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추적] 몽골 대통령의 ‘북한 비판’ 연설 들여다보니 : 월간조선

2013년 10월 28일, 사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3박 4일간 머물렀다. 당시 내용은 국내 언론에 단신 처리됐다. 조선중앙통신에 나온 내용만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지나간 몽골 대통령의 방북은 11월 15일 갑자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이 방북 마지막 날인 10월 31일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독재를 비난하는 연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소식의 출처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일부 기사를 보면 일본 NHK의 보도를 참고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도 초점은 ‘독재 비난’

MBC는 11월 15일 <뉴스데스크>에서 <북(北) 간 몽골 대통령, ‘독재 비난’ 연설… 학생들 기립박수>란 제목으로 몽골 대통령의 방북 연설을 보도했다. 이어 자유와 인권이 강조된 해당 연설문은 그 내용이 사전에 조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중앙일보》는 16일에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이 거침없는 발언을 했다는 취지의 기사를 작성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은 주체사상형 지식인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폭정’이나 ‘인민 자유’ 같은 표현이 담긴 강연이 이뤄진 건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해당 발언이 교수와 학생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을 덧붙였다. 《문화일보》는 21일 한 발 더 나가 <북·몽골 ‘콘크리트 동맹’ 균열 조짐 왜?>란 제목의 기사에서 몽골 대통령이 방북한 이후로 오히려 양국의 관계가 멀어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 근거로 두 차례의 방북 연설에서 나온 몽골 대통령의 불만 섞인 발언을 거론했다. SBS 또한 해당 연설이 조성한 분위기 탓에 몽골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지 못하고 귀국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정상회담이 거부당한 것을 몽골 측이 불쾌히 여겨 ‘연설에서 작심하고 할 말을 했다’는 관측을 실었다.

기사 내용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모든 기사가 “폭정은 영원할 수 없다”는 발언을 화두로 제시하며 몽골 대통령이 자유와 인권을 주장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는 사실상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의도를 함축하고 있다고 했다.

과연 연설문의 골자와 그에 담긴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의 진의(眞意)는 무엇일까? 우선 그의 연설문 전문(번역본)을 보자. 출처는 몽골 대통령 홈페이지(www.president.mn)다.

사히아긴 엘베그도르지

자유롭게 사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며 영원한 힘이다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의 학자, 교수, 학생들에게 따뜻한 인사말을 전달하고자 한다.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해 몽골의 외교정책 및 몽골과 북한간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역사적인 기회를 갖게 돼서 기쁘다.

간단히 역사부터 말하자면…

몽골은 평화를 사랑하고 자주적이며, 다각적인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는 개방된 국가이다. 몽골의 정책은 수세기 동안 지속된 전통을 갖고 있다. 대부분 알다시피, 13~14세기에 몽골 사람들은 대제국을 건설했다. 당시 몽골 제국은 정책을 만들고 성문법(Ikh Zasag)을 통해 주권을 행사했다. 그때 몽골 사람들은 자유무역을 추진하고 열린 외교정책을 펼쳤다.

학자들은 당시 동양과 서양 세계, 아시아와 유럽이 진정으로 연결된 때가 바로 몽골 제국의 집권기라고 주지(周知)하고 있다. 위대한 몽골 제국은 신앙과 창조의 자유를 존중했다. 또한 아시아, 유럽, 그리고 중동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다. 진정한 의미의 외교적 면책권을 정립하고 그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바로 몽골의 사절단, 특사, 그리고 외교관들이다. 여러분들은 외교 사절단에 대한 응대의 일환으로 몽골 특사와 외교관들이 금이나 은, 혹은 구리나 나무로 된 ‘게레게(패자, gerege)’를 받았다는 사실을 들어봤을 것이다. 게레게에는 대표단과 외교사절의 자유로운 통행과 여행을 보장하고, 그 소유자들에게 면책권을 부여한다는 칸 황제의 칙령이 새겨져 있었다.

