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형 장면 일체 녹화하는지 김정은이 욕하면서 죽이라고 한 처형만 녹화하는지는 의견 엇갈려
⊙ 처형 명령한 몇백·몇천명이 전부 죽었는지도 세세히 파악
⊙ 北 주민 앞에서는 처형과 전혀 관련 없는 지도자처럼 행동… 처형장에 김씨 일가가 모습 드러내지 않는 이유
⊙ 나중에 자신의 목줄 죌 수 있는 처형 영상 확인 후 즉각 폐기 가능성
⊙ 김정은이 동경하는 히틀러도 ‘쿠데타 세력’ 처형 장면 녹화(독일저항추모관 자료 中)
⊙ 처형 명령한 몇백·몇천명이 전부 죽었는지도 세세히 파악
⊙ 北 주민 앞에서는 처형과 전혀 관련 없는 지도자처럼 행동… 처형장에 김씨 일가가 모습 드러내지 않는 이유
⊙ 나중에 자신의 목줄 죌 수 있는 처형 영상 확인 후 즉각 폐기 가능성
⊙ 김정은이 동경하는 히틀러도 ‘쿠데타 세력’ 처형 장면 녹화(독일저항추모관 자료 中)
-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10월 10일 오후, 김정은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 연설 중 울먹이는 모습을 방송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부터 “계몽군주” 같다는 평가를 받은 북한 김정은이 공개·비공개 처형 일체를 녹화한 뒤 꼼꼼히 시청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정은이 자신의 지시로 이뤄지는 처형의 장면을 찍은 이른바 스너프 필름(snuff film)을 제작한다는 것이다. 잔혹한 살인·자살 장면 따위를 찍은 영상물을 스너프 필름이라고 한다. 국제 테러단체 등이 포로를 처형하는 장면을 찍은 영상이 대표적인 스너프 필름이다. 2004년 한국인 고(故)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처형되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준 바 있다. 대개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스너프 필름을 만든다고 한다. 김정은이 만든 스너프 필름은 그 수가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정확한 처형 횟수는 확인이 불가하지만 잦은 것만은 사실인 까닭이다.
김정은, 스너프 필름 제작
국제인권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이 2019년 6월 공개한 보고서(살해당한 사람들을 위한 매핑: 북한 정권의 처형과 암매장)를 보면 확인한 북한 처형 장소만 323곳이다. 사람 죽이는 장소가 이 정도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처형당하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실제, 권력 승계가 공식화되기 이전인 1990년대 초 김정일은 전국에 ‘총소리를 울릴 때가 됐다’고 지시했고, 공개처형이 급증했다. 김정은 집권 후에는 사형 적용 범죄가 광범위해지고 김정일 때보다 처형 횟수가 늘었다.
김정은이 스너프 필름을 제작하고 이를 자세히 본다는 주장은 고위 탈북자로부터 나왔다. 이 탈북자는 이 같은 정보를 문재인 정부에 제공했다. 그는 이외에도 효용 가치가 있는 정보를 다수 알렸다고 한다.
통일부는 이 고위 탈북자에게 국가 안전보장과 관련한 정보를 수사·정보기관에 알리거나 북한 무기나 장비 등을 가져온 이들에게 지급하는 ‘보로금(報勞金)’을 지급했다. 이 탈북자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액수(1억3000만원 상당)의 보로금을 받았다. 그만큼 이 탈북자의 정보가 사실에 가깝다는 뜻이다. 이 탈북자의 증언은 정보 당국이 기밀문서로 만들어 보관 중이다.
《월간조선》은 문서 등을 통해 확인한 이 탈북자의 주장이 믿을 만한지 여러 고위급 탈북자와 북한 전문가를 다수 만나 검증했다.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후 목이 없는 시신을 북한 고위 간부들이 다니는 계단에 전시하고, 소총이 아니라 대공(對空) 무기인 14.5mm 고사총으로 사람을 박살 내는 김정은이 녹화한 엽기적 처형 장면을 보면서 미소 지을 소지가 다분하다는 판단에서다.
김정일도 녹화했다는 증언
탈북자들은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했지만, 확답은 하지 못했다. 스너프 필름의 실체를 접하거나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처형 녹화 동영상’의 실체가 한 탈북자의 보로금을 받기 위한 창작 정보 또는 주장이란 심증이 강하게 들 무렵, 한 고위 탈북자로부터 의미 있는 증언을 확보했다.
다음은 이 탈북자와의 문답이다.
— 김정은이 처형 장면을 모두 녹화해 본다는 주장이 사실입니까.
“제가 알기로는 모두 녹화하진 않고, 김정은이가 대로해서 ‘저 놈 죽이라’라고 명령한 처형건에 대해서 녹화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성택이나 은하수관현악단단원 처형은 당연히 녹화했을 겁니다. 김정은이 영상을 보고 만족해 하면 그런식으로 죽이고, 그렇지 않으면 더 잔인한 방법으로 죽입니다. 아버지 김정일도 처형 장면을 녹화한 것으로 압니다.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성격과 통치술이 오늘의 김정은을 만들었죠. 아마 이것도 아버지한테 배웠을 겁니다.”
