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과학기술원·월간조선 공동기획 - 마지막 블루오션, 태평양 도서국 14개국 르포 ⑤ : 월간조선

지난 10월 말 방문한 오세아니아(Oceania·大洋洲) 멜라네시아(Melanesia) 지역의 솔로몬군도(Solomon Islands·이하 솔로몬)의 수도(首都) 호니아라(Honiara·‘극심한 남서풍 지역’이라는 의미)는 원시(原始)의 자연과 급격한 개발이 어색한 동거(同居)를 하고 있었다.

엉성한 움막에서 야생 과일을 먹으며 생활하는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촌락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메캐한 매연을 뿜어내는 차들이 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이제 서서히 개발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솔로몬군도의 국기는 1978년 11월 18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 제정되었으며, 국기의 파란색은 물을 초록색은 국토를 노란색은 태양을 나타낸다. 5개의 별은 섬의 주요한 5개 구역을 나타낸다.

세계 각국에서 개발도상국 솔로몬을 돕기 위해 교육, 자문, 봉사 인력을 파견하고 있다. 한국도 개발을 위해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솔로몬을 돕고 있다.

해외봉사를 낭만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허니문(신혼)의 대명사 남태평양에서 모험을 즐기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김굉수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솔로몬 IT 정책관은 2012년 8월에 솔로몬 호니아라에 도착했다. 김 정책관은 솔로몬에 월드프렌즈코리아(World Friends Korea) 퇴직전문가로 파견되어, 솔로몬 IT정책을 돕고 있었다.

솔로몬群島 (Solomon Islands)

1978년 7월 7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신생국 솔로몬군도(群島)는 영(英)연방국가로 의원내각제 정부지만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국가원수이다. 면적은 2만8450km2로 한반도의 8분의 1 규모이다. 인구는 55만명으로 추산된다. 인종은 멜라네시아인(人)이 대다수인 93%를 차지하고 폴리네시아인(4%), 마이크로네시아인(1.5%) 등이 살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인들의 유입이 늘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로 관공서의 모든 문서는 영어로 작성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은 피진영어(Pidgin English)를 사용한다. 피진영어란 한국의 콩글리시(한국에만 존재하는 영어)와 비슷한 브로큰 영어(Broken English)이다.

솔로몬은 인구가 55만명에 불과하지만 면적은 한국의 3분의 1에 이른다. 적은 수의 인구가 수많은 섬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섬마다 고유한 언어와 풍습을 지니고 있다. 토속 언어는 약 80여 개에 이르기 때문에, 영어가 지역 특성에 맞게 토착화된 피진영어가 실질적인 공용어 역할을 하고 있다. 피진영어는 솔로몬군도와 뉴기니 원주민들이 노예상인들에게 붙잡혀 호주에서 사탕수수농장과 면화농장에서 노예로 일할 당시 자기들끼리 쉬운 영어 단어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면서 생겨났다.

솔로몬 취재 과정에서 영어 문법에 맞지 않는 피진영어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약 100단어 남짓한 쉬운 영어단어를 문법에 상관없이 말하면 되는 피진영어가 오히려 정통영어보다 쓰기에는 편하다고 느껴졌다. 실제 영어가 서툰 한국, 중국인들이 솔로몬 이민 후 2~3년 생활하면 원주민들과 피진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고 한다.

먹거리 문화로는 모투(Motu)가 있다. 땅을 파고 적당한 크기의 돌을 넣은 뒤 장작을 이용해 불을 지펴서 돌을 달군다. 그 위에 고구마, 생선, 돼지고기를 올려놓은 후 바나나 나뭇잎으로 덮고 반나절 이상 익혀서 먹는 음식이다. 솔로몬은 기본적으로 수산물과 나무 열매가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는 풍요의 땅이다. 주거 역시 자연을 이용한 움막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의식주(衣食住)는 자연을 통해 해결한다.

2009년부터 2만명 開途國 파견

김굉수 솔로몬 IT정책관.

월드프렌즈코리아는 전 세계에 파견된 한국정부 파견 해외봉사단을 통칭하는 브랜드 이름이다. 지난 2009년 정부에서 분산되어 있던 각 행정부처의 해외봉사단사업을 통합하면서 출범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총 2만명의 해외봉사단원이 개발도상국에 파견됐다.

