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문점 기념품 판매소에서는 북한산 비아그라 판매
⊙ 평양에서는 식당배 성황…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돈주를 비롯한 신흥 부유층이 고객
⊙ 당국이 운영하는 평양의 쇼핑몰 내에서도 암달러 환율로 환전… 시장의 승리 보여줘
⊙ 평양에서는 식당배 성황…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돈주를 비롯한 신흥 부유층이 고객
⊙ 당국이 운영하는 평양의 쇼핑몰 내에서도 암달러 환율로 환전… 시장의 승리 보여줘
- 평양에서 성업 중인 식당배 대동강호의 식당. 관광객은 물론 평양의 신흥 부유층들이 많이 이용한다.
김정은이 백두산과 원산을 콕 집었다. 관광지로 본격 개발을 하라고 했다. 2019년 1월 1일에 발표한 신년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올해에도 조국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거창한 대건설사업들을 통이 크게 벌려야 합니다. 전당, 전국, 전민이 떨쳐나 삼지연군을 산간 문화도시의 표준, 사회주의 리상향으로 훌륭히 변모시키며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와 새로운 관광지구를 비롯한 우리 시대를 대표할 대상건설들을 최상의 수준에서 완공하여야 합니다.”
관광은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니다. 북한으로서는 합법적으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통로다. 문제는 북한의 외화(外貨) 사정이 최근 들어 급속히 나빠졌다는 사실이다. 김정봉 한동대 석좌교수의 분석이다.
“유엔의 경제 제재가 본격화되기 전, 북한의 매년 수출액은 평균 약 30억 달러, 수입액은 약 40억 달러였다. 40억 달러어치 물품을 수입하면, 풍족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북한 장마당도 그런대로 돌아가고 대량 아사도 막을 수 있다. 적자 폭 10억 달러는 조총련의 상납이나 벌목공, 무기 수출, 해외 식당 등을 통해 그럭저럭 메꿔 왔다. 문제는 2017년부터다. 수입액은 약간 줄어 37억7000만 달러인데 수출액은 16억5000만 달러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20억 달러 적자가 난 것이다. 2018년에는 사정이 더 안 좋다. 3/4분기까지의 수출액이 1억5000만 달러다. 연말까지 합산해도 2억 달러에도 못 미칠 것이다.”
김 교수는 “흉년이 들어 농업 생산량도 2017년에 비해 3.4%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에서, 공업 생산이 아니라 농업 생산이 3% 이상 줄어들었다는 것은 엄청난 타격”이라고 진단한다. 금년도 부족분이 150만 톤 정도로 당장 올해 여름 북한 주민들의 식량 사정이 급속히 나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관광에 목매는 김정은
그렇다면 2017년 수입이 반 토막이 났는데도 북한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2016년 수입 물량이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에는 김정은이 나머지 비자금을 풀고, 군부대나 각급 기관의 비상창고까지 열어가며 버틴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있는 돈을 다 써가며 물건을 수입했다. 수입물량을 줄이지 않았기에 장마당에서 상품이 사라지지 않았다.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곧 현금이 들어올 것’이라고 오판했는지도 모른다. 개성·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철도 차량기지 건설, 선박 블록공장 건설, 제2의 개성공단인 해주공단 조성 등의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이다. 북한이 평양~신의주 간 고속철 건설을 요구했다는 소문도 있다.
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은의 외환보유고는 지금 거의 바닥이 났다. 선물정치를 통해 측근들의 충성심을 유도하는 방식을 더 이상은 쓸 수가 없다. 유사시 외국으로부터 식량을 들여올 비상금조차 부족하다. 이제는 정말로 돈이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관광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현재로서는, ‘현금’을 만질 수 있고 ‘급전’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현지지도’ 횟수, 다그침의 빈도와 강도 등을 분석하면 그가 직면한 ‘외화고갈’의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도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4박 5일에 88만~170만원
최근 들어 중국인들을 상대로 한 북한 관광패키지 인터넷 모객이 다시 시작되었다. 웜비어 사망 사건과 관련이 있는 여행사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중국에서 출발하여 백두산, 마식령 스키장, 평양 등을 둘러보는 코스다. 북한의 연간 관광객 유치 규모는 중국인 10만~20만명, 서양 관광객 약 5000명 정도다. 가격은 다소 비싼 편이다. 비행기 편으로 평양에 들어가 지방 여러 곳을 다니는 4박 5일 상품 가격은 88만원부터 170만원까지다. 열차 편은 이것보다 조금 싸다. 신의주 당일관광 상품도 있다. 가이드 팁과 각종 팁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가격이라 실제 비용은 이것보다 더 많이 든다고 한다.
