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분석] 남북회담의 格 시비, 누구 말이 맞나 : 월간조선

6월 12~13일로 예정됐던 남북(南北)당국회담이 무산(霧散)됐다. 6월 11일 남북 양측은 실무회담에서 대표단 명단을 서로 교환했다. 우리 측 수석대표는 김남식 통일부 차관, 북측 수석대표는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이었다. 이에 대해 북측은 우리 측 수석대표가 류길재(柳吉在) 통일부 장관이 아닌 김 차관인 데 대해 항의하면서, 우리 측에서 장관급이 나오지 않으면 남북당국회담을 열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수석대표의 격(格) 문제로 회담이 결렬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격’ 문제로 회담이 결렬되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었다.

6월 10일 남북장관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끝난 후, 남과 북은 각기 따로 발표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공동발표문이 아니라 각자 다른 발표문을 내놓았다는 데서부터 양측의 입장 차이가 적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김형석(金炯錫) 통일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이번 접촉에서 남북은 회담 명칭, 일자, 장소, 대표단 규모, 왕래 경로 등에 대해 합의를 보았으나, 수석대표 급(級)과 의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협의 결과를 발표문 형식으로 각기 발표하였다”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수석대표의 급과 관련, “우리 측은 남북관계 총괄 부처 장(長)인 통일부 장관이 나갈 것이며 북한도 이에 상응하는 통일전선부장(김양건)이 나오도록 요구하였으나, 북한 측은 우리 측 요구에 부정적 의견을 표명하면서 상(相)급 당국자로 하자고 하였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우리 측은 남북관계의 오랜 역사 속에서 남북관계를 책임지고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화 상대방은 통일부 장관과 통일전선부장이라는 점을 설명하면서, 북측 입장을 감안, 합의문에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라는 완화된 문안을 제시하였으나, 북측은 여전히 우리 측 문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면서 “이에 따라 우리 측 수석대표는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로, 북측 단장은 ‘상급당국자’로 하기로 하였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회담명칭도 ‘장관급회담’이 아니라 ‘남북당국회담’으로 하기로 했다.

북한이 주장했다는 ‘상급당국자’라는 말은 ‘상급(上級)’ 당국자가 아니라 ‘상급(相級)’, 즉 북한식 표현으로 ‘장관급’ 당국자를 의미한다.

祖平統의 반발

북한 측은 6월 11일 조평통 서기국장 강지영을 수석대표로 하는 명단을 내놓으면서, 강지영이 ‘상급’, 즉 ‘장관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 측은 우리 측 수석대표가 류길재 장관이 아니라 김남식 차관인 데 대해 발끈했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11일 “북한은 비정상적인 관행에 따라 권한과 책임을 인정하기 어려운 인사를 장관급이라고 하면서 통보해 왔다”면서 “이는 우리 국민들의 상식과 국제적 기준에도 맞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북한 조평통은 6월 13일 4100여 자에 달하는 장문(長文)의 성명을 냈다. 이 성명에서 조평통은 회담대표의 격과 급 문제에 대해 “남측의 무식과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비난했다. 조평통은 “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한갓 괴뢰 행정부의 장관 따위와 상대도 되지 않는다”면서 “북남대화 역사가 수십 년을 헤아리지만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공식 당국대화마당에 단장으로 나간 적은 한 번도 없다”고도 주장했다. 또 조평통은 조평통 서기국에 대해 “남북관계를 주관하고 통일사업을 전담한 공식기관”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북한 조선중앙TV는 “우리는 지난 시기 북남상급회담 단장으로 내각책임참사의 명의를 가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1부국장을 내보냈으며, 서기국 부국장이 남조선 통일부 차관과 늘 상대하여 왔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2000~2007년 남북장관급회담에 ‘내각책임참사’ 타이틀을 달고 나왔던 전금철(본명 전금진), 김령성, 권호웅 등이 조평통 서기국 제1부국장이었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측이 류길재 통일부 장관에 상응해서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북한 측 당국자로 지목한 사람은 김양건 조선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다. 하지만 북한은 통전부 산하에 있는 조평통의 위원장도, 부위원장도 아닌 서기국장을 ‘상급(장관급)’이라며 수석대표로 내밀었다. 거기에 더해 그동안 조평통 서기국 1부국장을 내보내 왔는데, 이번에 서기국장을 내보내기로 한 것을 감지덕지하라는 투의 방송까지 내보냈다. 이런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북한 시스템에 대한 誤解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북한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통치시스템을 가진 체제다. 무엇보다도 조선노동당이 국가 전체를 ‘영도’하는 일당독재국가다. 북한헌법 제1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보다도 상위(上位) 규범인 조선노동당 규약에서도 “조선노동당은 근로인민 대중의 모든 정치조직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형태의 정치조직이며, 정치, 군사, 경제, 문화를 비롯한 모든 분야를 통일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사회의 영도적 정치조직이며, 혁명의 참모부”라고 규정하고 있다. 당(黨)이 지배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당 서열’이다. 겉으로 나타난 직위나 계급보다는 실질적인 당 서열이 중요하다. 또 직책보다 역할을 더 중요시한다. 이는 공식적인 제도를 중시하는 우리와 차이점이다. 또 북한의 정권기관 중에는 우리 정부조직과 1대1로 비교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 혹시 이번에 남북회담 대표의 ‘격’과 ‘급’을 따지면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놓친 것은 없을까.