김 정책관은 한국에서 20년 이상 IBM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호니아라 우체국에서 만난 김 정책관은 솔로몬의 현실을 이렇게 전했다.

—‘중장기자문단’이란 무엇인가요.

“기업, 정부에서 일했던 50대 이상 전문가들을 개발도상국에 보내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IT 자문관으로 솔로몬에 왔습니다. 퇴직 혹은 퇴직예정자로서 해당 분야의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20년 이상의 실무경력자 가운데 선발합니다. 보통 6개월~1년 동안 활동하는데 저는 1년을 더 연장했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나요.

“제가 IT 자문관인데, 현지에 컴퓨터(PC)가 매우 부족해요. 컴퓨터도 없는데 IT 자문을 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죠. 제대로 조직을 운영하려면 책임감 있는 사람, 원칙을 지키는 업무프로세스, 이를 실현시키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솔로몬은 3가지 기본 축이 갖춰져 있지 않아요. IT 자문 이전에 경영자문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요.

“일단 컴퓨터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작년에 한국의 우정사업본부 책임자에게 컴퓨터를 부탁했어요. 한국 공공기관에서 3년 이상 사용한 컴퓨터를 저개발 국가에 보내주는 사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9월에 중고 컴퓨터 100대가 솔로몬에 도착했어요. 문제는 솔로몬 통관위원회에서 행정적인 처리를 아직 해주지 않아서 창고에 컴퓨터가 있다는 것이죠. 빠른 시일 내에 우체국에 설치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사실 솔로몬 우체국들은 컴퓨터가 없어 팩스(Fax)로 업무연락을 합니다. 팩스가 없는 곳은 다른 곳에서 빌려서 업무연락을 하는 실정입니다.”

—솔로몬에 지원할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요.

“제대로 된 시스템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해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것은 ‘주소’ 체계를 솔로몬에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솔로몬에는 주소라는 것이 없어요. 집까지 우편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우체국 PO박스(Post Office Box)에 직접 가서 우편물을 찾아오는 것이죠. 주소가 없다 보니 주민들에게 어디 사는지 물어보면 ‘○○언덕 근처 집에 산다’고 주거지를 설명합니다. 일단 주소 체계를 갖춰야 행정이 제대로 되는 것이어서 추진하고 싶은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시청, 토지국 등을 설득해야 되는 것이죠.”

김 정책관은 솔로몬 우체국을 보여주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모든 우편물 분류를 수작업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는 “비록 수작업이지만 꾸준히 우체국 관계자들과 토론하면서 작업을 단순화해서 효율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고, 우체국이지만 한국의 편의점처럼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는 솔로몬의 특성을 이용해 수익을 늘리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솔로몬 수도 호니아라에 위치한 중앙우체국 내부.

멜라네시아 (Melanesia)

오스트레일리아 북동쪽 남태평양의 약 180° 경선(經線)에 연이어 있는 섬들을 의미한다. 파푸아뉴기니섬을 포함해 동쪽으로 피지, 남쪽으로 뉴칼레도니아까지 포함한다. 피진영어를 사용하는 검은색 피부 인종들의 분포지역이다. 총면적 약 15만5400km2로 그리스어 ‘검은 섬들’에서 유래했다.

낮 기온 30~35℃, 연강수량 2500~3500mm의 이른바 열대우림 기후지역이다. 그러나 고도차에 따라 기후변화가 심한 것이 특징이다. 일부 섬에는 화산이 있으며, 해안은 산호초에 둘러싸이거나 맹그로브(mangrove·목본식물)에 뒤덮여 있다.

멜라네시아인의 피부색은 다른 남태평양 국가에 비해 확연하게 짙은 검은색이다. 디지털 사진기로 촬영하면 얼굴 윤곽이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검은 색깔이다. 최근 유전자(DNA) 검사결과 멜라네시아인은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외무장관, “UN회원국 솔로몬, 한국과 관계 발전 희망”

포라우 솔로몬군도 외무부장관.

