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玄鎭
⊙ 62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소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 한국사회학회장, 한국NGO학회장, 국제개발협력학회장 등 역임.
⊙ 저서: 《지구시대 세계의 변화와 한국의 발전》, 《NEW ASIAS》, 《글로벌 NGOs》 등.
孔錫己
⊙ 41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글로벌 NGOs》, 《인권으로 읽는 동아시아》 등.
⊙ 62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소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 한국사회학회장, 한국NGO학회장, 국제개발협력학회장 등 역임.
⊙ 저서: 《지구시대 세계의 변화와 한국의 발전》, 《NEW ASIAS》, 《글로벌 NGOs》 등.
孔錫己
⊙ 41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글로벌 NGOs》, 《인권으로 읽는 동아시아》 등.
-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인 2010년 3월 26일 독일 쾰른에서 반핵운동가들이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독일의 반핵시위는 정부의 원전중단 결정을 이끌어냈다.
초국적 자본가의 로망을 버려야 산다
미국 동부의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겨울을 지내본 사람이라면 가장 부러운 것 중의 하나가 SUV(Sports Utility Vehicle) 차량일 것이다. 잦은 폭설로 길은 미끄럽고 어쩌다 옥외나 노상 주차 공간에 승용차를 세워놓았다가 차가 눈 속에 갇혀 며칠 동안 눈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을 겪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4륜구동을 자랑하는 SUV는 쌓인 눈을 가뿐히 넘어서며, 눈이 쌓인 곳이라도 턱 하니 주차하곤 한다. SUV 뒷부분에는 4X4라는 자랑스러운 문구가 크게 붙어 있고, 차 이름도 Expedition, Ranger, Highlander, Endeavor, Pathfinder, Wrangler처럼 거친 광야를 헤쳐나가는 개척자의 모습을 뽐내는 것들로 넘쳐난다. 교외에 사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대부분은 가족용 밴(Van)과 더불어 SUV를 하나 더 소유하는 것을 그렇게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SUV에 열광하던 미국인들의 에너지 다소비적 삶의 습관들은 에너지 위기와 친환경적 사고를 둔감케 하는 독이 되고 말았다.
브래셔(Keith Bradsher)는 2002년 자신의 책, 《High and Mighty: SUVs-The World’s Most Dangerous Vehicles and How They Got That Way》에서 SUV는 ‘기름 잡아먹는 괴물’(gas guzzler)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연비가 낮은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자동차 회사의 로비에 넘어가 SUV를 승용차가 아닌 트럭으로 분류해 줌으로써, 세금 감면은 물론 연비나 안전 기준을 완화해 주는 엄청난 특혜를 제공했다고 고발했다. 그 결과 문자 그대로 SUV는 ‘이기적이고 쓸모없는 차’(Selfish Useless Vehicle), 환경오염과 안전사고를 유발시키는 매우 위험한 괴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1990년대 말까지 갤런당 1달러에 머물던 미국의 기름값이 10년 만에 4달러에 육박하고,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와 자원 위기가 동시에 급습하자 최근에는 갤런당 5달러까지 기름값이 치솟아 SUV의 인기는 땅에 떨어지고 판매는 급감했다. 2008년 8종의 SUV를 내놓았던 도요타와 렉서스는 70년 만에 적자를 경험했고, 판매량도 33.9%나 감소하면서 17억 달러의 적자를 내고 말았다.
SUV에 열광했던 미국인들은 에너지 위기로 도래한 반환경적 SUV 실체를 목도하면서 그 열광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부의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의 “미국인의 생활 방식은 교섭의 여지가 없다”는 말에서 드러나듯 미국은 아직까지도 에너지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더 많은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중동(中東)에 공을 들이는 제국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遊牧자본가’의 삶
우리는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초국적 일류기업의 한 임원, 장 이사의 회의참가 동선을 따라 그의 삶의 양태를 상상해 보자. 장 이사는 뉴욕에서 투자자들을 위한 설명회를 마치고 바로 인도 뭄바이로 날아가서 현지 법인 책임자들과 동남아시아의 신흥시장 분석회의를 마친다. 그 다음 날은 유럽지역 파트너들과의 협력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런던행 비행기를 탄다. 장 이사는 말 그대로 시공간의 경계를 초월하며 세계화 과정을 몸소 실천하며 지구촌 시장을 무대 삼아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활동하는 초국적 자본가(transnational capitalist class)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런 초국적 자본가, 그들에게 국가, 지역, 마을 공동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초국가적 삶의 위험성은 지구시민으로서의 책임성(global citizenship)을 갖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들의 활동범위는 분명 국경을 넘어선 전(全) 지구적 차원이지만, 세계화의 이익만을 누리려는 ‘유목(遊牧) 자본가’(nomadic capitalist)의 특성이 더욱 강하기 때문이다.
유목민은 한 지역에서 자원을 어느 정도 소비하게 되면 다시 자원을 찾아 새로운 장소로 이동한다. 이러한 유목 자본가의 수가 늘게 되면 공동의 자원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공동 책임성은 소홀히 다루어진다.
물론 자연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휴지기(休止期)나 회복기가 충분히 주어진다면 그리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세계화의 규모, 속도, 범위 차원에서 볼 때 자원소비는 이미 재(再)생산의 속도를 훨씬 넘어섰다. 결과적으로 자원은 고갈되고 유목 자본가는 이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경쟁하고, 심하게는 갈등을 거쳐 결국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것이다.
