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훈 詩人이 쓰는 대한민국 구라열전 ⑩ 시인 李潤澤 : 월간조선

그날 나는 북소리를 들었다. ‘구라’의 북소리, 직언, 쾌도난마, 서정, 질타, 중앙을 무너뜨리는 변방에서 들려오는 구라의 북소리는 나를 황홀하게 했다. 혜화동 게릴라소극장으로 내려가는 언덕길에 잠시 멈춰 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하늘엔 구름이 지나가고, 무더운 날씨는 곧 내릴 비를 예고한다.

너무 더운가, 힘들고 고달픈가, 기뻐하라 그것은 이미 비와 바람을 준비하고 있는 하늘의 마음이다. 조금만 더 견디자, 이 시대의 전투에서 부상당한 아픈 몸을 이끌고 이 시대의 추장에게 다가간다. 추장이 하늘과 땅의 신에 기도를 해서 내 몸을 병을 치유해 준다. 나는 지금 샤먼의 들판에 머물고 있다.

연극인 이윤택(李潤澤·연희단거리패꼭두쇠)을 이 시대의 ‘문화 게릴라’라고들 하지만 그는 인디언 추장이다. 인생 육십에 도달한 이윤택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수사는 ‘젊은 이윤택’에게 어울린다. 그럼 뭔가? 그 인간을 알고 싶었다. 구라는 그 인생의 뼈이다. 그 뼈다귀를 만지면서 이 어지러운 시대의 뒤틀린 골격을 짐작할 수 있다.

인연은 연극 <궁리>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적어도 20년 이전에 나는 이윤택 시인과 시인으로 만났다. 그 세월이 지나고 20세기가 지나고, 21세기가 되었다. 그는 무슨 이유로 십 년 만에 궁리하고 쓰고 연출한 것일까. 연극 <궁리>는 세종(世宗)과 장영실(蔣英實)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게릴라극장 관계자들이 대박이라고 귀띔해 준다. 대박이라…. 연극인 이윤택은 요즘에 뭘 궁리하고 있는가?

“연극 <궁리>를 궁리하고 있지요. 배경설명을 좀 하자면, 장영실에 대한 소설을 먼저 썼어요. 장영실특별전을 보는데 뭐 꽂히는 게 있더라고. 그리고 뮤지컬·연극 작업을 하고 있어요. 소설은 하루에 100매씩 80일 만에 써버렸어. 초고(草稿)를 그렇게 벼락같이 쓰고 퇴고(推敲)하면서 지금은 《국제신문》에 연재하고 있지.”

衆口難防의 시대

―<궁리>는 장영실의 사유(思惟)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까?

“아시다시피, 1980년대는 인문학적인 사유와 시대담론(時代談論)이랄까, 세상에 대한 사유가 공존하고 있었어요. 살 만했지. 비교적 상대가 있어서 주먹 날리기도 좋고 말이야.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저항적인 담론이 슬슬 사라지더니 구렁이 담 넘어가듯, 21세기가 도래했네? 우리 세대는 21세기에 대한, 정보화 사회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이 시대는 불우한 거지요.

인터넷은 적어도 나에겐 환상입니다. 사적(私的)인 담론매체인 인터넷이 자리 잡자, 세상의 중심이 없어지고 여러 사람이 마구 떠들어대니까, 말 그대로 중구난방(衆口難防)인 겁니다.”

그렇다. 여러 사람의 입을 막기는 어려운, 이 시대는 중구난방의 시대다. 원래 ‘중구난방’이란 ‘권력으로 백성들의 입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정책과 정치에 관한 것이었다. 그 시절은 호시절이었다. 정책과 정치가 사라진 시대의 중구난방은 이윤택의 표현대로 세상의 중심이 사라진 시대다. 중심이 없이 세상 사람 모두가 각자의 골방에 앉아서 마이크를 대고 떠들어댄다는 거다. 이윤택은 마이크에 대고 막 쏘다 보면, 사적으로 고립되고 시대 중심의 담론이 이어지지 못한다고 했다.