이렇듯 개발원조가 절실한 솔로몬 정부는 한국과의 협력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지난 10월 외무부 장관실에서 기자를 만난 포라우(Clay Forau Soalaoi) 솔로몬 외무부장관은 “솔로몬이 경제적으로 부흥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한국과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포라우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1978년 독립한 솔로몬은 풍부한 자원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솔로몬은 자원뿐이 아니라 역사적인 유적지를 포함한 다양한 관광지를 보유하고 있어요. 아직까지 관광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어서 한국 관광객이 많지 않은 것이 아쉽습니다. 한국은 작년 여수엑스포 초청으로 다녀왔습니다. 다른 아시아 국가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기술적으로 매우 발전한 나라이고, 튼튼한 인프라와 뛰어난 인력을 바탕으로 짧은 기간에 발전했습니다. 솔로몬은 UN 회원국으로 다양한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어요. 최근에는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솔로몬은 얼마 전 내전을 경험한 아픈 기억이 있어요. 때문에 평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고 싶고, 이를 위해 한국과의 협력을 원합니다.”

솔로몬은 한국이 지원하고 공동 발전을 추구해야 할 대상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솔로몬 지원을 위한 다양한 방식을 찾고 있다. 한국이 솔로몬을 지원해야 하는 것은 동정이 아닌 국가적 의무이다. 1996년 한국이 가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는 1964년 회원국들이 국민소득의 1%에 해당하는 자금을 개도국에 이전할 것을 권고했다. 이를 위해 공적개발원조(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개념이 등장했다. 개도국에 지원하는 유상, 무상을 포함한 기술협력·프로젝트 원조·식량원조·긴급재난구호·NGO지원·공공차관을 포괄한다.

고희숙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솔로몬 사무소장.

개발원조는 단순히 개도국을 돕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 분쟁요소를 없애고 시장을 활성화시켜 세계 경제를 일으키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 솔로몬 원조를 위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솔로몬 호니아라에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현지 사무실에서 만난 고희숙 솔로몬 사무소 소장은 개발원조사업의 현실적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사무실은 언제 문을 열었나요.

“제가 2011년 8월에 도착했고, 사무실은 2012년 3월에 열었습니다. 원조를 위해서는 한국-솔로몬 간 ‘무상원조 협정’이 체결되어야 하는데 당시 총리에 대한 불신임 문제가 있어서 지체되었습니다. 협정이 필요한 것은 원활하게 원조 활동을 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지 치안(治安) 상태는 어떤가요.

“낮에는 걸어다녀도 좋을 만큼 안전합니다. 다만 밤에는 현지인들도 나가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밤에 갑작스럽게 비명이 들리곤 합니다. 절도 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죠.”

—구체적인 사업 추진 절차를 알려주세요.

“일단 솔로몬 정부로부터 사업 요청서를 받습니다. 한국 본부에서 각국에서 들어온 요청 사업을 검토하고 어떤 사업에 ODA 자금을 쓸지를 결정합니다. 배분을 하는 것이죠. 국회에서 심사를 하게 됩니다.”

—추진하는 사업을 설명해 주세요.

“‘산림자원 관리실행 계획 수립사업’이 있어요. 주요내용은 산림자원 개발을 위해 솔로몬과 공동 연구·개발하는 것이죠. 공동연구 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는 등 추진 중입니다.”

개발원조 자금을 지원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솔로몬 정부가 아쉬워서 자금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청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식민생활을 경험한 탓에 해외 자본 투자를 경계하는 시각이 많았다. 또 솔로몬 특유의 법과 제도, 국민 정서가 복잡하게 엉켜 있고, 한국 정부의 지원 절차도 복잡해 원조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솔로몬 취재의 주요 장면

장면 #1 : 모기와의 전쟁
기자가 어둠이 깔린 저녁 7시쯤에 호니아라 식당을 찾자, 현지인들이 “가능하면 전등이 있는 밝은 곳에 앉자”고 제의했다. 이유는 모기가 근처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말로만 듣던 ‘말라리아’의 위험성을 느낀 순간이었다. 남태평양, 특히 솔로몬에는 아직도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말라리아에 대한 공포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라리아 모기는 일반 모기와 생김새부터 다른데 보통 해 지고 한 시간, 해 뜨기 한 시간 전에 활동한다고 한다. 말라리아에 걸리면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몸에 열이 오르고 기운이 빠지며 설사를 끊임없이 하게 된다. 말라리아에 걸릴 확률은 건기보다 우기가 높으며,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아 피검사를 통해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현지 봉사 등을 목적으로 솔로몬에 머무르는 한국인들은 말라리아 등 질병을 두려워한다. 특히 “의사를 믿을 수 없다”고 호소한다. 오진 사례가 많아 일단 병이 걸리면 호주로 이동해 진료를 받는다. 긴급한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호주에서 응급 수송헬기를 불러 호주병원으로 긴급 수송하는 서비스에 가입한 경우도 많다.