— 녹화는 왜 하는 겁니까. 잔인한 장면을 보면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라 그런 겁니까.
“정신적 문제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처형하라고 명령한 사람이 실제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 김씨 일가가 죽이라고 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죽였다고 허위 보고한 적이 있었나요.
“제가 직접 확인한 사안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몇백·몇천명을 한꺼번에 처형하는 때도 있지 않습니까. 1997년 ‘심화조사건’이 대표적이지요. 이 사건으로 김일성의 노(老)간부를 중심으로 3000여 명이 처형됐고 1만명 이상의 연고자가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워낙 죽는 사람이 많으니, 칼자루를 쥔 사람이 빼주려고 마음을 먹으면 1~2명은 빼줄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 칼자루는 김씨 일가가 직접 쥐고 있지 않습니까.
“김씨 일가의 특징이 누구누구를 죽이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명령을 내리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는 척하는 겁니다. 고귀한 백두혈통은 처형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선한 이미지를 주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죠. ‘신(神)’이 사람을 처형하진 않잖아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공개처형장에 나타나지 않는 게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주민들은 김씨 일가의 명령을 집행하는 ‘간부’가 처형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죠. 김씨 일가는 북한 주민을 속이기 위한 가면(假面)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 집행자가 명령을 어기고 1~2명을 빼줄 수도 있으니 처형 장면을 녹화해 하나하나 확인한다는 이야기군요.
“맞습니다.”
— 진짜 잔인하네요.
“그걸 이제야 안 겁니까. 김씨 일가, 특히 김정은이는 사람 목숨을 벌레보다도 하찮게 여깁니다.”
자신의 명령대로 죽였는지 확인
취재 중 접촉한 전직 정보 당국 관계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김정은이 명령하는 처형 방식이 다양하지 않습니까. (김정은은) 녹화 영상을 통해 자신이 명령한 방식대로 죽였는지도 살펴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월간조선》은 2019년 9월호 ‘김정은의 김정일 피아노 선생 잔혹 처형 내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정은이 김정일의 피아노 선생과 그의 지인들이 김정일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외부로 유출하자 알몸 상태에서 총살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김정은은 “최고지도자(김정일)를 배신한 놈들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다. 짐승은 옷을 입지 않으니 벌거벗긴 상태에서 총살하라”고 지시했다. 사형은 고위 간부들만 모인 자리에서 진행했다. 그들의 죄목을 나열한 후 흰 커튼이 젖혀졌다. 3명이 발가벗겨진 상태로 묶여 있었다. 참석자들 대부분은 고개를 돌렸다. 사형이 진행됐다. 기관총이 난사됐고, 시체의 파편이 처형을 지켜보던 간부들 쪽으로 튀었다. 공개처형 참석자 중 일부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처형 동영상을 통해 실제 자신이 명령한 대로 나체로 총살했는지도 살펴본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김정은은 은하수관현악단 단원 12명 처형 직전 그들을 대상으로 권총 사격 연습을 지시한 것 등도 제대로 이행했는지 녹화 영상으로 확인했을 것이다.
처형 영상 확인하자마자 폐기
사형 동영상의 실체를 알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있던 관계자들을 만나던 중 한 탈북자로부터 김정은이 처형 동영상을 확인하자마자 폐기 처분한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이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럽연합(EU)이 제출한 북한 인권 결의안을 보면 인권 유린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부치도록 권고하는 내용도 담겼다. 김정은은 자신이 국제형사재판소에 가는 최악의 경우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영국의 한 인권 변호사는 “북한이 지난 수십 년간 저지른 대량 학살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유엔이 2002년 특정 개인의 인권침해가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해당할 때 기소해 처벌하기 위해 만든 최초의 상설 국제법정이다.
ICC 초대 재판관으로 선임된 후 2009년부터 6년간 ICC 소장을 맡은 송상현 전 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ICC 회부는 김정은이 평생 차고 다녀야 할 족쇄다. 김정은이 범죄자로 기소된다면 상황에 따라 북한 권력 집단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북한에 특정한 사태가 일어났을 때 김정은을 체포해 ICC에 넘기려는 세력이 생길 수도 있다. ICC 제소 추진은 김정은을 최대로 압박하는 것 중 하나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03년부터 2019년까지 17년 연속 결의안을 채택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씨 사살 사건이 국제 인권규범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음에도 ‘공동 제안국’에서 빠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정은은 ‘히틀러 학습효과’가 있다”며 “히틀러도 처형 장면을 녹화했는데, 폐기하지 않아 나중에 그 사실이 알려졌다”고 했다.
히틀러, 쿠데타 가담자 사형 장면 촬영
그의 주장에 대한 신뢰도를 알아보기 위해 실제 아돌프 히틀러가 김정은처럼 처형 장면을 녹화했는지부터 살펴봤다.
공공기관인 독일저항추모관(Memorial to the German Resistance)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히틀러는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일명 ‘발키리 작전’ 가담자들의 사형 장면을 촬영하라고 카메라 팀에 지시했다. 히틀러는 “죽을 사람들의 고통을 촬영하라”고 명령했다.