그 당시는 몽골 사람들이 다른 국가들과 신뢰성 깊은 관계를 맺고, 신용과 확신을 바탕으로 그 국가들과 대화에 참여하려고 노력한 시기이다. 나는 몽골 제국이 결코 정당한 사유 없이는 전쟁을 벌인 적이 없다고 말하고자 한다. 몽골은 건설적이고 찬란한 세기를 보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붕괴와 분열, 그리고 쇠락의 역사를 겪기도 했다.

현대의 몽골은 1911년 12월에 자유와 독립을 되찾았다. 자유와 독립을 선언한 이후 몽골은 매우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펼쳤고, 1961년에는 유엔(UN)에 가입했다.

몽골 외교와 국내 정치의 전체적 본질에 대해…

몽골의 국내 정치의 몇몇 중요한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몽골 외교에 대한 설명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몽골의 외교와 국내 정치는 전체론적이며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에 대해서…

몽골은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는 국가로서 법치주의를 지지하며 개방정책을 추구한다. 몽골은 근본적인 인권, 구체적으로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그리고 자신의 선택으로 살아갈 권리를 소중하게 여긴다.

나는 자유의 힘을 믿는다. 자유는 모든 개인 남녀에게 주어진 자산이다. 자유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발전 기회를 발견하고 실현하게 하며, 이는 인간 사회를 진보와 번영으로 이끈다. 자유로운 사람들은 문제의 해결 방법을 스스로 구하려 한다.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고만 한다. “다른 사람의 선택에 따라 사는 것이 아무리 달콤할지라도, 그보다 더 나은 것은 고통이 따를지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고 몽골 사람들은 말한다.

폭정은 영원할 수 없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갈망은 영원한 힘이다. 1990년 몽골은 유리창 한 조각도 깨뜨리지 않고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채 정치와 경제 체제의 개혁을 동시에 이루어 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20년 전 몽골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민간부문은 10%가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80%가 넘는다. 이로 보아 자유 사회는 달성하기 위한 목표이기 이전에 살아 나가기 위한 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회의 자유를 강화하고 그것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부모님이 매일 아침마다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 주는 것처럼, 자유 사회에서 병폐와 찌든 때를 벗겨 내는 것은 대단히 귀찮고도 일상적인 일이다.

오늘날 몽골은 사법 개혁에 결연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부패는 국가 발전에 치명적인 방해 요소이다. 몽골은 부패에 일말의 자비도 허락하지 않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우리는 결점을 감추지 않는다. 우리의 실수와 우리가 배운 교훈들은 외부에 모두 공개된다. 자유는 우리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동시에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체계이다. 자유와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도정은 그 자체로 배움의 과정이다. 나 역시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나는 목자 집안에서 8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나는 우리 국민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공공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한다.

사형 제도, 비핵국 지위, UN으로부터 배운 교훈에 대해

우리는 가르칠 것도, 설교할 것도 없다. 그저 실수로부터 배운 것들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할 뿐이다. 오늘날 몽골은 많은 도전과 쉽지 않은 결정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 내기 위한 우리의 정책은 수많은 국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좀 더 개방적이고 투명해지고 있다. 몽골은 한 개인의 생명권을 최고의 가치로서 소중히 여긴다. 2009년 6월부터 몽골은 사형 제도를 전혀 실시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사형 제도의 폐지를 지지할 것이다.

