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공기업, 극비리에 김정은 숙원사업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지원 움직임은 왜?
⊙ ‘원산댁’으로 불린 김정은 생모 고용희
⊙ 김정은,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건설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 싶어해
⊙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공사, 자금·자재·에너지 부족으로 사실상 중단
⊙ “가스발전소로 전력 충당하면 원산·갈마 사업 빨리 끝낼 수 있다”(한국가스공사)
⊙ “(가스발전소) 원하면, 1년이면 지어줄 수도”
⊙ 문재인 대선 공약 PNG(가스관 연결) 사업도 언급
⊙ 김정은 지시로 움직이는 이호남, 나름 권위 있는 인물
⊙ ‘원산댁’으로 불린 김정은 생모 고용희
⊙ 김정은,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건설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 싶어해
⊙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공사, 자금·자재·에너지 부족으로 사실상 중단
⊙ “가스발전소로 전력 충당하면 원산·갈마 사업 빨리 끝낼 수 있다”(한국가스공사)
⊙ “(가스발전소) 원하면, 1년이면 지어줄 수도”
⊙ 문재인 대선 공약 PNG(가스관 연결) 사업도 언급
⊙ 김정은 지시로 움직이는 이호남, 나름 권위 있는 인물
김정은 모친 고용희(高容姬)는 재일동포다. 1952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제주에서 태어난 아버지 고경택은 조총련 간부 출신이다. 북한에서 재일동포들은 ‘째포’ ‘반쪽발이’라고 불리며 무시와 괄시의 대상이다. 북한은 재일동포들을 ‘일본의 스파이’로 취급하며 최하층인 ‘적대계층’으로 분류·감시한다.
요덕수용소에서 10년간 감금됐던 북송 재일동포 3세 강철환 전 《조선일보》 기자는 북송된 재일동포 중 20%가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다고 밝혔다. 소련 배로 재일동포들을 실어 나르던 북한은 1971년 만경봉호를 제작해 북송을 전담시켰다. 만경봉은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부근의 낮은 언덕(45m) 이름이다. 여기에 오르면 대동강과 주변의 만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고용희도 10세 때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에 왔다. 정확히 내린 곳은 원산이다. 현재 고용희가 타고 온 만경봉호는 폐기처분이 됐다. 북한은 만경봉호가 낡아서 더 이상 운항할 수 없게 되자 1992년 만경봉92호를 제작했다. 1992년 4월 김일성 80회 생일을 맞아 조총련계 상공인들이 40억 엔을 모아 제작비를 냈다. 9700t급으로 최대속도는 23노트, 탑승인원은 350명이다. 만경봉92호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북한 응원단을 싣고 다대포항까지 내려왔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아 북한 예술단을 태우고 강원도 묵호항에 오기도 했다.
고용희는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시절 김정일의 눈에 들어 결혼했다. 그리고 정철과 정은, 여정을 낳았다. 2004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암 치료를 받다 사망했다.
원산에 대한 감정 특별한 김정은
김정은 입장에서 ‘원산’은 그리운 어머니의 고향일 것이다. 실제 고용희는 한때 북한 권력 내부에서 ‘원산댁’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김정은은 원산에 대한 감정이 특별해 보인다. 김정은이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 개발 총계획’의 핵심인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준공에 ‘올인’하는 것도 이런 이유란 분석이 많다.
북한 국가설계지도국의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 개발 총계획’에 따르면, 북한은 2025년까지 78억 달러(약 8조5000억원 규모)를 투입해 원산·금강산 지역을 국제관광지구로 조성한다는 개발 청사진을 짜놨다. 2단계로 나눠 원산·금강산 관광지구를 역사·경제·문화 교류를 위한 사계절 국제관광지구로 개발하는 방안이다.
2014년 6월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48호를 통해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 개발을 선포했다. 2015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대외경제 관계를 다각적으로 발전시키며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를 비롯한 경제개발구 개발사업을 적극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2018년 신년사에서는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를 강조했다.
김정은은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개발 총계획’, 특히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에 성공해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기 원한다.
“2019년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까지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를 완공하라”(2018년 신년사)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다.
그러나 김정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8년 8월, 김정은은 준공 시점을 2019년 노동당 창건기념일(10월 10일)로 6개월 미뤘다. 공사는 지연됐고, 김정은은 2019년 4월 다시 완공 시점을 2020년 태양절로 6개월 더 미뤘다. 여전히 완공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공사는 자금·자재·에너지 부족 때문에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김정은의 성격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감사를 표하는 등 근로자들을 다독이고 있다.