‘발키리 작전’은 원래 독일에서 반체제 봉기가 발생할 경우 군병력이 나서서 진압하는 치안 회복 작전을 의미했다. 하지만 군부 내에서 나치에 저항하던 세력은 이 ‘발키리 작전’을 히틀러 암살과 나치 진압에 역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전 육군참모총장 루트비히 베크가 작전을 주도했다. 베크 총장은 광적인 나치즘과 민간인을 학살하는 나치의 전쟁 수행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反)나치 세력 조직에 나섰다. 작전 개시일은 1944년 7월 20일로 정했다. 히틀러가 회의를 주재할 때 그 앞에서 서류가방으로 위장한 폭탄을 터뜨릴 주인공으로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정해졌다.
북아프리카 근무 중 피격돼 오른팔과 왼쪽 손가락 두 개, 한쪽 눈을 잃은 슈타우펜베르크는 폭탄을 설치하고 터뜨리는 훈련을 매일 반복하며 거사일을 기다렸다. 마침내 슈타우펜베르크는 히틀러 앞에 폭탄 가방을 놓는 데 성공했지만 다른 참석자가 회의 진행에 방해된다며 가방을 옆으로 치웠다. 가방은 폭발했지만, 히틀러는 부상만 입고 목숨을 건졌다. 히틀러는 사건에 가담한 7000여 명을 체포했고 이 중 200여 명을 처형했다.
히틀러는 주요 인물은 더욱 잔인하게 죽였고, 이 장면을 녹화했다. 대표적인 게 에르빈 폰 비츠레벤 장군이다. 발키리 작전 실패로 1944년 8월 4일 법정에 선 그는 “너희는 지금 우리를 총살하지만, 몇 달 뒤면 성난 국민 손에 산 채로 독일 거리를 끌려다니게 될 것”이라고 외쳤다. 그는 히틀러의 명령으로 고기 갈고리에 감긴 피아노 전선에 목을 매다는 방식으로 처형됐다. 폰 라베나우 장군은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총탄 세례를 받았다. 잔인한 고문으로 죽인 혁명 세력의 시체를 교도소 문 앞에 매달아 놓기도 했다.
독일저항추모관에 존재하는 증거
제2차 세계대전 때 활동한 독일 군인 중 가장 인상적인 발자취를 남긴 ‘사막의 여우’로 불린 에르빈 롬멜 장군은 발키리 사건에 연루, 독극물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히틀러는 롬멜을 반역죄로 처형할 경우 일어날 엄청난 역풍을 우려해 자살을 권유했다. 히틀러는 사후 가족을 핍박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롬멜은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 넣었다. 독일 정부는 그가 앞서 서부전선에서 입은 중상이 악화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거짓 발표를 하고 국장을 치렀다.
1891년 뷔르템베르크 출신의 롬멜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뛰어난 전략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종전 후 혼란기에 ‘군대 재정비’를 강조한 히틀러에게 매료돼 그의 경비대장을 지냈다. 하지만 나치스와 나치 독일군 친위대에 대해서는 극히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롬멜에 대한 평가가 늘 엇갈리는 이유다. 이런 사실이 담긴 자료가 있는 독일저항추모관은 ‘발키리 작전’이 벌어진 옛 예비군사령부에 있다. 추모관은 나치에 대한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장소가 됐다. 자료가 존재한다는 것은 히틀러가 미처 처형 영상(사진 포함) 필름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김정은이 히틀러처럼 처형 장면을 사진, 영상 등으로 남기되 이를 통해 확인할 것을 확인하고 곧장 폐기처분 한다는 고위 탈북자의 증언은 사실에 가깝다는 결론이다.
김정은, 히틀러 본받으려 하나?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김정은은 히틀러를 본받으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2013년 1월 8일 자신의 생일을 맞아 고위 간부들에게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선물한 것이 대표적이다.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1923년 뮌헨 폭동으로 수감됐을 때 쓴 책이다. 신의 반(反)유대 및 인종주의 이념을 표방했다. 히틀러 집권 당시에는 나치당원의 필독서로 널리 읽히기도 했다. 독일 당국은 2014년 《나의 투쟁》뿐 아니라 히틀러 저술에 대한 ‘무비판적 출간’을 전면 불허했다.
탈북자 인터넷 매체인 ‘뉴포커스’는 해외에 나온 북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올 1월 주요 간부들에게 하사된 김정은의 선물에는 《나의 투쟁》과 《세계유머집》이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선물을 받은 대상은 노동당 비서와 부장, 제1부부장, 군단장급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책을 선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간부들에게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을 짧은 기간 내에 재건한 히틀러의 ‘제3제국’을 잘 연구하고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전승국들에 포위됐던 독일과 핵실험·장거리미사일 발사 등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북한 상황이 비슷하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으로 보인다.