세계화의 혜택을 남용하다 보면 세계화는 오히려 파국의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위협한다. 이는 글로벌 자본주의가 양날의 칼로서 초국적 자본가가 늘어날수록 자원고갈의 위험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하고,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없이 경제성장을 통해 그 성과가 자연스럽게 나눠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다. 초국적 자본가는 현재 자리 잡고 있는 지역 전체의 발전에 대한 고민은 아랑곳없이, 지역개발 이윤을 선점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 이윤이 저하되면 그들은 또 다른 이윤이 창출될 수 있는 지역을 찾아 이전하는 현대판 유목민의 양태를 보여준다. 지금 당장 초국적 자본가는 점증하는 자원 위기를 그렇게 심각한 것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초국적 자본가의 삶의 양태는 결코 서구 선진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한국은 물론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팽창전략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자국(自國)의 반(反)환경적, 에너지 다소비적 삶의 습관을 바꾸지 않은 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매우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돌진적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에너지 多소비적 습관을 버리지 않았을 때 맞을 미래는?
이제 자원 위기는 자원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원결핍과 공급제약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자원 위기의 문제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위험하다.
이는 결코 과학기술의 무용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낙관주의가 에너지 다(多)소비적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술적으로 안전문제를 완전히 보장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원자력 개발을 통해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과학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다. 과학기술의 측면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는 독일이 탈핵(脫核)을 선언한 그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과 독일의 처한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으로 탈핵을 선언한 뒤에 마주하는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면 된다는 주장은 원자력 발전을 주장하는 측을 설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은 재생가능에너지라는 데 많은 사람이 규범적 차원에서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재생가능에너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될 예상치 못한 장애물과 넘어야 할 많은 과제가 있다는 데 있다.
정부의 위로부터의 일방적 에너지 전환정책은 항상 실패하게 된다는 사실을 독일의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에너지 위기에 대한 시민의 자각이 우선 이루어져야 하며, 동시에 지구시민으로서 책임 있는 실천행동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에너지 다소비적 로망을 버려야 살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SUV에 대한 로망, 그리고 지역, 국가 더 나아가 지구적 책임을 회피하는 초국적 자본가의 삶에 대한 로망을 과감하게 버리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재생가능에너지 논의는 또 하나의 로망을 추가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자원 위기의 파고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국제 자원(원유, 곡물, 광물) 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데 그 바탕에는 중장기적으로 자원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과 같은 거대 개발도상국가의 빠른 성장으로 인해 수요 대비 공급의 균형이 깨지고 있으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원이 고갈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높아져 자원 가격의 고공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주요 자원들의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가격동조화 현상도 강화되어 이제 복합적인 자원 위기로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7%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라, 복합적인 자원 위기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자원 위기의 민감성과 충격의 정도는 매우 크다.
2011년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 초반 이후 현재까지 세계 주요 자원 공급구조는 석탄·석유·천연가스의 비중이 전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여전히 전 세계 경제가 화석연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석유공급은 일정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천연가스의 공급이 증가세에 있다. 바이오연료와 석탄도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그 공급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전력 생산의 측면에서 보면 1970년대 초반 이후 화석연료의 비중이 압도적이었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 원자력 발전과 수력 발전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원자재값 급등은 구조적 문제
그렇다면 이러한 자원 공급에 대한 소비패턴은 어떠한가? 물론 석유자원을 소비하는 비중이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천연가스와 바이오에너지도 증가추세에 있다. 특히 이러한 자원 소비 구조를 지역별로 보았을 때 OECD 국가들의 사용 비중이 50%에 가까우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중국의 자원 소비 비중이 OECD 국가 그룹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자원 위기 혹은 에너지 문제가 전 지구적 차원의 최우선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두 가지 이유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가 화석연료가 곧 고갈될 것이라는 자원고갈론이며, 다른 하나는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를 방지하기 위해 전 지구적으로 이를 통제해야 한다는 기후위기론이다.
안타깝게도 200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의 시대는 끝났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과거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의 자원 위기는 지정학적 불안에 따른 ‘공급 차질’, 즉 자원 관리 차원에서 야기된 것으로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자원 위기, 즉 ‘공급 제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최근의 자원가격의 급상승 추세는 투기적인 수요나 지정학적 요인으로 발생한 일시적인 교란이기보다는 공급이 수요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수요 불균형에서 비롯된 아주 근본적인 위기이다.
영국의 민간싱크탱크인 석유고갈분석센터(ODAC)는 향후 몇 년 이내에 세계 석유생산은 정점에 다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오일피크’(Peak Oil)는 세계 석유생산의 최대치에 이른 후에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기점을 의미한다. ODAC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석유생산 추세로 진행된다면 석유 수요는 향후 발견될 유전의 공급량을 초과할 것이다.
전쟁으로 치달을 위기까지 맞고 있어
제임스 쿤슬러는 자신의 책, 《장기비상시대》(The Long Emergency)에서 지구상에 매장된 석유는 2조 배럴로 추정되지만, 지난 100년 동안 그중의 반을 2000~2010년 무렵에 다 써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만약 전 세계의 석유 소비패턴이 현재처럼 지속된다면, 석유생산은 연간 270억 배럴이 필요하며 더 나아가 향후 37년이 지나면 석유가 한 방울도 남지 않게 된다는 끔찍한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산업화 추진 과정을 고려한다면 그 시점은 더 앞당겨질지 모른다.