2020년 4월 27일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정은이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건설에 참여한 근로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당시는 김정은의 신변 이상설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김정은이 얼마나 이 사업에 목을 매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정은표 건설 프로젝트에 관심 많은 文 정부 공기업
문재인 정부의 공기업은 “원산을 싱가포르처럼 만들겠다”는 김정은표 건설 프로젝트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가스공사)의 경우 김정은의 최대 관심사인 이 사업을 빠르게 완료할 수 있는 방안을 북한 측과 비밀리에 접촉·협의한 것으로 《월간조선》 취재 결과 드러났다.
2019년 11월 29일 가스공사 차장이었던 A씨는 12월 1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출장을 갔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표면상 명목은 2019년 북·러 접경지역 경제현황 조사였다. 이철규 의원실이 가스공사로부터 입수한 ‘2019년 북·러 접경지역 경제현황 조사를 위한 출장’ 자료를 보면 ▲북·러 간 교역 및 산업연계에 따른 에너지산업 협력방안 모색 ▲접경지역 산업 및 무역 현황 파악이 출장 목적이었다. 그러나 실제 목적은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의 신속 완공을 위한 가스발전소 건립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A씨는 개성공단에 파견근무를 했고, 대학원에서 ‘북한’을 전공한 공사 내 ‘북한통’ 중 한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8년 중순쯤 한국광물자원공사(광물공사) 관계자를 통해 ‘김 사장’이라는 유명한 대북사업가를 소개받았다.
채희봉 “알아서 하시라” 승인
김 사장은 A씨에게 2019년 8~9월에 2~3회 연락해 “북한이 가스에 관심이 많다”며 북한 측 관계자와의 만남을 제안했다. A씨는 처음 한두 번은 거절했다. 제안이 계속되자, 10월경 남북협력 TF팀 사내 업무보고 때 이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은 “알아서 하시라”며 승인했다.
채 사장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출신으로 2019년 7월 가스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채 사장은 검찰의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 대상 중 1명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도 2018년 4월 초 경제성 평가 착수 전부터 산업부가 보고서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방안을 담게 된 건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 지시에서 출발한 사실이 드러난 상황이다.
채 사장의 지시에 A씨는 2019년 11월 25일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수리서’를 발급받고 북한 고위 관료를 만나기 위해 11월 29일 블라디보스토크로 출장을 갔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우리 국민의 북한 주민 접촉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기로 했다. 지금까진 해외여행 도중 북측 인사와의 우발적 만남이나 남북 이산가족 간 연락에 대해 신고를 의무화했으나, 이 규정을 완화하기로 한 것이다. 또 접촉 목적이 ‘교류·협력’일 경우엔 정부가 이를 불허할 수 없게 된다.
A씨가 만난 北 인물은 이호남
블라디보스토크 롯데호텔에서 A씨와 김 사장 그리고 북한 대표로 온 이호남이 만났다.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였던 이호남은 2018년 개봉한 영화 〈공작〉에서 배우 이성민이 연기한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처장(리명운)의 실제 모델이다. 1953년생인 이호남은 김일성대를 졸업한 후 오랫동안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관여한 인물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밀사로 파견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베이징에서 만나기도 했다.
대북 접촉을 주선한 대북사업가 권오홍씨의 비망록에 따르면, 안희정씨는 베이징에서 이호남을 만나 “특사 교환과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의향이 있다. 그리고 공식라인을 살려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호남씨는 안 전 지사에게 “노 대통령의 진짜 의중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 아래 남북관계 현안을 의제화해 토의해보자”고 했다.
이 비밀 접촉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다. 안 전 충남지사의 대북 접촉 과정은 절차를 무시함은 물론, 과정이 의혹투성이라 당시 논란이 많았다.
이호남은 1997년 북풍사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대북공작원으로 알려진 ‘흑금성’ 문건에도 등장한다. 흑금성은 안기부가 광고회사 ㈜아자커뮤니케이션에 전무로 위장 취업시킨 박채서씨의 암호명이다. 흑금성은 이호남을 통해 대북사업과 관련한 공작을 시도했다. 이호남은 2005년 가수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씨가 함께 출연한 삼성전자 애니콜 광고 제작에도 관여했다.
