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3대 불행으로, 소년등과(少年登科), 석부형제지세(席父兄弟之勢), 유고재능문장(有高才能文章)이 있다. ‘소년등과’는 어린 나이에 출세하는 것이며, ‘석부형제지세’는 부모형제를 잘 만나는 것, ‘유고재능문장’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을 말한다. 세 가지는 진정으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니라, 이를 경계하면 더욱 발전한다는 뜻이다.
⊙ 정치인이 되려 정치학과 입학했으나 실망, 정치 비판하는 정치부 기자가 되다
⊙ 쌍용그룹 김성곤 회장 가정교사로 일하며 장남 석원씨 가르쳐
⊙ 2002년 노무현·정몽준 간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는 최악의 非민주적인 방식
崔時仲
⊙ 74세.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동양통신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장·논설위원·편집국 부국장,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회장 역임.
⊙ 現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2011년 3월 연임), 국무총리실 산하 콘텐츠산업진흥위원회
당연직 위원.
⊙ 정치인이 되려 정치학과 입학했으나 실망, 정치 비판하는 정치부 기자가 되다
⊙ 쌍용그룹 김성곤 회장 가정교사로 일하며 장남 석원씨 가르쳐
⊙ 2002년 노무현·정몽준 간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는 최악의 非민주적인 방식
崔時仲
⊙ 74세.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동양통신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장·논설위원·편집국 부국장,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회장 역임.
⊙ 現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2011년 3월 연임), 국무총리실 산하 콘텐츠산업진흥위원회
당연직 위원.
1957년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동향(同鄕) 출신 중 같은 해 입학한 동기로는 서울대 상대에 들어간 이상득(李相得) 의원,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최상엽(崔相曄) 전 법무장관이 있다. 고교시절에는 서로를 알지 못했다. 대학에 나란히 합격하자 포항사람들이 우리 셋을 ‘고향을 빛낸 괜찮은 놈’으로 여겼다.
나는 정치가가 되고 싶어 정치학과에 들어갔다. 재능은 있어도 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한 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정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의 멘토는 누가 뭐래도 링컨 대통령(1809~1865)이었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만큼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말이 또 있을까.
그러나 대학에서 배운 정치학은 ‘선정의 학문’이 아니었다. 정치학 원서 강독 시간에 정치자금을 배우면서 하늘처럼 생각했던 정치인의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졌다. 정치란 고매한 사람이 국민의 이익과 국가 발전을 위한 행위로 알았던 나는 혼란에 빠졌다. 몇 달 동안 방황하며 자퇴를 고민했다.
그즈음, 쌍용그룹 창업주 성곡(省谷) 김성곤(金成坤·1913~1975) 회장의 아들 석원(錫元·현 쌍용양회공업 명예회장)씨의 가정교사가 됐다. 지금의 성곡미술관(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위치) 자리에 있었던 회장 자택에는 항상 여야 정치인이 들끓었다. 김 회장은 당시 최고 실세인 공화당 재정위원장이자 국회 재무위원장이었다. 그의 손을 통해 정치자금이 모아지고 나눠졌다.
몇몇 정치인들은 낮에는 군사정부 반대를 외치다가 밤에는 그의 대문을 두드렸다. 정치인들이 김 회장과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위원장님,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구하는 대로 받고, 능력껏 쓰는 시대라고 할까. ‘정치는 양식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정치인이 아닌 정치부 기자가 된 사연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합리적 관찰자, 비판자가 되자는 생각에 정치인이 아닌 언론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0~70년대 가진 것이 없던 시절, 외자(外資)가 유일한 한국의 자산(資産)이었다. 그런데 외자도입을 하려면 반드시 국회 동의를 받아야 했는데 주관 상임위가 국회 재무위원회였다. 당시 외자를 들여올 때 공정 환율은 1달러에 200원대였지만, 시장 환율은 1200원이 넘었다. 외자를 도입하면 앉아서 6배의 이익을 볼 수 있었다.
국회 재무위원장이 김성곤 회장이었고, 야당의 재사(才士)이자 책사(策士)인 김대중(金大中)·이중재(李重載)·고흥문(高興門)·이충환(李忠煥) 의원이 재무위원회 소속이었다. 사실상 외자도입 여부는 야당 책사 4명의 손끝에 움직였다. 김 회장은 야당을 설득해 외자도입 승인을 받아 내는 일이 가장 큰 과제였다. 김 회장은 나에게 “철면피가 아니면 정치를 못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때 나는 정치할 생각을 아예 접었다.
대신 정치현장을 접하면서도 직접 정치를 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비판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정치적 관찰자, 비평가 자리가 기자였다.
동양통신에서 1년을 보낸 후 스카우트 제의를 해 온 동아일보로 자리를 옮겼다. 동아일보 기자 생활 30년 동안 사표를 다섯 번 썼다. 개중에는 자의로 쓴 사표도 있고 타의에 의한 사표도 있다. 독재정권의 언론 탄압이 엄혹했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1971년 12월 6일로 기억한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언론의 무책임한 안보 논의를 삼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자유의 일부도 유보할 결의를 가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자로서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JP, “이런 식이라면 제대로 국정운영 못한다”
나는 이것으로 언론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몇 날 며칠 고민한 뒤 사표 쓸 결심을 했다. 그리고 쌍용그룹 김성곤 회장을 찾아갔다.
“더 이상 이 땅에 언론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동양통신(당시 쌍용이 대주주)에 입사시켜 주세요. 동경 특파원으로 보내 주시면 거기서 공부해 대학 교수가 되겠습니다.”
김 회장은 빤히 날 쳐다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허락을 했다. 동아일보로 돌아가 사표를 냈다. 그런데 박권상(朴權相) 편집국장이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를 공격하는 빌미로 ‘호남 출신들이 중심이고, 영남 출신들을 푸대접한다’는 말을 퍼뜨릴 때였다. 나의 사표가 자칫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비칠 수 있었다. 박 국장은 나의 사표가 동아일보의 전체 이미지를 훼손시킬 수 있다며 한사코 만류했다. 할 수 없이 사표를 접고 말았다.
그즈음, 나는 정부가 ‘옥외 집회·시위 특별조치령을 마련한다’는 제하의 특종 기사를 썼다. 기사는 ‘정부가 비상사태하에서 옥외집회 및 시위에 관한 특별조치령과 특정지역 내에서의 이동 및 철거에 관한 특조령을 금명간 마련할 방침’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당시 오후 2시에 예정된 국무회의에 앞서 정오쯤 배달하는 석간(夕刊)신문에 보도됐다. 당시 동아일보는 석간이었다. 분기탱천한 김종필(金鍾泌) 총리는 “어떻게 해서 비밀 안건이 국무회의 전에, 그것도 기자 손에 들어갔느냐”며 “이런 식이라면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날 나는 정부청사에 있던 중앙정보부 분실로 끌려가 취재원을 밝히라는 압력을 받았다. 나는 “기자에게 취재원을 밝히라는 것은 언론인이 되기를 포기하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조사관과 나와의 논쟁이 2~3시간 동안 이어지자 “운동 좀 해야겠다”며 검은 지프에 태워 남산 지하벙커로 끌고 갔다.
발가벗겨져 심한 고문과 매질을 당했다. 잠을 안 재우고 밤샘 조사를 받았다. 치욕을 감내해야 했지만 끝내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었던지 이튿날 오전 풀어 주며 서약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지하벙커에서 있었던 일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이었다. 그러면서 사표를 쓰라고 요구했다.