정성장(鄭成長)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 전임연구위원은 “우리 기준과 편견으로 북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북한의 기구나 권력서열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인민군 정치총국장인 최룡해는 과거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 위원장(후에 제1서기로 개칭)을 지냈습니다. 당시 장성택이 노동당 청년사업부장을 했습니다. 때문에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당시부터 장성택이 최룡해의 상사(上司)였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동맹은 청년사업부가 아니라 근로단체부의 지도를 받았고, 당 서열은 최룡해가 장성택보다 높았습니다.”

그는 “북한에서의 국장(局長)이라는 직함을 우리의 국장급으로 보면 곤란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경우, 우리의 국방부 ‘국장’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총정치국장은 인민무력부장보다도 권력서열이 위입니다. 인민군의 서열은 보통 총정치국장-총참모장-인민무력부장-총참모부 작전국장의 순(順)입니다. 작전국장도 총참모부의 일개 국장이 아닙니다. 총참모부에는 총참모장과 여러 명의 부총참모장이 있는데, 작전국장은 제1부총참모장을 겸임하는 군부(軍部)의 핵심 실세(實勢)입니다.”

“黨 비서는 우리의 부총리級”

그러면 이번에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나 북한이 상급(장관급)이라고 주장한 조평통 서기국장은 어느 정도 위상일까? 정성장 연구위원은 “황장엽(黃長燁) 전 노동당 비서는 ‘북한을 움직이는 핵심 실세들은 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조직지도부 부부장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 중앙위 비서는 북한을 움직이는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핵심 실세”라고 말했다. 그는 “당 비서는 우리로 말하면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장관을 겸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전문부서를 맡기도 하고, 여러 전문부서를 관장하기도 한다는 점에서는 우리의 부총리급 정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노동당 비서는 제1비서(옛 총비서)인 김정은 외에 9명이 있다.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정치국 위원), 박도춘(정치국 위원), 김기남(정치국 위원, 선전선동부장), 최태복(정치국 위원,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양건(정치국 후보위원, 통일전선부장), 김영일(정치국 후보위원, 국제부장), 김평해(정치국 후보위원, 간부부장), 문경덕(정치국 후보위원, 평양시당위원회 책임비서), 곽범기(정치국 후보위원, 계획재정부장)가 그들이다. 노동당 비서가 일상적인 당의 업무를 맡는다면, 국가전략·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국 위원들이다. 정치국 위원은 4명의 상무위원(김정은 제1비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 최룡해 인민군 정치총국장)을 필두로 장성택·김경희 등 15명의 위원, 오극렬·김양건 등 15명의 후보위원으로 구성된다.

김양건 통전부장은 당 중앙위 비서와 정치국 후보위원을 겸하고 있다. 북한정권의 핵심 실세 중 한 명인 셈이다. 그가 맡고 있는 통전부는 남북교류와 대남(對南)공작을 담당하는 부서다. 1970년대부터 남북대화에 종사해 온 이동복(李東馥) 전 국회의원은 “노동당 부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대내(對內)부서로는 조직지도부, 대외(對外)부서로는 통전부”라고 말했다. 정성장 연구위원은 “통전부장은 우리로 치면 통일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의 업무를 부분적으로 겸하고 있는 셈”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2007년 김양건이 서울에 왔을 때 김만복(金萬福) 당시 국정원장이 상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金正日이 사실상 통전부장 겸임한 적도”

김용순 前 노동당 對南담당비서.