이런 이호남이 A씨에게 가장 처음 한 이야기는 “우리(북한)가 러시아 가스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데, 이것을 가스공사가 사줄 수 있느냐”였다. A씨는 “황당한 제안이라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원하면 가스발전소 1년이면 지어줄 수도”
A씨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한은 전력 사정이 좋지 않다던데, 원산·갈마지구 개발과 관련해 북한은 어떤 에너지를 사용하느냐”고 물었다. 이호남이 “석탄 또는 수력으로 전력을 수급하는데, 석탄 ‘질’이 나빠 효율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말했다. A씨는 “(대북사업이 재개되면 가스공사는) 가스발전소의 경우 1년이면 지어줄 수 있을 정도”라고 제안했다. 또 A씨는 ‘발전용 선박’을 바다 위에 띄워, 여기서 만들어진 전력을 공급하는 안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호남이 쿠바 10페소 지폐에 그려진 한국 발전기를 거론하면서 “중고 설비가 없느냐”고 물어본 것은 발전용 선박 이야기를 한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쿠바에 수출한 발전기는 만성적 정전을 없애면서 지폐 모델로 사용될 정도로 유명하다.
A씨는 이철규 의원실에 “사기꾼(김 사장과 이호남)에게 당한 느낌이다. 그들은 ‘돈’을 요구했다”며 일종의 해프닝이었다고 당시 만남을 평가절하했다. “알고 보니 이호남이 퇴물이 돼 해외를 전전하고 있었다”며 그가 전혀 영향력이 없는 인물이란 점도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은 원래 접촉할 때 뒷돈을 요구한다. 개성공단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A씨가 이를 모를 가능성은 적다. 그리고 이호남은 퇴물이 아니다. 대북사업가 김 사장은 “이호남은 북한의 대남 정책을 자문하는 핵심 인사”라고 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도 “이호남 정도면 나름 권위가 상당히 있다”며 “이호남이 그냥 가스공사와 만났겠느냐. 당연히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핵심 인물이라는 것이다.
A씨가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바로 다음 날인 12월 2일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김연철 전 장관은 ‘강원도 원산·갈마지구 개발에 한국이 참여하는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의사를 북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정부가 최근 원산·갈마 공동개발 의사를 북한에 전달했느냐’는 물음에 “동해관광특구를 공동으로 조성하자는 것은 9·19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내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가스공사의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지원 움직임을 통일부도 미리 알고 있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다만 통일부는 2021년 2월 9일 이 문제가 《월간조선》 인터넷판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통일부 차원에서 북한에 가스발전소 건설 추진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PNG 사업에 대해서도 논의하려 해
통일부의 반박이 있었음에도 정부·청와대 차원의 관련 지시가 있었는지는 가스공사의 발전소 제안 의혹의 핵심이다. 청와대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첫째, A씨는 출장 갈 당시 차장이었다. 상식선에서 “발전소를 지어줄 수 있다”는 식의 제안은 차장 선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현직 공무원 다수는 “공무원들은 윗선(청와대 또는 가스공사 사장) 지시 없이 알아서 그런 제안을 하는 부류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철규 의원이 “A씨가 북한 이호남을 만날 당시 직위가 차장이었다”며 “차장이 혼자 이런 일을 어떻게 기획하고 제안할 수 있겠느냐”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 앞서 언급했듯 가스공사 채희봉 사장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출신이다. 청와대와의 교감이 가능하단 이야기다. 채 사장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시절인 2018년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원전(原電) 담당 고위 공무원에게 “월성 1호기를 당장 가동 중단시킬 수 있도록 원전 관련 계수(係數·수치)를 뜯어 맞춰라. 한국수력원자력을 압박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현 정부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해온 인물이다.
A씨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채 사장이 받아들였을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가스공사 내부에서는 채 사장이 ‘북한통’인 A씨에게 특명을 내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셋째, A씨는 이호남에게 남한-북한-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연결(PNG) 사업에 대해 문의하기도 했다. 이호남이 “자신은 권한이 없다”고 하여 이 사안을 대화 테이블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PNG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3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 협의를 제안했는데, 그 핵심 사업 중 하나가 러시아 PNG 사업이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2017년 11월 가스공사를 통해 제출받은 〈러시아 PNG 도입노선별 경제성 검토〉 자료를 보면 해당 사업을 시행할 경우 ‘국경통과료’ 및 ‘배관이용료’ ‘북한 지급 인건비’ ‘세금’ 명목으로 최대 24조원이 넘는 비용이 북한에 지급될 것으로 분석됐다. 윗선의 개입이 없었다면 24조원이 북한에 지급될 수도 있는 엄청난 사업을 공무원 한 명이 논의하려 했다는 것이 된다.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도 문 대통령이 신경 쓰는 사업일 가능성이 크다. 9·19 남북합의에 ‘원산・갈마’를 포함한 동해관광특구를 공동개발하자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A씨가 이호남과 논의하려고 했거나 한 것은, 모두 문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는 사업이었던 셈이다.