쓰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다. 그것으로 기자직을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며칠 집에서 쉬는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으니 빨리 출근하라는 것이었다. 나중 그 기사로 사내 ‘특별상’을 받았다.
1975년 12월에도 서대문구치소에 수감이 됐다. 유신시절은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구금과 탄압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공안검사로부터 다시 사표 강요를 받았다. 이제는 겁도 나지 않았다. 몇 달을 구금시켜 놓더니 이듬해 4월 보석신청을 하라고 한 뒤 풀어 주었다. 회사는 여전히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정부와 맞섰다. 설왕설래 끝에 사표를 받지 않되 정치부와 사회부 같은 외근부서 발령을 안 내겠다는 조건으로 절충이 이뤄졌다. 국제부와 지방부를 거쳐 1994년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퇴직하며 진짜 사표를 썼다.
터무니없는 컴퓨터 선거조작 의혹
6·29 선언에 따라 대통령 직선제로 치러진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이 당선됐다. 그러나 야당 후보였던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노 대통령의 당선에 불복했다. DJ를 대통령 후보로 낸 평민당은 그해 12월 29일 ‘12·16 선거의 5대 의혹을 고발한다’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5대 의혹’의 하나가 ‘컴퓨터 조작’이었다.
1988년 초 정치부 차장 시절, DJ와 점심을 함께 했다. DJ는 내게 컴퓨터 선거조작설 의혹을 설명하며 “깜짝 놀랄 만한 특종거리를 주겠다”고 솔깃한 제안을 했다. 그러면서 “컴퓨터 조작 관련 전문가 두 사람을 외국에서 불러 비밀리에 조사 중”이라 귀띔했다.
나는 속으로 DJ가 또다시 ‘위대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컴퓨터 조작설은 한국갤럽이 당선 예측치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불거졌었다. 한국갤럽의 예측은 오차 범위 내에서 모두 적중했다. 고백하자면, 한국갤럽의 박무익(朴武益) 회장은 고향 후배다. 여기다 중학교와 대학교 동문이란 인연까지 겹친다.
1987년 12월 한국갤럽이 당선 예측치를 발표할 즈음, 나는 박 회장을 찾아갔다.
나는 박 회장에게 “(여론조사에) 최선을 다했느냐”를 몇 번이나 고쳐 물었고, 그때마다 박 회장은 “떳떳하다”고 답했다. 박 회장의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예측치를 발표하라고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적중하면, 한국의 정치 여론조사 토대가 달라지겠지만, 틀리면 조사 업(業)을 접어야 할지 모른다. 그만큼 예측치 발표가 인생 전체를 건 모험이다. 양심껏 했다면 운명에 맡기자.”
그해 12월 16일 대선 투표 종료 직후 갤럽의 여론조사가 공개됐고 예상대로 적중했다. 이후 여론조사는 한국 정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됐다.
이처럼 갤럽 예측치 발표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을 꿰고 있는 나에게 DJ가 ‘컴퓨터 선거 조작설’을 얘기하니 기가 막혔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 선거 조작 특종을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대선 후인 1988년 4월 26일 치러진 총선은 헌정사상 최초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를 탄생시켰다. 그 힘으로 야당은 1988년 7월 ‘양대 선거 부정조사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켜 1990년 7월까지 무려 2년여 동안 부정선거 의혹을 조사했다. 그러나 컴퓨터 조작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DJ는 더 이상 재개표 요구를 하지 않았다.
YS 對 DJ
돌이켜 보면, 정치부 기자 시절 굵직한 정치인들과 많은 교분을 쌓았다. JP의 경우 어쩌다 한 번씩 만나는 사이라면, 야당시절 DJ와는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사이, YS와는 한 달에 두세 번 만나는 사이였다.
언젠가 DJ를 만나 “YS를 한마디로 평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DJ는 이렇게 말했다.
“YS, 그 친구는 대단히 어려운 일도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지.”
1주일 뒤 YS를 만나 DJ에 대한 인물평을 부탁하니 즉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 친구는 아주 간단한 일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영원한 맞수’인 두 사람은 이처럼 명료하고 함축성 있는 표현을 할 만큼 서로를 잘 안다.
1991년 말 DJ를 만나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두 분의 역사적 사명은 이 나라에 민주정치의 기틀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또한 정치적 이유로 증폭된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결정적 전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배반자나 민족적 죄인이 되느냐, 시대의 선각자나 국민적 지도자가 되느냐의 선택은 두 분의 의지와 양심에 달렸습니다. 누가 이기고 지든 간에 서로 얼싸안고 승자는 패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DJ의 표정은 진지했다. 얼마 뒤 YS를 만나 비슷한 말을 했다. YS 또한 심각한 모습으로 귀를 기울였다.
사실, 두 사람의 차이는 정치자금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도 극명하다. DJ는 치밀하고 정교하게 관리를 했고 YS는 투박하게 관리했다. 기자들에게 주는 촌지(寸志)의 관행도 사뭇 달랐다.
DJ는 정중하게 “야당이어서 힘이 든다”며 건넸지만, YS는 지갑을 확 펼치며 호기 있게 되는 대로 집어 주었다. 부끄러운 관행이지만 다시는 있어선 안 되는 일들이다.
1968년 총선 때의 일이다. 부산에 취재차 내려가 YS를 만났다. 그는 부산 서구에 출마한 상태였다. 지구당 사무실에 들러 인사를 하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더니 철제 캐비닛을 여는데 입이 딱 벌어졌다. 현금 다발이 빼곡하게 차 있는 게 아닌가.
권위주의 시절, 야당이 정치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당은 돈이 넘쳐 났고, 야당은 돈이 없어 보스들이 직접 공천 장사를 하며 자금을 모았다. 여야 상관없이 정당이 ‘공천 주식회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조용한 지역은 저마다의 몫대로 먼저 챙기고, 말썽 많은 지역은 주주들 간의 흥정과 담합으로 결판이 났다. 역대 어느 정치인이 돈 문제에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정일권의 운명을 가른 프랑스 거주 여인
정일권(丁一權·1917~1994) 전 국무총리와는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가까운 사이였다. 말년에 미국 하와이에서 암 투병을 했는데 거의 완치가 돼 1990년 무렵 일시 귀국한 일이 있다. 지인들이 모여 쾌유를 겸한 축하 만찬을 가졌는데 나도 동석(同席)했다.
그는 내게 “회고록을 쓰고 있다”며 집필이 끝난 뒤 퇴고(推敲)를 부탁했다. 나에게 몇 토막을 들려줬는데 아주 흥미로웠다.
1959년 무렵 그는 프랑스 대사로 재임하고 있었다. 이듬해 2월 공관장 회의차 일시 귀국했는데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경무대로 그를 불렀다.
“자네, 3월에 영구 귀국하게나.”
정 전 총리는 깜짝 놀랐다.
“각하, 무슨 일입니까.”
“3월에 개각이 있는데 자네가 국방장관을 맡아 줘야겠어. 그렇게 준비하시오.”
그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고 한다. 당시 그는 프랑스에서 한창 눈독 들인 여성이 있었다. 그 여성의 얼굴이 갑자기 어른거려 이렇게 말했다.
“좀 미루면 안 됩니까?”
“왜, 무슨 일이 있는가?”
그럴듯하게 꾸며 대기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극동(極東) 정세에 관심이 많아서 제게 하문(下問)한 일이 있습니다. 두 차례 정도 만났는데, 앞으로 보고할 일이 두 번 정도 더 있어서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물론 거짓말이었다. 이 대통령은 “그래? 드골이 자네를? 고마운 일일세. 그럼 그렇게 하지. 그럼 누구를 국방장관에 앉히면 좋을까?”