안타까운 사실은 잔존하는 석유 매장량의 60%가 서구 열강과 갈등하는 이슬람국가들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남은 석유 매장량의 겨우 3%만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전 세계 석유소비의 25%를 소비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석유자원을 놓고 벌이는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부국으로 분류되는 사우디아라비아·알제리·베네수엘라·러시아 등은 자원 위기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맥락에서 광물 부문의 자원부국인 칠레·호주·인도네시아와 곡물 분야의 자원부국인 뉴질랜드·아르헨티나·태국·말레이시아 등 ASEAN 국가들은 보유 자원으로 인해 성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너지 위기 문제는 자원고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지구환경은 심각한 위기, 즉 기후변화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증가한 CO2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되어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기후변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 감소로 인해 해수면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투발루·몰디브·파푸아뉴기니·방글라데시는 수많은 기후난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긴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선진국은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전 지구적 공동 대응과정에 지지부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토의정서의 경우 미국과 중국은 상대방을 비난하며 가입도 하지 않았으며, 이미 가입했던 캐나다마저 탈퇴함으로써 교토의정서 체제는 식물인간 수준으로 곧 사멸 직전의 위기에 몰린 바 있다.
다행히도 2011년 남아공 더반 회의를 통해 교토의정서를 최소 5년 더 연장하는 수준에서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계속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현재로서 기후변화 방지 노력은 강제적인 국제규약을 만들지 않고서는 어떤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암울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국제공조의 실패로 인해, 각국 정부는 자원 특히 에너지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기 위한 대체 에너지 개발이라는 중차대한 대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原電)사고로 인하여 원자력 발전을 통한 에너지 위기를 모색했던 국가들에는 또 다른 과제가 발생하였다.
탈핵을 선언한 독일의 경험을 배우자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건 이후 약 20년 동안 대형 핵 사고가 발생하지 않자 많은 국가가 체르노빌 사건의 참혹성과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조금씩 망각하면서 노후한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는 동시에 기후변화의 위험을 빌미로 원자력 발전이 대안적인 클린에너지라고 강조하였다. 한국·일본·중국·프랑스에서 화석에너지의 대안이 없으니 원자력 발전소를 계속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는 달랐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독일 국민의 반핵(反核)운동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2022년 이전에 원자력 발전소를 폐기할 것을 규정하는 ‘원자력법’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자신이 물리학을 전공한 자연과학자였고, 그가 속한 기민당(기독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탈핵 정책 결정 과정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2009년 독일 총선은 기존의 기민당과 사민당의 불편한 동거(同居)를 끝내는 계기가 되었다. 33.8%의 지지로 선거에서 승리한 기민당은 사민당 대신 14.6%를 득표한 자민당을 파트너로 하는 보수연정(聯政)을 이루었다.
보수연정의 기민당 정부는 17기의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는 ‘핵폐기 정책의 일부 폐기’를 결정했다. 1980년 이전에 건설된 총 7기의 발전소는 8년 더 수명 연장을 허가했고, 그 이후 건설된 총 10기의 발전소는 14년 더 가동할 수 있도록 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2010년 12월 8일부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독일의 反核운동
그러나 보수연정의 원자력 발전소 수명 연장 결정은 야당과 독일 시민사회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야당은 헌법소원(訴願)을 냈고, 시민들은 대규모 반핵시위를 이어갔다.
이러한 반핵시위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터진 것이다. 이 사건은 체르노빌 사고 이후 25년 동안 독일인의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핵 공포에 대한 악몽을 다시금 일깨우는 촉진제가 되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소식이 전해진 3월 14일, 비록 월요일이었지만 독일 전국의 450여 개의 도시에서 약 11만명이 핵 폐기 시위에 참여하였는데 이는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듯이 독일 국민의 80%가 현 정부의 원자력 발전소 수명 연장에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결국 3월 15일 메르켈 총리는 1980년 이전에 건설된 7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일시적으로 폐쇄한다고 밝혔다.
독일 국민 대다수는 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보다 곧 예정된 지방선거를 겨냥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독일 국민의 반핵시위 규모는 점차 확대되어 3월 26일에는 베를린을 포함한 독일 주요 도시에서 반핵운동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25만명의 시민이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시민들의 구호는 분명히 탈핵을 요구하는 것으로 “후쿠시마를 기억하라,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국민의 강한 연대의 목소리는 곧바로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례로 지난 58년 동안 기민당의 텃밭이던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지방선거에서 대이변이 일어났다. 녹색당 출신의 주지사가 최초로 선출된 것이다. 이는 독일 국민들이 경제나 사회정의, 교육 정책보다 환경·에너지 정책을 더 우선시 여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충격적 선거결과를 반영하듯 메르켈 총리는 2011년 3월 말에 원자력에너지의 사회적 안전성 문제를 올바로 진단하기 위해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탈핵 여부를 최종 결정짓기로 하였다.