겉으로 드러난 서열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권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보장하는 것은 절대권력자와의 관계다. 북한 통전부에 근무했던 탈북시인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의 말이다.

“김정일의 사촌동생인 민주조선사 주필 김정숙의 남편이었던 허담은 김정일의 최측근이었습니다. 그가 대남비서를 맡았을 때에는 당 작전부, 35호실, 대외연락부, 통전부를 총괄하고 있었을 정도로 절대적 지위였습니다.

그러나 허담 사망 후 임명된 국제부 출신 김용순은 별로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작전부장 오극렬이나 대외연락부 강관주 부장이 김정일의 신임도에선 더 앞서 있어 김용순의 당적(黨的) 지도권한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대남비서로서 김용순의 권한은 자연히 통전부 정책과 위장조직인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역할로 축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진성 대표는 “2004년까지 통전부 부장은 사실상 김정일이었다”고 말했다.

“2004년까지 통전부 부장직은 공석(空席)이었습니다. 김정일은 당 조직부, 선전선동부, 국가보위부 등 핵심부서의 부장 자리를 비워놓고 자신이 사실상 겸임했습니다. 이때는 제1부부장이 해당 부서의 최고실권자 역할을 했습니다. 2004년경까지는 임동옥이 제1부부장으로 통전부의 최고실권자 노릇을 했습니다. 이 점은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정상회담 선언문 최종안을 논의하는 4자회담 때 남측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임동원이, 북측에서는 김정일과 함께 임동옥이 참가한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임동옥은 대남비서임을 내세워 자신의 업무에 간여하려 하던 김용순과는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강지영이 통전부 제1부부장급?

임동옥 前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조평통은 통전부가 관장하는 여러 위원회 가운데 하나다. 조평통 외에도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해외동포위원회,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범청학련(조국통일범청년학생연합) 등이 있다.

우리 통일부에서는 이들 단체를 ‘외곽단체’라는 말로 표현한다. 정성장 연구위원은 “외곽단체라는 표현은 잘못”이라면서 “조평통은 통전부 ‘내(內)’의 대외용(對外用) 기구”라고 했다. 그는 “조평통 위원장은 따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 통전부장이 겸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조평통 서기국이 ‘남북관계를 주관하고 통일사업을 전담한 공식기관’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맞는 말일까?

정성장 연구위원은 “통전부 내의 남북대화담당기구가 조평통이고, 그 실무책임자가 서기국장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조평통 부위원장에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 황장엽 비서, 김영남 외교부장, 당 원로인 정준기, 허정숙 등이 포진할 정도로 조평통은 비중 있는 기구”라고 말했다.

그는 조평통 서기국장의 위상에 대해 “조평통 서기국장은 통전부 제1부부장급으로 보면 된다”면서 “당 비서나 부장의 위상으로 볼 때, 북한으로서는 조평통 서기국장이면 우리의 장관급에 해당한다고 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는 “조평통 서기국장은 통전부 제2부부장을 겸임한다”고 말했다. “통전부 내에서 조평통 서기국장의 위상은 높은 편입니다. 통전부 산하에는 각 연락소들이 많은데 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당 통전부의 모든 기능을 조평통이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통전부 내에서는 조평통을 ‘어머니연락소’라고 합니다.

국내 보도에서는 강지영 서기국장이 보장성원(수행원)으로 언급되어 관심을 끌었던 원동연 부부장보다 급이 낮다고 하는데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통전부 제2부부장인 강지영이 부부장인 원동연보다 높습니다.”

장진성 대표는 “우리 정부가 강지영의 상대방으로 류길재 통일부 장관 대신 김남식 차관을 내세운 것은 어찌 보면 서로 격이 맞는 셈”이라고 말했다.

黨중앙위원에 포함 안 돼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

강지영이 통전부 부부장급이라고 할 때, 그의 당내 공식적인 서열은 어느 정도나 될까?