“김정렬(金貞烈·1917~1992) 공군참모총장이 어떨까요? 꼭 육군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습니까?”
“아, 좋지.”
사실, 전날 정 전 총리는 김 총장과 저녁을 같이 했다고 한다.
1960년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이 잇따라 터진 해다. 3·15 부정선거가 있었고 4·19혁명이 일어난 해다. 정 전 총리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그때 국방장관이 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6·25사변 때 많은 전투에 참여하며 발포 경험이 많아. 4·19 때 분명 발포명령을 내렸을 거야.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됐을까.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지 않거나, 내 운명도 4·19와 함께 사라졌을지 모르지. 육군 항공사관학교 교장 출신인 김정렬 장군은 전투경험이 없는 사람이니 4·19 때 발포명령을 신속히 내릴 수가 없었어. 내가 여자 생각에 장관이 안된 걸 감사하게 생각하네.”
박정희, 정일권에 “내 후계를 해”라고 말해
정일권 전 총리는 이런 얘기도 들려줬다. 총리 시절인 1969년. 하루는 박정희 대통령이 그를 불렀다. 박 대통령이 뜬금없이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총리 임기가 다 돼 가지? 생각해 보니, 내 후계로 자네만한 사람이 없네. 준비를 해 두는 게 좋겠소.”
정 전 총리는 그 순간, ‘잘못하다가는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오랜 경험에 의한 인생의 노하우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각하! 아닙니다.”
“왜? 안돼요? 당신밖에 대안이 없어. 깊이 생각해 보시오.”
그때 둘러댄 답이 이랬다.
“저는 ‘삼팔 따라지’(이북에서 월남한 사람을 비하하는 말) 아닙니까. 월남한 인구가 얼마 안됩니다. 이북사람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득표를 할 수가 없어요. 또 제가 여자 좋아하는 것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여성 유권자들이 제게 표를 안 줄 겁니다. 그러니 후계자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임자 말도 일리가 있네. 새로 검토해 봐야겠어.”
“네, 감사합니다. 지금 총리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도 영광된 일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청와대를 걸어 나오며 ‘호랑이 입속에서 걸어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이번에는 김종필씨가 박 대통령에게 불려가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정 전 총리에 따르면, JP는 박 대통령의 속내를 모른 채 후계자 제안을 덥석 물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몇 달 후 JP는 자의반 타의반 해외여행의 길에 올랐다. 박 대통령의 눈 밖에 난 것은 물론이었다. 그로부터 한참 뒤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정 전 총리는 그러나 암이 재발해 끝내 회고록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그가 말년에 쓰던 원고는 어떻게 됐을까.
아쉽고 아쉬운, 짧은 정치부장
1988년 8월 정치부장으로 재직할 때의 일이다.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퇴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연희동 측에서 “운동이나 같이 하자”는 연락이 왔다. 먼저 남시욱(南時旭) 편집국장에게 보고한 뒤 후배 기자와 안양CC에서 라운딩을 가졌다.
전 전 대통령과 여러 얘기를 나눴다. 당시는 비자금 파문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노태우 대통령 주변에는 금진호(琴震鎬)·김복동(金復東)씨처럼 그럴싸한 사람이 많지만 내 형제들은 모두 고만고만한 인물뿐이어서 아무 것도 챙긴 것도 없고 허허롭습니다.”
나는 그런가 보다 들었다. 또 “군(軍)에 있을 때 리더십에 관심이 많았다. 관련 서적도 많이 읽고 직접 책도 쓰고 싶었는데, 정치권에 들어와서는 시간이 없어 아쉬웠다”는 얘기도 했다. 진지하게 정치자금(비자금)에 대해 물었더니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와 골프회동을 가진 뒤 석 달 만인 그해 11월 23일 전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죄와 함께 재산헌납을 발표하고 백담사로 향했다.
나 역시 구설수에 올랐다. 《기자협회보》가 전(全) 전 대통령과의 골프회동을 문제 삼았다. ‘정치권력과 유착하는 부적절한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두고 동아일보 노조가 다시 나를 공격했다.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다. 비록 퇴임했으나 전 전 대통령은 여전히 서슬 퍼런 권력의 한 축이었다. 그런 고급 취재원이 먼저 연락이 와 만나자는데 거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일부러라도 만나자고 제안할 판인데 당연히 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회사 내부에서 ‘아웃사이더’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공채(견습) 출신도 아니었다. 결국 정치부장에서 물러나 논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겨가게 됐다. 두고두고 아쉽다.
서동권 안기부장, “그만 살기로 했나요” 협박
6공화국 말엽인 1991년 12월 13일자 신문에 <노태우 대통령의 책임과 고뇌>라는 논설위원 칼럼을 썼다. 나는 노 대통령을 향해 ‘6공6폐’라는 원성을 아느냐고 물었다.
당시 시중에 떠돌던 무책임, 무정견, 무기력, 불신, 불안, 불만 등 6공의 6가지 폐단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1공화국 때 이승만 대통령을 향해 내치는 등신, 인사는 병신, 외교는 귀신이라 해서 ‘3신’이라 비웃지 않았던가.
나는 내친 김에 ‘6신’을 언급했다.
‘정치는 불신, 경제는 망신, 외교는 굽신, 인사는 등신, 우정에는 배신, 날치기에는 귀신’.
그러면서 ‘앞으로 남은 14개월의 잔여 임기 동안 계속해서 이 오염된 공기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보다 깨끗하고 맑은 공기가 생산돼야 한다’고 일갈했다.
칼럼을 쓸 때 혹시나 불려 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출근을 하며 아내에게 “혹시 집에 못 들어올지 모르겠다”고 넌지시 귀띔을 해 두었다. 속으로는 노태우 정부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칼럼이 실렸고 예상대로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그날 저녁 서동권(徐東權) 안기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최시중 논설위원. 오늘만 살고 그만 살기로 작정했나요.”
“무슨 말씀입니까.”
“이런 글을 쓰고 무사할 줄 압니까. 기사를 빨리 없애시오.”
신문은 이미 가정에 배달됐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나 이후 이상하게도 별다른 물리적 탄압(?)이 없었다. 청와대의 반응을 내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뒤 동아일보 김상만(金相万·1910~1994) 회장이 노태우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한 뒤 나를 불렀다.
“최 위원, 노 대통령이 최 아무개가 나와 무슨 원한이 있어서 무섭게 기사를 썼느냐고 하더군요. 혹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원한이 있겠습니까. 시중에 회자되는 비유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죠.”
김 회장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그런 일도 있네” 하고선 아무 말이 없었다.
동아일보 퇴직과 갤럽의 飛上
1994년 6월, 나는 동아일보를 퇴직하고 한국갤럽으로 자리를 옮겨 인생 2모작을 시작했다. 그해는 한국갤럽 설립 20년째 해다. 사실, 한국갤럽의 박무익 회장(94년 당시 소장)은 1974년 갤럽을 시작할 때도 같이 하자고 제안할 만큼 두터운 사이다. 당시만 해도 나는 그와 생각이 달랐다. “컴컴한 유신시대 아니냐. 귀 막고 눈 감고 살아야 하는 시대에 여론조사가 제대로 되겠나”였다.
그러나 박 회장은 “정치·사회 조사는 힘들지 모르지만, 기업·마케팅 조사는 성장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10년차 기자였다. 또 엄혹했던 유신 시절, 가장의 책임을 함부로 내던지고 ‘모험 같은’ 여론조사업에 뛰어들 처지가 못 됐다. 나는 박 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먼저 하게. 적당한 때 나도 참여하지.”
