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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요지경

北 보위성의 탈북자 공작

北 인권단체 대표 암살하려 옛 연인을 간첩으로 보내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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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민, 북한 가족에게 전화 연락 받고 충격… 북한 보위부의 공작
⊙ 휴대폰으로 가족 영상 보내 탈북민 단체 대표들 협박하기도
⊙ “협박과 강요로 보위부 돕는 탈북민은 北에 남겨둔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
⊙ 탈북 여성을 간첩으로 암약시켜 한국행 준비 탈북민 밀고하게 해
북한이 탈북민 가족들을 내세워 한국에 살고 있는 탈북민을 다시 북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하는 영상. 사진=인터넷 화면 캡처
  “진향아 여기 있는 분들이 네가 탈북자 100명의 전화번호나 신상정보를 주면 우리가 전화하는 것에 대해서 눈감아 준다고 하니 네가 이분들의 부탁을 꼭 들어줬으면 좋겠다.”
 
  최근 탈북민 최진향(가명)씨가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통화를 하던 중 그의 어머니가 최씨에게 한 말이다. 최씨는 어머니의 이런 황당한 부탁이 북한 국가보위성(국정원 격)에서 어머니에게 시킨 것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또 보위지도원들이 옆에 앉아 통화 내용을 다 듣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최씨는 모든 사실을 알고도 어머니의 안전 때문에 그 자리에서 알았다고 한 뒤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최씨뿐만 아니다. 탈북민 김은별(가명)씨도 지난해 북한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이와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 김씨는 어느 날 갑자기 추방된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당에서 모두 용서해준다고 하니 다시 북한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北 보위부, 고차원적으로 변하는 탈북민 공작
 
북한 보위부 소속 보위지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검열원’ 완장을 차고 누군가를 감시 중인 모습. 사진=인터넷 화면 캡처
  최씨가 어머니의 말을 듣고 북한 보위부(국가보위성 산하 시·군 단위 조직)의 공작임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은 몇 달 전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이상한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어머니의 얘기는 이랬다.
 
  “얼마 전부터 담당 보위지도원이 나를 찾아와서 너(최진향)의 행방에 대해 묻더구나. 우리는 당연히 고난의 행군 때 집을 나간 뒤로 소식을 모른다고 했다.”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가 최씨와 통화를 하던 중 보위부에 붙잡히게 됐다. 물론 현장에서 체포된 것은 아니었지만, 최씨의 증언에 의하면 누군가 신고를 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최씨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최씨는 “그때 언니의 소식을 듣게 됐다. 평소와 달리 어머니 목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면서 “그러면서 한다는 얘기가 탈북자 정보를 넘기면 언니의 죄도 덮어주고 전화하는 것에 대해 눈감아 주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김은별씨는 해외 북한 식당에서 일하다 탈출했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나 엘리트 교육을 받고 해외로 나왔다. 그의 탈출 소식이 북한에 전해지자 김정은은 그의 일가족 모두 다른 지역 산골로 추방시켰다. 남한에 정착한 김씨는 소식통을 통해 가족이 추방된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북한에서 전화가 왔다. 김씨의 어머니였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얘기하는 과정에서 김씨는 어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누군가 옆에서 감시하듯 기계적으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씨는 이상함을 눈치채고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김씨 어머니는 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올 것을 계속해서 설득했다’고 한다. 며칠을 설득해도 김씨가 마음을 돌리지 않자 옆에 있던 보위지도원이 전화를 바꿔 협박하면서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김씨는 당시 보위지도원이 한 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김씨에게 전한 보위지도원의 말이다.
 
  “니레(니가) 조국을 배반하고 남조선에 간 거이(간 것을) 평생 후회하게 해주갔어. 니 에미, 애비 다 니 때문에 죽는 기야 알간?”
 
 
  ‘가족 살리고 싶으면 쥐 죽은 듯 살라’
 
  그 뒤로 김씨는 가족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전해 듣기로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산골로 추방을 당했다고 한다. 그곳에선 외부 세계와 전화를 할 수가 없다. 그러면 김씨의 어머니는 어떻게 딸에게 전화를 했을까. 당시 상황은 이랬다. 해당 지역 보위부가 김씨의 어머니를 데리고 수백 km 떨어진 국경 지역까지 간 것이다. 보위지도원들이 김씨의 어머니를 이용해 김씨를 다시 재입북시켜 자신들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다.
 