“이 시대가 불운합니다. 혼란스럽기도 하고요. 저항담론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잃어버린 게 많아요. 진보가 진보적이지 못하고 방어적 수준으로 전락합니다. 지금의 진보는 정파적(政派的)인 진보여서 시민들에게 소외당합니다. 소외는 단절을 불러오지요. 하지만 이건 뭐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셰익스피어도 젊은 세대였고 진보적이었어요. 중심을 허물어뜨리려는 젊은 변방이었지요. 시대마다 세대 간에 소통의 방식이 다른 겁니다. 세종 시대에 장영실 역시 왕과 노비, 정치와 문화 등등의 이유로 소통이 불통(不通)이었지요.

21세기, 이 기이한 세상에… 정치적인 방향성도 사라지고, 문화적인 실험의식도 실종되었어요. 하드웨어는 엄청 발달했는데, 콘텐츠나 소프트웨어가 비어 있어요. 기이하지요.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상체가 엄청 발달한 격투기 선수같아요. 공격적으로 발전했는데 하체인 정치 문화적인 기반이 빈약하게 됐어요. 뒤뚱거리는 겁니다. 기업적인 측면에서만 풍요로운 세상입니다.”

“<궁리>는 관계에 대한 敍事”

20세기가 좋다는 이야기인가? 이윤택은 20세기인(人)으로 살겠다고 한다. 그가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간 날도 연극의 마지막 장(章)처럼 딱 떨어진다. 그는 1999년 12월 밀양으로 내려갔다.

“새로운 것은 젊은이들의 몫인 거지요. 나는 21세기의 첫날에 20세기의 마지막 자리에서 머물렀어요. 고향은 그런 나를 품어줬고요. 거기에서 1970년대부터 그때까지 작업한 것을 글쎄… 뭐랄까, 관리 기록한 거지요. 그 후 10년 만에 다시 글 쓰고 연출합니다.”

20세기인의 눈과 마음으로 21세기를 보니까 어떤가 싶었다.

“벌써 10년이 더 지났는데도 시대에 어울리는 사회의식이 형성되지 않았어요. 시대의 주체도 모르겠고. 이런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어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시대담론이 형성되어 저항과 긴장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바다에서 막 잡아올린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말이지요. 어부가 살아 있는 이유는 물고기가 있기 때문이지요. 어부는 힘이 넘치고 배는 항공모함인데 바다에 물고기가 없어요. 이런 사유에서 나는 <궁리>를 쓰게 됩니다. 결국 관계에 대한 서사(敍事)입니다.

세종과 장영실은 극단적인 신분 차이에서 시작해 국가주의자와 전문가, 중앙과 지역, 중심과 변방이라는 위치에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떤 관계가 형성되는가, 이것을 지금 이 시대의 담론으로 들고 나온 겁니다.”

장영실을 통해 본 張三李四들

이윤택이 최근 작 <궁리>의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자신의 온 재능과 열정과 사랑을 다 바쳤던 별 같은 존재, 주군(主君) 세종에게 내침을 당한 장영실, 위자료 한 푼 챙기지 못한 소박맞은 여인과 같은 꼴로 망연자실 하는 장영실….

그는 중앙인 궁(宮)에서 밀려나자 서쪽에 있는 집으로 가지 않고 ‘북문(北門)’으로 가자고 한다. 북문은 인왕산 쪽으로 호랑이가 사는 별천지의 세상이자, 죄인들을 참수하는 죽음의 공간이다. 그곳은 산 자의 땅도 죽은 자의 땅도 아닌 애매모호한 공간, 장영실의 선택은 시대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 시대의 저항은 모든 억눌린 자들의 담론이 된다.

세종이라는 시대사유와 저항담론이 충돌한다. 이미 이윤택은 <연산군>을 통해 가여운 시인으로서의 연산군을 연출한 바 있다. 천하의 폭군(暴君) 연산군(燕山君)에서 그는 인간을 보았다.