그러니 동아일보 퇴직과 한국갤럽 입사는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퇴직금과 모아 둔 예금을 털어 갤럽 주식 3분의 1을 매입, 한국갤럽 회장직에 올랐다. 당시 갤럽은 현재 규모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갤럽은 이후 비상(飛上)하기 시작했다.
2002년 11월 16일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鄭夢準) 국민통합21 후보 간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는 내 기억 속에 ‘불가사의’ 한 일로 남아 있다.
양측은 여론조사 결과, 0.1%라도 앞서는 쪽 후보로 단일화하는 데 합의했다. 처음엔 3개 여론조사 결과를 평균하자는 얘기가 나오다, 나중에는 1개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말이 나왔다. 그즈음, 한국갤럽에 의뢰가 왔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여론조사 하나로 뽑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민주당과 국민통합21 쪽에서 야단이 났다. 어느 날, 노무현 후보측 김원기(金元基) 고문과 노 후보의 비서실장인 신계륜(申溪輪) 의원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다짜고짜 “갤럽이 왜 참여를 거부하느냐. 회사가 성가(聲價)를 올릴 수 있고 수익도 적지 않은데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 속에는 갤럽에 대한 외부의 압력이나 회유가 있지 않았느냐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나는 여론조사의 불문율을 얘기했다.
“보통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 이내의 결과는 등가(等價)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1~2%의 차이도 아닌, 0.1% 차이까지 인정하겠다고 하니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선 후보를 뽑는 최고의 정치적인 행위를, 최악의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행태가 놀라웠다. 나는 김원기 고문과 신계륜 의원에게 “그렇게 해선 안 된다. 여론조사 하나로 후보를 결정하는 게 우습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러자 김 고문은 “갤럽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몇 개 여론기관이 컨소시엄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는 없느냐”고 다시 제안해 왔다. 나는 거듭 “할 수 없다”고 했다. 조사인의 상식과 양심에도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여론조사의 맹점을 얘기하자면 이렇다. 보통 3000명을 상대로 샘플 조사를 하면, 저녁 6시부터 밤 10시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조사원 100명이 동원돼 한 사람당 30명씩 조사를 맡는다. 그런데 시급 4000원을 받고 참여하는 조사원의 나이가 대개 20~30대 여성이 다. 일반적인 얘기다.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라는 목표가 분명할 경우, 조사원도 유권자인 만큼 마음이 자연스레 움직일 수 있다. 20~30대 여성 가운데 노무현 후보의 팬이 많을까, 정몽준 후보의 팬이 많을까.
나는 두 사람에게 “유추하건대 결론은 이미 난 것 같소”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너무 명백한 사안이어서 갤럽뿐만 아니라 여론조사 기관 모두가 기절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날 저녁 또다시 연락이 왔다. 거두절미하고 “컨소시엄에 참여만 해 달라. 갤럽이 안 하니 다른 여론조사 기관도 거부한다”고 참여를 종용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갤럽을 포함해 메이저 5개 여론조사 기관이 모두 빠졌다.
다급해진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은 2001년 매출액 기준 15위까지의 기관에 모두 의사를 타진한 뒤, 간신히 두 개 기관에 여론조사를 맡겼다.
나는 지금도 의아하다. 그런 불리한 여론조사 단일화에 왜 정몽준 후보가 동의했을까.
“살아온 인생 전달에 승부 걸어야”
서울시장 시절의 이명박(李明博) 대통령과 가끔 만나 식사를 하곤 했다. 한번은 이 대통령이 고민을 털어놨다.
“최 회장님.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鄭東泳) 의원이 민주당 후보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는 얼굴도 잘생기고 목소리도 카랑카랑하며 달변인 데다 형용사 구사도 잘하잖아요. 거기에 비해 전 미남도 아니고 목소리도 컬컬하며 형용사 구사도 약합니다. 이 방면에 정통한 전문가를 찾아가 배워야겠어요.”
나는 손사래를 쳤다.
“시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웅변은 귀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진정성이죠. 정 의원의 청산유수 같은 말이 귀를 움직일지는 몰라도 마음은 못 움직일 겁니다. 경험에서 우러난 시장님의 진정성은 투박하지만 투박한 대로 여운을 길게 남길 겁니다. 어떻게 하면 진정성을 진솔하게 표현할지 고민하세요. 살아온 인생 전체를 전달하는 것으로 승부를 거세요.”
이 대통령은 내 얘기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뜨거웠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2007년 8월 20일 치러진 한나라당 대선 후보 당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는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내가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지 않고 그냥 갤럽에 있었다면 MB가 당선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당시 후보 경선은 일반 당원과 대의원, 국민참여 선거인단,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한 선거였다.
경선 결과, MB가 8만1084표를 획득해 7만8632표를 얻은 박근혜 후보를 2452표(1.5%P) 차이로 눌렀다. 당원과 대의원·국민참여 선거인단을 포함한 이날 선거인단 투표에서 MB는 박 후보에게 432표 뒤졌으나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2884표를 앞섰다.
비록 선거인단 조사에서 졌지만 표차가 크지 않았다. 내가 외부에서 띄엄띄엄 도왔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보 경선을 앞두고 밀착해서 허점을 살펴보니 지구당 관리가 허술했다. 당시 MB캠프는 이재오(李在五) 최고위원이 지구당 위원장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해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숫자만 믿고 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판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구당 내 당원과 대의원의 MB 지지율이 지구당 위원장 확보율에 못 미쳤다.
나는 지구당별 전수(全數)조사를 시켰다. 한 지구당에는 보통 당원 20~30명, 대의원 20~30명이 있는데, 이들을 전수조사한 뒤 ○, ×, △표로 나눴다. 지지(○)와 반대(×)는 따로 선거운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유보(△)였다. 유보의사를 밝힌 선거인단을 상대로 비상대책을 마련했다.
그런 선거운동으로 당원과 대의원 등 선거인단 투표에서 박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만약 선거인단 투표에서 1500표 이상의 격차가 났었다면 여론조사 하나로 결과를 뒤집을 수 없었을 것이다.
同苦하고 同樂하는 것이 행복의 길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인생의 3대 불행으로, 소년등과(少年登科), 석부형제지세(席父兄弟之勢), 유고재능문장(有高才能文章)이 있다. ‘소년등과’는 어린 나이에 출세하는 것이며, ‘석부형제지세’는 부모·형제를 잘 만나는 것, ‘유고재능문장’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을 말한다.
세 가지는 진정으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니라, 이를 경계하면 더욱 발전한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어느 한편에만 좋은 것이 있거나 나쁜 것이 있지 않다. 끊임없는 열정과 상상력으로 도전할 때만 진가(眞價)를 발휘할 수 있다.
나는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서 동고동락(同苦同樂)이란 말을 깊이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동고(同苦)하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동락(同樂)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다.
우리는 살기 힘든 시절을 ‘동고’하며 경제성장을 이룩해 왔다.
하지만 삶이 안정된 지금 ‘동락’하지 못하는 것은 강한 평등의식에서 비롯된 상대적 빈곤감, 더 나아가 ‘무조건적인 평등의식’,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평등의식’이 강하게 작용한 탓이다.