당 중앙위원회는 북한 노동당 규약상 당의 최고지도기관이다. 당 비서, 정치국원들을 비롯해 당·정·군의 요인들도 이들 중에서 선출된다. 2010년 10월 28일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선출된 중앙위원회 정(正)위원은 124명, 후보위원은 105명이었다. 이들의 이름을 확인해 보았다. 거기에 강지영의 이름은 없었다. 통전부 제1부부장이라는 강지영이 적어도 노동당 ‘공식’ 서열상으로는 200위권 안에 포함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반면에 미북(美北)회담이나 6자회담에 자주 등장해 우리에게 익숙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중앙위 후보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일반적으로 내각의 부서보다는 당 부서가 힘이 있는 북한 체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핵심부서 중 하나인 통전부 제1부부장급이고, 북한이 상급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외무성 제1부상보다도 당 서열이 밀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에 대해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는 “당 중앙위원은 정치적 명예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중앙당 부부장이 중앙위원에 포함되지 않아도 실권(實權)은 더 강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내각의 상이나 부상은 당내 위상이 어느 정도나 될까? 장해성 전 북한중앙TV 기자는 “내각의 상이면 당 중앙위원 정도 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면서 “내각의 상과 당 부장을 비교하면, 당 부장 쪽이 당연히 위다”라고 말했다. 장진성 대표는 “내각의 부상은 일반적으로 당의 지도원보다 약한 경우도 많다. 내각 부상이 당 지도원에게 야단을 맞는 경우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내각책임참사

남북장관급회담에 나왔던 ‘내각책임참사’들. 왼쪽부터 전금철, 김영성, 권호웅.

그러면 과거 ‘내각책임참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남북장관급 회담에 등장했던 전금철(전금진), 김영성, 권호웅 등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정성장 연구위원은 “북한에서 ‘책임’이라는 말이 붙으면, 그 자체로 ‘고위층’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북한 관련 보도에서 ‘책임일꾼’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서 ‘책임일꾼’이라고 하면 대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나 당 전문부서의 부장, 제1부부장 정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내각책임참사’는 내각(옛 정무원)에 통일·남북대화 관련 부서가 없는 북한에서 남북대화에 내보내기 위해 임시로 두는 ‘무임소(無任所) 장관’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하지만 전금철, 김영성, 권호웅 모두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평통, 범민련 북측본부,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등 통일전선부 산하 기관에서 실무자로 일한 경력만 보일 뿐, 노동당 내에서 중앙위 후보위원급이라도 들어간 경력은 보이지 않는다. 김영성만이 2003년 제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하지만 현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687명이나 되는데다가, 북한 권력구조상 최고인민회의는 ‘고무도장’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기에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반면에 장진성 대표는 “내각참사 직함이란 것은 그리 대단한 지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통전부 산하 각 연락소에는 ‘참사실’이라고 있습니다. ‘통전부 직원들은 비밀유지 차원에서 대(代)를 이어 근무하도록 하라’는 김정일의 지침에 의해 처음에는 퇴직 직원들에 대한 우대근무연장 직제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참사실’의 역할은 오랜 근무경험을 가지고 통전부 사업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와 조언을 하는, 일종의 고문(顧問)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 남북대화 및 교류가 활성화되자 통전부는 남북관계 정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업무명칭과 목적을 숨기기 위해 참사실 명함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대화는 물론이고 경협이나 민간교류, 심지어 인물포섭을 위해 해외에서 접촉할 때에도 통전부는 모두 참사실 명함을 사용합니다.”

결국 조평통 서기국장이건, ‘내각책임참사’건 간에, ‘대남실무일꾼’일 뿐이지, 우리 측이 요구하는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祖平統은 페이퍼 컴퍼니”(유동렬)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북한이나 정성장 연구위원의 주장과는 달리, 보수적 성향의 대북(對北)전문가나 남북대화에 오래 종사했던 이들은 조평통의 실체(實體)에 대해 냉소적(冷笑的)인 태도를 감추지 않는다.