이 윤리위원회에는 성직자, 대학교수, 원로 정치인뿐만 아니라 산업계 대표자 등 다양한 사회각계 전문가 17명이 참여하여 8주간의 진지한 논의과정을 거쳤다. 이 위원회는 최종보고서에서 “이미 가동중지한 원자력 발전소 8기는 더 이상 가동해서는 안 되며, 남은 발전소들도 2021년까지 모두 폐쇄하라”는 최종 결론을 제안하였다.
이를 토대로 메르켈 총리는 2011년 5월 30일 독일의 모든 17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2022년까지 폐쇄하겠다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그녀는 탈핵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후쿠시마 사고가 지금까지의 내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에겐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럽 각국으로 번지는 原電폐쇄
독일 원자력 정책 전환의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독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반핵운동과 대안에너지 실천운동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반핵운동은 반핵후보, 녹색후보, 무지개후보를 지방의회 선거에서 지속적으로 지원함으로써 한두 명씩 의회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결국 이 힘이 전국 규모의 대안정당인 녹색당의 창당으로 이어졌고, 1983년에는 녹색당 의원이 연방의회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1998년에는 사민당과의 연립정부를 구성해 친환경적 정책입안과 에너지 전환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
이처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에너지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독일의 탈핵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독일의 탈핵 선언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5기의 원자력 발전 시설을 보유한 스위스는 독일의 탈핵 선언 이후 2034년까지 자국의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어떤 대안에너지를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현재도 논의 중에 있다. 이탈리아도 2011년 6월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94%의 국민이 원자력 발전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 정부는 2014년까지 건설하기로 한 4기의 원자력 발전소 계획을 전면 취소하였다. 핀란드 역시 현재 건설 중인 원자력 발전소 외에 어떤 원자력 발전소도 추가로 건설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독일의 탈핵 선언이 주목받는 것은 시민들의 반핵운동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에너지(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 노력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독일은 지역을 중심으로 ‘분산형 재생가능에너지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이 시스템이 시장경쟁을 통해서도 핵 에너지 체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에너지 자립률 1.5%의 서울이 선택할 길은
한국의 에너지 정책체계는 중앙정부가 공공재로서의 에너지 자원을 책임 있는 자세로 국민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라도 에너지 가격은 올리지 않으면서 값싼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여 왔다.
역설적으로 값싼 에너지 공급으로 인해 한국 시민의 에너지 소비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영국·일본·독일·프랑스의 1인당 에너지 소비보다 한국인의 에너지 소비량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온 독일의 경험, 그중에서도 지역 에너지 자립을 위해 정부가 추진한 ‘100% 재생가능에너지 마을’ 프로젝트는 지역주민의 에너지 최소소비 정신을 토대로 지역의 지열·풍력·태양·바이오 에너지를 기술혁신을 통해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여 에너지 자립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하는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인구 1400만명을 자랑하는 글로벌 도시 서울의 에너지 자립률이 불과 1.5%에도 못 미치는 것은 과히 충격적이다. 과연 탈핵을 선언하는 것만으로 재생가능에너지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인가? 혹시 재생가능에너지로 가는 길을 장밋빛으로만 상상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이다.
재생가능에너지로 가는 길도 험난
화석 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재생가능에너지이며, 대표적인 것이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바이오가스를 이용한 발전 등을 들 수 있다. 그동안 재생가능에너지의 기술력은 매우 낮아서 효율성이 떨어지며, 발전시설의 초기 투자비도 엄청나기 때문에 비용면에서 대체에너지로서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계속적인 기술개발 노력을 통해 태양빛의 전략 전환 효율이 점차 증가되어 태양광 발전기의 대량생산을 통한 비용절감이 이루어지면서 재생가능에너지와 화석연료에 의한 발전, 원자력 발전과의 발전 생산단가 차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물론 원자력 발전의 경우에는 전 과정에 지불되어야 할 다양한 측면의 비용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은 문제가 존재한다. 수십 년이 걸리는 원자로 폐쇄 과정에 필요한 비용, 아마도 수십만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방사능 폐기물 처리를 위한 격리 보관비용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기술혁신과 합리적 원가계산 대조표만으로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갈등과 장애물을 간과하는 순진한 태도이다. 이것은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선택한 독일에서도 동일하게 경험한 문제이다. 재생가능에너지 보급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에 대한 성찰적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예컨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라는 대의명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해당지역 주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해 갯벌이나 산림지역을 훼손하면서까지 대규모로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거나 풍력 발전 터빈을 설치하는 과오를 범하기도 하였다. 주민들의 참여가 배제된 채 진행된 재생가능에너지 개발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거대한 풍력발전기나 바이오가스 설비가 혹여 ‘혐오시설’로 전락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분산형 에너지 자립체계’ 구축
