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愛民정신 과시하려 열병식 때 ‘바닥대열’에 동원됐던 청년들과 기념 촬영했다가 코로나19 확산
⊙ 노동당 내 사진 조작 전담팀 존재
⊙ 황장엽 탈북, 장성택 숙청 등 문제 생기면 ‘1호 사진’ 회수해 수정한 후 돌려줘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할로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 노동당 내 사진 조작 전담팀 존재
⊙ 황장엽 탈북, 장성택 숙청 등 문제 생기면 ‘1호 사진’ 회수해 수정한 후 돌려줘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할로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 2011년 12월 28일 김정일 영결식에서 운구차를 따라가는 김정은(앞)과 장성택(뒤). 장성택 숙청 후 관련 사진들은 수정되었다. 사진=교도통신/뉴시스
2022년 6월, 조선중앙TV는 “유열자(발열자) 수가 뚜렷한 감소치를 보이면서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완쾌자 수가 계속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밝힌 신규 발열자 수는 7만9000여 명. 총 발열자 수는 399만6690여 명이지만, 총 사망자는 71명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변이 비루스의 유전자 배열 1만6000여 건을 분석해 악성 전염병 진단에서 정확성을 보장하는 과학적 담보를 마련”했기에 방역이 가능했다는 선전이다.
주민들에게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2022년 6월 4일, 에드윈 살바도르 WHO 평양사무소장은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출연, “WHO는 북한 보건성의 코로나19 변이와 특성에 대한 질의에 답변했다”며 “북한 당국 요청에 따라 코로나19 진단 및 온라인 교육 자료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도와달라’고 했다는 얘기다. 북한 당국이 북·중 접경지대 무역 일꾼은 물론, 일반 노동자에게도 의약품 모집 지시를 내렸다는 소문도 있다.
코로나19 관련, 북한의 상황이 심각한가?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은 맞다. 통계를 믿을 수 있나? 없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검사 역량이 없다. 진단키트도 절대 부족하고, 관련 의약품을 냉장 냉동 운송 보관할 능력 자체가 없다. 피검사자, 확진자, 완치자 통계를 작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확진자’가 아니라 ‘유열자(有熱者)’라고 표현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기념사진 찍은 김정은의 愛民정신(?)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북한은 전염병 취약 지대다.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하고, 위생 개념이 희박하며, 만성적 영양부족으로 인해 주민들의 면역력도 약화일로(弱化一路)다. 매년 발생하는 각종 전염병에 코로나19까지 겹쳐 환자가 급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19인지 아닌지 병명을 모르니 뭉뚱그려 ‘유열자’라고 하는 것이다.
5월 17일에는 김정은이 정치국 상무회의에서 간부들을 질타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 “국가의 위기대응능력의 미숙성, 국가 지도간부들의 비적극적인 태도와 해이성, 비활동성은 우리 사업의 허점과 공간을 그대로 노출시켰다”고 간부들을 질책했다.
전형적인 김씨 족속의 수법이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고 자기는 살아남는다. 그래서 김정은의 이 발언을 두고 전전긍긍하는 간부들이 많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기에게 불똥이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일과 관련, 김정은이 아랫사람에게 특별히 책임을 전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자기가 직접 지시했던 대규모 ‘1호 사진 촬영행사’ 때문이다. 《로동신문》 2022년 5월 6일에 실린 기사를 보자. “무려 20번이나 자리를 옮겨가시며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는데 여기에도 우리 청년들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그이의 뜨거운 정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는 문장이 있다.
김정은은 1000여 명의 청년들과 20번에 걸쳐 기념사진을 찍었다. 무려 2만 명이 넘는 인원이다. 4월 25일 소위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기념 열병식’ 때 ‘바닥대열’에 동원됐던 청년들이라고 한다. 광장 바닥에 서서, 꽃이나 글자 등으로 카드 섹션을 한 사람들이다. 경기장 행사 때 ‘배경대’ 동원자와 마찬가지로, 카드 섹션에 필요한 도구는 자기 부담이다. 실컷 부려먹고, 나 몰라라 해오던 사람들이다. 바닥대열이나 배경대가 김씨 족속과 사진을 찍은 건 사상 처음이다. 북한 당국이 김정은에게도 ‘애민(愛民)정신’이 있다는 걸 선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歸鄕했던 청년들 소환해 사진 찍어
문제는, 사진 찍기 행사가 급조되었고, 그래서 여러 가지 무리수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열병식에 동원된 청년 중엔 주로 대학생이 많았는데, 이들은 행사 후 전국 각지의 고향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김정은이 ‘내일 청년들과 사진을 찍겠다.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데려오라’고 4월 30일 느닷없이 당 간부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북한이 어떤 곳인가? 학생들을 데려오기 위해 새벽 2시부터 대형버스 수십 대가 동원됐고 병원에 입원했던 학생들까지 소환했다. 모두 《로동신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김정은은 ‘바닥대열’에 앞서 군 수뇌부와 장병, 방송 종사자 등과도 기념사진을 박았다. 이번 단체 사진 촬영은, 찍는 데만 나흘이 걸린 대규모 조직행사였다.