하필 남·북, 미·북 관계 최악일 시기에…
넷째, 가스공사가 ‘가스발전소’ 건설을 제안한 시기가 남·북, 미·북 관계가 급속히 경색될 때였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뒤 남북 및 미북 관계가 틀어졌다. 이후 북한은 대놓고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삶은 소대가리’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 금강산의 우리 쪽 시설을 철거하기도 했다.
2019년 5월 4일 오전 9시, 북한은 김정은 참관하에 신형 전술유도 미사일과 장거리 방사포 발사 실험을 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 것은 2017년 11월 29일(화성-15형 발사) 이후 1년 6개월 만이었다. 우리 합동참모본부(합참)는 발사 직후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발표했다가 40분 후 ‘단거리 발사체’라고 말을 바꿨다. 북한이 스스로 미사일 발사 장면을 공개한 5월 5일에도 ‘미사일’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북한의 도발 수위를 일부러 낮춰 평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7월 25일에는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미사일 두 발을 쐈다. 엿새 뒤인 7월 31일에는 강원도 원산·갈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합참은 “지난 (7월) 25일 미사일(KN-23)과 유사한 탄도미사일”이라며 “이번 미사일 발사는 무력시위보다는 시험 발사로 추정된다”고 했다.
같은 해 8월 16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조선 당국자’라고는 했지만,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겨냥, “아랫사람이 써준 것을 졸졸 내리읽는 남조선 당국자가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고 비난했다.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북쪽에서 사냥총 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에”라는 욕설을 퍼부었다. 앞서 권정근 외무성 국장은 “똥을 꽃 보자기에”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럽게 짖어댄다”고도 했다.
북한은 11월 11일, 금강산 남측 시설을 철거하겠다는 최후통첩을 우리 쪽에 보냈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지구를 독자적으로 개발할 것이며 남측이 참여할 자리는 없다고 했다. 11월 15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조중통)은 ‘금강산은 북과 남의 공유물이 아니다’ 제목의 논평에서 “우리는 11월 11일 남조선 당국이 부질없는 주장을 계속 고집한다면 시설 철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일방적으로 철거를 단행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했다. 이어 “남조선 당국은 오늘까지도 묵묵부답하고 있다”며 “무슨 할 말이 있고 무슨 체면이 있으며 인제 와서 두 손을 비벼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금강산을 민족 앞에, 후대들 앞에 우리가 주인이 되어 우리가 책임지고 우리 식으로 세계적인 문화 관광지로 보란 듯이 훌륭하게 개발할 것”이라며 “여기에 남조선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했다.
조중통은 또 “미국이 무서워 10여 년 동안이나 금강산 관광 시설들을 방치해두고 나앉아 있던 남조선 당국이 철거 불똥이 발등에 떨어져서야 화들짝 놀라 금강산의 구석 한모퉁이에라도 다시 발을 붙이게 해달라, 관광 재개에도 끼워달라고 청탁하고 있으니 가련하다 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철면피하다 해야 하겠는가”라고 했다. 이어 “시간표가 정해진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통지문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허송세월할 수 없다”며 “낡은 것이 자리를 내야 새것이 들어앉을 수 있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시기에 출장을 떠나 사실상 북한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는 듯한 제안을 한다는 것은 공기업의 일개 차장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란 지적이다.
광물공사도?
다섯째, 실제 대북 지원에 나선 건 가스공사뿐만이 아니다. 광물공사도 북한 광산 개발을 위해 북한 관계자들을 중국에서 접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광물공사 직원들은 2018년 10월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단둥(丹東) 대표부를 만났다. 2010년 5·24 대북제재 조치 이후 사업이 중단됐던 황해도 정촌 흑연광산의 정상화를 위해서였다. 광물공사는 북한 주민을 접촉한다고 사전에 신고했고, 통일부의 승인도 받았다.
광물공사 측은 북한에 대한 제재가 완화되면 정촌 흑연광산의 정상화를 위한 사전준비 차원에서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언론 등을 통해 광물공사의 경영난을 접했다며 사업 진행의 지속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정촌 흑연광산 정상화를 위한 세부계획서를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고, 광물공사 측은 이에 응했다.
당시 광물공사는 과도한 부채로 통폐합까지 거론되던 상황이었다. 광물공사 관계자는 “북측에서 먼저 접촉을 타진해와 만났다”며 “이후 사업이 실제로 진척되지 않아 접촉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A씨에게 김 사장을 소개해준 게 광물자원공사 관계자다. A씨가 이호남을 만나는 시점에 광물자원공사 관계자도 같은 장소(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다고 한다. ‘황해도 정촌 흑연광산의 정상화’ 문제와는 별개로 이호남을 만났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광물자원공사 관계자가 이호남을 만났다는 증거는 없다. 광물자원공사 측도 “그런 일 없다”고 한 상태다.