장면 #2 : 전기와 물
전기(電氣)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호주와 같은 3핀 콘센트가 필요했다. 문제는 전기의 질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쓰다 보면, 1년도 되지 않아 기계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전압이 고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현지 투자를 결정할 때 전기 문제는 중요한 고려 요소이다. 전기의 질이 낮고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자체 발전기 설치가 필요하다.

물 역시 안정적이지 않다. 호텔 식당을 찾았는데, 화장실 물이 갑자기 나오지 않아 당황했다. 워낙 단수(斷水)가 흔해서인지 항의하는 손님은 없었다.

장면 #3 : 시간약속
정부 핵심 인사들과 잡은 면담 약속이 시시각각 바뀌는 일이 허다해서 당황했다. 예를 들어 오후 3시에 면담을 잡았는데 오전에 오후 5시로 약속을 바꿨다. 막상 정해진 시각에 찾아가니 내일 아침에 오라는 식이었다. 기자에 대한 결례로 느꼈으나 남태평양 특유의 문화일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꾸준히 서두르지 말고 다가가야 한다는 현지 교민의 조언도 있었다.

장면 #4 : 완톡
완톡(Wantok)은 영어 ‘One Talk(같은 말을 쓰다)’의 피진영어로 ‘친척 사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끼리는 가족 같은 동질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언어 유대는 특수한 지역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냈다. 기자가 호니아라 교외를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도로 곳곳이 파손되어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과거 교통사고로 원주민 한명이 사망했는데, 그거에 대한 보복으로 지역 원주민들이 도로를 파손한 것이다. 보수를 해도 차량 속도를 늦춘다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도로를 파손한다고 한다. 피해자와 완톡으로 뭉친 원주민들이 공동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런 정서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주민의 집에 근처 사람들이 몰려가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제는 친척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거나 장기간 거주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에게 손을 벌리는 일이 많아 부정(不正)으로 연결될 소지가 많다. 솔로몬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호주 개입으로 정치 안정 찾아

10월 말 호니아라 교외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모여 있다. 신발을 신지 않고 걷는 것이 보통이다.

솔로몬 경제는 1999년 이후 지속된 부족 간 분쟁으로 급격히 침체되었다. 안정을 찾은 것은 2003년 4월. 당시 알란(Allan Kemakeza) 총리(2001년 12월 총선 당시 야당 연합대표로 선거 압승)는 부족 간 분쟁, 경제 악화 등으로 극심한 혼란이 계속되자 호주에 개입을 요청했다. 그해 7월 호주 총리는 PIF(Pacific Islands Forum) 긴급 각료회의를 통해 호주군 주도의 PIF 다국적군 2000명을 파견했다. 솔로몬군도 지역지원단(RAMSI·Regional Assistance Mission to Solomon Islands)으로 명명된 지원단은 솔로몬 치안 확보와 정국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2003년 치안이 회복되고 정치가 안정되면서 경제 상황도 나아지기 시작했다. 원목, 수산물, 코코아 등의 수출증가로 실질 GDP 증가율이 4~6%대를 기록했다. GDP는 2007년 10.7%, 2008년 6.9% 등으로 고공행진을 했지만 2009년 세계적 경기침체로 2.2%로 크게 하락했다. 2010년 이후 3~5%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물가상승률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2006년 11.1%, 2007년 7.7%, 2008년 17.4%, 2009년 7.1%를 기록했다. 실제 기자가 현지에서 체험한 물가는 살인적이었다. 보통 개발도상국의 물가는 매우 저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솔로몬은 제조업이 전무(全無)하여 대부분의 생필품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생수, 콜라 등 생필품 가격이 한국의 1.5배에 이른다. 주택 역시 부족해 호니아라에서 한국인 봉사자들이 거주하는 저렴한 주택의 월세가 1인당 한화(韓貨)로 100만~120만원에 달했다. 보통의 경우 월세 350만~500만원을 지불한다. 뿐만 아니라 한 끼 식사를 해결하려면 평균 1만5천원이 드는 등 한국보다 생활비가 많이 든다. 실제 현지 거주자들은 “미국 뉴욕에 사는 것과 생활비 차이가 없다”며 현지 물가 상황을 전했다.