이제는 서로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아량과 배려를 가져야 한다. 동료나 이웃이 어려움에 닥쳤을 때는 적극 도와주면서 ‘동고’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이 잘되면 그것이 내 성공의 자양분이 된다는 생각으로 ‘동락’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정치가가 되고 싶어 정치학과에 들어갔다. 재능은 있어도 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한 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정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의 멘토는 누가 뭐래도 링컨 대통령(1809~1865)이었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만큼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말이 또 있을까.
그러나 대학에서 배운 정치학은 ‘선정의 학문’이 아니었다. 정치학 원서 강독 시간에 정치자금을 배우면서 하늘처럼 생각했던 정치인의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졌다. 정치란 고매한 사람이 국민의 이익과 국가 발전을 위한 행위로 알았던 나는 혼란에 빠졌다. 몇 달 동안 방황하며 자퇴를 고민했다.
그즈음, 쌍용그룹 창업주 성곡(省谷) 김성곤(金成坤·1913~1975) 회장의 아들 석원(錫元·현 쌍용양회공업 명예회장)씨의 가정교사가 됐다. 지금의 성곡미술관(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위치) 자리에 있었던 회장 자택에는 항상 여야 정치인이 들끓었다. 김 회장은 당시 최고 실세인 공화당 재정위원장이자 국회 재무위원장이었다. 그의 손을 통해 정치자금이 모아지고 나눠졌다.
몇몇 정치인들은 낮에는 군사정부 반대를 외치다가 밤에는 그의 대문을 두드렸다. 정치인들이 김 회장과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위원장님,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구하는 대로 받고, 능력껏 쓰는 시대라고 할까. ‘정치는 양식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정치인이 아닌 정치부 기자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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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그룹 창업주 김성곤 회장은 당시 공화당 재정위원장과 국회 재무위원장을 맡는 등 권력의 실세였다. |
1960~70년대 가진 것이 없던 시절, 외자(外資)가 유일한 한국의 자산(資産)이었다. 그런데 외자도입을 하려면 반드시 국회 동의를 받아야 했는데 주관 상임위가 국회 재무위원회였다. 당시 외자를 들여올 때 공정 환율은 1달러에 200원대였지만, 시장 환율은 1200원이 넘었다. 외자를 도입하면 앉아서 6배의 이익을 볼 수 있었다.
국회 재무위원장이 김성곤 회장이었고, 야당의 재사(才士)이자 책사(策士)인 김대중(金大中)·이중재(李重載)·고흥문(高興門)·이충환(李忠煥) 의원이 재무위원회 소속이었다. 사실상 외자도입 여부는 야당 책사 4명의 손끝에 움직였다. 김 회장은 야당을 설득해 외자도입 승인을 받아 내는 일이 가장 큰 과제였다. 김 회장은 나에게 “철면피가 아니면 정치를 못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때 나는 정치할 생각을 아예 접었다.
대신 정치현장을 접하면서도 직접 정치를 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비판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정치적 관찰자, 비평가 자리가 기자였다.
동양통신에서 1년을 보낸 후 스카우트 제의를 해 온 동아일보로 자리를 옮겼다. 동아일보 기자 생활 30년 동안 사표를 다섯 번 썼다. 개중에는 자의로 쓴 사표도 있고 타의에 의한 사표도 있다. 독재정권의 언론 탄압이 엄혹했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1971년 12월 6일로 기억한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언론의 무책임한 안보 논의를 삼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자유의 일부도 유보할 결의를 가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자로서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JP, “이런 식이라면 제대로 국정운영 못한다”
나는 이것으로 언론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몇 날 며칠 고민한 뒤 사표 쓸 결심을 했다. 그리고 쌍용그룹 김성곤 회장을 찾아갔다.
“더 이상 이 땅에 언론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동양통신(당시 쌍용이 대주주)에 입사시켜 주세요. 동경 특파원으로 보내 주시면 거기서 공부해 대학 교수가 되겠습니다.”
김 회장은 빤히 날 쳐다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허락을 했다. 동아일보로 돌아가 사표를 냈다. 그런데 박권상(朴權相) 편집국장이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를 공격하는 빌미로 ‘호남 출신들이 중심이고, 영남 출신들을 푸대접한다’는 말을 퍼뜨릴 때였다. 나의 사표가 자칫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비칠 수 있었다. 박 국장은 나의 사표가 동아일보의 전체 이미지를 훼손시킬 수 있다며 한사코 만류했다. 할 수 없이 사표를 접고 말았다.
그즈음, 나는 정부가 ‘옥외 집회·시위 특별조치령을 마련한다’는 제하의 특종 기사를 썼다. 기사는 ‘정부가 비상사태하에서 옥외집회 및 시위에 관한 특별조치령과 특정지역 내에서의 이동 및 철거에 관한 특조령을 금명간 마련할 방침’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당시 오후 2시에 예정된 국무회의에 앞서 정오쯤 배달하는 석간(夕刊)신문에 보도됐다. 당시 동아일보는 석간이었다. 분기탱천한 김종필(金鍾泌) 총리는 “어떻게 해서 비밀 안건이 국무회의 전에, 그것도 기자 손에 들어갔느냐”며 “이런 식이라면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날 나는 정부청사에 있던 중앙정보부 분실로 끌려가 취재원을 밝히라는 압력을 받았다. 나는 “기자에게 취재원을 밝히라는 것은 언론인이 되기를 포기하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조사관과 나와의 논쟁이 2~3시간 동안 이어지자 “운동 좀 해야겠다”며 검은 지프에 태워 남산 지하벙커로 끌고 갔다.
발가벗겨져 심한 고문과 매질을 당했다. 잠을 안 재우고 밤샘 조사를 받았다. 치욕을 감내해야 했지만 끝내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었던지 이튿날 오전 풀어 주며 서약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지하벙커에서 있었던 일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이었다. 그러면서 사표를 쓰라고 요구했다.
쓰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다. 그것으로 기자직을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며칠 집에서 쉬는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으니 빨리 출근하라는 것이었다. 나중 그 기사로 사내 ‘특별상’을 받았다.
1975년 12월에도 서대문구치소에 수감이 됐다. 유신시절은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구금과 탄압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공안검사로부터 다시 사표 강요를 받았다. 이제는 겁도 나지 않았다. 몇 달을 구금시켜 놓더니 이듬해 4월 보석신청을 하라고 한 뒤 풀어 주었다. 회사는 여전히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정부와 맞섰다. 설왕설래 끝에 사표를 받지 않되 정치부와 사회부 같은 외근부서 발령을 안 내겠다는 조건으로 절충이 이뤄졌다. 국제부와 지방부를 거쳐 1994년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퇴직하며 진짜 사표를 썼다.
터무니없는 컴퓨터 선거조작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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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시절, 서로를 잘 아는 ‘운명적인 동반자’이자‘숙명의 경쟁자’다. |
1988년 초 정치부 차장 시절, DJ와 점심을 함께 했다. DJ는 내게 컴퓨터 선거조작설 의혹을 설명하며 “깜짝 놀랄 만한 특종거리를 주겠다”고 솔깃한 제안을 했다. 그러면서 “컴퓨터 조작 관련 전문가 두 사람을 외국에서 불러 비밀리에 조사 중”이라 귀띔했다.
나는 속으로 DJ가 또다시 ‘위대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컴퓨터 조작설은 한국갤럽이 당선 예측치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불거졌었다. 한국갤럽의 예측은 오차 범위 내에서 모두 적중했다. 고백하자면, 한국갤럽의 박무익(朴武益) 회장은 고향 후배다. 여기다 중학교와 대학교 동문이란 인연까지 겹친다.
1987년 12월 한국갤럽이 당선 예측치를 발표할 즈음, 나는 박 회장을 찾아갔다.