  이러한 북한 보위부의 탈북민 공작은 최근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탈북민들을 이용한 공작을 해왔다. 그런데 이 시점에 다시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그 수법이 더욱 고차원적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 보위부는 여러 방법으로 중국과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을 협박하며 재입북을 강요했지만, 최근처럼 가족을 전면에 내세운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상황이 변하면서 가족을 통한 협박까지 행하게 된 것이다. 특히 북한 보위부가 탈북자를 협박 또는 회유할 경우 보위지도원들이 직접 남한에 있는 탈북민에게 전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 과거에는 어떤 형태로 탈북민들을 협박·회유했는지 살펴보자.
 
  먼저 과거 북한 국가보위성의 표적은 한국에 사는 탈북민 북한 인권 활동가 또는 북한 정권과 김정은을 비방하면서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이들이었다. 북한은 이들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공작을 벌였다. 북한의 공식 홈페이지에 갖은 악선전이 담긴 영상물을 공개해 파렴치한 인간으로 만들거나 이들에게 직접 전화로 협박하거나 간첩들을 이용해 위협성 우편물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방법이 먹히지 않자 북한 인권 활동가들을 살해할 목적으로 탈북민으로 가장한 간첩들을 보내기도 했다.
 
  실제 북한은 한 탈북민 북한인권단체 대표를 암살할 목적으로 탈북민으로 위장한 간첩을 내려보냈지만, 국가정보원의 심문 과정에서 적발됐다. 해당 간첩은 과거 해당 북한인권단체 대표가 북한에 있을 당시 연인이었던 여성이었다.
 
 
  행복한 모습 담긴 가족 영상 보내 협박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사진=김성민 대표
  또 다른 사례는 북한에 남아 있는 북한 인권 활동가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 담긴 영상을 개인 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이 활동가는 탈북 당시 부인과 자식을 북한에 남겨두고 떠났다. 해당 메일에는 영상과 ‘가족을 살리고 싶으면 쥐 죽은 듯 조용히 살라’는 내용의 협박도 함께 들어 있었다.
 
  한 탈북민은 “현재 한국에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사는 북한인권단체 대표가 과거 연인이었던 여성이 자신을 죽이러 올 거라는 상상을 했겠느냐”면서 “북한이 가족을 인질로 협박을 해오면 어쩔 수 없이 이들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철(가명)씨는 한국에 정착하고 나서 북한 국경 경비대 장교들을 여럿 매수했다. 김씨는 매수한 장교들에게 북한 내부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여러 차례 다양한 영상을 찍어 전 세계에 공개했다. 이를 눈치챈 북한 국가보위성은 김씨의 가족을 다른 곳으로 추방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김씨를 협박했다. 이로 인해 김씨는 끝내 하던 일을 중단하고 현재 한국을 떠나 해외로 이주해 살고 있다.
 
  북한 보위부는 이뿐만 아니라 탈북민 북한인권단체 대표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가족을 거론하며 협박을 한 경우도 있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나에게도 여러 차례 북한 보위부에서 전화가 왔었다”며 “나 같은 경우 부모님들은 돌아가셨지만, 누님들이 아직 북한에 남아 있다. 이들은 이를 이용해 나를 협박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뿐만 아니라 익명을 요구한 여러 탈북단체 대표도 북한으로부터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한 탈북민 단체장은 “그런데 놀랍게도 보위부가 탈북민 단체장 대상으로 벌인 이 같은 공작이 먹혔다”면서 “실제 이런 협박을 받은 몇몇 이는 당시 활동을 잠시 중단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北, 탈북민 정보와 돈 가져오면 용서해줄 것이라 회유
 
남한에 정착했던 탈북민들이 북한 보위부의 협박과 회유에 다시 북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북한 보위부는 이 같은 방법이 통하자 북한 인권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탈북민 개인들에게도 비슷한 공작을 진행했다. 북한 보위부는 재입북 탈북민들에게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을 통해 돈과 다른 탈북민들의 정보를 빼내는 등의 공작을 펼쳤다.
 
