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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진단

‘사회주의 과학기술 전문가’가 말하는 북핵·미사일

“7차 핵실험은 실제 사용할 전술핵실험 될 것”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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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핵무기 30~100발 보유 추정… 목표치는 최다 230발
⊙ 국방부, 북핵 위력 과소평가, 美中 기준 따르면 150~200kt
⊙ “北 사실상 ICBM 보유, 액체에서 고체추진제로 전환해 기습 발사 가능”
⊙ “3축 체계, 지나치게 미사일 의존적… 공중 레이저 무기 등 개발해 선제적 대응해야”
⊙ 6개월이면 자체 핵무장? 낭설… 3~4년은 걸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명예연구위원. 서울대 공학 박사, 중국베이징사범대 교육학 박사 / 중국 옌볜과학기술대 부총장, 중국과학원·베이징대학·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연구, 통일부·합동참모본부 자문위원 / 저서 《북한의 과학기술》 《러시아를 넘어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의 우주굴기》 등
지난 7월 13일 조선중앙TV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시험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북한이 새로운 무기를 공개하거나 미사일을 쏘면 사회과학을 공부한 전문가들이 등장해 정치적·외교적 관점에서 사안을 해설한다. 평생 재판만 해온 변호사도 종편에 나와 한마디씩 보탠다.
 
  핵무기와 그 투발 수단(ICBM, 잠수함, 장거리 폭격기 등)을 이해하려면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설명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일반인들은 원자탄과 수소탄, ICBM과 인공위성의 차이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도 6개월이면 핵무장을 할 수 있다’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으니 한국도 ICBM 기술을 확보했다’는 식의 피상적 이해에 그친다.
 
2020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려 이동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북한의 핵개발은 하나의 주기(週期)를 바탕으로 한다. 각종 도발은 핵탄두·투발 수단·핵전술을 고도화하는 기나긴 과정에서 벌어지는 단편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고작 김일성 태어난 날(태양절)을 기념하고자 김정은이 값비싼 미사일을 폭죽 쏘듯 발사하는 게 아니다. ‘대남적화 통일을 위한 최종병기’가 만들어지는 복잡다단한 과정은 생략한 채 개별 현상에만 집중하니 태양절, 한미연합훈련과 같은 배경을 갖다 붙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풍토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사회주의 과학기술 전문가가 책 《북한의 핵패권》을 냈다. 저자는 공학도인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중국·북한 과학기술 분야, 특히 핵·미사일 전문가다.
 
  이춘근 박사는 사회주의 국가들(소련, 중국,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온 경로가 같으며 앞선 소련·중국의 사례를 파악하면 북한의 미래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박사와의 인터뷰에는 합동참모본부에서 북핵 대응 실무를 맡았던 정경운(예비역 육군 중령,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서울안보포럼(SDF) 연구기획실장도 함께했다.
 
 
  中 개혁개방기에 中 과학기술 공부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
  — 사회주의 과학기술을 공부한 계기가 있습니까.
 
  “서울대 공대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마치고 1992년 중국 옌볜과학기술대 교수로 갔어요. 교수는 한국인, 학생은 중국인이었죠. 당시 중국의 현실이 잘 이해되질 않아 중국 교육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교무처장과 학사부총장을 하게 됐어요. 더 깊게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 베이징사범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또 공부했죠.”
 
  — 어떤 공부입니까.
 
  “사회주의 국가의 정책이 어떻게 수립·변화되고 그 논리는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1990년대 초 당시 중국이 한창 개혁·개방을 할 때였죠. 과학기술·교육 분야에서도 정책 변화가 있었어요. 북한에도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해 재밌게 공부했습니다.”
 
  개혁·개방으로 혼란스러웠던 중국은 과학 분야에서 거둔 성과인 ‘양탄일성(兩彈一星)’을 자랑했다. ‘두 개의 폭탄(원자탄·수소탄 또는 원자탄·유도탄)과 하나의 인공위성’이라는 뜻으로 1960년대 중국이 진행했던 핵무기·ICBM 개발 계획을 말한다.
 