<궁리> 속의 세종도 휘황찬란한 후광(後光) 뒤에 숨어 있는 인간 세종, 뚱뚱하고 병치레가 잦고, 날마다 영민한 신하들과 정치적인 기를 겨루는 인간이다. 관객은 그에게서 개인을 파괴하는 정치권력의 폭력을 본다. 그 대상이 바로 천민(賤民) 장영실이다.

장영실은 변방의 호랑이 이윤택의 손에 의해 재탄생한다. 장영실은 천민 출신으로 입신출세(立身出世)를 하고, 위대한 과학적 업적으로 조선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은 빛의 존재다. 이윤택은 그 빛의 뒤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시인의 눈으로 살피고, 소설을 썼다.

이 서사는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장삼이사(張三李四)의 서사이기도 하다. 21세기의 동숭동 거리, 종로 거리, 광화문 거리, 전국방방 곡곡에 장영실이 걸어다니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대한 개인주의”

“오랜 시간이 걸려 살아온 지난 세월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그 삶을 21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나 스스로를 성 밖으로 유배한 거지요. 그 세월을 지나고 보니 새로운 밀레니엄으로 설레발을 치던 모든 것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여전히 세상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어요. 즉, 상위 1%를 향한 무한경쟁, 소통 불능의 시대를 한탄만 하고 있다면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지요, 그냥 시골에서 살면 돼요. 그런데 뭔가 이런 시대에 대한 재(再)건설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요. 이젠 지난 시절에 해체니 뭐니 하는 담론들도 소용이 없어요. 이미 다 해체가 되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위대한 개인주의입니다.”

개인의 주체성(主體性)이 귀중하게 대두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윤택은 지나친 국가주의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위대한 개인주의를 이야기한다. 비대한 국가의 지방질을 빼고 국가의 권력을 줄이고, 대기업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청춘실업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유효하다. 앞집 옆집 할 것 없이 백수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이윤택은 외친다.

“당당한 백수가 되어라.”

백수생활의 위기를 세상을 보는 기회로 삼으라는 조언이다. 백수생활은 인생의 한 시기이다. 이윤택은 “백수생활은 준비단계이고, 도약단계라는 긍정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백수는 비교적 넓게 세상을 볼 수 있다. 놀고 있는 눈으로 환하게 세상을 본다. 기업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그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나와 세상이 합일(合一)이 되는 순간을 포착하라. 백수는 자유로운 선택의 기간이다. 세상을 보는 역(逆)발상을 이윤택은 이야기한다.

60년 만에 맞는 첫 생일

“나의 이 말에 청년들이 공감했어요. 산악인 엄홍길씨와 부산에서 ‘청춘토크쇼’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말입니다. 조직, 국가, 정파주의에서 선택당하고 조직의 우산 아래서는 젊은이들이 학벌(學閥)과 지방색으로 눈이 어두워져 버립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요. 이런 집단주의가 사라져야 한다는 거지요.

그런 시기에 백수 청년들이 준비하는 겁니다. 요즘은 신문도 인터넷으로 검색하지요. 이제는 어느 한 세대가 사회를 조절, 통제할 수 없어요. 개인의 주체성이 강화되어야 사회와의 관계에서 순(順)기능이 발생하는 겁니다. 이런 관계를 통해서 이기적인 사회가 아닌 서로의 관계에서 존중하는 관계망이 형성되고 거기에서 위대한 개인주의가 탄생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윤택은 올해 처음으로 생일을 맞는다는 얘기를 했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내 나이 올해 환갑입니다. 윤달에 태어나 60년 만에 생일이 돌아온 겁니다. 나이가 주는 생일상을 받고, 곰곰이 생각했지요. 내 삶을 반추(反芻)해 보니, 이런 생각이 듭디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길은 지금 내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 지점에서 삶의 행로(行路)를 정지하거나 왜곡하면 인격적인 죽음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있지요. 세상에 대한 전체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겁니다. 이런 일은 특정 정파에 속하면 할 수가 없어요. 자유의지를 가진 무소속(無所屬)의 인간, 비소유(非所有)의 입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겁니다.”

현재 이윤택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은 밀양연극촌. 주소는 경남 김해시 생림면 도요리이다. 아름다운 강변마을이다. 모두 50여 가구가 모여 있다. 시인 최영철씨는 이곳에서 《웹진 도요》를 운영한다.