전 정부 외교·안보 핵심 관계자는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전체주의 국가를 장악한 자신과 유럽대륙을 전쟁 공포로 떨게 했던 제2차 세계대전 전야의 히틀러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뉴포커스’는 또 김정은이 2012년 말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신설하고 실세인 장성택(처형 전)을 위원장에 임명한 것도 “독일의 단결과 사상의 전파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스포츠였다”는 믿음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김정은은 “히틀러의 게르만족 우월성 주창은 출산장려정책에서 잘 나타났다”며 “한 가정 3자녀 낳기 운동을 적극 격려하고 지원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출산장려정책의 총괄 지휘는 김정은의 아내 이설주가 맡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를 ‘조선의 어머니’로 선전하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김정은은 ‘어린 나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히틀러를 모방한 공격적인 언사로 목청을 높이고, 특히 나이 많은 간부에게 더욱 심한 굴욕을 주고 있다고도 했다.
《뉴욕포스트》는 ‘Heil Kim Jong Un!(김정은 만세!)’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기사에서 “김정은이 《나의 투쟁》에 심취해 있다”며 “김정은이 대학 시절 히틀러의 아내 에바 브라운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했고, 북한의 인민보안대장이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했다”고 보도했다.
히틀러와 김정은, 정보 차단 방식 닮아
김정은은 정보를 차단하는 방식도 히틀러와 닮았다. 니콜라이 슈프레켈스 독일 북한인권단체 ‘SARAM(사람)’ 공동대표는 “나치 정권은 매체를 활용해 독일 시민에게 자신들의 이념을 설파하거나 극단적인 선전 활동을 벌였는데, 이는 현재 북한의 현실과 매우 닮았다”고 밝혔다.
“1935년부터 독일 나치당은 당시의 새로운 미디어였던 라디오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독일 국민에게 자신들의 이념을 소개하도록 했고, 1943년도에 1600만 가정에 라디오를 보급했는데 그 목적은 자신들의 프로파간다를 설파할 기회를 갖기 위함이었다. 당시 독일 주민들이 외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것은 극도의 불법행위로 간주했고, 적발 시에는 청취자나 그 가족 모두가 강제수용소에 끌려가기도 했다. 현재 북한도 다를 바 없다.”
그는 “미디어 사용으로 히틀러에 대한 강렬한 추종 집단을 만들어내고 그가 초자연적 능력을 지녔다는 신화까지도 만들어내는 점은 북한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했다.
실제 북한이 노동당 중앙당 간부와 당원 및 각급 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김정은 선전자료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에 대한 위대성 자료〉에는 김정은이 해외에서 2년간 유학하면서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숙달했고, 중국어와 일본어, 러시아어도 학습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세 살 때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한자(漢字) 간체자로 지은 ‘광명성 찬가’를 한자 정자로 척척 써 내려 갔다는 내용도 있다. 또한 세 살 때 할아버지부터 전해 내려온 권총 한 자루를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물려받고 사격에서 백발백중의 솜씨를 보였다는 기록도 있다.
슈프레켈스 공동 대표는 나치 독일과 북한은 교육시스템도 유사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나치 독일과 북한 모두 학교에서 일반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대신 ‘이념’을 가르쳤다. 나치 독일은 나치 이념을, 북한은 백두혈통 ‘이념’을 세뇌했다.”
뻔한 거짓말을 태연하게 반복
‘히틀러 앓이’를 해서인지, 김정은은 히틀러와 비슷한 언행을 보이고 있다. 좋게 말해 언행이지, 뻔한 거짓말을 태연하게 반복하는 게 데칼코마니다.
유화주의자인 영국 체임벌린 총리는 나치 독일이 체코를 침공하려 하자 히틀러와의 협상을 통해 전쟁을 막으려 했다. 1938년 9월 14일 히틀러에게 전문(電文)을 보냈다. 체임벌린 총리는 독일 뮌헨에서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총리와 함께 히틀러와 협상을 벌였다.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에게 체코의 다른 지역을 침공하지 말라는 조건을 내걸면서 독일인 거주 지역인 수데텐란트를 할양하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고, 히틀러는 이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4개국 지도자들은 뮌헨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당시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에게 체코의 영토 일부를 양보해 유럽을 전쟁의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는 뮌헨회담 합의문을 흔들며 “여기 이 시대의 평화를 담아왔다”고 자랑했다. 체임벌린은 히틀러가 국제사회의 여론 때문에 뮌헨 평화협정을 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히틀러의 ‘위장 평화’ 공세에 속은 것이다.
실제로 히틀러는 수데텐란트를 차지한 데 이어 1939년 3월, 체코 전역을 점령해 뮌헨 평화협정문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히틀러는 이어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게 됐다. 이로 인해 ‘적의 도발 앞에서 평화를 애걸하면 오히려 비극을 초래한다’는 ‘뮌헨의 교훈(lesson of Munich)’이라는 국제정치학 용어까지 만들어졌다.
열병식 때 보인 김정은의 눈물이 진실이라 믿는가?
김정은은 2018년 3월 방북한 우리 특사단에 “(북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에 NSC를 개최하느라 고생 많으셨다. 이제 더는 새벽잠 설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4월 판문점에서도 문 대통령에게 “새벽잠 설치지 않도록 제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 발 뻗고 자겠다”고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북한은 잇단 발사체 도발을 했다. 최근에는 해양수산부(해수부) 공무원이 서해상에서 실종된 뒤 북한 해역에서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진 사건이 발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8일 미국 뉴욕에서 화상으로 열린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례만찬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종전(終戰)선언을 위해 양국(한미)이 협력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유엔총회 화상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은 종전선언”이라고 한 지 보름 만에 다시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이다.