  1990년대 초 중국은 체제 안정을 위해 국방과학 분야의 성과를 적극 홍보했다. 관련 전문 자료도 공개됐는데 이 박사는 이 경로를 파악해 자료를 수집하며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이 박사의 고향은 경기 파주 자유의 다리 앞이다. 집 앞을 지나가는 거대한 전차와 화포를 볼 때면 ‘저게 뭐기에 힘이 그렇게도 센가’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다.
 
  그는 1980년 육군화학학교(현 화생방학교)에서 군 복무를 시작하면서 핵무기와 처음 만났다. 특기병학교에서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배우고 자대에서는 병기와 탄약을 관리하며 핵과 미사일을 포함한 무기체계 전반을 공부했다. 3년 동안 눈에 띄는 교범이란 교범은 다 봤다. 100권은 넘게 봤는데 더는 볼 책이 없어 상급 부대에서 빌려오기까지 했다. 여기에 7년간 중국에서 현지 과학자들과 교류하며 고급 정보도 습득했다. 남북교류가 시작된 2002년부터는 방북해 북한의 과학기술도 지켜봤다. 지금까지 15번가량 다녀왔다.
 
 
  “北, 국방 관련 주요 분야에만 투자”
 
  — 북한 과학기술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사회주의의 과학기술은 선형적, 직선형으로 발전합니다. 기초연구→응용연구→개발연구→개발(생산) 등 각 선행 단계를 거칩니다. 문제는 한 단계에서 막히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질 못합니다. 연구기관마다 따로 움직이기 때문이죠. 자본주의는 돈을 벌기 위해 어떻게든 혁신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북한에는 시장이 없으니 이런 혁신도 없죠.”
 

  — 주로 어떤 분야에 관심을 둡니까.
 
  “예산에 한계가 있기에 국방과 관련된 주요 분야에만 투자합니다. 국가 투자에만 의존하니 수익성도 취약하고 장기적으로는 성과를 내는 것도 미흡합니다. 원자력 분야만 봐도 핵무기는 개발하지만 민수용(民需用) 원자력 기술 분야에는 성과가 없죠.”
 
  — 북한은 ‘과학에서의 주체’도 강조합니다.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산 원료·기술로 국내 개발한다는 뜻입니다. 김일성이 ‘공업에서의 주체(원료 70~80% 국산)’를 말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화학공장에 고압 탱크가 필요한데 두꺼운 고압 강관이 없어 철판을 둘둘 말아 밀착시키곤 위아래를 용접해서 만듭니다. 이런 자력갱생 방식도 첨단기술 분야로 갈수록 한계가 드러나죠.”
 
 
  “물리대학, 핵무기 운용 인력 양성”
 
  — 핵개발 인력 양성 기관은 어떻게 됩니까.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김책공대), 리과대학, 물리대학 등이 있습니다. 김일성종합대·김책공대 모두 최고 수준의 학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김일성종합대가 기초 학문에 중점을 둔다면, 김책공대는 핵무기와의 연결을 위한 응용 분야를 강조하며 실험 실습을 주로 합니다.”
 
  — 리과대학, 물리대학은요?
 
  “리과대학은 우리의 과학기술원(KAIST)처럼 연구 중심 대학입니다. 기초교육과 연구 능력 배양에 치중합니다. 증폭탄과 수소탄에 적용되는 핵융합을 연구하는 곳이기도 하죠. 졸업생 중 상당수가 연구원으로 진출해요. 물리대학은 핵무기 운용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현장실무형 대학입니다.”
 
  —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단일학과에서 원자력 분야를 폭넓게 학습하지만 북한은 연구진과 실무진(물리대학)을 구분해 기릅니다. 민간 원자력 분야 기술은 우리나라가 월등하죠.”
 
  — 핵개발 인력 규모는 어떻게 됩니까.
 
  “규모를 정확히 산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른 전공 출신도 핵개발에 참여하기 때문이죠. 전체 규모는 1만 명을 넘어서리라 추정합니다. 중국 핵무기 개발의 총본산인 공정물리연구원의 총원이 1만 명인데 이와 비교하면 작은 규모가 아니죠. 중국은 핵물질 생산기관이 국영에서 민간으로 이전하면서 직접 핵무기를 생산하는 데 관여하는 인력이 줄었지만 북한은 핵물질을 포함한 전체 원자력 주기가 핵무기를 목표로 하고 있죠.”
 