김정은이 생각하는 최상의 방안은 대한민국 관광객을 받는 것이다. 북한은 과거 금강산과 개성 관광을 통해 상당한 돈을 벌었다. 하지만 가장 접근성이 좋은 한 곳은 개방하지 않았다. 판문점이다. 북한은 지금도 대한민국 국민의 판문점 관광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판문점 정전협정조인장
지난가을에 북한을 다녀온 한 외국인 관광객으로부터 사진을 받았다. 그는 평양에 숙박하며 당일 코스로 판문점도 다녀왔다. 판문점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정전협정조인장’이었다고 한다. 당시 회담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비석을 세워 ‘1950년 6월 25일 조선에서 침략전쟁을 도발한 미제국주의자들은 영웅적 조선 인민 앞에 무릎을 꿇고 이곳에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조인하였다’는 문구를 새겼다. 이것이 북한의 역사인식이다. 그들은 외국인 관광객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6·25는 북침(北侵)이다. 정전협정 체결은 북한의 완벽한 승리다.’ 중국이나 소련의 도움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없다. 그야말로 ‘정신승리’의 표본이다.
김정일·김정은의 현지지도 팻말도 붙어 있다. 김정은의 방문날짜가 2012년 3월 3일인 것을 보면 2018년 두 차례 열린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때는 이곳에 들르지 않은 모양이다. 이 비석을 철거할 수는 없고, 보여주자니 ‘진실논쟁’이 벌어질까 두렵고….
북한이 판문점을 대한민국 국민에게 관광지로 개방하지 않은 진의가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들도 나름 ‘계산’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어쩌면 관광객과 섞여, 군인이나 상점 복무원들이 ‘필사의 탈북’을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판문점에는 ‘정치’뿐 아니라 ‘경제’도 있다. 기념품 판매소에서는 티셔츠·한복·술·담배·건강식품 등을 판다. 북한판 비아그라도 있다고 한다. 북한 돈보다는 외화를 선호한다. 외화벌이는 중요한 사업이니, 관광객의 동선을 따라 실외에도 가판대를 만들어놓고 물건을 판다. 김일성 저작집, 관광객용 북한 여권 복제품, 우표 등이 주력 상품이지만 주로 팔리는 것은 과일 등 간식이라고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기 때문이리라.
물론 판문점 안에는 식당도 있다. 그날의 메뉴는 삼계탕 백반이었다고 한다. 외화벌이용 최고급 관광지의 식단으로는 소박한 모습이다.
대동강 식당배
물론 평양의 음식은 이것보다 상급이다. 하지만 평양은 ‘다른 나라’다. 한국으로 치면 주민등록증의 명칭이 거주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 평양은 ‘시민증’이고 평양 이외 지역은 ‘공민증’이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으니, 평양에서 살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평양에 살며 ‘시민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특권이며 신분의 상징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평양과 지방 간에는 호텔이나 식당, 상점 등 모든 시설의 수준 차이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한강 유람선이 다니듯이 평양에는 지금 대동강 유람선이 인기다. 점심시간에 2회, 저녁시간에 2회 출항하며 1시간 동안 대동강을 유람한다(저녁 9시30분 출발, 코스는 30분만 운항).
‘식당배’의 2층은 전체가 연회장이다. 결혼식·생일·단체모임 등이 주요 대상이며 맞춤형 요리, 대동강 맥주가 제공된다.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돈주를 비롯한 신흥 부유층이 고객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두 가지다. 첫째, 다양한 형태의 ‘개인행사’가 이뤄진다는 것. 둘째, 대동강 식당배의 연중무휴 운행이 가능할 만큼 부자 고객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
외국인 관광객이 평양에 가서 가장 많이 투숙하는 곳은 고려호텔이다. 객실에는 머리 물비누(샴푸)·머리영양제(린스)가 비치되어 있다. 지하에는 다양한 서비스 시설이 있다. 수영장·미용실·이발소·마사지·피트니스다. 최근에는 스크린골프장도 생겼다. 북한이 한때 ‘가장 자본주의적이며 토지소모성 놀음’이라며 극렬 비난하던 스포츠가 바로 골프다. 세월이 변했음을 실감하는 광경이다.