당시 유엔총회 연설이 전 세계에 방송되기 4시간 전 북한군의 해수부 공무원 총살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정부가 제때 대응하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정치권은 물론 미국 조야에서도 ‘종전선언’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도 ‘비핵화’ 언급 없이 ‘종전선언’만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과도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이해하며,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갈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평화에 집착하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이 상황에서 다시 ‘종전선언’을 강조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해선 더는 시비 걸지 말라는 사실상 ‘성역화 선언’이라는 해석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종전선언 발언의 부적절 논란에 대해 “소모적 논란에 휩싸이고 싶지 않다”며 “대한민국 정치 지도자가 평화를 이야기하면 안 되느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10일 0시부터 약 3시간가량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진행된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이 “북과 남이 두 손 맞잡는 날이 찾아오길 기원한다”고 말한 것을 그대로 믿을 것이다. 또 그가 북한 주민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면서 흘린 눈물에 감동했을 것이다. 김정은이 정말 무서운 게 이런 점이다. 대외적으론 주민 앞에서 눈물을 쏟지만, 뒤로는 처형 장면을 꼼꼼히 살펴보는 그의 이중성은 상대를 적폐로 몰아붙이면서 뒤에서는 더한 것도 서슴없이 하는 국내 특정 세력과 묘하게 닮았다.⊙
김정은이 자신의 지시로 이뤄지는 처형의 장면을 찍은 이른바 스너프 필름(snuff film)을 제작한다는 것이다. 잔혹한 살인·자살 장면 따위를 찍은 영상물을 스너프 필름이라고 한다. 국제 테러단체 등이 포로를 처형하는 장면을 찍은 영상이 대표적인 스너프 필름이다. 2004년 한국인 고(故)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처형되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준 바 있다. 대개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스너프 필름을 만든다고 한다. 김정은이 만든 스너프 필름은 그 수가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정확한 처형 횟수는 확인이 불가하지만 잦은 것만은 사실인 까닭이다.
김정은, 스너프 필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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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부터 “계몽군주” 같다는 평가를 받은 북한 김정은이 공개·비공개 처형 일체를 녹화한 뒤 꼼꼼히 시청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진은 북한 《로동신문》이 2013년 12월 13일 공개한 처형 직전 장성택의 모습. |
김정은이 스너프 필름을 제작하고 이를 자세히 본다는 주장은 고위 탈북자로부터 나왔다. 이 탈북자는 이 같은 정보를 문재인 정부에 제공했다. 그는 이외에도 효용 가치가 있는 정보를 다수 알렸다고 한다.
통일부는 이 고위 탈북자에게 국가 안전보장과 관련한 정보를 수사·정보기관에 알리거나 북한 무기나 장비 등을 가져온 이들에게 지급하는 ‘보로금(報勞金)’을 지급했다. 이 탈북자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액수(1억3000만원 상당)의 보로금을 받았다. 그만큼 이 탈북자의 정보가 사실에 가깝다는 뜻이다. 이 탈북자의 증언은 정보 당국이 기밀문서로 만들어 보관 중이다.
《월간조선》은 문서 등을 통해 확인한 이 탈북자의 주장이 믿을 만한지 여러 고위급 탈북자와 북한 전문가를 다수 만나 검증했다.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후 목이 없는 시신을 북한 고위 간부들이 다니는 계단에 전시하고, 소총이 아니라 대공(對空) 무기인 14.5mm 고사총으로 사람을 박살 내는 김정은이 녹화한 엽기적 처형 장면을 보면서 미소 지을 소지가 다분하다는 판단에서다.
김정일도 녹화했다는 증언
탈북자들은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했지만, 확답은 하지 못했다. 스너프 필름의 실체를 접하거나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처형 녹화 동영상’의 실체가 한 탈북자의 보로금을 받기 위한 창작 정보 또는 주장이란 심증이 강하게 들 무렵, 한 고위 탈북자로부터 의미 있는 증언을 확보했다.
다음은 이 탈북자와의 문답이다.
— 김정은이 처형 장면을 모두 녹화해 본다는 주장이 사실입니까.
“제가 알기로는 모두 녹화하진 않고, 김정은이가 대로해서 ‘저 놈 죽이라’라고 명령한 처형건에 대해서 녹화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성택이나 은하수관현악단단원 처형은 당연히 녹화했을 겁니다. 김정은이 영상을 보고 만족해 하면 그런식으로 죽이고, 그렇지 않으면 더 잔인한 방법으로 죽입니다. 아버지 김정일도 처형 장면을 녹화한 것으로 압니다.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성격과 통치술이 오늘의 김정은을 만들었죠. 아마 이것도 아버지한테 배웠을 겁니다.”
— 녹화는 왜 하는 겁니까. 잔인한 장면을 보면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라 그런 겁니까.
“정신적 문제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처형하라고 명령한 사람이 실제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 김씨 일가가 죽이라고 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죽였다고 허위 보고한 적이 있었나요.