  — 북한은 언제부터 핵개발을 한 겁니까.
 
  “일제 시기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만 본격적인 무기급 핵물질과 원자탄 생산을 추진한 시점은 영변에 5MWe 원자로(1985년 준공)를 가동한 1980년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드부나연구소
 
  — 자체적인 개발입니까.
 
  “사회주의 국가가 모여 만든 연합핵연구소(JINR, 드부나연구소)가 있습니다. 핵 확산의 경로죠. 1956년에 소련·중국·북한 등 12개 사회주의 국가가 참여해 만들었죠. 각 회원국이 과학자를 파견해 공동연구를 하며 이론물리, 입자물리, 핵반응 등을 연구했어요.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초 학문이죠.”
 
  — 핵무기를 확산시키고자 만든 연구소입니까.
 
  “핵 확산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사회주의권의 고급 인재를 유치해 공동연구를 통한 과학 발전을 의도했다고 볼 수 있죠. 소련 자체 인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중국처럼 인구가 수억 명인 나라에선 천재들도 많잖아요.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의 위상만이 아니라 소련에도 이득이 있다고 생각해 연구소를 지원했죠.”
 
  — 중국은 이 연구소를 어떻게 활용했습니까.
 
  “1960년대 중·소 관계가 악화하기 전까지 200명 정도를 파견했습니다. 당시 드부나연구소에 다녀온 인력 중 80%는 중국으로 돌아와 핵무기연구소에 배치됐죠. 이를 바탕으로 중국도 소련의 핵개발 경로를 답습해 1964년 핵무기를 개발해냈습니다. 특히 원자탄과 수소탄을 개발한 경로가 초기 소련 핵개발 방식과 유사하죠. 중국은 소련을 보고서 처음부터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도록 원자탄을 소형화해 만들었습니다.”
 
  중국과 북한은 핵개발 과정에서 이른바 ‘후발국의 우세’를 활용해 미국과 소련이 겪은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참고했다. 대표적으로 우라늄 농축 방식과 핵탄두 소형화였다. 핵무기 원료에는 고농축우라늄(HEU)과 플루토늄이 있다. HEU를 만들기 위해선 천연 우라늄 중 0.7%만 존재하는 우라늄 235를 90% 이상 농축해야 한다.
 
  최초 핵무기 개발 당시 미국은 고비용인 ‘기체확산법’으로 우라늄을 농축했다. 반면 소련은 저비용인 ‘원심분리기’를 개발해 HEU를 확보했다. 중국도 처음에는 기체확산법을 활용하다가 원심분리기로 우라늄을 농축했다. 미국도 지금은 원심분리기를 활용한다.
 
  핵무기가 처음 세상에 등장할 때는 그 크기와 무게 때문에 미사일에 곧장 장착할 수 없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위력 15kt, HEU)는 무게 약 4500kg, 길이 3.3m, 지름 70cm였고,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맨(21kt, 플루토늄)은 약 4670kg, 길이 3.3m, 지름 1.5m였다. 두 원자탄 모두 폭격기 B-29에서 투하됐다. 소련은 핵탄두를 소형화하면 미사일에 실어 발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만들어진 핵탄두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도록 소형 원자탄으로 계획됐다.
 
  — 북한은 드부나연구소에 몇이나 파견했습니까.
 
  “초기 30여 명 수준에서 점차 늘어 300명을 넘어섰습니다. 중국(200명)과 비교해도 많죠. 중국 연구진은 이론과 응용을 병행 학습했지만 북한은 파견 인력의 80% 이상이 핵개발과 연관된 원자로, 중성자물리, 방사화학 등 응용 분야에 주력했습니다.”
 
  북한은 소련과 원자력 협력을 통해 영변에 IRT-2000(1965년 준공), 5MWe 원자로를 세웠다. 북한의 1차 핵실험(2006년) 당시 사용한 핵물질은 5MWe 원자로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이다.
 
