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우루 정부가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니 돈을 주고 외국 인력을 고용하는 겁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아요. 방이 모자라 관광객은 아예 받을 수도 없습니다. 4~5개월 전부터 이곳에 묵기 위해 연락을 해오는 일본 관광객 10명이 있는데 아직도 확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어요. 조만간 객실을 증축할 계획입니다. 이곳에서 한국 레스토랑, 쇼핑센터, 수퍼마켓 등을 운영한다면 분명히 성공할 것입니다.”

샤레스톤 데이예 해양수산자원협회장.

김치에 대한 인기는 나우루를 떠날 때 공항 면세점에서 만난 여직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여직원은 기자 일행에게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은 뒤 “혹시 김치 가져온 것 있으면 줄 수 없느냐”고까지 했다.

나우루에서 가장 큰 상점인 에이기구(Eigigu) 수퍼마켓을 찾았다. 수퍼마켓 컴퓨터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미국인 팀 오웬스(Tim Owens)는 “이곳에서 파는 물건은 중국산과 호주, 뉴질랜드산이 대부분이다. 국가 경제 규모에 비해 이 나라의 물가(物價)는 비싼 편이다”고 했다. 그는 “이곳 사람들이 섬이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고 또 돈이 없어 살기 어렵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의 건강문제”라고 했다. 국민 대부분이 비만으로 건강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뒷받침하듯 나우루에 의료지원차 온 30대(代) 후반의 대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우루 사람들에게는 고(高)칼로리 음식 섭취로 인한 심장병, 고혈압 그리고 고혈압으로 인한 안과(眼科) 질환이 많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의 건강상태가 심각한 수준에 놓여 있습니다. 대만은 오래전부터 이 나라에 의료지원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병원도 새로 지었습니다.”

“난민수용소 일용직 월급이 나우루 사무직보다 더 많이 받아”

호주는 나우루에 난민수용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수용소는 나우루 경제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나우루의 경제구조는 단순하다. 과거에는 인광석 수출이 국가 수입의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난민수용소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나우루는 호주 하워드 정부의 ‘태평양해법(Pacific Solution)’에 따라 2001년부터 자국(自國) 내에 호주 난민수용소를 허가해 주면서 상당한 수입을 올렸다. 한때 호주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관련 시설이 폐쇄됐지만 이후 수용소는 다시 가동됐다.

공항 인근에 있는 한 마을에서 만난 세실리아 할머니의 얘기다.

“나우루 사람들 대부분 센터(난민수용소를 지칭)에서 일합니다. 돈을 많이 받거든요. 청소나 경비, 보조업무 등 일용직이라도 나우루의 일반 사무직으로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이 벌 수가 있어요. 작년에 센터에서 난민들이 화염병을 만들어 건물을 불태우는 등 큰일이 났는데 그 후 더 많은 일손이 필요한 걸로 들었어요.”

할머니에게 난민센터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그녀는 더 이상 답할 게 없다며 대신 집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제안했다. 할머니는 딸 셋과 사위 그리고 손녀, 손자들과 함께 살았다. 21명의 대가족이었다. 가장 큰딸의 남편은 전기공으로 일한다고 했다. 할머니 집안은 여느 태평양 섬나라처럼 모계사회의 전형(典型)을 그대로 보여줬다. 할머니는 집안의 여왕이었다.

기자는 난민수용소에 대해 궁금증이 더해갔다. 현지 주민을 통해 작년 수용소 내에서 큰 시위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됐다. 난민들의 처우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화염병이 등장하고 건물 방화까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 관계자들이 난민수용소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린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우루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지만 난민수용소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 인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우루가 해외 언론에 민감한 이유 중 하나가 난민수용소 때문일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나우루 시내에서 난민수용소 직원을 우연히 만났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수용인원은 대략 2500명 정도이며 최근 관련 시설을 확장해 현재 3개 센터가 있다고 한다. 호주군(軍) 출신들이 근무하는 경우가 많으며, 나우루는 호주의 ‘위탁 섬’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시내에서 만난 또 다른 난민수용소 직원의 말이다. 그의 말은 좀 더 구체적이었다.