강인덕(康仁德) 전 통일부 장관은 “조평통 서기국은 남북관계를 주관하고 통일사업을 전담한 공식기관”이라는 북한의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이동복 전 의원은 “조평통은 실체가 없는 조직이며, 통전부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가면(假面)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통전부 회담과(會談課)가 필요할 때마다 조평통으로, 아태평화위로, 6·15실천위원회로 얼굴을 내미는 것입니다. 조평통 서기국장은 통전부 회담과장이 겸임하는 과장급 자리에 불과해요. 내각책임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는 “일부 언론에선 통전부와 조평통을 분리시켜 봐야 한다고까지 말하는데 조평통은 별개 기관이 아니라 엄연히 통전부에 소속된 일개 연락소”라고 말했다. 장해성 전 조선중앙TV 기자는 “북한에 있을 때 조평통 사무실에 가보니 6·25 때 올라왔다는 늙은이들이 장기나 두고 있더라”면서 “그런데도 조평통 명의의 성명은 열심히 나왔다”고 말했다. 유동열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아예 조평통을 ‘페이퍼 컴퍼니’라고 칭했다.

조평통은 6월 13일 “북남대화 역사가 수십 년을 헤아리지만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공식 당국대화마당에 단장으로 나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성장 연구위원은 “남북회담에 노동당 비서가 직접 나서는 것은 최고지도자와 관련이 있을 때에 한한다”고 말했다. “1993년 남북정상(頂上)회담이 논의될 때나 김용순 노동당 비서가 나선 적이 있고, 2009년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사망 때 김기남 당시 노동당 비서가 김정일의 특사로 김양건 통전부장과 함께 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남북대화에 당 비서가 나선 적은 없습니다.”

“우리가 빌미 준 측면 있다”

1972년 12월 1일 서울을 방문한 박성철 북한 부수상(왼쪽)과 악수를 하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 박성철은 당시 노동당 정치위원이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위와 같은 조평통의 주장에 대해 “그게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었다.

“1970년대에 남북조절위원회를 할 때 북한 측 위원장은 김일성(金日成)의 동생으로 조직지도부장, 정치위원회(후에 정치국으로 개칭) 위원이었던 김영주(金英柱)였고, 김영주의 대리인으로 나왔던 사람이 제2부수상 겸 정치위원이었던 박성철(朴成哲)이었어요. 당 비서보다 훨씬 높은 정치위원이 나왔었는데, 그런 소릴 하는 게 말이 됩니까?”

당시 김영주가 북측 대표로 나선 것은 우리 측이 이후락(李厚洛) 중앙정보부장의 상대방으로 지목했기 때문이었다. 강인덕 전 장관은 “김영주를 북한의 2인자로 보고 대화상대자로 지목했는데, 북한 측에서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는 북한 내부적으로 후계자가 김정일로 정해지고, 김영주가 밀리고 있을 때였다”고 말했다. 이동복 전 의원은 “김영주는 단 한 번 얼굴만 내밀었을 뿐이고, 이후에는 이름만 걸고 있었다. 김일성은 김영주에게 병(病)이 있다면서 ‘내가 김영주 못지않게 신임하는 사람’이라면서 내보낸 게 박성철”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한갓 괴뢰행정부의 장관 따위와 상대도 되지 않는다”면서 조평통 서기국장을 상급(장관급)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성장 연구위원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당 비서 내지 통전부장의 역할과 업무가 큰 것도 이유겠지만, 우리 측이 원인 제공을 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우리 측에서는 임동원(林東源) 특보, 황원탁(黃源卓)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이기호(李起浩) 경제수석비서관이 배석했습니다. 박재규(朴在圭) 통일부 장관은 끼지 못했어요. 반면에 북측에서는 김용순 비서 한 사람만 배석했습니다. 노동당 비서 한 사람이 우리의 수석과 특보 세 사람을 상대한 셈인데다가, 통일부 장관이 배석하지 못한 걸 보고 ‘남측 통일부 장관은 별거 아니구나’라고 무시할 빌미를 준 셈입니다.

2007년 10·4정상회담 때에는 이재정(李在禎) 당시 통일부 장관이 배석했지만, 권오규 부총리, 백종천(白鍾天) 청와대 안보실장, 김만복 국정원장과 함께였습니다. 반면에 북측에서는 김양건 통전부장 한 사람이 배석했습니다.”

“北, 南을 대등한 대화상대로 생각하지 않아”

정 연구위원은 “1990년 안병수(안경호) 조평통 서기국장이 홍성철(洪性澈) 당시 통일원 장관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낸 것을 보면, 북한은 오래전부터 통일부 장관을 자기들의 조평통 서기국장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복 전 의원은 “남북조절위원회 때에도 남북 간에 급의 불균형은 있었다”고 말했다.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부위원장은 부총리(경제기획원 장관)를 지낸 장기영(張基榮)씨였고, 나중에는 문교부 장관을 지낸 민관식(閔寬植)씨가 부위원장 대리를 했는데, 북측 부위원장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었던 유장식이었어요.”