 
  “中, 北에 레이저핵융합 설비 제공”
 
지난 9월 출간한 《북한의 핵패권》(인문공간).
  《북한의 핵패권》에 따르면, 북한은 1980년대 들어 전반적인 원자력 주기가 완성됐다고 봤다. 이 시기에 원자력 분야에서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분리하고 핵무기 개발(응용연구)에 주력하게 됐다. 응용 분야에 필요한 인력과 시설은 영변으로 대거 이전했다. 앞서 소개한 물리대학은 1980년 영변 지역 과학자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만든 물리학원을 확대 개편해 만든 것이다.
 
  —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에 어떤 도움을 줬습니까.
 
  “1980년대 중국과학원이 레이저핵융합 설비를 평화적 목적으로 북한에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 설비를 이용해 수소탄 개발에 드는 시간을 단축했죠. 2010년 북한이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밝혔는데 당시 다른 국가들은 평가절하했지만 중국 측은 격한 논조로 북한을 비난했죠.”
 
  — 레이저핵융합 설비는 어떤 장비입니까.
 
  “인공적으로 고온·고압 플라스마를 만들고 이를 반사거울로 작은 점에 집중시킵니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수천만 도의 고온·고압 환경이 돼 어떤 핵물질이 핵융합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실험할 수 있습니다. 수소탄 개발에 필요한 이론연구를 할 때 유용하게 쓰이죠.”
 
  — 북한은 왜 지하에서 핵실험을 하는 겁니까.
 
  “핵실험은 크게 지상 실험(고공, 공중, 지면, 수중)과 지하 실험(수직·수평갱도)이 있습니다. 방사능 위험과 생태계 파괴 때문에 1963년 미국과 소련이 [부분적 핵실험 금지조약(LTBT)을 통해] 협의를 맺고 핵실험 지하화가 이뤄졌습니다. 1945년 최초 핵실험 이후 최근까지 파악된 2065회 실험 중 약 80%가 지하 실험입니다.”
 
 
  풍계리가 핵실험장이 된 이유
 
2017년 9월 3일 북한은 6차 핵실험을 했다. 사진=뉴시스
  — 지하 핵실험의 장단점은 무엇입니까.
 
  “지하 핵실험은 수평갱도와 수직갱도로 구분합니다. 수평갱도는 시공이 간편하고 각종 모사 실험을 원만하게 할 수 있죠. 다만 폭발 위력이 큰 실험은 안 돼요. 수직갱도는 지형 제한이 적고 동일 지역에서 여러 번 실험할 수 있죠. 위력이 큰 핵실험도 합니다만 시공 기술 수준이 높아야 하고 지하수 유입으로 높은 수압과 오염이 유발됩니다.”
 
  — 북한은 어떤 방식입니까.
 
  “처음에는 달팽이관 형태의 수평갱도를 이용했고 바로 직선형 갱도로 전환했습니다. 핵무기 현대화와 기술 개선을 위해서는 직선형의 수평갱도 방식이 가장 유리하죠. 넓은 기폭실에 핵장치를 설치한 후 각종 측정 장치를 활용해 근거리 핵물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근거리 핵물리 결과 값은 지하 핵실험에서만 얻을 수 있어요. 또 핵폭발로 발생하는 X선과 감마선은 핵무기 고공 폭발 시 발생하는 중요 살상 요인입니다. X선의 열역학 효과와 방호기술을 연구하는 것은 수평갱도 실험에서만 가능합니다.”
 
  — 북한은 왜 풍계리를 핵실험장으로 삼았습니까.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일대는 화강암 지대입니다. 시멘트를 만들 때 쓰는 석회암 지대에서 핵실험을 하면 석회암을 이루는 탄산칼슘이 높은 열을 만나 이산화탄소 기체가 발생합니다. 그렇게 되면 엄청난 부피로 팽창해 핵물질이 외부로 유출돼 안전에 문제가 생깁니다.”
 
  — 화강암은 어떻습니까.
 
  “화강암은 석영을 함유합니다. 석영은 열을 받으면 녹아내려 유리처럼 변해요. 화강암 지대에서 핵실험을 하면 핵폭발을 봉쇄하기도 쉽고 방사능 물질을 유리체에 담아둘 수 있기에 오염도 방지할 수 있죠. 다만 암석 특성상 큰 위력 실험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 6차례에 이르는 핵실험으로 풍계리 일대 지반이 약해졌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충격파는 위아래로 전파됩니다. 10~20km 아래 단층이 부서져야 자연 지진이 일어납니다. 핵실험은 기껏해야 800m, 1km 깊이에서 실험해요. 일부 영향이 있지만 심각하진 않습니다.”
 