사극 〈계월향〉의 실패
식당에서는 생음악을 연주한다. 지난 몇 년 사이, 이곳의 연주자들이나 해외 식당의 북한 공연단 수준이 상당히 업그레이드되었다. 한류(韓流)의 영향이다. 2007년 노무현(盧武鉉) 당시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 김정일(金正日)에게 한류드라마 DVD를 선물했다.
김정일이 “잘 만든 것 같다”고 〈대장금〉을 칭찬한 직후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 사극(史劇) 바람이 불었다. 그 이전에는 여성과 청년들이 ‘한국의 현대물’을 보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북한 중장년층 남성들이 한류의 시청자로 대거 유입된 것이다. 단속을 아무리 강화해도 한국 드라마의 열풍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장군님이 칭찬한 것 아니냐”라며 단속반에게 대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방법은 하나였다. 남조선의 드라마를 능가하는 자체 제작물을 만드는 것. 김정일의 직접 지시로 조선예술영화촬영소가 〈계월향(桂月香)〉을 제작했다. 임진왜란 때 평안도 병마절도사 김응서(金應瑞)의 애첩(愛妾)이었는데, 왜장(倭將)에게 능욕을 당하자 적장을 속여 김 장군이 그의 목을 베게 한 뒤 자결했다는 의기(義妓)의 스토리다. 기획 단계부터 소문이 돌고 기대감을 키웠으며 세트장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촬영을 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예정되었던 20부를 채우지 못하고 2011년 6월 중간 종영된다. 김정일이 “재미가 없다. 싹 걷어치우라”고 화를 냈다고 한다. 일반 주민들도 “이것도 연속극이라고 만들었느냐”고 비판했다. 이전에 제작한 드라마에 비해서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김정일을 포함, 한류드라마에 중독된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계월향〉이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까닭이다. 독점적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면 독점적 공급망(TV, 영화관)을 통해 작품을 배급하고, 별다른 볼거리가 없던 관객들이 알아서 시청하고 자리를 채워주던 좋았던 시절은 이미 예전에 지나가 버린 것이다.
‘손으로 쓴 노래책’
이후 북한에서는 드라마나 영화를 거의 제작하지 않는다.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작품을 만들어봐야 아무도 볼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이다. 시장의 선택은 한국 드라마였다.
그래서 과거 같았으면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진출했을 인재들이 식당 연주자로 눈높이를 낮춰 직업을 찾는다.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도 전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노래방도 고려호텔에서 인기 있는 시설 가운데 하나다. 다만,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있다. ‘손으로 쓴 노래책’이다. 노래 제목과 번호를 수기(手記)로 적었다. 프린터가 없는 것인지, 프린터가 있어도 사용이 어렵다는 뜻인지, 손으로 일일이 쓰는 것이 더 싸게 먹히는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최고급 국제호텔에서도 디지털시대와 아날로그시대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버젓이 혼재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화장을 안 한 평양의 민얼굴인지도 모른다.
광복지구 상업중심은 북한의 신흥 자본가들이 즐겨 찾는다는 쇼핑몰이다. TV·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부터 식품·어린이 용품·자전거·장판재까지 다양한 물품을 판다. 가전제품은 거의 다 중국제다. 푸드코트도 인기다. 한식·양식·중식 등 다양한 음식을 한곳에서 맛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두·오뎅·볶음밥뿐 아니라 크로켓과 와플도 있다. 닭튀김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선호하는 인기상품이다.
공업품뿐 아니라 서비스를 판매하는 상점도 있다. ‘사진 및 동영상 촬영’ 선간판은 꽃장식 디자인을 가미해 인화한 사진으로 고객들을 유혹한다.
‘미 딸라 8150원’
광복지구 상업중심에는 환전소도 있다. 《월간조선》 2018년 11월호에서 썼듯이 북한의 공식 환율은 1달러당 108원, 암달러 시세는 8000원 내외다. ‘미 딸라 8150원’은 그러므로 시장가치를 제대로 반영한 적절한 교환비율이다.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평양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당국이 직접 관리·운영하는 종합쇼핑몰에서 공개적으로 암달러 시세로 환전이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북한 당국이 내세우는 ‘공식 환율’이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것을 대놓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노동당은 틀렸다’는 대자보의 숫자 버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북한 당국이 더 이상은 시장을 누를 수 없고, 그 점을 당국이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여서다. 돈의 힘은 무서운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환율로는 북한 체제의 핵심 세력인 평양 시민들조차 어떤 거래도 하지 않는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전체주의와 독재권력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통제력을 벗어난 힘 혹은 영향력이 생기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자신들의 철권통치가 붕괴하는 전조(前兆)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시장은, 암시장이든 장마당이든 평양 한복판의 공식 상점이든, 이미 북한 당국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노동당은 이제 장마당의 적수가 아니다. 이것은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역사의 흐름이다.