친환경적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분산형 에너지 자립체계의 구축, 이를 통한 지역 주민 삶의 질의 개선, 지역 문제에 대한 민주적 참여과정을 통해 지역 공동체 의식을 더욱 공고화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재생가능에너지 개발과정에서 사회적 약자(弱者)와 소수자 문제가 동일하게 발생한다면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삼림을 무차별적으로 훼손하거나 심지어 산마저 깎아내는 경우가 있으며, 지역 주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풍력 발전소 건설을 강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방적인 재생가능에너지 개발과정은 소음과 교통정체를 야기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더 나아가 희귀동물까지 멸종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바이오 연료 생산을 목적으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팜오일(palm oil) 플랜테이션 사업은 현지 지역의 환경은 물론 지역 주민의 인권문제까지 침해하는 심각한 역(逆)효과를 낳고 있다. 이 플랜테이션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의 벌목이 이루어졌으며, 현지 주민을 플랜테이션 노동자로 고용하면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낳았다. 주민은 식량을 비롯한 치솟는 물가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는 궁극적으로 지역주민의 빈곤 악화로 귀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재생가능에너지 개발과정에서의 현지 사회에 대한 철저한 사전조사 부재와 지역 주민의 개발정책 과정에의 참여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요컨대,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지역 수준의 민주적 거버넌스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의 중요성에 대한 충분한 교육과 설득 및 동의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호 소통과 신뢰 구축 없이 진행된다면, 친환경 에너지 자립의 터전인 지역을 와해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정부의 노력, 기업의 기술혁신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험난하고도 지난한 과제이다. 기술혁신, 정치적 결단, 지역의 민주적 거버넌스, 그리고 ‘탄소다이어트’와 같은 시민 스스로의 에너지 소비절약 노력이 상승적으로 결합될 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동부의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겨울을 지내본 사람이라면 가장 부러운 것 중의 하나가 SUV(Sports Utility Vehicle) 차량일 것이다. 잦은 폭설로 길은 미끄럽고 어쩌다 옥외나 노상 주차 공간에 승용차를 세워놓았다가 차가 눈 속에 갇혀 며칠 동안 눈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을 겪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4륜구동을 자랑하는 SUV는 쌓인 눈을 가뿐히 넘어서며, 눈이 쌓인 곳이라도 턱 하니 주차하곤 한다. SUV 뒷부분에는 4X4라는 자랑스러운 문구가 크게 붙어 있고, 차 이름도 Expedition, Ranger, Highlander, Endeavor, Pathfinder, Wrangler처럼 거친 광야를 헤쳐나가는 개척자의 모습을 뽐내는 것들로 넘쳐난다. 교외에 사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대부분은 가족용 밴(Van)과 더불어 SUV를 하나 더 소유하는 것을 그렇게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SUV에 열광하던 미국인들의 에너지 다소비적 삶의 습관들은 에너지 위기와 친환경적 사고를 둔감케 하는 독이 되고 말았다.
브래셔(Keith Bradsher)는 2002년 자신의 책, 《High and Mighty: SUVs-The World’s Most Dangerous Vehicles and How They Got That Way》에서 SUV는 ‘기름 잡아먹는 괴물’(gas guzzler)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연비가 낮은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자동차 회사의 로비에 넘어가 SUV를 승용차가 아닌 트럭으로 분류해 줌으로써, 세금 감면은 물론 연비나 안전 기준을 완화해 주는 엄청난 특혜를 제공했다고 고발했다. 그 결과 문자 그대로 SUV는 ‘이기적이고 쓸모없는 차’(Selfish Useless Vehicle), 환경오염과 안전사고를 유발시키는 매우 위험한 괴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1990년대 말까지 갤런당 1달러에 머물던 미국의 기름값이 10년 만에 4달러에 육박하고,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와 자원 위기가 동시에 급습하자 최근에는 갤런당 5달러까지 기름값이 치솟아 SUV의 인기는 땅에 떨어지고 판매는 급감했다. 2008년 8종의 SUV를 내놓았던 도요타와 렉서스는 70년 만에 적자를 경험했고, 판매량도 33.9%나 감소하면서 17억 달러의 적자를 내고 말았다.
SUV에 열광했던 미국인들은 에너지 위기로 도래한 반환경적 SUV 실체를 목도하면서 그 열광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부의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의 “미국인의 생활 방식은 교섭의 여지가 없다”는 말에서 드러나듯 미국은 아직까지도 에너지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더 많은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중동(中東)에 공을 들이는 제국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遊牧자본가’의 삶
우리는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초국적 일류기업의 한 임원, 장 이사의 회의참가 동선을 따라 그의 삶의 양태를 상상해 보자. 장 이사는 뉴욕에서 투자자들을 위한 설명회를 마치고 바로 인도 뭄바이로 날아가서 현지 법인 책임자들과 동남아시아의 신흥시장 분석회의를 마친다. 그 다음 날은 유럽지역 파트너들과의 협력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런던행 비행기를 탄다. 장 이사는 말 그대로 시공간의 경계를 초월하며 세계화 과정을 몸소 실천하며 지구촌 시장을 무대 삼아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활동하는 초국적 자본가(transnational capitalist class)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런 초국적 자본가, 그들에게 국가, 지역, 마을 공동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초국가적 삶의 위험성은 지구시민으로서의 책임성(global citizenship)을 갖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들의 활동범위는 분명 국경을 넘어선 전(全) 지구적 차원이지만, 세계화의 이익만을 누리려는 ‘유목(遊牧) 자본가’(nomadic capitalist)의 특성이 더욱 강하기 때문이다.
유목민은 한 지역에서 자원을 어느 정도 소비하게 되면 다시 자원을 찾아 새로운 장소로 이동한다. 이러한 유목 자본가의 수가 늘게 되면 공동의 자원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공동 책임성은 소홀히 다루어진다.
물론 자연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휴지기(休止期)나 회복기가 충분히 주어진다면 그리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세계화의 규모, 속도, 범위 차원에서 볼 때 자원소비는 이미 재(再)생산의 속도를 훨씬 넘어섰다. 결과적으로 자원은 고갈되고 유목 자본가는 이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경쟁하고, 심하게는 갈등을 거쳐 결국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것이다.