 
  핵실험, 백두산 폭발에 영향 안 줘
 
  — 핵실험이 120km 떨어진 백두산 화산 활동에 영향을 주진 않습니까.
 
  “핵실험은 지표에서 가까운 곳에서 합니다. 충격파가 지하 단층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이미 많이 잃죠. 풍계리와 같은 수평갱도는 산 위에서 실험하므로 이런 경향이 수직갱도보다 더 심합니다.”
 
  — 메가톤급 수소탄 실험을 하면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습니까.
 
  “수Mt 이상(진도 7)의 대형 수소탄을 터뜨려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텐데 풍계리에서는 아예 이런 규모로 실험할 수가 없어요. 미국이 알류샨열도 섬에서 Mt급 대형 지하 핵실험을 여러 번 했어요. 이를 계기로 그린피스가 탄생했는데, 어쨌든 이 실험이 근처 알래스카 화산에 영향을 주진 않았죠. 지금껏 2000번 넘는 핵실험 중 화산 폭발을 유발한 사례는 없어요. 일부는 발해 멸망설까지 꺼내는데 발해 멸망은 926년이고 백두산 대폭발은 20년 후인 946년입니다.”
 
  — 우리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위력을 어떻게 추정합니까.
 
  “지형마다 산출 공식이 있어요. ‘화강암 지대에서는 00kt의 위력의 실험을 하면 지진파 00이 나온다’처럼요. 또 갱도 깊이를 알면 추정할 수 있죠. 갱도 입구부터 산 정상까지의 높이차를 계산합니다. 핵실험 갱도는 아래로 뚫지 않고 조금 상향해서 굴착해요. 아래로 뚫으면 지하수를 배출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약간 비스듬하게 위로 뚫는다고 생각하면 그 높이를 추정할 수 있죠.”
 
  — 풍계리에서는 몇kt까지 실험할 수 있습니까.
 
  “산 높이(기폭실에서 상부 정상까지)가 800m면 최고 위력 250~300kt까지 실험할 수 있다고 봐요. 제 생각에는 150kt이면 적당하고 200kt이 최고치일 거 같아요. 우리 국방부는 6차 핵실험 당시 위력을 50kt 정도라고 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봐요.”
 
  — 다른 나라는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38노스에서는 기폭실 깊이(800m)를 바탕으로 향후 282kt까지 실험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는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실험할 때 적용하는 공식으로 계산한 값이에요. 풍계리에 적용하면 안 됩니다.”
 
  부드러운 암석에서는 큰 위력을 실험해도 폭발로 발생하는 충격파가 적다. 샌드백을 생각하면 된다. 화강암은 단단하기에 큰 위력으로 실험하면 충격파가 강하게 전파돼 주변 봉쇄가 어려워진다. 수평갱도에서 핵실험을 하는 북한은 Mt급 핵실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방부, 북핵 위력 과소평가”
 
정경운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정경운 연구원은 6차 핵실험의 폭발력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발표한 진도 5.7을 바탕으로 당시 국방부에서는 위력을 50kt이라고 계산했습니다. 이게 공식화돼버렸죠. 그런데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진도를 6.3으로 측정해 산출했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위력이 150~200kt까지 나와요.”
 
  이에 이춘근 박사는 “핵폭발에 따른 전체 에너지 중 지진파로 나오는 충격파는 약 5%에 불과하다”며 “북한 핵실험이 가진 경향성을 바탕으로 경험식을 만들어야 위력 규모를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화강암은 단단하고 수분도 꽉 찬 암석이라 위력을 판정할 때 그 값이 작게 나온다. 또 같은 화강암이라도 암석 내 수분 유무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위력치를 고정하지 말고 하한선(50kt)과 상한선(150kt)을 두고 계산해야 한다”고 했다.
 
  정 연구원은 “우리(국방부)가 너무 보수적으로 위력을 계산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1차 핵실험 당시 썼던 위력판별식을 지금도 쓰고 있어 문제”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지질자원연구원은 핵폭발 위력을 상한선과 하한선으로 나눠 청와대와 국정원에 보고했지만 당시 수뇌부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하한선’이 북핵 위력 판단의 기준이 됐다고 한다. 여기에 북한을 과소평가하려는 국방부의 시각이 더해져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낮은 위력 값을 발표한다.
 