이 웹진을 보면 시인 최영철의 맛있는 책읽기를 비롯해서 읽을거리가 많다. 이윤택 선생은 시험 공연을 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밀양연극촌은 중앙과 변방을 연결해 주는 공간인 셈이다. 밀양연극촌과 더불어 서울 게릴라소극장, 부산 가막골소극장이 이윤택 선생의 활동무대이다. 문화게릴라로 살던 그는 이제 환갑의 나이가 되어 우리 연극의 중심에 서 있다. 그의 커리어는 이제 더 이상 변방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 왠지 쓸쓸한 변방의 바람이 느껴진다.

외할머니는 약사무당

1999년 이윤택이 연극 <어머니>에 출연한 배우 김학철에게 연기에 관해 주문을 하고 있다.

사람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의 현재를 알 수 있다. 이윤택은 항상 세상을 낯설게 본다고 했다. “항상 변방에서 바라보는 낯선 세상, 주류(主流)에 섞이지 않고 한 발 떨어져 있는 고독을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3대 독자(獨子)로 태어났다. 누님 한 분이 있었는데 일찍 시집을 가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난봉꾼이어서 항상 집을 비웠어요. 어머니가 살림을 도맡아 했는데, 보따리 장사 같은 거지요. 어린 시절 나는 외가 8남매 중에서 제법 총명해서 외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외할머니가 시골 ‘약사(藥師)무당’이었어요. 신당(神堂)에 거처하는 무당처럼 굿은 안 하고 재가(在家)하는 무당이었지요. 외할머니는 마을의 큰어머니 같은 분이었어요. 민간요법으로 아픈 사람들 치료도 하고 말이지요.

어릴 때 외할머니는 나의 큰형님을 두고 ‘장원급제할 팔자’라고 했어요. 그 형은 법대에 가서 법조인이 됐어요. 내게는 ‘이율곡이 보인다’고 했어요. 학자의 운을 타고났다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는 나에게 선비 대접을 하셨어요. 어린아이인데도 하대를 하지 않고 선비를 대하듯 존중하셨죠. 형제 중에서 마을에서 존경받은 할머니에게 그런 대접을 받은 사람은 내가 유일했지요.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윤택이에게는 고기를 먹이지 말고, 콩나물도 좋은 놈으로 골라 먹이라’고 했어요. 어머니는 저를 위해 이사를 많이 다녔지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마음이었지요. 외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이 나를 선민(選民)으로 키웠습니다. 그런데 성장해서 세상에 나와 보니 내 모습이…, 사람들과 어울리질 못했지요. 현실의 나와 내가 꿈꾸던 내가 서로 괴리된 상태로 계속 성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골방에서 만난 세상

이윤택은 잠시 쉬면서 담배를 찾았다. 나도 담배를 찾았다. 조금 전 게릴라소극장에서 봤던 이윤택이 아니라 잠시 옛 시절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작고 찢어진 눈, 날카로운 매의 눈을 한 그의 눈망울이 잠시 더 넓어진다. 대낮인데 달이나 구름이 담긴 것 같았다.

“‘저는 우정이나 사랑이 변하는구나. 이거 현실성이 없는 거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다 그런 게 아닌가 싶네요. 허허.”

상처는 결국 우정이나 사랑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순간 생긴다. 우정도 사랑도 다 그때 이야기다. 그래서 좋은 친구 하나가 인생에 있다면, 절절한 사랑 한 번 찾아왔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살아 보니 알겠다.

혹시 이것은 그의 화려한 여성 편력의 은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확인된 바는 없지만, 왠지 주위에 여성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멋진 사내에게 드는 수컷으로서의 질투이리라.

“여성과는 의식의 연대(連帶)가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여성의 감성과 관능이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지요. 남성과 여성은 결국 대화가 힘들어요. 연애도 그렇고, 그런 마음으로 시(詩)를 쓰기 시작합니다. 젊은 시절 사람 관계에서 기인하는 외로움이 나를 골방으로 몰아넣었고, 그 골방에서 나는 세상을 만나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합니다.”