세계화의 혜택을 남용하다 보면 세계화는 오히려 파국의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위협한다. 이는 글로벌 자본주의가 양날의 칼로서 초국적 자본가가 늘어날수록 자원고갈의 위험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하고,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없이 경제성장을 통해 그 성과가 자연스럽게 나눠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다. 초국적 자본가는 현재 자리 잡고 있는 지역 전체의 발전에 대한 고민은 아랑곳없이, 지역개발 이윤을 선점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 이윤이 저하되면 그들은 또 다른 이윤이 창출될 수 있는 지역을 찾아 이전하는 현대판 유목민의 양태를 보여준다. 지금 당장 초국적 자본가는 점증하는 자원 위기를 그렇게 심각한 것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초국적 자본가의 삶의 양태는 결코 서구 선진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한국은 물론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팽창전략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자국(自國)의 반(反)환경적, 에너지 다소비적 삶의 습관을 바꾸지 않은 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매우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돌진적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에너지 多소비적 습관을 버리지 않았을 때 맞을 미래는?
이제 자원 위기는 자원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원결핍과 공급제약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자원 위기의 문제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위험하다.
이는 결코 과학기술의 무용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낙관주의가 에너지 다(多)소비적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술적으로 안전문제를 완전히 보장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원자력 개발을 통해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과학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다. 과학기술의 측면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는 독일이 탈핵(脫核)을 선언한 그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과 독일의 처한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으로 탈핵을 선언한 뒤에 마주하는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면 된다는 주장은 원자력 발전을 주장하는 측을 설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은 재생가능에너지라는 데 많은 사람이 규범적 차원에서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재생가능에너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될 예상치 못한 장애물과 넘어야 할 많은 과제가 있다는 데 있다.
정부의 위로부터의 일방적 에너지 전환정책은 항상 실패하게 된다는 사실을 독일의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에너지 위기에 대한 시민의 자각이 우선 이루어져야 하며, 동시에 지구시민으로서 책임 있는 실천행동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에너지 다소비적 로망을 버려야 살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SUV에 대한 로망, 그리고 지역, 국가 더 나아가 지구적 책임을 회피하는 초국적 자본가의 삶에 대한 로망을 과감하게 버리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재생가능에너지 논의는 또 하나의 로망을 추가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자원 위기의 파고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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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그림은 인류가 이미 ‘오일 피크’를 지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
한국의 경우,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7%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라, 복합적인 자원 위기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자원 위기의 민감성과 충격의 정도는 매우 크다.
2011년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 초반 이후 현재까지 세계 주요 자원 공급구조는 석탄·석유·천연가스의 비중이 전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여전히 전 세계 경제가 화석연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석유공급은 일정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천연가스의 공급이 증가세에 있다. 바이오연료와 석탄도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그 공급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전력 생산의 측면에서 보면 1970년대 초반 이후 화석연료의 비중이 압도적이었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 원자력 발전과 수력 발전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원자재값 급등은 구조적 문제
그렇다면 이러한 자원 공급에 대한 소비패턴은 어떠한가? 물론 석유자원을 소비하는 비중이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천연가스와 바이오에너지도 증가추세에 있다. 특히 이러한 자원 소비 구조를 지역별로 보았을 때 OECD 국가들의 사용 비중이 50%에 가까우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중국의 자원 소비 비중이 OECD 국가 그룹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자원 위기 혹은 에너지 문제가 전 지구적 차원의 최우선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두 가지 이유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가 화석연료가 곧 고갈될 것이라는 자원고갈론이며, 다른 하나는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를 방지하기 위해 전 지구적으로 이를 통제해야 한다는 기후위기론이다.
안타깝게도 200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의 시대는 끝났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과거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의 자원 위기는 지정학적 불안에 따른 ‘공급 차질’, 즉 자원 관리 차원에서 야기된 것으로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자원 위기, 즉 ‘공급 제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최근의 자원가격의 급상승 추세는 투기적인 수요나 지정학적 요인으로 발생한 일시적인 교란이기보다는 공급이 수요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수요 불균형에서 비롯된 아주 근본적인 위기이다.
영국의 민간싱크탱크인 석유고갈분석센터(ODAC)는 향후 몇 년 이내에 세계 석유생산은 정점에 다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오일피크’(Peak Oil)는 세계 석유생산의 최대치에 이른 후에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기점을 의미한다. ODAC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석유생산 추세로 진행된다면 석유 수요는 향후 발견될 유전의 공급량을 초과할 것이다.
전쟁으로 치달을 위기까지 맞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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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쿤슬러(왼쪽)의 《장기비상시대》. |
안타까운 사실은 잔존하는 석유 매장량의 60%가 서구 열강과 갈등하는 이슬람국가들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남은 석유 매장량의 겨우 3%만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전 세계 석유소비의 25%를 소비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석유자원을 놓고 벌이는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부국으로 분류되는 사우디아라비아·알제리·베네수엘라·러시아 등은 자원 위기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맥락에서 광물 부문의 자원부국인 칠레·호주·인도네시아와 곡물 분야의 자원부국인 뉴질랜드·아르헨티나·태국·말레이시아 등 ASEAN 국가들은 보유 자원으로 인해 성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너지 위기 문제는 자원고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지구환경은 심각한 위기, 즉 기후변화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증가한 CO2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되어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기후변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 감소로 인해 해수면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투발루·몰디브·파푸아뉴기니·방글라데시는 수많은 기후난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긴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선진국은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전 지구적 공동 대응과정에 지지부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토의정서의 경우 미국과 중국은 상대방을 비난하며 가입도 하지 않았으며, 이미 가입했던 캐나다마저 탈퇴함으로써 교토의정서 체제는 식물인간 수준으로 곧 사멸 직전의 위기에 몰린 바 있다.