  — 정치·외교적으로 분석을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통일연구원만 봐도 인문사회계 출신이 대부분이죠. 통일부 공무원들도 문과 출신이 대다수이고 보직을 순환하기에 전문성을 축적하기도 어려워요. 핵 분야는 특히나 장기 학습이 필요하거든요. 여기에 영어권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한 이들이 많다 보니 정치·외교적으로만 접근하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와 관련해 정경운 연구원도 의견을 더했다.
 
  “동의합니다. 저도 핵·미사일을 두고 처음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7~8년 정도를 따로 공부해가며 나름의 관점을 세웠죠. 국방과학연구소(ADD) 관계자들과 핵·미사일을 기술적으로 분석해 합참에 보고하면 합참에서는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내용을 이해하질 못했어요. 기존에 갖고 있던 어떤 관념이나 생각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 같아요. 윗사람들도 각종 이론을 동원해 설명하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춘근 박사는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1~6차 핵실험의 목표
 
핵실험 시뮬레이션 누크맵(Nuke map)으로 본 핵실험 피해 범위. 나가사키에 떨어진 20kt을 기준으로 했다. 출처=조선DB
  — 핵실험(1~6차)마다 어떤 목적이 있었습니까.
 
  “1차는 폭발 실험, 2차는 위력 개선, 3차는 소형화와 경량화, 4차는 수소탄, 5차는 표준화된 핵탄두의 위력 판정, 6차는 ICBM용 수소탄 실험이었습니다. 3차까지의 실험을 통해 각종 핵 기술을 개발했다고 판단하고 5차에서는 실전 배치를 위한 표준화를 추진했습니다. 4·6차에서는 위력을 대폭 확장한 수소탄을 실험했죠.”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30~100개로 추정된다. 하한선과 상한선의 차이가 큰 이유는 북한이 HEU를 확보하는 속도를 높이거나 기폭장치를 개량하는 방식으로 핵탄두 수를 빠르게 늘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김정일 시대에 활용했던 P2 원심분리기 대신 탄소섬유로 만든 원심분리기를 사용할 경우 HEU 확보 속도가 P2 대비 10~30배까지 빨라질 수 있다. 또 핵탄두 1개를 만드는 데 통상 플루토늄은 5~7kg, HEU는 20~25kg이 필요하다. 여기에 기폭장치를 개량하면 적은 양의 핵물질로도 핵탄두 1개를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정확한 수량 파악이 어렵다.
 
  정경운 연구원은 북한이 계획하는 핵무기의 수량과 7차 핵실험의 방식 등 북한의 핵전략 전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전략적, 전술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핵으로 타격할 수 있는 최적의 표적 개수를 계산해놓았을 겁니다. 이를 바탕으로 핵무기의 위력과 개수도 설정했을 테죠. 미국 핵 전략가들이 만든 이론을 대입했더니 북한이 필요한 핵탄두가 220~230발로 나왔습니다.”
 
 
  “北 정찰위성, 과소평가할 필요 없어”
 
김정은 앞에 놓인 전술핵탄두 ‘화산-31’.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3월 28일 김정은이 핵무기병기화 사업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정 연구원은 “핵무기에도 개발 경로가 있다. 처음에는 원자탄에서 수소탄처럼 위력을 증가하는 경로로 간다. 그다음은 소형화해 전술핵을 개발한다. 앞으로 7차 핵실험은 전술핵실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인도·파키스탄이 6차 핵실험까지만 한 이유는 핵무기를 공격 수단이 아닌 억제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기 때문”이라며 “전술적으로 실제 사용하려는 북한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이어지는 정 연구원의 이야기다.
 
  “북한이 공개한 소형 전술핵탄두인 화산-31형을 보면 아주 작습니다. 여기에 적용한 기술을 검증하려면 결국 실험할 수밖에 없죠. 더욱이 소형 전술핵은 내부 기폭장치를 소형화해야 하기에 반드시 실험해야 합니다. 풍계리 3번 갱도는 주 갱도와 보조 갱도가 있어요. 높이는 각각 500m, 300m.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전술핵실험뿐이에요. 주 갱도는 50kt, 보조 갱도는 15kt까지 할 수 있죠.”
 