21년 전에 몽골은 비핵화 지대임을 공언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은 서면상으로 몽골의 비핵국 지위를 승인했다. 몽골은 정치적, 외교적, 그리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국가의 안보를 보장하기로 했다. 오늘날 몽골은 193개의 유엔 회원국들 중 173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

몽골은 국내뿐만 아니라 다자간 포럼에서도 적극적인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몽골과 북한 간의 관계에 대해…

이제 잠시 몽골과 북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몽골과 한민족의 교류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근 방북 시 나는 역사적인 유적지인 공민왕의 무덤에 들렀다. 고려의 왕이었던 공민왕과 그의 몽골인 아내 사이에서 펼쳐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서로에 대한 존경심에 대해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몽골과 북한은 지금까지도 좋은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관계는 우리 훌륭한 선조들의 업적과 공헌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힘든 시기에 서로를 저버리지 않았다

몽골은 북한과 두 번째로 수교를 맺은 국가이다. 1948년 10월 15일에 몽골과 북한은 상호인정협정을 맺었다.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는 두 나라 모두 각각 대사관을 개설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에 파견된 첫 번째 몽골 대사는 몽골의 유명한 정치인으로서 몽골인민대회의 의장으로 수년간 재임했던 잠스랑인 삼부(Jamsrangiin Sambuu)이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은 주북 대사들의 안전을 위해 북한을 떠날 것을 권했지만 삼부 대사는 홀로 북한에 남아 “우리는 친구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나는 이 힘든 시기를 김일성 동무와 함께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일성 수령은 북한에 전후(戰後) 복구를 위한 광범위한 재건 사업이 벌어지고 있던 1956년에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가 1988년에 두 번째로 몽골을 방문한 지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이제 우리의 책무는 서로의 존경스러운 선대들이 토대를 닦은 양국의 관계를 더욱 확대하고 강화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국은 좋은 친구로서 힘들고 절박한 시기에 서로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는 부모 잃은 어린이들까지 함께 키우며 서로가 마음과 정성을 나누고, 물질적인 도움과 응원까지 공유한 나라이다. 나는 몽골과 북한이 함께 새로운 성공과 행복을 공유하며 관계를 증진해 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근의 진전에 대해서…

최근 수년간 양국의 고위급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양국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많은 이슈들을 다루는 몽골-북한 정부 간 협의 위원회를 운영해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공단체, 시민, 기업들도 서로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이번 방북을 통해 많은 몽골 사업가들이 북한과 거래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번에는 우리의 유소년 축구단도 동반했다.

나는 몽골과 북한의 경제 관계가 지도자 김정은이 추진 중인 ‘경제 강성대국 건설’이란 목표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몽골은 동북아 안보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 오고 있다. 우리는 동북아 안보와 관련해 울란바토르 회담(Ulan Bator Dialogue)을 제안했다. 이와 같은 계획은 양국의 신뢰를 강화하는 동시에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난국을 타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오늘날…

나와 방북 대표단을 따뜻하게 대접해 준 북한 사람들과 지도부에 감사의 인사말을 다시 전하려 한다. 나는 북한 지도부와 만나 중요한 대화를 나눴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스포츠 및 인도주의 분야에서의 관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논의했다. 우리는 학자들과 학생들, 그리고 청소년들의 교류를 포함해 교육 분야의 관계 증진이야말로 양국의 협력에 중요한 요소라고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또한 예술가와 운동선수를 교류하게 하고 합작 프로젝트를 구성할 충분한 기회도 있다. 우리는 물론 그를 지지할 것이다. 나는 어제 5만명의 팬들과 관중들 앞에서 펼쳐진 양국 유소년 축구팀의 토너먼트 개회식에 참석해 무척 기쁘고 행복했다.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해 여러분들 앞에서 몽골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몽골과 북한의 관계에 대해 연설할 기회를 갖게 돼서 흥분되고 기쁘다. 나는 어떤 국가에서든지 지식의 보고인 대학과 학자, 교수, 학생 및 청소년들이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고, 국가의 삶을 좌우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북한의 청소년들과 만나고 북한의 앞날을 볼 수 있었던 이번 방북을 기쁨과 따스함 속에서 언제까지나 기억할 것이다.

나는 청소년들의 생각, 창의력, 에너지를 믿는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도 젊다. 나는 그가 북한 주민들을 행복과 번영의 미래로 이끌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이를 통해 북한이 소망하는 모든 일들이 이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어떤 질문이든지 환영한다.