“제가 직접 확인한 사안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몇백·몇천명을 한꺼번에 처형하는 때도 있지 않습니까. 1997년 ‘심화조사건’이 대표적이지요. 이 사건으로 김일성의 노(老)간부를 중심으로 3000여 명이 처형됐고 1만명 이상의 연고자가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워낙 죽는 사람이 많으니, 칼자루를 쥔 사람이 빼주려고 마음을 먹으면 1~2명은 빼줄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 칼자루는 김씨 일가가 직접 쥐고 있지 않습니까.
“김씨 일가의 특징이 누구누구를 죽이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명령을 내리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는 척하는 겁니다. 고귀한 백두혈통은 처형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선한 이미지를 주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죠. ‘신(神)’이 사람을 처형하진 않잖아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공개처형장에 나타나지 않는 게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주민들은 김씨 일가의 명령을 집행하는 ‘간부’가 처형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죠. 김씨 일가는 북한 주민을 속이기 위한 가면(假面)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 집행자가 명령을 어기고 1~2명을 빼줄 수도 있으니 처형 장면을 녹화해 하나하나 확인한다는 이야기군요.
“맞습니다.”
— 진짜 잔인하네요.
“그걸 이제야 안 겁니까. 김씨 일가, 특히 김정은이는 사람 목숨을 벌레보다도 하찮게 여깁니다.”
자신의 명령대로 죽였는지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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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자신이 명령한 방식대로 처형을 했는지 살펴본다고 한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
“김정은이 명령하는 처형 방식이 다양하지 않습니까. (김정은은) 녹화 영상을 통해 자신이 명령한 방식대로 죽였는지도 살펴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월간조선》은 2019년 9월호 ‘김정은의 김정일 피아노 선생 잔혹 처형 내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정은이 김정일의 피아노 선생과 그의 지인들이 김정일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외부로 유출하자 알몸 상태에서 총살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김정은은 “최고지도자(김정일)를 배신한 놈들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다. 짐승은 옷을 입지 않으니 벌거벗긴 상태에서 총살하라”고 지시했다. 사형은 고위 간부들만 모인 자리에서 진행했다. 그들의 죄목을 나열한 후 흰 커튼이 젖혀졌다. 3명이 발가벗겨진 상태로 묶여 있었다. 참석자들 대부분은 고개를 돌렸다. 사형이 진행됐다. 기관총이 난사됐고, 시체의 파편이 처형을 지켜보던 간부들 쪽으로 튀었다. 공개처형 참석자 중 일부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처형 동영상을 통해 실제 자신이 명령한 대로 나체로 총살했는지도 살펴본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김정은은 은하수관현악단 단원 12명 처형 직전 그들을 대상으로 권총 사격 연습을 지시한 것 등도 제대로 이행했는지 녹화 영상으로 확인했을 것이다.
사형 동영상의 실체를 알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있던 관계자들을 만나던 중 한 탈북자로부터 김정은이 처형 동영상을 확인하자마자 폐기 처분한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이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럽연합(EU)이 제출한 북한 인권 결의안을 보면 인권 유린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부치도록 권고하는 내용도 담겼다. 김정은은 자신이 국제형사재판소에 가는 최악의 경우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영국의 한 인권 변호사는 “북한이 지난 수십 년간 저지른 대량 학살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유엔이 2002년 특정 개인의 인권침해가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해당할 때 기소해 처벌하기 위해 만든 최초의 상설 국제법정이다.
ICC 초대 재판관으로 선임된 후 2009년부터 6년간 ICC 소장을 맡은 송상현 전 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ICC 회부는 김정은이 평생 차고 다녀야 할 족쇄다. 김정은이 범죄자로 기소된다면 상황에 따라 북한 권력 집단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북한에 특정한 사태가 일어났을 때 김정은을 체포해 ICC에 넘기려는 세력이 생길 수도 있다. ICC 제소 추진은 김정은을 최대로 압박하는 것 중 하나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03년부터 2019년까지 17년 연속 결의안을 채택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씨 사살 사건이 국제 인권규범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음에도 ‘공동 제안국’에서 빠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정은은 ‘히틀러 학습효과’가 있다”며 “히틀러도 처형 장면을 녹화했는데, 폐기하지 않아 나중에 그 사실이 알려졌다”고 했다.
히틀러, 쿠데타 가담자 사형 장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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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도 처형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파악됐다. |
공공기관인 독일저항추모관(Memorial to the German Resistance)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히틀러는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일명 ‘발키리 작전’ 가담자들의 사형 장면을 촬영하라고 카메라 팀에 지시했다. 히틀러는 “죽을 사람들의 고통을 촬영하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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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발키리 작전〉의 한 장면. ‘발키리 작전’은 원래 독일에서 반체제 봉기가 발생할 경우 군병력이 나서서 진압하는 치안회복 작전을 의미했다. 하지만 군부 내 나치 저항 세력은 ‘발키리 작전’을 히틀러 암살과 나치 진압에 역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
북아프리카 근무 중 피격돼 오른팔과 왼쪽 손가락 두 개, 한쪽 눈을 잃은 슈타우펜베르크는 폭탄을 설치하고 터뜨리는 훈련을 매일 반복하며 거사일을 기다렸다. 마침내 슈타우펜베르크는 히틀러 앞에 폭탄 가방을 놓는 데 성공했지만 다른 참석자가 회의 진행에 방해된다며 가방을 옆으로 치웠다. 가방은 폭발했지만, 히틀러는 부상만 입고 목숨을 건졌다. 히틀러는 사건에 가담한 7000여 명을 체포했고 이 중 200여 명을 처형했다.