그런데 이 행사 직후에 코로나19가 갑자기 북한 전역에 널리 퍼졌다면? ‘발열자’가 늘어나면서 소문도 퍼졌다. 그래서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희생양이 필요할 터이다. 희생양의 직급과 규모는 코로나19의 확산 속도를 보며 김정은이 정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그래서 김정은의 ‘분노 표출’을 피바람 전야(前夜)의 ‘밑밥 깔기’로 보고 있다.
다리 잘린 노르웨이 정치인
말이 난 김에 이야기하자면, 김씨 족속과 찍은 이른바 ‘1호 사진’ 중에는 온전한 사진이 없다. ‘사후(事後) 수정’ 때문이다. 사진을 조작하면 없던 사실도 만들 수 있고, 있는 사실도 감출 수 있다고 믿는 곳이 북한이다.
구도 조작은 애교다. 1974년 6월 방북(方北)한 노르웨이 사회인민당 의장은 190cm가 넘는 장신이었다. 김일성도 키가 큰 편이었지만, 똑같이 서면 김일성이 노르웨이 야당 대표의 턱 밑이었다. 《로동신문》은 노르웨이 정치인의 ‘다리를 잘라’ 김일성과 키를 맞췄다. 당사자가 불쾌한 마음으로 귀국한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김씨 족속의 신격화(神格化)를 위해서라면, 더한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곳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진 조작에 관해 전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누군가 숙청당하면, 그 인물이 나온 사진은 다 검열 대상이다. ‘1호 사진’을 찍으면, 사진 고유 일련번호, 발송번호, 수령자의 신상을 별도의 대장(臺帳)에 꼼꼼하게 적는다. 그러고 신성(?)한 봉투에 1호 사진을 넣어 찍은 사람의 직장, 당 위원회를 통해 내려보낸다.
사진 중에 탈북자나 문제적 인물이 나오면, 누구에게 발송했는지 기록을 보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진을 회수한다. 숙청된 사람을 지우고 다시 갖다 주기 위해서다. 처음엔 숙청된 사람의 얼굴을 먹으로 지웠다. 사진 군데군데 먹으로 지운 자리가 ‘너무 표 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다른 사람의 머리를 떠 넣는’ 원시적 아날로그 포토샵을 했다. 머리 크기가 유난히 차이지는 인물이 ‘없어진 자리’에 ‘남의 몸통을 빌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 누군가 숙청되면 사진을 또 일일이 걷어가고, 누군가를 지워서 돌려준다. 걷고, 지우고, 돌려주고, 또 걷어가고의 끝없는 반복이다.
‘사진 조작’ 전문팀
그래서 간부들 집에 주르르 붙어 있는 ‘1호 사진’은 그 자체가 여러 번 수난을 겪었다. 수천 장, 수만 장 사진을 회수하고 수정하는 일은 그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상징 조작에 목숨을 거는 북한에선 정치적 중대사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중앙당에 독립 부서로서 ‘사진 조작’만을 전문으로 하는 팀이 있을 정도겠는가. 정해진 기간 내에 일을 마쳐야 하고 작업량은 어마어마한 데다 전문성(?)까지 갖춰야 하니, 여기는 누구도 못 건드리는 조직이다. 지운 자리에 ‘누구 머리를 넣으라’는 지시는 김씨 족속만 할 수 있으니, 사진 조작팀의 위상은 상상 이상이다.
어디 가서 말은 못 하지만, ‘1호 사진’을 돌려받은 사람은 어디 어디가 조작을 한 건지 다 안다. 몇백 명씩 찍은 단체 사진은 어느 자리에 누가 앉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디가 조작인지는 알지만, 누가 없어졌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인원이 백 단위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다르다. 열 명 단위라면, 누가 누구인지 서로서로 다 아는 사이라고 봐야 한다.
주석단 김일성 족속이 가운데 앉고, 양쪽에 간부 20명이 앉아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하자. 만약 그 가운데 서너 명만 살아 있다면, 그 사진을 매일 봐야 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1호 사진은 집 가장 좋은 곳에 식구나 드나드는 사람 모두가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모셔놓아야’ 한다. 동료 누군가가 과오를 범하면, 누군가 사진을 가지러 온다. 돌려받은 사진엔 동료의 얼굴이 사라지고 없다. 간부들의 마음속에선, ‘다음번엔 없어지는 인물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자란다. 그래도 사진을 매일 볼 수밖에 없다.