文 정부의 공기업이 김정은 숙원사업에 목매는 이유
김정은은 최근 당 대회에서 36회나 핵을 강조하면서 전술핵과 핵 추진 잠수함 개발을 공언했다. 2017년 이후 남북, 미북 정상회담 과정에서도 줄기차게 핵 고도화를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야당 동의 없이 임명된 28번째 장관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했다. 이에 미국 국무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확산 의지가 국제 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했다. 정 장관 발언에 대한 공개 반박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협상팀이던 랜들 슈라이버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는 “김정은이 비핵화 약속을 준수하겠다는 증거를 목격하지 못했다”며 최대한의 대북 압박 정책을 제안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특별보좌관과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특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증거 없이 김정은이 비핵화에 진지하다는 주장을 바이든 행정부에 해선 안 된다”고 했다. 북한과 핵 협상을 했던 전직 관리들까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부정한 것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찌감치 트럼프·김정은의 회담을 “무의미한 TV용 쇼”라고 비판했다. 전반적인 대북 정책 재검토에 들어갔고, 대북 제재를 강조하는 인사들로 팀을 꾸렸다. 4년 만에 북한인권특사도 지정할 것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 외교 사령탑의 북한에 대한 인식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공기업이 왜 그토록 김정은의 숙원사업과 북한을 지원해주려 했는지 답이 나온다.⊙
요덕수용소에서 10년간 감금됐던 북송 재일동포 3세 강철환 전 《조선일보》 기자는 북송된 재일동포 중 20%가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다고 밝혔다. 소련 배로 재일동포들을 실어 나르던 북한은 1971년 만경봉호를 제작해 북송을 전담시켰다. 만경봉은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부근의 낮은 언덕(45m) 이름이다. 여기에 오르면 대동강과 주변의 만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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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스공사 직원이 2019년 러시아에서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를 지낸 이호남을 비밀리에 만나 북한 에너지 개발과 관련해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호남은 ‘흑금성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공작〉에서 배우 이성민이 연기한 리명운의 실존모델이다. |
고용희는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시절 김정일의 눈에 들어 결혼했다. 그리고 정철과 정은, 여정을 낳았다. 2004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암 치료를 받다 사망했다.
원산에 대한 감정 특별한 김정은
김정은 입장에서 ‘원산’은 그리운 어머니의 고향일 것이다. 실제 고용희는 한때 북한 권력 내부에서 ‘원산댁’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김정은은 원산에 대한 감정이 특별해 보인다. 김정은이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 개발 총계획’의 핵심인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준공에 ‘올인’하는 것도 이런 이유란 분석이 많다.
북한 국가설계지도국의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 개발 총계획’에 따르면, 북한은 2025년까지 78억 달러(약 8조5000억원 규모)를 투입해 원산·금강산 지역을 국제관광지구로 조성한다는 개발 청사진을 짜놨다. 2단계로 나눠 원산·금강산 관광지구를 역사·경제·문화 교류를 위한 사계절 국제관광지구로 개발하는 방안이다.
2014년 6월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48호를 통해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 개발을 선포했다. 2015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대외경제 관계를 다각적으로 발전시키며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를 비롯한 경제개발구 개발사업을 적극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2018년 신년사에서는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를 강조했다.
김정은은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개발 총계획’, 특히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에 성공해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기 원한다.
“2019년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까지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를 완공하라”(2018년 신년사)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다.
그러나 김정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8년 8월, 김정은은 준공 시점을 2019년 노동당 창건기념일(10월 10일)로 6개월 미뤘다. 공사는 지연됐고, 김정은은 2019년 4월 다시 완공 시점을 2020년 태양절로 6개월 더 미뤘다. 여전히 완공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공사는 자금·자재·에너지 부족 때문에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김정은의 성격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감사를 표하는 등 근로자들을 다독이고 있다.
2020년 4월 27일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정은이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건설에 참여한 근로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당시는 김정은의 신변 이상설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김정은이 얼마나 이 사업에 목을 매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정은표 건설 프로젝트에 관심 많은 文 정부 공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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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가스공사)의 경우 김정은의 최대 관심사인 이 사업을 빠르게 완료할 수 있는 방안을 북한 측과 비밀리에 접촉·협의한 것으로 《월간조선》 취재 결과 드러났다.