히틀러는 주요 인물은 더욱 잔인하게 죽였고, 이 장면을 녹화했다. 대표적인 게 에르빈 폰 비츠레벤 장군이다. 발키리 작전 실패로 1944년 8월 4일 법정에 선 그는 “너희는 지금 우리를 총살하지만, 몇 달 뒤면 성난 국민 손에 산 채로 독일 거리를 끌려다니게 될 것”이라고 외쳤다. 그는 히틀러의 명령으로 고기 갈고리에 감긴 피아노 전선에 목을 매다는 방식으로 처형됐다. 폰 라베나우 장군은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총탄 세례를 받았다. 잔인한 고문으로 죽인 혁명 세력의 시체를 교도소 문 앞에 매달아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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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인 독일저항추모관(Memorial to the German Resistance)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히틀러는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일명 ‘발키리 작전’ 가담자들의 사형 장면을 촬영하라고 카메라 팀에 지시했다. 사진은 해당 내용이 담긴 문건 일부분이다. |
1891년 뷔르템베르크 출신의 롬멜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뛰어난 전략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종전 후 혼란기에 ‘군대 재정비’를 강조한 히틀러에게 매료돼 그의 경비대장을 지냈다. 하지만 나치스와 나치 독일군 친위대에 대해서는 극히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롬멜에 대한 평가가 늘 엇갈리는 이유다. 이런 사실이 담긴 자료가 있는 독일저항추모관은 ‘발키리 작전’이 벌어진 옛 예비군사령부에 있다. 추모관은 나치에 대한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장소가 됐다. 자료가 존재한다는 것은 히틀러가 미처 처형 영상(사진 포함) 필름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김정은이 히틀러처럼 처형 장면을 사진, 영상 등으로 남기되 이를 통해 확인할 것을 확인하고 곧장 폐기처분 한다는 고위 탈북자의 증언은 사실에 가깝다는 결론이다.
김정은, 히틀러 본받으려 하나?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김정은은 히틀러를 본받으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2013년 1월 8일 자신의 생일을 맞아 고위 간부들에게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선물한 것이 대표적이다.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1923년 뮌헨 폭동으로 수감됐을 때 쓴 책이다. 신의 반(反)유대 및 인종주의 이념을 표방했다. 히틀러 집권 당시에는 나치당원의 필독서로 널리 읽히기도 했다. 독일 당국은 2014년 《나의 투쟁》뿐 아니라 히틀러 저술에 대한 ‘무비판적 출간’을 전면 불허했다.
탈북자 인터넷 매체인 ‘뉴포커스’는 해외에 나온 북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올 1월 주요 간부들에게 하사된 김정은의 선물에는 《나의 투쟁》과 《세계유머집》이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선물을 받은 대상은 노동당 비서와 부장, 제1부부장, 군단장급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책을 선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간부들에게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을 짧은 기간 내에 재건한 히틀러의 ‘제3제국’을 잘 연구하고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전승국들에 포위됐던 독일과 핵실험·장거리미사일 발사 등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북한 상황이 비슷하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으로 보인다.
전 정부 외교·안보 핵심 관계자는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전체주의 국가를 장악한 자신과 유럽대륙을 전쟁 공포로 떨게 했던 제2차 세계대전 전야의 히틀러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뉴포커스’는 또 김정은이 2012년 말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신설하고 실세인 장성택(처형 전)을 위원장에 임명한 것도 “독일의 단결과 사상의 전파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스포츠였다”는 믿음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김정은은 “히틀러의 게르만족 우월성 주창은 출산장려정책에서 잘 나타났다”며 “한 가정 3자녀 낳기 운동을 적극 격려하고 지원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출산장려정책의 총괄 지휘는 김정은의 아내 이설주가 맡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를 ‘조선의 어머니’로 선전하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김정은은 ‘어린 나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히틀러를 모방한 공격적인 언사로 목청을 높이고, 특히 나이 많은 간부에게 더욱 심한 굴욕을 주고 있다고도 했다.
《뉴욕포스트》는 ‘Heil Kim Jong Un!(김정은 만세!)’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기사에서 “김정은이 《나의 투쟁》에 심취해 있다”며 “김정은이 대학 시절 히틀러의 아내 에바 브라운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했고, 북한의 인민보안대장이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했다”고 보도했다.
히틀러와 김정은, 정보 차단 방식 닮아
김정은은 정보를 차단하는 방식도 히틀러와 닮았다. 니콜라이 슈프레켈스 독일 북한인권단체 ‘SARAM(사람)’ 공동대표는 “나치 정권은 매체를 활용해 독일 시민에게 자신들의 이념을 설파하거나 극단적인 선전 활동을 벌였는데, 이는 현재 북한의 현실과 매우 닮았다”고 밝혔다.