“미국·남한에서 대통령 잘못 뽑아 우리가 생고생”
평양 출신으로 17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탈북한 김길선씨에 의하면 2018년 말부터 평양에서 이상징후가 보인다고 한다. ‘일주일 공급 대상(일주일마다 정해진 물자를 받는 것)’인 최특권층 중앙당 비서급에게 지급되던 물량이 3분의 1이 줄었다는 것이다. 우리로 치자면 중앙정부 장·차관 월급의 30%가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다. 자식들이 놀러 오면 그전에는 손에 들려 보낼 것이 조금 있었는데, 이제는 자기들 먹고살기도 빠듯해졌다고 푸념을 한다고 한다. 중앙당 비서급들도 뇌물을 받지 않고서는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해외 사업을 위해 외국으로 출장을 나온 북한 관리가 “미국이나 남한에서 대통령을 잘못 뽑아 우리가 생고생”이라고 말했다는 소문도 있다. ‘지도자를 뽑는 자유’조차 없는 북한에 대해 그 관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북한 내부의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대다수의 간부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엔의 경제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생고생’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에게 충고한다. 이제는 억지 주장을 그치고 핵무기 개발자금을 민생 쪽으로 돌리기 바란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래야 제2의 ‘고난의 행군’을 막을 수 있다. ‘광복지구 상업중심’에는 북한의 억지 주장이 아니라 국제 시세를 정확하게 반영한 환율표가 오늘도 매대 곳곳에 붙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올해에도 조국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거창한 대건설사업들을 통이 크게 벌려야 합니다. 전당, 전국, 전민이 떨쳐나 삼지연군을 산간 문화도시의 표준, 사회주의 리상향으로 훌륭히 변모시키며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와 새로운 관광지구를 비롯한 우리 시대를 대표할 대상건설들을 최상의 수준에서 완공하여야 합니다.”
관광은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니다. 북한으로서는 합법적으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통로다. 문제는 북한의 외화(外貨) 사정이 최근 들어 급속히 나빠졌다는 사실이다. 김정봉 한동대 석좌교수의 분석이다.
“유엔의 경제 제재가 본격화되기 전, 북한의 매년 수출액은 평균 약 30억 달러, 수입액은 약 40억 달러였다. 40억 달러어치 물품을 수입하면, 풍족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북한 장마당도 그런대로 돌아가고 대량 아사도 막을 수 있다. 적자 폭 10억 달러는 조총련의 상납이나 벌목공, 무기 수출, 해외 식당 등을 통해 그럭저럭 메꿔 왔다. 문제는 2017년부터다. 수입액은 약간 줄어 37억7000만 달러인데 수출액은 16억5000만 달러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20억 달러 적자가 난 것이다. 2018년에는 사정이 더 안 좋다. 3/4분기까지의 수출액이 1억5000만 달러다. 연말까지 합산해도 2억 달러에도 못 미칠 것이다.”
김 교수는 “흉년이 들어 농업 생산량도 2017년에 비해 3.4%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에서, 공업 생산이 아니라 농업 생산이 3% 이상 줄어들었다는 것은 엄청난 타격”이라고 진단한다. 금년도 부족분이 150만 톤 정도로 당장 올해 여름 북한 주민들의 식량 사정이 급속히 나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관광에 목매는 김정은
그렇다면 2017년 수입이 반 토막이 났는데도 북한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2016년 수입 물량이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에는 김정은이 나머지 비자금을 풀고, 군부대나 각급 기관의 비상창고까지 열어가며 버틴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있는 돈을 다 써가며 물건을 수입했다. 수입물량을 줄이지 않았기에 장마당에서 상품이 사라지지 않았다.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곧 현금이 들어올 것’이라고 오판했는지도 모른다. 개성·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철도 차량기지 건설, 선박 블록공장 건설, 제2의 개성공단인 해주공단 조성 등의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이다. 북한이 평양~신의주 간 고속철 건설을 요구했다는 소문도 있다.