감사합니다.(한국어로)

후반부는 북한과의 관계 강조

몽골 대통령 사히아긴 엘베그도르지.

연설문 아래에는 ‘연설에 대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지만 몽골 대통령이 퇴장할 때까지 청중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북한 측이 연설 주제를 먼저 제안했으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란 단어는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나와 있다. 또한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연설한 최초의 외국 정상이라고 전했다.

전문을 살펴보면 몽골이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라고 강조하는 가운데 “폭정은 영원할 수 없다(No tyranny lasts forever)”고 말한 것으로 적혀 있다. 실제 연설 장면이 녹화된 동영상을 보면 연설을 시작한 지 4분쯤 지난 뒤 해당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뒤이어 몽골 내의 사법 개혁과 부패 척결, 사형제도 폐지, 그리고 비핵국 지위 등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총 15분의 연설 중 4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 후에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몽골과 북한의 관계에 대해 연설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전쟁 전후로 시작된 양국의 상호협력은 여전히 건재하며 지금보다 더 발전적인 관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시사했다. 마지막에는 환대에 대한 감사인사와 함께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도 젊다. 나는 그가 북한 주민들을 행복과 번영의 미래로 이끌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The leader of the DPRK Kim Jon-un is also a young man. I do believe that you have all what it takes to lead the Korean people to a happy and prosperous future)”고 말했다. 사실상 김정은 개인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연설은 몽골어로 했다. 인터넷상에는 원본과 함께 영어로 더빙된 영상이 올라와 있다. 원본을 살펴본 결과 실제 연설을 하는 현장에서는 영어 통역을 제공하지 않았다. 연단 뒤에 걸린 대형 화면에 ‘짜히아긴 엘베그도르쥐 각하의 김일성종합대학 방문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문구만이 떠 있을 뿐이다. 이 문구는 연설 내내 바뀌지 않았다. 연설문을 한글로 번역해 사전에 청중들에게 제공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영상을 보면 청중들은 어떤 문서도 참고하고 있지 않다. 또한 연설 초반에 ‘민감한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의 표정에서 변화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추측건대 청중들이 몽골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면 형식적인 연설로 그쳤을 가능성이 높다.

연설문이 수록된 대통령 홈페이지.

‘민주주의’ 제외하면 五十步百步

몽골을 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2011년 8월 22일 울란바토르 정부청사 내에 마련된 귀빈용 ‘게르’에서 사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대통령과 단독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해당 연설문이 떠 있는 몽골 대통령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과거 포럼을 비롯한 여러 자리에서 대통령이 한 연설들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이 취임한 2009년 6월부터 지금까지 총 78개의 연설문이 올라와 있다. 민주주의로의 체제 전환에 성공한 몽골을 소개하는 내용은 굉장히 빈번하게 등장한다. 자유와 인권을 역설하는 내용도 다반사이다. ‘민주주의’란 단어가 배제된 점을 제외하면 다른 연설들과 김일성종합대학에서의 연설 사이에서 내용상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그 중 몇 개를 살펴보자. 최근인 2013년 11월 22일에 베트남 외교원에서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민주주의로 전환한 몽골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하고자 한다”며 연설의 주제를 밝혔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법의 공평한 작용, 부패 없는 훌륭한 통치와 정부는 건강한 민주주의로의 전환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했는데 이는 사법 개혁과 부패 척결을 강조한 북한에서의 연설과 유사한 내용이다.

방북 한 달 전인 9월 27일에 열린 ‘제68회 유엔총회’에서도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몽골의 업적과 민주주의를 거론했다. “우리는 ‘불관용’ 정책으로 민주주의의 적(敵)인 부패와 싸우고 있다”는 발언으로 시작한 본문은 “공정과 투명성, 법을 위해서라면 용감해져야 한다”고 마무리되고 있다. 그 사이에 인권, 자유, 부패 척결, 비핵화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4월 29일 몽골에서 열린 ‘민주주의공동체 7차 각료회의’ 개회식에서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모든 남성과 여성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며 인사말을 전했다. 해당 연설에서 ‘자유’는 26번, ‘민주주의’는 29번 언급했다. 또한 북한이 처한 문제의 해결책을 몽골과 북한의 교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핵 문제 역시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사실상 원론적인 내용일뿐더러 앞의 연설에서 언급된 내용들과 일맥상통한다.