이윤택은 시인으로서 습작(習作)을 할 때, 우선 남의 시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문예반에 들어가 소월(素月)시나 백석(白石)시를 외우고 비슷하게 써보고, 이런저런 이론을 읽어야 하는 그런 과정을 건너뛰어 버렸다. 대신 음악, 그림, 영화, 시장통과 거리를 들개처럼 쏘다니면서 ‘나만의 시’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신문사에서 일을 하며 살았다. 그의 첫 시집 제목은 《시민》이다. 당시 문단에 큰 화제를 불러 모았던 독특한 시 세계였다. 이 시를 통해 그의 ‘게릴라’로서의 면모가 부각된다.

무소속 인생

“원형도 아시다시피, 당시 나는 민중시(民衆詩)도, 시 운동으로 대표되는 순수시(純粹詩)도 아니었지요. 나는 별 볼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학, 그런 사람들의 문학을 했어요.

예를 들어 볼까요. 민중시를 보면 여공(女工)이나 창녀(娼女)들을 가엽게 봅니다. 그런데 실제 그들을 보면 그리 슬퍼하지 않아요. 오히려 내가 위안을 받습니다. 다른 또래의 여성들처럼 도시락 들고 버스를 타는, 까르르 웃으면서 화장에 신경 쓰는 그런 시민이에요. 나는 이편도 아니고 저편도 아닌, ‘내 편’이지요. 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회색분자라고들 하는데, 그래요 ‘난 당당한 회색분자다’라면서 다녔어요. 머리카락도 지금은 백발도 흑발도 아닌 흑백이 적당히 섞인 회색이잖아. 하하.”

그러다가 1980년대가 간다. 이윤택은 억압이 풀리고 민주화 시대가 되면서 더 불우했다고 한다. 적이 사라진 시대이기 때문에. 그는 1986년 연극에 투신한다. 깨진 항아리를 연못에 던지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극계에서 그는 게릴라의 면모를 더 확실하게 부각시킨다.

“부산에서 가막골소극장으로 연극을 시작했던 1986년부터 1998년까지 수많은 작품을 올렸어요. TV 드라마도 하고 하여간 좌충우돌 많은 일을 했어요. 그러면서도 연극 관련 단체에 가입하지 않았어요. 무소속으로 버틴 거지.

그러다가 노무현(盧武鉉) 정부 시절에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하면서 관련 단체에 가입했어요. 당시 국립극장장이던 김명곤(金明坤)씨의 권유로 공직에 몸담게 된 거지요. 그때 뭔가 바꿔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됩디다. 그래서 2년 하고 관뒀지요.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나는 당당한 회색분자로 버티고 살아온 겁니다.

그런 나를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어요. 대신 ‘이윤택은 우군(友軍)도 적군(敵軍)도 없다’고들 했지요. 이런 나의 태도는 시인 이형기 선생의 영향 때문입니다. 그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시인은 일인 일당(一人一黨)의 당수(黨首)다. 당원이 되면 안 된다.’”

‘문학 무정부주의자’

이것이 바로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별 보는 사람’으로 자각하는 순간이다. ‘별’이 볼일에 가서 붙으면 관형사(冠形詞)가 되지만 ‘별’이 되는 순간 명사(名詞)로 독립한다. 단독자로 재탄생한다. 이 언어의 의미가 인간을 생각하게 한다. 이윤택 선생은 강조한다.

“인간은 별 볼일 없이 태어났어도, 별 보는 사람이 되는 거다.”

개인이, 시민이 자신의 별을 보는 순간, 개인의 주체성이 도드라진다. 그의 우렁찬 함성과 같은 말을 들으면서 나는 ‘별을 보는 인간의 눈동자는 이미 별이다’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어린 왕자가 지나가고, 카프카가 배회하고 있었다. 의식이 부풀어 오르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나도 한때 시인이었지’라는 생각을 했다. 좋은 구라는 그렇게 인간을 인간으로 보게 하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한순간이자 스승의 죽비이다. 딱, 내 어깨를 내리치는 구라. 이 말이 그날 최고의 구라였다. 이윤택의 구라는 계속된다.