2019년 11월 29일 가스공사 차장이었던 A씨는 12월 1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출장을 갔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표면상 명목은 2019년 북·러 접경지역 경제현황 조사였다. 이철규 의원실이 가스공사로부터 입수한 ‘2019년 북·러 접경지역 경제현황 조사를 위한 출장’ 자료를 보면 ▲북·러 간 교역 및 산업연계에 따른 에너지산업 협력방안 모색 ▲접경지역 산업 및 무역 현황 파악이 출장 목적이었다. 그러나 실제 목적은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의 신속 완공을 위한 가스발전소 건립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A씨는 개성공단에 파견근무를 했고, 대학원에서 ‘북한’을 전공한 공사 내 ‘북한통’ 중 한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8년 중순쯤 한국광물자원공사(광물공사) 관계자를 통해 ‘김 사장’이라는 유명한 대북사업가를 소개받았다.
채희봉 “알아서 하시라”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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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봉 가스공사 사장. 채희봉 사장은 “알아서 하시라”며 북한 이호남 접촉을 승인했다. |
채 사장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출신으로 2019년 7월 가스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채 사장은 검찰의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 대상 중 1명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도 2018년 4월 초 경제성 평가 착수 전부터 산업부가 보고서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방안을 담게 된 건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 지시에서 출발한 사실이 드러난 상황이다.
채 사장의 지시에 A씨는 2019년 11월 25일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수리서’를 발급받고 북한 고위 관료를 만나기 위해 11월 29일 블라디보스토크로 출장을 갔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우리 국민의 북한 주민 접촉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기로 했다. 지금까진 해외여행 도중 북측 인사와의 우발적 만남이나 남북 이산가족 간 연락에 대해 신고를 의무화했으나, 이 규정을 완화하기로 한 것이다. 또 접촉 목적이 ‘교류·협력’일 경우엔 정부가 이를 불허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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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스공사 A씨와 대북사업가 김사장과 북한 대표로 온 이호남은 블라디보스토크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
대북 접촉을 주선한 대북사업가 권오홍씨의 비망록에 따르면, 안희정씨는 베이징에서 이호남을 만나 “특사 교환과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의향이 있다. 그리고 공식라인을 살려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호남씨는 안 전 지사에게 “노 대통령의 진짜 의중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 아래 남북관계 현안을 의제화해 토의해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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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씨와 북한 이호남의 접촉을 주선했던 권오홍씨가 2007년 3월 30일 오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동안의 경과를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
이호남은 1997년 북풍사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대북공작원으로 알려진 ‘흑금성’ 문건에도 등장한다. 흑금성은 안기부가 광고회사 ㈜아자커뮤니케이션에 전무로 위장 취업시킨 박채서씨의 암호명이다. 흑금성은 이호남을 통해 대북사업과 관련한 공작을 시도했다. 이호남은 2005년 가수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씨가 함께 출연한 삼성전자 애니콜 광고 제작에도 관여했다.
이런 이호남이 A씨에게 가장 처음 한 이야기는 “우리(북한)가 러시아 가스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데, 이것을 가스공사가 사줄 수 있느냐”였다. A씨는 “황당한 제안이라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원하면 가스발전소 1년이면 지어줄 수도”
A씨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한은 전력 사정이 좋지 않다던데, 원산·갈마지구 개발과 관련해 북한은 어떤 에너지를 사용하느냐”고 물었다. 이호남이 “석탄 또는 수력으로 전력을 수급하는데, 석탄 ‘질’이 나빠 효율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말했다. A씨는 “(대북사업이 재개되면 가스공사는) 가스발전소의 경우 1년이면 지어줄 수 있을 정도”라고 제안했다. 또 A씨는 ‘발전용 선박’을 바다 위에 띄워, 여기서 만들어진 전력을 공급하는 안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호남이 쿠바 10페소 지폐에 그려진 한국 발전기를 거론하면서 “중고 설비가 없느냐”고 물어본 것은 발전용 선박 이야기를 한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쿠바에 수출한 발전기는 만성적 정전을 없애면서 지폐 모델로 사용될 정도로 유명하다.
A씨는 이철규 의원실에 “사기꾼(김 사장과 이호남)에게 당한 느낌이다. 그들은 ‘돈’을 요구했다”며 일종의 해프닝이었다고 당시 만남을 평가절하했다. “알고 보니 이호남이 퇴물이 돼 해외를 전전하고 있었다”며 그가 전혀 영향력이 없는 인물이란 점도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은 원래 접촉할 때 뒷돈을 요구한다. 개성공단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A씨가 이를 모를 가능성은 적다. 그리고 이호남은 퇴물이 아니다. 대북사업가 김 사장은 “이호남은 북한의 대남 정책을 자문하는 핵심 인사”라고 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도 “이호남 정도면 나름 권위가 상당히 있다”며 “이호남이 그냥 가스공사와 만났겠느냐. 당연히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핵심 인물이라는 것이다.