“작년 7월에 수용소 내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작년 8월 호주 정부는 배를 타고 호주 본토로 들어오는 사람은 절대 호주 국민이 될 수 없다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겉으로는 난민 중에는 테러리스트도 있을 것이라는 이유를 내걸었지만 호주 내부의 복잡한 정치적 역학관계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호주 정부로서는 난민 문제가 큰 골칫거리입니다. 그러나 해외에 난민수용소를 운영하는 것은 당장 중지되어야 합니다.”

현재 호주 정부는 나우루 외에 파푸아뉴기니 마누스 섬, 인도네시아 크리스마스 섬에도 난민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 수용소 운영에는 천문학적인 경비가 들어간다고 한다.

엄청난 정신적 고통 속에 일하는 수용소 직원들

호주 본토에도 10곳의 수용소가 있다. 최근 호주 정부는 이들 중 4곳을 폐쇄할 것이라 발표했다. 호주의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 이민부 장관은 “수용소 폐쇄가 납세자들의 부담을 줄이고 정부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만난 난민수용소 직원은 “호주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해외 난민수용소를 더욱 확대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난민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전쟁을 피해 온 사람들도 있고, 가난으로 자기 나라를 떠난 사람들 그리고 핍박받은 여성 등 다양합니다. 가족 단위의 난민도 있습니다.”

―이들이 왜 호주를 선호합니까.

“많은 국가가 이민법을 엄격하게 적용합니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호주는 상대적으로 약하지요. 생활 수준도 선진국 수준이라 난민들이 호주를 좋아해요. 호주로 보내려는 난민 브로커들도 많아요.”

―해외 난민수용소에 대한 호주 국민의 입장은 뭡니까.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돈도 많이 들고 인권 차원에서 옳지 않다는 입장이지요. 호주는 땅도 넓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도 많은데 그곳에 난민들을 정착하게 한 후 재교육을 통해 정식 시민권을 주자는 것이지요.”

―당신이 근무하는 곳에는 난민이 얼마나 됩니까.

“800여 명이 있어요. 이들 중 배워야 할 나이에 있는 청소년들은 대략 250여 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차마 그냥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해요. 이슬람 국가에서 고통받은 여자 어린이들, 고문과 억압, 탄압을 받은 이들도 있습니다. 전쟁에서 온 가족을 잃은 청소년도 있어요.”

―그들과 같이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난민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사람도 무척 힘이 듭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2~3주간 일하고 2~3주간 본토(호주)로 가서 쉬는 겁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풉니까.

“수용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정신과(精神科) 치료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면 직원들을 상대로 한 정신 상담사, 치료사가 있겠습니까. 고통받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통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섬

나우루는 모계(母系)사회이다. 여성의 평균 연령이 70~72세로 남자(51~52세)보다 훨씬 오래 산다.

취재의 마지막 일정으로 섬 전체를 다시 둘러봤다. 클레니 외교부 국장이 정식으로 안내했다. 인광석 채굴 현장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클레니 국장은 섬 중심부로 안내했다. 중심부에는 난민수용소가 있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클레니 국장이 동행함에 따라 가능했다.

인광석 채굴 현장으로 가는 길에 경비가 삼엄한 곳을 지났다. 난민수용소 지원시설이었다. 짙은 회색의 티셔츠와 갈색 반바지 차림을 한 수많은 난민수용소 직원들을 목격했다. 인간은 왜 서로를 믿지 못하고 저렇게 감시하고 또 한쪽은 감시를 당하는 것일까.

구글 어스(earth)를 보면 나우루는 저 넓은 태평양에서 한 점도 채 안 된다. 그 작은 섬에서 인간은 감시와 고통의 굴레 속에 짐승이 되어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동물이 바로 인간이 아닐까 싶다. 섬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폐광 상태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몇몇 군데에서 인부들이 인광석을 채굴하고 있었다.