“나는 비교적 명성이나 물질, 권력에 연연하지 않았어요. 나는 원래 세상 속에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학교 다닐 때도 반장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공부도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지요.

그런데 나의 장점은 여기에서 와요. 이것이 무서운 겁니다. ‘너, 별 볼일 없잖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에게 무서운 저항의식이 생겨요. 이게 나의 힘입니다. 나의 권력이고, 나의 명예지요. 명성이나 권력으로 남에게 군림하는 게 아니라, 저항하면서 게릴라처럼 치고 들어가는 겁니다. 주변부에서 출발해서 중심으로 갑니다. 칭기즈칸이 세상의 성을 허물어버리듯, 노마드 정신으로 대지를 질주하는 거지요.

성을 쌓은 자들이 안주하고 있을 때 나는 길 없는 길이랄까, 나만의 방식으로 걸어갑니다. 지나고 보니 그게 나의 길이었어요. 정형화되지 않는 나의 길 말입니다.”

이런 태도는 기존의 고정관념, 자기가 가진 창과 방패를 들고 안주하는 자들의 성을 공격하는 게릴라전법(戰法)이다. 고(故) 기형도 기자가 그의 시를 평하면서 ‘문학 무정부주의자’라고 한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이윤택이 그려낸 세종과 이순신

연극판에서는 이윤택의 이 무정부주의가 더욱 강렬해진다. 그는 유인촌이 열연한 <연산군>에서 폭군이 아닌 시를 잘 쓰는 인간으로서의 연산을 그렸다. <궁리> 속의 세종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세종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정치인상(像), 즉 국가를 위해서는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는 잔인하고 사악한 임금으로 그려진다. 세종은 당시 명나라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끝내 장영실을 내친다. 연극에서 장영실의 아내가 하는 말, “이 더러븐 세상 퍼뜩 매 맞아주고 가입시더”는 모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의 한탄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순신(李舜臣) 장군에게도 적용된다. 그의 뮤지컬 <이순신> 속의 이순신은 첩(妾)을 많이 둔 사내이자, 질투하는 인간이다.

인간의 관점으로 볼 때 모든 성은 허물어지고 새로운 대지가 열린다. 문학과 연극은 이런 일을 하는 작업이다. 이윤택은 세종에 대해서는 독한 말을 덧붙인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했지만, 한글이 없다고 시가 없어집니까?”

이윤택의 이러한 기질은 어린 시절에서 연유한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외할머니는 약사무당이었다. 어머니 역시 그런 기질을 타고났다. 아버지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난봉꾼, 바람이다. 노마드이다. 그의 몸에는 샤먼의 피가 흐른다. 그래서인지 말소리가 하늘을 울리는 북소리 같다.

“굿만 안 했지, 난 무당이에요. 시인과 연극인의 길은 세상에 낯선 인간의 길이었지요. 무당이라는 존재는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는 인간이지요. 우주순행, 하늘의 원리를 땅으로 끌고 내려와 삶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존재입니다. 기형도가 이야기한 무정부주의와 샤먼의 길은 왜 내가 세상을 낯설게 볼까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지요.”

만약에 반백의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다면 그는 몽골이나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의 모습이다. 검게 그을린 피부, 강퍅해 보이는 뺨, 작고 찢어진 날카로운 매의 눈을 가진 그는 잠시 전통의상을 입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추장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盧武鉉과 文在寅

고교 졸업 앨범 속의 문재인(왼쪽)과 이윤택(오른쪽).

이윤택은 정치인 문재인(文在寅)과 경남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다. 요즘 뉴스의 중심에 있는 정치인 문재인의 학생시절이 궁금했다.