문보영 이건산업 법인장.

경제기반이 열악한 솔로몬은 천연자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금, 팜오일, 참치 등 1차 산업이 대부분이다. 니켈, 보크사이트 등 미개발 광물자원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솔로몬 경제는 벌목(伐木·나무베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수출의 75%, GDP의 18%, 정부 세입액의 12%를 벌목업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특히 목재 등 솔로몬의 산림자원에 관심이 높다. 솔로몬에서 벌목, 조림(造林) 사업을 하고 있는 이건산업 문보영 법인장에게 솔로몬 현장의 상황을 물었다.

—이건산업의 솔로몬 진출에 대해 알려주세요.

“1983년 쵸이셀에 처음으로 현지 법인을 설립했어요. 천연목 벌목 사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5년 뉴조지아섬의 조림지를 정부로부터 매입했어요. 75년 임대를 약속받고 저희 이름으로 등기했습니다. 호니아라에서 비행기로 1시간 정도 걸리는데 2만5천 헥타르 규모입니다. 유칼립투스 나무를 조림하고 있어요. 97년부터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해 2009년에 첫 수확을 시작했습니다.”

—경영 성과는요.

“2010년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로부터 인증을 받았습니다. 인증을 받으면 해외 판매에서 프리미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인증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심사를 받고 있습니다. 생산한 원목은 중국 등에 합판용으로 수출합니다. 유칼립투스는 15년 정도 기르면 직경이 40cm 정도 되는데 꾸준한 조림 사업으로 이제 심은 것을 베는 선순환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호니아라 항구전경. 접안시설이 부족하고, 한국에서 화물선이 한 달에 한 번 입항한다.

솔로몬의 역사

외교부 공식자료에 따르면 솔로몬에 주민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약 3000년 전 동남아시아의 여러 섬에서 주민들이 건너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1568년 A.멘다냐 데 네이라가 인솔한 에스파냐 원정대가 처음으로 솔로몬을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본격적인 탐험이 이뤄진 것은 18세기 말이다. 유럽의 선교사와 상인들이 진출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1884~1885년 독일이 부카, 부건빌 등 북부의 섬들을 보호령으로 만들자, 영국이 1893~1898년 중앙부와 동부의 섬들을 보호령으로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이 서(西)사모아의 독일 영유를 인정하면서 해당지역은 독일에서 영국으로 넘어갔다. 영국은 1893년 10월 6일 보호령(British Solomon Islands Protectorate)을 선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사적 중요성으로 태평양 전선의 중심이 되었다. 1942년 5월 일본군은 솔로몬을 점령했다. 일본군은 과달카날섬에 한국인 징용 노무자들을 동원해 비행장 건설을 시작했다. 비행장 완성이 임박할 즈음 솔로몬은 미군에게 넘어갔다. 미군은 이 비행장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일본을 공격할 수 있었다. 과달카날 전투 승리로 전세(戰勢)는 미군으로 기운다. 솔로몬 정부는 1985년 공항활주로 연장을 국제입찰에 부쳤고, 이 공사는 한국의 동산토건이 맡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솔로몬은 영국과 긴밀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영향도 남아 있다.

솔로몬은 1978년 7월 7일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했다. 1946년 말라이타이섬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나 1952년 영국이 이를 무력 진압하는 등 오랜 기간의 독립운동의 결과였다.

철저한 자기관리 없으면 버티지 못해

전통 공예품을 판매하는 호니아라 시장.

—솔로몬 조림 사업의 장단점을 설명한다면요.