황장엽 탈북, 고난의 행군 대량 아사(餓死)의 책임을 지고 사형당한 농업상 서관히, 국가 전복의 혐의로 비참하게 죽은 장성택의 숙청 직후에는 1호 사진도 여러 번 당 중앙에 불려가는 수난을 겪었다. 당 중앙위원회 행정 담당 비서로 일했던 장성택은 김씨 족속과 찍은 사진이 많아 실무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 중앙에 다녀오면 다녀올수록 1호 사진은 걸레짝이 된다. 사진을 보는 간부들의 마음도 걸레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걸레짝 1호 사진은 숙청으로 얼룩진 김씨 족속의 만행을 증명하는 기념물이다. 그 자체가 역사다. 통일 이후에는, 다른 의미에서 박물관 전시품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간부들은 조금만 더 참아주기 바란다.⊙
주민들에게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2022년 6월 4일, 에드윈 살바도르 WHO 평양사무소장은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출연, “WHO는 북한 보건성의 코로나19 변이와 특성에 대한 질의에 답변했다”며 “북한 당국 요청에 따라 코로나19 진단 및 온라인 교육 자료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도와달라’고 했다는 얘기다. 북한 당국이 북·중 접경지대 무역 일꾼은 물론, 일반 노동자에게도 의약품 모집 지시를 내렸다는 소문도 있다.
코로나19 관련, 북한의 상황이 심각한가?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은 맞다. 통계를 믿을 수 있나? 없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검사 역량이 없다. 진단키트도 절대 부족하고, 관련 의약품을 냉장 냉동 운송 보관할 능력 자체가 없다. 피검사자, 확진자, 완치자 통계를 작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확진자’가 아니라 ‘유열자(有熱者)’라고 표현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기념사진 찍은 김정은의 愛民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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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경축 열병식에 동원되었던 청년들과 사진을 찍은 김정은. 그 바람에 코로나19가 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시스 |
5월 17일에는 김정은이 정치국 상무회의에서 간부들을 질타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 “국가의 위기대응능력의 미숙성, 국가 지도간부들의 비적극적인 태도와 해이성, 비활동성은 우리 사업의 허점과 공간을 그대로 노출시켰다”고 간부들을 질책했다.
전형적인 김씨 족속의 수법이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고 자기는 살아남는다. 그래서 김정은의 이 발언을 두고 전전긍긍하는 간부들이 많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기에게 불똥이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일과 관련, 김정은이 아랫사람에게 특별히 책임을 전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자기가 직접 지시했던 대규모 ‘1호 사진 촬영행사’ 때문이다. 《로동신문》 2022년 5월 6일에 실린 기사를 보자. “무려 20번이나 자리를 옮겨가시며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는데 여기에도 우리 청년들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그이의 뜨거운 정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는 문장이 있다.
김정은은 1000여 명의 청년들과 20번에 걸쳐 기념사진을 찍었다. 무려 2만 명이 넘는 인원이다. 4월 25일 소위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기념 열병식’ 때 ‘바닥대열’에 동원됐던 청년들이라고 한다. 광장 바닥에 서서, 꽃이나 글자 등으로 카드 섹션을 한 사람들이다. 경기장 행사 때 ‘배경대’ 동원자와 마찬가지로, 카드 섹션에 필요한 도구는 자기 부담이다. 실컷 부려먹고, 나 몰라라 해오던 사람들이다. 바닥대열이나 배경대가 김씨 족속과 사진을 찍은 건 사상 처음이다. 북한 당국이 김정은에게도 ‘애민(愛民)정신’이 있다는 걸 선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歸鄕했던 청년들 소환해 사진 찍어
문제는, 사진 찍기 행사가 급조되었고, 그래서 여러 가지 무리수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열병식에 동원된 청년 중엔 주로 대학생이 많았는데, 이들은 행사 후 전국 각지의 고향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김정은이 ‘내일 청년들과 사진을 찍겠다.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데려오라’고 4월 30일 느닷없이 당 간부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북한이 어떤 곳인가? 학생들을 데려오기 위해 새벽 2시부터 대형버스 수십 대가 동원됐고 병원에 입원했던 학생들까지 소환했다. 모두 《로동신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김정은은 ‘바닥대열’에 앞서 군 수뇌부와 장병, 방송 종사자 등과도 기념사진을 박았다. 이번 단체 사진 촬영은, 찍는 데만 나흘이 걸린 대규모 조직행사였다.
그런데 이 행사 직후에 코로나19가 갑자기 북한 전역에 널리 퍼졌다면? ‘발열자’가 늘어나면서 소문도 퍼졌다. 그래서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희생양이 필요할 터이다. 희생양의 직급과 규모는 코로나19의 확산 속도를 보며 김정은이 정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그래서 김정은의 ‘분노 표출’을 피바람 전야(前夜)의 ‘밑밥 깔기’로 보고 있다.