“건축가 승효상(承孝相)씨가 우리와 같은 반이었는데, 어떤 글에서 문재인과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문재인씨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학생이었지. 동선(動線)이 달랐어요. 그는 모범생이자 우등생이었고, 나는 매일 지각이나 하는 그런 학생이었지. 솔직히 그때는 문재인이 나중에 뭐가 될지 걱정이었어. 내가 보기에 그는 너무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으니까…. 그는 순도 100%의 청렴한 인간이었고, 나야 얄개처럼 싸다니는, 서로 대화가 될 수 없는 그런 사이였지요. 건축가 승효상씨는 그때도 아이디어가 참 많은 사람이었어요.

나중에 문재인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변호사 사무실을 같이할 때, 찾아가서 가난한 극단에 광고 후원 좀 해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게 뭔 문제가 되는지 몰라도 ‘그런 방식은 안 된다’고 해서, 그들에게 연극표를 팔았지. 그러다가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상담하고, 그렇게 지냈어요.

그들이 정치인이 되고 나서는 연락두절.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내가 밀양에 있을 때 가끔 연극 보러 왔어요. 그때 자유인으로서 노무현씨를 만난 거지요.”

이윤택은 “유인촌씨가 다시 연극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연산군>의 주연이 그 형이죠. 언젠가 <궁리>를 보러 오셨더라고. 그때 ‘형, 다시 연극 합시다’라고 했더니, ‘글쎄 할 수 있을까…’라고 합디다. 할 수 있지요, 안 그래요?”

그는 유인촌을 비롯한 연극인들이 정치를 할 때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정치는 샤먼의 대척점(對蹠點)에 있다”면서 “단 그 일이 끝나면 다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高卒시인 등단기

이야기는 다시 시로 돌아갔다. 시는 고졸(高卒) 출신인 이윤택에게 인문학적 교양이면서, 존재이고, 인간의 중심에 위치한다. 그는 어떻게 시인이 되었을까.

“선생에게 어떤 문학적인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어요. 이런 식이지요. 당시 《현대시학》의 전봉건 선생에게 내 시를 들고갔어요. 선생이 내 시를 한번 보시더니 말이 없어요. 머쓱하니 앉아서 눈치만 보고 있었지요. 두 시간 동안 그렇게 있었어요. 한마디 대화도 없이 말이지요. 기차시각이 되어서 ‘이제 내려가야 된다’고 말씀드렸죠. 전 선생은 ‘내려가서 시 추천 완료 소감을 써서 보내라’고 하더군요. 시인이 됐다는 거지요.

부산에 국제다방이라고 있어요. 이형기 선생이 자주 다니시는 곳이라 한번은 큰 마음먹고 시를 들고가서 ‘제 시를 좀 봐달라’고 했지요. 선생이 ‘그러마’ 하시더군요. ‘언제 할까요’라고 여쭈었더니, ‘지금’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수십 편의 시를 보시더니 40행의 시를 지우고 지우고 지우고 지우라는 거예요. 결국 10행이 남았어요. 그런 나를 보고 선생이 기가 막힌 말씀을 하셨어요.”

이윤택은 선생이 한 그 말을 염두에 두고 집에 들어와서도 계속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선생의 말을 들었다. 그 말은 아직도 그의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

“이왕 지우려면 한 줄 더 지우지….”

시인 이성복과의 인연

시인 이성복.

이성복 시인과의 인연도 후배인 내가 듣기에는 기가 막혔다. 시인 이성복은 정치인으로 비유하자면 우리에게 대통령이었다.

“대학 선생 하기 전에 이성복씨가 방송통신대 신문기자를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해서 먹고살아야겠다’ 싶어 방통대에 다녔지요. 그땐 거기 나오면 선생 했어요. 그런데 방통대 1회 문학상에 내 시가 당선이 됐는데, 심사위원이셨던 황동규 선생이 ‘어디서 베낀 거 아니냐’며 조사하라고 하셨답디다. 하하. 상찬(賞讚)이지요.

어느 날, 방통대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기념시를 하나 써달라는 거예요. ‘난 기념시 안 씁니다’라고 했는데, 기자가 하는 말이 ‘나, 《문지》(문학과 지성)로 등단한 시인 이성복입니다’라는 거예요. 그때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로 이미 유명했잖아요. 그래서 ‘아, 그래요. 그럼 써야지요’라고 했어요. 그렇게 우리는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는데 나중에 계명대 교수가 돼서 부산에 놀러 왔어요.