나는 박 회장에게 “(여론조사에) 최선을 다했느냐”를 몇 번이나 고쳐 물었고, 그때마다 박 회장은 “떳떳하다”고 답했다. 박 회장의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예측치를 발표하라고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적중하면, 한국의 정치 여론조사 토대가 달라지겠지만, 틀리면 조사 업(業)을 접어야 할지 모른다. 그만큼 예측치 발표가 인생 전체를 건 모험이다. 양심껏 했다면 운명에 맡기자.”
그해 12월 16일 대선 투표 종료 직후 갤럽의 여론조사가 공개됐고 예상대로 적중했다. 이후 여론조사는 한국 정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됐다.
이처럼 갤럽 예측치 발표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을 꿰고 있는 나에게 DJ가 ‘컴퓨터 선거 조작설’을 얘기하니 기가 막혔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 선거 조작 특종을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대선 후인 1988년 4월 26일 치러진 총선은 헌정사상 최초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를 탄생시켰다. 그 힘으로 야당은 1988년 7월 ‘양대 선거 부정조사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켜 1990년 7월까지 무려 2년여 동안 부정선거 의혹을 조사했다. 그러나 컴퓨터 조작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DJ는 더 이상 재개표 요구를 하지 않았다.
YS 對 DJ
돌이켜 보면, 정치부 기자 시절 굵직한 정치인들과 많은 교분을 쌓았다. JP의 경우 어쩌다 한 번씩 만나는 사이라면, 야당시절 DJ와는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사이, YS와는 한 달에 두세 번 만나는 사이였다.
언젠가 DJ를 만나 “YS를 한마디로 평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DJ는 이렇게 말했다.
“YS, 그 친구는 대단히 어려운 일도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지.”
1주일 뒤 YS를 만나 DJ에 대한 인물평을 부탁하니 즉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 친구는 아주 간단한 일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영원한 맞수’인 두 사람은 이처럼 명료하고 함축성 있는 표현을 할 만큼 서로를 잘 안다.
1991년 말 DJ를 만나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두 분의 역사적 사명은 이 나라에 민주정치의 기틀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또한 정치적 이유로 증폭된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결정적 전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배반자나 민족적 죄인이 되느냐, 시대의 선각자나 국민적 지도자가 되느냐의 선택은 두 분의 의지와 양심에 달렸습니다. 누가 이기고 지든 간에 서로 얼싸안고 승자는 패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DJ의 표정은 진지했다. 얼마 뒤 YS를 만나 비슷한 말을 했다. YS 또한 심각한 모습으로 귀를 기울였다.
사실, 두 사람의 차이는 정치자금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도 극명하다. DJ는 치밀하고 정교하게 관리를 했고 YS는 투박하게 관리했다. 기자들에게 주는 촌지(寸志)의 관행도 사뭇 달랐다.
DJ는 정중하게 “야당이어서 힘이 든다”며 건넸지만, YS는 지갑을 확 펼치며 호기 있게 되는 대로 집어 주었다. 부끄러운 관행이지만 다시는 있어선 안 되는 일들이다.
1968년 총선 때의 일이다. 부산에 취재차 내려가 YS를 만났다. 그는 부산 서구에 출마한 상태였다. 지구당 사무실에 들러 인사를 하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더니 철제 캐비닛을 여는데 입이 딱 벌어졌다. 현금 다발이 빼곡하게 차 있는 게 아닌가.
권위주의 시절, 야당이 정치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당은 돈이 넘쳐 났고, 야당은 돈이 없어 보스들이 직접 공천 장사를 하며 자금을 모았다. 여야 상관없이 정당이 ‘공천 주식회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조용한 지역은 저마다의 몫대로 먼저 챙기고, 말썽 많은 지역은 주주들 간의 흥정과 담합으로 결판이 났다. 역대 어느 정치인이 돈 문제에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정일권의 운명을 가른 프랑스 거주 여인
정일권(丁一權·1917~1994) 전 국무총리와는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가까운 사이였다. 말년에 미국 하와이에서 암 투병을 했는데 거의 완치가 돼 1990년 무렵 일시 귀국한 일이 있다. 지인들이 모여 쾌유를 겸한 축하 만찬을 가졌는데 나도 동석(同席)했다.
그는 내게 “회고록을 쓰고 있다”며 집필이 끝난 뒤 퇴고(推敲)를 부탁했다. 나에게 몇 토막을 들려줬는데 아주 흥미로웠다.
1959년 무렵 그는 프랑스 대사로 재임하고 있었다. 이듬해 2월 공관장 회의차 일시 귀국했는데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경무대로 그를 불렀다.
“자네, 3월에 영구 귀국하게나.”
정 전 총리는 깜짝 놀랐다.
“각하, 무슨 일입니까.”
“3월에 개각이 있는데 자네가 국방장관을 맡아 줘야겠어. 그렇게 준비하시오.”
그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고 한다. 당시 그는 프랑스에서 한창 눈독 들인 여성이 있었다. 그 여성의 얼굴이 갑자기 어른거려 이렇게 말했다.
“좀 미루면 안 됩니까?”
“왜, 무슨 일이 있는가?”
그럴듯하게 꾸며 대기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극동(極東) 정세에 관심이 많아서 제게 하문(下問)한 일이 있습니다. 두 차례 정도 만났는데, 앞으로 보고할 일이 두 번 정도 더 있어서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물론 거짓말이었다. 이 대통령은 “그래? 드골이 자네를? 고마운 일일세. 그럼 그렇게 하지. 그럼 누구를 국방장관에 앉히면 좋을까?”
“김정렬(金貞烈·1917~1992) 공군참모총장이 어떨까요? 꼭 육군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습니까?”
“아, 좋지.”
사실, 전날 정 전 총리는 김 총장과 저녁을 같이 했다고 한다.
1960년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이 잇따라 터진 해다. 3·15 부정선거가 있었고 4·19혁명이 일어난 해다. 정 전 총리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그때 국방장관이 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6·25사변 때 많은 전투에 참여하며 발포 경험이 많아. 4·19 때 분명 발포명령을 내렸을 거야.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됐을까.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지 않거나, 내 운명도 4·19와 함께 사라졌을지 모르지. 육군 항공사관학교 교장 출신인 김정렬 장군은 전투경험이 없는 사람이니 4·19 때 발포명령을 신속히 내릴 수가 없었어. 내가 여자 생각에 장관이 안된 걸 감사하게 생각하네.”
박정희, 정일권에 “내 후계를 해”라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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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일권 총리와 박정희 대통령. 박 대통령은 속마음을 떠보려고 정 총리에게 후계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
“총리 임기가 다 돼 가지? 생각해 보니, 내 후계로 자네만한 사람이 없네. 준비를 해 두는 게 좋겠소.”
정 전 총리는 그 순간, ‘잘못하다가는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오랜 경험에 의한 인생의 노하우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각하! 아닙니다.”
“왜? 안돼요? 당신밖에 대안이 없어. 깊이 생각해 보시오.”
그때 둘러댄 답이 이랬다.
“저는 ‘삼팔 따라지’(이북에서 월남한 사람을 비하하는 말) 아닙니까. 월남한 인구가 얼마 안됩니다. 이북사람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득표를 할 수가 없어요. 또 제가 여자 좋아하는 것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여성 유권자들이 제게 표를 안 줄 겁니다. 그러니 후계자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임자 말도 일리가 있네. 새로 검토해 봐야겠어.”