다리 잘린 노르웨이 정치인
말이 난 김에 이야기하자면, 김씨 족속과 찍은 이른바 ‘1호 사진’ 중에는 온전한 사진이 없다. ‘사후(事後) 수정’ 때문이다. 사진을 조작하면 없던 사실도 만들 수 있고, 있는 사실도 감출 수 있다고 믿는 곳이 북한이다.
구도 조작은 애교다. 1974년 6월 방북(方北)한 노르웨이 사회인민당 의장은 190cm가 넘는 장신이었다. 김일성도 키가 큰 편이었지만, 똑같이 서면 김일성이 노르웨이 야당 대표의 턱 밑이었다. 《로동신문》은 노르웨이 정치인의 ‘다리를 잘라’ 김일성과 키를 맞췄다. 당사자가 불쾌한 마음으로 귀국한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김씨 족속의 신격화(神格化)를 위해서라면, 더한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곳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진 조작에 관해 전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누군가 숙청당하면, 그 인물이 나온 사진은 다 검열 대상이다. ‘1호 사진’을 찍으면, 사진 고유 일련번호, 발송번호, 수령자의 신상을 별도의 대장(臺帳)에 꼼꼼하게 적는다. 그러고 신성(?)한 봉투에 1호 사진을 넣어 찍은 사람의 직장, 당 위원회를 통해 내려보낸다.
사진 중에 탈북자나 문제적 인물이 나오면, 누구에게 발송했는지 기록을 보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진을 회수한다. 숙청된 사람을 지우고 다시 갖다 주기 위해서다. 처음엔 숙청된 사람의 얼굴을 먹으로 지웠다. 사진 군데군데 먹으로 지운 자리가 ‘너무 표 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다른 사람의 머리를 떠 넣는’ 원시적 아날로그 포토샵을 했다. 머리 크기가 유난히 차이지는 인물이 ‘없어진 자리’에 ‘남의 몸통을 빌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 누군가 숙청되면 사진을 또 일일이 걷어가고, 누군가를 지워서 돌려준다. 걷고, 지우고, 돌려주고, 또 걷어가고의 끝없는 반복이다.
‘사진 조작’ 전문팀
그래서 간부들 집에 주르르 붙어 있는 ‘1호 사진’은 그 자체가 여러 번 수난을 겪었다. 수천 장, 수만 장 사진을 회수하고 수정하는 일은 그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상징 조작에 목숨을 거는 북한에선 정치적 중대사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중앙당에 독립 부서로서 ‘사진 조작’만을 전문으로 하는 팀이 있을 정도겠는가. 정해진 기간 내에 일을 마쳐야 하고 작업량은 어마어마한 데다 전문성(?)까지 갖춰야 하니, 여기는 누구도 못 건드리는 조직이다. 지운 자리에 ‘누구 머리를 넣으라’는 지시는 김씨 족속만 할 수 있으니, 사진 조작팀의 위상은 상상 이상이다.
어디 가서 말은 못 하지만, ‘1호 사진’을 돌려받은 사람은 어디 어디가 조작을 한 건지 다 안다. 몇백 명씩 찍은 단체 사진은 어느 자리에 누가 앉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디가 조작인지는 알지만, 누가 없어졌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인원이 백 단위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다르다. 열 명 단위라면, 누가 누구인지 서로서로 다 아는 사이라고 봐야 한다.
주석단 김일성 족속이 가운데 앉고, 양쪽에 간부 20명이 앉아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하자. 만약 그 가운데 서너 명만 살아 있다면, 그 사진을 매일 봐야 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1호 사진은 집 가장 좋은 곳에 식구나 드나드는 사람 모두가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모셔놓아야’ 한다. 동료 누군가가 과오를 범하면, 누군가 사진을 가지러 온다. 돌려받은 사진엔 동료의 얼굴이 사라지고 없다. 간부들의 마음속에선, ‘다음번엔 없어지는 인물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자란다. 그래도 사진을 매일 볼 수밖에 없다.
황장엽 탈북, 고난의 행군 대량 아사(餓死)의 책임을 지고 사형당한 농업상 서관히, 국가 전복의 혐의로 비참하게 죽은 장성택의 숙청 직후에는 1호 사진도 여러 번 당 중앙에 불려가는 수난을 겪었다. 당 중앙위원회 행정 담당 비서로 일했던 장성택은 김씨 족속과 찍은 사진이 많아 실무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 중앙에 다녀오면 다녀올수록 1호 사진은 걸레짝이 된다. 사진을 보는 간부들의 마음도 걸레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걸레짝 1호 사진은 숙청으로 얼룩진 김씨 족속의 만행을 증명하는 기념물이다. 그 자체가 역사다. 통일 이후에는, 다른 의미에서 박물관 전시품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간부들은 조금만 더 참아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