“나무 기르는 데 최적의 장소입니다. 강우량이 연중 고르고, 일조량이 풍부하죠. 기후조건은 매우 우수합니다. 영어를 통용하는 것도 장점이죠. 피진영어라고 해서 정통영어는 아니지만, 사실 한국영어 역시 정통영어는 아니죠. 중학교 정도를 졸업한 현지인의 영어 실력은 한국 웬만한 대졸자보다 우수하다고 느낍니다. 학교 교과서는 호주에서 가져와 사용합니다. 현지 직원들의 충성도도 역시 매우 높아요. 제가 현지에 오기 전에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고 식인종이 있다는 소문까지 있었지만 막상 솔로몬에 오니 생활 위험은 거의 없었어요. 노동력 측면에서 문제는 있어요. 인건비는 저렴하지만 절대적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수백 개의 섬에 60만명도 되지 않는 사람이 흩어져 있어서 백여 명의 인력을 모으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동생산성도 떨어져요. 솔로몬은 기본적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없죠. 산에 열매가 널려 있고,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면 되니까요. 이런 특성으로 현지인들은 절박함이 부족해요.

마지막으로 물류적인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많아요. 호니아라에 한국에서 오는 화물선이 한 달에 한 번 있습니다. 이마저도 한국에서 곧바로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를 거쳐서 오는 화물선입니다. 아직 솔로몬과 한국 간의 화물 수요가 많지 않아요.”

솔로몬의 주택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위치에 집을 짓는다.

—솔로몬에서 일하고 싶은 지원자에게 당부를 한다면요.

“자기관리가 중요합니다. 지루하고 가족과 떨어져 있어 매일 술만 먹고 나태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취미생활이 필요합니다. 이곳은 전 세계 다이버들이 수백만원을 들여서 찾아오는 다이버 천국입니다. 수영, 사진, 악기 등 취미생활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죠. 저 역시 사진에 흥미를 붙이고 있습니다.”

남태평양.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곳이다. 그러나 감상적 로망과는 달리 미개척지에서 자립하는 데에는 강인한 의지가 필요했다. 한국은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른 시간 내에 산업화를 마무리했다. 솔로몬은 한국의 경험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솔로몬과 한국의 성장 경험을 나누고, 한국 역시 국가 생존의 필수 자원을 확보하는 윈윈 전략이 필요해 보였다.⊙

[인터뷰] 고든 릴로 솔로몬군도 수상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개발 추구”

솔로몬 호니아라 수상 집무실에서 지난 10월 말에 만난 고든 릴로(Gordon Darcy Lilo) 솔로몬 수상(Prime Minister)은 “어린 시절 나무를 베는 일을 하며 솔로몬 민중의 어려움을 체험하며 성장했다”며 “솔로몬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상은 솔로몬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솔로몬의 국제협력 개선 전략이 있습니까.

“솔로몬이 세계무대에서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민간 사업체들과의 관계가 중심이 되었지만 향후 정부 대 정부의 관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솔로몬은 태평양 도서국 포럼(PIF)과 UN 등 다양한 국제기구에 적극 참여하며 국제적 역량을 키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방안은 무엇인가요.

“한국, 일본, 대만, 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솔로몬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합니다. 과거 식민지 시대처럼 솔로몬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솔로몬과 솔로몬에 투자한 국가와 기업들이 상호이익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수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목재와 어업이 주요 산업이죠. 한국은 솔로몬 자원개발에 있어서 과거로부터 중요한 파트너였습니다. 이런 과거부터의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수상 집무실 건물.

—구체적으로 한국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솔로몬은 자원이 국가의 가장 큰 자산이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할 인력이나 교육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한국과 같이 뛰어난 국가의 인재들이 교육과 연구를 위해 솔로몬에 투자해 주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솔로몬의 풍부한 자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자원수입국인 한국이 관련 연구를 솔로몬에서 수행하면 좋을 것입니다. 과거 솔로몬 경제부흥을 위해 무분별한 자원개발이 묵인되었지만 이제 국제적 흐름에 맞게 지속가능한 자원개발을 추구할 생각입니다.”

—지도자로서 어떤 비전을 갖고 있습니까.

“솔로몬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죠. 모든 국민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대학을 설립했고, 광케이블을 매립해서 인터넷 설비를 정비하는 등 미래를 위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친환경 개발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도록 에너지 개발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개발이 집중되지 않고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기회를 누리게 하기 위한 국가 균형 발전도 중요한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