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은의 외환보유고는 지금 거의 바닥이 났다. 선물정치를 통해 측근들의 충성심을 유도하는 방식을 더 이상은 쓸 수가 없다. 유사시 외국으로부터 식량을 들여올 비상금조차 부족하다. 이제는 정말로 돈이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관광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현재로서는, ‘현금’을 만질 수 있고 ‘급전’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현지지도’ 횟수, 다그침의 빈도와 강도 등을 분석하면 그가 직면한 ‘외화고갈’의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도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4박 5일에 88만~170만원
최근 들어 중국인들을 상대로 한 북한 관광패키지 인터넷 모객이 다시 시작되었다. 웜비어 사망 사건과 관련이 있는 여행사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중국에서 출발하여 백두산, 마식령 스키장, 평양 등을 둘러보는 코스다. 북한의 연간 관광객 유치 규모는 중국인 10만~20만명, 서양 관광객 약 5000명 정도다. 가격은 다소 비싼 편이다. 비행기 편으로 평양에 들어가 지방 여러 곳을 다니는 4박 5일 상품 가격은 88만원부터 170만원까지다. 열차 편은 이것보다 조금 싸다. 신의주 당일관광 상품도 있다. 가이드 팁과 각종 팁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가격이라 실제 비용은 이것보다 더 많이 든다고 한다.
김정은이 생각하는 최상의 방안은 대한민국 관광객을 받는 것이다. 북한은 과거 금강산과 개성 관광을 통해 상당한 돈을 벌었다. 하지만 가장 접근성이 좋은 한 곳은 개방하지 않았다. 판문점이다. 북한은 지금도 대한민국 국민의 판문점 관광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판문점 정전협정조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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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정전협정조인장. 판문점은 한국 국민에게는 아직 개방되지 않은 관광지이다. |
김정일·김정은의 현지지도 팻말도 붙어 있다. 김정은의 방문날짜가 2012년 3월 3일인 것을 보면 2018년 두 차례 열린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때는 이곳에 들르지 않은 모양이다. 이 비석을 철거할 수는 없고, 보여주자니 ‘진실논쟁’이 벌어질까 두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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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에 있는 기념품 판매소. 김일성 저작집 등이 보인다. |
판문점에는 ‘정치’뿐 아니라 ‘경제’도 있다. 기념품 판매소에서는 티셔츠·한복·술·담배·건강식품 등을 판다. 북한판 비아그라도 있다고 한다. 북한 돈보다는 외화를 선호한다. 외화벌이는 중요한 사업이니, 관광객의 동선을 따라 실외에도 가판대를 만들어놓고 물건을 판다. 김일성 저작집, 관광객용 북한 여권 복제품, 우표 등이 주력 상품이지만 주로 팔리는 것은 과일 등 간식이라고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기 때문이리라.
물론 판문점 안에는 식당도 있다. 그날의 메뉴는 삼계탕 백반이었다고 한다. 외화벌이용 최고급 관광지의 식단으로는 소박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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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식당배 ‘대동강호’의 ‘봉사안내판’. 각종 연회장소로 많이 이용된다. |
한강 유람선이 다니듯이 평양에는 지금 대동강 유람선이 인기다. 점심시간에 2회, 저녁시간에 2회 출항하며 1시간 동안 대동강을 유람한다(저녁 9시30분 출발, 코스는 30분만 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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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호텔 지하에는 실내 골프연습장도 들어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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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호텔 지하에는 다양한 서비스 시설들이 있다. |
사극 〈계월향〉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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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호텔 지하 식당에서는 생음악 연주도 한다. |
김정일이 “잘 만든 것 같다”고 〈대장금〉을 칭찬한 직후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 사극(史劇) 바람이 불었다. 그 이전에는 여성과 청년들이 ‘한국의 현대물’을 보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북한 중장년층 남성들이 한류의 시청자로 대거 유입된 것이다. 단속을 아무리 강화해도 한국 드라마의 열풍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장군님이 칭찬한 것 아니냐”라며 단속반에게 대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방법은 하나였다. 남조선의 드라마를 능가하는 자체 제작물을 만드는 것. 김정일의 직접 지시로 조선예술영화촬영소가 〈계월향(桂月香)〉을 제작했다. 임진왜란 때 평안도 병마절도사 김응서(金應瑞)의 애첩(愛妾)이었는데, 왜장(倭將)에게 능욕을 당하자 적장을 속여 김 장군이 그의 목을 베게 한 뒤 자결했다는 의기(義妓)의 스토리다. 기획 단계부터 소문이 돌고 기대감을 키웠으며 세트장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촬영을 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예정되었던 20부를 채우지 못하고 2011년 6월 중간 종영된다. 김정일이 “재미가 없다. 싹 걷어치우라”고 화를 냈다고 한다. 일반 주민들도 “이것도 연속극이라고 만들었느냐”고 비판했다. 이전에 제작한 드라마에 비해서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김정일을 포함, 한류드라마에 중독된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계월향〉이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까닭이다. 독점적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면 독점적 공급망(TV, 영화관)을 통해 작품을 배급하고, 별다른 볼거리가 없던 관객들이 알아서 시청하고 자리를 채워주던 좋았던 시절은 이미 예전에 지나가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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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호텔 노래방에 있는 손으로 쓴 ‘노래방 책’. |