강인덕 전 장관은 북한에서 대남담당 비서나 통일전선부장이 남북대화를 총지휘하고, 남북대화에서 우리와 비교할 때 직급이 낮은 담당자들을 내보내는 데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마디로 우리를 자기들과 대등한 대화상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혁명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공작을 통해 무너뜨려야 할 대상으로 보니 대남담당 비서, 통일전선부장이 남북관계를 담당하는 겁니다.”

—북한이 우리보다 낮은 직급의 일꾼을 내보내는 것은, 자기들이 정통정권이고 우리는 괴뢰정권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진정한 남북대화를 하려면 체제공존과 상호존중이 선행(先行)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남북대화에 통일부 장관이 나가는 것은 잘못”

이동복 전 의원.

1970년대부터 남북대화에 참여했던 송종환(宋鍾奐) 명지대 교수는 “북한이 특히 회담을 깨려 할 때, 갑자기 기존보다 낮은 당국자를 내보내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1970년대 중반 남북조절위를 중단시킬 때 북측 부위원장이던 유장식을 조직지도부 과장급으로 교체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김영주가 실권(失權)하고 유장식 등 김영주 계열 간부들이 숙청되던 시기와 맞물린다.

우리가 김양건 통전부장을 류길재 장관의 상대역으로 지목한 것은 적절한 일이었을까? 강인덕 전 장관은 “통전부장이 대남공작의 책임자이기도 하지만, 북한에서 대남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책임자니까, 책임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보고 나오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이동복 전 국회의원은 “만일 류길재 장관이 김양건 통전부장을 만났으면, 저쪽에서 우리 측을 갖고 노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남북회담 대표의 격과 급에 대한 논란은 언제든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동복 전 의원은 “1970년대 이후 남북대화가 시작될 때부터 지속되어 온 ‘상호간주원칙(相互看做原則)’이 옳다”고 말했다. “먼저 남북 간에 대표의 격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대신 상대가 내놓은 대표에 대해서는 그 격에 맞는 것으로 ‘간주’하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굳이 ‘장관급 회담’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필요도 없어요. ‘책임 있는 당국자 회담’ 정도로 하고, 각자 자기 체제에서 맞는 사람을 내보내면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장관급 회담에 실제로는 과장급 대표가 나와도 감수해야 한다는 얘긴가요.

“어차피 김양건이 나오나 강지영이 나오나, 결정권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화에 대한 진정성이 없는데, 누가 나오든 그게 그거죠.”

이동복 전 의원은 “남북대화에 우리 측에서 통일부 장관이 나가는 것도 모순”이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설명이다.

“통일부 장관은 우리가 원하는 통일, 즉 자유통일에 대한 정책과 전략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통일부 장관도 궁극적으로는 북한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대화에 내보내는 게 말이 됩니까? 게다가 통일부 관료들 입장에서는 남북대화 사무가 통일정책 관련 사무보다 더 빛이 나다 보니, 후자(後者)를 소홀히 여기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남북대화 전문인력’ 별도 관리해야

이 전 의원은 “남북대화는 통일부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국가전략 차원에서, 대통령의 후광(後光)을 업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남북대화사무국을 중앙정보부 밑에 두었던 것은 중앙정보부가 대북정보가 많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통령의 위세를 가지고 다른 부서들을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통성에 문제가 있던 전두환(全斗煥) 정권 때, 뭔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남북대화사무국을 통일부로 넘겼는데, 잘못한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과거처럼 국정원이 모든 걸 조정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지금 국정원에는 그런 역량도 없어요.

대신 대통령 직속으로 가칭(假稱) 남북대화추진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조평통을 상대하게 하면 됩니다. 남북대화 전문인력들을 모두 남북대화추진위에 넣어 관리해야 합니다. 북한이 그렇게 하고 있어요. 북한은 전문 남북대화 일꾼이 나오는데,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아마추어가 나가니까 판판이 깨지는 거죠. 대북공작은 국정원, 자유통일정책 수립은 통일부, 남북대화는 남북대화추진위에서 나누어 맡아야 각 기관 고유의 업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북한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