섬은 아팠다. 그 아픔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수십 년 된 폐차장은 물론 여기저기에 기름통, 고장 난 개발장비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인광석을 캐낸 그 자리는 깊은 상처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우루는 풍부한 인광석으로 한때 ‘젖과 꿀이 흐르는 섬’으로 불렸다. 1인당 GDP는 2만 달러에 달했다.

나우루를 부(富)의 환상으로 몰고 간 인광석은 새똥이 흙과 결합해 덩어리가 된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새똥이 있었기에 섬 전체가 인광석으로 뒤덮일 수가 있었을까.

해양생물학자인 박흥식 박사에 따르면, 현존하는 새는 과거의 10%에 불과하고 90%가 오래전에 멸종됐다고 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새가 태평양 한가운데 서식하다가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상상 이상의 새들이 배설한 똥이 수만 년에 걸쳐 ‘인광석 섬’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에 의해 그 영겁(永劫)의 시간은 단 100년 만에 끝장났다.

클레니 국장은 “과거 인광석 산업이 번창할 때는 나우루 사람으로는 인력이 모자라 인근 솔로몬, 키리바시, 투발루 등에서 근로자를 데려와야 할 정도였다”고 했다. 공장 근로자만 2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인광석 채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수십 명에 불과하다. 클레니 국장은 “인광석 가루를 열처리하는 공장이 6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한 군데만 가동한다. 그것도 하루 몇 시간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부정기적으로 인광석을 실어 나르는 배가 오간다고 한다.

인광석 팔아 국민에 돈 펑펑… 재정 고갈로 허덕

1900년 호주 시드니 소재 영국계 회사 ‘Pacific Islands Company’ 소속의 지질학자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가 나우루를 방문해 순도가 매우 높은 인광석(phosphate)이 대량으로 매장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광석은 조류(鳥類)의 배설물인 ‘구아노(guano)’가 수천 년 동안 퇴적되면서 형성된 인산염을 함유하고 있어 비료의 원료로 사용된다. 영국계 회사는 당시 독일 당국과 협상을 거쳐 1907년부터 인광석을 채굴, 호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1차 대전 후 영국과 호주, 뉴질랜드는 ‘나우루 협정’에 따라 세 나라가 각각 42:42:16의 지분을 갖는 ‘British Phosphate Commission’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나우루의 인광석 채굴을 독점했다. 이런 구조는 나우루가 독립할 때까지 계속됐다.

1968년 독립한 나우루 정부는 ‘나우루 인광석 공사(公社)’를 설립해 인광석 수출을 전담했다. 1970년대 들어 나우루는 대량으로 인광석을 채굴, 수출해 한때 1인당 GDP가 2만 달러에 육박했다. 당시로써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였다. 경제적 부에 힘입어 정치는 안정됐고 국가는 국민을 위해 돈을 펑펑 썼다. 세금을 거두는 대신 국민 개개인에게 생활자금을 공짜로 내줬다.

1980년 중반 170여 만t에 달하던 인광석 생산량은 1990년대 중반 들어 급격히 줄어들었다. 머지않아 인광석이 고갈(枯渴)될 것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있음에도 나우루 정부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인광석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관리하기 위해 세웠던 정부 투자기관은 해외투자에서 큰 손실을 입었고 대부분의 자산(資産)을 탕진했다. 2003년 인광석 생산이 완전 중단되자 이듬해 나우루는 10억 달러에 달하는 국가 부채를 안게 됐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근로자들에게 봉급도 주지 못했다. 그해 8월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에서 호주, 뉴질랜드, UNDP, 대만 등의 도움으로 재정위기를 모면했다. 나우루는 2006년 호주 비료생산회사와 공동으로 인광석 재(再)개발에 착수, 현재 소규모의 인광석을 채굴하고 있다.