그래서 과거 같았으면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진출했을 인재들이 식당 연주자로 눈높이를 낮춰 직업을 찾는다.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도 전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노래방도 고려호텔에서 인기 있는 시설 가운데 하나다. 다만,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있다. ‘손으로 쓴 노래책’이다. 노래 제목과 번호를 수기(手記)로 적었다. 프린터가 없는 것인지, 프린터가 있어도 사용이 어렵다는 뜻인지, 손으로 일일이 쓰는 것이 더 싸게 먹히는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최고급 국제호텔에서도 디지털시대와 아날로그시대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버젓이 혼재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화장을 안 한 평양의 민얼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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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거리 ‘상업중심(쇼핑몰)’은 신흥 자본가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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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거리 ‘상업중심’에 있는 푸드코트는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 있어 인기다. |
공업품뿐 아니라 서비스를 판매하는 상점도 있다. ‘사진 및 동영상 촬영’ 선간판은 꽃장식 디자인을 가미해 인화한 사진으로 고객들을 유혹한다.
‘미 딸라 81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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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거리 ‘상업중심’은 당국이 운영하는 쇼핑몰이지만, 환전소에서는 암달러 시세로 환전을 한다. |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평양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당국이 직접 관리·운영하는 종합쇼핑몰에서 공개적으로 암달러 시세로 환전이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북한 당국이 내세우는 ‘공식 환율’이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것을 대놓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노동당은 틀렸다’는 대자보의 숫자 버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북한 당국이 더 이상은 시장을 누를 수 없고, 그 점을 당국이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여서다. 돈의 힘은 무서운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환율로는 북한 체제의 핵심 세력인 평양 시민들조차 어떤 거래도 하지 않는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전체주의와 독재권력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통제력을 벗어난 힘 혹은 영향력이 생기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자신들의 철권통치가 붕괴하는 전조(前兆)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시장은, 암시장이든 장마당이든 평양 한복판의 공식 상점이든, 이미 북한 당국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노동당은 이제 장마당의 적수가 아니다. 이것은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역사의 흐름이다.
“미국·남한에서 대통령 잘못 뽑아 우리가 생고생”
평양 출신으로 17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탈북한 김길선씨에 의하면 2018년 말부터 평양에서 이상징후가 보인다고 한다. ‘일주일 공급 대상(일주일마다 정해진 물자를 받는 것)’인 최특권층 중앙당 비서급에게 지급되던 물량이 3분의 1이 줄었다는 것이다. 우리로 치자면 중앙정부 장·차관 월급의 30%가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다. 자식들이 놀러 오면 그전에는 손에 들려 보낼 것이 조금 있었는데, 이제는 자기들 먹고살기도 빠듯해졌다고 푸념을 한다고 한다. 중앙당 비서급들도 뇌물을 받지 않고서는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해외 사업을 위해 외국으로 출장을 나온 북한 관리가 “미국이나 남한에서 대통령을 잘못 뽑아 우리가 생고생”이라고 말했다는 소문도 있다. ‘지도자를 뽑는 자유’조차 없는 북한에 대해 그 관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북한 내부의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대다수의 간부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엔의 경제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생고생’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에게 충고한다. 이제는 억지 주장을 그치고 핵무기 개발자금을 민생 쪽으로 돌리기 바란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래야 제2의 ‘고난의 행군’을 막을 수 있다. ‘광복지구 상업중심’에는 북한의 억지 주장이 아니라 국제 시세를 정확하게 반영한 환율표가 오늘도 매대 곳곳에 붙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