  실제 수년간 탈북민의 인적 사항을 북한 보위부에 넘기고, 재입북을 시도한 탈북민이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한모씨는 2013년부터 북한 보위부 소속 보위지도원에게 “가족이 무사하려면 돈과 탈북민에 대한 정보를 넘기라”는 협박을 받았다.
 
  한씨는 그 뒤로 수차례 탈북민 정보를 넘겼다. 이후 북한 보위지도원으로부터 돈을 가지고 다시 재입북하라는 지시를 받은 한씨는 8000만원을 마련해 중국으로 갔다. 한씨는 3000만원은 자신이 북한에서 생계를 꾸려나갈 수단으로 사용하고 5000만원만 보위부에 바치기로 했다. 하지만 보위지도원은 8000만원 모두를 요구했다. 그러자 한씨는 마음을 바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씨는 이 사건으로 2020년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한씨의 사회적 지위, 지식 정도, 나이를 고려하면, 한씨는 자신이 제공한 정보들이 북한이탈주민과 가족들을 상대로 한 재입북 회유 및 협박, 테러, 대남선전, 북한 공작원의 대남침투에 이용될 것을 잘 알고 있었다”면서 “한씨의 행위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 즉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한씨의 탈출 범행이 미수에 그친 점, 한씨에게 범죄 전력이 없는 점, 가족을 빌미로 한 회유에 어쩔 수 없이 범행에 이르게 된 점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런 사례는 한씨뿐만이 아니다. 취재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로부터 이 같은 협박성 전화를 받았다고 하는 이들은 다수였다. 물론 대개는 북한 보위부의 요구를 무시했다고 한다.
 
  북한 보위부가 표적으로 삼는 이들을 살펴보면 가족 대부분을 북한에 남겨두고 홀로 정착한, 한국에 연고(緣故)가 없는 탈북민들이다.
 
 
  “文 정권 탈북민 휴민트 말살해… 北 보위부 확인 전화까지 해”
 
  김성민 대표는 “탈북민들 입장에서 보면 보위부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부모형제를 버리고 한국에서 혼자 잘살고 있다는 죄책감을 가진 이들에게 부모를 인질로 협박한다면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또 “만약 보위부를 돕는 탈북민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라며 “보위부는 가족이라는 족쇄로 탈북민을 옥죄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이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탈북민을 믿지 못하게 만들어 서로 의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끝내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북한으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잠재적 탈북민을 막기 위한 북한 보위부의 큰 그림”이라고 덧붙였다.
 
  국가보위성은 북한 내부 정보를 입수해 국내외 정보기관들에 넘기는 이들에게도 다양한 방법으로 협박해 활동을 못 하도록 한 사실도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도와 탈북민 휴민트의 활동을 방해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부 탈북민은 북한 내부의 협력자를 통해 북한 내부 정보를 빼내 국정원과 해외 정보기관에 넘기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활동도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입장에서 이들은 눈엣가시다. 이들은 북한 내부 협력자에게서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외화벌이로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사람들과 접촉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북한 보위부는 이를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공작을 해오고 있지만, 완전히 없애진 못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제일 먼저 국정원에서 탈북민 정보원들을 차단했다. 실제 정보 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탈북민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활동을 모두 중단했다.
 
  정보 활동을 하는 한 탈북민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지령을 받아 탈북민 휴민트를 말살했다”면서 “문 정부는 이들이 북한 정보를 가져와도 쓸모없게 만들어 더는 정보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일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탈북민 휴민트들의 활동을 차단하고 북한에서 정보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전화해 실제 국정원과의 정보 거래 여부를 확인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北 보위성 김정은 집권 이후 ‘제로 탈북자’ 목표
 
  북한 보위부는 2000년 중반 대량 탈북을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김정은이 집권하고 나서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 위한 공작이 시작됐다.
 
  북한 국가보위성은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민이 더는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즉 제로(Zero) 탈북이 목표였다. 과거 탈북민 문제 관련해서는 평양에 있는 보위성에서 모두 관장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 국경 연선(沿線·접경지대) 보위부 반탐(反探) 부서는 물론 각 지역의 시·군 보위부 반탐과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주민들의 탈북을 막아내라는 지시가 전달됐다.
 