A씨가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바로 다음 날인 12월 2일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김연철 전 장관은 ‘강원도 원산·갈마지구 개발에 한국이 참여하는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의사를 북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정부가 최근 원산·갈마 공동개발 의사를 북한에 전달했느냐’는 물음에 “동해관광특구를 공동으로 조성하자는 것은 9·19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내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가스공사의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지원 움직임을 통일부도 미리 알고 있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다만 통일부는 2021년 2월 9일 이 문제가 《월간조선》 인터넷판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통일부 차원에서 북한에 가스발전소 건설 추진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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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규 국민의힘 의원. 이 의원은 “A씨가 북한 이호남을 만날 당시 직위가 차장이었다”며 “차장이 혼자 이런 일을 어떻게 기획하고 제안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
첫째, A씨는 출장 갈 당시 차장이었다. 상식선에서 “발전소를 지어줄 수 있다”는 식의 제안은 차장 선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현직 공무원 다수는 “공무원들은 윗선(청와대 또는 가스공사 사장) 지시 없이 알아서 그런 제안을 하는 부류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철규 의원이 “A씨가 북한 이호남을 만날 당시 직위가 차장이었다”며 “차장이 혼자 이런 일을 어떻게 기획하고 제안할 수 있겠느냐”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 앞서 언급했듯 가스공사 채희봉 사장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출신이다. 청와대와의 교감이 가능하단 이야기다. 채 사장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시절인 2018년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원전(原電) 담당 고위 공무원에게 “월성 1호기를 당장 가동 중단시킬 수 있도록 원전 관련 계수(係數·수치)를 뜯어 맞춰라. 한국수력원자력을 압박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현 정부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해온 인물이다.
A씨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채 사장이 받아들였을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가스공사 내부에서는 채 사장이 ‘북한통’인 A씨에게 특명을 내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셋째, A씨는 이호남에게 남한-북한-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연결(PNG) 사업에 대해 문의하기도 했다. 이호남이 “자신은 권한이 없다”고 하여 이 사안을 대화 테이블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PNG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3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 협의를 제안했는데, 그 핵심 사업 중 하나가 러시아 PNG 사업이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2017년 11월 가스공사를 통해 제출받은 〈러시아 PNG 도입노선별 경제성 검토〉 자료를 보면 해당 사업을 시행할 경우 ‘국경통과료’ 및 ‘배관이용료’ ‘북한 지급 인건비’ ‘세금’ 명목으로 최대 24조원이 넘는 비용이 북한에 지급될 것으로 분석됐다. 윗선의 개입이 없었다면 24조원이 북한에 지급될 수도 있는 엄청난 사업을 공무원 한 명이 논의하려 했다는 것이 된다.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도 문 대통령이 신경 쓰는 사업일 가능성이 크다. 9·19 남북합의에 ‘원산・갈마’를 포함한 동해관광특구를 공동개발하자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A씨가 이호남과 논의하려고 했거나 한 것은, 모두 문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는 사업이었던 셈이다.
하필 남·북, 미·북 관계 최악일 시기에…
넷째, 가스공사가 ‘가스발전소’ 건설을 제안한 시기가 남·북, 미·북 관계가 급속히 경색될 때였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뒤 남북 및 미북 관계가 틀어졌다. 이후 북한은 대놓고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삶은 소대가리’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 금강산의 우리 쪽 시설을 철거하기도 했다.
2019년 5월 4일 오전 9시, 북한은 김정은 참관하에 신형 전술유도 미사일과 장거리 방사포 발사 실험을 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 것은 2017년 11월 29일(화성-15형 발사) 이후 1년 6개월 만이었다. 우리 합동참모본부(합참)는 발사 직후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발표했다가 40분 후 ‘단거리 발사체’라고 말을 바꿨다. 북한이 스스로 미사일 발사 장면을 공개한 5월 5일에도 ‘미사일’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북한의 도발 수위를 일부러 낮춰 평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7월 25일에는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미사일 두 발을 쐈다. 엿새 뒤인 7월 31일에는 강원도 원산·갈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합참은 “지난 (7월) 25일 미사일(KN-23)과 유사한 탄도미사일”이라며 “이번 미사일 발사는 무력시위보다는 시험 발사로 추정된다”고 했다.
같은 해 8월 16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조선 당국자’라고는 했지만,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겨냥, “아랫사람이 써준 것을 졸졸 내리읽는 남조선 당국자가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고 비난했다.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북쪽에서 사냥총 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에”라는 욕설을 퍼부었다. 앞서 권정근 외무성 국장은 “똥을 꽃 보자기에”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럽게 짖어댄다”고도 했다.