나아가 외국을 대상으로 연설할 때마다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는 부분은 상투적으로 등장한다. 2010년 11월 18일 일본의 초청으로 열린 일본 국회의사당의 연설에서 몽골 대통령은 “우리 양국의 관계는 특별하다”며 일본과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관계임을 상기시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한 2011년 8월 22일에는 “두 나라는 협력자로서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2012년 3월 31일 독일 공식 방문시에도 독일과 몽골의 뿌리 깊은 관계를 부각하는 가운데 동일한 가치를 강조했다.

‘폭정(tyranny)’도 과거 연설에 자주 등장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은 워싱턴 브루킹스 연구소에서의 연설에서 ‘폭정’을 직접 언급하고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발언했다. (출처: 몽골 대통령 홈페이지)

가장 논란을 야기한 부분인 폭정을 비판하는 발언도 방북 연설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민주주의공동체 7차 각료회의’에서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자유를 강조하기 위해 ‘폭정(tyranny)’을 두 번 언급했다. 그는 “신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자유를 향한 갈망을 심어 두었다. 때때로 그 갈망은 폭정과 억제에 부딪히지만(that desire can be crushed by tyranny and oppression) 곧 다시 일어난다”고 말했다. 연이어 “한때 몽골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장벽을 쌓았다. 이제 우리는 다른 이들을 도와 그 장벽과 함께 폭정과 불의라는 철의 장막(the walls and iron curtains of tyranny and injustice)을 무너뜨릴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강조했다.

또한 2011년 9월 21일 뉴욕에서 열린 ‘제66회 유엔총회’의 대체토론에서 연설자로 나선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자유를 향한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이다. 〈폭정도, 악랄한 정권도 영원할 수 없다 그 힘을 영원히 억누룰 수 없다〉(No tyranny, no cruelest regime can resist it forever)”며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시민들을 억압하는 예멘 정권과 지도자들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해 주고 싶다”고 발언했다.

2011년 6월 16일 워싱턴의 사회과학연구소인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21세기 몽골의 외교 정책’을 주제로 연설할 때도 폭정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폭정은 자유와 존엄 속에서 살고자 하는 갈망을 무너뜨리지만 그것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Tyranny can make them crushed, but it will rise again)”는 발언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전후 맥락은 앞서 언급한 민주주의공동체 각료회의에서의 연설 내용과 유사했다. 그리고 “나는 폭정에 맞서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지지한다(I really support those people who are trying to rid of those tyranny)”고도 했다.

이 연설문에서 몽골 대통령은 몽골과 북한의 관계를 비교적 상세히 언급했다. 그는 브루킹스 연구소의 소장인 스트로브 탤벗의 소개를 이어 받아 기조연설을 할 때 “우리는 북한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뒤이어 “우리는 북한에 대사관을 두고 있고 정부간의 연락망도 갖추고 있다”며 “매년 회담도 진행했고 이제는 교류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라고 발언했다. 또한 “북한 측이 몽골에 방문할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삶의 모습과 통치 방식을 확인한다. 이로써 두 나라의 관계는 매우 특별해질 것이라고 본다(Because of that, I think our two countries' bond is becoming very, very unique)”며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20년 전에 우리는 북한과 같은 정치체제를 고수했지만 지금은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다(Twenty years we had a North Korea-like political system. Today, we are going to share the democracy)”고 말해 정치적인 면에서 북한과의 차별화를 강조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덧붙여 연설에 같이 참석한 이호진 전 유엔 차석대사가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에게 “당신의 가까운 이웃 중 하나인 북한은 몽골의 동맹국으로서 적합하다고 보는데, 평화와 독립을 향한 당신의 평화적 투쟁을 북한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는 “우리는 정말로 지금처럼 북한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길 원하고, 소통의 경로도 열려 있다”고 답했다. 이어 “1998년에 방북했을 때 우리들이 통치체제를 변화시켜 얻은 이익을 북한 측에 전달했다”고 말하며 북한도 몽골의 변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유보적인 답변으로 마무리하여 민주주의를 관철하기 위한 몽골의 구체적인 계획은 확인할 수 없었다.