“1935년부터 독일 나치당은 당시의 새로운 미디어였던 라디오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독일 국민에게 자신들의 이념을 소개하도록 했고, 1943년도에 1600만 가정에 라디오를 보급했는데 그 목적은 자신들의 프로파간다를 설파할 기회를 갖기 위함이었다. 당시 독일 주민들이 외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것은 극도의 불법행위로 간주했고, 적발 시에는 청취자나 그 가족 모두가 강제수용소에 끌려가기도 했다. 현재 북한도 다를 바 없다.”
그는 “미디어 사용으로 히틀러에 대한 강렬한 추종 집단을 만들어내고 그가 초자연적 능력을 지녔다는 신화까지도 만들어내는 점은 북한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했다.
실제 북한이 노동당 중앙당 간부와 당원 및 각급 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김정은 선전자료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에 대한 위대성 자료〉에는 김정은이 해외에서 2년간 유학하면서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숙달했고, 중국어와 일본어, 러시아어도 학습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세 살 때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한자(漢字) 간체자로 지은 ‘광명성 찬가’를 한자 정자로 척척 써 내려 갔다는 내용도 있다. 또한 세 살 때 할아버지부터 전해 내려온 권총 한 자루를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물려받고 사격에서 백발백중의 솜씨를 보였다는 기록도 있다.
슈프레켈스 공동 대표는 나치 독일과 북한은 교육시스템도 유사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나치 독일과 북한 모두 학교에서 일반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대신 ‘이념’을 가르쳤다. 나치 독일은 나치 이념을, 북한은 백두혈통 ‘이념’을 세뇌했다.”
뻔한 거짓말을 태연하게 반복
‘히틀러 앓이’를 해서인지, 김정은은 히틀러와 비슷한 언행을 보이고 있다. 좋게 말해 언행이지, 뻔한 거짓말을 태연하게 반복하는 게 데칼코마니다.
유화주의자인 영국 체임벌린 총리는 나치 독일이 체코를 침공하려 하자 히틀러와의 협상을 통해 전쟁을 막으려 했다. 1938년 9월 14일 히틀러에게 전문(電文)을 보냈다. 체임벌린 총리는 독일 뮌헨에서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총리와 함께 히틀러와 협상을 벌였다.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에게 체코의 다른 지역을 침공하지 말라는 조건을 내걸면서 독일인 거주 지역인 수데텐란트를 할양하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고, 히틀러는 이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4개국 지도자들은 뮌헨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당시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에게 체코의 영토 일부를 양보해 유럽을 전쟁의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는 뮌헨회담 합의문을 흔들며 “여기 이 시대의 평화를 담아왔다”고 자랑했다. 체임벌린은 히틀러가 국제사회의 여론 때문에 뮌헨 평화협정을 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히틀러의 ‘위장 평화’ 공세에 속은 것이다.
실제로 히틀러는 수데텐란트를 차지한 데 이어 1939년 3월, 체코 전역을 점령해 뮌헨 평화협정문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히틀러는 이어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게 됐다. 이로 인해 ‘적의 도발 앞에서 평화를 애걸하면 오히려 비극을 초래한다’는 ‘뮌헨의 교훈(lesson of Munich)’이라는 국제정치학 용어까지 만들어졌다.
열병식 때 보인 김정은의 눈물이 진실이라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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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앞에서는 눈물을 쏟지만, 뒤로는 처형 장면을 꼼꼼히 살펴보는 김정은은 정말 무서운 인물이다.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8일 미국 뉴욕에서 화상으로 열린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례만찬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종전(終戰)선언을 위해 양국(한미)이 협력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유엔총회 화상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은 종전선언”이라고 한 지 보름 만에 다시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이다.
당시 유엔총회 연설이 전 세계에 방송되기 4시간 전 북한군의 해수부 공무원 총살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정부가 제때 대응하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정치권은 물론 미국 조야에서도 ‘종전선언’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도 ‘비핵화’ 언급 없이 ‘종전선언’만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과도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이해하며,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갈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평화에 집착하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이 상황에서 다시 ‘종전선언’을 강조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해선 더는 시비 걸지 말라는 사실상 ‘성역화 선언’이라는 해석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종전선언 발언의 부적절 논란에 대해 “소모적 논란에 휩싸이고 싶지 않다”며 “대한민국 정치 지도자가 평화를 이야기하면 안 되느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10일 0시부터 약 3시간가량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진행된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이 “북과 남이 두 손 맞잡는 날이 찾아오길 기원한다”고 말한 것을 그대로 믿을 것이다. 또 그가 북한 주민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면서 흘린 눈물에 감동했을 것이다. 김정은이 정말 무서운 게 이런 점이다. 대외적으론 주민 앞에서 눈물을 쏟지만, 뒤로는 처형 장면을 꼼꼼히 살펴보는 그의 이중성은 상대를 적폐로 몰아붙이면서 뒤에서는 더한 것도 서슴없이 하는 국내 특정 세력과 묘하게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