  실제 2012년 말쯤 국가보위성은 국경 지역 보위국에 새로운 간첩을 침투시킬 방법을 모색해 중국과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세우라는 임무를 하달했다고 한다. 이후 국가보위성은 분기별, 연간 사업 총화에서 간첩 침투 사업 실적을 보고하라고 독촉했다. 중앙 기관의 독촉에 지방 보위국들은 난감한 표정들이었다고 한다.
 

  북한 보위부에서 근무하다 2017년 가족과 함께 탈북한 A씨는 “당시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면서 “어떤 보위원들은 탈북했다 붙잡혀 나온 사람들에게 간첩 교육을 해 다시 중국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 국경 지역의 대부분의 보위부에서는 여성들을 간첩으로 만들어 중국으로 다시 들여보냈다고 한다. 이유는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중국에서 사는 탈북민의 90%가 여성인 조건을 이용한 것이다. 이들이 중국인들에게 시집가면 중국 사회에 발붙이기 유리하다고 보고 여성들을 정보원으로 이용했다.
 
  A씨는 여성 선발 과정에 대해 “중국으로 몰래 건너갔다가 잡혀온 여성들의 신상정보를 살펴보고 누군가에 의해 팔려갔거나 당과 조직에 충실할 수 있는 가정환경이나 토대를 가졌거나 조금만 사상교육을 하면 정보원으로 활동할 수 있겠다고 판단되는 여성을 선발한다”고 말했다.
 
 
  간첩 여성 생명력 다하면 ‘정신병원’으로 보내
 
  A씨에 따르면 이렇게 선발된 여성들은 북한 보위부의 특별관리 대상이 된다. 이들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도내 휴양소나 초대소에 들어가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이들은 그곳에서 사람들의 동향과 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대화법, 상부와의 연계 방법, 중국 내 탈북민의 한국행 시도 움직임의 감시·관리·보고체계 이론 학습과 지역별 중국어 교육 등을 받아 통과 시험을 치렀다.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여성들은 보위부 정보원으로 임무를 받아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들의 중국으로 가는 방법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인신매매당해 중국으로 넘어가 중국 남성과 결혼한다.
 
  이렇게 결혼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보위부 정보원으로 활동하며 중국 내 탈북민들을 감시하고 관리한다. 이들은 중국에 나와 있는 보위부와 협력해 탈북민들을 유인·납치해 북한으로 데려간다.
 
  중국에서 보위부 정보원으로 일하면서 6개월간 40명의 탈북민을 북한으로 강제로 보낸 여성이 있었다. 해당 여성은 김명신(가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보위부 정보원이었다. 김씨는 단기간 내에 최고의 실적을 올려 북한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씨는 탈북민으로 위장해 여러 모바일 메신저나 안면을 튼 탈북민들을 통해 인맥을 쌓아가면서 해당 지역 탈북민들의 인적 사항과 동향을 보위부에 보고하는 일을 했다”면서 “특히 한국행을 시도하거나 한국에 있는 이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탈북민들을 밀고했고, 보위부 지시에 따라 여성들을 유인해 보위부가 해당 여성을 납치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했다.
 
  이어 “김씨는 한 지역에서 임무를 마치게 되면 몰래 야반도주해 다른 지역으로 은신처를 옮겨 다른 남성과 결혼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정보원 임무를 수행했다”며 “김씨가 목적지로 정한 곳은 탈북민 여성들이 많은 마을이었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씨는 자신의 청춘을 바쳐 북한 보위부를 위해 정보원으로 일하다 2020년 건강 악화로 보위부의 소환 지시에 따라 북한으로 돌아갔다. 한때 보위부 최고의 정보원으로 활동하다 귀국한 김씨의 최후는 암담했다.
 
  귀국 후 그는 보위부 산하 비밀 장소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러다 그해 말 비밀사업 정보를 너무 많이 안다는 이유로 정신질환자로 몰려 심심산골에 자리 잡은 49호 병원(정신병원)에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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