  이 박사가 화산-31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화산-31형을 투발(投發) 수단(8종)에 모두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문제는 투발 수단만 다양하다는 점이에요. 각 투발 수단마다 특성이 다르기에 핵탄두 겸용에서 가장 앞선 미국도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에는 다른 핵탄두를 사용하죠.”
 
  — 북한이 발사체 천리마-1호에 정찰위성 ‘만리경-1’을 탑재해 발사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우리 군 당국은 ‘군사적 효용성이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해상도가 낮다는 이유입니다.
 
  “‘해상도가 1m급에 미치지 못하니 효용이 없다’는 생각은 우리식 사고입니다. 북한 입장에선 해상도 10m급 정찰위성으로 바다에 떠 있는 이지스함만 발견해도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에 왜 이게 필요하지 않겠어요? 너무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화성-18형, 사실상 미 본토 타격 가능 ICBM”
 
지난 9월 14일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보스토니치 우주기지를 참관했다. 사진=뉴시스
  — 지난 7월 12일 북한이 화성-18형을 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고체추진제 ICBM 비행시험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죠. 화염의 색도 달라졌어요.”
 
  — 무슨 의미입니까.
 
  “74분51초 동안의 비행으로, 정점고도 6648.4km, 사거리 1001.2km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정상 각도로 발사하면 1만5000km죠. 이만큼 비행했다는 것은 고성능추진제를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북극성을 발사할 때 볼 수 있었던 진한 흰색과 비교하면 화성-18형은 붉은색 화염이 확연합니다. 고성능 NEPE 추진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장거리를 날아갔다는 것은 화염을 내뿜는 노즐목의 방열도 성공했다는 의미죠. 노즐목에 사용하는 소재(탄소복합섬유) 기술이 재진입체 방열 소재와 비슷합니다. 이 말은 곧 대기권 재진입에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증명된 겁니다.”
 
  정경운 연구원의 설명이다.
 
  “ICBM의 핵심은 결국 재진입 기술과 원하는 목표를 타격하는 능력입니다. 미국의 지상 기반 중간단계 미사일 방어체계(MD)는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까지만 있습니다. 이 말은 ICBM이 재진입에만 성공하면 워싱턴 상공에선 요격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거죠. 천천히 낙하해도 요격되지 않으니 ICBM의 속도가 마하 20~24까지 빠를 필요도 없죠. 속도가 줄면 그만큼 탄두부에 발생하는 열도 줄어들죠. 북한이 원하는 지점에 충분히 탄두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북한이 ICBM 능력을 어느 정도 갖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춘근 박사는 누리호에 대해 설명하며 누리호는 ICBM과 다르다고 했다.
 
  “ICBM과 우주발사체는 어떤 추진제를 쓰는지로 구분해요. 누리호에 쓰는 저온추진제(케로신과 액체산소)는 취급이 불편하고, 발사 준비 시간이 길며, 고정식 발사대가 필요해요. 상단이 포물선이 아닌 지구와 거의 평행한 궤도로 활공하면서 진입해 위성을 투사(投射)하고 재진입은 하지 않으므로 ICBM과 다르죠.”
 

  — 푸틴과 김정은의 만남을 어떻게 보십니까.
 
  “앙가라 로켓 실험을 참관했어요. 우리 나로호의 원형이죠. 북한이 운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발사체이니 북한이 이 로켓을 도입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북한이 당면한 문제는 2단, 3단 로켓 부분인데, 이를 실험하려면 진공(眞空) 챔버를 갖춘 연소시험장 등이 필요해요. 러시아가 실험 설비를 지원하거나 실험을 대행(代行)해줄 수도 있죠. 또 위성 발사용 고공 엔진을 직접 제공할 수도 있고요. 다음은 위성 분야인데, 러시아가 개발한 위성 플랫폼을 제공하거나 기존 러시아의 위성을 임대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내부 통제, 외부의 경제 지원, 최종적으로 대남적화통일.”
 