神이여, 이 나라를 축복하소서

나우루 공항 활주로에서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저들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적도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나우루 사람들은 인광석을 캐기 위해 녹지의 99%를 뒤졌다. 그래서 이 섬에는 나무가 거의 없다. 현재 녹지 복원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인내(忍耐)를 시험하는 신(神)의 노여움이었다. 1900년대 이 나라를 지배하면서 인광석을 캤던 서구 사람들에게 원초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지만 독립 후 서양인의 전철(前轍)보다 더 심하게 잘못을 저질렀던 나우루 사람들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매장량이 얼마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팔아먹고 보자는 식이었다. 국민들은 그 단맛에 점점 취해갔다. 그 끝은 절망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나우루 공항을 지났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나우루에 적도의 밤이 내리고 있었다. 짙은 남색바다 수평선을 배경으로 한 활주로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 한 차례 비행기가 뜨고 앉는 나우루 공항 활주로에서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저들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적도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다음날 호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승객이 거의 다 찼을 무렵 선글라스를 쓴 낯익은 이들이 비행기 앞좌석을 채웠다. 배론 왕가 대통령이 사시쿠마르 외교부 장관 대행과 경호실장을 대동하고 나타난 것이다. 외교부 장관 대행은 기자 바로 앞좌석에 앉았다. 그는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정부 수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한다”고 했다.

기자가 탄 비행기는 어느새 이 나라 대통령이 탑승한 ‘코드 원’이 됐다. 나우루 대통령의 원조 외교가 성과를 거두기를 또 기도했다.⊙

[인터뷰] 배론 왕가 나우루 대통령

“환경오염에 책임 있는 선진국, 합당한 행동 보여야”

피지인(人) 어머니를 둔 배론 디바베시 왕가(Baron Divavesi Waqa) 대통령은 2012년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3년이다. 교사 생활을 하다 교장까지 지낸 후 정치권에 입문했다. 의원 시절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교육부 장관도 지냈다.

나우루에는 3개의 정당이 있는데 대통령은 다수당 소속이다. 이 나라의 정치 시스템은 영국식을 따랐다.

배론 왕가 대통령과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 대통령비서실장과 외교부 국장은 기자에게 여러 가지를 주문했다. 인터뷰 직전에는 “녹음해도 되는지,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를 대통령에게 물어보고 허락을 꼭 받으라”고까지 했다.

배론 왕가 대통령의 책상에는 《모든 민족, 나라에게 보내는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메시지》라는 제목의 책이 놓여 있었다. 낮은 베이스 톤 목소리의 왕가 대통령은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나우루는 작은 나라입니다. 국제사회에서 다른 나라들과 어깨를 함께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까.

“나우루는 매우 작고 고립된 나라입니다. 그만큼 쉽게 망각될 수 있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제 무대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고, 특히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 선구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도서국가연합(AOSIS·ALLIANCE OF SMALL ISLAND STATES) 의장국으로서 지구 환경오염에 큰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이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과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와 관련해 한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습니까.

“한국은 나우루의 우방국이자 친구의 나라입니다. 나우루가 힘든 시기를 겪었을 때 한국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반기문 사무총장과 예전부터 친분을 가져왔습니다. 반 총장은 나우루뿐만 아니라 다른 태평양 국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최근 태평양 지역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과거 이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유럽, 미국, 호주 등과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우호증진을 위해 쌍방이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다만 원조 방식에서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아시아 국가는 지원영역을 미리 정해놓고 도와줍니다. 유럽 및 호주 등은 활용 측면에서 다양성, 유연성을 부여합니다. 우리에게 맞는 지원 해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가 지도자로서 나우루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습니까.

“국가 지도자로서 국민이 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풍요롭게 살고, 자녀들은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가도록 할 것입니다. 나아가 국민 전체가 세계 곳곳에 자유롭게 여행하고, 다양한 곳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국가는 물론 국민의 생활 수준 자체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왕가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쳐다보며 “이분들 취재하러 왔는데 8000달러 받았느냐”며 농담을 던졌다. 비서실장이 “안 받았다”고 하자 대통령은 기자에게 “만약 8000달러를 내놓으라 하면 나한테 바로 연락하라. 곧바로 면직시키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통령은 농담을 했지만 곤욕을 치른 사람 입장에서는 농담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해외 언론에 대한 취재 제한은 오래갈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