다행히도 2011년 남아공 더반 회의를 통해 교토의정서를 최소 5년 더 연장하는 수준에서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계속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현재로서 기후변화 방지 노력은 강제적인 국제규약을 만들지 않고서는 어떤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암울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국제공조의 실패로 인해, 각국 정부는 자원 특히 에너지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기 위한 대체 에너지 개발이라는 중차대한 대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原電)사고로 인하여 원자력 발전을 통한 에너지 위기를 모색했던 국가들에는 또 다른 과제가 발생하였다.
탈핵을 선언한 독일의 경험을 배우자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건 이후 약 20년 동안 대형 핵 사고가 발생하지 않자 많은 국가가 체르노빌 사건의 참혹성과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조금씩 망각하면서 노후한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는 동시에 기후변화의 위험을 빌미로 원자력 발전이 대안적인 클린에너지라고 강조하였다. 한국·일본·중국·프랑스에서 화석에너지의 대안이 없으니 원자력 발전소를 계속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는 달랐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독일 국민의 반핵(反核)운동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2022년 이전에 원자력 발전소를 폐기할 것을 규정하는 ‘원자력법’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자신이 물리학을 전공한 자연과학자였고, 그가 속한 기민당(기독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탈핵 정책 결정 과정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2009년 독일 총선은 기존의 기민당과 사민당의 불편한 동거(同居)를 끝내는 계기가 되었다. 33.8%의 지지로 선거에서 승리한 기민당은 사민당 대신 14.6%를 득표한 자민당을 파트너로 하는 보수연정(聯政)을 이루었다.
보수연정의 기민당 정부는 17기의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는 ‘핵폐기 정책의 일부 폐기’를 결정했다. 1980년 이전에 건설된 총 7기의 발전소는 8년 더 수명 연장을 허가했고, 그 이후 건설된 총 10기의 발전소는 14년 더 가동할 수 있도록 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2010년 12월 8일부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독일의 反核운동
그러나 보수연정의 원자력 발전소 수명 연장 결정은 야당과 독일 시민사회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야당은 헌법소원(訴願)을 냈고, 시민들은 대규모 반핵시위를 이어갔다.
이러한 반핵시위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터진 것이다. 이 사건은 체르노빌 사고 이후 25년 동안 독일인의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핵 공포에 대한 악몽을 다시금 일깨우는 촉진제가 되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소식이 전해진 3월 14일, 비록 월요일이었지만 독일 전국의 450여 개의 도시에서 약 11만명이 핵 폐기 시위에 참여하였는데 이는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듯이 독일 국민의 80%가 현 정부의 원자력 발전소 수명 연장에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결국 3월 15일 메르켈 총리는 1980년 이전에 건설된 7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일시적으로 폐쇄한다고 밝혔다.
독일 국민 대다수는 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보다 곧 예정된 지방선거를 겨냥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독일 국민의 반핵시위 규모는 점차 확대되어 3월 26일에는 베를린을 포함한 독일 주요 도시에서 반핵운동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25만명의 시민이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시민들의 구호는 분명히 탈핵을 요구하는 것으로 “후쿠시마를 기억하라,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국민의 강한 연대의 목소리는 곧바로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례로 지난 58년 동안 기민당의 텃밭이던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지방선거에서 대이변이 일어났다. 녹색당 출신의 주지사가 최초로 선출된 것이다. 이는 독일 국민들이 경제나 사회정의, 교육 정책보다 환경·에너지 정책을 더 우선시 여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충격적 선거결과를 반영하듯 메르켈 총리는 2011년 3월 말에 원자력에너지의 사회적 안전성 문제를 올바로 진단하기 위해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탈핵 여부를 최종 결정짓기로 하였다.
이 윤리위원회에는 성직자, 대학교수, 원로 정치인뿐만 아니라 산업계 대표자 등 다양한 사회각계 전문가 17명이 참여하여 8주간의 진지한 논의과정을 거쳤다. 이 위원회는 최종보고서에서 “이미 가동중지한 원자력 발전소 8기는 더 이상 가동해서는 안 되며, 남은 발전소들도 2021년까지 모두 폐쇄하라”는 최종 결론을 제안하였다.