“네, 감사합니다. 지금 총리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도 영광된 일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청와대를 걸어 나오며 ‘호랑이 입속에서 걸어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이번에는 김종필씨가 박 대통령에게 불려가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정 전 총리에 따르면, JP는 박 대통령의 속내를 모른 채 후계자 제안을 덥석 물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몇 달 후 JP는 자의반 타의반 해외여행의 길에 올랐다. 박 대통령의 눈 밖에 난 것은 물론이었다. 그로부터 한참 뒤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정 전 총리는 그러나 암이 재발해 끝내 회고록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그가 말년에 쓰던 원고는 어떻게 됐을까.
아쉽고 아쉬운, 짧은 정치부장
1988년 8월 정치부장으로 재직할 때의 일이다.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퇴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연희동 측에서 “운동이나 같이 하자”는 연락이 왔다. 먼저 남시욱(南時旭) 편집국장에게 보고한 뒤 후배 기자와 안양CC에서 라운딩을 가졌다.
전 전 대통령과 여러 얘기를 나눴다. 당시는 비자금 파문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노태우 대통령 주변에는 금진호(琴震鎬)·김복동(金復東)씨처럼 그럴싸한 사람이 많지만 내 형제들은 모두 고만고만한 인물뿐이어서 아무 것도 챙긴 것도 없고 허허롭습니다.”
나는 그런가 보다 들었다. 또 “군(軍)에 있을 때 리더십에 관심이 많았다. 관련 서적도 많이 읽고 직접 책도 쓰고 싶었는데, 정치권에 들어와서는 시간이 없어 아쉬웠다”는 얘기도 했다. 진지하게 정치자금(비자금)에 대해 물었더니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와 골프회동을 가진 뒤 석 달 만인 그해 11월 23일 전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죄와 함께 재산헌납을 발표하고 백담사로 향했다.
나 역시 구설수에 올랐다. 《기자협회보》가 전(全) 전 대통령과의 골프회동을 문제 삼았다. ‘정치권력과 유착하는 부적절한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두고 동아일보 노조가 다시 나를 공격했다.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다. 비록 퇴임했으나 전 전 대통령은 여전히 서슬 퍼런 권력의 한 축이었다. 그런 고급 취재원이 먼저 연락이 와 만나자는데 거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일부러라도 만나자고 제안할 판인데 당연히 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회사 내부에서 ‘아웃사이더’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공채(견습) 출신도 아니었다. 결국 정치부장에서 물러나 논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겨가게 됐다. 두고두고 아쉽다.
서동권 안기부장, “그만 살기로 했나요” 협박
6공화국 말엽인 1991년 12월 13일자 신문에 <노태우 대통령의 책임과 고뇌>라는 논설위원 칼럼을 썼다. 나는 노 대통령을 향해 ‘6공6폐’라는 원성을 아느냐고 물었다.
당시 시중에 떠돌던 무책임, 무정견, 무기력, 불신, 불안, 불만 등 6공의 6가지 폐단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1공화국 때 이승만 대통령을 향해 내치는 등신, 인사는 병신, 외교는 귀신이라 해서 ‘3신’이라 비웃지 않았던가.
나는 내친 김에 ‘6신’을 언급했다.
‘정치는 불신, 경제는 망신, 외교는 굽신, 인사는 등신, 우정에는 배신, 날치기에는 귀신’.
그러면서 ‘앞으로 남은 14개월의 잔여 임기 동안 계속해서 이 오염된 공기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보다 깨끗하고 맑은 공기가 생산돼야 한다’고 일갈했다.
칼럼을 쓸 때 혹시나 불려 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출근을 하며 아내에게 “혹시 집에 못 들어올지 모르겠다”고 넌지시 귀띔을 해 두었다. 속으로는 노태우 정부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칼럼이 실렸고 예상대로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그날 저녁 서동권(徐東權) 안기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최시중 논설위원. 오늘만 살고 그만 살기로 작정했나요.”
“무슨 말씀입니까.”
“이런 글을 쓰고 무사할 줄 압니까. 기사를 빨리 없애시오.”
신문은 이미 가정에 배달됐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나 이후 이상하게도 별다른 물리적 탄압(?)이 없었다. 청와대의 반응을 내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뒤 동아일보 김상만(金相万·1910~1994) 회장이 노태우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한 뒤 나를 불렀다.
“최 위원, 노 대통령이 최 아무개가 나와 무슨 원한이 있어서 무섭게 기사를 썼느냐고 하더군요. 혹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원한이 있겠습니까. 시중에 회자되는 비유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죠.”
김 회장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그런 일도 있네” 하고선 아무 말이 없었다.
동아일보 퇴직과 갤럽의 飛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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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2002년 11월 15일 밤 국회 귀빈식당에서 가진 단독회동에서 후보 단일화 방식에 합의한 뒤 기뻐하고 있다. |
그러나 박 회장은 “정치·사회 조사는 힘들지 모르지만, 기업·마케팅 조사는 성장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10년차 기자였다. 또 엄혹했던 유신 시절, 가장의 책임을 함부로 내던지고 ‘모험 같은’ 여론조사업에 뛰어들 처지가 못 됐다. 나는 박 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먼저 하게. 적당한 때 나도 참여하지.”
그러니 동아일보 퇴직과 한국갤럽 입사는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퇴직금과 모아 둔 예금을 털어 갤럽 주식 3분의 1을 매입, 한국갤럽 회장직에 올랐다. 당시 갤럽은 현재 규모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갤럽은 이후 비상(飛上)하기 시작했다.
2002년 11월 16일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鄭夢準) 국민통합21 후보 간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는 내 기억 속에 ‘불가사의’ 한 일로 남아 있다.
양측은 여론조사 결과, 0.1%라도 앞서는 쪽 후보로 단일화하는 데 합의했다. 처음엔 3개 여론조사 결과를 평균하자는 얘기가 나오다, 나중에는 1개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말이 나왔다. 그즈음, 한국갤럽에 의뢰가 왔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여론조사 하나로 뽑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민주당과 국민통합21 쪽에서 야단이 났다. 어느 날, 노무현 후보측 김원기(金元基) 고문과 노 후보의 비서실장인 신계륜(申溪輪) 의원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다짜고짜 “갤럽이 왜 참여를 거부하느냐. 회사가 성가(聲價)를 올릴 수 있고 수익도 적지 않은데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 속에는 갤럽에 대한 외부의 압력이나 회유가 있지 않았느냐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나는 여론조사의 불문율을 얘기했다.
“보통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 이내의 결과는 등가(等價)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1~2%의 차이도 아닌, 0.1% 차이까지 인정하겠다고 하니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선 후보를 뽑는 최고의 정치적인 행위를, 최악의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행태가 놀라웠다. 나는 김원기 고문과 신계륜 의원에게 “그렇게 해선 안 된다. 여론조사 하나로 후보를 결정하는 게 우습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러자 김 고문은 “갤럽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몇 개 여론기관이 컨소시엄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는 없느냐”고 다시 제안해 왔다. 나는 거듭 “할 수 없다”고 했다. 조사인의 상식과 양심에도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여론조사의 맹점을 얘기하자면 이렇다. 보통 3000명을 상대로 샘플 조사를 하면, 저녁 6시부터 밤 10시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조사원 100명이 동원돼 한 사람당 30명씩 조사를 맡는다. 그런데 시급 4000원을 받고 참여하는 조사원의 나이가 대개 20~30대 여성이 다. 일반적인 얘기다.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라는 목표가 분명할 경우, 조사원도 유권자인 만큼 마음이 자연스레 움직일 수 있다. 20~30대 여성 가운데 노무현 후보의 팬이 많을까, 정몽준 후보의 팬이 많을까.