그때 처음 만났어요. 난 《국제신문》에 다니고 있었지요. 이성복씨가 ‘부산에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거예요. 어디냐고 물으니까, 부산에 있는 유명한 유곽(遊廓)인 완월동에 가보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지요. 돈이 필요해서 신문사에 올라가 돈을 구해서 내려왔더니 이성복씨는 없고 그 자리에 메모 한 장만 있는 겁니다. ‘자신이 없어서 그냥 갑니다’라고요.”

‘이성복 시인의 시 <정든 유곽에서>에는 이런 배경이 있구나’ 싶었다. 이윤택은 이성복 시인의 방에 간 적이 있는데 새벽 두 시경이었다고 한다. 그때 눈이 퀭한 카프카 사진 한 장이 크게 벽에 걸려 있고 앉은뱅이 책상 하나만 놓여 있던 공간, 마치 연극무대와 같았던 그 공간을 보고 ‘이게 바로 시인의 방’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기형도, 하재봉, 최승자, 마야콥스키를 비롯한 시인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누었다. 메모하고, 웃고, 담배 피우고, 술만 없었지 잠시 198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나는 亂世의 黑龍”

“사람들은 중심에 있으려고 합니다. 중심에 있으면 경쟁, 긴장, 자리다툼이 있어요. 방어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변두리를 돌아다니면 공격적이 됩니다. 물론 지금의 저를 변두리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나는 항상 외곽에 있다는 의식을 하고 있어요. 팽팽하게 신경줄을 잡아당깁니다. 나는 언제든지 치고 빠지는 게릴라예요.

올해가 60년 만에 돌아오는 흑룡(黑龍)의 해입니다. 흑룡은 청룡(靑龍)처럼 선한 용이 아닙니다. 무섭고 사나운 용이지요. 흑룡은 세상이 난세(亂世)일 때 출현합니다. 역사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시기가 흑룡 해였어요. 임진왜란의 임진년도 그러하고 말이지요.

흑룡은 하늘을 가로질러 갑니다. 승천하는 이미지가 아니에요. 난세의 하늘을 가로질러 샤프하게 날아갑니다. 시대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삶에 긴장감을 주는 용이지요. 나는 이 난세에 흑룡의 역할을 합니다. 세상을 향해 한 방 먹이고, 정신 차리게 하는 거지요. 성군(聖君) 세종에게도 장영실을 통해 한 방 먹이는 겁니다.

난 장영실의 분신입니다. 천민이고, 지방 출신이고, 내 주군은 세종이 아니라 하늘의 별입니다.”

이번 <궁리>를 통해서 그는 시인으로서의 정체성(正體性)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나는 현재진행형 ~ing다. 이 순간에 자기가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가, 그게 중요하다. 지금 100kg을 느끼면 지난 삶이 바로 100kg이다. 지나간 삶의 궤적의 끝,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 그리고 시작이다. 그는 시대의 중심에 있는 시를 쓰라고 권한다. 시인이 희곡, 소설을 쓰라고 권한다. 정파주의에서 벗어나 기존의 장르가 아닌 융합적이고, 창조적인 작품을 쓰라고 권한다. 내가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세간의 평가는 고양이 꼬리 같은 거라고 한다. 마음 편하게 당신의 별을 찾아가라고 한다. 이런 긴장감이 없다면 바로 그 순간부터 ‘식충’된다고 ‘무당’ 이윤택은 경고한다.

“아주 오래전이지요. 시인 장정일과 술을 먹다가 다퉜어요. 정일이가 취해서 ‘나는 시인이니까 세상이 나를 먹여 살려줘야 된다’하는 거예요. 그때 제가 말다툼하다가 결국은 패버렸어요. ‘이놈아, 시인이라는 이유로 세상이 널 왜 먹여 살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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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詩人이 쓰는 대한민국 구라열전 ⑩ 시인 李潤澤

“굿만 안 했지, 난 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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