이를 토대로 메르켈 총리는 2011년 5월 30일 독일의 모든 17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2022년까지 폐쇄하겠다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그녀는 탈핵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후쿠시마 사고가 지금까지의 내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에겐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럽 각국으로 번지는 原電폐쇄
독일 원자력 정책 전환의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독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반핵운동과 대안에너지 실천운동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반핵운동은 반핵후보, 녹색후보, 무지개후보를 지방의회 선거에서 지속적으로 지원함으로써 한두 명씩 의회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결국 이 힘이 전국 규모의 대안정당인 녹색당의 창당으로 이어졌고, 1983년에는 녹색당 의원이 연방의회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1998년에는 사민당과의 연립정부를 구성해 친환경적 정책입안과 에너지 전환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
이처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에너지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독일의 탈핵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독일의 탈핵 선언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5기의 원자력 발전 시설을 보유한 스위스는 독일의 탈핵 선언 이후 2034년까지 자국의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어떤 대안에너지를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현재도 논의 중에 있다. 이탈리아도 2011년 6월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94%의 국민이 원자력 발전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 정부는 2014년까지 건설하기로 한 4기의 원자력 발전소 계획을 전면 취소하였다. 핀란드 역시 현재 건설 중인 원자력 발전소 외에 어떤 원자력 발전소도 추가로 건설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독일의 탈핵 선언이 주목받는 것은 시민들의 반핵운동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에너지(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 노력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독일은 지역을 중심으로 ‘분산형 재생가능에너지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이 시스템이 시장경쟁을 통해서도 핵 에너지 체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에너지 자립률 1.5%의 서울이 선택할 길은
한국의 에너지 정책체계는 중앙정부가 공공재로서의 에너지 자원을 책임 있는 자세로 국민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라도 에너지 가격은 올리지 않으면서 값싼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여 왔다.
역설적으로 값싼 에너지 공급으로 인해 한국 시민의 에너지 소비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영국·일본·독일·프랑스의 1인당 에너지 소비보다 한국인의 에너지 소비량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온 독일의 경험, 그중에서도 지역 에너지 자립을 위해 정부가 추진한 ‘100% 재생가능에너지 마을’ 프로젝트는 지역주민의 에너지 최소소비 정신을 토대로 지역의 지열·풍력·태양·바이오 에너지를 기술혁신을 통해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여 에너지 자립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하는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인구 1400만명을 자랑하는 글로벌 도시 서울의 에너지 자립률이 불과 1.5%에도 못 미치는 것은 과히 충격적이다. 과연 탈핵을 선언하는 것만으로 재생가능에너지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인가? 혹시 재생가능에너지로 가는 길을 장밋빛으로만 상상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이다.
재생가능에너지로 가는 길도 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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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태기산의 풍력발전단지. 풍력발전은 산림훼손 등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
그러나 계속적인 기술개발 노력을 통해 태양빛의 전략 전환 효율이 점차 증가되어 태양광 발전기의 대량생산을 통한 비용절감이 이루어지면서 재생가능에너지와 화석연료에 의한 발전, 원자력 발전과의 발전 생산단가 차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물론 원자력 발전의 경우에는 전 과정에 지불되어야 할 다양한 측면의 비용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은 문제가 존재한다. 수십 년이 걸리는 원자로 폐쇄 과정에 필요한 비용, 아마도 수십만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방사능 폐기물 처리를 위한 격리 보관비용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기술혁신과 합리적 원가계산 대조표만으로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갈등과 장애물을 간과하는 순진한 태도이다. 이것은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선택한 독일에서도 동일하게 경험한 문제이다. 재생가능에너지 보급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에 대한 성찰적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예컨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라는 대의명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해당지역 주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해 갯벌이나 산림지역을 훼손하면서까지 대규모로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거나 풍력 발전 터빈을 설치하는 과오를 범하기도 하였다. 주민들의 참여가 배제된 채 진행된 재생가능에너지 개발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거대한 풍력발전기나 바이오가스 설비가 혹여 ‘혐오시설’로 전락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분산형 에너지 자립체계’ 구축
친환경적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분산형 에너지 자립체계의 구축, 이를 통한 지역 주민 삶의 질의 개선, 지역 문제에 대한 민주적 참여과정을 통해 지역 공동체 의식을 더욱 공고화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재생가능에너지 개발과정에서 사회적 약자(弱者)와 소수자 문제가 동일하게 발생한다면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삼림을 무차별적으로 훼손하거나 심지어 산마저 깎아내는 경우가 있으며, 지역 주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풍력 발전소 건설을 강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방적인 재생가능에너지 개발과정은 소음과 교통정체를 야기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더 나아가 희귀동물까지 멸종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바이오 연료 생산을 목적으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팜오일(palm oil) 플랜테이션 사업은 현지 지역의 환경은 물론 지역 주민의 인권문제까지 침해하는 심각한 역(逆)효과를 낳고 있다. 이 플랜테이션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의 벌목이 이루어졌으며, 현지 주민을 플랜테이션 노동자로 고용하면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낳았다. 주민은 식량을 비롯한 치솟는 물가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는 궁극적으로 지역주민의 빈곤 악화로 귀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재생가능에너지 개발과정에서의 현지 사회에 대한 철저한 사전조사 부재와 지역 주민의 개발정책 과정에의 참여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요컨대,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지역 수준의 민주적 거버넌스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의 중요성에 대한 충분한 교육과 설득 및 동의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호 소통과 신뢰 구축 없이 진행된다면, 친환경 에너지 자립의 터전인 지역을 와해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정부의 노력, 기업의 기술혁신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험난하고도 지난한 과제이다. 기술혁신, 정치적 결단, 지역의 민주적 거버넌스, 그리고 ‘탄소다이어트’와 같은 시민 스스로의 에너지 소비절약 노력이 상승적으로 결합될 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