나는 두 사람에게 “유추하건대 결론은 이미 난 것 같소”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너무 명백한 사안이어서 갤럽뿐만 아니라 여론조사 기관 모두가 기절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날 저녁 또다시 연락이 왔다. 거두절미하고 “컨소시엄에 참여만 해 달라. 갤럽이 안 하니 다른 여론조사 기관도 거부한다”고 참여를 종용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갤럽을 포함해 메이저 5개 여론조사 기관이 모두 빠졌다.
다급해진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은 2001년 매출액 기준 15위까지의 기관에 모두 의사를 타진한 뒤, 간신히 두 개 기관에 여론조사를 맡겼다.
나는 지금도 의아하다. 그런 불리한 여론조사 단일화에 왜 정몽준 후보가 동의했을까.
“살아온 인생 전달에 승부 걸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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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가족. |
“최 회장님.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鄭東泳) 의원이 민주당 후보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는 얼굴도 잘생기고 목소리도 카랑카랑하며 달변인 데다 형용사 구사도 잘하잖아요. 거기에 비해 전 미남도 아니고 목소리도 컬컬하며 형용사 구사도 약합니다. 이 방면에 정통한 전문가를 찾아가 배워야겠어요.”
나는 손사래를 쳤다.
“시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웅변은 귀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진정성이죠. 정 의원의 청산유수 같은 말이 귀를 움직일지는 몰라도 마음은 못 움직일 겁니다. 경험에서 우러난 시장님의 진정성은 투박하지만 투박한 대로 여운을 길게 남길 겁니다. 어떻게 하면 진정성을 진솔하게 표현할지 고민하세요. 살아온 인생 전체를 전달하는 것으로 승부를 거세요.”
이 대통령은 내 얘기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뜨거웠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2007년 8월 20일 치러진 한나라당 대선 후보 당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는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내가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지 않고 그냥 갤럽에 있었다면 MB가 당선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당시 후보 경선은 일반 당원과 대의원, 국민참여 선거인단,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한 선거였다.
경선 결과, MB가 8만1084표를 획득해 7만8632표를 얻은 박근혜 후보를 2452표(1.5%P) 차이로 눌렀다. 당원과 대의원·국민참여 선거인단을 포함한 이날 선거인단 투표에서 MB는 박 후보에게 432표 뒤졌으나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2884표를 앞섰다.
비록 선거인단 조사에서 졌지만 표차가 크지 않았다. 내가 외부에서 띄엄띄엄 도왔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보 경선을 앞두고 밀착해서 허점을 살펴보니 지구당 관리가 허술했다. 당시 MB캠프는 이재오(李在五) 최고위원이 지구당 위원장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해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숫자만 믿고 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판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구당 내 당원과 대의원의 MB 지지율이 지구당 위원장 확보율에 못 미쳤다.
나는 지구당별 전수(全數)조사를 시켰다. 한 지구당에는 보통 당원 20~30명, 대의원 20~30명이 있는데, 이들을 전수조사한 뒤 ○, ×, △표로 나눴다. 지지(○)와 반대(×)는 따로 선거운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유보(△)였다. 유보의사를 밝힌 선거인단을 상대로 비상대책을 마련했다.
그런 선거운동으로 당원과 대의원 등 선거인단 투표에서 박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만약 선거인단 투표에서 1500표 이상의 격차가 났었다면 여론조사 하나로 결과를 뒤집을 수 없었을 것이다.
同苦하고 同樂하는 것이 행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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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010년 아내 김조자 여사의 칠순 때 선물한 화환. 꽃집에서 “그냥 꽃만 전달하면 어떻게 하나. 아내에게 전할 말은 없느냐”고 물어 왔다. 고민을 하다가 ‘고마운 사람,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리본에 써 달라고 했다. 다시 꽃집에서 “한 줄만 쓰면 섭섭하니 대구(對句) 되는 말을 써 달라”고 해서 ‘더욱 아끼고 사랑하겠습니다’는 다짐의 글을 넣었다. |
세 가지는 진정으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니라, 이를 경계하면 더욱 발전한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어느 한편에만 좋은 것이 있거나 나쁜 것이 있지 않다. 끊임없는 열정과 상상력으로 도전할 때만 진가(眞價)를 발휘할 수 있다.
나는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서 동고동락(同苦同樂)이란 말을 깊이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동고(同苦)하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동락(同樂)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다.
우리는 살기 힘든 시절을 ‘동고’하며 경제성장을 이룩해 왔다.
하지만 삶이 안정된 지금 ‘동락’하지 못하는 것은 강한 평등의식에서 비롯된 상대적 빈곤감, 더 나아가 ‘무조건적인 평등의식’,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평등의식’이 강하게 작용한 탓이다.
이제는 서로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아량과 배려를 가져야 한다. 동료나 이웃이 어려움에 닥쳤을 때는 적극 도와주면서 ‘동고’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이 잘되면 그것이 내 성공의 자양분이 된다는 생각으로 ‘동락’할 수 있어야 한다.⊙
| [취재 후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시간을 뺏기란 쉽지 않았다. 간신히 잡은 약속도 계속 미뤄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3인 멘토’ 중 한 명이자 최고의 실세지만 종편출범 등 핫이슈가 걸려 있는 곳이 방통위였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3시간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도중 고생담을 얘기할 때는 간간이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시종 진지했다. 어떤 부분에 이르러서는 “내가 죽거든, 김 기자 당신이 써라”며, “이번에 털어 놓기는 하지만 글 쓸 때는 빼라”고 부탁받은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청을 거스르며 일부 내용은 포함시켰다. 그도 31년간을 기자로 살았으니 후배 기자의 불경을 아량으로 용서해 주리라 믿는다. 또 크게 논란이 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끝내 지면에 담지 못한 내용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고인이 된 정치인의 명예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마지막 인터뷰는 1월 12일 이뤄졌다. 항간에 제기된 전(前) 정책보좌역인 정모씨의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진 이후였다. 언론에서는 정씨를 최 위원장의 ‘양아들’로 부른다. “언젠가는 터져 나올 줄 알았어. 이제나 저제나 했는데…. 모두 방통위 주변에서 수년간 설로 나돌던 내용이야. 하필 이 시점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최 위원장은 그날 검찰 출입 기자들에게 밝힌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브리핑 발언록을 보여주었다. 발언록 중 일부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쳤다. 얼핏 보니 ‘확인 안된 내용을 언론이 너무 앞서서…’라고 말한 표현이 있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한나라당이 지금 깨질 판인데, 그 와중에 내 일이 터져 버려서…, 참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른 경로를 통해 (정 전 보좌역이) 입국해 검찰조사를 받으라고 했는데 내 말을 듣지 않아…. 검찰 조사를 받아도 걱정이야. 아무리 결백하다 해도, 그것이 내게 좋은 내용이든 나쁜 내용이든 중간수사 발표 하나하나마다 야당이 들끓을 테니 그것도 쉽지 않고….” 그는 자신의 측근을 둘러싼 의혹이 MB 정부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 간간이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 그의 안부를 걱정하기도 했다. 최 위원장은 긴 얘기를 하지 않고 몸을 낮췄다. 실제 인터뷰 중에도 그는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상세한 공개를 꺼렸다. 특히 정치자금 부분이 그랬고, MB 인사, 포항출신들의 국정전횡 의혹, 올해 총선 공천 등과 관련해서는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거나 아예 입을 닫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