북한은 11월 11일, 금강산 남측 시설을 철거하겠다는 최후통첩을 우리 쪽에 보냈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지구를 독자적으로 개발할 것이며 남측이 참여할 자리는 없다고 했다. 11월 15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조중통)은 ‘금강산은 북과 남의 공유물이 아니다’ 제목의 논평에서 “우리는 11월 11일 남조선 당국이 부질없는 주장을 계속 고집한다면 시설 철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일방적으로 철거를 단행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했다. 이어 “남조선 당국은 오늘까지도 묵묵부답하고 있다”며 “무슨 할 말이 있고 무슨 체면이 있으며 인제 와서 두 손을 비벼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금강산을 민족 앞에, 후대들 앞에 우리가 주인이 되어 우리가 책임지고 우리 식으로 세계적인 문화 관광지로 보란 듯이 훌륭하게 개발할 것”이라며 “여기에 남조선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했다.
조중통은 또 “미국이 무서워 10여 년 동안이나 금강산 관광 시설들을 방치해두고 나앉아 있던 남조선 당국이 철거 불똥이 발등에 떨어져서야 화들짝 놀라 금강산의 구석 한모퉁이에라도 다시 발을 붙이게 해달라, 관광 재개에도 끼워달라고 청탁하고 있으니 가련하다 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철면피하다 해야 하겠는가”라고 했다. 이어 “시간표가 정해진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통지문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허송세월할 수 없다”며 “낡은 것이 자리를 내야 새것이 들어앉을 수 있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시기에 출장을 떠나 사실상 북한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는 듯한 제안을 한다는 것은 공기업의 일개 차장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란 지적이다.
광물공사도?
다섯째, 실제 대북 지원에 나선 건 가스공사뿐만이 아니다. 광물공사도 북한 광산 개발을 위해 북한 관계자들을 중국에서 접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광물공사 직원들은 2018년 10월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단둥(丹東) 대표부를 만났다. 2010년 5·24 대북제재 조치 이후 사업이 중단됐던 황해도 정촌 흑연광산의 정상화를 위해서였다. 광물공사는 북한 주민을 접촉한다고 사전에 신고했고, 통일부의 승인도 받았다.
광물공사 측은 북한에 대한 제재가 완화되면 정촌 흑연광산의 정상화를 위한 사전준비 차원에서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언론 등을 통해 광물공사의 경영난을 접했다며 사업 진행의 지속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정촌 흑연광산 정상화를 위한 세부계획서를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고, 광물공사 측은 이에 응했다.
당시 광물공사는 과도한 부채로 통폐합까지 거론되던 상황이었다. 광물공사 관계자는 “북측에서 먼저 접촉을 타진해와 만났다”며 “이후 사업이 실제로 진척되지 않아 접촉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A씨에게 김 사장을 소개해준 게 광물자원공사 관계자다. A씨가 이호남을 만나는 시점에 광물자원공사 관계자도 같은 장소(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다고 한다. ‘황해도 정촌 흑연광산의 정상화’ 문제와는 별개로 이호남을 만났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광물자원공사 관계자가 이호남을 만났다는 증거는 없다. 광물자원공사 측도 “그런 일 없다”고 한 상태다.
文 정부의 공기업이 김정은 숙원사업에 목매는 이유
김정은은 최근 당 대회에서 36회나 핵을 강조하면서 전술핵과 핵 추진 잠수함 개발을 공언했다. 2017년 이후 남북, 미북 정상회담 과정에서도 줄기차게 핵 고도화를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야당 동의 없이 임명된 28번째 장관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했다. 이에 미국 국무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확산 의지가 국제 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했다. 정 장관 발언에 대한 공개 반박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협상팀이던 랜들 슈라이버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는 “김정은이 비핵화 약속을 준수하겠다는 증거를 목격하지 못했다”며 최대한의 대북 압박 정책을 제안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특별보좌관과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특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증거 없이 김정은이 비핵화에 진지하다는 주장을 바이든 행정부에 해선 안 된다”고 했다. 북한과 핵 협상을 했던 전직 관리들까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부정한 것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찌감치 트럼프·김정은의 회담을 “무의미한 TV용 쇼”라고 비판했다. 전반적인 대북 정책 재검토에 들어갔고, 대북 제재를 강조하는 인사들로 팀을 꾸렸다. 4년 만에 북한인권특사도 지정할 것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 외교 사령탑의 북한에 대한 인식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공기업이 왜 그토록 김정은의 숙원사업과 북한을 지원해주려 했는지 답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