‘독재정권’이라고 直言하기도

문수 물놀이 공원을 둘러보고 있는 엘베그도르지 대통령. (출처: 몽골 대통령 홈페이지).

‘폭정’이란 단어 외에 ‘독재정권(dictatorship)’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2012년 8월 13일 몽골과 미국의 수교 25주년을 맞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국가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길을 제시했다. 그는 “훌륭한 통치, 독립적인 사법부, 그리고 법 조항은 정치의 시금석”이라며 “모든 국가는 민주주의와 독재정권 사이의 딜레마에 봉착한다(Every State faces dilemma between democracy and dictatorship)”고 말했다.

‘사법 개혁과 정의’를 주제로 2011년 4월 14일에 열린 국가 포럼에서 개회사를 맡은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정의를 위한 국가의 역할을 부각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유일한 역할은 국민들을 섬기는 것이라고 자문자답하며 “대통령은 독재정권을 결코 의도해서는 안 되고 국민을 억압해서도 안 된다(President is not meant for dictatorship at all, not for suppressing the people)”고 방점을 찍었다.

2009년 10월 5일 서울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 민주주의 세계 포럼(WFDA)’에서는 ‘폭정’과 ‘독재정권’을 동시에 언급했다. 그는 “폭정의 치하에서 살며 그것에 저항해 온 나는 어떠한 독재정권도, 군사정권도, 그리고 권위주의적 통치도 자유를 결심한 국민들의 집단의지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확신한다(I can assure that no dictatorship, no military regime, no authoritarian government can stand against the collective will of people determined to be free)”고 외쳤다. 자유와 인권을 기치로 내건 몽골 대통령의 연설에서 그것에 반하는 개념인 ‘폭정’과 ‘독재’는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보도가 빚은 오해

미국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국제방송인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는 몽골 대통령의 방북 소식과 더불어 연설 내용에 대해 11월 15일 최초로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14일, 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몽골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적 인물이며 이를 강조한 것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덧붙여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유에 대해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몽골에서 68년에 걸친 공산주의 시대를 끝내고 민주주의 길을 개척한 선구자 가운데 한 명으로 ‘민주주의 투사’란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만남을 꺼렸을 것”이란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연설문의 내용이 정상회담 결렬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국내 언론들의 보도와 배치되는 부분이다.

중앙대 영문학과 장영준 교수는 “연설문이 상당히 절제된 느낌”이라며 “북한 체제 비판보다 (오히려)우호 관계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덧붙여 ‘자유(freedom)’란 개념의 해석에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사람들은 자기들도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몽골 대통령의 연설을 비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외교 관례상 상대국 최고 대학에서 상대국을 비판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힘들다”고 했다.

연설문의 본래 의도와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유를 듣기 위해 몽골 외교부에 통화를 시도했으나 “답변을 기다려 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이승조 교수는 “국내 언론의 보도 내용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나 전체적인 맥락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 연설에서 주제는 중첩될 수 있고, 상대국에 대한 우호적인 수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했다. 하지만 “해석자에 따라 주제가 달라질 가능성은 상존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민규 위원은 “어젠다 세팅(의제 설정)은 기자의 고유 권한”이라며 연설문에서 단어가 취사선택된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정상회담의 결렬이 연설 때문이라는 것은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추측성 보도”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