  — 북한이 주장하는 기술 수준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기술성숙도(TRL, 1~10단계)라는 게 있어요. 1~6단계가 기초·응용 연구, 7~8단계는 체계 통합·실험 평가, 9~10단계가 운영·유지, 대량 생산입니다. 지금 북한은 대부분 7~8단계 수준입니다. 미국은 미사일의 경우 20~24발을 쏘아 90% 이상의 신뢰성이 확보돼야 대량 생산을 해 실전배치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그 정도로 실험하는 무기 체계가 별로 없어요. 북한의 기술 수준을 종합적으로 신뢰하기에는 아직 이르죠.”
 
 
  “워싱턴 선언, 아쉬움 있어”
 
  이춘근 박사는 핵전력을 향후 유지하는 것이 김정은 정권에는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봤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전체 경비의 10~20%를 차지한다면 나머지는 투발 수단과 핵전력을 유지·보수하는 데 소모된다. 이 박사는 핵무기와 관련된 각종 사고도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 북핵·미사일 대응 수단으로 우리 군은 이른바 ‘3축 체계’를 말합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중요한 대응 수단을 찾았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문제가 있어요. 지나치게 미사일 의존적입니다. 미사일에 미사일로 대응하는 것은 북한을 따라가는 방법에 불과해요. 북한의 전략·전술에 놀아나는 것일 수 있어요. 지금 북한이 SLBM을 개발해서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상대하고 있잖아요. 앞에서 막고 뒤에서 따라갈 수 있도록 선제적인 방법을 찾아야죠.”
 
  — 앞서가는 대안 같은 게 있습니까.
 
  “상시 체류 무인기(無人機)나 과거 미국이 개발하다가 포기한 ‘공중 발사 레이저(ABL)’도 좋아요. 부상(浮上)·상승 단계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무기입니다. 미국이 개발을 포기한 이유는 사전 공격에 취약하고 저공에서는 레이저가 산란(散亂)된다는 점, 원거리에서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 때문이었죠.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종심(縱深)이 짧은 곳에서는 굉장히 유용한 방법이에요.”
 
  — 과학자로서 워싱턴 선언은 어떻게 보십니까.
 
  “내용상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이라든지 우리가 받아낼 수 있는 것도 있었을 텐데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협상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미국 입장에선 대(對)중국 견제에 한국을 동참시켰고, 한국 사회 일부에서 제기하는 자체 핵무장론도 완전히 잠재웠죠.”
 
 
  “6개월 핵무장설, 위험한 이야기”
 
  — ‘한국이 마음먹으면 6개월 내에 핵무장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주장은 사실입니까.
 
  “그런 주장이 나올 때면 참 답답해요. 굉장히 위험한 이야기예요.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나 정책을 경험해본 사람은 2년 이내도 어렵다고 봐요. 실제로 3~4년 걸리겠죠. 또 ‘마음만 먹으면’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겁니다. 전시(戰時)에는 그 긴급성 때문에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진행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전시에는 우리 작전통제권이 미군(한미연합군사령부)에 넘어갑니다. 평시(平時)에 개발하겠다?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예요. 지금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에도 이 난리인데…. 오히려 기술적인 문제보다 정치적인 문제가 훨씬 더 커요.”
 
  동아일보 1977년 5월 26일자 4면 과학란에는 미국이 연구 중인 원자법 레이저 농축 동향 기사가 등장한다. 여기에 ‘3.5일, HEU 20kg 생산 가능’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하지만 이 기술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한 방법이다.
 
  2000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전자총으로 우라늄 극소량을 증기화해 레이저로 농축한 실험이 있었다. 3회에 걸쳐 총 10시간을 가동해 무기급(90% 이상)에는 미치지도 못 하는 우라늄(약 30%) 0.2g을 얻었다. 이를 쉬지 않고 1년 내내 가동해도 얻을 수 있는 우라늄은 175g에 불과했다. 핵탄두 1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분량인 HEU 20kg을 얻으려면 이런 설비가 680대 이상 필요하다. 이런 설비를 갖춘 나라는 세상에 없다. 1977년 기사와 2000년 한국 연구진의 실험 헤프닝이 합쳐져 ‘6개월 핵무장설’이 탄생했다. 6개월 핵무장설을 퍼뜨리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극렬히 반대하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 모 교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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